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48장

이 장의 자리 · 44–50장 · 조상들을 기림

불처럼 외쳤지만 돌아오지 않은 백성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죽은 예언자의 뼈에 닿은 사람까지 다시 살아납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을 경험한 백성이 있을까요?

그런데 집회서 48장은 이 모든 기적을 이야기한 다음 뜻밖의 한 문장을 들려줍니다.

「백성은 이 모든 일을 겪고도 돌이키지 않았다.」

기적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예언자들의 말이 분명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집회서의 대답은 어느 쪽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목격하는 것과 그분의 말씀에 응답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라는 사실을 이 장은 보여 줍니다.

이러한 물음 아래 저자는 엘리야와 엘리사를 기억한 뒤,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이야기하고, 다시 유다의 히스기야와 이사야에게로 시선을 옮깁니다.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848장 본문 읽기 →

엘리야 — 비를 멈추고 불을 내린 예언자

집회서 48:1–4 본문 →

불처럼 일어난 사람 (1절)

그때 예언자 엘리야가 불처럼 일어났고,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집회서 48:1 · 두루새김

엘리야를 소개하는 첫 문장은 그의 출신이나 혈통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 표현은 열왕기상 17:1에서 엘리야가 처음 등장하는 방식과 잘 어울립니다. 엘리야는 길르앗 디셉 사람이라는 간단한 소개와 함께 아합 왕 앞에 나타나 가뭄을 선포합니다.

그가 등장하기 전, 이스라엘은 심각한 종교적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합 왕은 시돈 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했고, 바알을 위한 제단과 신전을 세웠습니다(열왕기상 16:31–33). 백성의 삶에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과 바알 숭배가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바로 그 한가운데 등장합니다.

그는 단순히 왕의 잘못을 비판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누구를 하나님으로 섬겨야 하는지를 정면으로 물은 사람이었습니다.

불은 어둠을 밝히지만 동시에 태우고 무너뜨립니다. 엘리야의 말도 그러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을 드러냈고, 왕의 권위를 향해 거침없이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예언자로 기억되기 전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이었습니다. 뒤에 등장하는 놀라운 사건들은 그 말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비가 내리지 않는 땅 (2–3절)

그는 그들에게 극심한 굶주림을 불러왔고,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줄였다.집회서 48:2 · 두루새김

엘리야의 첫 번째 큰 사건은 가뭄입니다.

열왕기상 17:1에서 엘리야는 자신의 말이 있기 전까지 이스라엘에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는 상황에서 비가 멈춘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바알은 고대 가나안 종교에서 비와 폭풍, 땅의 풍요와 관련된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비를 멈추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풍요와 생명을 다스리는 분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대결이었습니다.

집회서는 이 가뭄을 엘리야의 「열정」과 연결합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선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열왕기상 19:10에서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매우 열심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열정을 엘리야 개인의 분노와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는 주의 말로 하늘을 막아 비가 내리지 않게 했고, 그렇게 세 번 불을 내려오게 했다.집회서 48:3 · 두루새김

엘리야가 자연을 마음대로 조종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드러내시기 위해 예언자를 사용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세 번 불을 내려오게 했다」는 표현은 엘리야의 서로 다른 사건들을 하나로 묶습니다.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갈멜산에서의 대결입니다(열왕기상 18:20–39).

엘리야는 바알의 예언자들과 대결하면서 제단 위에 제물을 올리고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과 나무와 돌까지 삼킵니다.

나머지 두 차례는 아하시야 왕이 보낸 군사들과 관련됩니다. 열왕기하 1:9–12에서 엘리야는 자신을 잡으러 온 두 무리의 군사들 앞에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도록 말합니다.

갈멜산에서의 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아보도록 하는 표징이었습니다. 아하시야의 군사들에게 내린 불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예언자를 제압하려 한 왕의 행동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엘리야가 전한 말씀의 권위는 왕에게서도, 엘리야 자신에게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갑자기 엘리야를 부르는 목소리 (4절)

엘리야, 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얻었느냐! 누가 당신처럼 자랑할 수 있겠느냐?집회서 48:4 · 두루새김

여기서 저자는 엘리야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엘리야에게 직접 말을 겁니다.

과거의 인물을 독자 앞에 세워 놓고 감탄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높이 찬양받는 예언자에게도 실패와 낙심의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열왕기는 숨기지 않습니다.

갈멜산에서 위대한 승리를 경험한 뒤에도 엘리야는 이세벨의 위협을 피해 도망했고, 더는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열왕기상 19:1–4). 집회서는 이 사건을 자세히 다시 이야기하지 않지만, 곧 호렙산에서 엘리야가 들은 말씀을 언급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세우신 예언자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셨고, 그가 지치고 낙심했을 때에도 그를 다시 불러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죽은 사람을 일으키고 왕들을 낮추다

집회서 48:5–8 본문 →

죽음의 자리까지 미친 하나님의 말씀 (5절)

당신은 지극히 높은 이의 말로 죽은 사람을 죽음에서, 하데스에서 일으켰다.집회서 48:5 · 두루새김

이 구절의 배경은 열왕기상 17:17–24입니다.

엘리야가 머물던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아들이 죽습니다. 과부는 큰 슬픔에 빠지고, 엘리야에게 자신의 죄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묻습니다.

엘리야는 죽은 아이를 데리고 다락방으로 올라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소리를 들으시자 아이는 다시 살아납니다.

굶주림을 선포했던 예언자가 죽음의 자리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사르밧은 시돈 지역에 속한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밖에 사는 여인의 집에서 하나님의 생명 주시는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에게서 돌아서 있었지만, 이방 땅의 과부는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했습니다.

열왕기상 17:24에서 과부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며 그의 입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생명이 회복되고, 그 말씀이 참되다는 사실이 인정받는 장면입니다.

왕의 침상까지 찾아온 심판 (6절)

당신은 왕들을 멸망으로 끌어내렸고, 영광을 누리던 이들을 그들의 침상에서 끌어내렸다.집회서 48:6 · 두루새김

엘리야는 정치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군대도 없었고 왕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사건에서 엘리야는 왕과 그 집안에 닥칠 심판을 선언합니다(열왕기상 21:17–24). 또한 아하시야 왕이 병상에서 바알세붑에게 자신의 병이 나을지 물으려 했을 때, 엘리야는 그가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선포합니다(열왕기하 1:2–17).

집회서의 「침상」이라는 표현은 특히 아하시야의 죽음과 연결됩니다. 왕은 높은 자리에 앉아 사람들에게 명령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생명과 죽음을 결정할 권한까지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앞 장에서 다윗과 솔로몬의 왕권을 이야기한 뒤 엘리야가 등장하는 배치도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왕들이 나라를 다스리지만, 그들의 권력 또한 하나님의 말씀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호렙에서 들은 말씀 (7–8절)

당신은 시나이에서 책망을 들었고, 호렙에서 벌을 내리는 심판의 말을 들었다.집회서 48:7 · 두루새김

이 대목은 열왕기상 19장의 호렙산 사건으로 독자를 데려갑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놀라운 승리를 경험했지만, 이스라엘이 완전히 하나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는 현실에 낙심합니다. 자신만 홀로 남았다고 생각하며 호렙산까지 갑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이 지나간 뒤, 엘리야는 세미한 소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열왕기상 19:11–13). 여기서 하나님은 엘리야의 낙심에 단순히 공감하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십니다. 그에게 다시 돌아가 해야 할 일을 맡기십니다.

당신은 벌을 내리게 하려고 왕들에게 기름을 부었고, 자기 뒤를 이을 예언자들에게도 기름을 부었다.집회서 48:8 · 두루새김

열왕기상 19:15–16에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하사엘과 예후, 엘리사를 세우도록 명령하십니다. 그는 자신이 유일하게 남은 신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들을 남겨 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열왕기상 19:18).

엘리야는 자신의 한계와 낙심 속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일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리스어 하데스(ᾅδης)는 이 문맥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역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스올」과 대응하는 죽음의 영역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 구절이 후대의 지옥 개념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열왕기의 실제 이야기 전개는 집회서의 짧게 압축한 표현과 구별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자신의 겉옷을 던져 그를 부릅니다(열왕기상 19:19). 하사엘이 왕위를 이어받는 일은 엘리사의 예언과 연결되고(열왕기하 8:7–15), 예후는 엘리사가 보낸 예언자 무리의 사람을 통해 기름부음을 받습니다(열왕기하 9:1–6). 따라서 집회서 48:8은 엘리야가 이 모든 인물에게 직접 기름을 부었다는 자세한 역사 기록이라기보다, 호렙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계획과 그에 따른 예언자의 일을 요약한 말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떠난 엘리야에게 아직 남아 있는 사명

집회서 48:9–11 본문 →

불의 회오리바람 속으로 (9절)

당신은 불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불말들이 끄는 수레를 타고 들려 올라갔다.집회서 48:9 · 두루새김

엘리야의 마지막 장면은 그의 등장만큼 극적입니다.

열왕기하 2:11에서 엘리야와 엘리사가 함께 걸어갈 때 불말들과 불수레가 나타나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는 회오리바람 속에서 하늘로 올라갑니다. 집회서는 이 두 이미지를 하나로 압축하여 불말들이 끄는 수레와 회오리바람을 통해 엘리야의 떠남을 노래합니다.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으며, 마지막에는 불의 회오리바람이 그를 감쌉니다. 불은 엘리야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 주는 이미지가 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은 엘리야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왜 엘리야는 다시 와야 하는가? (10절)

책망의 말씀에는 정해진 때에 당신이 할 일이 기록되어 있다. 격한 분노가 터지기 전에 분노를 가라앉히고, 아버지의 마음을 아들에게 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집회서 48:10 · 두루새김

이 구절은 말라기 4:5–6과 표현과 내용에서 직접 연결됩니다. 말라기에서는 여호와야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겠다는 약속과 함께, 부모와 자녀의 마음을 서로에게 돌이키게 한다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앞에서는 가뭄과 불과 심판이 중심이었습니다. 이제는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가라앉히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며, 흩어진 지파들을 다시 세우는 일이 중심에 놓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던 예언자가 다시 기대되는 까닭은, 심판이 닥치기 전에 사람들이 돌이키고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가뭄과 불은 하나님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공연이 아니었습니다. 백성이 자신들이 누구를 섬기는지 깨닫고 하나님에게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들에게 돌리며」라는 표현도 개인적인 가족 화해만으로 좁혀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말라기에서는 하나님 앞에서의 회복과 공동체의 관계 회복이 함께 등장합니다. 집회서는 여기에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세우는 일」이라는 말을 덧붙여, 그 의미를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회복으로 넓힙니다.

당신을 본 사람들은 복이 있다 (11절)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으로 꾸며진 사람들은 복이 있다. 우리도 생명을 누리며 살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48:11 · 두루새김

후반부의 「우리도 생명을 누리며 살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표현 역시 엘리야를 보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복과 생명의 기대를 연결합니다. 그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은 뒤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생명의 희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엘리야의 떠남으로 중단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에서는 말라기의 엘리야 약속이 세례 요한의 사역과 연결됩니다(누가복음 1:16–17). 이는 집회서 48:10이 인용한 회복의 약속을 후대에 이어서 읽는 사례입니다. 그러나 집회서 자체의 관심은 먼저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돌아오고,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며, 흩어진 백성이 다시 세워지는 희망에 있습니다. 11절은 그리스어 전승에 차이가 있어서 조심스럽게 읽어야 합니다. 두루새김이 「사랑으로 꾸며진 사람들」로 옮긴 읽기가 있는 반면, 일부 그리스어 전승에는 「사랑 안에서 잠든 이들」로 읽히는 형태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한 구절만으로 저자가 구체적인 부활의 시점이나 방식을 설명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엘리사 — 예언자는 떠났지만 그의 사역은 계속되었다

집회서 48:12–14 본문 →

영을 이어받은 사람 (12절)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에 덮였고, 엘리사는 그의 영으로 가득 찼다. 엘리사는 살아 있는 동안 통치자에게 흔들리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억누르지 않았다.집회서 48:12 · 두루새김

열왕기하 2:9에서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그의 영의 두 몫을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합니다. 「두 몫」은 장자의 상속 몫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신명기 21:17). 엘리사는 엘리야의 예언자 사역을 이어받을 사람으로서 그에 걸맞은 능력을 구합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떠난 뒤 엘리사는 그의 겉옷을 사용하여 요단강을 가릅니다. 이를 본 예언자 무리의 사람들이 엘리야의 영이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고 인정합니다(열왕기하 2:13–15). 집회서가 「그의 영으로 가득 찼다」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이어받음을 압축한 표현입니다.

엘리야의 이야기에는 왕과의 대결, 가뭄과 불, 바알 숭배에 대한 심판이 두드러집니다. 반면 엘리사의 이야기에는 과부의 기름을 늘리고,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리고, 나아만의 나병을 낫게 하며,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일들이 자주 등장합니다(열왕기하 4–5장).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능력을 전했지만, 그 능력이 사람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이 한 예언자의 성격이나 활동 방식에만 묶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엘리사가 「통치자에게 흔들리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억누르지 않았다」는 평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는 여러 왕의 시대를 거치며 정치적·군사적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왕들이 그의 도움을 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의 권력이 그의 말씀을 좌우하는 근거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특정한 왕에게 소속된 궁정의 관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예언자였습니다.

죽은 뒤에도 놀라운 일이 일어나다 (13–14절)

어떤 일도 그에게 벅차지 않았고, 그가 죽음의 잠에 들었을 때에도 그의 몸은 예언했다.집회서 48:13 · 두루새김

「그의 몸은 예언했다」는 표현은 낯설게 들립니다.

이 표현의 배경은 열왕기하 13:20–21입니다. 엘리사가 죽어 묻힌 뒤, 사람들이 한 사람을 묻으려다가 모압의 약탈자들이 오는 것을 보고 급히 그 시신을 엘리사의 무덤에 던집니다.

그런데 시신이 엘리사의 뼈에 닿자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나 일어섭니다.

그의 죽은 몸과 관련하여 일어난 사건이 하나님의 생명 주시는 능력을 증언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열왕기하의 이야기 자체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엘리사의 뼈 자체에 마법적인 능력이 있었다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놀라운 일들을 했고, 죽은 뒤에도 그가 한 일들은 놀라웠다.집회서 48:14 · 두루새김

엘리야는 특별한 방식으로 하늘로 들려 올라갔습니다. 엘리사는 죽어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능력을 증언한 예언자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이제 저자는 그들이 행한 모든 놀라운 일들을 되돌아보며 가장 슬픈 평가를 내립니다.

모든 기적을 경험하고도 돌아오지 않은 백성

집회서 48:15–16 본문 →

백성은 이 모든 일을 겪고도 돌이키지 않았다. 자기 땅에서 포로로 끌려가 온 땅에 흩어질 때까지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주 적은 백성이 남았고, 다윗 집안에는 통치자가 남았다.집회서 48:15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집회서 48장의 결정적인 전환점입니다.

여기서 「돌이키지 않았다」는 말은 그들이 기적을 본 순간에 아무런 감동이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갈멜산에서 백성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고백을 했고(열왕기상 18:39), 엘리사 시대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순간들이 이스라엘 전체의 꾸준한 돌이킴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백성은 반복해서 다른 신들을 섬겼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으며, 언약에 어긋나는 삶을 계속했습니다. 열왕기하 17장은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사람들이 다른 땅으로 옮겨지게 된 이유를 길게 설명합니다. 그곳에서는 우상 숭배와 불순종, 그리고 예언자들의 경고를 듣지 않은 일이 반복적으로 지적됩니다(열왕기하 17:7–23).

기적은 많았지만 돌이킴은 없었습니다.

아주 적은 백성이 남았다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의 정복으로 멸망했지만, 남쪽 유다에는 다윗 집안의 통치자가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다윗 집안에는 통치자가 남았다」는 이 짧은 문장은 앞 장에서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강조되는 것은 왕조 자체의 영광이 아니라, 심판의 역사 속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공동체의 존재입니다.

16절은 그 남은 공동체를 무조건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주의 마음에 드는 일을 했고, 어떤 이들은 죄를 더 지었다.집회서 48:16 · 두루새김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사실이나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다는 사실이 왕의 행동을 자동으로 정당화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구분 속에서 한 왕이 등장합니다.

히스기야입니다.

히스기야 — 물길을 준비한 왕과 두 손을 든 백성

집회서 48:17–22 본문 →

성벽과 물길을 마련하다

히스기야는 자기 도시의 방어를 튼튼히 하고, 그들 가운데로 곡을 끌어들였다. 쇠 도구로 깎아지른 바위를 파고, 물을 얻을 샘들을 만들었다.집회서 48:17 · 두루새김

히스기야를 소개하는 첫 장면은 놀라운 기적이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아시리아의 위협 앞에서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해 성벽을 보강하고 물 공급 시설을 마련했습니다. 열왕기하 20:20은 히스기야가 물을 도시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못과 수로를 만들었다고 기록합니다. 역대하 32:30에서는 기혼 샘의 윗물 흐름을 막고 다윗성 서쪽으로 물을 끌어들였다고 설명합니다.

고대 도시에서 물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특히 적군에게 포위되면 성 밖에 있는 샘이나 우물에 접근하기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물을 도시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중요한 방어 대책이었습니다.

본문의 「곡」이라는 표현에는 본문상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앞뒤의 수로와 물을 얻는 시설을 고려하면 「물을 끌어들였다」는 읽기가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두루새김이 그대로 옮긴 「곡」이라는 사본상의 표현을 확실한 지명이나 별도의 인물로 설명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신뢰한 왕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그 신뢰는 도시의 방어를 준비하지 않거나 위기에 대비하지 않는 태도를 뜻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했습니다.

그는 물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적군이 다가왔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책임 있게 준비하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산헤립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두려움

히스기야의 시대에 산헤립이 올라와 랍사게를 보내고 떠났다. 그는 시온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고, 교만하게 큰소리쳤다.집회서 48:18 · 두루새김

산헤립은 아시리아의 왕입니다. 랍사게는 이 장면에서 아시리아가 보낸 고위 관리의 칭호로 사용됩니다. 열왕기하 18:17–35에서는 랍사게가 예루살렘 성벽 앞에서 히스기야와 백성에게 항복을 요구하는 말들을 전합니다.

그는 아시리아의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하며, 다른 나라의 신들도 자기 나라를 아시리아에서 구하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신뢰해도 아시리아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수 있는지를 문제 삼는 도전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군사적 힘을 지나치게 높였고, 그 힘을 근거로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무시했습니다.

그때 백성의 마음과 손이 떨렸고, 그들은 아이를 낳는 여자들처럼 고통스러워했다.집회서 48:19 · 두루새김

아이를 낳을 때의 진통은 몸 전체를 흔드는 고통입니다. 여기서는 피할 수 없는 위기가 가까이 왔다는 절박함을 나타냅니다.

마음은 두려움에 흔들리고, 손은 힘을 잃습니다. 적군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무력한 상태입니다. 이 모습은 이사야 37:3과도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히스기야는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지만 낳을 힘이 없는 상황에 자신들의 처지를 비유합니다.

예루살렘은 위기에 대비해 방어 시설까지 마련했지만, 이제 그 준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러자 백성의 손이 다시 등장합니다.

떨리던 손이 하나님을 향해 펼쳐지다

그들은 자비로운 주에게 두 손을 펼쳐 들고 부르짖었다. 거룩한 이는 하늘에서 곧 그들의 소리를 듣고, 이사야를 통해 그들을 건져 냈다.집회서 48:20 · 두루새김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에 기도한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 것입니다.

집회서는 이때 하나님을 「자비로운 주」라고 부릅니다. 앞에서 엘리야를 소개할 때는 하나님의 심판과 능력이 두드러졌습니다. 이제 위기에 처한 백성이 부르짖는 자리에서는 하나님의 자비가 강조됩니다.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구원의 말씀을 전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열왕기하 19:20–34에서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전합니다. 아시리아 왕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이 그 도시를 지키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시리아 진영이 무너지다

열왕기하 19:35–36과 이사야 37:36–37은 하나님의 천사가 아시리아 군대가 머물던 곳을 쳤고 산헤립이 떠나 니느웨로 돌아갔다고 기록합니다. 아시리아는 거대한 군사력을 가진 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지키시기 위해 그 군사력보다 크신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엘리야의 시대에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예언자를 제압하려 했습니다. 히스기야의 시대에는 아시리아 왕이 하나님을 무시하며 예루살렘을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하나님의 권위는 왕의 권력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가 주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 자기 조상 다윗의 길을 굳게 따랐기 때문이다. 그 길은 예언자 이사야가 따르라고 명한 길이었다. 이사야는 위대한 예언자였고, 환시를 전하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집회서 48:22 · 두루새김

히스기야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낸 사람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20장에는 그가 바벨론 사절들에게 자신의 보물과 군사적 자원을 보여 준 일을 이사야에게 책망받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러나 열왕기는 그가 하나님을 신뢰했고 우상 숭배를 없애려 했으며, 이전 왕들과 구별되는 신실함을 보였다고 평가합니다(열왕기하 18:3–6).

여기서 다윗의 길은 단순히 군사적으로 강한 왕이 되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권력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길입니다.

히스기야는 그 길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저자의 관심은 히스기야의 구원에서 이사야의 예언으로 옮겨 갑니다.

이사야 — 해가 물러나고, 시온에 위로가 선포되다

집회서 48:23–25 본문 →

왕에게 생명을 더해 주다

그의 시대에 해가 뒤로 물러났고, 그는 왕의 수명을 늘려 주었다.집회서 48:23 · 두루새김

이 장면은 열왕기하 20:1–11과 이사야 38:1–8을 배경으로 합니다.

히스기야는 심각한 병에 걸리고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는 얼굴을 벽으로 돌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크게 웁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사야를 통해 회복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 약속의 표징으로 해 그림자가 뒤로 물러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열왕기하 20:8–11에서는 해 그림자가 아하스의 계단에서 뒤로 열 계단 물러나는 것으로 서술됩니다. 집회서는 그 현상을 「해가 뒤로 물러났고」라고 표현합니다.

엘리야의 가뭄은 불순종한 이스라엘에게 경고가 되었습니다. 히스기야에게 주어진 해의 표징은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인이었습니다.

같은 자연 세계가 심판을 알리는 자리도 되고, 자비를 확인하는 자리도 됩니다.

여기서 왕의 생명을 더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는 그 말씀을 전하고 표징을 알리는 예언자였습니다.

마지막 일들을 본 사람

이사야는 위대한 영으로 마지막에 일어날 일들을 보았고,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했다.집회서 48:24 · 두루새김

이사야의 사역에 대한 평가가 여기서 한층 넓어집니다.

이사야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닥칠 심판을 선포하면서도, 그 이후에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회복하실지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특히 이사야 40:1–2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라는 명령이 등장합니다. 이사야 61:1–3에는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그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약속이 나타납니다.

집회서가 이사야를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했다」고 평가한 것은 이러한 예언의 흐름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마지막에 일어날 일들」이라는 표현을 반드시 세상 역사의 최종적인 순간만 가리키는 말로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맥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의 사건들, 특히 심판과 회복에 관한 예언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영원에 이르기까지 일어날 일들과 감추어진 일들을, 그 일들이 닥치기 전에 알려 주었다.집회서 48:25 · 두루새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일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 말씀에는 심판도 있고 구원도 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유다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전하면서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영원히 버리시는 것은 아니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드러내고 심판을 선포하지만, 동시에 무너진 사람들을 다시 일으키고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맺음말 — 떨리던 손이 하늘을 향하다

집회서 48:1–25 본문 →

북이스라엘의 백성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면서도 삶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었습니다. 이 장이 보여 주는 믿음은 놀라운 기적을 얼마나 많이 경험했는가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산헤립의 군대가 도시를 위협하고, 사람들의 마음과 손이 떨립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그 위기를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리고 두 손을 펼쳐 들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손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소리를 들으셨고, 이사야를 통해 구원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놀라운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두려움과 한계를 가지고 그분께 나아오는 마음입니다.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여전히 아시리아 군대 앞에서 연약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늘을 향해 펼친 손은 더 이상 두려움에 떨기만 하는 손이 아니었습니다.

그 손은 자신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자비로운 주께 도움을 구하는 손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