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48편
이 장의 자리 · 42–72편 · 둘째 권
성을 돌아보고 하나님을 이야기하라
시편 48편에는 같은 성을 바라보는 두 무리가 등장합니다. 한 무리는 그 성을 보고 겁에 질려 달아납니다. 다른 한 무리는 그 성을 바라보고, 주위를 돌며, 탑을 세고, 성벽을 살핍니다. 그들은 마침내 자신들이 본 것을 다음 세대에게 이야기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같은 성을 보았는데, 왜 한쪽은 두려워하고 다른 쪽은 기뻐할까요?
그 차이는 성벽의 높이나 군사력에 있지 않습니다. 이 시편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목하는 대상은 시온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입니다.
시편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선포하며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가리켜 「이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위대한 왕의 성을 바라보게 하더니, 마지막에는 그 왕이 누구인지 알게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하나의 이야기가 놓여 있습니다. 위협하던 왕들이 물러갔고,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들이 들었던 구원을 눈으로 확인한 이야기입니다.
시편 47편이 하나님을 온 땅의 왕으로 선포했다면, 48편은 그 왕권이 시온에서 어떻게 경험되고 기억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온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한 성의 피난처가 되시고, 그 성에서 경험한 구원이 다시 땅끝까지 선포됩니다.
위대한 것은 산인가, 그곳에 계신 하나님인가?
여호와야훼께서는 위대하시고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그 거룩한 산에서 크게 찬양받으십니다.시편 48:2 · 두루새김
첫 문장의 주어는 시온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이것은 이어지는 아름다운 도시 묘사를 읽는 방향을 결정합니다. 시온이 위대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찬양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계신 성이 찬양의 장소가 됩니다.
높이 솟은 모습이 아름다운 시온산은 온 땅의 기쁨, 북쪽 깊숙한 곳에 있는 위대한 왕의 성입니다.시편 48:3 · 두루새김
예루살렘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높거나 규모가 큰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시편은 그 산을 온 땅이 기뻐할 장소로 노래합니다.
「북쪽 깊숙한 곳」은 본문에서 가장 낯선 표현 중 하나입니다. 신의 통치와 연결되던 거룩한 산을 떠올리는 표현으로도, 예루살렘의 실제 지형과 관련된 북쪽 표현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읽더라도 시편의 강조점은 분명합니다. 시온의 특별함은 자연적인 높이나 지리적 위치보다 그곳을 자신의 성으로 삼으신 왕에게서 나옵니다.
여기서 「위대한 왕」은 앞 절에서 찬양한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시온은 단지 유다 왕의 수도가 아니라, 온 땅의 왕이신 하나님이 자신의 통치를 드러내시는 성으로 노래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시편은 뜻밖의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의 궁전들에서 높은 피난처로 알려지셨습니다.시편 48:4 · 두루새김
우리는 궁전이라고 하면 왕과 권력자들이 지내는 화려하고 튼튼한 건물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편은 궁전들의 튼튼함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피난처라는 사실은 머릿속으로만 아는 믿음의 말로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을 통해 실제로 알려졌습니다.
그 일이 무엇인지는 이어지는 왕들의 등장으로 밝혀집니다.
조금 더 깊이
「북쪽 깊숙한 곳」은 말 그대로 북쪽의 먼 곳, 깊은 곳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실제 지리상의 아주 먼 북쪽에 있는 산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중요한 비교 본문은 이사야 14:13입니다. 거기서는 하늘에 올라가 신적인 권위를 차지하려는 왕의 오만한 선언 속에 「집회의 산」과 「북쪽 깊숙한 곳」이 함께 등장하며, 두 본문은 같은 히브리어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독법에 따르면 시편은 가장 높은 신적 권위가 머무는 곳이 바로 시온이라고 선포하는 셈입니다. 반면 히브리어 원문은 이 명사구들을 나란히 놓을 뿐 관계를 분명히 밝히지 않으므로, 정확한 지리적 의미를 하나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5:35가 예루살렘을 「큰 임금의 성」이라고 부르며 시편 48:3의 표현을 다시 사용합니다. 이는 시온과 하나님의 왕권을 연결하는 구약의 언어를 이어받은 사례입니다. 그러나 시편 48편의 본래 초점은 그보다 앞서, 시온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경험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찬양과 증언에 있습니다.
왕들이 모였으나, 성을 보자 달아났다
참으로, 왕들이 한데 모여 함께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보자마자 깜짝 놀라 겁에 질려 허둥지둥 달아났습니다.시편 48:5–6 · 두루새김
앞에서는 한 분의 「위대한 왕」이 등장했습니다. 이제는 여러 「왕들」이 등장합니다. 한 왕이 다스리는 성을 향해 여러 왕이 함께 모여든 것입니다. 시편 47편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왕권이 여기서는 실제 왕들의 행동을 통해 드러납니다.
왕들은 힘을 합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루려던 목적은 이야기되지 않습니다. 성을 무너뜨리거나 전리품을 가져갔다는 말도 없습니다. 대신 본문은 그들이 성을 보았을 때 일어난 반응만을 빠르게 나열합니다.
히브리어 48:6은 짧은 동사들이 잇달아 나오는 문장입니다. 그들은 보았고, 놀랐고, 두려워했고, 서둘렀습니다. 그 사이에 전투의 자세한 경과를 설명하는 문장은 없습니다.
왕들은 함께 모여 왔지만, 그들이 함께 이룬 일은 승리가 아니라 도주였습니다.
왜 그토록 두려워했을까요? 시편은 시온의 성벽이 특별한 무기나 장치로 그들을 물리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앞서 4절에서 하나님이 높은 피난처로 알려지셨다고 선언했으므로, 독자는 그들의 패배를 하나님의 보호와 연결하여 읽게 됩니다.
시편이 관심을 두는 것은 왕들의 이름보다 그들의 운명이 뒤집히는 순간입니다.
거기서 떨림이 그들을 사로잡았고 아이 낳는 여인처럼 진통이 그들을 덮쳤습니다.시편 48:7 · 두루새김
아이를 낳을 때의 고통은 사람이 마음대로 멈추거나 다스릴 수 없는 고통입니다. 강한 왕들이 느낀 두려움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군대를 모으고 나아가는 일은 결정할 수 있었지만, 자신들을 사로잡은 떨림에서는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시편은 갑자기 시선을 바다로 옮깁니다.
주님, 당신은 동쪽 바람으로 다르시스의 배들을 산산이 부수십니다.시편 48:8 · 두루새김
육지의 성을 공격하던 왕들의 이야기에서 왜 갑자기 배가 등장할까요? 다르시스의 배들은 먼바다를 항해하는 큰 배와 연결되는 표현입니다(열왕기상 10:22; 이사야 2:16). 크고 튼튼한 배는 인간의 기술과 부, 물건을 사고파는 능력을 상징하기에 알맞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배도 거센 바람 앞에서는 산산이 부서질 수 있습니다.
시편은 여기서 실제로 바다에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밝히지 않습니다. 앞선 왕들의 패배를 하나님의 압도적인 능력으로 묘사하는 시적 비교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왕들이 아무리 많은 세력을 모아도 하나님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할 수 있듯, 아무리 튼튼한 배도 바람 하나를 감당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람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시편은 하나님께 직접 말씀드리며 「주님께서는」이라고 그분의 행위를 노래합니다.
이렇게 시온을 지키시는 분은 한 성 안에 갇힌 지역의 신이 아니라 바람과 바다까지 다스리시는 왕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이제 시편은 그 놀라운 사건을 바라본 사람들의 목소리로 바뀝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사건의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열왕기하 18–19장과 이사야 36–37장에는 아시리아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위협했다가 물러간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대기하 20장에도 여러 세력이 유다를 위협했다가 하나님이 개입하시자 무너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사건 모두 시편의 모습과 비교할 만하지만, 시편 48편은 적국의 이름이나 왕들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습니다. 시편 46편에서는 하나님이 혼란과 위협 속에 있는 백성의 피난처로 찬양받으십니다. 시편 47편에서는 그분이 온 땅의 왕으로 선포되십니다. 그리고 시편 48편에서는 그 하나님을 자신의 역사 속에서 경험한 사람들이 성을 돌아보며 다음 세대에 전할 이야기를 준비합니다. 이 세 시편의 연결 안에서 하나님의 왕권은 단순한 권력의 선언이 아닙니다.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온 땅에 자신의 의로운 통치를 드러내시며, 다음 세대까지 기억될 구원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시는 통치입니다.
들었던 이야기가 눈앞의 현실이 되다
우리가 들은 그대로 온 군대의 여호와야훼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성을 영원히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셀라.시편 48:9 · 두루새김
이 문장은 시편 전체의 전환점입니다.
지금까지 시편은 하나님의 성을 소개하고, 왕들이 모였다가 달아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그 장면을 경험한 공동체가 처음으로 자신들의 증언을 직접 말합니다.
그들은 이전부터 하나님의 구원에 관해 들어왔습니다. 조상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지키신다는 약속, 하나님의 성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들이 직접 보았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들은 내용이 무엇인지 자세히 밝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해 받은 신앙의 기억과 자신들이 경험한 현실이 하나로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시편은 먼저 「만군의 여호와야훼의 성」이라고 말한 다음, 「우리 하나님의 성」이라고 다시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압도적인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그분은 동시에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위대함과 자기 백성과의 관계가 같은 문장 안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권세 위에 계신다는 사실은 그분의 백성에게 먼 나라의 소식이 아닙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성을 영원히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라는 선언도 이런 경험에서 나옵니다. 이것은 눈앞의 구원을 경험한 공동체가 하나님의 계속되는 보호를 확신하며 드리는 찬양입니다. 다만 이 표현을 예루살렘이라는 실제 도시가 역사상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무조건적인 보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열왕기하 25장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무너졌음을 기록합니다. 예레미야 7:4–15에서는 성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전을 확신하는 태도를 하나님이 꾸짖으십니다. 시편 48편 자체도 성벽을 안전의 가장 중요한 근거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성을 굳게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찬양하는 사람들은 성전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하나님, 우리는 당신의 한결같은 사랑을 당신의 성전 한가운데서 되새겼습니다.시편 48:10 · 두루새김
앞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성전 안에서 그들이 하는 일은 그 사건을 단순히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결같은 사랑」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으신 관계 안에서 보여주시는 변함없는 사랑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적들이 패배했다는 사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 승리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능력만을 생각하면 승리의 크기에 감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자기 백성을 향한 한결같은 사랑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을 때, 구원의 경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 대목에서 시편은 강한 적을 이긴 나라의 승리를 기리는 노래와 구별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찬양의 중심에 놓이는 것은 자기 나라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리고 그 찬양의 범위가 갑자기 넓어집니다.
하나님, 당신의 이름처럼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도 땅끝까지 이르고 당신의 오른손은 올바름으로 가득합니다.시편 48:11 · 두루새김
하나님의 「이름」은 단지 그분을 부르는 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고 알리신 그분의 존재와 명성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처럼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땅끝까지 퍼진다는 말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그분의 명성에 합당하게 널리 알려진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시편의 시작과 연결됩니다. 3절에서는 시온산이 「온 땅의 기쁨」이라고 불렸습니다. 이제 그 까닭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시온에서 찬양받으시는 하나님은 온 땅과 관계없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오른손에는 단순히 힘이 가득한 것이 아닙니다.
오른손은 능력과 행동을 나타내는 모습입니다. 그 손에 「의로움이 가득합니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분의 올바른 판단과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12절에서도 사람들은 「주님의 판결 때문에」 기뻐합니다.
시온의 구원을 단순히 우리 편이 승리했다는 관점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 시편이 찬양하는 하나님은 강하기만 한 왕이 아니라 의롭게 판단하시는 왕이십니다.
당신의 판결로 시온산이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이 즐거워하기를.시편 48:12 · 두루새김
시온산이 기뻐한다는 표현은 장소를 사람처럼 묘사합니다. 두루새김이 「유다의 마을들」로 옮긴 자리(בַּת)는 원문에서는 유다의 딸들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유다의 여러 마을을 사람처럼 나타낸 표현일 수도 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어느 하나로 확정할 만한 설명은 원문에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찬양은 성전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시온에서 시작한 기쁨이 유다의 다른 공동체들로 퍼져 나갑니다.
시온의 구원은 그 성 안에 있던 사람들만의 개인적인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결을 통해 더 넓은 공동체가 함께 기뻐할 사건이 됩니다.
조금 더 깊이
구약 전체에서 시온은 하나님이 자신이 계심과 자신의 통치를 드러내시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그곳에 사는 백성의 불의와 거짓된 안전감이 심판받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1:21–27에서는 한때 정의가 가득했던 성이 불의로 가득하게 되었다고 고발하면서, 그 성이 다시 정의와 의로 회복되어야 함을 선포합니다. 이 본문들은 시편 48편과 충돌하기보다, 시편이 찬양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더욱 분명하게 해 줍니다. 시온의 기쁨은 단지 적국보다 강한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에 합당하게 행동하셨다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탑을 세어라.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이야기하라
시편의 마지막 장면은 뜻밖에도 매우 구체적인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시온을 두루 걸으라, 그 둘레를 빙 돌라. 그 탑들을 세어 보라.시편 48:13 · 두루새김
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이 건축물을 조사하라는 명령으로 이어질까요? 앞서 적군들은 시온을 보고 겁에 질려 달아났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같은 성을 바라보며 그곳에 남아 있는 것들을 살펴봅니다.
적군의 시선은 도주로 이어졌고, 하나님의 백성의 시선은 기억으로 이어집니다.
13절의 「탑들을 세어 보아라」와 14절의 「다음 세대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도록」에는 같은 히브리어 어근이 사용됩니다. 두 동사는 모두 s-p-r(סָפַר)라는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는 수를 세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입니다. 시편은 이 두 뜻을 이어 놓습니다.
탑을 세는 일이 다음 세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로 바뀝니다.
처음에는 눈으로 확인하는 활동처럼 보였던 명령이 사실은 기억을 전달하는 준비였던 것입니다.
뒤에 올 세대에게 전해 주도록 그 성벽을 눈여겨보고 그 궁전들 사이를 지나가라.시편 48:14 · 두루새김
앞뒤 문장 전체가 요구하는 행동은 분명합니다. 성을 대충 바라보지 말고 자세히 살피라는 것입니다. 그 자세한 관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본 것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 합니다.
앞서 9절에서는 「우리는 들었던 그대로」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14절에서는 자신들이 본 것을 다음 세대에게 이야기하라고 합니다. 먼저 누군가에게서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들도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 들려주어야 합니다.
들었던 사람들이 보는 사람들이 되었고, 보는 사람들이 다시 들려주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러나 탑과 성벽이 이야기의 최종 주제는 아닙니다. 시편은 성의 겉모습을 자세히 살피라고 명령하지만, 그 성이 얼마나 아름답고 튼튼한지 다음 세대에게 자랑하라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바로 다음 절이 그 까닭을 밝혀 줍니다.
조금 더 깊이
13절의 명령은 실제로 성을 도는 예식이나 행렬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 시편만으로 특정한 의식이 이루어졌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14절에서 궁전들과 관련하여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의 정확한 의미에는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궁전들 사이를 지나가라」로 옮겼지만, 궁전들을 자세히 살펴보거나 구분해 보라는 방향의 해석도 있습니다. 들은 것을 보고 다시 전하는 흐름은 이스라엘 신앙의 기억이 전해지는 방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출애굽기 12:26–27에서는 자녀들이 유월절의 의미를 물으면 부모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설명하도록 합니다. 여호수아 4:6–7에서도 요단강의 돌들이 다음 세대의 질문을 불러일으키고, 그 질문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전하도록 합니다. 시편 48편에서 탑과 성벽은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그것들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고 이야기하게 하는 눈앞의 대상이 됩니다.
「이 하나님」 — 성을 보여 준 뒤 가리키는 분
참으로 이분이 하나님, 영원토록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우리가 죽는 날까지 이끄실 것입니다.시편 48:15 · 두루새김
시편의 마지막 문장은 앞에서 본 모든 장면을 새롭게 이해하게 만듭니다.
시인은 성을 돌아보고, 탑을 세고, 성벽을 살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리키는 것은 성이 아닙니다.
「이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이」라는 말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로 그분을 가리킵니다. 왕들을 물러가게 하시고, 자기 백성의 피난처가 되시며, 한결같은 사랑과 의로움을 나타내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처음의 「여호와야훼께서는 위대하십니다」라는 선포보다 더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위대하시다는 사실에서 시작한 찬양이, 그 위대한 분이 우리와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으로 나아갔습니다.
시편의 앞부분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성을 지키시고 굳게 세우시는 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서는 「우리를 이끄실」 분으로 고백되십니다. 성을 굳게 세우는 것과 사람을 이끄는 것은 서로 다른 모습입니다. 성은 한자리에 서 있지만, 사람은 길을 걷습니다. 성벽은 안전한 공간을 나타내지만, 이끄심은 그 공간을 벗어나 움직이는 삶까지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성을 지키시는 분일 뿐 아니라 그 성에 속한 백성의 길을 이끄시는 분입니다.
마지막 표현은 하나님의 이끄심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는 뜻으로도, 「영원히」 이어진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본문의 분명한 강조점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계속 이끄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시편은 그 신뢰를 마지막 고백으로 남깁니다.
여기서 시편 48편의 독특한 움직임이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시온이라는 고정된 장소에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 기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곳에서 경험한 하나님이 자신들을 앞으로도 이끄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의 신뢰는 더 이상 눈앞에 보이는 성벽에만 묶여 있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마지막 표현은 번역상 불확실성이 있는 부분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알 무트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우리가 죽을 때까지」로 옮겼습니다. 이처럼 죽음에 이르기까지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하나님의 이끄심이 인간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진다는 뜻이 됩니다. 반면 이 표현을 영원한 이끄심과 연결해 읽는 전통도 있습니다. 칠십인역은 이 부분을 「그가 우리를 영원히 목양할 것이다」라는 뜻으로 옮깁니다. 여기에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칠십인역 시편의 절 번호는 두루새김과 같은 15절이지만, 편 번호는 47편입니다. 이 두 독법은 하나님의 이끄심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이끄심이 얼마나 오래 이어지는지를 표현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표현만으로 어느 쪽이 유일하게 옳은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성이 아니라, 성의 하나님을 기억하다
시편은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는 현실을 무시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세히 보라고 합니다. 탑을 세고, 성벽을 살피고, 궁전들 사이를 걸어 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말고, 그곳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다음 세대에게 이야기하라고 합니다.
신앙의 기억은 과거의 좋은 결과를 간직하는 데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일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을 기억할 때 비로소 깊어집니다.
시편의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가 봅시다.
사람들은 시온을 한 바퀴 돌고 있습니다. 탑을 하나씩 세고, 성벽을 유심히 살피고, 궁전들 사이를 지나갑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돌로 쌓인 건축물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음 세대에게 남기려는 이야기는 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성을 위협하던 왕들이 달아났고, 자신들이 듣던 하나님의 구원을 눈으로 보았으며, 그분의 한결같은 사랑을 성전에서 생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시편은 마지막에 성을 다시 한번 칭송하지 않습니다.
성이 아니라 「이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다음 세대에게 시온의 탑을 보여 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전해 주고 싶은 것은, 그 탑을 바라보며 자신들이 알게 된 하나님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