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4–24장 · 예루살렘 심판 예고

무너지는 담에 석회를 바르는 사람들

에스겔 13장에는 두 종류의 위험한 예언자가 등장합니다.

한쪽은 무너질 담을 보면서도 겉에 석회를 바르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한쪽은 사람의 목숨을 사냥감처럼 붙잡아 두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사람들을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거짓된 평화의 선언은 백성이 자신의 위험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거짓된 생사 판단은 의인을 낙담시키고 악인을 돌이키지 못하게 만듭니다.

거짓 예언은 현실을 잘못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현실에 응답하는 방식까지 잘못되게 합니다.

앞 장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헛된 환상과 아첨하는 점괘가 더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제 13장은 그 헛된 말을 전하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의 말이 무엇을 무너뜨리고 있는지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813장 본문 읽기 →

본 적도 없으면서 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

에스겔 13:1–3 본문 →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예언자들을 향해 예언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아, 예언하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향해 예언하라.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을 예언하는 자들에게 말하라. 『여호와야훼의 말을 들어라.』」에스겔 13:2 · 본디새김

남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에게서 나온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합니다. 자신의 판단과 바람을 하나님의 권위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본 것도 없이 자기 영을 따라가는 어리석은 예언자들에게 화가 있다.」에스겔 13:3 · 본디새김

에스겔 자신은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여 말씀하게 하시는 경험을 반복해서 기록했습니다(2:2; 11:5). 그러나 이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 않았으면서 자기 영을 따라갑니다.

그 차이는 사람의 열정이나 확신의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그 말이 어디에서 왔는가에 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것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이 차이를 무너뜨릴 때 예언자는 자신이 검증받아야 할 말을, 다른 사람들이 무조건 따라야 할 말로 바꾸게 됩니다. 에스겔은 그 문제를 추상적인 논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 한 장면을 보여 줍니다.

폐허 속의 여우들입니다.

폐허 속의 여우들 — 예언자가 있어야 할 자리

에스겔 13:4–5 본문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여우에 비유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네 예언자들은 폐허 속의 여우들 같았다.」에스겔 13:4 · 본디새김

무너진 곳은 여우에게 은신처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파괴된 삶의 흔적이지만, 여우에게는 들어가 머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너희는 무너져 벌어진 곳들에 올라가지 않았고, 이스라엘 집안이 여호와야훼의 날에 전투에서 버티도록 담을 쌓지도 않았다.」에스겔 13:5 · 본디새김

그들은 폐허 속에 있었지만, 폐허를 회복시키지 않았습니다.

무너진 곳을 볼 수 있었지만, 그곳으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여우는 폐허를 이용할 수 있지만, 무너진 성읍을 지키기 위해 담을 세우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거짓 예언자들도 공동체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예언자로 활동했지만, 그 공동체가 실제 위험에 맞설 수 있도록 돕지 않았습니다.

예언자가 쌓아야 할 담은 무엇인가

5절에는 ‘여호와야훼의 날에 전투에서 버티도록’이라는 목적이 붙어 있습니다. 따라서 전쟁과 성읍의 방어가 비유의 배경을 이루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예언자들이 직접 건축 공사를 하지 않았다는 고발로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언자에게 맡겨진 본래의 책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공동체가 처한 위험을 바르게 알려야 했습니다. 백성이 자신의 죄와 그 결과를 깨닫도록 도와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길을 제시해야 했습니다.

이 비유는 에스겔 22:30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그 땅을 위하여 담을 쌓고 무너진 틈에 서서 그분 앞에서 땅을 지킬 사람을 찾으셨지만 찾지 못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곳에서도 담을 쌓고 틈에 선다는 것은 단순한 건축 행위보다 넓은 의미를 지닙니다. 무너져 가는 공동체 앞에서 하나님께 신실하게 응답하는 책임과 관련됩니다.

13장의 예언자들은 바로 그 책임을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읍이 안전하지 않은데도 안전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백성이 위험에 대비하도록 돕는 대신, 위험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다음 장면에서 석회를 바르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여호와야훼가 보내지 않았는데도 여호와야훼의 말이라고 한다

에스겔 13:6–9 본문 →

하나님은 예언자들의 말을 직접 고발하십니다.

「그들은 헛된 것을 보고 거짓 점괘를 보았다.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하고 말하지만, 여호와야훼는 그들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 말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에스겔 13:6 · 본디새김

‘기다린다’는 표현은 자신들이 한 말의 실현을 바라거나 기대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말한 것이 실제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도 거짓된 예언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결과를 강하게 바란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계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내용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받지 않은 권위를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예레미야 23:16–22에서도 지적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입에서 나오지 않은 환상을 말하는 예언자들을 책망하시며, 자신이 그들을 보내지 않으셨는데도 그들이 달려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그분이 말씀하신 것과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구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명부에서 지워지는 예언자들

하나님은 이들에게 세 가지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헛된 것을 보고 거짓 점을 치는 예언자들에게 내 손이 맞설 것이다. 그들은 내 백성의 모임에 들지 못하고, 이스라엘 집안의 명부에 기록되지 못하며,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여호와야훼인 줄 알 것이다.」에스겔 13:9 · 본디새김

모임과 명부와 땅은 모두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한다는 사실과 관련됩니다. 특히 ‘명부’라는 표현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문제를 떠올리게 합니다. 유배 이후의 이스라엘에서도 가문과 계보에 관한 기록은 공동체의 소속과 직무를 확인하는 데 중요했습니다(에스라 2:59–63).

그러나 에스겔 13:9만으로 여기서 말하는 명부가 정확히 어떤 행정 문서인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인정받는 지위를 잃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 자신의 미래를 선언하십니다.

이렇게 예언자들의 권위가 무너진 뒤, 하나님은 그들이 백성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 설명하십니다.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다 — 석회로 가린 위험

에스겔 13:10–16 본문 →

13장의 중심에는 가장 인상적인 비유가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다』 하고 말하여 내 백성을 그릇 이끌었기 때문이다. 백성이 가림벽을 쌓고 있는데, 보아라, 그들은 거기에 석회를 바른다.」에스겔 13:10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는 특히 예루살렘이 안전한 상태인가 하는 문제가 중심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안전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백성이 쌓고 예언자가 칠하다

본문에서 담을 쌓는 사람과 석회를 바르는 사람이 구별됩니다.

거짓 예언자들이 반드시 모든 잘못된 생각의 최초 발명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백성이 이미 어떤 안전의 근거를 세우고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판단이나 성읍의 방어 능력을 믿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언자들은 그 판단이 옳은지 살피지 않습니다.

그 위에 석회를 바릅니다.

담에 균열이 있거나 구조가 약하다면, 겉을 깨끗하게 칠하는 일만으로 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표면은 정돈되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담을 지탱하는 힘은 그대로입니다.

5절에서 거짓 예언자들은 무너져 벌어진 곳을 고치거나 담을 쌓지 않았습니다. 10절에서는 백성이 쌓은 가림벽에 석회를 바릅니다.

그들은 실제로 필요한 담은 쌓지 않았으면서, 이미 있는 담이 안전해 보이도록 만드는 일에는 참여했습니다.

백성이 성읍의 현실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믿으며 계속 그곳에 머물 수 있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이 백성을 그릇 이끌었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효과와 관련됩니다.

폭풍이 오면 무엇이 드러나는가

하나님은 이제 그 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씀하십니다.

「석회를 바르는 자들에게 말하라. 『그것은 무너질 것이다. 쏟아지는 비가 내릴 것이다. 너희 우박 돌들아, 너희는 떨어질 것이고, 폭풍이 그것을 쪼개 버릴 것이다.』」에스겔 13:11 · 본디새김

여기서 폭풍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13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격노 속에서 폭풍을 일으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폭풍은 예루살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비유로 이해됩니다.

폭풍이 오기 전에는 석회가 담의 표면을 덮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폭풍이 몰아치면 그 표면은 담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예언자들에게 묻게 됩니다.

「보아라, 담이 무너졌다. 너희에게 『너희가 바른 칠은 어디 있느냐?』 하는 말이 들려오지 않겠느냐?」에스겔 13:12 · 본디새김

그들이 제공했던 확신이 현실 앞에서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백성은 자신들이 믿었던 말이 무엇을 가리고 있었는지 뒤늦게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담을 무너뜨리시는가

하나님은 자신이 그 담을 허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가 석회를 바른 담을 허물고 땅바닥에 쓰러뜨리겠다. 그 기초가 드러날 것이다. 그 담이 무너지고 너희는 그 안에서 끝장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여호와야훼인 줄 알 것이다.」에스겔 13:14 · 본디새김

겉에 무엇을 발랐든, 무엇으로 꾸몄든, 담이 실제로 어떤 상태였는지는 무너지고 난 뒤에야 모두가 보게 됩니다. 그들이 만들어 낸 안전의 확신은 참된 보호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담을 무너뜨리시는 일을 단순히 교육적인 시범으로만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본문에는 담의 붕괴와 함께 사람들의 멸망이 선언됩니다. 실제 파국을 동반하는 심판입니다.

「내가 그 담과 거기에 석회를 바르는 자들에게 내 격노를 다 쏟겠다. 그리고 너희에게 말하겠다. 『담도 없고, 거기에 석회를 바르는 자들도 없다.』」에스겔 13:15 · 본디새김

앞에서는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담도 없고, 담을 안전하게 보이게 만들던 예언자들도 없다고 선언됩니다.

거짓된 확신과 그 확신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함께 무너집니다.

참된 예언자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보태어 그들의 판단을 더욱 확고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현실을 바르게 전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상황이 위험하다면 위험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무너진 곳이 있다면 그곳을 가리지 말고 드러내야 합니다.

이 점은 예레미야 6:14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예레미야는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다루며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라고 말하는 지도자들을 고발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실제로 자기 백성에게 평화를 약속하시는 말씀도 많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평화를 그분의 이름으로 보장하는 데 있습니다.

참된 위로는 현실을 감추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현실을 진실하게 마주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14절의 ‘그 안에서 끝장날 것이다’라는 표현은 원문에서 담을 가리키는 말과 그것을 받는 표현 사이에 문법적인 차이가 있어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담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고, 그 담과 관련된 성읍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담의 붕괴가 그 안에 의지하던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목숨을 사냥하는 사람들 — 예언이 생명을 지배하는 수단이 될 때

에스겔 13:17–19 본문 →

17절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방향을 돌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너, 사람의 아들아,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을 예언하는 네 백성의 딸들을 향해 네 얼굴을 돌리고, 그들을 거슬러 예언하라.」에스겔 13:17 · 본디새김

그러나 그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책망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 역시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을 예언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앞부분의 예언자들과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구약은 여성의 예언 활동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15:20에서 미리암은 여예언자로 불리고, 사사기 4:4에서는 드보라가 여예언자로 등장합니다. 열왕기하 22:14–20의 훌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여예언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앞부분과 다른 종류의 행동이 등장합니다.

「너는 말하라.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아, 목숨들을 사냥하려고 내 두 손의 모든 관절에 둘 띠를 꿰매고, 키가 제각각인 모든 이의 머리에 씌울 긴 너울을 만드는 여자들아. 너희가 내 백성의 목숨들을 사냥하면서, 너희를 위해 목숨들을 살려 두려 하느냐?』」에스겔 13:18 · 본디새김

띠와 너울은 무엇이었는가

본문에 등장하는 물건은 정확한 형태와 사용 방법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이 구절에서는 사람의 생명과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것을 육체와 분리된 영혼만을 붙잡는 의식이라고 이해할 근거는 없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백성이 위험을 보지 못하도록 담을 덮었습니다. 이 여자들은 사람의 목숨을 자신들이 붙잡고 좌우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하나는 현실을 가리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생명을 지배하려는 일입니다.

보리 몇 줌과 빵 조각

다음 절에는 이 여자들이 무엇을 대가로 그런 일을 했는지 나타납니다.

「너희는 보리 몇 줌과 빵 조각들을 대가로 내 백성 앞에서 나를 더럽혔다. 거짓말을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하여, 죽어서는 안 될 목숨들을 죽이고 살아서는 안 될 목숨들을 살려 두려 했다.」에스겔 13:19 · 본디새김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거짓된 말을 전하고, 그 대가로 무엇인가를 얻는 행위입니다.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을 자신들의 이익과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 구절이 반드시 그 여자들이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살해하고 있었다는 뜻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내린 거짓된 예언과 생사에 관한 선언이 실제로 사람들의 운명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19절의 뜻은 뒤에 나오는 22절을 통해 더 분명해집니다. 그들은 의인의 마음을 낙담시키고, 악인의 손에 힘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내리시지 않은 판정을 자기들의 말로 사람들에게 적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하는 말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자기 뜻대로 다루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권한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직접 그들이 만든 것들을 찢어 버리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는 꿰매는 띠와 머리에 씌우는 덮개가 등장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어느 부위에 어떻게 착용되었는지, 어떤 의식에서 사용되었는지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특정한 주술 의식의 도구로 이해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주문을 외우거나 어떤 방식으로 초자연적인 힘을 행사했다고 구체적으로 재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보리 몇 줌과 빵 조각들을 예언이나 점술에 대한 보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보리와 빵이 단순한 대가였는지, 의식과 관련된 물품의 성격도 있었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찢고 풀어 주겠다 — 사냥감이 된 사람들을 건지시는 하나님

에스겔 13:20–21 본문 →

하나님의 대답은 매우 구체적인 동작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보아라, 너희가 거기서 목숨들을 날아다니는 것들처럼 사냥하는 그 띠들을 내가 대적한다. 내가 그것들을 너희 팔에서 찢어 내고, 너희가 사냥하는 목숨들, 날아다니는 것들 같은 목숨들을 풀어 주겠다.」에스겔 13:20 · 본디새김

그분은 단지 그 여자들에게 잘못된 일을 그만두라고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사용하던 띠를 찢어 내시고, 붙잡힌 사람들을 풀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의 긴 너울들을 찢고,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져 내겠다. 그들은 더는 너희 손에 사냥감으로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여호와야훼인 줄 알 것이다.」에스겔 13:21 · 본디새김

담을 허무는 장면에서는 거짓된 안전의 근거가 무너집니다. 띠와 너울을 찢는 장면에서는 사냥감처럼 붙잡힌 사람들이 풀려납니다.

하나님은 그 여자들이 붙잡아 둔 사람들을 자기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들은 거짓된 예언자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들의 생명은 예언자가 자기 뜻대로 거래하거나 지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붙잡으려는 자들에게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건져 내십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구절에는 ‘날아다니는 것들’이라는 독특한 표현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사냥당하는 목숨들을 새처럼 날아다니는 존재에 비유하는지, 풀려나 날아가는 움직임을 강조하는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목숨들을 날아다니는 것들에 비유하는 방식으로 옮겼습니다. 이 비유를 실제로 인간의 영혼이 새가 되어 날아간다는 묘사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생명을 사냥하고 해방한다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표현입니다.

의인은 낙담하고 악인은 힘을 얻는다 — 거짓 예언이 뒤집어 놓은 삶

에스겔 13:22–23 본문 →

「내가 의인을 아프게 하지 않았는데도 너희가 거짓으로 그의 마음을 낙담시키고, 악인의 손에 힘을 주어 그가 자기의 악한 길에서 돌이켜 생명을 보존하는 것을 막았으므로,」에스겔 13:22 · 본디새김

거짓 예언자들이 이들을 대하는 방식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과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이 아프게 하지 않으셨는데

여기서 문제는 의인이 어떤 어려움도 겪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내리지 않으신 판단이나 고통을 거짓된 말로 의인에게 지운 일을 고발합니다.

하나님이 정죄하지 않으셨는데도 예언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절망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데도 예언자가 절망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의인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지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살려고 하는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다는 두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악인의 손에 힘을 준다는 것

반대로 거짓 예언자들은 악인의 손에 힘을 줍니다.

여기서 ‘손에 힘을 준다’는 것은 그가 지금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악인은 자신의 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그러나 거짓 예언자들의 말은 그가 돌이키지 않게 만듭니다.

이것은 앞부분에서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라고 말하던 예언자들의 행동과 깊이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단순한 잘못된 조언으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가 악한 길에서 돌이켜 생명을 보존하는 것을 막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보다 자신의 길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에스겔 18:23; 33:11). 그런데 거짓 예언자들은 바로 그 돌이킴을 가로막습니다. 악인을 격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가 살아날 길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19절의 어려운 표현도 더 분명하게 이해됩니다. 죽어서는 안 될 목숨들을 죽이고, 살아서는 안 될 목숨들을 살려 두려 했다는 말은 하나님이 내리시지 않은 판정을 사람들에게 내렸다는 고발입니다.

예언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가만 볼 것이 아닙니다. 그 예언이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올바르게 전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위로를 의심하거나 모든 엄격한 책망을 옳다고 여기는 것은 본문의 뜻이 아닙니다. 문제는 말이 부드러운가 거친가가 아니라, 그 말이 진실한가 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속이는 평화를 책망하시고, 사람들을 거짓으로 낙담시키는 말도 책망하십니다.

더는 점을 치지 못하게 하겠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더는 헛된 것을 보지 못하고 점을 치지도 못할 것이다. 내가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져 내겠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여호와야훼인 줄 알 것이다.」에스겔 13:23 · 본디새김

하나님은 그들이 계속 사용해 온 거짓된 권세를 끝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살고 죽는 문제를 말하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이 그런 방식으로 자기 백성을 붙잡아 두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석회가 벗겨지고, 띠가 찢어지는 날

에스겔 13:1–23 본문 →

이 두 장면에서 하나님은 거짓된 말이 만들어 낸 것을 그대로 두지 않으십니다. 어떤 것은 무너뜨리시고, 어떤 것은 찢어 내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사람들을 속이던 확신의 실체를 드러내시고, 거짓된 권세 아래 붙잡혀 있던 이들을 건져 내십니다.

에스겔 13장의 마지막에는 더 이상 석회를 바른 담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냥하던 띠와 너울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리는 것은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내가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져 내겠다.」

사람들을 붙잡아 두던 거짓된 말의 힘이 끝나는 곳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건져 내시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