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풀어 읽기 · 17장
이 장의 자리 · 13–21장 · 지파별로 나눈 땅
같은 땅, 서로 다른 요구
여호수아 17장에는 두 번의 요청이 나옵니다.
먼저 츨로프핫의 다섯 딸이 제사장 엘아자르와 여호수아와 지도자들 앞에 나아옵니다. 아버지에게 아들이 없었으므로 자신들도 물려받을 땅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장 끝에서는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나아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수가 많은 백성인데 받은 땅이 너무 적다고 말합니다.
두 요청 모두 물려받을 땅에 관한 것이고, 모두 하나님과 관련된 근거를 제시합니다. 그러나 두 요청의 성격은 다릅니다.
다섯 딸은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이 자신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요셉 자손은 하나님께 복을 받아 수가 많아졌으므로 더 넓은 몫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전사의 후손들과 아들이 없는 집안
므낫세의 맏아들 마키르
여호수아 17장은 요셉의 맏아들 므낫세에게 돌아간 몫을 설명하면서 시작합니다.
므낫세 지파에게도 제비를 뽑아 정한 몫이 돌아갔습니다. 므낫세는 요셉의 맏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므낫세의 맏아들이며 길르앗의 아버지인 마키르는 전쟁에 나서는 용사였으므로 길르앗과 바산을 받았습니다.여호수아 17:1 · 두루새김
앞 장에서는 에브라임이 물려받을 땅이 먼저 소개되었습니다. 이제 므낫세의 차례입니다. 므낫세는 요셉의 맏아들이었지만, 야곱이 창세기 48장에서 에브라임을 앞세워 축복한 일을 생각하면, 맏아들이라는 사실만으로 누가 무엇을 물려받을지가 모두 결정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길르앗과 바산은 요단강 동쪽에 있는 지역입니다. 민수기 32:39–42에는 므낫세의 자손이 길르앗 지역을 차지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 13:29–31에서도 모세가 므낫세 지파의 절반에게 요단강 동쪽 땅을 주었다고 밝힙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마키르라는 한 개인이 전쟁에서 세운 공적을 새롭게 전한다기보다,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후손 집단이 동쪽의 땅을 차지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기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전쟁에 나서는 용사」라는 표현은 그 땅을 차지하는 과정에 군사적 행동이 관련되었음을 드러냅니다.
이어서 2절은 아비에셀, 헬렉, 아스리엘, 세겜, 헤페르, 셰미다의 여섯 씨족을 나열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므낫세에게서 나온 「남자 자손들」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보면 땅을 물려받은 사람들의 명단은 남성 조상을 중심으로 정리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한 가지 문제가 등장합니다.
므낫세의 아들은 마키르, 마키르의 아들은 길르앗, 길르앗의 아들은 헤페르였습니다. 헤페르의 아들 츨로프핫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들만 있었습니다. 딸들의 이름은 마흘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였습니다.여호수아 17:3 · 두루새김
당시처럼 아버지의 집안을 중심으로 땅을 물려주는 사회에서 이것은 단순한 가족 정보가 아닙니다. 땅을 물려받을 남자 후손이 없는 경우, 그 집안의 몫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 이름들은 이미 민수기 27:1에 등장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여호수아 시대에 갑자기 등장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세가 살아 있던 때부터 자기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을 땅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때의 요청이 이제 가나안 땅의 실제 분배 현장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츨로프핫의 딸들 — 약속을 기억하고 요구한 사람들
그들은 새로운 특혜를 요구하지 않았다
다섯 딸은 제사장 엘아자르와 여호수아와 지도자들 앞에 나아와 말합니다.
그 딸들이 제사장 엘아자르와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지도자들 앞에 나아와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저희에게도 남자 친족들과 함께 대대로 물려받을 땅을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야훼께서 지시하신 대로 그 딸들에게도 아버지의 형제들과 함께 물려받을 땅을 주었습니다.여호수아 17:4 · 두루새김
이 말은 민수기 27장에서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츨로프핫의 딸들은 모세와 제사장 엘아자르, 지도자들과 모인 백성 앞에 나아가 자신들의 아버지에게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그의 이름이 씨족 가운데서 사라져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형제들 가운데서 자신들에게도 땅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민수기 27:1–4).
모세는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져갔습니다. 민수기 27:7에서 하나님께서는 츨로프핫의 딸들이 옳은 말을 했다고 인정하셨고, 그들에게 아버지의 땅을 물려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어 27:8–11에서는 아들이 없는 사람의 재산을 딸에게 물려주는 규정이 제시됩니다.
따라서 여호수아 17장의 다섯 딸은 지도자들에게 새로운 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명령을 지금 이 자리에서 실행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다섯 딸에게 물려받을 땅은 지도자들이 베풀어 주는 선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몫이었습니다.
무엇이 이 요청을 특별하게 만드는가?
츨로프핫의 딸들은 남자를 중심으로 땅을 물려주던 기존의 방식 때문에 자기 아버지의 집안이 몫을 잃을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주장을 옳다고 인정하셨습니다.
그 결과 한 가족의 문제가 이스라엘 전체의 상속 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다고 이 사건을 오늘날의 남녀가 모든 상황에서 똑같이 재산을 물려받을 권리를 갖는 제도가 세워진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민수기 27장의 규정은 아들이 없는 경우 딸이 물려받는다는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민수기 36:6–12에서는 물려받은 땅이 다른 지파로 넘어가지 않도록 츨로프핫의 딸들이 아버지 지파의 씨족 안에서 결혼해야 한다는 규정도 나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당시의 지파별 땅 소유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한 집안이 재산을 물려받는 데서 제외되지 않도록 한 조치였습니다.
모세의 시대에 받은 말씀이 여호수아의 시대에 실행되다
이 장면에는 두 세대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섯 딸은 모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명령이 실제로 실행되는 자리는 여호수아가 이끄는 가나안 땅의 분배 현장입니다. 모세는 죽었고, 지도자는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은 지도자가 바뀌었다고 효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장면은 여호수아서 1:7–8에서 강조된 말씀에 대한 순종과도 연결됩니다. 여호수아에게 요구된 것은 자신의 판단으로 이스라엘을 이끄는 것만이 아니라, 모세를 통해 주어진 가르침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적을 물리치는 전쟁터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에게 어떤 몫을 주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자리에서도 일어납니다.
열 구획이라는 숫자
5–6절은 므낫세에게 요단강 동쪽의 길르앗과 바산 외에 땅 열 몫이 돌아갔다고 설명합니다.
므낫세의 여자 자손들도 남자 자손들과 함께 땅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길르앗 땅은 므낫세의 다른 자손들이 받았습니다.여호수아 17:6 · 두루새김
이 문장은 다섯 딸의 사건이 단순히 끼어든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땅 분배에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열 몫을 정확히 어떻게 셌는지는 본문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2절의 씨족 명단과 다섯 딸의 몫을 바탕으로 계산하려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각 몫이 어떤 씨족에 얼마씩 돌아갔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상 21장에서는 나봇이 자기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땅을 아합 왕에게 넘기기를 거부합니다. 그는 그 땅을 단순히 거래할 수 있는 재산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결국 왕이 권력을 함부로 사용한 결과 죽임을 당합니다. 이 사건과 츨로프핫의 딸들 이야기는 서로 다른 상황이지만, 둘 다 물려받은 땅이 단순한 경제적 소유가 아니라 가족과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레위기 25:23에서는 하나님께서 땅을 영구히 팔지 말라고 명령하시면서, 땅이 자신에게 속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구약의 흐름 안에서 물려받은 땅은 제한 없이 지배할 권리를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땅을 그분의 백성이 받아 살아가는 관계가 그 바탕에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상속이라는 주제가 하나님의 자녀 됨과 그리스도 안에서 물려받을 몫으로 확장됩니다(로마서 8:16–17; 갈라디아서 4:7). 이는 여호수아 17장을 직접 인용한 해석이 아니라, 상속이라는 주제가 성경 전체 안에서 발전하는 모습입니다.
므낫세의 경계 — 하나의 영역 안에 서로 다른 소속이 있다
다섯 딸이 물려받을 몫이 확정된 뒤, 본문은 므낫세 지파의 구체적인 경계를 설명합니다.
미크므탓에서 엔 타푸아로, 카나 개천을 따라 서쪽 바다로 이어지는 경계가 나타납니다. 남쪽은 에브라임, 북쪽은 므낫세의 몫입니다.
타푸아 주변의 땅은 므낫세의 몫이었지만, 므낫세의 경계에 있는 타푸아 성은 에브라임 자손의 몫이었습니다.여호수아 17:8 · 두루새김
9절에서도 므낫세의 성들 사이에 에브라임의 몫이 된 성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16:9에서 언급되었던 두 지파 사이의 복잡한 분배 관계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한 지파의 땅 안에 다른 지파에게 나누어 준 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구절들은 땅이 누구에게 속하는지가 반드시 하나의 이어진 경계선으로만 결정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성과 그 주변 땅이 서로 다른 지파에 속할 수 있었고, 지파의 땅 안에 다른 지파의 성들이 존재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1절에 이르면 또 다른 형태의 복잡성이 나타납니다.
잇사갈과 아셀의 영역 안에 있는 므낫세의 성읍들
잇사갈과 아셀의 땅 안에도 므낫세에게 속한 곳들이 있었습니다. 벳 스안과 거기에 딸린 성들, 이블르암과 거기에 딸린 성들이었습니다. 또 도르, 엔 도르, 타아나크, 므깃도의 주민들과 각 성에 딸린 성들도 므낫세에게 속했습니다. 곧 높은 지대 세 곳이었습니다.여호수아 17:11 · 두루새김
벳 스안은 요단강 계곡과 이스르엘 골짜기가 연결되는 곳에 가까웠습니다. 므깃도와 타아나크는 이스르엘 골짜기의 남서쪽 일대와 관련됩니다. 도르는 지중해 해안에 자리 잡은 성이었습니다.
이 성들은 모두 같은 지형에 있지는 않지만, 여러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와 평야의 중요한 거점들이었습니다. 특히 이스르엘 골짜기는 중앙 산지와 북쪽 지역을 연결하는 넓은 평야였습니다. 평야는 농사에 유리했을 뿐 아니라 병거를 움직이기에도 산지보다 유리한 지형이었습니다. 이 배경은 뒤에 요셉 자손이 철 병거를 두려워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합니다.
므낫세는 중앙 산지뿐 아니라 여러 교통로와 평야의 주요 성들을 물려받을 몫으로 배정받았습니다. 문제는 이 성들이 실제로 므낫세의 지배 아래 완전히 들어왔느냐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한편 11절의 「높은 지대 세 곳」이라는 표현은 정확히 어느 세 지역을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여섯 성을 특정한 세 집단으로 묶는 표현일 수도 있고, 지형이나 지역 이름과 관련된 오래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만으로 세 지역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쫓아낼 수 없었던 때와 쫓아내지 않았던 때
그러나 므낫세 자손은 이 성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 땅에 계속 살겠다고 버텼습니다.여호수아 17:12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받기로 한 땅에는 이미 여러 성과 정치적 세력이 존재했습니다. 그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던 장소를 지키려 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므낫세가 성들을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는 실제적인 군사적 어려움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3절은 시간을 앞으로 이동시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힘이 강해지자 가나안 사람들에게 강제로 일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쫓아내지는 않았습니다.여호수아 17:13 · 두루새김
원문인 히브리어 13절의 마지막에는 「쫓아내다」(יָרַשׁ)라는 동사가 강조된 형태로 반복됩니다. 물론 강제로 일을 시킬 능력이 있었다고 해서 모든 주민을 완전히 몰아낼 군사적 능력도 충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이 이전과 똑같이 힘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상황은 달라졌지만, 주민들을 쫓아내지 않았다는 결과는 계속되었습니다.
여기서 본문은 그들이 왜 그런 상태를 유지했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의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일부러 그들을 남겨 두었는지, 완전한 정복이 여전히 어려웠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왜 저희에게 물려받을 땅으로 제비를 뽑아 정한 몫 하나, 땅 한 구역만 주셨습니까?」 — 요셉 자손의 항의
여호수아 17장의 후반부에서는 새로운 대화가 시작됩니다.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했습니다. 「왜 저희에게 물려받을 땅으로 제비를 뽑아 정한 몫 하나, 땅 한 구역만 주셨습니까? 여호와야훼께서 지금까지 저희에게 복을 주셔서 저희는 수가 많은 백성입니다.」여호수아 17:14 · 두루새김
이 말은 단순한 불평으로 치부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요셉 자손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라는 두 지파로 구성되어 있었고, 넓은 지역에 정착해야 했습니다. 민수기 26:34–37의 두 지파 인구 조사 결과를 합하면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남자가 85,200명에 이릅니다. 이 수치는 전체 거주 인구가 아니라 인구 조사에서 센 남자들의 수이지만, 두 지파의 규모가 상당했음을 보여줍니다.
「몫 하나」는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가?
앞서 므낫세는 요단강 동쪽에도 땅을 받았고, 17:5에서는 요단강 서쪽의 땅 열 몫이 언급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요셉 자손은 자신들이 한 몫밖에 받지 못했다고 말할까요?
한 가지 가능성은 요셉 자손이 두 지파를 하나의 요셉 집안으로 묶어 말하면서, 자신들에게 배정된 전체 땅을 하나의 몫으로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그들이 실제로 이용하거나 확보할 수 있는 땅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몫이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어느 쪽이 정확한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뒤의 대화를 보면 요셉 자손이 단순히 경계선의 넓이만 문제 삼는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산지가 부족하다고 말하고, 평야에는 철 병거를 가진 가나안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즉, 땅이 지도상으로 얼마나 넓으냐와 그 땅을 실제로 얼마나 사용할 수 있느냐 사이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지금까지 저희에게 복을 주셔서」
요셉 자손은 자신들의 규모를 단순히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수가 많아진 이유를 하나님의 복으로 설명합니다. 창세기 48:4에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요셉에게 전합니다. 창세기 49:22에서는 요셉을 풍성하게 자라는 가지에 비유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복을 언급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그 복을 근거로 무엇을 요구하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수가 많은 백성이므로 더 큰 몫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같은 사실에서 다른 결론을 이끌어 냅니다.
여호수아의 반문 — 큰 백성이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호수아가 대답했습니다. 「너희가 수가 많은 백성이라면 숲으로 올라가라. 에브라임 산지가 너희에게 비좁으니, 브리스 사람들과 르파임 사람들의 땅에서 너희를 위해 나무를 베어 내라.」여호수아 17:15 · 두루새김
여호수아의 대답은 요셉 자손의 주장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들의 수가 많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산지가 좁다는 호소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을 법한 방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왜 하필 숲을 베어 내라고 했을까?
여기서 나무를 베어 내라는 말은 단순한 벌목 작업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산지가 숲으로 덮여 있다면 그곳을 농사지을 땅이나 살 곳으로 사용하기 위해 개간 작업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에게 이미 차지한 땅만 바라보지 말고, 아직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는 지역을 개발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빈 땅으로만 소개되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곳을 브리스 사람들과 르파임 사람들의 땅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여호수아의 지시에는 두 가지 과제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숲을 개간하여 사용할 수 있는 땅을 넓히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곳에 있는 주민들과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입니다.
이 장면을 단순히 부지런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읽으면 본문의 현실을 놓칩니다. 여호수아가 요구한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땅을 개간하는 수고와 군사적인 위험이 함께 있었습니다.
요셉 자손은 많은 인구를 더 큰 몫을 받아야 하는 이유로 제시했고, 여호수아는 많은 인구를 더 큰 과제를 감당할 수 있는 이유로 받아들였습니다.
같은 사실을 놓고 책임의 방향이 달라진 것입니다.
다만 이것을 가난하거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무조건 더 노력하라고 요구하는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요셉 자손은 본문에서 스스로 수가 많고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집단입니다. 여호수아의 대답도 바로 그들의 형편과 주장에 대한 응답입니다.
또한 가나안 정복을 오늘날의 땅 확장이나 다른 사람의 권리를 빼앗는 행동의 근거로 삼을 수도 없습니다. 이 장의 명령은 이스라엘이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땅을 물려받는 과정에 관한 것입니다.
철 병거 — 요셉 자손이 두려워한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요셉 자손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요셉 자손이 말했습니다. 「그 산지만으로는 저희에게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골짜기 땅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은 모두 철 병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벳 스안과 거기에 딸린 성들에 사는 사람들도, 이스르엘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여호수아 17:16 · 두루새김
여기서 대화는 산지의 개간에서 평야의 군사적 문제로 이동합니다.
철 병거가 왜 위협적이었을까?
고대 근동의 병거는 주로 말을 이용해 움직이는 전투 수단이었습니다. 넓고 비교적 평탄한 지형에서 빠르게 이동하며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르엘 골짜기는 병거가 활동하기에 유리한 넓은 평야였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의 초기 정착은 중앙 산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산지에 있는 요셉 자손이 평야의 병거 세력을 두려워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산지가 부족한가, 산지를 확보하지 못한 것인가?
12절에서는 므낫세가 성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제 16절에서는 요셉 자손이 철 병거 때문에 평야를 차지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 두 진술은 서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가나안 주민들의 군사적 저항이 실제 정복의 어려움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3절에서는 이스라엘이 강해진 뒤에도 가나안 사람들에게 강제로 일을 시키면서 쫓아내지 않았다고 기록했습니다. 본문은 모든 문제를 단순히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판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부의 군사적 위협만으로 모든 상황을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그 긴장 속에서 여호수아의 마지막 말이 나옵니다.
조금 더 깊이
「철 병거」를 병거 전체가 철로 만들어졌다는 뜻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철로 된 부품이나 보강 장치가 있는 병거를 가리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정확한 구조는 이 구절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16절의 첫 문장에는 번역상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 산지만으로는 저희에게 충분하지 않습니다」라는 표현은 산지의 면적이나 이용 가능한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표현에는 산지를 자신들의 것으로 확보하기 어렵다는 의미를 생각할 여지도 있습니다. 첫 번째 읽기에서는 산지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므로 평야까지 필요하지만, 그곳에는 강한 가나안 군대가 있다는 뜻이 됩니다. 두 번째 읽기에서는 산지를 확보하는 일 자체가 어렵고, 평야의 강한 가나안 세력까지 상대해야 하므로 물려받을 땅을 실제로 차지하기가 힘들다는 호소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수가 많은 백성이고 큰 힘을 가지고 있다」 — 여호수아의 마지막 대답
여호수아가 요셉 집안,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수가 많은 백성이고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너희에게 돌아갈 몫은 제비를 뽑아 받은 한 몫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여호수아 17:17 · 두루새김
요셉 자손은 자신들의 수가 많다는 사실과 철 병거를 가진 적들의 강함을 나란히 놓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적들의 강함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요셉 자손 자신의 힘을 다시 보게 합니다.
「너희에게 돌아갈 몫은 제비를 뽑아 받은 한 몫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
「산지도 너희의 것이 될 것이다. 그곳은 숲이니 나무를 베어 내라. 그 끝까지 너희의 것이 될 것이다. 가나안 사람들에게 철 병거가 있고 그들이 강하더라도, 너희가 그들을 쫓아낼 것이기 때문이다.」여호수아 17:18 · 두루새김
여호수아가 제시하는 것은 이미 언급한 산지를 개간하여 그 끝까지 확보하는 일입니다.
여호수아는 철 병거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철 병거가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약하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철 병거를 가지고 있고 강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요셉 자손이 그들을 몰아낼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서에서 이스라엘의 정복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약속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1:5–9에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셨고, 두려워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7:18 자체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승리를 새롭게 선언하셨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이 구절은 여호수아가 요셉 자손에게 한 말입니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보장하는 승리의 의미를 해석할 때에는 여호수아서 전체의 약속을 배경으로 삼되, 이 절에 없는 하나님의 직접 발언을 덧붙여서는 안 됩니다.
결과는 기록되지 않는다
요셉 자손이 실제로 숲을 베어 냈는지, 산지를 어디까지 차지했는지, 철 병거를 가진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냈는지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17장이 보여주는 것은 여호수아의 지시와 확신이지, 그 지시가 즉시 실행되었다는 보고가 아닙니다.
사사기 1:27–28은 므낫세가 벳 스안과 므깃도를 비롯한 여러 성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했고, 이스라엘이 강해졌을 때 그들에게 강제로 일을 시켰다고 다시 기록합니다. 따라서 여호수아의 말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그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장은 아직 남아 있는 과제와 그 과제를 향한 명령을 마지막에 놓습니다.
조금 더 깊이
요셉 자손은 14절에서 자신들에게 한 몫만 주었다고 항의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17절에서 제비를 뽑아 받은 한 몫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가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새로운 제비뽑기로 땅을 더 주겠다고 약속한 것일까요? 그렇게 해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18절을 보면 여호수아의 뜻이 단순한 추가 분배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비를 뽑아 받은 한 몫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은 요셉 자손이 더 넓은 실제 생활 영역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약속이 구체적으로 이미 물려받은 땅을 개발하고 넓히는 일을 뜻하는지, 혹은 추가로 땅을 확보하는 일까지 포함하는지를 완전히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여호수아가 새로운 제비뽑기를 즉시 시행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맺음말 — 숲 너머의 평야
한쪽에는 약속받은 몫을 실제로 내어 주고, 다른 쪽에는 이미 주어진 몫을 차지할 힘을 사용하라고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사람들의 행동을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엇을 요구해야 하고, 무엇을 인정해야 하며,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요셉 자손의 눈앞에는 숲으로 덮인 산지가 있습니다. 더 멀리 평야에는 철 병거를 가진 가나안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어려움은 실제입니다. 숲은 개간해야 하고, 평야의 가나안 주민들은 강합니다.
여호수아는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숲이 있다는 것을 알고, 철 병거가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알고도 요셉 자손에게 산지로 올라가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아직 베어 내지 않은 숲과, 그 너머의 넓은 평야와, 철 병거를 가진 가나안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며 자기들이 수가 많은 백성이라고 말한 요셉 자손에게, 여호수아는 그들이 가진 큰 힘을 다시 일깨웁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땅뿐이었는지, 아니면 이미 받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사용해야 할 힘을 아직 충분히 발휘하지 않은 것이었는지, 여호수아의 마지막 말은 그 질문을 남깁니다.
그렇게 여호수아 17장은 새롭게 그어진 경계선이 아니라, 아직 개간되지 않은 산지 앞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