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3장 · 모두에게 부어 주는 영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영
요엘 3장은 아주 짧습니다. 다섯 절뿐입니다. 그런데 이 다섯 절에서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일의 범위는 놀라울 만큼 큽니다.
바로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황폐했던 땅의 회복과 백성의 풍성한 수확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을 되찾고, 하나님께서 자신들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요엘의 예언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땅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쏟아부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곡식이나 포도주가 아니라 자신의 영입니다.
요엘 3장의 놀라움은 하나님의 능력이 이전보다 더 커졌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전하는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범위가 놀랍도록 넓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 직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피로 바뀌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왜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는 약속과 두려운 심판의 표징이 함께 나타날까요?
「그 뒤에」 — 회복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뒤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쏟아붓겠다. 너희 아들들과 딸들은 예언하고, 너희 가운데 나이 든 사람들은 꿈을 꾸며, 젊은 남자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요엘 3:1 · 두루새김
앞서 하나님은 땅의 결실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이제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을 물처럼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앞서 비가 내려 메마른 땅을 적시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땅에 내리는 비는 곡식과 나무가 자라도록 합니다. 사람들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영은 예언과 꿈과 환상을 통해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드러냅니다.
하나의 비유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풍요를 연결합니다.
이러한 연결은 이사야 44:3에서 더욱 직접적으로 나타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목마른 땅에 물을 부어 주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영을 후손들에게 부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요엘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무엇을 부어 주시는지뿐 아니라 누구에게 부어 주시는지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요엘 3장에서는 바로 뒤에 아들과 딸, 나이 든 사람과 젊은이, 남녀 노예들이 열거되므로, 하나님의 영을 받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너희 아들들과 딸들」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우선적으로 이 약속을 듣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동시에 5절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재앙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는 각 개인에게 똑같은 경험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수량의 선언으로만 이해하기보다, 하나님의 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기존의 사회적 구분을 넘어 넓어진다는 약속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아들과 딸, 노인과 젊은이 — 예언의 자격이 달라지다
요엘은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나타나는 일을 세 가지로 묘사합니다. 예언, 꿈, 환상입니다. 이것들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실 때 사용하시는 방식들입니다. 민수기 12:6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언자에게 환상으로 자신을 알리거나 꿈으로 말씀하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직책이나 종교적 계급으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한 공동체 안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아들들과 딸들」이 함께 예언합니다.
물론 구약에 여자 예언자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출애굽기 15:20은 미리암을 여자 예언자로 소개하고, 사사기 4:4에서는 드보라가 예언자이자 이스라엘의 사사로 등장합니다. 열왕기하 22:14–20에는 훌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새로운 점은 여성이 예언할 가능성이 처음 생긴 것이 아니라, 아들과 딸 모두가 하나님의 영을 받는 미래의 공동체를 이룬다는 사실이 일반적인 약속으로 선포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나이의 구분이 등장합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꿈을 꾸고, 젊은 남자들은 환상을 봅니다. 꿈은 일반적으로 잠자는 동안 경험하고, 환상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계시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 두 표현이 엄격히 구분되지 않고 함께 사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요엘이 나이 든 사람은 반드시 꿈만 꾸고, 젊은 사람은 반드시 환상만 본다고 역할을 고정한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이 든 사람과 젊은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한다는 사실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던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임한 영을 칠십 장로들에게도 주셨습니다. 그들이 예언하기 시작하자, 진영 안에 남아 있던 엘닷과 메닷도 예언했습니다(민수기 11:24–27).
여호수아는 그들을 말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권위를 위협받는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민수기 11:29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모두 예언자가 되고, 하나님께서 그들 모두에게 자신의 영을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요엘 3장은 바로 그 소원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세 시대에는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제한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요엘은 하나님의 영이 공동체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넓게 부어지는 미래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요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한 시간 간격이 아니라 약속의 내용이 넓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 2:16–21에서 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사건을 설명하면서 요엘의 이 말씀을 인용합니다. 두루새김 요엘 3:1의 약속은 「그 뒤에」라고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17에서 베드로가 인용하는 표현은 「마지막 날들에」에 해당합니다. 또한 사도행전의 인용에는 남녀 종들이 예언할 것이라는 말이 분명하게 덧붙습니다. 이것은 요엘서의 원래 문맥과 구별되는 신약의 해석적 적용입니다. 요엘은 먼저 이스라엘의 회복과 하나님의 날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이 넓게 부어질 것을 선포했습니다. 사도행전은 그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 강림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선포합니다.
노예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한다
「그때에는 남자 노예들에게도 여자 노예들에게도 내 영을 쏟아붓겠다.」요엘 3:2 · 두루새김
아들과 딸, 나이 든 사람과 젊은이는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나이와 성별에 따라 구분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노예는 법적·사회적 지위에서도 자유인과 구별되는 사람입니다.
노예는 다른 사람의 소유나 지배 아래 놓인 존재였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노동, 삶의 결정권을 자유인처럼 행사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사회에서 가진 지위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주시는 자격을 결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더욱이 1절과 2절에는 「내 영을 쏟아붓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반복됩니다. 아들과 딸들에게 주시는 영과 노예들에게 주시는 영이 서로 다른 종류의 영이 아닙니다.
같은 하나님께서 같은 선물을 주십니다.
이것은 노예제도가 즉시 폐지된다는 직접적인 선언은 아닙니다. 요엘은 노예들의 법적 신분이 어떻게 바뀌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을 받는 일에서는 노예라는 신분이 제외되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그들은 이미 「모든 사람」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굳이 그들을 다시 이름 붙여 부릅니다. 이 반복은 독자가 「모든」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무심코 제외할 수 있는 사람들을 눈앞에 세웁니다.
그 공동체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독점할 수 있는 성별이나 나이, 사회적 신분이 없습니다.
다만 누구에게나 영이 임할 수 있다는 말이 모든 발언을 자동으로 참된 예언으로 인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구약은 예언이 참된지 거짓된지 가려야 한다고도 가르칩니다(신명기 13:1–5; 18:20–22).
요엘은 분별의 필요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받을 자격을 인간의 사회적 서열로 미리 제한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영을 부어 주시는 하나님이 해와 달도 흔드신다
「내가 하늘과 땅에 표징을 보이겠다.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 나타날 것이다.」요엘 3:3 · 두루새김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피와 불과 연기는 파괴와 재난을 떠올리게 합니다. 「연기 기둥」이라는 표현은 아래에서 연기가 솟아올라 하늘로 이어지는 모습을 그립니다. 재앙의 영향이 땅에만 머무르지 않는 듯합니다.
「크고 두려운 여호와야훼의 날이 오기 전에 해는 어둠으로, 달은 피로 바뀔 것이다.」요엘 3:4 · 두루새김
해와 달은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과 삶의 질서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빛들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던 세계의 안정성이 하나님의 날 앞에서 흔들린다는 사실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공동체도 여전히 하나님의 날을 앞두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듣고 전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는 상황입니다. 세상이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알 수 있는 길을 넓혀 주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자신의 영을 주시는 분이며, 동시에 세계를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 두 선언은 마지막 절을 향해 나아갑니다.
조금 더 깊이
표징은 반드시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기적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과 뜻을 드러내시는 사건이며, 경우에 따라 심판과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붉게 보이는 달이나 어두워진 해를 떠올릴 수는 있지만, 본문은 그러한 현상이 어떤 물리적 과정으로 발생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요엘의 관심은 천문 현상의 원리가 아니라 그 현상이 가리키는 하나님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시는 일과 하늘과 땅에 표징을 보이시는 일은 모두 앞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일로 선포됩니다. 그리고 해와 달이 변하는 표징은 하나님의 날이 오기 전에 나타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나 영이 부어지는 일과 각각의 표징 사이의 정확한 시간 간격까지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이름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재앙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또 여호와야훼가 부르시는 살아남은 사람들 가운데 구원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요엘 3:5 · 두루새김
요엘 3장의 마지막 절은 앞의 모든 내용을 새로운 방향으로 모읍니다.
처음과 마지막에 각각 「모든」과 「누구나」라는 표현이 놓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부어 주시겠다는 약속의 대상을 묘사합니다. 「누구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구원이 열려 있음을 선언합니다.
본문은 단순히 모든 사람이 아무런 응답 없이 자동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부르는」이라는 행동이 함께 제시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께 도움을 구하며, 그분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행위와 연결됩니다. 특히 시편 116:4에서는 시인이 죽음의 위협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구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요엘에서도 이 표현은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입으로 소리 내어 발음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분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의 날이 너무 두려워 누구도 견딜 수 없을 것처럼 묘사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날을 앞둔 사람들에게 벗어날 길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주시는 일에도, 사람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일에도, 인간이 만든 서열이 결정적인 기준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누구나」와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의 긴장
시온은 예루살렘과 관련된 장소이면서, 특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 머무시는 곳이라는 신학적 의미를 가집니다. 시편 46편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성읍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시편 132:13–14에서는 하나님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신의 거처로 삼으셨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요엘이 시온과 예루살렘을 언급하는 것은 단순히 지도 위의 안전한 피난처를 알려 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만나시고 그들 가운데 계시는 장소에서 구원이 나온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요엘이 말하는 시온과 예루살렘은 실제로 이스라엘의 예배와 공동체 생활의 중심이었던 장소입니다. 본문의 첫 번째 의미는 그 구체적인 역사적 장소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여호와야훼가 부르시는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반복되는 남은 자의 주제와 이어집니다. 이사야 10:20–22에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온다고 말합니다. 미가 4:6–7에서는 쫓겨나고 고통받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모아 남은 자가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남은 자는 단순히 재난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표현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심판 가운데서도 자신의 백성을 완전히 끝나게 하지 않으시고, 그들과의 관계를 이어 가신다는 신학적 의미를 가집니다.
앞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을 어떤 엄격한 시간적 순서로 배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본문을 넘어서는 해석입니다. 요엘은 하나님께서 언제 누구를 먼저 부르시는지, 사람의 응답과 하나님의 선택이 어떤 철학적 관계에 놓이는지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누구나」라는 약속과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앞의 표현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에 주어진 구원의 약속이 열려 있음을 보여 주고, 뒤의 표현은 그 구원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지켜 주시는 행동에 달려 있음을 드러냅니다.
성경 전체에서 이어지는 약속
특히 사도행전 2:39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약속이 듣는 이들과 그 자녀들, 멀리 있는 모든 사람 가운데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이들에게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요엘 3:5의 「여호와야훼가 부르시는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로마서 10:13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얻는다는 요엘 3:5의 말씀을 직접 인용하여 그리스도에 관한 자신의 선포와 연결합니다. 그러나 이 신약의 해석을 곧바로 요엘 3장의 유일한 원래 의미로 되돌려 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요엘의 첫 청중에게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고, 자신의 영을 그들에게 부어 주시며, 다가오는 심판 속에서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실 것이라는 희망이었습니다. 신약은 바로 그 구약의 약속을 바탕으로 성령 강림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해석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히브리어 원문은 두 종류의 낱말을 사용합니다. 하나는 펠레타로, 재난이나 위험에서 벗어남 또는 살아남은 사람들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세리딤으로, 재난 뒤에 남아 있는 생존자들을 가리킵니다.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구원이 있을 것이다」라고 읽으면, 시온은 구원이 나타나는 장소로 강조됩니다.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살아남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읽으면, 심판 속에서도 지켜지는 사람들에게 초점이 놓입니다. 마지막의 「살아남은 사람들 가운데」라는 표현도 구원이 나타나는 범위를 더 설명하는 말로 읽을 수 있고, 살아남은 무리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두 읽기의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심판 속에서도 살아남을 길과 살아남는 사람들을 마련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두워진 해 아래서도 부를 수 있는 이름
하나님의 영을 받는 사람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심판의 날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두려운 표징이 나타난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사람들을 보호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심판을 앞둔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듣고 자신을 찾을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는 사람도 결국 구원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예언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꿈과 환상을 경험하는 사람도 다가오는 하나님의 날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는다는 것은 심판받을 세상 위에 군림할 자격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께 귀 기울이고 그분을 찾는 삶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해는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달은 피처럼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을 주시고 자신의 이름을 부를 길을 열어 놓으십니다.
하늘의 빛이 사라지는 날에도,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요엘 3장은 바로 그 약속으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