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143편
이 장의 자리 · 107–150편 · 다섯째 권
생명을 살리시고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나님께 자신을 구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구원받아야 할 이유를 말할 것 같습니다. 적들이 얼마나 악한지, 자신은 얼마나 억울한지, 왜 하나님이 자신의 편을 들어 주셔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143편의 시인은 정반대의 말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의로움에 호소하면서도, 그 의로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재판하지는 말아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시기 때문에 자신을 구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자신이 의롭기 때문에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시편 143편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탄식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을 짓밟은 원수들 때문에 어둠 속에서 살고 있으며, 영이 지쳐 힘을 잃고 마음이 두려움에 얼어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는 단순히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요청을 넘어섭니다. 그는 「제가 걸어갈 길을 알려 주십시오」, 「주님의 뜻을 행하도록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위험에서 살아남기만 하면 될 것 같은 사람이,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달라고 기도합니다.
시편 143편에서 구원은 죽음의 위협에서 살아나는 일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길을 배우는 일을 함께 포함합니다.
그가 기대하는 것은 단지 어제의 위험이 사라진 내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다시 살리시고, 그 삶이 나아갈 방향까지 알려 주시는 미래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호소하면서 재판은 피하려는 사람
다윗의 시입니다. 여호와야훼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 간청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당신의 신실하심과 의로우심으로 내게 응답해 주십시오.시편 143:1 · 두루새김
시인은 단순히 응답해 달라고만 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진실하심과 의로움으로」 응답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진실하심」은 믿을 만함과 한결같음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과 약속에 한결같이 행동하시는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의로움」은 의로움과 정의에 관련된 말입니다. 단순히 잘못이 없다는 의미를 넘어,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믿을 만한 분이시며 의롭게 행동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에 기대어 기도합니다. 그가 구원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자신의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 예상 밖의 말이 나옵니다.
당신의 종을 재판에 세우지 마십시오. 살아 있는 누구도 당신 앞에서는 의롭지 못합니다.시편 143:2 · 두루새김
앞에서는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응답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법정에 자신을 세우지 말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왜 그럴까요? 시인은 하나님이 의롭게 판단하신다면 자신도 그 판단 앞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의롭다고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은 원수들과 시인 사이에 도덕적인 차이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문은 원수들이 시인의 생명을 짓밟았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실제로 해롭고 부당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악하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의로운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사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행실을 정당화해 주지는 않습니다.
시인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종은 주인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호칭은 자신이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이 아니라, 그분께 속하여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그 관계가 자신에게 재판을 면할 권리를 자동으로 보장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그분께 자비를 구합니다.
하나님은 악을 의롭게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동시에 억압받는 사람을 올바르게 대하시고, 한결같이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로움은 시인에게 두려움의 이유이면서 동시에 희망의 근거가 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의로움을 자기 뜻대로 이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의로운 하나님 앞에서 자신도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러한 태도는 시편 130:3–4와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이 죄악을 기억하여 심판하신다면 누구도 설 수 없으며, 하나님께 용서가 있다는 고백이 나타납니다. 로마서 3:20에는 시편 143:2와 매우 가까운 표현이 나타납니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없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이는 시편의 문장을 그대로 같은 논의 안에서 반복한 것이라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할 수 없는 인간의 처지를 구원에 관한 더 넓은 논의로 펼친 연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143편의 본래 상황은 분명합니다. 시인은 원수에게 쫓기는 가운데 하나님의 자비와 의로움에 호소하는 사람입니다.
살아 있지만 죽은 사람처럼 어둠에 갇히다
원수가 내 목숨을 뒤쫓아 내 생명을 땅에 짓이겼고 오래전에 죽은 이들처럼 나를 어둠 속에 앉혀 놓았습니다.시편 143:3 · 두루새김
시인이 왜 그토록 간절하게 기도하는지 이제 밝혀집니다.
「짓밟았고」라는 표현은 단순히 괴롭혔다는 말보다 훨씬 강합니다. 이 말은 짓누르고 으스러뜨리는 행동을 나타냅니다. 원수는 단순히 그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생명 자체를 위협합니다.
시인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자신의 처지를 죽은 사람들의 상태에 비유합니다. 어둠은 빛이 없는 장소일 뿐 아니라, 삶의 활력과 희망이 사라진 상태를 표현합니다. 특히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이라는 말은 죽음의 세계에 오래 머물러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계와 멀어진 존재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현실이 얼마나 생명과 멀어져 있는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지만 삶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영은 내 안에서 힘을 잃고 내 마음은 속에서 놀라 얼어붙습니다.시편 143:4 · 두루새김
원수의 공격은 외부적인 위험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시인의 영과 마음까지 무너뜨렸습니다.
여기서 「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아흐(רוּחַ)는 문맥상 사람의 내적인 생기와 기력을 나타냅니다. 시인은 단순히 몸이 피곤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지탱하는 내면의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표현합니다.
「두려움에 얼어붙었습니다」라는 표현에는 갑작스러운 두려움과 심한 당혹감이 담겨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상황을 차분하게 정리할 여유조차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시편은 이런 고통을 의지가 약한 사람의 문제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가 실제로 겪은 위협의 결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 상태에서 자신의 고통만을 바라보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다음 절에서 갑자기 시선을 과거로 돌립니다.
조금 더 깊이
원수가 정확히 누구인지,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는 본문이 알려 주지 않습니다. 표제는 「다윗의 시입니다」라고 하지만 특정한 도피 사건이나 전쟁을 지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면을 다윗과 사울의 갈등이나 압살롬의 반란 가운데 어느 한 사건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과거를 기억하다
나는 먼 옛날을 떠올렸고 당신이 하신 모든 일을 되새겼으며 당신 손으로 이루신 일을 깊이 생각합니다.시편 143:5 · 두루새김
지금까지 시인의 생각은 원수의 공격과 자신의 고통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행동을 기억합니다.
여기서 기억은 단순한 추억이 아닙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이유는 자신이 겪었던 좋은 시절을 그리워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행동해 오셨는지를 다시 생각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과거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도 기억합니다.
원수의 힘이 그의 현실을 설명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이 하신 일을 다시 마음에 불러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두 손을 기억하며 자신의 두 손을 펼치다
당신께 두 손을 펼쳤습니다. 내 영혼은 메마른 땅처럼 당신을 목말라합니다. 셀라.시편 143:6 · 두루새김
5절에서는 하나님의 손이 등장합니다. 6절에서는 시인의 두 손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하신 일을 기억하던 사람이 자신의 두 손을 하나님께 펼칩니다. 하나님의 행동을 기억하는 일이 기도의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두 손을 펼쳐 하나님께 향합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도움입니다.
시인은 자신을 목마른 사람이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메마른 땅에 비유합니다. 목마른 사람은 물을 찾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메마른 땅은 스스로 비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자신을 다시 살아나게 할 능력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셀라」가 등장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메마른 땅과 같다고 고백한 뒤 잠시 멈춥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더욱 다급하게 하나님께 응답을 요청합니다.
조금 더 깊이
5절의 표현은 출애굽과 광야의 인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시편 77:11–12에서도 고난 가운데 있는 시인이 하나님이 옛날에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그분의 업적을 깊이 생각합니다. 다만 이 구절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떠올렸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출애굽 사건일 수도 있고,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경험한 여러 구원의 일일 수도 있으며, 시인의 개인적인 삶에서 하나님이 행하셨던 일을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원문에서는 5절과 6절 두 자리 모두 두 손을 가리킵니다. 손을 펼치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기도에서 사용되던 몸짓입니다. 열왕기상 8:22에서도 솔로몬이 두 손을 하늘로 펼치고 기도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셀라」의 정확한 음악적 기능은 확정하기 어렵지만, 이 표지는 시편의 흐름에 구분을 줍니다.
오래된 어둠에서 아침의 소식을 기다리다
여호와야훼여, 어서 내게 응답해 주십시오. 내 영은 힘이 다했습니다. 내게서 당신의 얼굴을 감추지 마십시오. 얼굴을 감추시면 나도 구덩이로 내려가는 이들과 같아집니다.시편 143:7 · 두루새김
시인은 다시 처음의 간청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욱 긴박합니다. 4절에서 영이 지쳐 힘을 잃었다고 말했는데, 이제는 그 영이 힘을 다 잃었다고 표현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얼굴은 그분이 함께 계시며 관심을 기울이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신다는 말은 사람이 하나님께 버림받거나 그분의 도움을 경험하지 못하는 상황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바로 그것을 두려워합니다.
구덩이는 죽음과 무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3절에서는 원수 때문에 오래전에 죽은 사람처럼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얼굴을 숨기시면 죽음의 구덩이로 내려가는 사람들과 같아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히 적에게 패배하는 일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한 채 생명의 힘을 잃어 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시편의 분위기를 바꾸는 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아침」입니다.
아침에 들려 달라는 것은 무엇인가?
아침에 당신의 한결같은 사랑을 내게 들려주십시오. 나는 당신을 의지해 왔습니다. 내가 걸어갈 길을 알려 주십시오. 당신께 내 영혼을 들어 올렸습니다.시편 143:8 · 두루새김
시인은 지금까지 어둠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침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는 아침에 해가 뜨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제게 들려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한결같은 사랑」은 단순한 호의나 순간적인 친절에 머물지 않고, 관계 안에서 계속 베푸는 한결같은 사랑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반드시 귀로 들리는 특별한 음성이나 계시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하심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8절에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듣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말에서 하나님이 들려주실 응답으로 시선이 이동한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자신의 고통보다 더 결정적인 말이 되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왜 하필 아침인가요? 밤은 어둠과 무력함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아침은 그 어둠과 대비되는 새로운 시간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실제로 다음 날 아침 하나님이 응답하셨다고 보고하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이루어진 구원을 묘사하는 감사의 노래가 아니라, 어둠 가운데서 빛을 기다리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의 기도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시인은 단순히 살아남기를 구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걸어갈 길을 알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5절에서는 하나님이 과거에 하신 일을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앞으로 자신에게 걸어갈 길을 알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미래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걸어갈 길」은 위험을 피할 실제 경로를 포함할 수도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관한 삶의 방향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그 둘을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10절에서 「주님의 뜻을 행하도록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라는 간구가 이어지기 때문에, 이 길을 단순한 지리적 이동 경로로만 제한하기는 어렵습니다.
6절에서는 두 손을 하나님께 펼쳤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들어 올립니다. 손을 드는 외적인 몸짓이 자신의 존재 전체를 하나님께 향하게 하는 기도로 깊어집니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두 알지 못하지만, 그 길을 아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맡깁니다.
원수에게서 숨겨 달라는 기도에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달라는 기도로
여호와야훼여, 내 원수들에게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나는 당신께 몸을 숨겼습니다.시편 143:9 · 두루새김
시인은 여전히 원수들의 공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고백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원수들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구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저는 주님께 피하여 몸을 숨겼습니다」라는 표현의 히브리어는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의 읽기를 따르면, 시인은 자신을 위협하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께 피하여 몸을 감춥니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의 뜻을 따르도록 나를 가르쳐 주십시오.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영은 선하시니 그 영이 평탄한 땅에서 나를 이끌게 해 주십시오.시편 143:10 · 두루새김
시인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원수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뜻을 이미 완전히 알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 뜻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더욱이 단순히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행하도록」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관한 정보만 더 많이 알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 뜻에 따라 실제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요청은 앞의 2절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처음에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의롭다고 인정받지 못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의롭게 살아가는 일을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온전히 의롭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순종을 서로 대립시키지 않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구원받을 자격을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는 소망을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소망의 근거가 됩니다.
지친 사람의 영과 하나님의 선한 영
4절에서 시인은 자신의 영이 지쳐 힘을 잃었다고 말했습니다. 7절에서는 자신의 영이 힘을 다 잃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10절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등장합니다. 앞에서 사용된 「영」과 여기서 사용된 「영」은 모두 히브리어 루아흐입니다.
시인의 영은 지쳤고 힘을 다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선하십니다.
자신 안에서 힘이 거의 사라진 사람이 하나님의 영께서 자신을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영을 스스로 회복시키는 방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더 강해지겠다고 선언하지도 않습니다.
「선하신 영」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영이 신뢰할 만하고 선한 방향으로 인도하신다는 고백과 연결됩니다. 그분의 영이 이끄시는 길은 시인을 해치는 길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길입니다.
평탄한 땅이란 무엇인가?
「평평한 땅」에서 「평평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쇼르(מִישׁוֹר)는 평평하거나 고른 지형을 가리킬 수 있으며, 문맥에 따라 곧음이나 올바름의 의미와도 연결됩니다. 하나는 실제로 걷기 좋은 평평한 땅의 이미지로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올바른 삶의 길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두 읽기는 서로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3절에서는 원수가 시인을 땅에 짓밟았습니다. 6절에서는 시인의 영혼이 메마른 땅과 같았습니다. 10절에서는 하나님의 영께서 그를 평평한 땅을 따라 이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짓밟힌 땅, 메마른 땅,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이 이끄실 평평한 땅.
하나님께 구하는 회복은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다시 걸어갈 수 있는 길을 얻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이것이 시편 143편에서 구원과 인도가 서로 분리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조금 더 깊이
9절의 마소라 본문은 하나님께 자신을 숨겼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목적어가 분명히 나와 있지 않아 문장의 정확한 구조는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칠십인역은 이 자리를 하나님께 피했다는 뜻으로 옮깁니다. 두루새김은 「주님께 피하여 몸을 숨겼습니다」로 옮겨, 하나님께 피한다는 뜻과 몸을 숨긴다는 이미지를 함께 드러냈습니다. 느헤미야 9:20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의 선한 영을 주시어 백성을 가르치셨다는 고백이 나타납니다. 또 출애굽기 19:4–6에서는 하나님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일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이 되는 일이 연결됩니다. 시편 143편은 그와 같은 관계를 개인의 기도 안에서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의와 신실한 사랑을 붙들다
여호와야훼여,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려 주십시오. 당신의 의로우심으로 내 목숨을 고통에서 이끌어 내 주십시오.시편 143:11 · 두루새김
이번에도 시인은 자신이 구원받아야 할 근거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을 넘어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시기를 바랍니다.
1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의로움으로 응답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11절에서는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자신을 고난에서 이끌어 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처음에 제시한 하나님의 의로움이 마지막에도 기도의 근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 시인은 더욱 어려운 간구를 드립니다.
당신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내 원수들을 없애 주시고 내 생명을 짓누르는 자들을 모두 멸망시켜 주십시오.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시편 143:12 · 두루새김
이 표현을 단순히 원수들의 잘못된 생각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기도로 바꾸어 읽어서는 안 됩니다. 시인은 실제로 자신을 위협하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요청합니다.
시인은 앞의 8절에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아침에 듣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한결같은 사랑으로 원수들을 없애 달라고 요청합니다.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시인에게는 구원의 근거가 되고, 원수들에게는 심판을 요청하는 근거가 됩니다.
이 시편에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악을 무조건 눈감아 주는 태도를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한결같이 돌보신다면, 그 백성의 생명을 파괴하는 행동을 외면하지 않으시리라는 믿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시인이 바라는 모든 심판의 내용과 강도가 반드시 하나님의 최종 판단과 일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시인의 기도를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실제로 원수들을 모두 멸망시키셨다고 보고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독자가 자신과 대립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원수로 규정하고 그들의 죽음을 구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읽을 수도 없습니다. 시인이 겪는 실제 위협과 그가 하나님께 아뢰는 격렬한 심판의 소망은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동시에 그 소망을 하나님의 명령이나 이미 이루어진 심판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시인은 원수들을 직접 멸망시키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고, 원수들을 다루는 일 역시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저는 주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자신이 누구인지 고백합니다. 2절에서 그는 하나님의 종이지만 재판받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2절에서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구원을 요청하는 사람이 됩니다.
처음에는 그 관계 안에서 자비를 구했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관계 안에서 보호와 심판을 요청합니다.
시인의 소망은 자신이 원수보다 더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메마른 땅에서 평탄한 땅으로
시편 143편은 자신을 재판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의 기도로 시작합니다. 그는 원수에게 짓밟혀 어둠 속에 있고, 영은 지쳐 힘을 잃었으며, 마음은 두려움에 얼어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둠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이 옛날에 하신 일을 기억하고, 자신의 영혼이 메마른 땅과 같다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아침을 구합니다.
물론 이것은 모든 고난에 특별한 교육적 목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말이 아닙니다. 시편은 원수의 폭력을 하나님이 시인을 가르치기 위해 일부러 일으키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고난을 겪는 사람이 먼저 자신을 변화시켜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시편 143편의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돌려 달라고 기도하면서, 그 생명이 걸어갈 길도 하나님께 배우고 싶어 합니다. 이 시편은 그 길에 실제로 도착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여전히 원수들에게서 구원해 달라는 간구로 끝납니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이 바라는 미래의 모습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단지 위험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배우며 그분의 영이 이끄시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어둠 속에서 아침을 기다리는 사람은 두 손을 펼칩니다.
그의 영혼은 여전히 메마른 땅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메마름을 바라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영께서 자신을 이끄실 평평한 땅을 바라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