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5–10장 · 예루살렘과 언약궤

하나님께 집을 드리려던 다윗에게 주신 집안의 약속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고 싶었습니다.

자신은 백향목으로 지은 왕궁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궤는 여전히 천막 안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께 합당한 집을 마련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사무엘하 7장의 가장 큰 반전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다윗의 계획이, 다윗과 이스라엘을 위해 무엇을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읽는 시간 26분소단락 97장 본문 읽기 →

평안해진 왕이 하나님의 거처를 걱정하다

사무엘하 7:1–3 본문 →

다윗 왕이 자기 왕궁에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사방의 모든 원수가 다윗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여 그가 평안히 지내게 하셨습니다.사무엘하 7:1 · 두루새김

사무엘하 7장은 평안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다윗은 오랫동안 쫓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을 피해 광야와 산지를 떠돌아야 했고, 블레셋 땅에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유다의 왕이 된 뒤에도 사울 집안과의 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예루살렘에 왕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그를 왕으로 인정했습니다. 블레셋의 공격도 물리쳤습니다.

그런데 이 평안은 단순히 전쟁이 잠시 멈춘 상태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불안정하게 살아온 다윗이 이제 자기 집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 다윗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왕이 예언자 나단에게 말했습니다. 「보아라. 나는 백향목으로 지은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천막 안에 있구나.」사무엘하 7:2 · 두루새김

백향목은 고대 근동에서 왕궁과 중요한 건물을 짓는 데 쓰던 귀한 목재였습니다. 사무엘하 5:11에서는 두로 왕 히람이 목재와 기술자들을 보내 다윗을 위해 집을 지어 준 사실이 기록되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궤는 앞 장에서 다윗이 마련한 천막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6:17).

다윗의 말에는 직접적인 건축 명령이나 요청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단의 대답과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그가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는 일을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집이 얼마나 좋은가를 기준으로 하나님의 거처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그 비교를 똑같이 받아들이실까요? 하나님께서는 백향목으로 지은 집을 원하고 계셨을까요?

그 질문은 아직 다윗에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나단도 옳다고 생각했다

예언자 나단은 다윗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나단이 왕에게 대답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두신 일을 모두 하십시오.」사무엘하 7:3 · 두루새김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단은 먼저 다윗의 생각에 자신의 판단으로 동의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께서 다윗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무엘하 5:10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다윗과 함께하셨기 때문에 다윗이 점점 강해졌다고 기록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과 함께하신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마음에 품은 모든 계획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은 같지 않습니다.

나단은 그 둘을 충분히 구별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의 계획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나단의 동의도 진실한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실 때, 그 계획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은 왜 백향목 집을 요구하지 않으셨는가

사무엘하 7:4–7 본문 →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질문하십니다.

「내 종 다윗에게 가서 전하여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네가 나를 위해 내가 살 집을 짓겠느냐?』」사무엘하 7:5 · 두루새김

이 질문을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 자체를 영원히 금지하신 말씀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뒤의 1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이 자신의 이름을 위해 집을 지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건물을 짓는 일 자체가 아닙니다.

누가 그 일을 결정했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집을 필요로 하시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지금까지 집에서 살지 않았다. 나는 천막을 거처로 삼아 옮겨 다녔다.』」사무엘하 7:6 · 두루새김

출애굽기 40:34–38에서 여호와야훼의 영광은 성막에 가득했고,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길을 떠났습니다. 구름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들은 이동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일은 이스라엘의 이동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아직 머물 집을 얻지 못했을 때에도 그들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백향목 집과 하나님의 천막을 비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천막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십니다. 천막은 하나님께서 임시로 견디고 계신 열악한 거처라는 뜻만을 지닌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길을 떠나는 백성과 함께하시던 하나님의 역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적이 있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질문을 계속하십니다.

「『나는 온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옮겨 다녔다. 그동안 내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맡긴 어느 지파에게라도 왜 나를 위해 백향목 집을 짓지 않았느냐고 한마디라도 말한 적이 있느냐?』」사무엘하 7:7 · 두루새김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백향목 집을 지으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부족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어서 다윗의 도움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다윗이 왕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도 같은 종류의 거처를 필요로 하신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이 점은 훗날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의 기도와 연결됩니다. 열왕기상 8:27에서 솔로몬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도 하나님을 다 담을 수 없는데 자신이 지은 집이 어떻게 하나님을 담을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가두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자신의 이름을 두시고 백성 가운데 함께 계시지만, 그 건물 안에만 머무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그분은 사람에게서 집을 받아야 비로소 백성과 함께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백성에게 살아갈 자리를 마련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에는 시브테 이스라엘(⁨שֵׁבֶט⁩), 곧 이스라엘의 지파들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문장은 그들에게 백성을 돌보라고 명령하셨다고 말합니다. 같은 사건을 전하는 역대상 17:6에서는 이 자리에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이 등장합니다. 이 차이 때문에 지파들을 그대로 이해할지,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을지 해석이 갈립니다.

목초지에서 왕좌까지

사무엘하 7:8–10 본문 →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하려고 했던 일을 말씀하시기 전에, 자신이 이미 다윗에게 하신 일을 다시 생각하게 하십니다.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만군의 여호와야훼가 말한다. 『나는 풀밭에서 양 떼를 돌보던 너를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웠다.』」사무엘하 7:8 · 두루새김

사무엘상 16장에서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왔을 때 다윗은 형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양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왕이 될 사람을 찾는 자리에서조차 그는 풀밭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를 선택하셨습니다.

다윗이 스스로 풀밭에서 왕궁으로 올라왔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 너를 데려다가 … 지도자로 세웠다.」

하나님께서 주어이십니다.

이 말씀에는 다윗을 낮추는 동시에 안심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다윗의 왕권은 스스로 만들어 낸 업적이 아니므로 자랑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왕권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이므로 자신이 모든 것을 혼자 유지해야 한다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나온 길을 다시 읽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 나는 너와 함께했고, 네 앞에서 네 모든 원수를 없애 버렸다. 이제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처럼 네 이름도 크게 떨치게 하겠다.』」사무엘하 7:9 · 두루새김

다윗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 여러 사람과 사건이 떠오를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 블레셋 사람들, 시글락을 약탈했던 아말렉 사람들, 왕권을 둘러싼 오랜 싸움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직후부터 모든 일이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도망쳐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는 사실은 그가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택과 인도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12:2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그의 이름을 크게 만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두 본문에는 모두 하나님께서 이름을 크게 해 주신다는 약속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그 자신만을 위한 성공의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통해 여러 민족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이어졌습니다(창세기 12:2–3).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도 그 개인의 명성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다윗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갈 자리가 마련되는 일과 연결됩니다.

왕을 위한 약속보다 먼저 백성을 위한 약속

10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다윗에게서 이스라엘로 옮겨 갑니다.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고 그들을 심겠다. 그들은 자기 땅에서 살며 더는 불안에 떨지 않을 것이다. 악한 자들이 예전처럼 그들을 괴롭히는 일도 더는 없을 것이다.』」사무엘하 7:10 · 두루새김

사람은 집을 짓고, 나무는 땅에 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장소에 머물게 하겠다는 뜻을 넘어, 뿌리를 내리고 안정적으로 살아가게 하겠다는 모습을 그려 줍니다.

출애굽기 15:17에서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구해 내신 백성을 데려다가 자신의 소유인 산에 심으실 것을 노래합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단지 이집트에서 빠져나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에서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전체가 안정적으로 살아갈 자리를 마련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다시 목자라는 왕의 역할이 떠오릅니다. 다윗의 왕권이 높아진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서였습니다(사무엘하 5:12).

왕조의 안정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백성의 평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미 쉼을 주셨는데, 왜 다시 쉬게 하시겠다고 하시는가?

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모든 원수가 그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여 그가 평안히 지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1절에서는 이미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을 평안히 지내게 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1절의 평안은 다윗이 현재 누리는 상황입니다. 사방의 원수가 그를 괴롭히지 못했고, 그는 왕궁에 살고 있었습니다. 반면 10–11절의 약속은 이스라엘이 악한 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미래까지 바라봅니다.

지금의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지만, 아직 모든 위협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사무엘하의 뒤이은 이야기는 다윗의 통치가 계속 갈등과 전쟁을 겪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말씀의 방향이 다시 바뀝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집안에 관한 약속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 집안은 다윗이 생각했던 집과 다릅니다.

「나 여호와야훼가 너를 위해 집안을 세울 것이다」

사무엘하 7:11–13 본문 →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재판관들을 세운 뒤에도 악한 자들은 그들을 괴롭혔다. 나는 네 모든 원수가 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여 네가 평안히 지내게 하겠다. 나 여호와야훼가 네게 알린다. 나 여호와야훼가 너를 위해 집안을 세울 것이다.』」사무엘하 7:11 · 두루새김

사무엘하 7장의 가장 결정적인 반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으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해 「집안」을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다윗이 생각한 집은 백향목으로 지은 건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집안은 다윗의 후손들이 이어 갈 왕가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는 일이 하나님의 축복을 얻어 내는 조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다윗을 선택하셨고, 함께하셨고, 왕으로 세우셨으며, 이제 그의 집안에 미래를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일보다 먼저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입니다.

다윗이 죽은 뒤에도 이어질 약속

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다윗의 생애를 넘어섭니다.

「『네가 수명을 다하고 죽어 조상들과 함께 누우면, 네게서 태어날 자손을 세워 네 뒤를 잇게 하고 그의 나라를 굳게 세우겠다.』」사무엘하 7:12 · 두루새김

다윗의 나라는 다윗이라는 한 사람이 살아 있는 데에만 달려 있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왕이 아무리 강하고 훌륭하더라도 그는 죽습니다. 그가 세운 나라도 뒤를 이을 사람이 없거나 왕위를 넘겨주는 일이 불안정하면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과 사무엘하의 앞부분은 바로 그 문제를 보여 주었습니다. 사울은 죽었습니다.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습니다. 이스보셋은 왕이 되었지만 살해당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의 죽음 이후까지 이어질 왕권을 약속하십니다.

다윗의 집안이 안정되는 것은 단순히 그의 자손들이 왕위를 차지할 기회를 얻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왕조의 미래를 책임지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누가 성전을 짓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해 집을 지을 것이다.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굳게 세우겠다.』」사무엘하 7:13 · 두루새김

이 약속은 역사적으로 솔로몬과 직접 연결됩니다. 열왕기상 5–8장은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특히 열왕기상 8:17–20에서 솔로몬은 다윗이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위해 집을 지으려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이 그 집을 짓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음을 돌아봅니다.

성전을 짓는 일은 다윗의 뒤를 이은 특정한 왕에게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좌가 영원히 굳게 선다는 약속은 한 왕의 생애보다 훨씬 긴 미래를 바라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지었지만 그 역시 죽었습니다. 그의 뒤에도 왕들이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솔로몬이라는 한 사람에게서 중요한 약속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다윗 왕조가 계속 이어지는가라는 더 긴 문제를 남깁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같은 낱말을 사용하지만 의미가 바뀝니다. 두루새김은 그 뜻의 차이를 「집」과 「집안」으로 나누어 옮겼습니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사무엘하 7:14–16 본문 →

이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뒤를 이을 자손과 자신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십니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잘못을 저지르면 사람들의 몽둥이와 매질로 그를 벌하겠다.』」사무엘하 7:14 · 두루새김

이 표현을 실제로 자식을 낳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의 후손이 하나님과 같은 본성을 나누어 갖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구약에서 왕권을 말할 때 이 표현은 왕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놓인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시편 2:7에서도 왕을 향해 하나님께서 아들이라고 선언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왕권을 나타내는 이러한 말은 다윗의 후손이 하나님께 속한 왕으로서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다윗의 자손이라고 해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왕조를 선택하셨다고 해서 그 왕조에 속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이 옳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사람들의 몽둥이와 매질」이라는 표현은 징계가 사람의 손을 통해 겪는 고통과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가리키는지, 어떤 사람들을 통해 어떻게 징계가 이루어지는지는 본문이 정해 주지 않습니다.

핵심은 왕도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울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나 나는 그에게서 한결같은 사랑을 거두지 않겠다.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는 내 사랑을 거두었지만, 그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사무엘하 7:15 · 두루새김

「한결같은 사랑」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관계를 계속 지키시는 한결같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말입니다. 이 표현을 14절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징계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관계도 계속됩니다.

하나님의 한결같음은 왕의 잘못을 눈감아 주는 방식이 아니라, 잘못을 벌하시면서도 자신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시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셨지만, 불순종으로 인해 왕권이 그의 집안에서 계속되지 못하리라는 선언을 들었습니다(사무엘상 15:26–29).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의 자손이 잘못을 저질러도 왕조에 관한 약속을 사울의 경우와 똑같이 거두지는 않겠다고 하십니다.

본문의 중심은 각 왕이 무슨 일을 하든 모든 후손이 왕좌에 앉는다는 보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안에 주신 약속을 계속 지키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실제로 열왕기상과 열왕기하는 다윗의 후손들이 여러 차례 잘못을 저지르고 심판을 받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하신다는 사실이 반복됩니다(열왕기상 11:12–13, 34–36; 열왕기하 8:19).

영원한 왕좌는 무엇을 뜻하는가?

16절에서는 약속이 절정에 이릅니다.

「『네 집안과 네 나라는 네 앞에서 영원히 든든하게 이어지고, 네 왕좌는 영원히 굳게 서 있을 것이다.』」사무엘하 7:16 · 두루새김

이 약속은 다윗의 생애보다 깁니다.

솔로몬 한 사람의 통치보다도 깁니다.

다윗 왕조의 왕들은 실제로 오랫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무너뜨리고 나라가 무너진 뒤에는 다윗의 후손이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예루살렘의 왕좌에 계속 앉아 있지 못했습니다(열왕기하 25장).

그렇다면 영원한 왕권의 약속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무엘하 7장 자체는 그 뒤의 역사에서 생긴 문제를 모두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약은 그 약속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감추지 않습니다. 시편 89편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약속을 기억하면서도, 현실에서 왕권이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탄식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은 현실에서 그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 결코 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약속 때문에 현실을 하나님께 묻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7장은 약속을 선포합니다.

시편 89편은 그 약속을 붙들고 탄식합니다.

이사야 9:6–7과 11:1–5, 예레미야 23:5–6 같은 예언서 본문에서는 다윗의 후손을 통해 이루어질 의로운 통치에 대한 기대가 더욱 발전합니다. 따라서 16절의 약속은 다윗에게서 이어지는 후손이 곧 왕좌를 물려받는 역사적 차원에서 시작하지만, 구약 전체 안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왕권과 정의를 어떻게 영원히 이루실 것인가 하는 더 큰 소망으로 이어집니다.

이 약속을 처음부터 훗날 드러나는 모든 의미로 채워 읽어서도 안 되고, 솔로몬의 통치만으로 모두 끝난 약속이라고 줄여 읽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죽음 뒤에도 그의 집안을 통해 일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계속되는 것은 다윗의 후손이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에 근거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에서는 이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됩니다. 누가복음 1:32–33에서 천사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왕좌를 받으실 것이며 그분의 나라가 끝이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5는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직접 인용하여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설명합니다. 다만 원래 사무엘하 7:14에는 왕이 잘못을 저지를 때 벌을 받는다는 말씀도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 전체를 아무런 구별 없이 예수님께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신약은 다윗의 왕에게 주어진 아들 됨과 왕권의 약속을 예수님과 연결하지만, 죄를 지은 왕에 대한 징계까지 예수님께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약속을 들은 다윗이 처음으로 한 일

사무엘하 7:17–21 본문 →

나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윗에게 그대로 전합니다.

그리고 18절에서 이야기의 장면이 바뀝니다.

다윗 왕이 들어가 여호와야훼 앞에 앉아 말했습니다. 「주 여호와야훼여, 제가 누구이며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셨습니까?」사무엘하 7:18 · 두루새김

앞부분에서 다윗은 왕궁에 살면서 하나님의 집을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 앉아 자신의 집안을 생각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조금 전에 하신 말씀과 자신의 현실 사이의 차이를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은 양을 돌보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와 그의 집안에 먼 미래까지 이어질 약속을 주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어떤 특별한 자격을 갖추었기에 이런 약속을 받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누구이기에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이끌어 주셨느냐고 묻습니다.

다윗은 그 모든 시간을 바라보며 자신이 이룬 일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먼저 말합니다.

먼 훗날의 일까지 말씀하시는 하나님

19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 여호와야훼여, 주님께는 이것도 작은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인 제 집안에 관해 먼 훗날의 일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주 여호와야훼여, 이것이 사람을 위한 가르침입니다.」사무엘하 7:19 · 두루새김

그는 자기 집안에 먼 미래까지 이어질 약속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습니다.

이어 다윗은 말합니다.

「이 다윗이 주님께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주 여호와야훼여,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인 저를 아십니다.」사무엘하 7:20 · 두루새김

다윗의 행동 계획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바뀌었고, 다윗의 자신감 있는 제안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의 놀라움으로 바뀝니다. 그는 자신의 공로나 자격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21절은 그 이유를 더욱 분명히 합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주님의 종에게 알려 주시려고 이 모든 큰일을 하셨습니다.」사무엘하 7:21 · 두루새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의 근거가 하나님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만한 자신만의 이유를 찾지 않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뜻을 바라봅니다.

이것이 그의 기도를 이끌어 가는 중심입니다.

조금 더 깊이

19절의 「이것이 사람을 위한 가르침입니다」라는 마지막 표현은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입니다. 히브리어 토라트 하아담(⁨תּוֹרָה⁩)은 문자적으로 ‘사람의 가르침’, ‘사람의 법도’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시는 특별한 방식이라는 뜻인지, 인간을 위한 어떤 규범이나 질서를 뜻하는지, 또는 놀라움을 나타내는 질문인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역대상 17:17의 같은 장면에도 관련된 표현이 있지만 문장이 다르게 전해져, 어느 한 의미를 확정할 충분한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 문장의 정확한 의미에는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합니다.

다윗의 기도는 왜 이스라엘의 출애굽으로 돌아가는가

사무엘하 7:22–24 본문 →

다윗은 자신의 집안에 관한 약속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자기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기도할 법합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잠시 다른 방향으로 향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하셨던 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야훼여, 주님께서는 위대하십니다. 저희가 직접 들은 모든 일이 말해 주듯, 주님 같은 분은 없고 주님 말고는 하나님이 없습니다.」사무엘하 7:22 · 두루새김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큰지를 말하다가, 약속하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찬양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곧 이스라엘을 떠올립니다.

「세상에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 같은 민족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해 내려고 나서셨습니다. 그들을 주님의 백성으로 삼고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며,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큰일을, 주님의 땅을 위해 두려운 일들을 주님의 백성 앞에서 행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이집트에서, 민족들과 그 신들에게서 구해 내어 주님의 것으로 삼으신 백성입니다.」사무엘하 7:23 · 두루새김

여기서 「구해 내어」는 어떤 사람을 얽매인 상태나 위협에서 건져 내어 자유롭게 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그들을 건져 내시고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다윗은 스스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풀밭에서 데려다가 왕으로 세우신 사람입니다. 다윗과 이스라엘은 규모가 다르지만 같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세워졌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일을 이해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을 기억합니다.

그렇게 왕 개인의 이야기가 백성 전체의 역사 안에 자리 잡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백성

23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해 내신 목적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시는 일을 말합니다. 이는 9절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이름을 크게 떨치게 하겠다고 하신 약속과 연결됩니다. 다윗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일과 떨어질 수 없습니다.

24절에서는 그 관계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굳게 세워 영원히 주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야훼여, 주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사무엘하 7:24 · 두루새김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집안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보다 앞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먼저 있었고, 그 백성을 돌볼 왕이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다윗 왕조의 영원한 약속도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떠나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안을 세우시겠다고 하신 것은, 이미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이스라엘을 향한 한결같음과 연결됩니다.

다윗 왕조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23절에 ‘너희’와 ‘당신’에 해당하는 표현이 함께 나타나, 말을 건네는 대상이 흔들립니다. 본문이 전해지는 형태에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 가운데 복수형의 표현이 섞여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이 부분을 「주님의 땅」처럼 하나님을 향한 표현으로 풀어 옮겼지만, 원문에는 이러한 특징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말을 건네는 대상이 바뀌는 정확한 이유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도 안에 오래전부터 전해진 출애굽 이야기의 표현이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 구절만으로 그 표현이 생겨난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약속을 기도로 돌려드리다

사무엘하 7:25–29 본문 →

다윗은 이제 다시 자신의 집안으로 돌아옵니다.

「이제 여호와야훼 하나님, 주님의 종과 그의 집안에 관해 하신 약속을 영원히 이루어 주십시오. 말씀하신 대로 해 주십시오.」사무엘하 7:25 · 두루새김

기도의 근거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어떤 조건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큰 성전을 지어 드릴 테니 그 대가로 왕조를 영원히 보장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먼저 약속하셨으므로 그 약속을 이루어 달라고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셨다면 다윗은 왜 다시 기도합니까?

그는 28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해서 나오는 요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드리는 요청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일을 자신도 바라며 구합니다. 약속을 믿는다는 것은 그 약속에 대해 더 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약속이 기도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구하다

26절에서 다윗은 기도의 목적을 설명합니다.

「주님의 이름이 영원히 높아져서, 사람들이 『만군의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하고 말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종 다윗의 집안이 주님 앞에 굳게 서게 해 주십시오.」사무엘하 7:26 · 두루새김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름을 크게 떨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기도합니다.

다윗의 왕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워지고 유지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름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다면 왕권은 처음 주어진 뜻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약속을 이해하면서 그 약속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 용기를 내어 주님께 이 기도를 드립니다」

「만군의 여호와야훼,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에게 『내가 너를 위해 집안을 세우겠다』 하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종인 제가 용기를 내어 주님께 이 기도를 드립니다.」사무엘하 7:27 · 두루새김

다윗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하나님께 큰 약속을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다윗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약속을 들은 뒤,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담대하게 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윗의 기도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요구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이미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약속하셨는지를 듣는 일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뒤 자신의 계획을 다시 세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기도했습니다.

마지막 기도에 다시 등장하는 집안

다윗은 끝으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제 기꺼이 주님의 종의 집안에 복을 주셔서 영원히 주님 앞에 있게 해 주십시오. 주 여호와야훼여,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주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주님의 종의 집안이 영원히 복을 받을 것입니다.」사무엘하 7:29 · 두루새김

그의 관심은 단순히 왕조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것인가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 집안이 누구 앞에 서 있을 것인가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집안은 자신의 힘으로만 굳게 서는 집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그분의 한결같음에 의지하여 서는 집안입니다.

백향목 집에서 시작하여 하나님 앞에 앉은 왕

사무엘하 7:1–29 본문 →

처음에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으려 했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자신의 집안이 하나님 앞에 있기를 구합니다. 이야기의 주도권이 바뀐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다윗이 그 사실을 새롭게 깨달은 것입니다.

다윗은 그 미래를 자기 손으로 붙잡을 수 없습니다. 자신이 죽은 뒤 나라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직접 지켜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은 붙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으로 기도합니다.

「이제 기꺼이 주님의 종의 집안에 복을 주셔서 영원히 주님 앞에 있게 해 주십시오.」

다윗은 이제 더 이상 건축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지을 것인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앉아 있습니다.

백향목 집을 지어 드리겠다는 말로 시작한 이야기는, 하나님 앞에 앉아 자신의 집안을 맡기는 왕의 기도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