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31장
이 장의 자리 · 24–43장 · 지혜의 찬양
멈출 줄 아는 사람
재물이 많으면 삶이 편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좋은 음식을 먹고, 필요한 것을 사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집회서 31장은 정반대의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재물이 사람의 잠을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집회서의 지혜자는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소비하는지만이 아니라, 소유와 욕망이 우리를 얼마나 지배하고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재물에서 음식으로, 음식에서 포도주로 대상은 달라집니다. 그러나 질문은 같습니다.
내게 좋은 것이 주어졌을 때, 나는 그것을 누릴 줄 아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그것에 사로잡히는 사람입니까?
재물을 모으는 수고와 가난을 견디는 수고
31장 첫머리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나란히 세웁니다.
재물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 몸이 야위고, 재물 걱정은 잠을 쫓아낸다.집회서 31:1 · 두루새김
소유가 많아지면 걱정도 많아질 수 있습니다. 더 모으려는 욕망뿐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는 불안도 사람을 붙잡습니다.
부자는 재물을 모으느라 애썼고, 쉴 때는 온갖 호화로운 것을 실컷 누린다.집회서 31:3 · 두루새김
가난한 사람은 쪼들리는 살림 속에서 애썼고, 쉴 때는 먹고살 것이 모자란다.집회서 31:4 · 두루새김
두 사람 모두 애썼습니다. 그러나 수고의 목적과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여기에는 가난을 아름답게 꾸미는 시선이 없습니다. 지혜자는 가난한 사람이 욕심이 적어서 행복하다거나,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노동의 결과가 처지에 따라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인정합니다.
부자는 일을 멈춰도 누릴 것이 있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휴식은 생계가 끊기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어도, 재물을 둘러싼 걱정이 그 풍요를 누리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대조는 전도서 5:12와도 통합니다. 그곳에서 전도자는 일하는 사람의 잠과 부자의 잠을 비교하면서, 풍족함이 반드시 편안한 잠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관찰합니다.
집회서가 지적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벌려는 욕망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실제로 먹고살 것이 필요하고, 그 필요를 채우고도 끝나지 않는 욕망이 있습니다. 지혜는 둘을 구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재물을 얼마나 모아야 충분할까요? 저자는 금액으로 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재물을 대하는 마음을 살핍니다.
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금을 따르지 않은 사람
금이 사람을 넘어뜨리는 이유
금을 사랑하는 사람은 의롭다는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고, 파멸을 뒤쫓는 사람은 자신이 파멸로 가득 찰 것이다.집회서 31:5 · 두루새김
이 절에서 먼저 살펴볼 것은 「사랑하는」과 「뒤쫓는」이라는 행동입니다. 저자는 단순히 금을 소유하는 상태가 아니라 금을 삶의 목표로 삼아 좇는 태도를 문제 삼습니다.
금에 열광하는 사람에게 금은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나무토막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누구나 금에 붙잡힐 것이다.집회서 31:7 · 두루새김
사람이 금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금이 사람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부유하면서도 흠이 없는 사람
흠이 없는 사람으로 드러나고 금을 좇아가지 않은 부자는 복이 있다.집회서 31:8 · 두루새김
여기서 「흠이 없는」은 그 사람이 평생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절대적인 선언이라기보다, 재물을 대하는 일에서 온전함이 드러난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어지는 10절이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금으로 시험을 받고도 온전한 사람으로 드러난 이가 누구냐? 그가 자랑거리가 되게 하여라. 법을 어길 수 있었는데도 어기지 않고, 악한 일을 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은 이가 누구냐?집회서 31:10 · 두루새김
저자가 특별하게 평가하는 것은 단지 유혹을 경험하지 않은 순수함이 아닙니다. 잘못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힘을 잘못 사용하지 않은 선택입니다.
이 점에서 부유한 사람의 의로움에는 특별한 시험이 따릅니다. 재물은 더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도울 기회도 많아질 수 있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단도 많아집니다.
집회서 2:5는 금이 불 속에서 시험받듯 사람이 시련 속에서 시험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31:10에서는 방향이 뒤집힙니다. 사람이 금으로 시험받습니다.
금을 시험하는 것은 불이지만, 사람을 시험하는 것은 그가 금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의 놀라운 일은 무엇이었는가
그가 누구냐? 우리는 그를 복되다고 할 것이다. 자기 백성 가운데서 놀라운 일들을 했기 때문이다.집회서 31:9 · 두루새김
「놀라운 일들」이라는 표현만 보면 대단한 업적이나 남다른 능력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문맥은 군사적 승리나 정치적 성공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재산은 든든해질 것이고, 모인 사람들은 그가 베푼 자선을 낱낱이 이야기할 것이다.집회서 31:11 · 두루새김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많은 금을 모았는지보다 그 재물로 무엇을 했는지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의로움은 단순히 남의 것을 빼앗지 않았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재물이 다른 사람을 위한 선행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 사람의 재산이 든든해진다는 말 역시 지혜문학의 복에 관한 선언으로 읽어야 합니다. 모든 의로운 부자가 반드시 경제적으로 번영한다는 보증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이야기를 마친 뒤 갑자기 푸짐하게 차린 식탁으로 장면을 옮깁니다. 앞에서는 부유한 사람이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말했다면, 이제는 그 풍요를 마주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살핍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의 「파멸을 뒤쫓는」이라는 표현은 그리스어 전승 사이에 차이가 있는 곳입니다. 두루새김처럼 파멸을 뒤쫓아 자신이 파멸로 가득 찬다는 읽기가 있고, 이득을 좇다가 그것에 마음을 빼앗긴다는 읽기도 있습니다. 한쪽은 탐욕이 가져오는 파괴를, 다른 쪽은 이익을 좇는 과정에서 길을 잃는 모습을 강조합니다. 두 읽기 모두 재물을 무분별하게 좇는 일이 사람을 그릇된 길로 이끈다는 문맥에 놓여 있습니다.
식탁에서 드러나는 사람의 마음
목구멍보다 먼저 열리는 눈
푸짐하게 차린 식탁에 앉았느냐? 그 앞에서 입을 크게 벌리지 말고, 「음식이 정말 많구나!」 하고 말하지 마라.집회서 31:12 · 두루새김
문제는 음식이 많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의 반응입니다. 저자는 탐욕스러운 사람의 모습을 크게 벌리는 입에서 시작해 눈과 손으로 옮겨 갑니다. 음식을 보고 탐내고, 손을 뻗어 차지하고, 다른 사람과 같은 그릇을 두고 밀치는 모습입니다.
악한 눈이 나쁘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지어진 것 가운데 눈보다 더 악한 것이 무엇이냐? 그 때문에 눈은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흘린다.집회서 31:13 · 두루새김
「악한 눈」은 단순히 시력이 나쁘거나 누군가를 무섭게 바라보는 눈이 아닙니다. 성경의 지혜 전통에서 눈은 탐욕이나 시기, 인색함이 드러나는 자리로 등장합니다. 사람은 눈으로 다른 사람의 몫을 보고 탐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충분히 주어진 것보다 남이 가진 것에 더 마음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눈길을 주는 음식에 손을 뻗지 말고, 같은 그릇에서 음식을 집으려 그와 서로 밀치지 마라.집회서 31:14 · 두루새김
눈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손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식탁은 함께 먹는 장소가 아니라 서로 차지하려는 경쟁의 장소가 됩니다.
당시의 공동 식사는 하나의 그릇에 담긴 음식을 함께 나누는 상황을 포함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같은 그릇」과 「서로 밀치지 마라」라는 표현은 바로 그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충돌을 구체적으로 그립니다.
이 장면에서 지혜로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뛰어난 식사 기술이 아닙니다. 자기 손을 멈추고 다른 사람의 몫을 알아보는 능력입니다.
이웃을 헤아리는 것이 식사 예법의 중심이다
네 처지에 비추어 이웃의 사정을 헤아리고, 무슨 일이든 깊이 생각하여라.집회서 31:15 · 두루새김
내가 어떤 대접을 받으면 불편할지, 무엇을 빼앗기면 속상할지, 다른 사람이 내 몫을 무시하면 어떤 기분이 들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요구하는 예의는 단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한 행동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나처럼 원하는 것이 있고, 불편함을 느끼며,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16–18절에 이어지는 세부 규칙도 이 원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사람답게 먹으라는 것은 자기 욕망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먹지 말라는 뜻이고, 남들보다 먼저 그만 먹으라는 것은 끝없이 자기 몫을 채우려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손을 뻗지 말라는 것은 자신이 언제나 우선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먹는 일조차 이웃과의 관계에서 분리되지 않습니다.
식탁에서 다른 사람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일에서도 자기 욕망을 우선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작은 자리에서 이웃을 헤아리는 태도는 삶의 다른 영역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신약의 고린도전서 11:20–22, 33에서도 공동 식사가 사람을 배제하고 수치스럽게 만드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가 등장합니다. 집회서의 직접적인 인용은 아니지만, 함께 먹는 일이 공동체의 관계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조금 더 깊이
13절의 마지막 문장은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흘린다」는 말은 눈물이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모습을 표현한 것일 수 있고, 탐욕스러운 눈이 무엇을 바라보든 불만과 괴로움을 낳는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문장의 정확한 의도를 하나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적게 먹는 사람이 더 넉넉할 수 있다
넉넉함을 결정하는 것은 양이 아니다
잘 배운 사람에게는 적은 양의 음식도 참 넉넉하다. 그는 잠자리에 누워서 숨을 헐떡이지 않는다.집회서 31:19 · 두루새김
보통 넉넉하다는 말은 소유하거나 소비하는 양이 많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적은 양의 음식도 참 넉넉하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더 먹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가 충분한지 압니다. 만족을 결정하는 것이 음식의 양만은 아닙니다.
알맞게 먹으면 건강하게 잠을 잔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기운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먹는 사람은 잠을 이루지 못해 괴로워하고, 토하고 설사하며 배앓이를 한다.집회서 31:20 · 두루새김
앞에서는 재물 걱정이 잠을 쫓아냈습니다. 여기서는 지나치게 먹는 일이 잠을 방해합니다. 두 경우 모두 원인은 다르지만, 욕망을 적절히 다루지 못할 때 편안한 휴식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됩니다.
물론 19–20절은 건강에 관한 고대의 생활 지혜이기도 합니다. 당시에도 지나치게 먹으면 몸에 부담을 주고 잠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억지로 음식을 먹었다면, 먹는 도중에 일어나라. 그러면 편안해질 것이다.집회서 31:21 · 두루새김
이것을 오늘날의 의학적 처방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19–21절의 맥락에서는 무리한 식사로 몸을 괴롭히지 말라는 교훈이 중심입니다.
얘야, 내 말을 듣고 나를 업신여기지 마라. 결국 너는 내 말이 맞는 줄 알게 될 것이다.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부지런하여라. 그러면 어떤 병도 네게 닥치지 않을 것이다.집회서 31:22 · 두루새김
이것은 지혜자가 바른 생활의 유익을 강조하는 표현이지, 절제하며 사는 사람은 어떤 질병도 겪지 않는다는 의학적 보증이 아닙니다. 질병을 겪는 사람이 반드시 생활을 잘못했다는 의미로 읽어서도 안 됩니다.
먹는 사람에서 먹이는 사람으로
그런데 23절에서 관심의 방향이 바뀝니다.
음식을 넉넉히 내놓는 사람을 사람들의 입이 칭찬할 것이고, 그가 훌륭하다는 증언은 믿을 만하다.집회서 31:23 · 두루새김
절제만 강조하면 지혜로운 식사의 모습이 그저 음식을 적게 먹는 데 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원하는 것은 그것보다 넓습니다. 자신이 먹을 양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음식을 내놓는 데 인색한 사람을 두고 마을 사람들이 투덜거릴 것이고, 그의 태도가 나쁘다는 증언은 정확하다.집회서 31:24 · 두루새김
두 경우 모두 공동체가 그 사람의 행동을 증언합니다. 11절에서 모인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이 베푼 자선을 이야기했던 것과도 통합니다. 재물은 개인의 소유물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은 공동체가 경험하는 현실이 됩니다.
잠언 22:9도 이와 가까운 지혜를 보여 줍니다. 그곳에서는 자기 음식을 가난한 사람과 나누는 사람을 복되다고 말합니다. 특히 히브리어 문면의 좋은 눈이라는 표현은 집회서 31:13의 「악한 눈」과 흥미로운 대조를 이룹니다. 한쪽 눈은 남의 몫을 탐내고, 다른 쪽 눈은 자신의 몫을 나눕니다.
식탁의 풍요는 음식이 얼마나 많이 놓였는지가 아니라, 그 음식 앞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조금 더 깊이
일부 그리스어 전승은 식사 도중에 일어나 멈추는 것으로 읽을 수 있는 표현을 보존합니다. 두루새김의 「먹는 도중에 일어나라」는 이 읽기를 따릅니다. 다른 그리스어 본문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멀리 가서 토하라는 표현이 나타납니다. 어느 문면을 따르느냐에 따라 고대의 식사 중단 또는 과식 후 대처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달라집니다.
포도주는 기쁨을 위해 지어졌지만, 마음을 시험하기도 한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왜 자랑거리가 되는가
포도주를 잘 마신다고 사내다움을 뽐내지 마라. 포도주는 많은 사람을 망하게 했기 때문이다.집회서 31:25 · 두루새김
이런 경고는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경쟁과 과시의 문화에 초점을 맞춥니다. 얼마나 많이 마실 수 있는지, 남보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를 보여 주려는 마음은 술을 즐거움의 수단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도구로 바꾸어 놓습니다.
강철을 담금질할 때 불가마가 그 쇠를 시험하듯, 거만한 사람들이 다툴 때 포도주는 그들의 마음을 시험한다.집회서 31:26 · 두루새김
앞서 10절에서는 금이 사람을 시험했습니다. 이제는 포도주가 사람의 마음을 시험합니다.
금 앞에서는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을 수 있음에도 빼앗지 않는지가 드러납니다. 포도주 앞에서는 기분이 들뜨고 자신감이 커질 때에도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포도주를 금지하지 않는 이유
바로 다음 절에서 저자는 뜻밖에도 포도주를 적극적으로 긍정합니다.
네가 알맞게 마신다면 포도주는 사람에게 생명과도 같다. 포도주가 부족한 사람에게 무슨 삶이 있겠느냐? 포도주도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려고 지어진 것이다.집회서 31:27 · 두루새김
이것은 창조 세계를 긍정하는 이스라엘의 지혜 전통과 맞닿아 있습니다. 시편 104:14–15는 하나님이 땅에서 먹을 것을 나게 하시며,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도 주신다고 노래합니다.
집회서 31장은 하나님을 직접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포도주가 「지어진 것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이 즐거움을 단순한 인간의 발명품이 아니라 창조 세계 안에서 주어진 선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저자의 가르침은 즐거움 자체를 의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쁨을 위해 주어진 것이 어떻게 기쁨을 파괴할 수 있는지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다만 「포도주가 부족한 사람에게 무슨 삶이 있겠느냐?」라는 수사적인 질문을 모든 사람이 포도주를 마셔야 한다는 명령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당시의 식사와 축제 문화에서 포도주가 갖는 즐거움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같은 포도주가 기쁨도, 쓰라림도 가져온다
제때에 알맞게 마시는 포도주는 마음을 즐겁게 하고 영혼을 기쁘게 한다.집회서 31:28 · 두루새김
시비와 다툼 속에서 많이 마시는 포도주는 영혼을 쓰라리게 한다.집회서 31:29 · 두루새김
28절에는 「제때에」, 「알맞게」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29절에는 「많이」, 「시비와 다툼 속에서」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따라서 절제는 단순히 마시는 양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언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사람들과, 어떤 상황에서 마시는지도 중요합니다.
술에 취하면 어리석은 사람의 분노가 커져 그를 걸려 넘어지게 한다. 힘은 줄어들고 상처는 늘어난다.집회서 31:30 · 두루새김
여기서 상처는 실제 몸의 상처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다툼과 충돌이 술 취함의 결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몸의 상처에만 의미를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맥에는 사람들 사이의 분노와 모욕도 함께 나타납니다.
술을 마시면 강해진다는 과시는 결국 자신을 다스리는 힘을 잃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잠언 23:1–3은 권력자의 식탁에서 탐욕을 경계하고, 23:29–35는 술에 지나치게 빠져 발생하는 다툼과 상처를 묘사합니다. 집회서 31장은 이러한 경고를 이어받으면서도, 알맞게 누리는 기쁨과 이웃을 배려하는 관계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마지막 권고가 음주량이 아니라 이웃에 관한 이유
포도주를 함께 마시는 자리에서 이웃을 나무라지 말고, 그가 즐거워할 때 그를 업신여기지 마라. 그에게 모욕하는 말을 하지 말고,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며 괴롭히지 마라.집회서 31:31 · 두루새김
누군가 즐거워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모욕하는 일이 있습니다. 기쁜 자리에서도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려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바로 그런 태도를 경계합니다.
마지막의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며 괴롭히지 마라」 역시 다른 사람을 압박하는 행동을 금합니다.
이 구절은 잘못된 행동을 어떤 상황에서도 지적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인 금지로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포도주를 함께 나누며 기뻐하는 특정한 자리에서 상대를 함부로 나무라거나 모욕하고 괴롭히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서로의 즐거움을 존중하면서 식탁을 함께 나누기를 바랍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은 그 요구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밝히지 않아, 돈을 갚으라는 요구를 포함한 강압적인 청구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빚을 갚으라는 독촉으로 풀어 옮겼습니다. 반드시 술을 더 마시라고 강요하는 장면으로 한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맺음말 — 마지막에 남는 것은 이웃이다
처음에는 자기 재물을 지키느라 잠 못 이루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다른 사람의 기쁨을 지켜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으로 넉넉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자기 몫으로 차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앞에 놓인 것에서 만족하고 이웃의 몫을 남겨 둘 줄 아는 사람입니다.
푸짐하게 차린 식탁에는 여전히 많은 음식이 놓여 있습니다. 포도주도 있고, 함께 앉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앞에서 서둘러 손을 뻗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즐기면서도 옆 사람을 바라보고, 그 사람에게도 기쁨의 자리가 남아 있도록 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