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46장

이 장의 자리 · 44–50장 · 조상들을 기림

칼을 든 손과 빼앗지 않은 손

집회서 46장은 한 사람의 손에서 시작하여 다른 사람의 손으로 끝납니다. 처음에는 여호수아가 손을 들어 큰 칼을 겨눕니다. 마지막에는 사무엘이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며 어느 누구에게서도 재물을 빼앗지 않았다고 증언합니다. 한 사람의 손에는 무기가 들려 있고, 다른 사람의 손에는 부당하게 받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집회서가 기억하려는 위대함은 단순히 무엇을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이루는 동안 누구를 따랐느냐에 있습니다.

앞 장이 모세와 아론을 통해 이스라엘의 공동체와 예배가 세워지는 과정을 돌아보았다면, 46장은 그 공동체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재판관들의 시대를 지나 왕이 다스리는 시대로 나아가는 역사를 다룹니다. 그러나 역사를 순서대로 요약하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몇몇 인물의 삶에서 특정한 순간을 꺼내어,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 백성을 돌보셨으며 사람들이 어떻게 그분에게 응답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846장 본문 읽기 →

여호수아 — 그의 이름이 가리키는 구원

집회서 46:1–6 본문 →

여호수아의 위대함은 그의 이름에 있습니다

46장은 여호수아를 전쟁에 강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도 곧바로 그의 이름에 주목합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전쟁에서 강했고, 예언하는 일에서 모세의 뒤를 이었다. 그는 자기 이름에 걸맞게 하나님께서 뽑으신 이들을 구원하는 큰 인물이 되었다. 이스라엘에게 땅을 물려주려고 맞서 일어난 원수들을 벌했다.집회서 46:1 · 두루새김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예호슈아로, 「여호와야훼가 구원하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민수기 13:16에 따르면 모세는 본래 호세아라고 불리던 눈의 아들을 여호수아라고 불렀습니다. 집회서는 이 이름을 단순한 인물 소개로 지나가지 않습니다. 그의 생애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로 사용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말합니다. 여호수아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물려받는 땅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우연히 주어지는 재산이 아닙니다. 앞선 관계와 약속에 근거하여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들어간 땅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어진 약속에서 출발합니다(창세기 12:7; 15:18–21).

여호수아의 임무는 그 약속이 현실이 되도록 백성을 이끄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군사적 능력은 중요한 수단이었지만, 그 능력 때문에 땅을 받을 권리가 생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2절에서는 여호수아가 손을 들어 무기를 겨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여호수아 8:18–26에서 아이 성을 공격할 때 무기를 들어 신호를 보내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호수아 본문에서는 단창을 들지만, 집회서는 이를 큰 칼로 표현하여 전사의 당당한 모습을 강조합니다.

그보다 앞서 누가 그처럼 굳게 섰느냐? 주 자신께서 적들을 몰고 오셨기 때문이다.집회서 46:3 · 두루새김

여호수아가 굳게 설 수 있었던 이유를 그의 뛰어난 판단력이나 군사적 준비에서 찾지 않습니다. 전쟁의 흐름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에게서 찾습니다.

해가 물러서고 하늘에서 우박이 쏟아집니다

여호수아를 통해 해가 뒤로 물러나고, 하루가 이틀처럼 되지 않았느냐?집회서 46:4 · 두루새김

여호수아 10:12–14에서 여호수아는 기브온에서 벌어진 전투 중에 해와 달이 멈추기를 요청합니다. 그 이야기에서는 해가 하늘 가운데 머물러 평소와 달리 길어진 하루가 묘사됩니다.

집회서는 이 장면을 「해가 뒤로 물러나고」라고 표현하고, 하루가 이틀처럼 되었다고 노래합니다. 원래 이야기의 특별함을 더욱 인상적인 시의 말로 되살린 것입니다.

원수들이 사방에서 여호수아를 짓누를 때, 그는 지극히 높은 통치자께 부르짖었다. 위대하신 주께서는 강력한 우박 덩어리로 여호수아와 그 백성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다.집회서 46:5 · 두루새김

강한 사람에게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옵니다. 여호수아의 위대함은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여호수아 10:11에는 이스라엘과 싸우던 사람들이 큰 우박에 맞아 죽었으며, 이스라엘의 칼에 죽은 사람보다 우박에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쟁의 승리를 이스라엘 군대가 이룬 성과로만 설명할 수 없도록 만드는 장면입니다.

그 민족 위에 전쟁을 쏟아부으시고, 내리막에서 맞서던 자들을 멸망시키셨다. 여러 민족이 그들의 갑옷과 무기를 알고, 여호수아의 전쟁이 주 앞에서 벌어지는 것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여호수아는 다스리시는 분의 뒤를 따랐기 때문이다.집회서 46:6 · 두루새김

그렇다고 이 서술을 모든 시대의 전쟁을 승인하는 말로 넓혀 읽어서는 안 됩니다. 집회서는 이스라엘의 땅과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특정한 구약의 역사적 맥락에서 여호수아의 전쟁을 돌아봅니다.

군대를 이끄는 사람이 사실은 누군가의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여호수아는 지도자였지만, 여호수아 자신에게는 하나님이 지도자이셨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그들의 갑옷과 무기」라는 표현은 두 방향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적대하는 민족들 자신의 무장을 가리킨다면, 아무리 무장해도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스라엘의 무장을 가리킨다면, 이스라엘이 사용하는 힘의 뒤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스어에서 「그들의」에 해당하는 말만으로 어느 쪽인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 가장 어려운 싸움은 광야에서 벌어졌다

집회서 46:7–10 본문 →

싸워야 할 상대가 자기 백성일 때

저자는 여호수아의 승리를 충분히 찬양한 뒤 갑자기 모세의 시대로 돌아갑니다. 아직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입니다.

여호수아와 여푼네의 아들 갈렙은 모세의 시대에도 자비를 베풀었다. 원수 앞에 맞서고, 백성이 죄를 짓지 못하게 막으며, 악한 불평을 가라앉혔다.집회서 46:7 · 두루새김

이 대목의 배경은 민수기 13–14장입니다. 가나안을 살펴보고 돌아온 사람들은 그 땅이 풍요롭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강하고 도시들이 튼튼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백성은 이 말을 듣고 두려워합니다. 결국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이집트로 돌아가자고까지 말합니다.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른 판단을 내립니다.

그들은 땅이 좋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합니다(민수기 14:6–9). 그러나 백성은 그들을 돌로 치려고 합니다(민수기 14:10).

앞 단락의 여호수아는 가나안의 적들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호수아와 갈렙이 맞선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불신과 반역입니다.

그들은 백성을 적대하여 무너뜨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약속에서 등을 돌리지 않도록 막으려 했습니다. 민수기 14장의 맥락에서 그들의 저항은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을 피하게 하려는 행동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수의 의견에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칭찬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판단했습니다. 그들의 신실함은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과 눈앞의 상황을 함께 바라보려는 태도에서 나타났습니다.

걸어서 싸우는 군사 육십만 명 가운데서 그들 두 사람만 살아남았다. 백성을 그들이 물려받을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게 하려는 것이었다.집회서 46:8 · 두루새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살아남았다는 말은 광야의 모든 사람 가운데 문자 그대로 두 사람만 생존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민수기 14:29–30의 맥락에서, 이집트를 떠날 당시 헤아린 성인 세대 중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예외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보다 어린 새로운 세대도 땅에 들어갔습니다.

저자가 이 거대한 숫자와 두 사람을 대비하는 이유는 단순히 두 사람의 용기를 칭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한 세대의 대다수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했을 때에도, 하나님을 따르는 길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늙은 갈렙이 높은 곳에 올라섭니다

이제 이야기의 중심은 갈렙에게 옮겨 갑니다.

주께서는 갈렙에게 힘을 주셨고, 그 힘은 그가 늙을 때까지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갈렙은 그 땅의 높은 곳에 올라섰고, 그의 후손은 물려받을 땅을 차지했다.집회서 46:9 · 두루새김

이 장면은 여호수아 14:6–14와 15:13–14를 배경으로 합니다. 가나안을 살펴볼 때 이미 성인이었던 갈렙은 오랜 광야 생활을 지나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젊은 시절에 받은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자신이 여전히 싸울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아낙 사람들이 사는 산지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갈렙이 요구한 땅은 편안하게 차지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강한 사람들이 살고 튼튼한 도시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바로 오래전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두려워했던 종류의 땅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강한 적을 보고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늙어서도 그는 여전히 같은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긴 세월과 광야의 실패, 세대의 교체가 그의 판단을 바꾸지 못한 것입니다.

갈렙이 오래 버틴 것은 사실입니다. 동시에 그의 삶은 하나님이 오래도록 힘을 주신 역사이기도 합니다. 갈렙이 얻은 것은 한 노인의 마지막 승리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 이어지는 유산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주의 뒤를 따라 걷는 일이 좋은 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집회서 46:10 · 두루새김

앞서 여호수아에 관하여 사용한 「뒤를 따랐기」라는 말이 「뒤를 따라 걷는」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6절에서는 여호수아가 다스리시는 분의 뒤를 따랐고, 10절에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주의 뒤를 따라 걷는 일이 좋다고 말합니다.

영웅 한 사람의 신실함이 공동체 전체를 향한 초대가 되는 것입니다.

갈렙 자신이 그 길에서 오랜 기다림을 겪었고, 반대하는 백성에게 돌에 맞을 위기까지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길이 좋다고 말하는 까닭은 그 끝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유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을 만나지 않는 길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버리지 않는 길입니다.

재판관들 — 꽃피는 뼈와 대물림되는 이름

집회서 46:11–12 본문 →

저자는 왜 재판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지 않습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의 이야기가 끝나자 저자는 재판관들의 시대로 넘어갑니다.

마음으로 배신하지 않고 주에게서 돌아서지 않은 재판관들도, 저마다 복을 빌어 주는 말 속에 자기 이름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집회서 46:11 · 두루새김

사사기에는 옷니엘, 에훗, 드보라, 기드온, 입다, 삼손을 비롯한 여러 재판관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을 구원한 놀라운 업적과 함께 적지 않은 실패도 보여 줍니다. 집회서는 이들을 모두 똑같이 칭찬하지 않습니다.

원문에서는 이 배신을 음행에 빗대어 말합니다. 사사기 2:17은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따라가는 행위를 음행에 비유합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영적 배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뜻을 「마음으로 배신하지 않고」로 옮겼습니다.

재판관들의 시대에 이 문제는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고, 억압을 당한 뒤 도움을 부르짖으며, 구원받은 후에도 다시 하나님에게서 돌아섭니다(사사기 2:11–19). 이를테면 기드온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미디안을 물리쳤지만, 그가 만든 에봇은 이스라엘이 잘못된 예배로 빠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사사기 8:27).

재판관이라는 지위 자체가 신실함을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백성을 구원하는 데 사용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은 권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권력을 행사하는 동안 하나님에게 충실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의 뼈가 다시 꽃피기를

그들의 뼈가 누워 있는 자리에서 다시 꽃피기를 바란다. 영광을 얻은 그들의 이름이 아들들에게 대대로 이어지기를 바란다.집회서 46:12 · 두루새김

뼈는 이미 생명이 떠난 몸을 떠올리게 합니다. 반대로 꽃은 생명과 아름다움, 새롭게 시작되는 성장을 나타냅니다.

저자는 가장 메마른 것을 나타내는 뼈에서 다시 꽃이 피기를 바랍니다.

이 표현을 곧바로 실제 몸의 부활에 관한 교리적 선언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뒤따르는 문장이 그들의 이름이 아들들에게 대대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문맥의 중심은 그들의 기억과 명예가 사라지지 않는 데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뼈가 누워 있는 자리에서 다시 꽃피기를」 바라는 모습 자체는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의 희망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만으로 저자가 구체적인 부활의 방식이나 시점을 설명한다고 단정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에게 땅을 물려주었습니다. 갈렙의 후손은 그 땅을 차지했습니다. 이제 신실한 재판관들의 아들들은 그들의 이름을 이어받기를 바랍니다.

땅만 대물림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위해 신실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도 다음 세대에 전해져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것만으로 완성된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그 땅에서 하나님을 따르며 살아가는 삶을 세대마다 새롭게 배워야 했습니다.

사무엘 — 왕을 세웠지만 왕에게 속하지 않은 사람

집회서 46:13–15 본문 →

왕을 세운 예언자

자기의 주께 사랑받은 주의 예언자는 왕을 세웠고, 자기 백성을 다스릴 지도자들에게 기름을 부었다.집회서 46:13 · 두루새김

이 인물은 사무엘입니다.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본문은 그의 이름을 밝히며, 왕을 세우고 지도자들에게 기름을 부었다는 사건도 그를 가리킵니다.

사무엘은 재판관들의 시대와 왕이 다스리는 시대 사이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재판관으로 백성을 다스렸고, 예언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으며,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사무엘상 10:1; 16:13).

사무엘상 8장에서 백성은 다른 민족들처럼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합니다. 사무엘은 이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백성의 요구를 자신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와 연결하십니다(사무엘상 8:6–9).

사무엘상에서 왕의 통치는 하나님의 허락 아래 시작되지만, 왕에게 제한 없는 권위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왕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며, 그 권력은 하나님의 판단 아래 놓여 있습니다(사무엘상 12:13–15).

사무엘은 왕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일을 맡았지만, 왕의 뜻을 하나님의 뜻보다 높이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을 신뢰할 수 있었던 까닭

그는 주의 율법에 따라 모인 백성을 재판했고, 주께서는 야곱의 자손을 찾아 돌보셨다.집회서 46:14 · 두루새김

사무엘의 재판은 자신의 기분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이루어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 기준은 「주의 율법」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공동체를 찾아 돌보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그의 믿음직함으로 그가 예언자임이 확인되었고, 그 믿음직함으로 환시를 전하는 믿을 만한 사람으로 알려졌다.집회서 46:15 · 두루새김

그가 하나님에게 신실했고, 그의 예언이 믿을 만하다고 인정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무엘상 3:19–21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는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으며, 그의 말이 헛되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예언자로 세워졌음을 알게 됩니다.

예언자의 권위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많이 알고 있다는 데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고 신실하게 전하는 데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무엘에게도 백성이 감당할 수 없는 위기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사무엘의 제물과 하늘의 천둥

집회서 46:16–18 본문 →

여호수아의 우박과 사무엘의 천둥

원수들이 사방에서 그를 짓누를 때, 그는 젖먹이 어린 양을 제물로 바치며 다스리시는 주께 부르짖었다.집회서 46:16 · 두루새김

사무엘의 장면은 사무엘상 7:5–11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미스바에 모여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러 올라옵니다.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빠지고 사무엘에게 하나님께 계속 부르짖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사무엘은 젖먹이 어린 양을 번제로 바치며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합니다. 바로 그때 블레셋 군대가 접근하지만, 하나님이 큰 천둥으로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십니다.

여호수아도 원수들이 사방에서 짓누를 때 부르짖었고, 사무엘도 같은 상황에서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수아의 기도에는 우박이 내렸고, 사무엘의 기도에는 하늘에서 천둥이 울렸습니다.

사무엘상 7장에서는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버리고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회개의 과정이 먼저 나타납니다(사무엘상 7:3–6). 제사는 그러한 회개와 간구를 하나님께 표현하는 자리입니다.

이스라엘을 구한 것은 제물을 바치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십니다

주께서는 하늘에서 천둥을 울리시고, 큰 울림으로 자기 목소리를 들리게 하셨다.집회서 46:17 · 두루새김

사무엘상 7장의 천둥이 여기서는 하나님의 「목소리」로 묘사됩니다. 이는 시편 29편에서 천둥을 하나님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전통과 연결됩니다. 시편 29:3–9에서 하나님의 목소리는 물 위에 울리고, 백향목을 부러뜨리고, 광야를 뒤흔드는 강력한 소리로 묘사됩니다.

또 두로 사람들의 지도자들과 블레셋의 모든 우두머리를 없애 버리셨다.집회서 46:18 · 두루새김

사무엘에 관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공개적인 장면은 전쟁도 제사도 아닙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백성 앞에 내놓고 평가받는 순간입니다.

조금 더 깊이

그리스어 본문은 실제로 두로 사람들을 뜻하는 튀리온(Τύριος)을 사용하지만, 전해지는 히브리어 본문에는 「원수의 지도자들」이라는 읽기가 있습니다. 사무엘상 7장의 해당 사건에는 두로와 벌인 전쟁이 등장하지 않으므로, 이 구절을 사무엘이 두로의 지도자들까지 물리쳤다는 별도의 역사 기록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무엘의 마지막 증언 — 신발 한 켤레도 취하지 않은 지도자

집회서 46:19 본문 →

그는 영원히 잠들 때가 오기 전에 주와 기름부음 받은 이 앞에서 증언했다. 「저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재물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신발조차 받은 적이 없습니다.」 아무도 그를 고발하지 않았다.집회서 46:19 · 두루새김

이 말은 사무엘상 12:1–5에 나오는 사무엘의 공개적인 증언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울이 왕으로 세워진 뒤, 사무엘은 백성에게 자신이 누군가의 소나 나귀를 빼앗은 적이 있는지, 사람을 억압하거나 속인 적이 있는지, 뇌물을 받아 재판을 왜곡한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백성은 그가 자신들을 속이거나 억압하지 않았으며, 누구에게서도 무엇을 빼앗지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장면을 집회서는 「신발조차 받은 적이 없습니다」라는 표현으로 압축합니다. 사무엘상 12장에서 하나씩 나열하는 소유물과 부패 행위가 아주 작은 재물까지도 부당하게 받지 않았다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바뀐 것입니다.

여기서 「기름부음 받은 이」는 사울 왕입니다. 사무엘상 12:3의 증언은 하나님과 새로 세워진 왕 앞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는 백성을 오랫동안 다스린 지도자입니다. 누구보다 많은 일을 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자신의 헌신을 내세워 존경을 요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내놓은 것은 업적의 목록이 아닙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잘못한 일이 있다면 증언하라는 요청입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지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정확히 전하는 것과,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공정하게 대하는 것은 별개의 덕목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려 했고, 그 정직함은 사람들의 재산과 권리를 존중하는 삶으로 드러났습니다.

왕에게 기름을 부은 사람이 왕보다 자유로울 수 있었던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왕의 권력을 이용하여 재물을 얻거나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는 사람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지도력은 사람들을 자기 소유처럼 다루지 않습니다.

사무엘의 마지막 예언 — 왕이 듣고 싶지 않았던 말

집회서 46:20 본문 →

그는 죽은 뒤에도 예언하여 왕에게 닥칠 죽음을 알려 주었다. 백성이 율법을 어기는 죄를 없애려고, 땅에서 목소리를 높여 예언했다.집회서 46:20 · 두루새김

그 배경은 사무엘상 28:3–19입니다. 사무엘이 죽은 뒤, 사울은 블레셋 군대와의 전쟁을 앞두고 두려워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물었지만 자신이 기대한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결국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사무엘을 불러 달라고 요청합니다.

사무엘상은 그때 사무엘이 나타나 사울에게 말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그가 전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심판의 선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서 나라를 빼앗아 다윗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다시 알리고,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게 될 것을 예고합니다(사무엘상 28:16–19).

그러나 이것이 죽은 이의 영을 불러 묻는 신접 행위를 정당화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명기 18:10–12는 죽은 자에게 묻는 행위를 금하며, 역대기상 10:13–14는 사울이 신접한 자에게 물은 것을 그의 불신실함과 연결합니다. 집회서가 칭찬하는 것은 사울이 선택한 방법이 아니라 사무엘이 전한 예언입니다.

살아 있을 때에도 그는 사울의 불순종을 꾸짖었습니다(사무엘상 15:22–23). 마지막으로 기억되는 예언에서도 그는 사울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뜻대로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사무엘의 예언자로서의 신실함은 바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의 역할은 왕이 원하는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왕이 놓인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왕을 세우는 권위와 왕을 꾸짖는 권위가 모두 한 사람에게서 나타납니다. 사무엘은 왕국을 위해 봉사했지만 왕국 자체를 가장 높은 기준으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은 없애려는 것을 「백성이 율법을 어기는 죄」로 풀어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사무엘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그 죄를 없앴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울에게 내려질 심판을 선포함으로써 율법을 어기는 죄가 끝나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는 하나님의 심판을 드러내고 악을 없애려는 예언의 목적을 요약한 표현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만으로 사울의 죽음이 이스라엘의 죄를 씻었다거나,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가 실제로 용서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무엘상 28장의 예언 자체는 사울과 이스라엘에게 닥칠 패배와 죽음을 알립니다.

맺음말 — 남긴 것과 취하지 않은 것

집회서 46:1–20 본문 →

여기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유산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땅이고, 어떤 것은 이름이며, 어떤 것은 신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사람의 위대함은 그가 무엇을 이루었는지만이 아니라, 그 일을 이루는 동안 무엇을 끝까지 지켰는지에서도 드러납니다.

저자는 여호수아의 큰 칼을 기억하고, 사무엘의 기도에 응답한 하늘의 천둥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처럼 놀라운 장면들 사이에 사무엘의 소박한 증언을 놓아둡니다. 「저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재물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신발조차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의 손에는 여호수아의 큰 칼이 들려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손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그 손으로 백성을 섬겼고, 제물을 바쳤으며, 왕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마친 뒤에는 그 손으로 남의 것을 부당하게 움켜쥐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손에 들린 칼과 사무엘의 손에 남지 않은 신발 한 켤레. 집회서 46장은 그 두 모습을 함께 기억하게 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