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1–7장 · 제사의 종류

죄가 드러나도 열려 있는 용서의 길

레위기 4장을 읽으면 이상한 차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기름을 부어 세운 제사장이 죄를 지으면 제물의 피를 만남의 천막 안으로 가져갑니다. 이스라엘 온 공동체가 죄를 지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나 일반 백성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피를 천막 안으로 가져가지 않고 바깥에 있는 번제단의 뿔들에 바릅니다.

같은 죄를 위한 제사인데 왜 피를 바르는 장소가 다를까요?

죄는 그것을 저지른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으며,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머무시는 질서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죄를 지은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제물과 피를 다루는 방식을 달리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절차가 향하는 곳에는 한 가지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용서받을 것이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74장 본문 읽기 →

모르고 지은 죄도 왜 죄인가?

레위기 4:1–2 본문 →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누가 여호와야훼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일 가운데 하나를 실수로 하여 죄를 지었다면, 그때 지킬 규정은 이러하다.』」레위기 4:2 · 두루새김

먼저 죄의 범위가 정해집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일을 실제로 한 경우입니다. 단순히 기분이 나쁘거나 마음이 불편한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구체적인 행동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거기에 「실수로」라는 조건을 붙입니다.

히브리어 비슈가가(⁨שְׁגָגָה⁩)는 부주의나 잘못된 판단, 알지 못함 등으로 인해 저지른 잘못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 말이 반드시 몸을 움직이다가 우연히 사고를 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지만 그것이 일부러 하나님께 반항하거나 대놓고 맞서는 행동으로 규정되지 않는 경우를 포함합니다.

이 구별은 민수기 15:22–31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곳에서는 실수로 죄를 지은 사람을 위한 속죄 규정과,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며 일부러 거역하는 사람에 관한 규정을 구별합니다. 이 장은 특별히 실수로 지은 죄에 대한 제사 규정입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인 줄 모르고 행동했다면, 나중에 그 잘못을 알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죄가 되는 것일까요?

본문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13절에서는 이스라엘 온 공동체가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어 14절은 그들이 지은 죄를 알게 되었을 때 제물을 가져오라고 명령합니다.

죄를 지은 때와 죄를 알게 된 때가 구별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일을 알지 못하는 동안에도 이미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정해진 방식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여기서 죄의 책임은 단순한 죄책감과 다릅니다.

죄책감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느끼는 마음의 경험입니다. 그러나 잘못을 느끼는 것과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행동 자체는 구별됩니다. 그러므로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고 해서 그 행동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죄를 처리할 길이 주어집니다.

먼저 제사장의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

레위기 4:3–7 본문 →

「『기름을 부어 세운 제사장이 죄를 지어 백성에게도 죄의 책임이 돌아가게 되었다면, 그는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흠 없는 어린 수소 한 마리를 여호와야훼께 정화 제물로 바쳐야 한다.』」레위기 4:3 · 두루새김

여기서 기름을 부어 세운 제사장은 특별히 거룩하게 구별되어 성소의 일을 맡은 제사장을 가리킵니다. 출애굽기 29:7과 레위기 8:12에서는 아론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거룩하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기름을 부어 세웠다고 해서 죄를 지을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일을 맡았다는 사실이 그 사람을 죄 없는 존재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본문은 그가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장 먼저 규정합니다.

어떤 경로로 백성에게 죄의 책임이 돌아가는지는 이 절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제사장이 잘못된 가르침으로 백성을 죄짓게 했다는 뜻인지, 백성을 대표하는 그의 지위 때문에 죄의 책임이 공동체에 미친다는 뜻인지, 혹은 두 의미가 함께 작용하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제사장의 죄는 단순한 개인 문제로만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제사의 일을 맡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의 행동은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이 섬기는 공동체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모든 지도자의 개인적인 잘못이 곧바로 모든 구성원에게 같은 죄의 책임을 가져온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레위기 4:3은 기름을 부어 세운 제사장의 특정한 지위와 죄의 관계를 다루는 규정입니다.

「죄」와 「정화 제물」은 같은 말에서 나온다

히브리어 하타트(⁨חַטָּאָה⁩)는 문맥에 따라 「죄」와 죄를 위한 「제물」을 모두 가리킵니다. 원문에서는 한 구절 안에서 제사장이 지은 죄와 그 죄 때문에 바치는 제물에 같은 단어가 사용됩니다. 이 때문에 전통적으로 죄제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 제사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용서를 얻게 할 뿐 아니라, 성소와 제단의 거룩함을 회복하는 의식과도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레위기 8:15에서는 모세가 제단에 피를 발라 제단을 깨끗하게 하는 행동이 나타나고, 16:16에서는 이스라엘의 부정과 죄 때문에 성소를 위한 속죄가 이루어집니다.

이 제사는 죄와 성소의 거룩함, 그리고 용서의 문제를 함께 다룹니다.

피가 천막 안으로 들어간다

기름을 부어 세운 제사장은 흠 없는 어린 수소를 가져와 머리에 손을 얹고 잡습니다.

그런데 이제 앞선 제사들과는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기름을 부어 세운 제사장은 수소의 피를 조금 가져다가 만남의 천막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레위기 4:5 · 두루새김

뜰에는 번제단이 있습니다. 만남의 천막 안에는 향을 피우는 제단이 있고, 더 안쪽에는 휘장을 경계로 지성소가 구별되어 있습니다(출애굽기 26:31–35; 30:1–10).

「『그 제사장은 피에 손가락을 담그고, 여호와야훼 앞에서 성소의 휘장 앞에 피를 일곱 번 뿌려야 한다.』」레위기 4:6 · 두루새김

그는 휘장을 지나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 안쪽으로 들어가는 의식은 레위기 16장의 속죄일 규정에서 따로 등장합니다. 이어서 제사장은 향을 피우는 제단의 뿔들에 피를 바르고, 남은 피는 만남의 천막 입구에 있는 번제단 밑부분에 쏟습니다.

기름을 부어 세운 제사장의 죄는 성소 안쪽에서 피를 다루는 의식을 요구합니다.

왜 반드시 안쪽까지 들어가야 하는지는 4장이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레위기 16:16은 이스라엘의 부정과 죄가 성소의 정화와 관계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므로 레위기 4장의 피 의식을 죄로 인해 영향을 받는 거룩한 공간을 깨끗하게 하는 행동으로 이해할 근거가 있습니다.

다만 피가 죄를 실제 물질처럼 운반하여 어느 지점에 쌓아 놓는다고 본문이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죄와 성소의 관계를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기름을 부어 세운 제사장의 경우에는 이 장 안에 「용서받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직접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를 위한 정화 제물의 규정이 주어진다는 점과, 이후 성경에서 제사장 자신의 속죄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사실(레위기 9:7; 16:6)을 고려하면, 이 생략을 제사장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휘장 앞이라는 위치를 분명히 말하지만, 피가 휘장 표면에 직접 닿아야 하는지까지 확정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성소 안으로 들어가 가장 안쪽의 휘장을 향한 자리에서 의식을 행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제사 규정에서 일곱이라는 수는 반복해서 나타나며, 레위기 14장과 16장에서도 정결과 속죄의 의식에 사용됩니다. 이것을 완전함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수로 이해할 수 있지만, 여기서 가장 분명한 사실은 피를 다루는 행동이 정해진 횟수에 따라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제물은 제단에서 끝나지 않는다

레위기 4:8–12 본문 →

피를 다루는 절차가 끝나면 제사장은 수소에서 지방을 떼어 냅니다.

내장을 덮은 지방과 콩팥 주변의 지방, 간에 붙은 부분이 대상입니다. 본문은 그것을 친교 제물에서 떼어 내는 방식과 같게 하라고 규정합니다.

그런데 남은 수소의 몸은 전혀 다른 장소로 옮겨집니다.

「『곧 수소의 나머지 전체를 진영 밖의 정결한 곳, 재를 버리는 곳으로 가져가 장작 위에서 불로 태워야 한다. 그 수소는 재를 버리는 곳에서 태워야 한다.』」레위기 4:12 · 두루새김

제단에서의 불은 하나님께 지정된 부분을 올리는 제사의 행동입니다. 진영 밖에서의 불은 남은 몸을 정해진 장소에서 처리하는 행동입니다.

진영 밖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정한 장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오히려 그곳이 정결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므로 수소가 진영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곧바로 하나님이 죄인을 버리신다는 상징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왜 이 제물의 고기는 먹지 않고 밖에서 태울까요?

일반적인 정화 제물의 고기는 제사장이 거룩한 곳에서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피를 만남의 천막 안으로 가져가 속죄를 이루는 정화 제물은 먹어서는 안 되며 불에 태워야 합니다(레위기 6:30).

반면 뒤에 나오는 지도자와 일반 백성의 정화 제물에서는 피를 바깥 번제단에 바르고, 몸을 진영 밖에서 태우라는 명령이 반복되지 않습니다. 피를 어디까지 가져가는가와 남은 제물을 어떻게 다루는가가 함께 달라집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에서는 히브리서 9:11–14와 13:11–12가 정화 제물의 피와 몸을 처리하는 규정을 그리스도의 희생과 연결합니다. 특히 히브리서 13:11은 정화 제물의 피가 성소 안으로 들어가고 그 몸이 진영 밖에서 태워지는 규정을 직접 활용합니다. 이는 나중에 성경 안에서 레위기의 의식을 그리스도와 연결한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을 통해 레위기 4장의 모든 세부 사항에 별도의 예언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레위기 4장은 먼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죄를 어떻게 다루도록 하셨는지를 보여 줍니다.

공동체 전체가 잘못을 범했을 때

레위기 4:13–21 본문 →

「『이스라엘 온 공동체가 실수로 여호와야훼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일 가운데 하나를 하여 죄의 책임을 지게 되었으나,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레위기 4:13 · 두루새김

개인이 잘못을 저지르면 그 사람을 확인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 전체가 잘못된 판단이나 행동에 참여했다면 누가 그것을 처리해야 할까요?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각각 수소를 가져와야 합니까?

본문은 그렇게 명령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지은 죄를 알게 되었을 때 공동체는 어린 수소 한 마리를 정화 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 수소를 만남의 천막 앞으로 데려와야 한다.』」레위기 4:14 · 두루새김
「『공동체의 장로들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수소의 머리에 손을 얹어야 한다. 그 수소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잡아야 한다.』」레위기 4:15 · 두루새김

기름을 부어 세운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때에는 그가 자신의 손을 얹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전체가 죄를 지었을 때에는 장로들이 손을 얹습니다. 장로들이 공동체를 대표하여 그 동작을 합니다.

공동체의 죄가 몇몇 장로의 개인적인 잘못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지은 이들은 여전히 온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그 공동체의 제사를 위해 장로들이 대표자로 나섭니다.

공동체의 정화 제물에서도 기름을 부어 세운 제사장이 피를 만남의 천막 안으로 가져갑니다. 안쪽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리고, 성소 안 제단의 뿔들에 바릅니다.

제사장 한 사람의 죄와 공동체 전체의 죄에 같은 수준의 피 의식이 요구됩니다.

기름을 부어 세운 제사장에게는 수소 한 마리가 요구됩니다. 온 공동체에게도 수소 한 마리가 요구됩니다.

한 사람과 수많은 사람의 죄를 단순히 숫자로 계산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제사장의 지위와 온 공동체가 하나로 함께한다는 성격이 각각 성소의 안쪽에서 피를 다루는 의식과 연결됩니다. 이는 제사장의 죄가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 3절과도 이어집니다.

또한 공동체의 죄를 위해 제사를 바친다고 해서 모든 개인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개인의 죄는 개인의 책임으로 다룹니다. 공동체의 죄는 공동체의 책임으로 다룹니다. 특별한 일을 맡은 사람에게는 그 지위가 지닌 책임도 고려됩니다.

공동체도 용서받을 수 있다

「『앞서 정화 제물로 바친 수소를 처리한 것과 똑같이 이 수소를 처리해야 한다. 제사장은 그들을 위해 속죄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용서받을 것이다.』」레위기 4:20 · 두루새김

함께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공동체 전체가 영원히 죄의 책임 아래 머물러야 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잘못을 알게 되었을 때 공동체는 정화 제물을 가져오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차를 따라 속죄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용서받습니다.

죄가 드러나는 순간은 공동체의 실패가 확인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레위기 4장에서는 바로 그 순간이 용서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됩니다.

속죄하는 사람과 용서받는 사람

본문은 제사장이 죄를 용서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사장이 할 일은 정해진 제사를 통해 속죄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사람들은 용서받습니다.

제사장은 자기 마음대로 죄를 없애거나 용서를 결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방식으로 속죄의 일을 맡아 합니다. 하나님이 제사의 길을 마련하시고, 그 길을 통해 용서가 주어집니다.

피를 일곱 번 뿌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용서하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도록 명령하셨으며, 그 명령에 따라 속죄가 이루어질 때 용서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레위기 4장에서 용서의 확실성은 인간이 발견한 어떤 제사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근거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51편은 이러한 죄의 문제를 다른 방향에서 비추어 줍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하나님께 자신을 깨끗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시편 51:2, 7).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단순히 짐승을 바치는 행동에 그치지 않으며, 상한 마음과 관련된다고 말합니다(51:16–17). 레위기는 하나님이 정하신 속죄의 질서를 보여 주고, 시편은 죄를 지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깊이 드러냅니다. 에스겔 18:21–23에서도 하나님은 악인이 자기 죄에서 돌이켜 생명을 얻는 일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도자의 죄에는 무엇이 다른가?

레위기 4:22–26 본문 →

「『지도자가 실수로 자기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일 가운데 하나를 하여 죄를 짓고 그 책임을 지게 되었다면,』」레위기 4:22 · 두루새김

따라서 이 사람을 반드시 왕이라고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가운데 지도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죄를 지은 경우를 다룹니다.

본문은 지도자에게 「자기 하나님 여호와야훼」라는 말을 씁니다. 지도자라고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른 사람보다 느슨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행동도 하나님의 명령 아래 있으며, 잘못을 저지르면 죄의 책임을 지게 됩니다.

「『또는 자기가 지은 죄를 알게 되었다면, 그 지도자는 흠 없는 숫염소 한 마리를 제물로 가져와야 한다.』」레위기 4:23 · 두루새김

여기서 「또는」은 해석에 주의가 필요한 접속어입니다. 앞의 죄의 책임과 뒤의 죄를 알게 되는 일이 서로 따로 성립하는 두 조건인지, 아니면 실수로 죄를 지은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는 과정을 이어 주는 것인지 문법적으로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맥 전체에서 분명한 것은 지도자가 자신이 지은 죄를 알게 되었을 때 제물을 가져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피가 더 이상 천막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지도자는 흠 없는 숫염소를 가져와 머리에 손을 얹고 잡습니다.

그런데 피를 다루는 방식이 앞의 두 사례와 달라집니다.

「『제사장은 정화 제물의 피를 손가락에 조금 묻혀 번제단의 뿔들에 발라야 한다. 남은 피는 번제단 밑부분에 쏟아야 한다.』」레위기 4:25 · 두루새김

이번에는 안쪽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리지 않습니다. 성소 안의 향을 피우는 제단에도 피를 바르지 않습니다. 같은 정화 제물이며, 같은 속죄의 목적을 지녔지만 피 의식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달라집니다.

다만 이것이 지도자의 죄는 제사장의 죄보다 언제나 도덕적으로 가볍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죄의 종류를 세밀하게 비교하지 않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의 지위에 따라 제사를 나누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절차가 다르다고 해서 용서의 약속이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친교 제물의 지방을 태우듯이 그 지방을 모두 제단에서 태워 연기로 올려야 한다. 제사장은 그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해 속죄해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용서받을 것이다.』」레위기 4:26 · 두루새김

지도자는 죄를 지었을 때 자신의 권한을 내세워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는 정화 제물을 가져와야 합니다. 동시에 지도자라는 이유로 용서받을 가능성이 더 좁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 본문은 마지막으로 공동체 안의 일반적인 한 사람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이름 없는 한 사람도 용서받는다

레위기 4:27–35 본문 →

「『일반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 실수로 여호와야훼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일 가운데 하나를 하여 죄를 짓고 그 책임을 지게 되었다면,』」레위기 4:27 · 두루새김

그 사람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직책도 없습니다. 그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 얼마만큼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 죄의 책임을 지게 됩니다.

지도자는 흠 없는 숫염소를 가져와야 하지만, 일반 백성은 흠 없는 암염소를 가져옵니다. 또는 양을 바칠 수도 있는데, 그 경우에도 흠 없는 암컷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제물의 피는 지도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번제단의 뿔들에 발라집니다.

그런데 본문은 암염소와 양의 절차를 각각 설명하면서 마지막 약속을 반복합니다.

「『친교 제물에서 지방을 떼어 내듯이 그 지방을 모두 떼어 내야 한다.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에서 태워 연기로 올려, 여호와야훼께서 기뻐하시는 향기가 되게 해야 한다. 제사장은 그 사람을 위해 속죄해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용서받을 것이다.』」레위기 4:31 · 두루새김

그리고 양의 규정에서도 다시 말합니다.

「『친교 제물로 바친 양에서 지방을 떼어 내듯이 그 지방을 모두 떼어 내야 한다. 제사장은 이 부분들을 제단에서 여호와야훼께 불에 태워 바치는 제물들 위에 얹어 태워 연기로 올려야 한다. 제사장은 그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해 속죄해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용서받을 것이다.』」레위기 4:35 · 두루새김

하나님의 용서는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제사장이 백성을 대표하는 특별한 일을 맡았다고 해서 일반 백성의 죄가 하찮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일반 백성이 특별한 지위를 갖지 못했다고 해서 용서의 약속에서 제외되는 것도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한쪽에서는 정화 제물의 핵심을 죄를 지은 사람의 속죄에 둡니다. 실제로 20절, 26절, 31절, 35절은 제사장이 사람을 위해 속죄하며 그 사람이 용서받는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다른 쪽에서는 피가 사람의 몸이 아니라 제단과 성소에서 사용된다는 점을 중요하게 봅니다. 특히 레위기 16:16이 이스라엘의 부정과 죄 때문에 성소를 정화한다고 설명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성소를 깨끗하게 하는 일이 제사의 본질적인 기능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관점은 반드시 서로 한쪽을 배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단과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정화 의식은 죄를 지은 사람을 위한 속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이 두 요소를 따로 나뉜 제사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정확한 작용 방식을 모두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용서받을 것이라는 약속으로 끝나는 장

레위기 4:1–35 본문 →

제사장의 지위와 온 공동체가 하나로 함께한다는 성격이 각각 성소의 안쪽에서 피를 다루는 의식과 연결됩니다. 지도자와 일반 백성의 제물은 번제단에서 피를 다룹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 단지 무엇을 잘못했는지만 알려 주지 않으십니다. 그 죄를 처리할 길을 말씀하시고, 속죄가 이루어졌을 때 용서받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레위기 4장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이름 없는 한 사람이 암컷 양을 가져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습니다. 양은 번제로 바칠 짐승을 잡는 곳에서 잡힙니다. 제사장은 피를 번제단의 뿔들에 바르고 나머지를 제단 밑부분에 쏟습니다. 정해진 지방을 떼어 하나님께 불에 태워 바치는 제물들 위에 얹어 태워 연기로 올립니다.

그 과정이 끝나면 본문은 더 이상 그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제사를 드리러 왔던 사람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그곳에 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마련하신 속죄의 절차가 끝났을 때, 그 사람에 관해 마지막으로 선언되는 것은 죄의 책임이 아니라 용서입니다.

본문은 더 이상의 장면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제단에는 불이 타고 있고, 제사장은 정해진 일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 없는 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이 남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용서받을 것이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