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67편

이 장의 자리 · 42–72편 · 둘째 권

우리에게 주신 복이 온 땅으로

시편 67편은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기도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복을 주시며, 저희에게 얼굴빛을 비추시기를 바랍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익숙한 축복의 기도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문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말이 나옵니다. 「그리하여 온 땅에 주님의 길이 알려지고, 모든 민족 가운데 주님의 구원이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시인은 자신들이 복을 받아야 할 이유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자신들의 행복이나 번영에 머물지 않습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복을 자기 공동체 안에 붙잡아 두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복을 통해 온 세상이 하나님을 알고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단순히 더 많은 복을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얼굴에서 시작하여, 그분의 공정한 다스림을 기뻐하는 민족들을 거쳐, 수확물을 내준 땅과 땅끝까지 이어지는 노래입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767편 본문 읽기 →

하나님의 얼굴빛을 구하는 사람들

시편 67:1–2 본문 →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시며 그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시기를. 셀라.시편 67:2 · 두루새김

시편은 세 가지 간구로 시작합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얼굴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 표현은 서로 다른 것을 구하는 듯하지만, 사실 하나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시인이 바라는 복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롭게 대하시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표현이 특별합니다. 이 말은 민수기 6:24–26에 나오는 제사장의 축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지켜 주시며, 얼굴을 비추어 은혜를 베푸시고, 평화를 주시기를 축복하도록 명령받습니다. 시편 67편은 그 축복의 주요 표현을 거의 그대로 가져옵니다.

민수기의 축복에서는 제사장이 백성에게 하나님이 너에게 복을 주시기를 빕니다. 그런데 시편에서는 공동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빕니다.

제사장을 통해 들었던 축복이 이제 공동체 자신의 기도가 된 것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왕이나 권력자의 얼굴을 대면한다는 것은 단순히 얼굴을 본다는 뜻에 머물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호의와 인정을 얻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이 얼굴빛을 비추신다는 표현 역시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호의롭게 대하신다는 의미를 담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신다는 표현은 그분의 도우심이나 함께하심을 경험하지 못하는 상황과 연결됩니다. 시편 30:7에서는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셨을 때 시인이 놀랐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67편의 기도는 단순히 삶에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게 해 달라는 요청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호의롭게 바라보아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시인이 가장 먼저 구하는 복은 하나님이 주실 어떤 물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들을 은혜롭게 대하시는 관계입니다.

그렇다고 물질적인 풍요를 복에서 제외하는 것도 아닙니다. 시편 후반부에는 땅이 수확물을 내주었다는 말이 실제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 풍요를 이야기하기 전에 복이 어디에서 오는지부터 밝힙니다. 자신들이 누리는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얼굴빛을 비추시는 관계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저희에게」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자기 자신만의 복을 구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에서는 그 「저희」보다 훨씬 넓은 세계가 등장합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

시편 67:3 본문 →

주님, 땅 위에 당신의 길이, 모든 민족 가운데 당신의 구원이 알려지도록.시편 67:3 · 두루새김

이 구절을 읽으면 앞의 기도가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알려지고」(⁨יָדַע⁩)에 해당하는 원문은 「알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부정사 형태로, 앞선 간구의 목적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복을 주시기를 바라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시인은 하나님의 복을 받으면 그분의 길이 온 땅에 알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주님의 길」이라는 표현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길은 사람이 걸어야 할 규범이나 계명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행동하시고, 자신의 백성을 어떤 방식으로 이끄시며, 어떤 성품을 드러내시는지를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출애굽기 33:13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길을 알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자신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이끌어 가시는 분인지를 알고 싶다는 요청과 연결됩니다.

시편 67편에서도 「주님의 길」은 뒤따르는 「주님의 구원」과 나란히 놓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길이 알려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대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인지 세상에 드러난다는 의미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순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복을 베푸십니다. 그다음 그분의 길과 구원이 알려집니다. 시인은 자기 공동체가 얼마나 위대한지 세상에 알려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공동체를 은혜롭게 대하시는 하나님이 알려지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창세기 12:2–3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과 깊이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고 그를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아브라함 개인과 그 후손의 번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땅의 모든 가족과 민족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함께 주어집니다.

시편 67편은 그 약속이 품고 있던 넓은 방향을 기도의 말로 표현합니다. 자신들이 복을 받는 이유가 온 땅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이미 온 민족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완전히 알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은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복은 받은 사람이 자기 안에 쌓아 두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복을 받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구절 자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길을 알려야 하는지 지시하지는 않습니다. 시인은 먼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그 은혜를 통해 세상이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구합니다.

복의 크기를 자기에게 얼마나 많이 남았는가로만 재지 않고, 그 복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이 얼마나 널리 알려지는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인의 기도는 자연스럽게 모든 민족의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이러한 구약의 흐름은 신약에서 복음이 여러 민족에게 전해지는 일과도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갈라디아서 3:8은 아브라함을 통해 여러 민족이 복을 받는다는 약속을 복음의 관점에서 읽습니다. 그러나 시편 67편 자체가 신약의 선교 명령을 직접 예언한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시의 본래 문맥에서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이 자기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백성들 모두가 주님을 찬양하기를 바랍니다」

시편 67:4 본문 →

하나님, 백성들이 당신을 찬양하기를. 백성들 모두가 당신을 찬양하기를.시편 67:4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시편 67편에서 두 번 등장하는 후렴입니다. 4절과 6절의 문장이 똑같습니다.

여기서 반복되는 것은 단순히 찬양이라는 행동만이 아닙니다. 「모두」라는 말은 그들 모두라는 뜻입니다. 시인은 어떤 민족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다른 민족들은 영원히 그분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남아 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왜 이 구절을 두 번 반복합니까? 시편의 전체 구성을 보면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2–3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온 땅이 그분의 길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4절에서는 모든 백성이 찬양하기를 바랍니다. 5절에서는 그 민족들이 기뻐할 이유를 설명합니다. 6절에서는 다시 모든 백성이 찬양하기를 바랍니다. 7–8절에서는 땅의 수확물과 하나님의 복을 말한 뒤, 땅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구합니다.

이렇게 보면 두 번의 후렴이 5절을 감싸고 있습니다.

글의 구성으로 보면 시편의 한가운데에는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이유가 놓여 있는 셈입니다. 분명한 것은 반복되는 후렴이 시편의 중심 메시지를 강조한다는 사실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두 번 세 번 되풀이하기보다,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반복합니다. 자신들이 누릴 복에 대한 간구가 이미 온 세계의 찬양에 대한 소망으로 넓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이 찬양은 예상보다 깊은 의미를 얻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시가 실제 예배에서 어떤 가락으로 불렸고, 회중이 후렴을 번갈아 불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두루새김은 표제를 「현악기에 맞추어 부릅니다」로 옮겼습니다. 현악기나 연주 방식과 관계되는 표현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주하고 불렀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공정한 심판이 왜 기쁨의 이유가 되는가

시편 67:5 본문 →

민족들이 기뻐하며 환호하기를. 당신이 백성들을 공정하게 심판하시고 땅 위의 민족들을 이끄시니. 셀라.시편 67:5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시편 67편의 중심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우리에게는 심판이라는 말이 주로 죄를 드러내고 처벌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다면 왜 민족들은 하나님의 심판 때문에 기뻐해야 합니까?

히브리어의 「심판하다」(⁨שָׁפַט⁩)는 말은 잘못한 사람을 처벌하는 의미만을 지니지 않습니다. 다툼을 판단하고, 억울한 사람의 권리를 세우며, 사회에 정의로운 질서를 마련하는 통치자의 행동도 나타냅니다.

시편 67편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하게」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공정하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쇼르(⁨מִישׁוֹר⁩)는 곧음, 평탄함, 올바름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이 한쪽에 치우쳐 판단하지 않으시고 올바르게 다스리시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민족들이 기뻐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무조건 자기 편을 들어 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이 올바르게 판단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다스림 아래에서는 권력이 있는 사람이 유리한 판단을 받을 수 있고, 약한 사람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집단은 다른 집단을 억누르면서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이 모든 백성을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 다스림은 불의한 힘에 눌린 사람들에게 기쁨의 근거가 됩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만을 편들어 주시는 분이라서 온 세상이 찬양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시는 분이기에 온 세상이 기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심판에 이어 또 하나의 행동을 말합니다.

「이끄시기」는 인도하다 또는 길을 이끌어 주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방향을 명령하는 일보다 적극적으로 이끌어 주시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편 67편에서는 이끄시는 대상이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민족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이끄시는 분이 아니라 땅 위의 민족들을 이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단순히 잘못된 것을 찾아 벌하는 활동에 머물지 않습니다. 백성들을 올바르게 판단하시면서 그들이 걸어갈 길을 이끄시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3절에서는 하나님의 「길」이 온 땅에 알려지기를 바랐습니다. 5절에서는 하나님이 실제로 여러 민족을 이끄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길이 알려진다는 것은 그분에 관한 정보를 듣는 것만이 아니라, 그분의 의로운 다스림을 인정하고 그 이끄심을 받는 삶과도 연결됩니다.

물론 시편 67편이 온 세상의 모든 불의가 이미 사라졌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민족들이 그렇게 기뻐하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아직 모두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지는 않지만, 시인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발견할 기쁨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과 이끄심입니다.

이 때문에 5절은 단순히 두 후렴 사이에 들어간 설명이 아닙니다. 시편 전체가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이유를 가장 깊이 드러내는 구절입니다.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온 민족을 공정하게 다스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72:1–4에서는 왕이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백성을 재판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세워 주며, 억누르는 사람을 꺾어 주기를 기도합니다. 시편 23:3에서도 하나님이 시인을 바른 길로 이끄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원문에서는 같은 동사가 쓰이며, 하나님이 사람의 길을 이끄시는 목자와 같은 모습이라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이러한 소망은 이사야 2:2–4에서도 나타납니다. 그곳에서는 여러 민족이 하나님의 길을 배우려고 모이고, 하나님이 민족들 사이의 다툼을 판단하심으로 전쟁의 도구가 농사짓는 도구로 바뀌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두 본문은 서로 직접 인용한다고 밝히지는 않지만,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길을 알고 그분의 공정한 다스림을 누리기를 바란다는 주제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이미 소출을 낸 땅, 아직도 복을 구하는 사람들

시편 67:6–7 본문 →

땅이 제 열매를 내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시편 67:7 · 두루새김

후렴이 한 번 더 반복된 뒤 시편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지금까지는 온 세상이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시인은 이미 일어난 일을 말합니다.

「내주었습니다」(⁨נָתַן⁩)의 원문은 「주었다」라는 뜻의 완료형입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땅이 수확물을 내주었습니다」로 옮겨 이미 일어난 일로 나타냈습니다. 이어지는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는 여전히 소망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7절에는 이미 누린 복과 앞으로 바라는 복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시인은 이미 땅이 수확물을 내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복을 다시 구합니다. 왜입니까? 수확이 끝났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을 한 번의 좋은 수확으로 전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땅이 수확물을 내주었고,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새로운 복의 간구로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3절에서는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구원을 알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제 7절에서는 실제로 땅이 수확물을 내주었다고 말합니다. 시인은 눈앞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출발점으로 삼아, 온 세상이 그분을 알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땅의 수확물과 모든 민족의 찬양 사이에 어떤 구체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풍성한 수확을 보면 모든 민족이 저절로 하나님을 믿게 된다는 뜻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시인은 자신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복이 그 공동체 안에서만 해석되고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땅의 수확물은 하나님께서 실제 삶을 돌보신다는 사실을 감사하는 구체적인 장면입니다. 그러나 시편은 모든 신실한 사람에게 반드시 풍작이나 부유함이 주어진다는 약속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시편은 풍요로운 사람만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중요한 표현은 「저희 하나님」입니다. 시인은 단순히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곧 저희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특별한 관계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앞의 모든 민족을 향한 기도와 어긋나지 않습니다. 「저희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다른 민족들을 밀어내는 말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을 온 땅이 알고 찬양하기를 바라는 기도의 바탕이 됩니다.

시인은 막연한 세계 종교의 이상을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하나님이 실제로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신다는 경험에서 시작하여, 그분이 모든 민족에게도 알려지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 구절에서 그 소망이 완성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구절은 레위기 26:4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제때 비를 주시면 땅에서 수확물을 거두고 나무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원문에서는 두 본문 모두 땅이 소출을 낸다는 동일한 히브리어 표현을 사용합니다. 레위기에서는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따른 복의 약속으로 등장하고, 시편 67편에서는 이미 일어난 풍요에 대한 고백으로 등장합니다. 다만 이 시편이 어떤 상황에서 나왔는지 정확하게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시편이 추수 감사 예배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작물의 수확이었는지, 특정한 절기였는지, 어느 해의 풍년을 기념하는지는 본문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복을 구하는 기도가 땅끝의 경외로 끝나다

시편 67:8 본문 →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온 땅끝이 그분을 두려워하기를.시편 67:8 · 두루새김

시편의 마지막은 처음과 닮았습니다.

2절에서는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복을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8절에서도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처음에는 「저희에게」라는 말로 자신들을 가리켰지만, 마지막에는 「온 땅끝의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시인은 마지막에 왜 찬양이나 기쁨 대신 「두려워하기를」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까? 여기서 두려움은 단순히 공포에 사로잡히는 감정으로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어 야레(⁨יָרֵא⁩)는 무서워하다라는 뜻과 함께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를 인정하고 그분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시인은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기뻐하기를 바랐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공정하게 심판하시고 민족들을 이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지막의 경외도 그분의 의롭고 선한 다스림을 인정하는 태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들이 단순히 하나님의 큰 힘 앞에서 공포에 질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고, 그분의 다스림을 인정하며, 그분을 경외하는 관계 안에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4절과 6절에서는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바랐습니다. 5절에서는 그들이 기뻐하며 즐겁게 외치기를 바랐습니다. 8절에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바랍니다. 찬양과 기쁨과 경외는 서로 다른 반응이지만, 시편에서는 한 분 하나님을 향한 응답으로 연결됩니다.

그분은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땅 위의 민족들을 이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땅이 수확물을 내주게 하시는 복의 근원이십니다.

시인에게 복을 통해 바라보는 가장 먼 곳은 자신들의 풍요가 아니라 온 세상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일입니다.

땅의 소출에서 땅끝까지

시편 67:1–8 본문 →

시편 67편의 마지막 두 구절은 아주 작은 장면에서 아주 먼 곳을 바라봅니다.

먼저 땅이 수확물을 내줍니다. 곡식이 자라고 열매가 맺힙니다. 사람들은 그 수확물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구합니다.

이것은 특별히 극적인 장면이 아닙니다. 바다가 갈라지거나 산이 흔들리는 사건도 아닙니다. 땅이 제때 수확물을 내주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익숙한 풍경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 풍경 속에서 하나님의 복을 발견합니다.

그런 다음 그의 시선은 땅끝까지 나아갑니다.

시인은 온 민족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하나님의 심판과 이끄심에서 찾습니다. 하나님은 특정한 민족의 이익만을 보장하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 백성을 공정하게 판단하시고 땅 위의 민족들을 이끄시는 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자신들만의 하나님으로 제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얼굴빛을 비추시기를 구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온 땅끝의 사람들이 그분을 경외하기를 구합니다. 그러나 그 빛을 자기들만을 위한 것으로 붙잡아 두지 않았습니다. 그 빛 아래서 경험한 하나님의 선하심이 온 땅에 알려지기를 바랐습니다.

하나님의 얼굴빛을 구하는 기도는 결국 모든 민족이 그분을 알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가 됩니다.

시편은 이 일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출발점에는 이미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선물이 놓여 있습니다. 「땅이 수확물을 내주었습니다.」

시인은 그 열매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받은 복이 그들만의 기쁨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작은 땅의 수확물에서 시작하여, 온 땅끝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날을 바라봅니다.

그것이 시편 67편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풍요로워진 땅 앞에 선 사람들이 자기들의 복을 구하면서도, 그 기도의 끝에는 아직 만나지 못한 땅끝의 사람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