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1–11장 · 이집트의 종살이

지팡이는 삼켰지만 왕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 앞에서 지팡이를 던지자 큰 뱀이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똑같이 했습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 버렸습니다.

「파라오의 마음은 강해졌고, 그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표징이 충분히 놀랍지 않았던 것일까요? 아니면 파라오는 이미 충분한 것을 보았으면서도 그 의미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출애굽기 7장의 중심에는 단순히 기적이 얼마나 강력한가 하는 문제가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과 그분이 누구신지 인정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있습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67장 본문 읽기 →

「내가 너를 파라오에게 하나님으로 세웠다」

출애굽기 7:1–7 본문 →

하나님이 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보아라. 내가 너를 파라오에게 하나님으로 세웠다. 네 형 아론은 네 예언자가 될 것이다.」출애굽기 7:1 · 본디새김

이 말을 모세가 실제로 신적인 존재로 변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뒤에 아론이 모세의 ‘예언자’가 된다는 말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에게서 명령을 받습니다. 아론은 모세에게서 그 말씀을 받아 파라오에게 전합니다. 예언자는 단순히 미래를 맞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입니다.

모세가 파라오에게 하나님으로 세워졌다는 말도 이 관계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파라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대변하는 위치에 세워진 것입니다. 출애굽기 4:16에서는 아론이 모세의 입이 되고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같은 관계가 파라오와의 대면이라는 더 넓은 자리로 옮겨집니다.

「너는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말하여라. 네 형 아론은 파라오에게 말할 것이며, 파라오는 이스라엘 자손을 자기 땅에서 보내 줄 것이다.」출애굽기 7:2 · 본디새김

모세의 권위는 그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에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를 보내신 분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하지만, 하나님을 대신하여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보내 줄 것이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2절에서 하나님은 파라오가 이스라엘을 보내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이집트 땅에서 내 표징과 내 이적을 많이 행하겠다.」출애굽기 7:3 · 본디새김
「파라오는 너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집트에 내 손을 대고, 여러 큰 심판으로 내 부대들, 곧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겠다.」출애굽기 7:4 · 본디새김

파라오가 이스라엘을 보내는 일은 앞으로 이루어질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모세와 아론의 요구를 거부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의 거부를 명시하면서도 마침내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면, 파라오가 거부하는 행동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문제를 단순히 하나님이 파라오에게 불순종을 강요하셨다거나, 반대로 하나님은 파라오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셨다는 한쪽 설명으로 처리하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행동과 파라오 자신의 완강함을 모두 말합니다.

3절에서는 하나님이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시겠다고 직접 말씀하십니다. 13절에서는 그의 마음이 강해졌다는 상태가 서술되고, 14절에서는 왕의 마음이 무겁다고 평가됩니다.

적어도 이 장에서 파라오가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그에게 전달되었지만, 그는 그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저항을 모르고 모세를 보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 부대들, 곧 내 백성」

‘내 부대들’은 조직된 무리나 군대의 대열을 가리킬 수 있는 말에 ‘나의’라는 소유 표현이 붙은 형태입니다. 이것을 이미 이스라엘이 무장을 갖춘 군대가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이집트의 노동 체계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자신에게 속한 조직된 백성으로 부르십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감독들 아래에 둔 노동력으로 취급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자신의 부대로 이끌어 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이집트를 떠나는 사건은 단순히 사람들이 흩어져 도망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새로운 질서 안에서 나오는 사건으로 그려집니다.

「내가 이집트 위로 내 손을 뻗어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 가운데서 이끌어 낼 때, 이집트 사람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출애굽기 7:5 · 본디새김

앞서 파라오는 여호와야훼가 누구이기에 그분의 말을 들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출애굽기 5:2). 이제 하나님은 그 질문에 자신이 행하실 일로 대답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게 된다’는 것이 곧 이집트 사람들이 모두 기쁘게 하나님을 믿고 섬기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권능과 정체를 부인할 수 없는 사건을 통해 인식하게 되는 일이 강조됩니다. 그 인식이 순종과 신뢰로 이어질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여든 살과 여든세 살

그들이 파라오에게 말할 때 모세는 80세였고 아론은 83세였다.출애굽기 7:7 · 본디새김

이 정보는 앞서 소개된 족보와 이어지면서 두 사람을 구체적인 생애를 살아온 인물로 보여 줍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도망쳐 미디안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아론 역시 여러 자녀를 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두 사람이 파라오 앞에 섭니다.

모세와 아론은 그렇게 했다. 여호와야훼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들은 그렇게 했다.출애굽기 7:6 · 본디새김

앞서 모세는 자신의 입술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행동합니다.

아론의 지팡이가 다른 지팡이들을 삼키다

출애굽기 7:8–13 본문 →

왜 이번에는 ‘뱀’이 아니라 ‘큰 뱀’인가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파라오 앞에서 행할 일을 알려 주십니다.

「파라오가 너희에게 『너희가 직접 이적을 보여라.』라고 말하면, 너는 아론에게 『형님의 지팡이를 집어 파라오 앞에 던져서, 그것이 큰 뱀이 되게 하십시오.』라고 말하여라.」출애굽기 7:9 · 본디새김

이 장면은 출애굽기 4장에서 모세의 지팡이가 뱀으로 변했던 사건과 비슷합니다.

출애굽기 7장에서 지팡이가 큰 뱀으로 변하는 일은 파라오의 왕궁에서 벌어집니다. 그것은 단순한 동물 변신의 구경거리가 아니라, 파라오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마술사들도 같은 일을 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행동합니다.

파라오도 지혜자들과 주술사들을 불렀다. 이집트의 마술사들인 그들도 자기들의 술법으로 그렇게 했다.출애굽기 7:11 · 본디새김

그들은 저마다 자기 지팡이를 던지고, 그 지팡이들도 큰 뱀이 됩니다.

여기서 마술사들이 실제로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초자연적인 능력을 사용했다고 확정할 수도 없고, 단순한 눈속임이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삼킨 것은 큰 뱀인가, 지팡이인가

그들은 저마다 자기 지팡이를 던졌고, 그 지팡이들은 큰 뱀들이 되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들을 삼켰다.출애굽기 7:12 · 본디새김

본문은 ‘아론의 큰 뱀이 다른 큰 뱀들을 삼켰다’고 하지 않습니다.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들을 삼켰다」고 말합니다. 이미 지팡이들이 큰 뱀으로 변했는데도 서술자는 다시 ‘지팡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단순히 어느 동물이 더 크고 강했는지를 비교하는 장면이 아닙니다. 모세와 아론이 들고 온 지팡이, 곧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사용된 도구가 이집트 마술사들의 지팡이들을 삼킨 것입니다.

마술사들은 같은 종류의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은 것은 아론의 지팡이입니다.

마술사들은 표징을 흉내 낼 수 있었지만, 그 표징의 마지막 결과를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파라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기 위해 왔습니다. 마술사들의 술법과 아론의 표징은 그 명령의 권위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파라오의 마음은 강해졌고, 그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여호와야훼가 말한 대로였다.출애굽기 7:13 · 본디새김

이제 표징은 왕궁 안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현상을 넘어, 이집트의 일상을 지탱하는 나일강으로 옮겨 갑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4:3에서 모세의 지팡이가 변한 ‘뱀’은 히브리어 나하쉬입니다. 그런데 7:9에서 사용되는 말은 탄닌입니다. 탄닌은 문맥에 따라 큰 뱀이나 거대한 물짐승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창세기 1:21에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큰 바다 생물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됩니다. 따라서 앞 장에서는 ‘뱀’, 이 장에서는 ‘큰 뱀’으로 구별한 것은 원문의 차이를 반영합니다. 거대한 뱀을 가리킬 수도 있고, 이집트와 나일강이라는 배경을 고려하면 악어와 같은 큰 파충류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구체적인 동물의 종류를 확정하지 않습니다. 에스겔 29:3에서는 파라오를 강 가운데 누워 있는 거대한 물짐승에 비유합니다. 그 파라오는 나일강을 자신의 것으로 주장합니다. 물론 출애굽기 7:9가 에스겔의 비유를 직접 예고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두 본문은 서로 다른 문학적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안에서 거대한 물짐승이 이집트의 왕권과 연결되어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나일강 앞에서 다시 묻는 질문

출애굽기 7:14–18 본문 →

마음이 무거운 왕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파라오의 마음이 무겁다. 그가 백성을 보내 주기를 거부했다.」출애굽기 7:14 · 본디새김

여기서 ‘마음이 무겁다’는 표현은 단순한 슬픔이나 우울함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파라오가 자신의 결정을 바꾸지 않는 완강한 태도를 나타냅니다.

「아침에 파라오에게 가거라. 보아라. 그가 물가로 나올 것이다. 너는 그를 만나도록 나일강 가에 서 있어라. 뱀으로 바뀌었던 지팡이를 네 손에 들고 가거라.」출애굽기 7:15 · 본디새김

이번 만남은 왕궁이 아니라 나일강 가에서 이루어집니다.

파라오가 아침에 강가에 나오는 이유는 명시되지 않습니다. 종교적 의례를 위해서였을 가능성이나 일상적인 활동을 위해서였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지만, 본문은 어느 쪽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집트의 생명을 지탱하던 강

나일강은 이집트 사람들의 삶에 필수적인 강이었습니다.

이집트의 농업과 물 공급은 나일강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고, 강에서 얻는 물고기도 먹을거리의 일부였습니다. 그러므로 나일강의 물이 마실 수 없게 된다는 것은 단순히 강물의 색이 달라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 물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건입니다.

「그에게 말하여라.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저를 당신에게 보내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 주어 광야에서 나를 섬기게 하여라.」 그런데 보십시오. 당신은 지금까지 듣지 않았습니다.』」출애굽기 7:16 · 본디새김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파라오에게 새로운 요구를 제시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같은 요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요구가 불분명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파라오가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너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너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 보아라. 내가 내 손에 있는 지팡이로 나일강에 있는 물을 치겠다. 그러면 그 물이 피로 바뀔 것이다.」』」출애굽기 7:17 · 본디새김

5절에서는 이집트 사람들이 여호와야훼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파라오를 향해 직접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던 바로 그 왕에게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지팡이가 ‘내 손에 있는 지팡이’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뒤이어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론이 지팡이를 들고 물 위에 손을 뻗도록 명령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행동과 모세와 아론의 행동이 서로 이어져 서술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이집트를 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은 그 명령을 따라 실제로 지팡이를 사용합니다. 오히려 지팡이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제 파라오가 알아야 할 것은 모세나 아론의 특별한 능력이 아닙니다. 나일강을 다스리는 권력이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물고기의 죽음과 강의 악취

하나님은 물이 피로 변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뒤, 그 결과를 구체적으로 알려 주십니다.

「『「나일강에 있는 물고기들이 죽고 나일강에서는 악취가 날 것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나일강에서 물을 마시는 데 애를 먹을 것이다.」』」출애굽기 7:18 · 본디새김

이 장면을 단지 나일강이 붉은색으로 보이게 되었다는 자연현상으로 축소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물이 피로 변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물고기가 죽고 강에서 악취가 났다는 구체적인 결과를 제시합니다. 그렇다고 현대의 어떤 자연현상이 이 사건의 정확한 원인이었다고 확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이집트의 생명을 지탱하던 강이 이제 생명을 위협하는 장소가 됩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의 사내아이들을 나일강에 던지라고 명령했습니다(출애굽기 1:22). 그 강가에서 모세가 발견되어 살아남았습니다(출애굽기 2:3–10). 이제 그 강의 물이 피로 변합니다. 본문은 이것을 사내아이들을 죽인 일에 정확히 대응하는 보복이라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를 처음부터 읽는 독자에게 나일강이 지닌 앞선 기억은 이 사건을 더욱 무겁게 만듭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러나 여기서 특정한 재앙이 반드시 이집트의 특정한 신 하나를 겨냥한 것이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출애굽기 12:12에서 하나님은 이집트의 모든 신들에게 심판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출애굽의 재앙들이 이집트의 신들과 그 신들이 뒷받침하던 세계관에 대한 도전이라는 정경적 연결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출애굽기 7장 자체는 나일강 재앙이 정확히 어떤 이집트 신을 겨냥했는지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본문이 직접 강조하는 것은 여호와야훼가 나일강을 치시고, 그 일을 통해 파라오와 이집트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물은 피가 되었지만, 왕은 돌아서서 집으로 갔다

출애굽기 7:19–25 본문 →

이집트 온 땅으로 확대되는 심판

19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론이 지팡이를 들고 이집트의 물 위에 손을 뻗도록 명령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아론에게 말하여라. 『형님의 지팡이를 집어 들고 이집트의 물 위에, 이집트의 강들 위에, 이집트의 수로들 위에, 이집트의 못들 위에, 이집트의 물이 모인 모든 곳 위에 손을 뻗으십시오. 그러면 그 물이 피가 될 것입니다. 이집트 온 땅에, 나무와 돌 안에도 피가 있을 것입니다.』」출애굽기 7:19 · 본디새김

이것은 심판의 범위를 확대해서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물을 얻는 다양한 장소가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이제 실행됩니다.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야훼가 명령한 대로 그렇게 했다. 그는 지팡이를 들어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나일강에 있는 물을 쳤다. 나일강에 있는 모든 물이 피로 바뀌었다.출애굽기 7:20 · 본디새김

그러나 누가 지팡이를 들었는가보다 본문이 분명하게 강조하는 것은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명령대로 행했고, 물고기들은 죽었다

21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나일강에 있는 물고기들이 죽고 나일강에서는 악취가 났다. 이집트 사람들은 나일강에서 물을 마실 수 없었다. 이집트 온 땅에 피가 있었다.출애굽기 7:21 · 본디새김

하나님의 말씀과 실제 사건 사이에 대응이 이루어집니다.

파라오는 여호와야훼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들었던 말이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이집트의 물이 피가 되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은 파라오만이 아닙니다. 물을 마셔야 하는 평범한 이집트 사람들도 고통받습니다.

본문은 이집트 사람들 가운데 누가 파라오의 정책을 지지했고 누가 반대했는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이집트 사람이 파라오와 동일한 개인적 책임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고통을 당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파라오의 권력에 대한 선언이지만, 그 결과는 실제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나타납니다.

마술사들이 같은 일을 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22절에서 다시 마술사들이 등장합니다.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자기들의 술법으로 그렇게 했다. 파라오의 마음은 강해졌고, 그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여호와야훼가 말한 대로였다.출애굽기 7:22 · 본디새김

마술사들이 사용한 물의 출처도, 그들이 얼마나 많은 물을 변화시켰는지도 알려 주지 않습니다. 뒤이어 이집트 사람들이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땅을 파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것만으로 마술사들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마술사들은 물이 피로 변하는 일을 재현했다고 기록됩니다. 하지만 피로 변한 물을 다시 마실 수 있는 물로 회복시켰다는 말은 없습니다. 죽은 물고기를 살렸다는 말도 없습니다. 강의 악취를 없앴다는 설명도 없습니다.

이집트의 마술사들은 같은 종류의 표징을 보여 주었지만, 이집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해결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표징은 파라오가 이스라엘을 보내도록 요구하는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마술사들의 행동이 파라오의 판단에 정확히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같은 일을 한 뒤에도 왕이 듣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란히 기록합니다.

왕은 집으로, 백성은 강가로

파라오는 돌아서서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 일에도 마음을 두지 않았다.출애굽기 7:23 · 본디새김
이집트 사람들은 모두 마실 물을 구하려고 나일강 둘레의 땅을 팠다. 나일강의 물을 마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출애굽기 7:24 · 본디새김

그러나 백성은 그 일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물을 마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파라오가 궁전 안에서 어떤 물을 마셨는지, 그에게 별도의 물 공급이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이 물 문제에서 완전히 안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파라오는 자신이 본 표징에서 돌아섭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그 표징의 결과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파라오의 완고함이 단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의 결정은 다른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땅을 파는 사람들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물을 얻는 일이 더 이상 일상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땅을 파야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강에서 자연스럽게 얻던 것을 이제 힘들게 찾아야 합니다.

여호와야훼가 나일강을 친 뒤로 꼬박 이레가 지났다.출애굽기 7:25 · 본디새김

이 문장은 나일강을 친 뒤 일곱 날이 지났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그러나 물이 피로 변한 상태가 정확히 언제 끝났는지까지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만으로 재앙의 지속 시간을 세밀하게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장에는 파라오가 이스라엘을 보내겠다고 결심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음 심판이 예고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나무와 돌 안에도’라는 표현은 정확하게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나무나 돌로 만든 물그릇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에는 ‘그릇’이라는 명사가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목재와 석재로 된 물 저장 용기라고 확정하기보다는, 물이 영향을 받는 범위가 매우 넓다는 의미를 우선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그는’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히브리어 문장에서 명시적으로 밝혀지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서 아론이 지팡이를 들도록 명령받았으므로 아론이 행한 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반면 15절에서는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파라오를 만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17절에는 하나님의 일인칭 발화가 나옵니다.

개구리들이 왕의 침상까지 올라올 것이다

출애굽기 7:26–29 본문 →

물에서 시작된 일이 집 안으로 들어오다

26절에서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명령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파라오에게 들어가 그에게 말하여라.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여라.」』」출애굽기 7:26 · 본디새김

하나님은 요구를 바꾸지 않으십니다. 파라오가 이전의 표징을 보았다는 사실 때문에 더 약한 요구로 물러서지도 않으십니다.

「『「네가 보내 주기를 거부한다면, 보아라. 내가 개구리들로 네 영토 전체를 치겠다.」』」출애굽기 7:27 · 본디새김

아직 개구리들이 실제로 올라온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앞으로 어디까지 들어갈 것인지를 먼저 알려 줍니다.

강에서 왕의 침실까지

「『「나일강에는 개구리들이 들끓을 것이다. 그것들은 올라와 네 집으로, 네 침실로, 네 침상 위로, 네 신하들의 집으로, 네 백성 가운데로, 네 화덕들과 네 반죽 그릇들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출애굽기 7:28 · 본디새김

침실과 침상은 사람이 쉬는 장소입니다. 화덕과 반죽 그릇은 음식을 준비하는 장소입니다. 사람들이 쉬고 먹으며 일상을 이어 가는 공간에 개구리들이 침입합니다.

앞선 재앙에서 사람들은 마실 물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먹을 것을 준비하고 잠을 자는 공간까지 위협받을 것입니다.

앞선 재앙에서는 왕이 돌아서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개구리들이 그 왕의 집과 침실, 침상까지 올라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본문은 하나님이 특별히 파라오가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다음 재앙을 집 안으로 보내기로 하셨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장면을 나란히 읽으면, 파라오가 하나님의 요구를 무시하고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점점 사라지는 듯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들끓다’라는 말이 다시 등장하다

‘들끓다’는 생물들이 떼 지어 번성하거나 우글거리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출애굽기 1:7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왕성하게 불어났다고 말할 때도 같은 어근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때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증가를 두려워했습니다. 이제는 나일강에서 개구리들이 들끓을 것이라는 경고가 내려집니다.

이스라엘의 증가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반면 개구리의 증가는 이집트에 임할 심판의 일부로 예고됩니다.

창세기 1:20에서 하나님은 물에 생물이 번성하게 하십니다. 생명의 풍성함은 창조의 좋은 질서에 속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7장에서는 그 풍성함이 이집트에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강에 사는 생명체들이 자신들의 장소를 벗어나 사람들의 생활 공간을 뒤덮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명령은 왕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

「『「개구리들은 너와 네 백성과 네 모든 신하 위로 올라올 것이다.」』」출애굽기 7:29 · 본디새김

하나님의 요구를 직접 들은 사람은 파라오입니다.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겠다고 결정한 사람도 파라오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왕보다 훨씬 많습니다.

조금 더 깊이

참고로 본디새김은 히브리어 본문의 절 번호를 따라 개구리 재앙의 예고를 출애굽기 7:26–29에 배치합니다. 많은 한국어 성경과 영어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출애굽기 8:1–4로 번호 매깁니다. 내용의 차이가 아니라 장과 절을 나누는 위치의 차이입니다.

왕은 집으로 들어갔고, 사람들은 물을 찾아 땅을 팠다

출애굽기 7:1–29 본문 →

무언가를 본다는 것과 그 의미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본문은 그가 표징을 실제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표징을 보고도 마음을 두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것을 모든 믿지 않는 사람이 파라오처럼 의도적으로 진리를 거부하고 있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출애굽기 7장은 특정한 왕과 그가 받은 명령, 그리고 그가 실제로 보인 반응을 기록합니다.

같은 사건을 경험했지만 두 모습은 다릅니다.

왕은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백성은 살아가기 위해 땅을 팝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을 거절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어떤 무게로 돌아오는지는 이미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일곱 날이 지나고, 다음 경고가 주어졌습니다.

이번에는 개구리들이 왕의 침상까지 올라올 것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