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6장

이 장의 자리 · 1–7장 · 제사의 종류

꺼지지 않는 불과 제사장에게 맡겨진 거룩함

레위기 6장은 제물을 바치는 장면이 아니라, 제물을 태우고 남은 재를 치우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한밤중에도 제단에서는 불이 타고 있습니다. 번제물은 아침까지 불 위에 놓여 있습니다. 날이 밝으면 제사장은 아마포 옷을 입고 제단에 다가가 재를 걷어 냅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은 뒤 그 재를 진영 밖 정결한 곳으로 옮깁니다.

왜 하나님은 제사장이 재를 치우는 일까지 이렇게 자세히 명령하실까요?

제물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제물을 가져와 드리는 순간이 가장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그 사람이 돌아간 뒤에도 계속 성소를 돌보아야 합니다. 제물이 타고 남은 재를 처리하고, 불이 꺼지지 않게 하고, 제사에서 남은 거룩한 음식을 정해진 장소에서 먹어야 합니다.

앞선 장들에서는 주로 제물을 가져오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떤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 설명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말씀의 대상이 달라집니다. 이제 제사를 맡아 수행하는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가르침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맡은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합니까?

읽는 시간 16분소단락 86장 본문 읽기 →

밤새 타오르는 불과 아침에 걷어 내는 재

레위기 6:1–4 본문 →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여라. 『번제에 관한 규정은 이러하다. 번제로 바친 제물은 밤새 아침까지 제단 위에서 불이 타는 자리에 두어야 한다. 제단의 불은 계속 타고 있어야 한다.』」레위기 6:2 · 두루새김

번제에 관한 첫 명령은 제물을 가져오는 방법이 아닙니다.

제물이 밤새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정하는 말씀입니다. 번제는 짐승을 잡아 제단에 올리는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물은 밤새 불 위에 놓이고, 불에 의해 태워집니다.

사람이 제사를 바치는 순간과 제물이 제단에서 모두 타는 순간은 반드시 같지 않습니다.

레위기 6장은 그 사이에 놓인 시간을 보여 줍니다.

「『제사장은 아마포 옷을 입고, 맨몸에 아마포 속바지를 입어야 한다. 제단에서 번제물이 타고 남은 재를 걷어 제단 곁에 놓아야 한다.』」레위기 6:3 · 두루새김

제단의 불이 계속 타려면 이전에 태운 제물의 재를 처리해야 합니다. 제단을 유지하려면 장작만 더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제사장은 재를 걷어 낼 때도 정해진 옷을 입어야 합니다. 출애굽기 28:39–43에서도 제사장이 성소의 일을 할 때 입어야 하는 옷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를 걷는 일은 제사장의 직무에서 중요하지 않은 허드렛일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4절에서는 옷을 갈아입으라고 합니다.

「『그런 다음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뒤, 재를 진영 밖의 정결한 곳으로 가져가야 한다.』」레위기 6:4 · 두루새김

본문은 옷을 갈아입는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단 곁에서 재를 걷는 일과 진영 밖으로 재를 옮기는 일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재를 진영 밖으로 가져가지만, 아무 곳에나 버릴 수는 없습니다. 정결한 곳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재가 단순한 쓰레기로 취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제물이 불에 타고 남은 것이라고 해서, 그것을 다루는 일이 거룩한 제사의 질서 밖으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재를 치웠다고 일을 마칠 수 없습니다.

재를 치운 다음에는 다시 불을 돌보아야 합니다.

꺼지지 않는 불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레위기 6:5–6 본문 →

「『제단의 불은 계속 타고 있어야 하며, 꺼져서는 안 된다. 제사장은 아침마다 장작을 더 넣어 불을 지피고, 그 위에 번제물을 가지런히 놓아야 한다. 또 그 위에서 친교 제물의 지방을 태워 연기로 올려야 한다.』」레위기 6:5 · 두루새김

하나님은 불이 계속 타고 있어야 한다고 명령하시지만, 그 불을 유지하는 일은 제사장에게 맡기십니다.

본문은 불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는 결과만 명령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위해 제사장이 매일 반복해야 할 행동도 분명히 밝힙니다.

「『제단의 불은 늘 타고 있어야 하며, 꺼져서는 안 된다.』」레위기 6:6 · 두루새김

「늘」(⁨תָּמִיד⁩)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미드는 계속됨이나 규칙적인 지속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 문맥에서는 제단의 불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는 요구를 강조합니다.

제단의 불은 특정한 제물을 바치고 있는 사람 한 명에게만 속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사가 이어지도록 제사장들이 계속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과 제사장의 장작

레위기 9:24에서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불이 나와 제단 위의 제물을 태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곳에서는 불이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과 제사가 받아들여졌음을 드러내는 특별한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레위기 6장은 그와 다른 측면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는 제사장이 매일 아침 장작을 지핍니다. 제단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장소이지만, 그 제단을 관리하는 일은 사람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사를 정하셨다는 사실이 제사장의 책임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곧바로 개인의 열정이나 신앙적 감정이 항상 뜨거워야 한다는 상징으로 바꾸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꺼져서는 안 되는 것은 실제 제단의 불입니다. 그 불을 관리하는 사람도 이스라엘의 제사장입니다.

그 본래 의미를 지킨다면, 여기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직무가 한 번의 열심이 아니라 계속되는 책임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 위에는 번제뿐 아니라 친교 제물의 지방도 올라갑니다. 하나의 제단에서 여러 제사가 서로 연결되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은 제단의 불에서 제사장의 식사로 이동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에서 이러한 제사의 질서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과 연결되어 새롭게 해석됩니다. 히브리서 7:23–28과 10:11–14는 반복해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의 직무와 그리스도의 단번에 드린 희생을 대조합니다. 이것은 레위기 6장을 직접 설명하는 본래의 문맥과는 구별되는, 후대에 성경 전체의 흐름에서 읽는 해석입니다. 레위기 6장의 첫 독자에게 주어진 말씀은 먼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실제로 성소에서 어떻게 제사의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몫에서 제사장의 식탁으로

레위기 6:7–11 본문 →

곡식 제물의 경우 제사장은 고운 가루와 기름을 한 움큼 가득 덜어 내고 유향 전부와 함께 기념 몫을 제단에서 태웁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 새로운 관심이 등장합니다.

「『곡식 제물에서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먹어야 한다. 누룩 없는 빵으로 만들어 거룩한 곳, 곧 만남의 천막 뜰에서 먹어야 한다.』」레위기 6:9 · 두루새김

제사장들은 남은 곡식 제물을 자유롭게 가져가서 자신의 집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먹는 장소도 거룩한 공간으로 제한됩니다.

「『누룩을 넣어 부풀려 구워서는 안 된다. 나는 내게 불에 태워 바치는 제물 가운데 남은 곡식 제물을 그들의 몫으로 주었다. 이것은 정화 제물과 속건 제물처럼 지극히 거룩한 몫이다.』」레위기 6:10 · 두루새김

제사장의 몫을 정하신 분은 여호와야훼이십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이 제물을 드리는 사람에게서 마음대로 음식을 받아 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합니다. 제사장들의 식사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몫에 근거합니다.

여기서는 곡식 제물의 남은 부분이 정화 제물과 속건 제물처럼 거룩한 지위를 지닌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그 음식을 먹는 행동은 단순한 개인의 식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 가운데 그들에게 허락된 몫을,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방식으로 먹는 일입니다.

거룩한 음식은 누구나 먹을 수 있는가?

「『아론의 자손 가운데 남자는 누구나 그것을 먹을 수 있다. 이것은 여호와야훼께 불에 태워 바치는 제물 가운데 너희가 대대로 영원히 받을 몫이다. 이 제물들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거룩해진다.』」레위기 6:11 · 두루새김

레위기에는 제물과 거룩한 몫의 종류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사람과 장소에 관한 서로 다른 규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레위기 22:10–13에서는 제사장의 가족과 관련된 거룩한 음식을 먹을 자격을 별도로 다룹니다. 따라서 레위기 6:11은 특별히 지극히 거룩한 곡식 제물의 남은 몫에 관한 규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 제물들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거룩해진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히브리어는 닿는 것과 거룩해짐을 연결합니다. 그래서 거룩한 제물에 직접 닿은 것이 거룩한 지위를 갖게 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읽기도 가능합니다. ‘그것들에 닿는 것은 거룩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해하여, 이미 거룩하게 구별된 대상만 닿을 수 있다는 뜻으로 보는 것입니다.

문법과 제사의 문맥에서 두 읽기를 검토할 수 있으며, 이 구절만으로 모든 세부 사항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거룩한 제물에 닿는 일은 평범한 접촉처럼 취급되지 않습니다.

거룩함은 단순히 음식의 좋은 품질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구별되어 드려진 것이기에 그 음식에 닿는 행동까지 특별한 질서 아래 놓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바쳐진 곡식의 남은 몫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사장 자신이 하나님께 드리는 곡식 제물도 자신에게 일부 남길 수 있을까요?

다음 단락은 정반대의 대답을 제시합니다.

제사장 자신의 곡식 제물은 먹을 수 없다

레위기 6:12–16 본문 →

「아론이 기름 부음을 받는 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여호와야훼께 바칠 제물은 이러하다. 고운 가루 한 에파의 십분의 일을 늘 바치는 곡식 제물로 삼아, 절반은 아침에 바치고 절반은 저녁에 바쳐야 한다.」레위기 6:13 · 두루새김

이번에는 곡식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달라집니다.

앞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져온 곡식 제물을 제사장이 받아 일부를 태우고 나머지를 먹었습니다. 이제는 제사장 자신이 곡식 제물을 바칩니다. 고운 가루를 기름으로 굽는 판에서 만들고, 구운 것을 조각내어 여호와야훼께 드립니다.

그런데 이 단락의 중심은 시간보다 제물을 처리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제사장이 바치는 곡식 제물은 모두 남김없이 태워야 하며, 먹어서는 안 된다.」레위기 6:16 · 두루새김

제사장이 하나님께 바쳐진 예물의 일부를 먹을 수 있는 것은 그가 제사장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자기 몫으로 취할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그것을 제사장의 몫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다른 방식으로 정하신 경우에는 먹을 수 없습니다.

제사장이라는 지위가 모든 제물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과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맡은 사람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져온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을 맡습니다. 또한 그 직무에 따라 일정한 몫을 받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자신도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제사의 직무를 수행하지만, 그 직무를 수행한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드리는 의무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드리는 제물에는 더 엄격한 구별이 적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거룩한 것을 다루는 사람이지, 거룩한 것의 최종 소유자가 아닙니다.

이 사실은 사무엘상 2:12–17의 엘리의 아들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들은 제물을 다루는 권한을 이용해 정해진 몫을 넘어 고기를 요구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지방이 태워지기도 전에 자신들이 원하는 고기를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잘못은 단순한 탐욕을 넘어, 제사장에게 허락된 권한과 하나님의 몫을 혼동한 데 있었습니다.

레위기 6장은 반대의 질서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주신 몫은 먹습니다.

하나님이 전부 태우라고 하신 제물은 전부 태웁니다.

제사장은 자신의 지위나 필요에 따라 그 경계를 바꿀 수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13절은 아론이 기름 부음을 받는 날을 말하면서 동시에 「늘 바치는 곡식 제물」이라고 합니다. 15절에서는 기름 부음을 받아 아론의 뒤를 잇는 제사장도 이 제물을 만들도록 합니다. 이 때문에 이 제사를 기름 부음을 받는 날에 드리는 취임 제물로 강조할 것인지, 그날부터 계속되는 정기적인 곡식 제물로 이해할 것인지, 또는 두 측면이 결합되어 있다고 볼 것인지에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날」이라는 표현과 「늘」이라는 표현을 어느 하나 지워 버려서는 안 됩니다.

정화 제물은 왜 제사장이 먹어야 하는가?

레위기 6:17–19 본문 →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정화 제물에 관한 규정은 이러하다. 정화 제물로 바칠 짐승은 여호와야훼 앞, 번제로 바칠 짐승을 잡는 곳에서 잡아야 한다. 이것은 지극히 거룩한 제물이다.』」레위기 6:18 · 두루새김

죄를 다루는 제물이 왜 지극히 거룩합니까?

정화 제물은 죄와 부정함을 다룹니다. 정화가 필요한 사람이 하나님께 가져오며, 제사장은 그 제물을 통해 속죄를 행합니다. 죄를 다루는 목적을 지녔다는 사실이 곧 그 제물 자체가 부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리도록 구별된 정화 제물은 특별한 거룩함을 지닙니다.

「『그 제물을 정화 제물로 바치는 제사장이 그 고기를 먹어야 한다. 거룩한 곳, 곧 만남의 천막 뜰에서 먹어야 한다.』」레위기 6:19 · 두루새김

레위기 6장 자체는 이 명령의 목적을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레위기 10:16–20에는 이 규정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건이 나옵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정화 제물인 염소가 먹히지 않고 태워진 것을 발견하고 아론의 아들들에게 이유를 묻습니다.

특히 레위기 10:17에서는 하나님이 정화 제물을 제사장들에게 주신 것이 공동체의 죄책을 짊어지고 여호와야훼 앞에서 그들을 위해 속죄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제사장이 정화 제물을 먹는 일은 단순히 제사장의 식량을 마련하기 위한 행동만은 아닙니다. 공동체의 죄책을 다루는 제사장의 직무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10:17은 죄책을 짊어지는 일과 속죄의 직무를 연결하지만, 그 구체적인 작용 방식을 모두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먹는 행동이 속죄를 위한 제사의 직무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되, 죄가 물질처럼 고기에 담겨 제사장에게 옮겨 간다는 설명을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음식의 거룩함은 먹는 사람과 장소에만 관계되지 않습니다.

고기가 닿는 것, 피가 튄 옷, 고기를 삶은 그릇까지 규정이 주어집니다.

거룩함은 제사장의 손에서 멈추지 않는다

레위기 6:20–22 본문 →

「『그 고기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거룩해진다. 제물의 피가 옷에 튀면, 그 옷을 거룩한 곳에서 빨아야 한다.』」레위기 6:20 · 두루새김

피가 튀었다면 일반적으로는 더러워졌으니 세탁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위생적으로 씻는 일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제사의 구별이 있습니다. 정화 제물의 피는 속죄의 의식과 관련되어 사용됩니다. 따라서 옷에 튄 피를 어디에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도 거룩한 공간의 질서 안에서 다루어집니다.

닿으면 거룩해진다는 말의 의미

「그 고기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거룩해진다」는 표현은 앞의 곡식 제물 규정과 닮아 있습니다. 거룩한 제물에 직접 닿는 대상이 거룩한 지위를 갖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는 거룩하게 구별된 대상만 그 고기에 닿아야 한다는 요구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어 이크다시(⁨קָדַשׁ⁩)는 ‘거룩해질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읽을 수 있지만, 이 문맥이 규정을 말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거룩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갈림을 본문만으로 완전히 풀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두 읽기 모두 거룩한 제물에 닿는 일이 일반적인 접촉과 다르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학개 2:12에서도 거룩한 고기를 옷자락에 싸서 가지고 있을 때 그 옷자락이 다른 음식에 닿으면 그 음식도 거룩해지는지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사장들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그 질문은 거룩한 고기와 직접 닿는 경우가 아니라, 그것을 감싼 옷을 통해 다른 음식에 간접적으로 닿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학개의 대답을 근거로 레위기 6장의 직접 접촉 규정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거룩함에 관한 접촉의 질서가 아무런 구별 없이 끝없이 퍼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토기는 깨뜨리고 구리 그릇은 씻는다

「『고기를 흙으로 빚어 구운 그릇에 삶았다면 그 그릇을 깨뜨려야 한다. 구리 그릇에 삶았다면 그 그릇을 문질러 닦고 물로 헹구어야 한다.』」레위기 6:21 · 두루새김

흙으로 빚어 구운 그릇은 표면에 액체가 스며들 수 있고, 금속 그릇은 상대적으로 씻어 내기 쉽다는 점에서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자체는 재료의 성질이 이러한 차이를 낳는 이유라고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유일한 설명으로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두 경우 모두 아무런 처리 없이 다시 사용하도록 허용하지 않습니다. 제사장의 손이 닿는 그릇까지 하나님의 명령 아래 놓입니다.

거룩함은 실제 공간과 물건, 행동을 구별하는 질서로 나타납니다.

먹어야 하는 정화 제물과 먹어서는 안 되는 정화 제물

레위기 6:23 본문 →

레위기 6장의 마지막 절은 앞의 규정을 제한합니다.

「『그러나 정화 제물 가운데 성소에서 속죄하려고 그 피의 일부를 만남의 천막 안으로 가져간 것은 어떤 것이든 먹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제물은 불에 태워야 한다.』」레위기 6:23 · 두루새김

기준이 되는 것은 피가 어디로 들어갔는가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때에는 정화 제물의 피 일부를 만남의 천막 안으로 가져갔습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죄를 지었을 때에도 같은 방식으로 피를 다루었습니다. 그 경우에는 수소의 남은 몸을 진영 밖으로 가져가 불에 태워야 했습니다(레위기 4:11–12, 21).

그러나 지도자나 일반 백성이 죄를 지었을 때에는 피를 바깥 번제단의 뿔들에 발랐습니다(레위기 4:25, 30, 34). 그 경우에는 남은 고기를 진영 밖에서 태우라는 명령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같은 정화 제물이라도 피를 처리하는 장소에 따라 남은 제물의 사용 방법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왜 피를 안으로 가져간 제물은 먹을 수 없습니까?

본문은 그 이유를 완전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성소 안에서 속죄를 위해 피가 사용된 제물은 특별히 다른 방식으로 처리되어야 한다는 사실만 분명히 밝힙니다.

또한 제물을 먹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죄의 크기로만 단순화할 수도 없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과 온 회중의 경우에는 성소 안에서 피를 다루는 의식이 필요하며, 그에 따라 제물을 처리하는 규정도 달라집니다.

피를 어디에 바르는가, 남은 몸을 어디로 가져가는가, 제사장이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서로 관계없는 세부 규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의 제사 질서 안에서 연결됩니다.

꺼지지 않는 불 곁에서

레위기 6:1–23 본문 →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함은 제사장이 소유하는 권한이 아니라, 매일 지켜야 하는 책임입니다. 레위기 6장의 중심은 개인의 부지런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을 올바르게 다루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레위기 6장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제단의 아침으로 돌려 봅시다.

밤새 불이 타올랐습니다. 제단 위에는 재가 남아 있습니다. 제사장은 아마포 옷을 입고 그 재를 걷어 제단 곁에 놓습니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정결한 곳에 재를 가져갑니다.

그리고 다시 제단으로 돌아와 장작을 지핍니다.

그는 어제 타오른 불을 보며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불을 돌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제물을 올리는 순간에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제물이 타고 난 뒤에도, 재를 치우고 다시 장작을 놓는 손길 속에서 계속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