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20장

이 장의 자리 · 4–24장 · 예루살렘 심판 예고

물음을 거절하시고 역사를 들려주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에스겔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께 묻기 위해 예언자 앞에 앉았습니다.

읽는 시간 24분소단락 1220장 본문 읽기 →

하나님께 물으러 왔는데,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겠다고 하신다

에스겔 20:1–3 본문 →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예언자를 찾아오는 일은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나라를 잃어 가는 시대를 살아가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바벨론에 끌려온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예루살렘은 어떻게 될 것인지 묻는 일은 절실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의 첫 말씀은 뜻밖입니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이렇게 전해라.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나에게 물으러 왔느냐?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한다. 나는 너희가 묻는 말에 결코 대답해 주지 않겠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에스겔 20:3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는 대답을 거부하신 뒤에 오히려 매우 긴 말씀을 하십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있던 때부터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들어간 역사까지 들려주십니다. 심지어 앞으로 흩어진 백성을 어떻게 모으시고, 심판하시고, 다시 자신의 거룩한 산으로 데려오실 것인지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야훼는 정말 대답을 거부하신 것입니까?

장로들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그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부터 물으십니다. 하나님께 묻는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장로들이 무엇을 질문하려 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루살렘의 함락 시기를 물었다거나 포로 생활의 끝을 물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가 들려주시는 역사는 이스라엘이 익숙하게 기억하던 역사와 조금 다릅니다.

그들은 출애굽을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의 역사로 기억했을 것입니다. 광야 생활도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인도하신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바로 그 역사 속에서 반복되었던 반역을 드러내십니다.

선택받은 바로 그날, 이스라엘은 우상을 버리라는 말씀을 들었다

에스겔 20:4–9 본문 →

「그들에게 이렇게 전해라.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스라엘을 선택한 날, 야곱 집안의 후손들에게 손을 들어 맹세하고 이집트 땅에서 그들에게 나를 알렸다. 나는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임을 밝히며 손을 들어 맹세했다.』」에스겔 20:5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먼저 하나님을 찾아내거나,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 특별한 자격을 증명하여 선택받은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선택하셨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맹세하십니다.

손을 드는 행동은 맹세를 나타내는 몸짓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을 엄숙하게 확인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처음에는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위해 손을 드십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거나 백성을 흩으시겠다는 심판을 선언하실 때에도 손을 드십니다.

같은 맹세의 몸짓이 약속과 심판 모두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7절에 이르면 출애굽 이야기가 예상 밖의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나는 그들에게 저마다 눈여겨보던 혐오스러운 것들을 내던지고, 이집트의 우상들로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고 명령했다. 내가 바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라고 말했다.』」에스겔 20:7 · 두루새김

출애굽기를 읽으면 이집트의 억압 아래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보게 됩니다. 여호와야훼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파라오의 손에서 그들을 구출하십니다(출애굽기 2:23–25; 3:7–10). 그런데 에스겔은 그 백성이 이집트에서 이미 우상숭배에 물들어 있었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여호수아 24:14에서도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버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있을 때부터 다른 신들을 섬기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전해 내려온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은 단순히 이집트의 억압에서 벗어나야 했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의 우상들에서도 벗어나야 했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에게 반역하며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무도 눈여겨보던 혐오스러운 것들을 내던지지 않았고, 이집트의 우상들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집트 땅에서 그들에게 내 분노를 쏟아 내 노여움을 다 풀려고 했다.』」에스겔 20:8 · 두루새김

하나님은 반항하지 않는 백성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구원받기 전부터 하나님께 반항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야훼는 왜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셨습니까?

「『그러나 나는 내 이름을 위해 행동했다. 그들이 함께 살던 민족들 앞에서 내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며 그 백성에게 나를 알렸다.』」에스겔 20:9 · 두루새김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은 단순히 그분을 부르는 말이 아닙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으로 자신을 알리셨는지, 자신의 백성과 맺은 약속을 어떻게 대하시는지와 연결됩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민족들 앞에서 이루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반역 때문에 그들을 이집트에서 없애 버리신다면, 다른 민족들은 여호와야훼가 자신이 선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지 못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의 충실함을 증명하는 사건이 아니라, 반역하는 백성에게도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는 여호와야훼의 신실함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반역은 이집트를 떠났다고 끝나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주는 법을 받았지만, 생명의 길을 거부하다

에스겔 20:10–17 본문 →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은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내 규정을 주고 내 법을 알려 주었다. 사람이 그것을 지켜 행하면 살 것이다.』」에스겔 20:11 · 두루새김

이 표현은 레위기 18:5와 직접 연결됩니다. 레위기에서는 하나님의 규정과 법을 지켜 행하면 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율법은 생명을 억압하기 위해 주어진 규칙들의 모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길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억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얻었다는 사실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질서가 필요했습니다. 여호와야훼는 그 질서를 자신의 법과 규정으로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에스겔 18장과도 짧게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규정을 따라 바르고 정의롭게 행동하는 사람이 살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5–9). 여기서는 그런 삶의 원리가 이스라엘의 처음 역사에서부터 주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12절에서 율법 가운데 하나가 특별히 강조됩니다.

「『또 내 안식일을 주어 나와 그들 사이의 표징이 되게 했다.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에스겔 20:12 · 두루새김

출애굽기 31:13에서도 안식일은 여호와야훼와 이스라엘 사이의 표징이며,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임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자신들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시간은 파라오에게 속해 있지 않았습니다. 끝없이 일하고 생산해야 한다는 요구에만 매여 있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으로서 그분이 정해 주신 쉼의 질서 안에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안식일을 더럽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나에게 반역했다. 그들은 내 규정을 따르지 않았고, 사람이 지켜 행하면 살게 되는 내 법을 거부했다. 또 내 안식일을 몹시 더럽혔다. 그래서 나는 광야에서 그들에게 내 분노를 쏟아 그들을 없애 버리려고 했다.』」에스겔 20:13 · 두루새김

그들이 거부한 것은 단지 명령을 내리는 권위가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살아갈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같은 반전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 이름을 위해 행동했다. 내가 그들을 이끌어 내는 것을 본 민족들 앞에서 내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에스겔 20:14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반역이 반복되듯,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이름을 위해 행동하시는 일도 반복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처음과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15절에서 여호와야훼는 광야의 반역자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맹세하십니다. 민수기 14:20–35에서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 반역했던 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판결을 받은 사건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 멸망시키지 않았다. 광야에서 그들을 완전히 없애 버리지 않았다.』」에스겔 20:17 · 두루새김

심판과 자비는 이 이야기에서 서로를 취소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는 자신의 백성이 행한 반역을 실제로 판단하십니다. 동시에 그 백성을 완전히 없애 버리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으십니다.

이것이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가능하게 합니다.

부모의 길을 따르지 말라고 했지만, 자녀들도 같은 길을 걸었다

에스겔 20:18–24 본문 →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가 등장합니다.

「『나는 광야에서 그들의 자녀들에게 조상들의 규정을 따르거나 그들의 법을 지키지 말고, 그들의 우상들로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고 했다.』」에스겔 20:18 · 두루새김

11절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자신의 규정과 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18절에서는 「조상들의 규정」과 「그들의 법」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규정과 조상들이 따라온 잘못된 삶의 방식을 대조하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 물려준 모든 것을 무조건 지켜야 하는 역사가 아닙니다.

잘못된 전통은 버려야 합니다.

이어 20절에서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장면은 마치 이스라엘이 새로운 출발을 할 기회를 얻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21절은 다시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자녀들도 나에게 반역했다. 그들은 내 규정을 따르지 않았고, 사람이 지켜 행하면 살게 되는 내 법을 지키지 않았다. 내 안식일도 더럽혔다. 그래서 나는 광야에서 그들에게 내 분노를 쏟아 내 노여움을 다 풀려고 했다.』」에스겔 20:21 · 두루새김

그런데 22절에서 또다시 같은 말씀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 손을 거두고 내 이름을 위해 행동했다. 내가 그들을 이끌어 내는 것을 본 민족들 앞에서 내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에스겔 20:22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반역했습니다.

광야의 첫 세대도 반역했습니다.

광야의 다음 세대도 반역했습니다.

반역은 장소가 바뀌어도, 세대가 바뀌어도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여호와야훼는 자신의 이름을 위해 행동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계속된 이유는 반역이 어느 순간 끝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완전히 없애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23절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여러 민족 사이로 흩어 버리겠다고 맹세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처음에는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이제는 여러 땅으로 흩으시겠다고 맹세하십니다.

출애굽의 목적지가 약속의 땅이었다면, 반역의 결과는 다시 그 땅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 약속과 심판의 대조는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에서 언약에 따라 주어지는 복과 저주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살아가는 일은 그분과 맺은 관계에서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좋지 않은 규정」을 주셨는가

에스겔 20:25–26 본문 →

「『나도 그들에게 좋지 않은 규정과, 그것으로는 살지 못할 법을 주었다.』」에스겔 20:25 · 두루새김

11절에서 「사람이 그것을 지켜 행하면 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여호와야훼는 자신이 생명을 주지 못하는 규정과 법을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처음 태어난 것들을 모두 제물로 넘겨 바칠 때, 나는 그들이 바친 제물로 그들을 더럽혔다. 그들을 망하게 하고,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에스겔 20:26 · 두루새김

여기서 「처음 태어난 것들」은 첫태생을 가리킵니다. 출애굽기 13:2, 12–13에는 처음 태어난 것을 여호와야훼께 구별하여 바치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첫태생은 제물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대신 값을 치르도록 규정합니다. 민수기 18:15–16도 처음 태어난 사람은 대신 값을 치러야 한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반면 에스겔 16:20–21에서는 자녀들을 우상에게 제물로 죽여 바친 일이 고발되었습니다. 에스겔 20:31에서도 아들들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여 제물로 바치면서 우상들로 자신을 더럽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앞뒤 흐름을 고려하면 25–26절은 처음 태어난 사람을 희생시키는 종교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읽힙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그들을 잘못된 규정에 내주셨다는 읽기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첫태생을 구별하도록 주신 규정이 이스라엘의 뒤틀린 종교 의식 속에서 생명을 해치는 규정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읽기입니다.

따라서 가장 신중한 읽기는 이 구절을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흐름 안에 놓으면서도, 그 심판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했는지에 관한 어려움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일을 기뻐하시거나 명령하셨다는 일반적인 선언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레위기 18:21과 20:2–5는 자녀를 몰렉에게 바치는 행위를 금지하며, 예레미야 7:31은 자녀를 불사르는 일을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지 않으신 행위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에스겔 20:25–26의 강한 표현을 단순히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두셨다」로 바꾸는 것도 본문의 의도를 충분히 살리지 못합니다. 에스겔은 바로 이 끔찍한 현실 속에서도 여호와야훼의 심판이 작용한다고 말합니다.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백성이 마침내 생명을 빼앗는 종교적 질서에 갇혔다는 것이 이 대목의 두려운 역설입니다.

조금 더 깊이

첫 번째 읽기는 24절의 반역과 25절의 좋지 않은 규정 사이의 흐름에 잘 맞습니다. 39절에서 여호와야훼가 우상을 섬기려는 백성에게 그대로 가서 섬기라고 하시는 표현과도 연결됩니다. 두 번째 읽기의 경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첫태생에 관하여 실제로 규정하셨다는 점과, 이스라엘이 그것을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일과 결합하여 잘못된 방식으로 실행했다는 점 사이의 긴장입니다. 그러나 이 해석도 본문의 어려움을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여호와야훼는 단순히 사람들이 규정을 잘못 이해했다고만 말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좋지 않은 규정을 주셨고, 자신이 그들을 더럽히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약속의 땅에 도착했지만, 이집트에서 시작된 일이 끝나지 않았다

에스겔 20:27–31 본문 →

이제 여호와야훼의 이야기는 약속의 땅으로 옮겨 갑니다.

「『나는 그들에게 주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그러나 그들은 높은 언덕과 잎이 무성한 나무를 볼 때마다, 거기서 제물을 잡아 바치고 나를 화나게 하는 제물을 놓았다. 거기서 향기로운 제물을 올리고, 술을 부어 제물로 바쳤다.』」에스겔 20:28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땅의 높은 장소와 아름다운 나무들을 다른 신들을 섬기는 장소로 사용했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선물이 누구에게서 왔는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더욱이 7절에서는 이집트의 우상들을 「눈여겨보던」 모습이 등장했고, 24절에서도 「그들의 눈이 조상들의 우상을 따르고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문에서는 두 곳 모두 「눈」(⁨עַיִן⁩)이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이제 그들의 눈은 약속의 땅에 있는 높은 언덕과 잎이 무성한 나무를 바라봅니다.

장소는 바뀌었지만 보는 방식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 들어가는 것과,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30절에서 여호와야훼는 과거의 조상들에 관한 설명을 갑자기 현재의 백성에게 돌리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전해라.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도 조상들의 길을 따라 자신을 더럽히느냐? 그들의 혐오스러운 것들을 따라가며 음행하느냐?』」에스겔 20:30 · 두루새김

지금까지의 역사는 과거를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현재의 이스라엘이 자신을 돌아보도록 하기 위한 이야기였습니다.

「『너희는 제물을 바치고 아들들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여 제물로 바치면서, 오늘날까지 온갖 우상들로 자신을 더럽힌다. 이스라엘 백성아, 그런데 내가 너희가 묻는 말에 대답해 주겠느냐?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한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나는 너희가 묻는 말에 결코 대답해 주지 않겠다.』」에스겔 20:31 · 두루새김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그들이 묻는 행동과 실제로 살아가는 행동이 서로 충돌하고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하나님께 묻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동시에 우상을 섬기는 삶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야훼는 그 모순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다른 민족들과 여러 땅의 백성들처럼 되어」

에스겔 20:32–34 본문 →

「『너희는 다른 민족들과 여러 땅의 백성들처럼 되어 나무와 돌을 섬기자고 말한다. 그러나 너희 마음에 떠오른 그 생각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에스겔 20:32 · 두루새김

본문은 그들의 동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로가 되어 다른 민족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상황과 연결하면 그 바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나라는 무너지고 있었고, 다른 나라들의 지배 아래 놓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다른 민족들과 구별되어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한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나는 반드시 강한 손과 뻗은 팔로, 분노를 쏟으며 너희의 왕으로 다스리겠다.』」에스겔 20:33 · 두루새김

여기서 「강한 손과 뻗은 팔」이라는 표현은 출애굽의 언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출애굽기 6:6에서 여호와야훼는 자신의 뻗은 팔로 이스라엘을 구해 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4:34에서도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행동을 강한 손과 뻗은 팔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에스겔 20장에서는 같은 표현에 「분노를 쏟으며」라는 말이 더해집니다.

처음 출애굽에서 강한 손과 뻗은 팔은 이집트의 지배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능력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처럼 되어 여호와야훼를 떠나려는 시도를 꺾는 능력으로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신들을 선택하려 해도, 여호와야훼는 그들이 자기 백성이라는 사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행동은 아직 평화로운 회복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는 그들을 여러 민족 가운데서 모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광야로 데려가겠다고 하십니다.

두 번째 출애굽에는 또 하나의 광야가 있다

에스겔 20:35–38 본문 →

「『너희를 여러 민족의 광야로 데려가겠다. 그곳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너희를 심판하겠다.』」에스겔 20:35 · 두루새김

처음 출애굽에서는 광야가 이집트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가는 중간 장소였습니다. 이번에도 광야는 여러 민족 가운데서 나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기 전에 거치는 장소입니다.

처음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떠났지만, 광야에서 계속 반역했습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출애굽에서는 단순히 다른 나라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와의 관계를 다시 바로 세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내가 너희를 지팡이 아래로 지나가게 하고, 언약으로 묶겠다.』」에스겔 20:37 · 두루새김

「지팡이 아래로 지나가게」 한다는 표현은 목자가 양을 세거나 살펴보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뒤따르는 38절에서 여호와야훼가 반역자들을 가려내겠다고 말씀하시므로, 이 지팡이는 단순한 보호의 상징만이 아니라 구별과 심판의 의미를 지닙니다.

언약은 관계를 맺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묶는다는 말과 함께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의 백성이 되는 일을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고 버릴 수 있는 가벼운 관계로 여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그 관계에 실제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서 나에게 반역하고 죄를 짓는 자들을 가려내겠다. 그들이 머물던 땅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겠지만,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20:38 · 두루새김

이 장면은 광야에서 반역했던 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두 번째 출애굽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됩니다.

밖으로 나오는 것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다릅니다.

여러 나라에서 모이는 것과 여호와야훼의 백성으로 회복되는 것도 단순히 같은 사건이 아닙니다. 그 사이에는 하나님의 판단이 있습니다.

여호와야훼의 회복은 단지 흩어진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는 일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관계 안에서 다시 살아갈 것인지를 새롭게 세우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이 광야가 어느 지역인지 밝히지 않습니다. 「심판하겠다」(⁨שָׁפַט⁩)는 말의 원문 표현은 단순히 언쟁을 벌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법적인 다툼이나 판단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레위기 27:32에서는 가축들이 지팡이 아래를 지나갈 때 열 번째 것을 여호와야훼께 거룩하게 구별한다고 말합니다.

「가서 자기 우상을 섬겨라」

에스겔 20:39 본문 →

「『이스라엘 백성아,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각자 가서 자기 우상을 섬겨라. 내 말을 듣지 않겠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해라. 그러나 너희가 바치는 제물과 우상들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는 더럽히지 마라.』」에스겔 20:39 · 두루새김

그러나 앞뒤 문맥을 보면 이것을 우상숭배에 대한 허락이나 권장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장 전체에서 여호와야훼는 우상숭배를 반역으로 규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우상들을 버리라는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강한 반어적 선언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기면서도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 제물을 드린다고 하면서 우상들에게도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호와야훼의 거룩한 이름이 그들의 잘못된 행위를 가리는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여호와야훼께 묻는 것과 여호와야훼께 순종하는 것이 분리될 수 없듯이,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제물을 드리는 것과 실제로 그분을 섬기는 삶도 분리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우상숭배가 마지막 상태로 남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야훼는 자신의 거룩한 산에서 참된 예배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39절의 원문은 문장 연결에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내 말을 듣지 않겠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해라」라고 옮겼습니다. 뒤의 말씀과 이어서 장차 그들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강조하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높은 언덕의 우상숭배에서 거룩한 산의 예배로

에스겔 20:40–41 본문 →

「『내 거룩한 산,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그 땅의 이스라엘 온 백성이 나를 섬길 것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거기서 나는 그들을 기쁘게 받아들이겠다. 거기서 너희가 따로 떼어 바치는 제물들과, 너희가 가져오는 제물의 첫 몫을 너희의 모든 거룩한 것과 함께 요구하겠다.』」에스겔 20:40 · 두루새김

28절에서는 이스라엘이 높은 언덕과 잎이 무성한 나무를 볼 때마다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제 40절에서는 여호와야훼의 거룩한 산에서 이스라엘 온 백성이 그분을 섬기게 됩니다.

더욱이 28절에서는 이스라엘이 자기 제물들을 우상숭배의 장소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40절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자신의 거룩한 산에서 백성이 따로 떼어 바치는 제물들과 가져오는 제물의 첫 몫을 요구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백성의 예배가 다시 여호와야훼를 중심으로 정리된다는 뜻입니다.

처음에 장로들은 여호와야훼께 물으러 왔지만 응답을 거절당했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온 백성이 여호와야훼의 산에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그 차이를 만든 것은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백성을 모으시고 심판하시며 관계를 다시 세우시는 행동입니다.

「『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 가운데서 이끌어 내고, 너희가 흩어져 살던 여러 땅에서 모을 때, 향기로운 제물처럼 너희를 기쁘게 받아들이겠다. 여러 민족이 보는 앞에서 너희를 통해 내 거룩함을 드러내겠다.』」에스겔 20:41 · 두루새김

앞에서는 이스라엘이 바친 제물이 그들을 더럽혔습니다(20:26). 그러나 이제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께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향기로운 제물처럼 묘사됩니다.

처음 출애굽에서도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행동하셨습니다. 이번 회복에서도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두 번째 출애굽의 마지막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남아 있습니다.

회복된 백성이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향기로운 제물처럼」이라는 말의 원문 표현은 제사와 관련됩니다. 창세기 8:21에서는 노아가 바친 제물의 향기를 여호와야훼가 맡으시는 장면에 사용됩니다. 레위기의 여러 제사 규정에서도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향기를 표현하는 말로 등장합니다. 하나는 백성의 회복된 예배가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제사의 향기와 같다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여러 민족 가운데서 모인 백성 자체가 여호와야훼께 받아들여지는 향기처럼 묘사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에스겔 20:41에서는 그 향기가 백성 자신과 연결됩니다.

돌아온 사람들은 무엇을 기억하게 되는가

에스겔 20:42–44 본문 →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 땅, 너희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한 땅으로 데려갈 때, 너희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20:42 · 두루새김

그 약속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반역이 약속의 실현을 막고 심판을 불러왔지만, 여호와야훼는 자신의 이름을 위해 다시 행동하십니다. 그런데 회복된 백성은 단지 고향에 돌아왔다는 사실만 기뻐하지 않습니다.

「『거기서 너희는 너희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행동으로 자신을 더럽혔는지 기억할 것이다. 너희가 저지른 온갖 악한 짓 때문에 너희 자신을 역겨워할 것이다.』」에스겔 20:43 · 두루새김

여기서 기억은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들을 떠올리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삶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더럽혔는지 깨닫는 일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끝없이 혐오하며 살아가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 선물을 자신의 공로로 착각하지 않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거부해 왔던 역사를, 회복된 백성은 마침내 스스로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아, 내가 너희의 악한 삶과 타락한 행동에 따라 너희를 대하지 않고 내 이름을 위해 너희를 대할 때, 너희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에스겔 20:44 · 두루새김

이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가볍게 여기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반역한 세대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지는 심판도 선포되었습니다. 두 번째 광야에서는 다시 반역자들이 가려질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는 그 심판을 넘어 백성을 다시 모으시고 받아들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행동 때문에 심판받지만, 자신들의 공로 때문에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회복의 마지막 근거는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이름을 위해 행동하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질문하러 온 장로들이 듣게 된 이야기

에스겔 20:1–44 본문 →

에스겔 20장에서 이스라엘의 마지막 희망은 자신들이 마침내 하나님께 올바른 질문을 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잘못된 역사 속에서도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이름을 위해 행동하시겠다는 데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사실을 내세우면서 지금의 불의를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의 전통을 이어 왔다는 사실을 근거로 현재의 행동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에스겔 20장은 그런 기억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처음 장면에서는 장로들이 예언자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지막 약속에서는 흩어졌던 백성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산에 돌아와 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과거를 자랑스럽게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어떻게 우상을 섬겼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으며, 그분의 이름을 더럽혔는지 기억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여호와야훼는 그들을 기쁘게 받아들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던 그분이 다시 흩어진 백성을 모으십니다.

광야에서 자신의 법을 주셨던 그분이 다시 그들을 언약의 관계 안으로 데려가십니다.

그리고 한때 우상의 향기가 올라가던 땅에서, 이제 돌아온 백성 자신이 여호와야훼께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향기로운 제물처럼 됩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기억하는 그 자리에서, 여호와야훼는 자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십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