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31장
이 장의 자리 · 26–36장 · 새 세대와 땅 준비
전쟁이 끝난 뒤에도 남은 것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진영으로 돌아왔습니다. 적의 왕들을 죽이고 성읍들을 불태웠으며, 수많은 가축과 재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승리한 군인들은 곧바로 자기들의 진영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일곱 날 동안 진영 밖에 머물며 부정함을 씻어야 했습니다.
전쟁은 여호와야훼의 명령으로 시작되었지만, 전쟁을 마친 사람들은 죽음으로 인한 부정함을 지닌 채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장에는 훨씬 더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미디안의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들과 아이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여자들을 살려 온 지휘관들에게 화를 내며, 남자아이들과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한 여자들까지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남겨진 여자아이들은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얻은 몫으로 나뉩니다.
우리는 두 문제를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본문은 왜 이 전쟁을 여호와야훼를 위한 복수라고 부릅니까? 그리고 그 복수라는 명칭이 전쟁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어떻게 이해하게 합니까?
전쟁 자체보다 전쟁이 끝난 뒤의 처리가 훨씬 깁니다. 이 사실은 이 장의 관심이 적을 물리친 승리의 순간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본문은 전쟁이 공동체에 남긴 사람들, 물건들, 종교적 의무와 책임까지 끝까지 따라갑니다.
모세에게 주어진 마지막 전쟁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미디안 사람들에게 복수하여라. 그 뒤에 너는 죽어 네 겨레에게로 모일 것이다.」민수기 31:2 · 두루새김
이 전쟁의 명령은 모세 자신의 죽음과 함께 주어집니다.
앞서 민수기 27:12~14에서 여호와야훼는 모세가 약속의 땅을 바라보게 되겠지만 그 땅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조상들에게로 거두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는 일이 이루어졌습니다(27:18~23).
왜 하필 미디안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민수기 25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모압 평원에 머물 때, 백성은 모압 여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신들을 위한 제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들은 브올의 바알에게 결합했고, 이 일로 여호와야훼의 진노가 일어났습니다(민수기 25:1~3).
그런데 이 사건에는 미디안 사람들도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지도자가 미디안 여자 고스비를 데려왔고, 제사장 가문의 핀하스가 두 사람을 죽였습니다. 고스비는 미디안 지도자의 딸이었습니다(25:6~15). 그 뒤 여호와야훼는 미디안 사람들이 브올의 일에서 이스라엘을 속이고 적대적으로 행동했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25:16~18).
따라서 31장의 전쟁은 이스라엘이 새로운 영토를 얻기 위해 시작한 정복 전쟁으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이미 발생한 브올 사건에 대한 대응입니다.
이 사건에서 이스라엘이 입은 가장 큰 피해는 단순한 군사적 손실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자신이 여호와야훼를 배신했고, 그 결과 공동체에 전염병이 일어났습니다. 민수기 25:9에 따르면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은 24,0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백성에게 명령을 전달할 때에는 표현이 바뀝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전쟁에 나갈 남자들이 무기를 갖추게 하여라. 그들이 미디안을 공격하여 여호와야훼를 위해 미디안에게 복수하게 하여라.」민수기 31:3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복수하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여호와야훼를 위해」 복수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본문의 맥락에서 이스라엘이 입은 손상과 여호와야훼를 향한 배신은 서로 떨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브올에서 이스라엘은 자신의 하나님을 배신했고, 그로 인해 공동체가 심판을 경험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닥친 일은 동시에 여호와야훼와 맺은 언약의 문제였습니다.
모세는 이 전쟁을 백성의 사적인 분노를 풀어 주는 행위가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일로 제시합니다.
모세는 각 지파에서 천 명씩 뽑습니다. 열두 지파에서 모두 12,000명이 나섭니다. 브올 사건이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문제였던 것처럼, 그 사건에 대한 대응에도 이스라엘 전체가 참여합니다.
그런데 군대와 함께 나가는 인물은 여호수아가 아니라 핀하스입니다.
모세는 지파마다 천 명씩 그들을 전쟁에 보냈습니다. 제사장 엘아자르의 아들 핀하스도 함께 보냈습니다. 핀하스는 거룩한 물건들과 경보를 울릴 나팔들을 가지고 갔습니다.민수기 31:6 · 두루새김
핀하스는 민수기 25장에서 이스라엘의 배신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행동했던 인물입니다. 이제 같은 사건의 뒤처리로 이루어지는 전쟁에 다시 등장합니다.
민수기 10:9는 이스라엘이 자기 땅에서 적과 전쟁을 벌일 때 나팔로 경보를 울리면 여호와야훼 앞에서 기억되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31장의 나팔은 이러한 군사적·종교적 기능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31:6은 「거룩한 물건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마태복음 5:43~48). 이것은 민수기 31장의 전쟁을 직접 인용하거나 그 사건의 모든 역사적 문제를 해설한 말씀이 아닙니다. 다만 성경 전체를 읽는 그리스도인에게 원수와 폭력을 대하는 태도를 새롭게 규정하는 가르침입니다.
짧게 기록된 승리, 길게 남겨진 결과
그들은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미디안과 싸워 남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민수기 31:7 · 두루새김
전쟁의 경과는 거의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대형으로 진격했는지, 미디안이 어떻게 저항했는지, 전투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본문은 곧바로 남자들이 죽임당했다는 결과를 기록합니다.
죽임을 당한 사람들 가운데는 미디안의 다섯 왕인 에위, 레켐, 추르, 훌, 레바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브오르의 아들 발람도 칼로 죽였습니다.민수기 31:8 · 두루새김
민수기 25:15에서 이스라엘 사람 시므리와 함께 죽임당한 미디안 여자 고스비의 아버지가 추르였습니다. 그는 미디안의 지도자였습니다. 따라서 31장에서 추르가 죽임당했다는 기록은 브올 사건과 이 전쟁의 관계를 인물의 이름으로도 연결합니다.
발람은 민수기 22~24장에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모압 왕 발락의 요청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반복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여호와야훼께서 주신 말씀을 거슬러 저주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민수기 24:25에서는 발람이 일어나 자기 길로 돌아갔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가 미디안 사람들과 함께 죽임당합니다.
왜 발람이 미디안 사람들 가운데 있었는지, 그곳에 언제 다시 갔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31:16에서 모세는 브올 사건에 발람의 말이 관련되어 있었다고 밝힙니다. 이것은 앞선 발람 이야기에서 직접 서술되지 않았던 정보를 제공합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말에는 실패했지만, 그의 이름은 결국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를 배신한 사건과 함께 기억됩니다.
이후의 기록은 전쟁에서 얻은 사람과 물건으로 옮겨 갑니다.
성읍과 천막을 치고 살던 곳은 불태워졌고, 여자와 아이들은 포로가 되었습니다. 가축과 재물은 이스라엘의 소유로 넘어갔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자신의 집과 생활 터전을 잃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본문은 이들을 「사로잡은 사람」으로 기록하고, 전쟁에서 빼앗은 물건과 함께 데려왔다고 말합니다. 특히 11절은 「사로잡은 사람과 짐승」을 함께 묶어 기록합니다. 이는 고대 전쟁에서 사람까지 전쟁에서 얻은 몫으로 취급되던 현실을 보여 줍니다.
전쟁을 마친 군대는 포로와 가축과 재물을 가지고 모압 평원으로 돌아옵니다. 그곳에는 모세와 제사장 엘아자르, 이스라엘 공동체가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7절의 「남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라는 표현을 미디안 민족 전체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전쟁의 공격 대상이 된 미디안 집단의 남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읽어야 합니다. 뒤의 사사기 6~8장에도 미디안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7절에서 남자들을 죽였다는 보고와 17절에서 남자아이들을 죽이라는 추가 명령을 구별해야 합니다. 7절의 전투 보고는 뒤에 별도로 언급되는 남자아이들까지 이미 모두 죽였다는 뜻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모세의 분노와 가장 어려운 명령
모세와 엘아자르,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진영 밖으로 나가 돌아온 군대를 맞이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지휘관들에게 화를 냅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여자들을 모두 살려 두었느냐?」민수기 31:15 · 두루새김
「바로 이 여자들이 발람의 말을 따라, 브올 사건 때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야훼를 배신하게 했다. 그래서 여호와야훼의 공동체에 재앙이 닥쳤다.」민수기 31:16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문제는 단순히 다른 민족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야훼와 맺은 관계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에 참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다음 명령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그러니 이제 아이들 가운데 남자아이는 모두 죽여라.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한 적이 있는 여자도 모두 죽여라.」민수기 31:17 · 두루새김
「그러나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한 적이 없는 여자아이들은 모두 너희를 위해 살려 두어라.」민수기 31:18 · 두루새김
남자아이들은 브올 사건에 직접 가담했는지와 무관하게 죽임의 대상으로 지정됩니다. 여자들에 대해서도 성적 경험을 기준으로 생사를 구분하지만, 그 기준 자체가 브올 사건에 실제로 가담했는지를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모세가 앞에서 브올 사건을 이유로 제시했다고 해도, 그 설명만으로 모든 남자아이와 해당 여자들의 죽음을 개인별 책임에 따른 처벌이라고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은 자유를 보장받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가족과 생활 터전을 잃은 상태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데리고 가는 포로들입니다. 뒤에서 실제로 사람들도 전쟁에서 얻은 몫으로 계산되고 나뉩니다.
본문은 그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과 이스라엘 측에 나뉘어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생활을 했는지, 누구에게 맡겨졌는지, 혼인이나 강제로 일하는 것 등 어떤 관계에 놓였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고대 전쟁 포로라는 지위 자체가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본문이 기록하지 않은 구체적인 학대나 뒤이은 행위를 사실처럼 덧붙여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이들을 살려 둔 일이 곧 자비로운 보호를 의미했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본문은 모세의 명령을 브올 사건에 대한 복수의 맥락 안에서 기록하지만, 민간인과 아이들에 대한 집단적 살해가 낳는 윤리적 문제를 별도로 해명하지 않습니다.
브올 사건의 배신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이해하는 일과, 이 전쟁에서 죽임당한 모든 사람의 죽음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가는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조금 더 깊이
2절에서 여호와야훼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복수하라는 명령입니다. 7절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의 명령대로 전쟁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남자아이들과 여자들을 구체적으로 죽이라고 명령하는 17~18절은 모세의 입에서 나옵니다. 본문은 이 명령을 별도로 여호와야훼께서 직접 하신 말씀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서술자가 여기서 모세의 명령을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두 극단을 피해야 합니다. 하나는 이 구절을 하나님께서 모든 시대에 적용하도록 직접 주신 전쟁 윤리인 것처럼 일반화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본문이 말하지 않았는데도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어겼다고 확정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24:16은 자녀를 부모의 죄 때문에 죽여서는 안 되며 각 사람이 자신의 죄로 죽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그 말씀은 인간의 재판에서 적용되는 개인 책임의 원칙을 보여 줍니다. 민수기 31장은 특정한 전쟁의 집단적 심판을 서술합니다. 두 본문은 법적 상황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어린아이들의 죽음에 관한 어려움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18:25에서 아브라함은 소돔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께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시는 것이 옳은지 묻습니다. 그의 질문은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 공의를 행하셔야 한다는 확신에서 나옵니다. 에스겔 18장도 아버지와 아들의 죄책이 무조건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이 말씀들이 민수기 31장의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각각의 맥락과 법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야훼의 전쟁을 치렀지만 진영에 들어갈 수 없다
모세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너희는 일곱 날 동안 진영 밖에 머물러라. 너희든 너희가 사로잡은 사람들이든, 사람을 죽였거나 죽임을 당한 사람의 몸에 닿았다면 모두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부정함을 씻어라.」민수기 31:19 · 두루새김
민수기 19:11~13은 사람의 시체에 닿은 사람이 일곱 날 동안 부정하게 되며,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부정함을 씻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부정함을 씻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면 여호와야훼의 성막을 더럽히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미 이스라엘에 주어졌던 죽음과 정결에 관한 규정이 전쟁 상황에 적용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정결 규정에서 시체로 인한 부정함은 사람의 도덕적 죄책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가족의 시체에 닿은 사람도 부정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시체와 접촉했다는 사실 때문에 의례에 따라 부정함을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자신들이 여호와야훼를 위해 복수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근거로 정결 규정에서 면제받을 수 없습니다.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도 죽음의 현실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부정함을 씻으라는 명령의 대상은 이스라엘 군인들만이 아닙니다.
19절은 「너희든 너희가 사로잡은 사람들이든」이라고 말합니다. 그들도 죽음과 접촉한 상황에 있었고, 이스라엘의 진영으로 들어오려면 정결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군인과 미디안 포로는 같은 절차로 부정함을 씻어야 하지만, 그들의 지위는 같지 않습니다. 한쪽은 승리한 군대이고 다른 한쪽은 자유를 잃은 포로입니다. 정결 규정이 적용된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의 사회적 처지가 동등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20절부터는 부정함을 씻어야 할 대상이 물건으로 확대됩니다. 옷과 가죽 물품, 염소 털로 만든 물건과 나무로 만든 물건도 부정함을 씻어야 합니다. 이어서 제사장 엘아자르가 금속 물품에 관한 세부 규정을 설명합니다.
「불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모두 불을 거치게 하고, 부정함을 씻는 물로도 깨끗하게 하여라. 그러면 깨끗해질 것이다. 불을 견딜 수 없는 것은 모두 물로 씻어라.」민수기 31:23 · 두루새김
이 물은 민수기 19장에서 규정된 정화용 물과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불을 거치게 하는 일을 현대적인 위생이나 소독의 개념으로만 설명하면 본문의 의미를 놓칩니다. 이것은 여호와야훼의 성막을 중심으로 한 정결의 질서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부정함을 씻는 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례에 따라 깨끗해지는 일은 포로들의 자유가 회복되었다는 뜻이 아니며, 죽임당한 사람들의 생명이 돌아왔다는 뜻도 아닙니다.
일곱째 날이 되면 군인들은 옷을 빨고 깨끗하게 된 뒤 진영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전쟁은 이미 끝났지만,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공동체 안으로 돌아오는 일에는 별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노획물을 세는 사람들
부정함을 씻는 규정이 끝나자 여호와야훼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제사장 엘아자르와 공동체의 아버지 집안 우두머리들과 함께 사로잡은 사람과 짐승의 수를 세어라.」민수기 31:26 · 두루새김
민수기 1장에서는 광야 여정을 시작할 이스라엘의 군사 인원을 조사했고, 26장에서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새로운 세대의 수를 조사했습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전쟁에서 사로잡은 사람들과 짐승의 수를 셉니다.
더욱이 사람과 짐승을 같은 방식으로 나눕니다.
절반은 전쟁에 직접 참여한 군인들에게, 나머지 절반은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돌아갑니다. 이렇게 하면 전쟁을 통해 얻은 재물이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의 사적인 소유로만 남지 않습니다. 동시에 실제 전쟁에 나선 사람들과 공동체의 몫을 구별합니다.
이와 비슷한 분배 방식은 뒤에 사무엘상 30:24~25에서도 나타납니다. 다윗은 전쟁에 나가 싸운 사람과 물품 곁에 머물렀던 사람이 동일하게 몫을 나누도록 규정합니다.
그러나 민수기 31장의 분배 규정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군인들과 공동체가 받은 몫에서 각각 여호와야훼께 바칠 몫을 떼어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군인들은 자기 몫에서 오백 가운데 하나를 바칩니다. 이것은 제사장 엘아자르에게 주어집니다.
공동체는 자기 몫에서 오십 가운데 하나를 바칩니다. 이것은 성막을 맡아 지키는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공동체에게 적용되는 비율이 군인들에게 적용되는 비율보다 열 배 높습니다. 왜 이러한 차이가 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숫자 속에 포함된 사람들
32~35절은 나눌 대상이 된 사람과 짐승의 수를 기록합니다. 양과 염소는 675,000마리, 소는 72,000마리, 나귀는 61,000마리입니다. 그리고 사람도 32,000명이라고 기록합니다.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한 적이 없는 여자들이었습니다.
이 여자들은 이름도, 출신 가정도, 개인적인 사연도 없이 수로 기록됩니다. 그들이 원래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전쟁 이후 어떻게 살게 되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분배의 계산은 정확합니다.
민수기 31장의 노획물 분배
| 대상 | 군인의 절반에서 1/500 | 공동체의 절반에서 1/50 | | --- | --- | --- | | 양과 염소 | 675마리 | 6,750마리 | | 소 | 72마리 | 720마리 | | 나귀 | 61마리 | 610마리 | | 사람 | 32명 | 320명 |
군인이 바치는 몫은 제사장 엘아자르에게, 공동체가 내놓는 몫은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오른쪽 수치는 본문이 명시한 1/50 규정을 적용한 계산입니다.
이 여자들은 단지 수학적 비율을 적용할 수 있는 수량이 아니었습니다. 전쟁 이전에는 각자의 가정과 관계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가축과 함께 목록에 올라갑니다.
제사장에게 전달된 32명을 「여호와야훼께 바칠 몫」이라고 기록하기 때문에 이들이 제단에서 죽임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을 사람을 바치는 제사로 죽이라는 절차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에게 넘기는 행위와 제단에서 희생 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구별해야 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전쟁에서 얻은 것을 질서 있게 나누었다는 사실을 자세히 기록하지만, 포로가 된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합니다. 숫자가 정확하다고 해서 그 숫자에 포함된 사람들의 처지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민수기 31장은 특정한 고대 전쟁의 사건을 기록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사람을 약탈하거나 포로로 삼아 소유물처럼 나누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도 잃지 않았다는 보고
길고 자세한 분배가 끝나자 지휘관들이 모세에게 다가옵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종인 저희가 맡은 군인들의 수를 세어 보니, 한 사람도 빠지지 않았습니다.」민수기 31:49 · 두루새김
이스라엘 군인들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수많은 미디안 사람들이 죽임당하고 여자아이들이 포로로 나뉘었다는 기록 바로 뒤에 나옵니다. 한쪽에는 아무도 잃지 않았다는 보고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죽임당한 사람들과 자유를 잃은 포로들이 있습니다.
「저희가 각자 얻은 금붙이, 곧 발목 고리와 팔찌와 반지와 귀고리와 금장식을 여호와야훼께 예물로 가져왔습니다. 여호와야훼 앞에서 저희 생명을 위해 속죄하려는 것입니다.」민수기 31:50 · 두루새김
여기서 확실한 것은 지휘관들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생명을 자신들의 군사적 능력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여호와야훼 앞에 예물을 가져왔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속죄」라는 표현을 반드시 전쟁 중에 특정한 죄를 지었다는 고백으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출애굽기 30:12~16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수를 조사할 때 각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위한 속전을 여호와야훼께 바치도록 명령합니다. 그렇게 하여 인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며, 그 돈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이스라엘을 위한 기념물이 됩니다. 특히 민수기 31:54와 출애굽기 30:16에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이스라엘을 기억하게 하는 기념물이 된다는 공통된 주제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연결을 고려하면 금을 바친 이유는 전쟁 중 저지른 특정한 죄에 대한 고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자신들의 생명이 보존되었다는 사실을 여호와야훼 앞에서 인정하고, 생명에 관한 속죄의 예물을 바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쟁을 치른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며 속죄를 구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본문은 그런 구체적인 동기를 밝히지 않으므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금이 만남의 천막에 남다
모세와 엘아자르는 지휘관들이 가져온 금을 받습니다.
그 양은 16,750셰켈이었습니다. 본문은 이 금이 모두 「금으로 만든 물건」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앞서 50절에 나온 금붙이들은 이미 누군가의 소유물이었고, 사람의 몸을 장식하거나 생활 속에서 사용되었던 물건들입니다.
이제 그 금은 전쟁에서 얻은 물건에서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예물로 바뀝니다.
군인들은 저마다 빼앗은 물건을 자기 몫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민수기 31:53 · 두루새김
앞서 공동체 전체에 나누어 준 것 외에도, 군인들이 개인적으로 얻은 물건들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구절입니다. 지휘관들이 바친 금은 그렇게 전쟁에서 얻은 금 물품들 가운데 일부였습니다.
모세와 제사장 엘아자르는 천인대장들과 백인대장들에게서 금을 받아 만남의 천막으로 가져갔습니다. 여호와야훼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기억하게 하는 기념물로 삼으려는 것이었습니다.민수기 31:54 · 두루새김
가장 직접적으로는 지휘관들이 생명의 보존을 인정하며 바친 예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전쟁에 나섰던 이스라엘 군인들이 무사히 돌아왔고, 그들의 생명을 위해 속죄의 예물이 드려졌다는 사실이 여호와야훼 앞에 남습니다.
여호와야훼의 복수와 인간의 책임
본문은 브올 사건과 관련된 미디안의 행동에 대한 대응으로 전쟁을 설명합니다. 동시에 그 전쟁을 「여호와야훼를 위해」 복수하는 일이라고 한다고 해서 전쟁에 등장하는 모든 폭력의 윤리적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장이 특정한 집단의 처벌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서술한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집단에 속한 모든 사람의 개별 책임을 입증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뜻이라는 명분으로 집단적 보복을 정당화하거나, 특정 민족과 집단을 하나님의 원수로 규정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데 민수기 31장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 사건을 오늘의 전쟁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일반 규칙으로 읽는 것은 본문에 나타난 고유한 역사적 맥락과 언약 관계를 무시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은 자신들의 군인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았다고 보고했습니다. 모세와 엘아자르는 그들이 가져온 금을 받아 여호와야훼 앞에 놓았습니다.
그 금은 이스라엘 자손을 기억하게 하는 기념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금이 만남의 천막 안에 놓이기까지, 진영 밖에는 부정함을 씻기를 기다리는 군인들과 포로들이 있었고, 전쟁터에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민수기 31장은 금이 하나님 앞에 놓이는 장면으로 끝나지만, 그 금이 거기에 이르기까지 일어난 일들을 독자가 잊지 못하게 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