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47장
이 장의 자리 · 44–50장 · 조상들을 기림
넘친 지혜와 지키지 못한 마음
하나님을 위해 성소를 세운 왕이 어떻게 자기 나라를 무너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더욱 뜻밖인 것은 두 왕에 대한 평가입니다. 다윗도 죄를 지었습니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의 삶을 짓밟은 심각한 잘못이 있었습니다. 반면 솔로몬은 지혜로 이름을 떨쳤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집을 세웠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의 이야기는 죄의 용서와 영원한 언약으로 끝나고, 솔로몬의 이야기는 왕국의 분열과 추방으로 이어집니다.
이 장은 죄 없는 사람과 죄 있는 사람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받은 영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분과의 관계를 끝까지 어떻게 지켜 나갔는지를 살핍니다.
나단과 다윗 — 특별히 선택된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
다윗보다 먼저 등장하는 나단
47장은 다윗이 아니라 나단으로 시작합니다.
이 예언자와 함께 나단이 일어나 다윗 시대에 예언했다.집회서 47:1 · 두루새김
사무엘하 7장에서 그는 다윗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전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 집을 짓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다윗을 위해 한 집, 곧 오래 이어질 왕조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무엘하 12장에서는 같은 나단이 다윗의 죄를 책망합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야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한 예언자가 왕에게 약속과 책망을 모두 전한 것입니다.
다윗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은 그의 모든 행동을 옳다고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선택받은 왕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고 심판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물에서 따로 떼어 놓은 기름 (2절)
화목 제물에서 기름을 따로 떼어 놓듯, 다윗도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따로 세워졌다.집회서 47:2 · 두루새김
레위기 3장에 따르면 화목 제물을 드릴 때 제물의 특정한 기름 부위는 다른 부분과 구별하여 제단에서 불살랐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몫이었습니다(레위기 3:3–5, 16).
다윗은 특별히 구별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구별됨은 자신을 위한 특권이기 전에 하나님께 속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왕은 많은 사람보다 높은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높은 지위가 왕을 하나님에게서 독립시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선택하신 분에게 책임져야 할 이유가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첫 문장의 그리스어는 확인할 수 있는 주요 본문에서 메타 투톤, 「그 사람 뒤에」로 나타납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를 「이 예언자와 함께」로 옮겼습니다. 이는 메타 투투, 「그 사람과 함께」에 해당하는 읽기이며, 확인되는 주요 그리스어 본문과는 격이 다릅니다. 따라서 확인되는 그리스어 본문을 따르면 앞 장의 사무엘 다음에 나단이 등장했다는 시간적 연결이 자연스럽습니다.
다윗의 물맷돌 — 한 사람의 승리가 백성의 수치를 없애다
사자와 곰을 장난감처럼 대하다 (3절)
그는 새끼 염소와 놀듯 사자와 놀았고, 어린 양과 놀듯 곰과 놀았다.집회서 47:3 · 두루새김
다윗의 용기를 묘사하는 이 문장은 과장된 시적 표현입니다. 사무엘상 17:34–37에서 다윗은 자신이 아버지의 양들을 돌볼 때 사자와 곰이 나타나 양을 물어 가면 뒤쫓아 가서 양을 구해 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그 경험을 근거로 블레셋 사람 골리앗과도 싸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무엘상에서 다윗은 사자와 곰에게서 양을 지켜 주신 하나님이 자신을 블레셋 사람에게서도 구해 주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사무엘상 17:37). 그에게 과거의 경험은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믿게 만드는 근거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게 만드는 근거였습니다.
거인을 쓰러뜨리기 전에 무너뜨려야 할 것이 있었다 (4–5절)
그는 젊을 때 물맷돌을 든 손을 들어 골리앗의 거만함을 쓰러뜨리고, 그 거인을 죽여 백성에게서 수치를 없애지 않았느냐?집회서 47:4 · 두루새김
사무엘상 17장에서 골리앗은 단순히 몸집이 크고 무기가 좋은 전사가 아닙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군대를 조롱하고, 결국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사람입니다(사무엘상 17:10, 26, 43–45).
그의 도전은 이스라엘 전체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사울과 백성은 두려워하고, 누구도 나서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은 한 사람의 군사적 승리인 동시에, 두려움과 모욕 아래 놓였던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집회서는 이러한 전투의 의미를 다윗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에서 찾습니다.
그가 지극히 높은 주께 부르짖었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그의 오른손에 힘을 주시어 전쟁에서 그 사람을 죽이게 하셨다. 주께서는 자기 백성의 뿔을 높이실 것이다.집회서 47:5 · 두루새김
사무엘상 17장에서 다윗이 전투 직전에 따로 기도를 드렸다는 장면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만군의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나아간다고 선언합니다(사무엘상 17:45–47). 집회서는 그 신뢰를 하나님께 부르짖는 행동으로 요약합니다.
수만이라는 찬사가 들려오다 (6–7절)
이렇게 백성은 ‘수만’이라는 말로 다윗을 높이 기렸다. 그에게 영광의 왕관이 주어질 때, 주의 복을 들어 그를 칭송했다.집회서 47:6 · 두루새김
「수만」이라는 표현은 사무엘상 18:7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노래를 떠올리게 합니다. 사울에게는 수천을, 다윗에게는 수만을 돌리는 노래였습니다. 그 노래는 다윗이 백성에게 얼마나 크게 인정받았는지를 보여 주지만, 사무엘상에서는 사울의 질투와 적대감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사무엘상 18:8–9).
한 사람을 높이는 노래가 다른 사람에게는 위협으로 들린 것입니다.
집회서는 이 갈등을 다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윗이 받은 영광과 왕관을 하나님이 주신 복과 연결합니다.
7절에서는 다윗이 사방의 원수들을 없애 버리고 블레셋 사람들의 뿔을 부수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다윗이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안정시키고 주변의 군사적 위협을 눌러 이긴 역사를 요약합니다(사무엘하 8:1–14).
다윗이 적을 물리친 뒤 무엇을 했는지로 시선이 옮겨 갑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성경의 시적 언어에서 뿔은 힘과 위세를 상징합니다. 동물의 뿔이 공격하고 자신을 방어하는 힘을 나타내듯, 백성의 뿔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들의 힘과 명예가 회복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뿔의 이미지는 곧 반복됩니다. 7절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의 뿔이 부서지고, 11절에서는 다윗의 뿔이 영원히 높아집니다.
다윗의 노래 — 승리의 영광이 하나님께 돌아가다
다윗은 혼자 노래하지 않았다 (8–10절)
다윗은 자기가 하는 모든 일에서, 거룩하고 지극히 높은 분께 영광을 돌리는 말로 감사했다. 온 마음으로 자기를 만드신 분을 찬양하고 사랑했다.집회서 47:8 · 두루새김
앞에서는 백성이 다윗을 찬양했습니다. 이제는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편에 다윗의 이름이 붙은 노래들이 많다는 사실도 이러한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시편의 여러 노래에서 다윗은 두려움과 위험, 죄책감과 회복, 감사와 기쁨을 하나님 앞에 표현하는 인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집회서는 다윗 개인의 찬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는 제단 맞은편에 찬양을 부르는 사람들을 세워, 그들의 목소리로 아름다운 노랫가락을 울리게 했다.집회서 47:9 · 두루새김
역대상 15–16장과 25장에는 다윗이 레위 사람들을 통해 노래와 악기 연주를 조직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집회서는 이러한 전통을 배경으로 그가 제단 맞은편에 찬양을 부르는 사람들을 세웠다고 말합니다.
그는 축제에 아름다움을 더하고, 정해진 축제의 때를 끝까지 꾸몄다. 노래하는 이들이 주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부터 성소에 노랫소리가 울리게 했다.집회서 47:10 · 두루새김
다윗의 믿음은 개인적인 감정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백성이 시간을 함께 보내고,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는 방식을 만들었습니다. 축제는 그저 일상의 반복을 잠시 중단하는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백성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공동체가 다시 기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완성한 왕이 아닙니다. 그 일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맡겨집니다. 그러나 집회서는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기 전에 다윗이 찬양의 질서를 세웠다는 사실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집이 완성되기 전부터, 그 이름을 찬양하는 공동체의 삶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죄와 영원한 언약 (11절)
다윗에 대한 찬양은 예상하지 못한 문장으로 끝납니다.
주께서는 다윗의 죄를 없애시고, 그의 뿔을 영원히 높이셨다. 그에게 왕들의 언약을 주시고, 이스라엘 안에서 영광스러운 왕좌를 주셨다.집회서 47:11 · 두루새김
다윗의 죄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은 밧세바와 우리야에 관한 일입니다(사무엘하 11–12장). 다윗은 왕권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아내를 취했고,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우리야를 위험한 전투에 내보내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이 사건은 다윗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는 사실이나 군사적 업적으로 가볍게 덮을 수 있는 잘못이 아닙니다. 사무엘하 12장에서 나단은 다윗의 죄를 드러냅니다. 다윗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자 나단은 여호와야훼께서 그 죄를 용서하셨다고 선언합니다(사무엘하 12:13).
그러나 용서가 그 잘못의 결과까지 없앤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윗의 집에는 이후 심각한 갈등과 비극이 이어집니다. 나단의 심판 선언 역시 이를 분명하게 말합니다(사무엘하 12:10–14).
다윗은 약속을 받은 사람인 동시에 책망을 받아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하 7:12–16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통해 왕권을 세우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후손이 잘못할 때에는 징계하시겠지만, 사울에게서 거두신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자비를 거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인간의 잘못을 부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함은 인간의 잘못 때문에 곧바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제 그 언약을 이어받은 아들이 등장합니다.
솔로몬 — 지혜가 강물처럼 넘쳤던 왕
아버지가 남긴 평화 위에 서다 (12–13절)
다윗의 뒤를 이어 아는 것이 많은 아들이 일어났고, 아버지 덕분에 여유롭게 살았다.집회서 47:12 · 두루새김
솔로몬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오랜 전쟁을 거쳐 주변의 적들을 눌러 이겼고, 솔로몬은 그 결과로 주어진 안정 속에서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솔로몬은 평화로운 시대에 왕으로 다스렸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 사방을 평온하게 하셨다.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집을 짓고, 영원히 있을 성소를 마련하게 하려는 것이었다.집회서 47:13 · 두루새김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 집을 짓고 싶어 했지만 그 일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평화 속에서 그 일을 이룹니다(열왕기상 5–8장).
집회서의 독자가 알고 있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솔로몬이 세운 성전은 실제로 파괴되었습니다.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 파괴는 열왕기하 2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영원히」라는 표현을 솔로몬이 건축한 건물이 실제로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는 지속적인 예배의 자리를 마련한다는 목적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성전이 계속 서 있고 왕국이 안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공동체의 신실함을 보증하지는 않았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에게 직접 말을 걸다 (14–17절)
솔로몬, 당신은 젊을 때 얼마나 지혜로웠느냐! 당신은 강물처럼 깨달음으로 가득 찼다.집회서 47:14 · 두루새김
앞에서는 「솔로몬은」이라고 이야기하던 저자가 이제 「솔로몬, 당신은」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단순한 문체 변화가 아닙니다. 지나간 역사의 인물을 독자 앞에 다시 세워 놓고 직접 말을 거는 듯한 효과를 만듭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강물에 비유됩니다. 작은 그릇 안에 제한적으로 담긴 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고 많은 곳을 적시는 물입니다.
이 비유는 열왕기상 4:29–34에서 솔로몬이 받은 지혜를 묘사하는 장면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넓은 마음과 뛰어난 지혜를 주셨으며, 여러 민족 가운데서 사람들이 그의 지혜를 들으러 왔다고 말합니다.
당신의 마음은 땅을 덮었고, 당신은 수수께끼 같은 비유로 그 땅을 가득 채웠다.집회서 47:15 · 두루새김
고대의 지혜 전통에서는 어려운 문제를 제시하고, 사물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며, 그 의미를 밝혀내는 능력이 지혜로운 사람의 중요한 자질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0:1–3에서 스바의 여왕은 어려운 문제들로 솔로몬을 시험하지만, 솔로몬은 그 질문들에 대답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먼 섬들까지 퍼졌고, 당신은 평화를 누리며 사랑받았다.집회서 47:16 · 두루새김
여기서 「먼 섬들」이라는 표현은 먼 지역까지 퍼진 명성을 나타냅니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섬과 먼 해안은 자신이 사는 땅 너머의 넓은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지리적 이미지였습니다.
17절은 여러 나라가 그의 노래와 속담과 비유와 풀이에 크게 감탄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솔로몬의 지혜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어려운 문제에 답하는 사람이었고, 삶의 원리를 짧은 말로 표현하는 사람이었으며, 노래와 비유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는 사람이었습니다.
금은 주석처럼, 은은 납처럼 (18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신은 금을 주석처럼 모으고 은을 납처럼 많이 쌓았다.집회서 47:18 · 두루새김
주석과 납은 금이나 은에 비해 가치가 낮은 금속입니다. 솔로몬에게 금과 은이 그처럼 풍부했다는 과장된 비유입니다. 열왕기상 10:21은 솔로몬 시대에 은이 귀하게 여겨지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로 왕국의 부를 강조합니다.
신명기 17:16–17은 이스라엘의 왕이 말과 아내와 은금을 지나치게 늘리지 말아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특히 왕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설 위험을 경고합니다. 솔로몬은 바로 그 세 가지 영역에서 매우 많은 것을 소유한 왕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0–11장은 그의 막대한 부와 많은 아내를 잇달아 기록합니다.
집회서는 18절에서 그의 부에 감탄하지만, 곧바로 19절에서 그의 관계와 몸의 문제를 다룹니다. 이 순서 때문에 신명기의 왕에 관한 경고가 더욱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많이 소유하는 능력과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의 실패 — 세상을 이해한 사람이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다
몸으로 여자들의 지배를 받다 (19절)
당신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같이했고, 몸으로 여자들의 지배를 받았다.집회서 47:19 · 두루새김
앞의 여섯 절에서 솔로몬을 찬양하던 목소리가 갑자기 날카로워집니다.
솔로몬은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었지만 자신을 다스리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구절을 몸이나 성적 관계 자체가 악하다는 주장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솔로몬의 구체적인 삶과 그것이 가져온 결과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1:1–8은 솔로몬의 많은 아내와 그가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된 과정을 기록합니다. 그 사건에서 중요한 문제는 아내들이 외국인이었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관계를 통해 솔로몬의 마음이 다른 신들에게로 돌아섰다는 사실입니다. 열왕기상은 솔로몬이 실제로 다른 신들을 위한 산당을 세웠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또한 솔로몬의 잘못을 여자들에게만 돌려서는 안 됩니다. 집회서는 솔로몬에게 직접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관계와 행동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할 권한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지혜는 정보를 많이 아는 것만이 아닙니다.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고 여러 나라의 감탄을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기 삶의 방향을 바르게 정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켜 나가는 일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솔로몬에게 부족했던 것은 세상을 이해할 지식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지혜에 걸맞게 살아가는 신실함이었습니다.
잠언 1:7은 여호와야훼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신명기 17:18–20은 왕이 율법을 읽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며, 자신의 마음을 형제들보다 높이지 말아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개인의 어리석음이 다음 세대의 운명이 되다 (20–21절)
당신은 자기 영광에 흠을 내고 후손을 더럽혀, 자녀들에게 분노를 불러들였다. 나는 당신의 어리석음에 마음이 찔렸다.집회서 47:20 · 두루새김
저자가 역사적 인물의 행동을 평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행동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솔로몬의 실패는 한 개인의 불명예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리석음으로 왕권이 둘로 갈라졌고, 에브라임에서 불순종하는 왕국이 시작되었다.집회서 47:21 · 두루새김
열왕기상 11:9–13에서 하나님은 솔로몬의 불순종 때문에 왕국을 나누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다만 다윗을 생각하여 솔로몬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일을 이루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 시대에 이루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분열은 솔로몬이 죽은 뒤에 실제로 일어나지만, 집회서는 그 원인을 솔로몬의 어리석음과 연결합니다.
에브라임은 북쪽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이름입니다. 분열 이후 북쪽 왕국은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세워지고, 남쪽에는 다윗 왕조가 이어집니다(열왕기상 12:16–24).
평화로운 시대에 왕국을 다스린 왕이 분열의 원인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성소를 세운 왕이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 땅을 덮을 만큼 큰 깨달음을 가진 왕이 자신의 삶에서 어리석음을 드러냈습니다.
물론 이를 다윗에게는 용서가 주어졌지만 솔로몬에게는 용서의 가능성이 없었다는 주장으로 넓혀서는 안 됩니다. 집회서의 관심은 두 사람의 최종적인 개인 운명을 판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드러난 신실함과 실패, 그리고 그것이 공동체 역사에 남긴 결과를 평가하는 데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 몸과 관련된 표현은 그가 자신의 몸을 다스리는 데 실패했는지, 몸과 관련된 영역에서 다른 이들의 영향 아래 놓였는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자기 자비를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자기 자비를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며, 그 자비는 주가 하시는 일들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주께서는 자기가 뽑으신 이의 자손을 결코 지우지 않으시고, 자기를 사랑한 이의 후손을 결코 없애지 않으실 것이다. 주께서는 야곱에게 남은 사람들을 주셨고, 다윗에게는 그에게서 나온 뿌리를 주셨다.집회서 47:22 · 두루새김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접속사는 「그러나」일지도 모릅니다.
왕국이 분열되고 많은 사람이 불순종해도, 하나님은 남은 사람들을 지키시며 다윗의 후손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도록 하십니다.
앞에서는 다윗의 뿔이 영원히 높아졌다고 했습니다. 뿔은 밖으로 드러나는 힘과 위세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제는 뿌리가 등장합니다.
뿌리는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위로 높이 솟아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나무가 살아 있게 하는 근원입니다.
다윗 왕조가 지녔던 눈에 보이는 힘과 영광은 약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왕조에 주신 약속이 완전히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사무엘하 7:12–16의 다윗 언약과 열왕기상 11:13, 36은 이 선언의 직접적인 배경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죄 때문에 왕국을 나누시면서도 다윗을 위해 남겨 둘 몫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다윗 왕조의 모든 잘못을 허용하셨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분열은 실제로 일어났고, 왕국은 심판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없애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심판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을 잊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의 「그 자비는 주가 하시는 일들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부분은 원문의 문법상 두 방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자비가 하나님의 일들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일들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후대의 이사야 11:1은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나오는 이미지를 사용하며 다윗 왕조의 회복을 소망합니다. 집회서 47:22가 그 본문을 직접 인용한 것은 아니지만, 무너진 왕조와 남겨진 뿌리라는 이미지는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신약에서 다윗의 후손에게 주어진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는 읽기는 이러한 구약의 왕조와 회복에 관한 전통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집회서 47장 자체가 먼저 보여 주는 것은 왕조의 몰락과 언약의 지속이 동시에 참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 지혜의 유산이 어리석음으로 바뀌다
아버지의 지혜가 아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23절)
솔로몬은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고, 자기 뒤에 후손인 르호보암을 남겼다. 르호보암은 백성의 어리석음을 보여 주는 사람이었고, 깨달음이 부족했다. 그는 자기 결정으로 백성이 등을 돌리게 했다. 솔로몬의 뒤에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도 남았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이 죄를 짓게 하고, 에브라임에게 죄의 길을 열어 주었다.집회서 47:23 · 두루새김
솔로몬은 놀라운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혜가 그의 아들에게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열왕기상 12:1–15에서 솔로몬이 죽은 뒤 이스라엘 백성은 르호보암에게 찾아가 아버지 시대에 무거웠던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르호보암은 먼저 원로들의 조언을 구합니다. 그들은 백성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면 백성이 왕을 따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그 조언을 버리고 자신과 함께 자란 젊은 사람들의 강경한 의견을 따릅니다. 그는 아버지보다 더욱 무겁게 백성을 다스리겠다고 선언합니다. 그 결과 북쪽 지파들이 다윗 왕조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백성은 자신들이 짊어진 부담을 덜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그 요청을 백성을 섬길 기회가 아니라 자신의 권위가 시험받는 상황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왕권을 지키려고 했지만, 그 왕권을 행사하는 방식 때문에 왕국의 상당 부분을 잃었습니다.
분열을 넘어 죄의 길을 만들다 (23–25절)
르호보암이 왕국을 갈라지게 만든 인물이라면, 여로보암은 갈라진 북쪽 왕국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는 길을 굳혀 놓은 인물로 묘사됩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는 느밧의 아들이며, 솔로몬의 통치 아래에서 일하다가 왕국 분열 이후 북쪽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람입니다(열왕기상 11:26–40; 12:20). 따라서 집회서가 「솔로몬의 뒤에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도 남았다」고 이어 말하는 것은 혈통의 계승을 뜻하기보다, 솔로몬 이후 왕국이 맞이한 정치적·종교적 결과를 함께 묶어 보여 주는 이야기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열왕기상 12:26–33에 따르면 그는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제사를 드리러 갔다가 남쪽 왕국으로 마음을 돌릴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예루살렘과 별개로 제사 장소와 절기와 제사장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그에게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새로 세워진 왕국을 안정시키고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열왕기는 그가 선택한 방법을 심각한 죄로 평가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의 예배를 자신의 정치적 필요에 맞게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르호보암은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다가 백성의 요구를 짓눌렀습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의 왕국을 지키려다가 예배를 정치적 수단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죄가 몹시 늘어나, 결국 그들은 자기 땅을 떠나게 되었다.집회서 47:24 · 두루새김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이후에도 여로보암이 시작한 잘못된 예배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열왕기하 17:7–23은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일을 사마리아 함락과 추방의 원인으로 설명합니다. 집회서의 「자기 땅을 떠나게 되었다」는 표현은 이러한 북쪽 이스라엘의 추방 역사를 배경으로 합니다.
땅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받은 유산이었지만, 그 땅에서 살아가는 방식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해해야 했습니다. 신명기 28:58–68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릴 경우 땅을 잃고 흩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집회서가 되돌아보는 추방은 바로 그러한 언약의 경고가 역사 속에서 현실이 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벌이 닥칠 때까지, 그들은 온갖 악을 찾아 나섰다.집회서 47:25 · 두루새김
사람은 보통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 나섭니다. 지혜를 찾고, 생계를 찾고, 안전한 삶을 찾습니다.
그런데 집회서는 이스라엘이 온갖 악을 찾아 나섰다고 말합니다.
이는 죄가 우연한 실수에 그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잘못된 선택이 반복되고, 그것을 이어 가는 행동이 공동체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어리석음이 다음 세대에 이어지고, 거듭된 잘못된 선택이 마침내 한 나라의 삶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맺음말 — 뿌리는 남았지만, 백성은 땅을 떠났다
높이 솟았던 왕권은 갈라졌고, 풍요롭던 왕국은 쇠퇴했습니다. 사람의 영광은 자신을 영원히 지켜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 뿌리를 남겨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인간의 실패를 가볍게 만들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의 실패가 하나님의 약속에 관한 마지막 말이 되지 못하게 합니다.
집회서 47장은 그 두 사실을 함께 남깁니다. 한때 성소를 울리던 찬양과 마침내 자기 땅을 떠나야 했던 백성의 모습 사이에, 아직 사라지지 않은 다윗의 뿌리가 놓여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