사무엘상 풀어 읽기 · 18장

이 장의 자리 · 16–27장 · 다윗의 등장

사랑과 두려움 사이의 왕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그에게 향하기 시작합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은 다윗을 사랑합니다. 사울의 딸 미갈도 다윗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적으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울을 위해 골리앗과 싸웠고,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나가 맡은 일을 해냈습니다. 왕의 명령에 충실했으며, 왕의 군대에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성공 때문에 왕의 적이 됩니다.

그 차이는 사울의 손에 들린 창과 요나단이 다윗에게 건네는 무기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무기를 벗어 다윗에게 줍니다.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무기를 들어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그들은 같은 집안의 아버지와 아들이었습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718장 본문 읽기 →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왕의 아들

사무엘상 18:1–5 본문 →

이야기는 다윗과 요나단의 만남에서 시작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을 마치자, 요나단의 마음은 다윗의 마음과 깊이 이어졌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했습니다.사무엘상 18:1 · 두루새김

요나단은 이미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용기를 보여 준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4장에서 그는 자신의 무기를 드는 젊은이와 함께 블레셋 주둔 부대로 건너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실지도 모른다. 여호와야훼께서 구원하시는 데는 사람이 많고 적고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14:6의 취지)

그리고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선언했습니다.

「전쟁은 여호와야훼께 속해 있으며, 그분이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기 때문이다.」(17:47)

두 사람의 행동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나타났지만, 그 밑에는 공통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사람의 군사력에 최종적으로 달려 있지 않다고 믿었습니다.

본문은 요나단이 바로 이 신앙적 공통점 때문에 다윗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분명히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앞선 이야기에서 드러난 두 사람의 태도는 그들의 만남을 이해하는 데 의미 있는 배경이 됩니다.

18장 1절의 「마음과 깊이 이어졌습니다」라는 말에는 히브리어 카샤르(묶다·결속시키다) 계열의 동사가 사용됩니다. 두 사람의 마음 또는 생명이 서로 단단히 연결된다는 표현입니다. 같은 표현은 창세기 44:30에서 유다가 아버지 야곱과 막내아들 베냐민의 관계를 설명할 때도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감정의 표현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요나단과 다윗은 언약을 맺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사무엘상 18:3 · 두루새김

언약은 서로를 좋게 여기는 마음을 넘어, 관계 안에서 지켜야 할 신실함과 책임을 포함합니다. 이 장은 그 언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지만, 뒤이어 그 관계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서로와 서로의 집안에 대한 약속이 드러납니다(사무엘상 20:14–17, 42).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왕권이 계속된다면 그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다윗과 언약을 맺은 뒤 자신의 것을 내어줍니다.

요나단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자기 옷뿐 아니라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주었습니다.사무엘상 18:4 · 두루새김

왕의 아들이 입는 옷과 사용하는 무기는 그의 신분과 군대에서 맡은 역할을 드러내는 물건입니다. 그러한 것을 다윗에게 주는 행동은 요나단이 그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고 신뢰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분명한 것은 요나단이 다윗을 경쟁자로 다루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에게 다윗의 뛰어남은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위협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를 향한 사랑과 신뢰를 표현할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사이 다윗은 사울이 맡긴 일들을 해냅니다.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나가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군사들을 지휘하는 자리에 세웠습니다. 모든 백성이 이를 좋게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그랬습니다.사무엘상 18:5 · 두루새김

이 구절에서 다윗은 아직 왕에게 충성하는 신하입니다. 다윗은 왕의 자리를 빼앗으려 하지 않았지만, 왕을 섬기는 자리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의 신뢰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사울의 두려움이 자라나는 배경입니다.

조금 더 깊이

또한 이 장면은 왕권의 미래를 생각할 때 상징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장차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는 사람이 새로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에게 자기 옷과 무기를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이 이 순간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본문이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행동을 요나단이 공식적으로 왕위를 물려받을 권리를 포기한 의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노래를 서로 다르게 듣다

사무엘상 18:6–9 본문 →

전쟁에서 돌아오는 군대를 맞으러 여자들이 나옵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스라엘의 오래된 승리 노래 전통을 떠올리게 합니다. 출애굽기 15:20–21에서 미리암과 여자들이 작은 북을 들고 노래했으며, 사사기 11:34에서는 입다가 전쟁에서 돌아올 때 그의 딸이 작은 북을 치고 춤추며 맞으러 나옵니다.

본문은 그들이 사울 왕을 맞으러 나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는 사울뿐 아니라 다윗도 등장합니다.

여자들은 흥겹게 춤추며 서로 노래를 주고받았습니다. 「사울은 수천 명을 쓰러뜨렸고, 다윗은 수만 명을 쓰러뜨렸다!」사무엘상 18:7 · 두루새김

승리를 기념하는 노래에서 수천 명과 수만 명을 나란히 놓는 것은 큰 승리를 강조하는 시적인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두 사람의 승리를 함께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 노래를 다르게 듣습니다.

사울은 이 말이 못마땅하여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다윗은 수만 명을 쓰러뜨렸다고 하고, 나는 수천 명을 쓰러뜨렸다고 하는구나. 이제 그에게 왕 자리만 남았구나.」사무엘상 18:8 · 두루새김

그는 노래를 단순한 전쟁 영웅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지위와 다윗의 지위를 비교하는 말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다윗은 왕 자리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도 그를 왕으로 세우자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왕 자리를 떠올린 사람은 사울 자신입니다.

사울은 이미 자신의 왕권을 거부하셨다는 여호와야훼의 선언을 들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다윗을 높이는 노래가 그에게 왕권을 잃을 두려움을 일깨웠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사울이 다윗의 기름부음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적을 많이 쓰러뜨린 것은 이스라엘 전체에 유익한 일이었습니다. 왕에게도 좋은 일이었습니다. 사울의 군대가 승리하고, 왕이 세운 지휘관이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 사실을 기뻐하지 못합니다. 다윗이 더 큰 칭찬을 받는 순간, 공동체의 승리가 자신의 패배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날부터 사울은 줄곧 다윗을 시기하는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사무엘상 18:9 · 두루새김

원문에서 다윗을 눈여겨본다는 표현은 여기서 좋게 여기는 관심이 아니라 의심과 경계의 시선을 나타냅니다. 앞으로 다윗이 무엇을 하든 그것은 왕에게 충성하는 행동이기 전에 왕권을 위협할 수 있는 행동으로 보이게 됩니다.

다윗의 성공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 성공을 해석하는 사울의 눈이 달라졌습니다.

조금 더 깊이

잠언 27:4는 이렇게 묻습니다. 「격분은 잔혹하고 분노는 홍수 같지만, 질투 앞에는 누가 버티겠는가?」 이 말씀은 사울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잘 어울립니다. 질투는 이제 사울 혼자만의 감정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실제로 위협하는 행동이 되었습니다.

수금을 타는 손과 창을 쥔 손

사무엘상 18:10–16 본문 →

이튿날 하나님께로부터 온 악한 영이 사울을 세차게 덮칩니다.

이튿날 하나님께로부터 온 악한 영이 사울을 세차게 덮쳤고, 사울은 집 안에서 예언했습니다. 다윗은 날마다 하던 대로 손으로 수금을 타고 있었고, 사울의 손에는 창이 들려 있었습니다.사무엘상 18:10 · 두루새김

16장에서 다윗은 수금을 연주하여 괴로워하는 사울을 편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제도 다윗은 날마다 하던 대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를 향해 창을 던집니다.

사울은 다윗을 벽에 박아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창을 던졌습니다. 다윗은 사울 앞에서 두 번 몸을 피했습니다.사무엘상 18:11 · 두루새김

그런데 사울은 다윗을 죽이지 못하자 그를 두려워합니다.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사울에게서는 떠나고 다윗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사무엘상 18:12 · 두루새김

겉으로 보면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다윗입니다.

사울은 왕입니다. 그는 무기를 가지고 있고, 명령을 내릴 권한도 있습니다. 다윗은 그 앞에서 연주하는 신하이며, 방금 왕의 공격을 피한 사람입니다.

사울에게는 왕권과 군대가 남아 있지만, 여호와야훼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고 자신에게서는 떠나셨다는 사실이 두려움의 근거가 됩니다. 여기서 사울은 단지 다윗의 인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이 다윗에게 있다는 사실 앞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사울은 다윗을 자기 곁에서 내보냅니다.

사울은 다윗을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고 천 명을 거느리는 지휘관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은 군사들을 이끌고 나갔다가 돌아왔습니다.사무엘상 18:13 · 두루새김

겉으로 보면 다윗은 승진한 셈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자리를 맡긴 까닭이 무엇인지 알려 줍니다. 사울은 다윗이 두려워서 그를 자기 곁에서 떠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사울의 기대와 다르게 나타납니다.

다윗은 하는 일마다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사무엘상 18:14 · 두루새김

이 장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라는 말이나 「크게 성공하는」이라는 표현은 여러 차례 나옵니다(18:5, 14, 15, 30). 원문에서는 이 자리에 같은 계열의 낱말이 반복됩니다. 여기에 쓰인 히브리어는 사칼(⁨שָׂכַל⁩) 계열의 낱말입니다. 이 말은 앞뒤 상황에 따라 슬기롭게 행동하다, 분별력 있게 처신하다,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다 등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처음에는 사울이 다윗의 성공을 보고 지휘관으로 세웁니다.

그다음에는 사울이 그를 멀리했는데도 다윗이 성공합니다.

그리고 사울은 다윗이 크게 성공하는 것을 보고 더욱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다윗이 그들을 이끌고 나갔다가 돌아왔기 때문입니다.사무엘상 18:16 · 두루새김

여기서 「그들을 이끌고 나갔다가 돌아왔기 때문입니다」라는 표현은 단순한 이동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가며 돌아오는 지휘관의 활동을 그립니다. 백성은 다윗을 멀리서 소문으로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직접 경험하는 지도자로서 다윗을 사랑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자기 곁에서 멀리할수록, 다윗은 오히려 백성에게 더 가까워집니다.

조금 더 깊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임하여 그가 예언자들 가운데서 예언했습니다. 이번에는 악한 영이 그를 덮쳤고, 그 와중에 다윗을 죽이려는 일이 일어납니다. 본문은 사울이 어떤 말을 했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가 진정한 예언의 말씀을 전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단순히 뜻없는 소리를 질렀다고 바꾸어 읽을 수도 없습니다. 「두 번」이라는 표현이 한 사건 속의 두 차례 공격을 가리키는지, 반복해서 일어난 공격을 짧게 묶어 전한 것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전쟁」을 이용하려는 왕

사무엘상 18:17–19 본문 →

사울은 이제 새로운 방법을 생각합니다.

직접 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지 못했고, 그를 멀리 보내어도 다윗의 성공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딸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겠다. 다만 나를 위해 용사가 되어 여호와야훼의 전쟁을 치러라.」 사울은 자기 손으로 다윗을 죽이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할 생각이었습니다.사무엘상 18:17 · 두루새김

처음 들으면 이 제안은 명예로운 보상처럼 보입니다. 다윗은 이미 골리앗을 쓰러뜨린 사람입니다. 앞 장에서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사람에게 왕의 딸을 주겠다는 보상도 언급되었습니다(17:25).

다윗은 골리앗을 상대하면서 전쟁이 여호와야훼께 속해 있다고 선언했습니다(17:47). 그런데 이제 사울이 다윗에게 「여호와야훼의 전쟁을 치러라」라고 말합니다.

같은 하나님의 이름과 전쟁의 말이 서로 다른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다윗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모욕한 골리앗에게 맞서 싸웠습니다. 사울은 그 다윗을 죽게 만들기 위해 여호와야훼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내세웁니다.

블레셋과 싸우는 일 자체가 이스라엘이 마땅히 해야 할 군사적 임무였을 수 있습니다. 본문이 문제 삼는 것은 사울이 그 임무를 내세우는 실제 목적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다윗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감춘 채, 다윗이 충성스럽게 맡은 일을 해낼수록 죽을 가능성이 커지도록 상황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대답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저나 제 아버지 집안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제가 임금님의 사위가 되겠습니까?」사무엘상 18:18 · 두루새김

그는 자신의 공로를 내세워 권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메랍을 다윗에게 주기로 한 때가 되었을 때, 메랍은 다른 사람에게 아내로 주어집니다. 그 이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메랍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가 다윗과 결혼하고 싶었는지, 아드리엘과 결혼하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을 죽게 만들기 위해 시작된 결혼 제안에서 정작 결혼할 당사자인 메랍의 뜻은 이야기 속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제 같은 일이 다른 딸 미갈을 통해 다시 펼쳐집니다.

조금 더 깊이

다윗은 자신의 집안과 신분을 이유로 왕의 사위가 되는 일이 자신에게 지나치게 큰 영예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반드시 다윗의 마음속 겸손을 온전히 보여 주는 증거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고대 왕에게 말하는 자리에서는 자신의 낮은 신분을 강조하는 표현이 관례적인 예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는지, 다윗의 대답을 거절로 받아들였는지,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덫으로 바꾸려는 사람

사무엘상 18:20–27 본문 →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사람들이 이 일을 사울에게 알리자 사울은 좋게 여겼습니다.사무엘상 18:20 · 두루새김

이 문장에서 두 사람은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른 이유로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사울이 기뻐한 이유는 딸이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혼인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본문은 곧바로 그의 생각을 밝힙니다.

사울은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어 덫이 되게 하고,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기회다. 오늘 너는 내 사위가 될 것이다.」사무엘상 18:21 · 두루새김

이것은 다윗에게만 잔인한 일이 아닙니다. 미갈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딸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결혼 조건이라는 이름으로 위험한 전쟁터에 내보내 죽게 만들려고 합니다.

본문은 미갈이 아버지의 음모를 알고 있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딸의 사랑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삼았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관계를 맺는 이유가 되는 사랑이, 사울에게는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수단이 됩니다.

사울은 이번에는 신하들을 움직입니다.

사울이 신하들에게 명령했습니다. 「다윗에게 따로 가서 몰래 이렇게 말하여라. 『임금님은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하시고, 임금님의 신하들도 모두 당신을 사랑해요. 그러니 이제 임금님의 사위가 되세요.』」사무엘상 18:22 · 두루새김

다윗은 실제로 신하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신하들이 자신들도 다윗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앞서 서술된 상황과 맞습니다. 하지만 왕이 다윗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말은 이제 사울의 실제 뜻을 감추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을 전하자 다윗이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왕의 사위가 되는 일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에요.」사무엘상 18:23 · 두루새김

이번에는 신분뿐 아니라 돈의 문제가 드러납니다.

고대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혼인과 관련하여 신랑 쪽이 신부의 집안에 재산이나 물품을 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34:12와 출애굽기 22:16–17에서도 그러한 혼인 비용과 관련된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돈 대신 다른 것을 요구합니다.

사울이 말했습니다. 「다윗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임금님은 신부 값을 바라지 않으세요. 임금님의 원수들에게 복수할 수 있도록, 블레셋 사람 100명의 포피만 바라세요.』」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할 생각이었습니다.사무엘상 18:25 · 두루새김

죽인 사람들의 몸 일부를 전쟁에서 세운 공로의 증거로 가져오라는 명령입니다. 사울은 다윗의 가난이라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듯이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이용하여 죽음의 위험이 따르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조건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부하들과 함께 나가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쳐 죽이고, 그들의 포피를 가져와 사울에게 바칩니다. 사울이 요구한 것은 백 명의 포피였지만, 다윗은 이백 명의 포피를 가져왔습니다.

이 대목을 단순히 다윗의 뛰어난 믿음이나 용기를 칭찬하는 장면으로만 읽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은 적군 이백 명의 죽음과 그들의 몸 일부를 가져오는 잔혹한 전쟁 행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실제로 그 일을 해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행위에 담긴 모든 폭력적인 모습이 오늘날에도 모범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제 사울은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줍니다. 사울이 다윗을 없애기 위해 마련한 혼인 계획이, 결과적으로 다윗을 왕실에 더 깊이 연결하는 일이 된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포피라는 신체 부위는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의 할례 관습 차이와 연결됩니다. 앞 장에서 다윗은 골리앗을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울의 요구를 특별한 영적 의미를 지닌 의식으로 설명할 근거는 없습니다. 이 문맥에서 그것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음을 입증하는 전리품이며, 다윗을 목숨이 위태로운 위험에 빠뜨리기 위한 수단입니다. 두 배의 수치는 다윗이 왕의 요구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맡은 일을 해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다윗이 왜 정확히 두 배를 가져왔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도

사무엘상 18:28–30 본문 →

사울의 모든 계획이 실패한 뒤 본문은 그의 상태를 다시 설명합니다.

사울은 여호와야훼께서 다윗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사울의 딸 미갈도 다윗을 사랑했습니다.사무엘상 18:28 · 두루새김

이 두 사실은 사울이 왕권을 지키기 위해 없애거나 통제하려 했던 것들입니다. 그는 다윗의 성공을 멈추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계속 성공했습니다.

그는 미갈의 사랑을 이용하여 다윗을 죽게 만들려 했습니다. 그러나 미갈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더욱 두려워했고, 줄곧 다윗의 원수로 지냈습니다.사무엘상 18:29 · 두루새김

여기서 이 장의 관계는 결정적으로 뒤바뀝니다.

본문은 다윗이 이 시점에 사울을 원수로 삼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울이 다윗의 원수로 지냈다고 말합니다. 이 차이를 놓치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단순히 왕권을 두고 경쟁하는 두 사람의 충돌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이야기에서 적대적인 행동을 먼저 시작하고 키워 가는 사람은 사울입니다.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을 「임금님의 원수들」이라고 불렀습니다(18:25). 그는 다윗을 그 원수들과 싸우게 하여 죽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에서는 사울 자신이 다윗의 원수로 지냅니다.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도록 다윗을 내보냈던 왕이, 이제 그 다윗을 해치려 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가 지키려 했던 왕권은 점점 본래의 목적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몰라서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실을 알아보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점점 더 적대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런데 다윗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블레셋 지휘관들이 싸우러 나올 때마다 다윗은 사울의 다른 모든 신하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의 이름을 매우 높이 여겼습니다.사무엘상 18:30 · 두루새김

이 장의 시작에서 다윗은 사울의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요나단이 그를 사랑하고, 사울은 그를 자기 곁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장의 끝에서 다윗은 왕실을 넘어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님은 사울의 왕권을 거부하시고 새로운 왕을 선택하셨습니다(15:23; 16:1). 그러나 사울은 아직 그 왕권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에게 남아 있는 권한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사용됩니다. 신명기 17:20은 이스라엘의 왕이 자기 형제들 위에 마음을 높이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왕권은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삼는 권한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책임입니다.

두려움이 이끄는 길, 사랑이 이끄는 길

사무엘상 18:1–30 본문 →

요나단은 자기 것을 내어줍니다. 사울은 자기 것을 지키려 합니다. 왕권을 지키려는 사울의 노력은 점점 그의 집안과 백성의 사랑으로부터 그를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18장은 모든 갈등의 원인을 질투라고 단정하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의 판단을 언제나 잘못된 것으로 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 본문에서 사울의 적대감이 문제인 이유는 다윗이 실제로 자신을 배반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울이 자신의 왕권을 위협받는다고 여기면서 충성스러운 신하를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윗의 성공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에게 언제나 주어지는 결과로 일반화할 수도 없습니다. 이 장은 새로운 왕으로 선택받은 다윗의 특별한 역사적 상황을 다룹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다윗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보장하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가 위협 속에서도 살아가며 맡겨진 일을 계속 해내는 이야기 속에서 드러납니다.

이야기의 끝에서도 블레셋 지휘관들은 싸우러 나옵니다. 다윗은 전쟁에 나가고, 사울의 다른 모든 신하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둡니다.

사울은 자신의 이름과 왕권을 지키기 위해 다윗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장의 마지막에 더욱 높이 여겨지는 이름은 다윗의 이름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향해 창을 던지고 죽음의 덫을 놓는 동안, 여호와야훼께서 함께 계시는 다윗의 이름은 사람들 가운데 더욱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