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35장
이 장의 자리 · 26–36장 · 새 세대와 땅 준비
사람을 죽인 자에게도 피할 성읍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죽은 사람의 친족은 피의 복수를 하려고 그를 뒤쫓습니다. 그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달려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가 도망칠 수 있는 성읍을 미리 마련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람을 죽인 자를 왜 보호해야 할까요?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았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못하며, 남겨진 가족의 상실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사람을 죽인 자가 무조건 죽임당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 장의 중심에는 단순히 범죄자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땅에서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앞 장에서 각 지파가 받을 땅의 경계를 정했다면, 이제 그 상속지 안에 어떤 성읍을 마련해야 하는지를 규정합니다. 그런데 그 성읍들 가운데에는 사람을 죽인 자가 피신할 수 있는 곳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땅을 상속받지 않는 레위 사람들에게도 살아갈 곳은 필요하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자기 소유의 상속지에서 레위 사람들이 거주할 성읍들을 주게 하여라. 너희는 그 성읍들 둘레의 빈터도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라.」민수기 35:2 · 본디새김
먼저 등장하는 문제는 살인 사건이 아니라 레위 사람들의 거주지입니다.
민수기 18:20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아론에게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땅에서 상속지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야훼 자신이 그의 몫이며 상속이라는 것입니다. 레위 사람들은 다른 지파들처럼 하나의 큰 영토를 상속받지 않지만, 실제로 거주할 성읍과 그 주변의 땅을 받아야 합니다.
레위 사람들은 성막을 맡아 섬기는 일을 위해 구별되었지만, 동시에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가축과 재산이 있으며, 일상생활을 꾸려 갈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 성읍들은 그들이 사는 곳이 되고, 그 빈터들은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생물을 위한 곳이 될 것이다.」민수기 35:3 · 본디새김
이것은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몫이 단지 성읍 안의 주거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생활에 필요한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성읍 주변의 땅인 것입니다.
그런데 4~5절에 이르면 다소 어려운 측량 규정이 등장합니다.
4절에서는 성읍 성벽에서 바깥쪽으로 사방 천 암마를 정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5절에서는 동서남북 각 면을 이천 암마씩 측량하고 성읍이 그 가운데 있도록 하라고 합니다.
두 숫자의 관계는 해석이 갈립니다.
한 가지 읽기는 성벽에서 바깥쪽으로 뻗은 빈터의 폭이 천 암마이고, 이천 암마는 각 방향에서 측정하는 구역의 길이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다른 읽기는 천 암마와 이천 암마가 서로 구별되는 범위의 토지 구역을 가리킨다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원문만으로 정확한 도형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이 측량의 시작점과 네 방향을 설명하지만, 두 숫자를 하나의 도면으로 연결하는 모든 조건을 명시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여섯 성읍과 마흔두 성읍
「너희가 레위 사람들에게 줄 성읍들 가운데는 사람을 죽인 자가 그곳으로 도망하도록 너희가 내줄 도피 성읍 여섯 곳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 성읍 마흔두 곳을 더 주어라.」민수기 35:6 · 본디새김
레위 사람들은 성막의 직무와 이스라엘의 종교적 질서에 관련된 집단입니다. 그들이 거주하는 성읍 가운데 일부가 생명의 보호와 재판에 관련된 역할도 맡게 됩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소유지에서 성읍들을 내주되, 많이 가진 쪽에서는 많이, 적게 가진 쪽에서는 적게 내도록 하여라. 각자는 받을 상속지에 맞추어 자기 성읍들 가운데 일부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민수기 35:8 · 본디새김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레위 사람들의 생활 기반이 특정한 한 지파만의 부담으로 마련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이 자기 상속지 가운데 일부를 내주어야 합니다.
땅을 받은 사람들이 땅을 상속받지 않은 사람들의 생활을 함께 책임지는 것입니다.
이 규정은 훗날 여호수아 21장에서 실행됩니다. 레위 사람들은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와 지파 지도자들에게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성읍과 주변 땅을 요구하고, 이스라엘은 각 지파의 상속지에서 그 성읍들을 내줍니다.
이제 본문은 공동체 안에서 가장 심각한 사건 가운데 하나인 사람의 죽음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사람을 죽인 자가 먼저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너희를 위해 성읍들을 골라라. 그 성읍들은 너희를 위한 도피 성읍이 될 것이다. 사람을 죽인 자, 곧 실수로 사람을 쳐 죽인 자가 그곳으로 도망하게 하여라.』」민수기 35:11 · 본디새김
이 구절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죽인 자’와 ‘살인자’를 처음부터 같은 뜻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는 로체아흐(רָצַח)라는 말이 사용됩니다. 이 낱말은 문맥에 따라 사람을 죽인 자를 가리키기도 하고, 고의적인 살인자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낱말 자체만으로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살인했는지, 실수로 사람을 죽였는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의 현실에서는 이 구별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또 다른 일이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의 친족이 피의 복수를 위해 가해자를 죽이려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성읍들은 너희에게 복수를 맡은 친족을 피하는 피신처가 될 것이다. 사람을 죽인 자는 재판을 받으려고 회중 앞에 서기 전에는 죽어서는 안 된다.』」민수기 35:12 · 본디새김
그 친족은 자기 가족이 죽었다는 사실을 압니다. 하지만 그 죽음이 고의적인 살인인지, 의도하지 않은 사고였는지 충분히 확인하기 전에 보복에 나설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까지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도피 성읍은 사람을 죽인 행위 자체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장소가 아니라, 그 사건이 재판을 통해 판단되기 전까지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하는 장소입니다. 피해자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죽음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또 다른 부당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만 주어진 피신처가 아니다
도피 성읍은 모두 여섯 곳입니다. 세 곳은 요단 동쪽에, 나머지 세 곳은 가나안 땅에 두도록 합니다.
뒤의 여호수아 20:7~8에서는 이 여섯 성읍의 이름이 나옵니다. 요단 서쪽의 게데스, 세겜, 헤브론과 동쪽의 베체르, 라못, 골란입니다. 민수기 35장은 아직 그 성읍들의 이름을 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양쪽에 세 곳씩 두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합니다.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그들 가운데 있는 거류민과 거주자에게 피신처가 되어야 한다. 실수로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누구든 그곳으로 도망할 수 있어야 한다.』」민수기 35:15 · 본디새김
이것은 민수기 15:15~16에서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사는 거류민에게 동일한 규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했던 말씀과 연결됩니다. 그 사람이 누구의 자손인가에 따라 생명을 보존받을 기회 자체가 없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피 성읍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가 무조건 보호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본문은 어떤 경우에 죽음의 책임을 엄격하게 물어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같은 죽음이라도 같은 죄는 아니다
본문은 먼저 고의적인 살인을 판별하는 경우들을 설명합니다.
「『만일 쇠 도구로 사람을 쳐서 그 사람이 죽었다면, 때린 자는 살인자다. 그 살인자를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민수기 35:16 · 본디새김
이어서는 돌과 나무 도구로 사람을 쳐서 죽인 경우가 나옵니다. 17~18절에서는 돌이나 나무 도구를 손에 들고 사람을 쳤는데, 그것이 사람을 죽게 할 만한 것이었다는 조건이 명시됩니다. 본문은 단순히 사람이 죽었다는 결과만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물건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살핍니다.
다만 이 규정을 ‘쇠 도구로 사람이 죽으면 예외 없이 고의적인 살인으로 판정한다’는 현대적인 법률 공식으로 단순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16~18절은 살인으로 판정되는 전형적인 사례들을 제시하며, 뒤에서는 적의와 의도 여부를 더 직접적으로 다룹니다.
20~21절에 이르면 도구보다 중요한 문제가 전면에 등장합니다.
「『만일 미워하여 사람을 밀쳐 그가 죽었거나, 노리고 그에게 무엇을 던져 그가 죽었거나,』」민수기 35:20 · 본디새김
「『또는 적의를 품고 자기 손으로 그를 쳐서 그가 죽었다면, 때린 자를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 그는 살인자다. 피의 복수를 맡은 친족은 그 살인자를 만나면 그를 죽여야 한다.』」민수기 35:21 · 본디새김
여기에는 단순히 사용한 물건보다 사람의 의도가 중요하게 나타납니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공격합니다. 다른 사람은 상대방을 해칠 생각이 없었지만 실수로 죽게 만듭니다.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결과는 같습니다. 그러나 그 두 행위를 똑같은 의도로 저지른 일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민수기 35장은 생명을 잃었다는 결과의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죽음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구별하도록 요구합니다.
고의적인 살인을 우발적인 사고와 똑같이 취급하면 의도적인 폭력의 책임을 충분히 다루지 못합니다. 반대로 우발적인 사고를 고의적인 살인과 동일하게 취급하면 사람을 죽일 의도가 없었던 사람을 부당하게 죽일 수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이 규정은 가까운 친족에게 피의 복수를 맡기는 제도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국가의 사법권과 형벌 집행 절차가 갖추어진 상황에 그대로 옮겨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형 집행 지침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죽일 의도가 없었던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요?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는 회중이 구해 내야 한다
앞에서는 미움과 적의가 강조되었습니다.
그런데 22절부터는 정반대의 상황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만일 적의 없이 갑자기 사람을 밀쳤거나, 노리지 않고 그에게 어떤 도구든 던졌거나,』」민수기 35:22 · 본디새김
「『또는 그 사람을 보지 못한 채 사람을 죽게 할 만한 어떤 돌이든 그 위에 떨어뜨려 그가 죽었는데, 돌을 떨어뜨린 자가 죽은 사람의 원수도 아니고 그를 해치려 하지도 않았다면,』」민수기 35:23 · 본디새김
본문은 죽음의 의도가 있었는지를 여러 표현으로 반복하여 확인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을 고의적인 살인자와 동일하게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회중은 이 판결 규정들에 따라 때린 자와 피의 복수를 맡은 친족 사이의 사건을 재판해야 한다.』」민수기 35:24 · 본디새김
한쪽은 자신이 고의로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쪽은 가족을 잃었으며,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 합니다. 본문은 이 둘의 갈등을 각자가 힘으로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회중’이 어떤 규모와 절차의 재판 기구로 구성되었는지는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사건을 당사자들의 사적인 판단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실수로 죽인 경우라면 회중은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회중은 사람을 죽인 자를 피의 복수를 맡은 친족의 손에서 구해 내야 한다. 회중은 그를 그가 도망했던 도피 성읍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그는 거룩한 기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민수기 35:25 · 본디새김
즉, 회중이 생명을 보호하는 행동의 주체가 됩니다. 여호수아 20:4~5는 이 과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도피하는 사람이 성읍 문 어귀에서 장로들에게 자신의 사정을 알리면, 그를 받아들여 거주할 장소를 주어야 합니다. 피의 복수를 맡은 친족이 뒤쫓아 오더라도 그를 넘겨주어서는 안 됩니다.
성읍은 단순한 성벽과 건물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그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도피 성읍의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은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호의 책임을 맡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회중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보호하지만, 그가 원래 살던 곳으로 바로 돌아가도록 허락하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것은 출애굽기 21:12~14와 신명기 19:1~13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고의로 사람을 죽인 경우와 죽일 의도가 없었던 경우를 구별합니다. 신명기는 나무를 베다가 도끼날이 빠져 다른 사람을 죽게 하는 사례를 들면서, 그 사람을 피의 복수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도피 성읍을 마련하라고 명령합니다. 특히 신명기 19:6은 피의 복수를 맡은 친족이 격분하여 그 사람을 뒤쫓아 죽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죽을 만한 죄가 없는 경우를 설명합니다.
살인자가 아닌데도 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가
25절의 마지막에는 뜻밖의 조건이 붙습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는 고의적인 살인자로 판정되지 않았습니다. 회중은 그를 피의 복수를 맡은 친족에게서 구해 냈습니다. 그런데 그는 도피 성읍을 떠나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왜 이러한 제한이 필요합니까?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도피 성읍은 그의 생명을 보존하는 장소인 동시에 그가 반드시 머물러야 하는 장소입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에게도 그 죽음으로 인해 감당해야 할 결과가 남아 있습니다.
성읍의 경계 밖에서는 다시 위험해진다
「『만일 사람을 죽인 자가 자기가 도망한 도피 성읍의 경계 밖으로 나가기라도 하여,』」민수기 35:26 · 본디새김
「『피의 복수를 맡은 친족이 그 도피 성읍의 경계 밖에서 그를 발견하고, 피의 복수를 맡은 친족이 그를 죽이면, 그 친족에게는 피 흘린 죄책이 없다.』」민수기 35:27 · 본디새김
본문은 그 이유를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도피 성읍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도피 성읍의 제도가 어디까지 보호를 제공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동시에 그 보호가 현대적인 의미의 완전한 생명권 보장과는 다르다는 사실도 보여 줍니다.
민수기 35장은 고대 이스라엘의 피의 복수 제도를 전면 폐지하지 않습니다. 그 제도를 전제하면서, 고의 없는 죽임까지 보복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재판과 피신처를 마련합니다. 이것은 보복의 범위를 제한하는 제도이지만, 모든 보복을 금지하는 규정은 아닙니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28절은 그 사람이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잃게 만든 일로 자기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때가 이르면 다시 그 땅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민수기의 마지막 부분은 줄곧 각 지파와 가문이 받을 상속지를 다룹니다. 그런데 35장에서는 어떤 사람이 실수로 다른 사람을 죽인 결과 자기 상속지에 머무를 수 없게 됩니다.
상속지를 받는 것과 그곳에서 실제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의 생명을 보존하는 장소는 도피 성읍이고, 그가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다리는 장소는 자기 상속지입니다.
조금 더 깊이
대제사장은 거룩한 기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성별된 사람입니다. 민수기 20:25~28에서는 아론이 죽을 때 제사장 직무가 엘르아살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이 점에 주목하면 대제사장의 죽음이 하나의 공식적인 시기적 경계가 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읽기는 대제사장의 죽음에 속죄와 관계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대제사장이 공동체의 죄와 정결을 다루는 직무를 맡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수기 35장은 대제사장의 죽음이 어떤 제사의 역할을 한다거나, 그 죽음의 피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의 죄를 속한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의 죽음을 과실적 살인에 대한 직접적인 대속 행위로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돈으로 살 수도, 돈으로 끝낼 수도 없는 책임
이제 여호와야훼께서는 그 판단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며, 어떤 방법으로도 바꿀 수 없는 조건은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 사람을 쳐 죽인 경우에는 증인들의 진술에 따라 그 살인자를 죽여야 한다. 그러나 증인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사람을 사형에 처해서는 안 된다.』」민수기 35:30 · 본디새김
이것은 죽임당한 사람의 생명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과 동시에, 살인 혐의로 기소된 사람의 생명도 가볍게 다루지 않으려는 규정입니다. 증언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사형을 집행하면, 돌이킬 수 없는 또 하나의 죽음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17:6과 19:15는 이 원칙을 더욱 일반적으로 설명합니다. 사형 판결이나 다른 죄의 확정에는 두세 증인의 증언이 필요하다고 규정합니다.
복수할 친족의 분노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만으로 사형 판결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고의적인 살인에 대해 매우 엄격한 형벌을 규정하지만, 그 판단을 위한 증언의 조건도 함께 제시합니다.
그러나 증거가 충분하고 고의적인 살인으로 판정되었다면, 본문은 다른 종류의 해결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죽어 마땅한 죄가 있는 살인자의 목숨을 대신할 몸값을 받지 마라. 그를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민수기 35:31 · 본디새김
여기에서 ‘몸값’은 목숨을 대신하기 위해 제공하는 대가입니다. 본문은 사람의 생명을 금전으로 환산하여 죽음의 책임을 없앨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기 도피 성읍으로 도망한 사람이 제사장이 죽기 전에 돌아와 그 땅에 살게 해 주려고 몸값을 받지도 마라.』」민수기 35:32 · 본디새김
31절과 32절은 서로 대응합니다. 고의적인 살인자는 몸값을 내고 사형을 피할 수 없습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도 몸값을 내고 정해진 거주 제한을 면할 수 없습니다.
32절의 히브리어 구문에는 몸값으로 도피 성읍에 머물러야 할 의무 자체를 면하는 것인지, 제사장이 죽기 전에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인지 해석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 읽기 모두 금전을 대가로 정해진 제한을 해제하는 일을 금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잃게 한 일의 책임은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을 오늘날 모든 범죄에 대한 금전적 배상을 금지하는 규정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다른 율법에는 손해를 입힌 사람이 재산으로 배상해야 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출애굽기 21:18~19, 22:1~6). 민수기 35장이 금지하는 것은 특별히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일에 관해 정해진 법적 결과를 돈으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께서 이처럼 인간의 생명을 엄격하게 다루시는 이유는 마지막 두 절에서 더욱 근본적으로 드러납니다.
사람의 피가 왜 땅을 더럽히는가
「『너희가 있는 땅을 더럽히지 마라. 피가 그 땅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그 땅에 흘려진 피에 대해서는 그 피를 흘린 자의 피로만 그 땅을 위한 속죄가 이루어질 수 있다.』」민수기 35:33 · 본디새김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한 사람의 삶을 빼앗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백성과 함께 머무시는 땅을 더럽히는 행위가 됩니다.
레위기 18:24~28에서는 가나안 주민들의 가증한 행위로 땅이 더럽혀졌으며, 땅이 그 주민들을 토해 낼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곳에서 땅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으로만 묘사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영향을 받는 장소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표현은 창세기 4장의 가인과 아벨 이야기와도 연결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뒤, 여호와야훼께서는 아벨의 피가 땅에서 자신에게 부르짖는다고 말씀하십니다(창세기 4:10).
아벨은 죽어서 더 이상 자신의 억울함을 직접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그 죽음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의 피가 땅에서 부르짖는다는 표현은 죽임당한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 앞에서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33절의 마지막 부분은 오늘날 독자가 어렵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땅에 흘려진 피에 대해서는 그 피를 흘린 자의 피로만 속죄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표현은 앞에서 고의적인 살인자에게 사형을 규정한 말씀과 연결해서 읽어야 합니다.
본문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까지 모두 죽여야 땅이 깨끗해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위해 도피 성읍을 마련하도록 상세히 규정했습니다.
이 문맥에서 문제 되는 것은 살인에 대한 책임을 올바르게 처리하지 않는 일입니다. 고의적인 살인에 대한 책임을 돈으로 무마해서는 안 되며, 죽임당한 사람의 피를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머무시는 땅
「『너는 너희가 사는 땅, 곧 내가 그 가운데 머무는 땅을 부정하게 만들지 마라. 나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머물기 때문이다.』」민수기 35:34 · 본디새김
민수기 1~4장에서는 성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진영을 배치했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성막을 맡아 지키도록 구별되었고, 각 지파는 정해진 위치에 진을 쳤습니다. 민수기 5:3에서는 부정한 사람들이 진영을 더럽히지 않도록 밖으로 내보내라고 명령하면서, 여호와야훼께서 그들 가운데 머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35장에서는 같은 원칙이 약속의 땅 전체와 관련하여 등장합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가면 각 지파가 서로 다른 지역에 정착하게 됩니다. 공동체의 생활은 성막 주변에 모여 있는 광야 진영의 형태를 넘어 더욱 넓은 땅으로 펼쳐집니다. 그때에도 여호와야훼께서 그들 가운데 머무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임재는 성막 안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에만 관련된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서로의 생명을 어떻게 대하고, 죽음의 책임을 어떻게 판단하며,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떤 질서를 마련하는가 하는 문제도 여호와야훼의 임재와 관련됩니다.
성막이 거룩하다는 사실과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두 가지 교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머무시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가는 땅에서 발생하는 피 흘림도 그분 앞에서 다루어져야 합니다. 레위기 17:11에서는 피에 생명이 있다고 말합니다. 피가 중요하게 취급되는 이유는 그것이 생명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의적인 살인을 엄격하게 다루는 일과,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보호하는 일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두 규정 모두 인간의 피를 함부로 흘려서는 안 된다는 원칙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공동체 가운데 머무시는가
이 장이 하나님에 관해 보여 주는 중요한 사실은, 그분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 머무시면서 사람들이 서로의 생명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관심을 두신다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정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피해자의 고통을 무시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고통을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사람의 생명을 충분한 판단 없이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그에게 정당한 판단을 받을 기회를 주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일이 아닙니다.
민수기 35장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요단강 앞에 있습니다. 레위 사람들에게 줄 마흔여덟 성읍도, 그 가운데 여섯 도피 성읍도 아직 실제로 모두 지정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그 성읍들을 미리 마련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사람을 죽이게 될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고의적인 살인이 일어날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전혀 죽일 생각이 없었던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게 만들 것입니다. 그때 분노한 친족이 뒤쫓아 올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을 죽이기 전에 사건을 판단해야 하며, 실수로 죽였다면 그 생명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달려갈 수 있는 성읍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머무시는 땅에는, 죽음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재판과 또 하나의 죽음을 막기 위한 피신처가 함께 마련되어야 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