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5장
이 장의 자리 · 1–7장 · 제사의 종류
고백과 배상으로 이어지는 용서
레위기 5장은 뜻밖의 죄에서 시작합니다.
누군가 무엇을 훔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친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 일의 증인이며, 자신이 보았거나 알고 있는 내용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증언을 요구받았을 때 입을 다뭅니다.
하나님은 그 침묵을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침묵이 죄가 됩니까?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입으로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밝혀야 하는 자리에서 침묵함으로써,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진실의 확인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죄의 책임을 해결한다는 것은 제물을 바치는 행위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감추었던 죄를 인정해야 하고, 잘못 손에 넣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레위기 4장은 죄를 지은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정화 제물의 절차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5장은 한 걸음 더 들어가 어떤 행위가 죄의 책임을 가져오는지, 그 죄를 어떻게 드러내고 바로잡아야 하는지를 살핍니다.
죄는 분명하지만 제물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증언하지 않은 사람, 부정함을 몰랐던 사람, 경솔하게 맹세한 사람
처음 네 절에는 네 가지 상황이 등장합니다.
증언해야 할 일을 알리지 않은 사람, 부정한 동물의 죽은 몸에 닿은 사람, 사람의 부정함에 닿은 사람, 함부로 맹세한 사람입니다. 이 사례들은 모두 죄의 책임을 가져오지만, 그 책임이 생기는 방식은 같지 않습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은 죄 — 1절
「『어떤 일을 보았거나 알고 있는 증인이, 증언을 요구하며 저주를 선언하는 말을 듣고도 그 일을 알리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이다. 그는 그 죄의 책임을 져야 한다.』」레위기 5:1 · 두루새김
이것은 저주를 함께 선언하며 증언을 요구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선언이 어떤 절차로 이루어졌는지, 누가 그 말을 했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오직 자기 눈으로 현장을 목격한 사람에게만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관련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도 말할 책임을 묻습니다. 이 장면은 잠언 29:24와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도 도둑과 한편이 된 사람이 저주를 함께 선언하는 말을 듣고도 알리지 않는 문제가 등장합니다.
진실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지식을 감추면서, 다른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사실을 확인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재산이나 책임을 둘러싼 다툼이라면 이러한 침묵은 정의로운 판단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책임을 가져옵니다.
모르고 닿았는데 왜 죄책을 지는가? — 2–3절
다음 두 사례는 성격이 다릅니다.
「『또 누가 부정한 것에 닿았다면,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더라도 그 사람은 부정하며 죄의 책임을 지게 된다. 부정한 들짐승이나 부정한 가축의 죽은 몸, 기어 다니는 부정한 생물의 죽은 몸에 닿은 경우가 여기에 들어간다.』」레위기 5:2 · 두루새김
이것을 이해하려면 레위기가 말하는 ‘부정함’과 도덕적인 악을 무조건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레위기 11:24–28에서는 특정한 동물의 죽은 몸에 닿거나 그것을 옮긴 사람이 부정해지고, 옷을 빨거나 저녁까지 기다려야 하는 규정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부정함은 단순히 악한 마음을 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몸과 생명, 죽음과 접촉, 예배에 나아가는 일에 관한 의식상의 상태입니다.
이 구절은 부정함과 관련된 어떤 책임이 생긴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다만 부정해진 뒤 어떤 행동을 했기 때문에 죄의 책임을 지는지, 부정함을 알지 못한 상태 자체가 정확히 어떻게 죄의 책임과 연결되는지는 모두 설명하지 않습니다.
3절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부정함을 다룹니다. 여기서는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알게 되는 상황이 분명히 나옵니다. 부정함의 원인도 동물의 죽은 몸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는 부정한 것입니다.
본문은 사람이 몰랐다는 이유만으로 죄의 책임을 자동으로 면제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알지 못한 잘못을 드러내어 처리할 길도 함께 마련합니다.
자기 입술이 한 말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 4절
「『또 누가 해를 끼치겠다거나 이롭게 하겠다는 등 무슨 일이든 함부로 맹세하고,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되면 이런 일 가운데 하나로 죄의 책임을 지게 된다.』」레위기 5:4 · 두루새김
좋은 일을 하겠다는 말이라도 함부로 맹세할 수 있습니다.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쉽게 약속해 놓고, 그 말에 담긴 책임을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맹세를 했는지, 그것을 잊어버린 것인지, 나중에 맹세의 잘못을 깨달은 것인지는 본문이 모두 밝혀 주지 않습니다.
1절에서는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았습니다. 4절에서는 신중해야 할 때 함부로 말했습니다.
사람의 말과 침묵은 모두 다른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네 사례 다음에 등장하는 하나의 명령 — 5절
그런데 5절에서 본문의 방향이 바뀝니다.
「『이런 일 가운데 하나로 죄의 책임을 지게 된 사람은 자기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고백해야 한다.』」레위기 5:5 · 두루새김
막연히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일어난 잘못을 고백해야 합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과, 그 잘못을 자신의 죄로 인정하여 고백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레위기 5장은 제물을 바치라는 명령에 앞서 이 고백을 놓습니다.
이 명령 뒤에 제물을 바치는 규정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제물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용서받을 길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열려 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제물로 암양이나 암염소를 여호와야훼께 가져와 정화 제물로 바쳐야 한다. 제사장은 그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해 속죄해야 한다.』」레위기 5:6 · 두루새김
그런데 7절에서 새로운 조건이 주어집니다.
「『양이나 염소 한 마리를 마련할 형편이 안 되면,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제물로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여호와야훼께 가져와야 한다. 한 마리는 정화 제물로, 다른 한 마리는 번제로 바쳐야 한다.』」레위기 5:7 · 두루새김
그런데 여기서도 두 마리의 새를 마련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11절은 그 경우까지 다룹니다.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마련할 형편도 안 되면,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고운 가루를 한 에파의 십분의 일만큼 가져와 정화 제물로 바쳐야 한다. 이것은 정화 제물이므로 기름을 붓거나 유향을 얹어서는 안 된다.』」레위기 5:11 · 두루새김
비둘기를 바치는 경우에는 「그러면 그 사람은 용서받을 것이다」라고 선언합니다(5:10). 고운 가루를 바치는 경우에도 똑같이 「그러면 그 사람은 용서받을 것이다」라고 선언합니다(5:13). 가루로 드리는 정화 제물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만 허용된 특별한 방식이지만, 그렇다고 용서의 효력이 낮은 제물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책임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지만, 가난을 용서받을 수 없는 이유로 삼지도 않으십니다.
왜 비둘기는 두 마리인가? — 7–10절
양이나 염소를 바칠 때에는 정화 제물 한 마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새를 바치는 경우에는 두 마리를 가져와야 합니다. 하나는 정화 제물로, 다른 하나는 번제로 바칩니다.
「『그 사람은 새들을 제사장에게 가져와야 한다. 제사장은 정화 제물로 바칠 새를 먼저 바쳐야 한다. 목덜미 쪽에서 그 머리를 꺾되, 완전히 떼어 내서는 안 된다.』」레위기 5:8 · 두루새김
왜 두 마리가 필요한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화 제물을 먼저 바치도록 순서를 지정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죄를 위한 정화 의식과 번제는 구별된 제사이며, 두 의식 가운데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새의 정화 제물에서 피를 다루는 방식도 특징적입니다. 제사장은 피를 제단 벽에 조금 뿌리고, 남은 피는 제단 밑부분으로 짜냅니다. 레위기 1장에서 새를 번제로 바칠 때에는 피를 제단 벽에 짜내는 방식이 설명되었습니다(1:15). 여기서는 정화 제물의 피를 뿌리고 나머지를 짜내는 동작을 구분합니다.
같은 새라도 번제로 드리는지 정화 제물로 드리는지에 따라 절차가 다릅니다.
피가 없는 정화 제물도 가능하다 — 11–13절
이 제사에는 동물이 없습니다. 따라서 피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정화 제물은 짐승을 잡고 피를 제단에 바르거나 뿌리는 방식으로 설명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 마리의 비둘기조차 마련할 수 없는 사람에게 고운 가루를 가져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피를 사용하는 정화 제물이 일반적인 규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특별한 경우에 피가 없는 정화 제물도 허용합니다. 따라서 레위기의 모든 속죄 의식에는 예외 없이 피가 반드시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마음대로 피를 대신할 수 있는 재료를 발견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가루를 정화 제물로 바치도록 허용하셨다는 점입니다. 이는 제사의 효력을 특정한 물질이 자동으로 일으키는 작용만으로 설명할 수 없게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제사와 그분이 약속하신 용서의 관계가 핵심입니다.
왜 가루에 기름과 유향을 넣지 못하게 할까?
레위기 2장에서 고운 가루로 곡식 제물을 바칠 때에는 기름을 붓고 유향을 놓았습니다. 기름과 유향을 빼는 이유를 단순히 가난한 사람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고만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이 제물이 정화 제물이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같은 고운 가루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목적과 제사의 종류에 따라 준비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제사장은 그 가루에서 한 움큼 가득 집어 기념 몫으로 삼아 제단에서 태웁니다. 남은 것은 곡식 제물처럼 제사장의 몫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제물은 레위기 2장의 곡식 제물과 절차상 닮은 점이 있지만, 같은 종류의 제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다음 단락에서는 이러한 선택지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6절의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제물」이라는 표현은 혼동하기 쉽습니다. 원문에서 이 표현에 사용된 히브리어 아샴(אָשָׁם)은 죄의 책임이나 그에 따른 배상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를 지은 죄에 대한 제물로 풀어 옮겼으며, 6절은 이 제물을 분명히 정화 제물이라고 부릅니다. 15절부터 등장하는 별도의 속건 제물과 같은 제사라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것에 손해를 끼쳤다면
「누가 여호와야훼께 속한 거룩한 것에 관한 일에서 실수로 죄를 지어 지켜야 할 도리를 저버렸다면, 흠 없는 숫양을 속건 제물로 여호와야훼께 가져와야 한다. 그 숫양은 네가 성소의 셰켈을 기준으로 은으로 매긴 값에 맞아야 한다.」레위기 5:15 · 두루새김
앞에서는 정화 제물을 다루었습니다. 이제는 속건 제물이 등장합니다. ‘거룩한 것’이 정확히 어디까지를 가리키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모두 확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예물이나 성소에 속한 몫과 관련된 잘못을 생각할 수 있지만, 본문은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숫양을 바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거룩한 것에 끼친 손해를 갚고, 그 값의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주어야 한다. 제사장은 속건 제물인 숫양으로 그 사람을 위해 속죄해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용서받을 것이다.」레위기 5:16 · 두루새김
원래 값의 120%를 돌려주는 셈입니다. 왜 오분의 일을 더해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잘못 사용한 부분의 값을 갚는 것에 더해, 그 침해에 대한 추가적인 책임을 지게 합니다.
잘못 사용한 하나님의 몫은 돌려주어야 합니다. 제물을 바치는 일이 그 책임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죄의 책임이 언제나 이처럼 분명한 손해액으로 계산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단락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충분히 알지 못하는 상황을 다룹니다.
알지 못한 죄책 앞에서
「누가 여호와야훼의 명령에서 하지 말라고 한 일 가운데 하나를 하여 죄를 지었다면, 그 사실을 몰랐더라도 죄의 책임이 있다. 그는 그 책임을 져야 한다.」레위기 5:17 · 두루새김
이 구절은 레위기 4장의 첫 문장과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화 제물이 아니라 속건 제물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15–16절에서는 거룩한 것에 관한 잘못과 갚아야 할 몫이 제시되었습니다. 반면 17–19절에는 어떤 거룩한 물건이나 재산을 손상시켰다는 설명이 없습니다.
한 가지 읽기는 실제로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어겼지만 본인은 그 잘못을 알지 못한 경우를 다룬다는 것입니다. 17절에서 하지 말라고 한 일을 하여 죄를 지었다고 분명히 말한다는 점이 근거입니다.
다른 읽기는 자신의 행동이 죄에 해당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는 상황도 포함한다고 봅니다. 앞 단락과 달리 무엇에 잘못을 저질렀는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으며, 18절에서 알지 못한 채 저지른 잘못을 강조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하나님은 속죄의 길을 마련하십니다.
「그 사람은 네가 매긴 값에 맞는 흠 없는 숫양을 속건 제물로 제사장에게 가져와야 한다. 제사장은 그 사람이 알지 못한 채 실수로 저지른 잘못에 대해 속죄해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용서받을 것이다.」레위기 5:18 · 두루새김
이 경우에는 16절과 달리 일정한 손해를 갚고 오분의 일을 더하라는 명령이 없습니다. 모든 속건 제물에 똑같은 배상 절차가 붙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속건 제물이다. 그 사람은 분명히 여호와야훼께 죄를 지어 책임을 지게 되었다.」레위기 5:19 · 두루새김
이는 용서의 선언을 취소하는 말이 아닙니다. 앞서 다룬 죄의 책임이 실제로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것이 속건 제물로 다루어야 할 일임을 마무리하는 표현입니다.
죄의 책임을 확실하게 인정하는 것과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것에 관한 잘못을 다루었습니다. 이번에는 이웃의 재산을 속인 사람에 관한 규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행위를 뜻밖의 이름으로 부르십니다.
이웃을 속인 것이 왜 여호와야훼를 배신한 일인가?
「누가 죄를 지어 여호와야훼께 지켜야 할 도리를 저버리고, 자기에게 맡겨진 물건이나 넘겨받은 물건이나 빼앗은 물건에 대해 이웃을 속이거나 이웃의 것을 부당하게 차지하거나,」레위기 5:21 · 두루새김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실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여호와야훼가 아니라 이웃입니다. 15절에서는 여호와야훼께 속한 거룩한 것에 관한 일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저버리는 행위를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21절에서는 이웃의 재산을 속이는 일을 같은 표현으로 부릅니다.
이웃의 신뢰를 저버리고 그에게 속한 것을 빼앗는 행위는, 그 이웃에게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 지켜야 할 도리를 저버린 행위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레위기의 거룩함이 성막이나 제단의 경계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한 예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규정하시는 분이며,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의 재산과 신뢰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맡긴 물건을 속이는 죄가 왜 중요한가?
자기 손에 들어온 물건이 반드시 자기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는 것은 그 사람을 신뢰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물건을 맡은 사람이 그것을 자기 것처럼 차지하거나 돌려주지 않으면서 거짓말한다면, 재산상의 손해뿐 아니라 신뢰의 관계도 무너집니다.
출애굽기 22:7–13에도 남에게 맡긴 돈이나 물건, 가축을 둘러싼 다툼을 다루는 규정이 등장합니다. 그곳에서도 물건을 맡은 사람의 책임과 맹세가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레위기 5장은 이러한 재산상의 다툼을 하나님께 드리는 속건 제물의 문제와 연결합니다.
그런데 22절에서는 잘못이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잃어버린 물건을 발견하고도 그것에 대해 속이며, 사람이 하면 죄가 되는 이런 일 가운데 어느 하나를 두고 거짓으로 맹세했다면,」레위기 5:22 · 두루새김
이것은 앞서 4절에서 다루었던 함부로 한 맹세와 구별됩니다. 4절에서는 사람이 신중하지 못하게 맹세하고 나중에 그 일에 관한 죄의 책임을 알게 되는 경우를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미 이웃의 재산을 속이는 행위에 관해 거짓으로 맹세합니다.
맹세가 진실을 밝히는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고, 오히려 거짓을 지키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입니다.
레위기 19:11–13에서는 도둑질과 속임, 거짓 맹세와 이웃의 것을 부당하게 차지하는 일을 금합니다. 특히 19:12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레위기 5장에서는 이러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의 책임과 배상을 다루고, 레위기 19장에서는 공동체가 평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령하는 것입니다.
속죄하기 전에 돌려주어야 할 것이 있다
「그렇게 죄를 지어 그 책임을 지게 된 사람은 빼앗은 것이나 부당하게 차지한 것, 자기에게 맡겨진 것이나 주운 것을 돌려주어야 한다.」 「거짓으로 맹세한 물건은 무엇이든 그 값을 모두 갚고, 그 값의 오분의 일을 더하여 원래 주인에게 주어야 한다. 속건 제물을 바치는 날 그렇게 해야 한다.」레위기 5:23–24 · 두루새김
하나님은 이 사람에게 속건 제물부터 가져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죄인은 자신의 잘못을 막연하게 처리할 수 없습니다. 그가 돌려주어야 할 것은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속한 물건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받는 사람이 다릅니다.
15–16절에서는 여호와야훼께 속한 거룩한 것에 관한 잘못이므로 제사장에게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 물건을 받아야 할 사람은 제사장이 아닙니다. 제물을 바치는 사람 자신도 아닙니다. 원래 그 물건이 속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속건 제물은 피해자가 받아야 할 것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으면 피해자의 손해는 사라지는가?
이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 숫양을 바치면서 자신이 잘못했다고 고백하더라도, 남의 물건을 계속 자기 손에 쥐고 있어도 좋다고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회복되어야 하는 것은 단지 죄인의 양심이 아닙니다. 실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의 몫도 회복되어야 합니다.
고백은 자신이 한 일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배상은 그 잘못으로 생긴 손해를 실제로 갚는 행위입니다.
고백만으로 피해자의 물건이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물건을 돌려주기만 하면 하나님 앞에서 죄의 문제가 자동으로 끝난다고 말씀하는 것도 아닙니다. 25절에는 별도로 속건 제물을 가져오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여호와야훼께 바칠 속건 제물로, 네가 매긴 값에 맞는 흠 없는 숫양을 제사장에게 가져와야 한다.」레위기 5:25 · 두루새김
5:7–13에서는 제물을 마련할 형편이 어려울 때 새나 고운 가루로 바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5:23–24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끼친 재산상의 손해를 형편에 따라 일부만 갚아도 좋다는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형편을 배려하시는 것과, 다른 사람이 입은 손해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마지막에도 용서가 선언된다
그런데 본문은 배상의 명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제사장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그 사람을 위해 속죄해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이런 일 가운데 무엇으로 죄의 책임을 지게 되었든 용서받을 것이다.」레위기 5:26 · 두루새김
하나님은 잘못을 실제로 바로잡을 것을 요구하시면서 용서를 약속하십니다.
그렇다고 배상으로 모든 결과가 완전히 회복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재산을 돌려받았다고 해서 무너진 신뢰까지 곧바로 회복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본문도 사람 사이의 신뢰와 감정이 이후에 어떻게 변화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고백과 배상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레위기 5장의 고백과 배상 규정은 민수기 5:5–8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그곳에서도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그 죄를 고백해야 하며, 잘못한 것을 모두 갚고 거기에 오분의 일을 더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특히 민수기 5:6은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잘못을 하나님께 지켜야 할 도리를 저버리는 행위와 연결합니다.
이사야 1:11–17은 많은 제물을 드리면서 악한 행동을 멈추지 않는 백성을 책망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악을 그치고 정의를 배우며 억압받는 사람을 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레위기의 제사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제사를 드리면서도 이웃에게 저지른 악을 외면하는 태도가 하나님의 뜻과 충돌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누가복음 19:8–10에서 삭개오는 자신이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말합니다. 그가 제시한 네 배라는 액수를 레위기 5장의 오분의 일 규정과 동일한 법률 적용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잘못 차지한 재산을 실제로 돌려주는 행위가 변화된 삶의 표현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는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레위기 5장의 본래 의미는 먼저 이스라엘의 속죄와 배상 규정 안에 있습니다. 그 위에서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고백과 용서, 이웃에 대한 책임이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24절에서 배상하는 날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표현은 죄의 책임이 생긴 날 또는 그 책임을 인정한 날이라는 뜻으로도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속건 제물을 바치는 날」로 옮겼습니다. 정확한 시간 관계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배상과 속건 제물이 함께 요구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용서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용서는 진실을 감추어 유지되는 평안이 아닙니다. 잘못이 드러나고, 죄가 고백되며, 돌려주어야 할 것이 돌아가는 과정을 통해 관계를 바로잡는 길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용서의 길을 마련하셨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지 않고 인정할 수 있으며, 그 길에는 마땅히 바로잡아야 할 것을 바로잡는 책임도 포함됩니다.
한 사람이 남의 물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숨겼고, 거짓으로 맹세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물건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거기에 오분의 일을 더합니다. 그것을 받아야 할 사람은 자기 재산을 빼앗겼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속건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나아갑니다. 제사장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그를 위해 속죄합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이런 일 가운데 무엇으로 죄의 책임을 지게 되었든 용서받을 것이다.」
그렇게 레위기 5장은 제단 앞에서만이 아니라, 빼앗겼던 물건이 제 주인의 손으로 돌아가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앞에 책임 있게 서야 함을 보여 주며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