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8–12장 · 유대와 사마리아로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사람들

사도행전 10장은 한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이야기처럼 시작합니다.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는 하나님을 정성껏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늘 기도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온 집안과 함께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넬료에게 아직 들어야 할 말씀이 있다는 뜻입니다.

한편 베드로에게도 하나님이 가르쳐 주셔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고, 부활의 증인이었으며, 이미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이상한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온갖 동물이 담긴 큰 보자기 같은 것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그것들을 잡아서 먹으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베드로는 거절합니다.

「저는 속되거나 더러운 음식을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다시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마라.」

이 말씀은 과연 음식에 관한 것일까요?

베드로 자신도 처음에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환상의 뜻을 고민하는 동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가 묵는 집을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두 사람에게 각각 다른 경험을 허락하셨고, 이제 그 경험들이 하나의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고넬료는 복음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지만, 베드로도 배워야 하는 사람입니다. 고넬료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에 관한 소식이고, 베드로에게 필요한 것은 그 예수님의 복음이 누구에게까지 열려 있는지 깨닫는 일입니다.

이 장에서 바뀌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받아들이시는 기준이 아닙니다. 그 기준을 이해하는 베드로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모든 사람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읽는 시간 29분소단락 610장 본문 읽기 →

하나님이 기억하신 사람

사도행전 10:1–8 본문 →

이야기는 가이사랴에서 시작합니다.

가이사랴는 지중해 바닷가에 있는 도시로, 당시 유대 지역에서 로마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헤롯 대왕이 넓힌 항구 도시이기도 하며, 로마의 통치와 권력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그곳에 「이탈리아 부대」라고 불리는 부대에 속한 백부장 고넬료가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장교였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고넬료가 군대에서 가진 권한이나 전투 경력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를 소개하면서 오히려 전혀 다른 특징들을 하나씩 말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정성껏 섬겼고, 온 집안과 함께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유대 백성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돕고 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사도행전 10:2 · 두루새김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라는 표현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당시 다른 민족 사람들 중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유대교의 신앙과 관습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정식으로 유대교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고, 고넬료는 대체로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이해됩니다. 그의 신앙은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유대 백성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로도 나타납니다.

그런 그에게 천사가 나타납니다.

고넬료는 천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두려워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주님, 무슨 일입니까?」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기도와 네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운 일을 기억하셨다.」사도행전 10:4 · 두루새김

하나님이 고넬료의 기도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운 일을 잊고 계시다가 이제야 기억하셨다는 뜻일까요? 그렇게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문은 그의 기도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운 일이 하나님 앞에 올라갔다고 말하며, 이 표현에는 예배와 제물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하나님께서 그 일을 「기억하셨다」고 풀어 옮겼습니다.

고넬료는 로마 군대의 장교이고,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누가는 그가 하나님을 향해 드려 온 기도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운 일이 하나님 앞에서 받아들여졌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그가 유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물론 이것을 고넬료가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왔으므로 구원을 살 자격을 얻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천사는 그의 선행을 칭찬한 다음 모든 일이 끝났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베드로를 불러오라고 명합니다. 고넬료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은 진지하게 인정되지만, 동시에 그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 두 사실은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지금까지 드려 온 기도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운 일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를 더 깊은 앎으로 이끌기 위해 사람을 보내게 하십니다.

천사는 왜 직접 복음을 전하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천사가 이미 고넬료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천사가 직접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설명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천사는 베드로를 불러오라고만 말합니다.

누가는 그 이유를 분명하게 해설하지 않지만, 이야기 전체를 보면 짐작할 만한 실마리가 있습니다. 이 만남은 고넬료가 복음을 듣는 사건인 동시에,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나야 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하나님이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고 계신지 직접 보아야 합니다. 천사가 고넬료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났다면 베드로에게 일어나야 할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넬료는 하인 둘과 하나님을 정성껏 섬기는 군인 한 명을 욥바로 보냅니다. 그들은 어떤 말씀을 듣게 될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길을 떠납니다.

누가는 이제 그들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조금 더 깊이

「이탈리아 부대」가 이 시기에 어떤 형태로 가이사랴에 머물렀는지는 역사적으로 논의가 있습니다. 그 부대가 당시에 주둔했다는 사실을 직접 입증하기는 어렵지만, 고넬료와 같은 백부장이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은 로마 군대의 관행에 비추어 가능하다고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4절의 원문에는 기억하게 하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 므네모쉬논(μνημόσυνον)이 쓰이는데, 이 말은 그리스어 구약성경에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물의 일부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됩니다. 레위기 2장 2절에서 곡식 제물의 일부를 태워 바치는 장면에 같은 낱말이 등장합니다.

베드로는 무엇을 잘못 알고 있었을까?

사도행전 10:9–16 본문 →

다음 날,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욥바에 가까이 왔을 때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옥상에 올라갑니다. 낮 열두 시쯤, 정오 무렵입니다.

고넬료가 환상을 본 때는 오후 세 시쯤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기도하는 가운데 특별한 경험을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고넬료는 사람을 보내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받습니다. 베드로는 뜻을 알 수 없는 환상을 봅니다.

베드로는 배가 고파 무언가 먹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그는 환상 속으로 빠져듭니다. 하늘이 열리고 네 귀퉁이가 매달린 큰 보자기 같은 것이 내려오는데, 그 안에는 온갖 네발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동물들과 하늘의 새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서 먹어라」 하는 음성이 들립니다.

베드로는 거절합니다.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주님. 저는 속되거나 더러운 음식을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습니다.」사도행전 10:14 · 두루새김

베드로의 거절은 단순히 먹기 싫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율법과 자신이 어떤 신앙인인가 하는 문제가 걸려 있었습니다.

깨끗한 동물과 더러운 동물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어서는 안 되는 동물을 구별하는 규정이 나옵니다. 이 규정은 단순한 식생활 지침이 아니라,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으로 살아가는 생활 방식의 일부였습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는가는 자신들이 어떤 백성인지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베드로가 「속되거나 더러운 음식」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지켜 온 깨끗함의 구별에 어긋나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들려온 두 번째 말씀은 베드로의 판단을 뒤흔듭니다.

두 번째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마라.」사도행전 10:15 · 두루새김

깨끗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베드로에게는 그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문제의 중심은 베드로가 어떤 것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미 깨끗하게 하신 것을 베드로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입니다.

이 일이 세 번 반복되고 보자기 같은 것은 다시 하늘로 올라갑니다. 베드로가 실제로 그 동물들을 잡아서 먹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는 환상을 보고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다음 장면은 그가 진지하게 환상의 뜻을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이 환상은 정확히 무엇을 뜻할까요?

음식 규정이 폐지되었다는 뜻일까?

이 대목은 해석이 갈리는 자리입니다. 전통적인 기독교 해석 가운데 하나는 이 환상이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복음이 열리는 것과 함께, 율법의 음식 정결 규정이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을 묶어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이해합니다. 마가복음 7장 18–19절, 로마서 14장 14절 등과 연결하여 읽는 해석입니다.

반면 다른 해석은 사도행전 10장의 직접적인 관심이 음식 규정의 폐지가 아니라 다른 민족 사람들을 더러운 사람으로 취급하지 말라는 데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뒤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도 속되거나 더럽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제게 보여 주셨습니다」(28절)라며 자신이 본 환상을 음식이 아니라 사람에게 적용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0장만 놓고 읽을 때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환상을 본 뒤에 음식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발표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을 더럽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 먼저 따라가야 할 것은 베드로의 식단이 어떻게 바뀌었느냐가 아니라, 그가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느냐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진지하게 지켜 온 베드로에게 단순히 기존의 신앙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을 충실하게 섬기는 일이라고 여겼던 구별이 사람을 대하는 문제에서 어떤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는지 보게 하십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아직 그 사실을 모릅니다.

그가 환상을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대문 앞에서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부릅니다.

조금 더 깊이

14절의 「속된」(κοινός)과 「더러운」(ἀκάθαρτος)은 원문에서 서로 다른 낱말입니다. 「속된」은 거룩하게 구별되지 않았거나 일반적인 상태를 뜻할 수 있고, 「더러운」은 종교 의식의 기준에서 깨끗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두 낱말이 이 문맥에서 언제나 뚜렷하게 나뉘는 범주인지는 논의가 있습니다. 음식 규정을 두고도, 성경의 정결 규정과 당시의 사회적 관습을 구별해야 한다고 보며 이 환상을 음식 율법의 폐지를 선언하는 사건으로 보지 않는 해석이 있고, 반대로 다른 민족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만드는 변화가 음식 규정의 효력에도 영향을 준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환상의 뜻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사도행전 10:17–23 본문 →

누가는 장면의 시간을 절묘하게 맞춥니다.

베드로는 방금 본 환상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와 대문 앞에 섭니다. 이야기를 읽는 독자는 이미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직 모릅니다.

하나님이 고넬료에게 말씀하신 장면과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 주신 장면은 따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 이야기가 대문 앞에서 만납니다.

그때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그 환상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세 사람이 너를 찾고 있다.」 「일어나 내려가서 조금도 망설이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냈기 때문이다.」사도행전 10:19–20 · 두루새김

베드로는 환상의 뜻을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그에게 당장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십니다. 모든 것을 이해한 뒤에야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내려가 자신이 그들이 찾는 사람이라고 밝히고 무슨 일로 왔는지 묻습니다. 그들은 고넬료가 어떤 사람이며 왜 베드로를 찾는지 설명합니다. 베드로는 그들을 불러들여 묵게 합니다.

베드로는 아직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환상의 뜻을 완전히 설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찾아온 다른 민족 사람들을 받아들여 하룻밤 묵게 합니다. 그가 곧 하게 될 더 큰 만남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딘 셈입니다.

다음 날 그는 그들과 함께 떠나고, 욥바의 믿는 사람들 가운데 몇 명도 함께 갑니다. 베드로 혼자만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난 일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실 때 그 현장을 목격할 유대인 신자들이 함께 가고 있습니다.

베드로 자신은 이 여정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고민하던 환상은 이미 사람과의 만남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조금도 망설이지 말고」에는 그리스어 메덴 디아크리노메노스(διακρίνω)라는 표현이 쓰입니다. 이 표현은 의심하거나 망설이지 말라는 의미로도, 구별하거나 차이를 두지 말라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문법적으로 이 자리에서는 망설이지 말라는 뜻이 유력하며, 두루새김도 그렇게 옮겼습니다. 그러나 동사의 기본적인 의미에는 구별하고 분리한다는 뜻도 있고, 11장 12절에서 베드로가 같은 사건을 다시 이야기할 때에도 이 동사가 사용되므로, 이야기 전체에서 유대인과 다른 민족 사람들을 구별하는 문제와 연결될 여지도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났지만,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은 더 큰 만남이었다

사도행전 10:24–33 본문 →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도착했을 때 고넬료는 혼자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다음 날 베드로는 가이사랴에 들어갔습니다. 고넬료는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모아 놓고 베드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사도행전 10:24 · 두루새김

천사가 고넬료에게 명한 것은 베드로를 불러오라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까지 불러 모읍니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개인적인 체험으로만 간직하지 않고, 자신이 들어야 할 말씀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은 그에게 신앙의 열심뿐 아니라 배우려는 자세도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들어설 때 뜻밖의 일이 일어납니다.

고넬료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이 행동이 베드로를 신과 같은 존재로 숭배하려는 것이었는지, 높은 존경을 표시하는 행위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높은 사람 앞에 엎드리는 행동이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고넬료를 일으키며 말했습니다. 「일어나세요. 저도 사람이에요.」사도행전 10:26 · 두루새김

베드로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굴복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를 지배할 신과 같은 권위를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두 사람은 모두 사람입니다.

고넬료에게는 로마 군대의 지위와 권한이 있고, 베드로에게는 예수님의 사도로서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이들의 가치는 그런 지위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와 이야기하며 집 안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봅니다.

베드로가 넘어선 경계

베드로가 모인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은 복음의 내용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설명합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유대 사람이 다른 민족 사람과 어울리거나 그 집을 찾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도 속되거나 더럽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제게 보여 주셨습니다.」사도행전 10:28 · 두루새김

환상에는 동물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사람에 관해 말합니다.

여기서는 역사적 구별이 필요합니다. 모세 율법에는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음식을 구별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다른 민족 사람들을 그 자체로 더러운 사람이라고 규정하거나, 유대인이 다른 민족 사람의 집에 들어가는 모든 행위를 똑같이 금지하는 명시적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다른 민족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거나 가까운 관계를 맺는 일을 조심하는 관습과 해석들이 있었지만, 모든 유대인 집단에서 똑같이 적용되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말하는 「어울리거나 그 집을 찾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곧바로 모세 율법에 분명히 적힌 금지 명령과 같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경계가, 다른 사람을 속되거나 더러운 존재로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베드로는 음식에 관한 환상을 통해 이런 사실을 배워야 했을까요? 음식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가까워지는 일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같은 장소에 머물고, 서로의 음식을 받아들이며, 일상의 일부를 나누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음식의 모습을 통해, 그가 사람을 구별하는 방식 자체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베드로는 고넬료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보고 예외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어떤 사람도」 그렇게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넬료의 선행이 베드로의 판단을 바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이 베드로의 판단을 바꾼 것입니다.

베드로가 무슨 일로 자신을 불렀는지 묻자, 고넬료는 자신에게 나타난 천사의 이야기를 다시 들려줍니다. 독자에게는 이미 알려진 내용이지만, 이제는 베드로가 그 이야기를 듣습니다. 서로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하나로 연결됩니다.

고넬료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곧바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저희 모두는 주님께서 전하라고 명령하신 말씀을 빠짐없이 들으려고 하나님 앞에 모여 있습니다.」사도행전 10:33 · 두루새김

고넬료는 천사를 다시 불러 달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보았던 환상의 뜻을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이 베드로 앞에 모여 있지만, 고넬료는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있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에서 베드로도 배우는 사람이고 고넬료도 배우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자신의 생각보다 더 넓게 사람들을 받아들이신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제 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무엇을 하셨는지 듣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베드로가 입을 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주님이십니다」

사도행전 10:34–43 본문 →

베드로의 설교는 뜻밖의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이제 분명히 알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사도행전 10:34 · 두루새김

베드로는 자신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녔던 사람,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던 사람, 예루살렘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였던 사람이 이제야 분명히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하나님에 관해 전혀 새로운 가르침을 얻은 것일까요?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다

신명기 10장 17절은 하나님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며 뇌물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18–19절에서는 하나님이 고아와 과부를 위해 옳은 일을 하시고 외국인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스라엘에게도 외국인을 사랑하라고 명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의 지위나 영향력에 매이지 않으시며, 사회적으로 보호받기 어려운 이들이 공정한 대우를 받고 살아가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공정하시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이스라엘의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새롭게 이해하게 된 것은 그 하나님의 공정하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른 민족 사람들을 받아들이시는 일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서로 다르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하나님의 성품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베드로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아들이시는 사람은 누구인가?

「어느 민족이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은 그분께서 받아 주십니다.」사도행전 10:35 · 두루새김

「어느 민족이든」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사람을 받아들이시는 데 어느 민족 출신인지가 결정적인 장애물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 민족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옳은 일을 한다는 표현을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하게 구원받을 수 있는 별도의 조건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고넬료는 이미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던 사람이었지만, 천사는 그에게 베드로를 불러오라고 했고,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합니다. 더욱이 43절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35절 한 구절만 떼어 내어 예수님의 복음을 듣거나 믿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한편 「그분께서 받아 주십니다」라는 말을 이미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뜻보다, 하나님이 호의를 베풀며 받아 주시는 대상이 된다는 의미로 읽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해석은 고넬료가 하나님을 정성껏 섬기는 사람이면서도 여전히 베드로의 복음을 들어야 했다는 이야기의 흐름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평화가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평화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주님이십니다.」사도행전 10:36 · 두루새김

이 문장에는 복음의 출발점과 도달 범위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동떨어진 곳에서 나타나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의 사역은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유대와 예루살렘으로 이어졌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하신 약속과 그 역사 속에서 예수님께서 등장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주님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복음이 이스라엘에게만 속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누가는 이스라엘의 특별한 역사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역사를 통해 예수님의 복음이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가이사랴에서 베드로의 선언을 듣고 있는 사람은 로마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로마의 권력에 속한 장교의 집에서 갈릴리 출신의 유대인 베드로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나사렛 예수님을 「모든 사람의 주님」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고넬료가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로마 장교라는 신분을 먼저 버려야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들어야 하는 복음은 로마의 권력을 포함하여 어떤 인간의 권력보다도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 권한이 가장 높다는 선언을 담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전하는 평화도 그런 예수님을 통해 주어집니다. 이 평화는 서로 다른 민족이 그저 갈등 없이 지내자는 약속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죄를 용서받게 하며,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하는 예수님의 사역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무엇을 증언하는가?

베드로는 예수님의 생애를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요한이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한 뒤 갈릴리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사역을 말하고, 하나님이 그분에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을 부으셨다고 증언합니다.

「바로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에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두루 다니며 좋은 일을 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10:38 · 두루새김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능력은 악한 힘에 짓눌린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증언은 여기서 뜻밖의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그분이 유대 사람들이 사는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분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습니다.」사도행전 10:39 · 두루새김

좋은 일을 하시고 억눌린 사람들을 고쳐 주시던 분이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곧이어 「하나님께서는 이분을 사흘째 되는 날에 다시 살리시고 나타나게 하셨습니다」라고 증언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이 대조는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예수님을 선포할 때 반복해서 등장하는 핵심적인 증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내린 판결이 예수님에 대한 마지막 판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신 사람들

「그분은 온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뽑으신 증인들, 곧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그분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사도행전 10:41 · 두루새김

왜 하필 함께 먹고 마셨다는 사실을 강조할까요? 누가복음 24장 36–43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은 두려워하며 자신들이 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손과 발을 보여 주시고, 그들 앞에서 구운 물고기를 드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예수님의 부활이 단지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깨달음이나, 돌아가신 스승이 영적으로 살아 계시다는 확신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베드로 역시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다고 막연히 느꼈다는 것만을 말하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셨다고 말합니다.

이 증언은 고넬료가 왜 베드로에게서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천사는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증인을 불러오게 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주님이시며 재판관이신 예수님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이 「살아 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을 심판할 분」으로 정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재판받으시고 죽임당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모든 사람을 심판할 분으로 정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판단으로 어떤 분인지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분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마지막 판단을 맡으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소식은 고넬료에게 두려운 심판의 선언으로만 들려야 할까요? 베드로는 바로 이어서 죄의 용서를 선포합니다.

「모든 예언자가 이분을 두고 증언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사도행전 10:43 · 두루새김

「모든 예언자」라는 표현은 구약의 예언서 모든 구절이 예수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증언해 온 하나님의 구원과 용서의 약속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진다는 신학적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주장의 결론인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라는 표현은 민족이나 출신에 관한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말씀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그 말씀의 결론을 고넬료의 집에 모인 사람들에게도 적용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베드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조금 더 깊이

구약의 예언자들도 이스라엘을 통해 여러 민족이 하나님의 복을 얻게 될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사야 49장 6절에서는 하나님의 종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일뿐 아니라 여러 민족의 빛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이 땅끝까지 이르게 하는 사명을 맡습니다. 그 본문은 원래 이스라엘의 회복과 하나님의 종의 사명을 말하는 흐름 속에 있으며, 사도행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여러 민족에게 전해지는 과정을 통해 그 주제가 새롭게 펼쳐집니다. 이는 직접 인용이라기보다 성경 전체에서 이어지고 발전하는 주제의 연결입니다. 또 38절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성령으로 기름을 부으셨다는 표현은 이사야 61장 1절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은 가난한 이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억눌린 이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도록 보냄을 받으며, 누가복음 4장 18–21절에서 예수님은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신 뒤 그 말씀이 자신에게서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하는 방식은 그 장면과 맞닿아 있습니다.

베드로가 허락하기 전에 하나님이 주셨다

사도행전 10:44–48 본문 →

누가는 성령께서 내리신 때를 매우 정확하게 기록합니다.

베드로가 아직 이 말을 하고 있을 때,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께서 내리셨습니다.사도행전 10:44 · 두루새김

베드로는 설교를 끝내지 않았습니다. 이야기에는 그가 사람들에게 세례를 받으라고 권하는 장면도, 성령을 받기 위해 손을 얹는 장면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말씀을 전하고 있었는데, 성령께서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리십니다.

성령은 누구의 허락을 기다리셨는가?

지금까지 베드로는 점차 새로운 사실을 깨달아 왔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본 환상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고넬료의 집에 들어간 뒤에야 어떤 사람도 속되거나 더럽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내리시는 순간, 베드로는 하나님이 자신보다 먼저 하신 일을 직접 목격합니다.

성령은 베드로의 소유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누군가를 자격 있는 사람으로 판단했을 때 비로소 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은 모두 크게 놀랐습니다.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부어졌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10:45 · 두루새김

그들은 다른 민족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도 자신들과 같은 성령의 선물을 주신다는 사실은 그들의 예상을 넘어섰습니다.

누가는 그들을 단순히 유대인이라고 하지 않고 「할례 받은 신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할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표현은 그들이 어떤 경계 안에서 살아왔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이 유대인처럼 된 뒤에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들은 다른 민족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고, 그들에게 성령께서 내리셨습니다.

먼저 성령께서 내리셨습니다.

그다음에 베드로가 세례를 받도록 지시합니다.

베드로의 승인이나 세례가 성령을 받기 위해 먼저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제시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다른 장면들에서는 세례와 성령을 받는 순서가 다르게 나타나지만, 이 장에서는 그 순서가 하나님이 다른 민족 사람들을 받아들이셨다는 사실을 사도들이 부정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방 사람들의 입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찬양

그들은 그 사람들이 여러 언어로 말하며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것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사도행전 10:46 · 두루새김

「여러 언어로 말하며」라는 표현은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께서 내리신 뒤 제자들이 여러 언어로 말하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두 장면 모두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말이 하나님을 증언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다만 10장은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언어를 말했는지, 주변 사람들이 각자의 모국어로 알아들었는지를 설명하지 않으므로, 2장과 모든 세부 사항이 같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고넬료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분을 두려워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그와 함께 모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듣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묻습니다.

「이 사람들도 우리처럼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사도행전 10:47 · 두루새김

누가 물을 막을 수 있습니까?

앞서 베드로는 어떤 사람도 속되거나 더럽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47절에서는 더 나아가, 성령을 받은 이 사람들이 세례받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베드로가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세례를 허락하는 이유는 단지 자신이 그들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미 그들에게 성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질문은 사람이 너그럽게 받아 주겠다고 선언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 앞에서 사람이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말입니다. 이제 베드로에게 남은 일은 사람들을 구별하는 기준을 새롭게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한 집에 함께 머무는 사람들

베드로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러 달라고 청했습니다.사도행전 10:48 · 두루새김

베드로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도 속되거나 더럽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고넬료의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고넬료와 그 집에 모인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러 달라고 청합니다. 이제 그들은 베드로에게 말씀을 들은 낯선 사람들이 아닙니다.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며, 같은 성령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장에서 바뀐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받아들이시는 기준이 아니라 베드로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환상을 보았지만 이해하지 못했고, 고넬료의 집에 들어간 뒤에야 그 뜻을 깨달았으며, 하나님이 자신과 같은 성령을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도 주시는 것을 보았을 때 더 이상 그들이 세례받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서로 다른 민족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것은 민족적 차이를 무시하자는 추상적인 이상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모든 행동이 똑같이 옳다는 뜻은 아니지만, 누가 그 복음 안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결정할 때 사람이 만든 경계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특별한 환상도,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도 아닙니다.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살던 집에 갈릴리 출신의 베드로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의 곁에는 욥바에서 함께 온 믿는 사람들이 있고, 그 집에는 고넬료의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성령께서 내리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며칠 더 머물러 달라고요.

조금 더 깊이

47절의 「막을 수 있겠습니까」(κωλύω)에 쓰인 동사는 사도행전 8장 36절에서 에티오피아 고자가 세례를 요청하며 무엇이 막는지 묻는 질문에도 사용됩니다. 두 질문은 사도행전의 이야기 안에서 서로를 비추지만, 의미를 완전히 같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8장에서는 한 사람이 복음을 듣고 세례를 요청하고, 10장에서는 성령께서 먼저 내리신 사실을 목격한 사도가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선언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