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15장
이 장의 자리 · 13–16장 · 예루살렘으로 온 궤
하나님의 궤를 메는 사람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시도는 웃사가 죽는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궤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지 못했고, 오벳에돔의 집에 머물러야 했습니다(역대상 13장).
이제 다윗은 다시 궤를 옮기려 합니다. 그런데 역대상 15장은 이전보다 더 크고 화려한 행렬을 준비하는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가 궤를 메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옮겨야 하는지, 누가 노래하고 누가 악기를 연주할지를 길게 설명합니다.
첫 번째 시도의 실패는 기쁨이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뻐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시도에서는 기쁨을 절제해야 할까요?
달라진 것은 기쁨의 크기가 아니라 그 기쁨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방식입니다.
역대상 15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과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는 일이 어떻게 하나의 예배가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왕의 권위, 레위 사람들의 맡은 일, 백성의 참여가 모두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왕이 마련한 자리,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
15장은 다윗이 두 가지 준비를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다윗은 다윗 성에 자신을 위해 여러 집을 지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궤를 둘 자리를 마련하고, 그곳에 궤를 위한 천막을 쳤습니다.역대상 15:1 · 두루새김
이 장면은 앞서 두로 왕 후람이 다윗에게 건축 자재와 장인들을 보내어 왕궁 건축을 도왔다는 기록(14:1)과 이어집니다. 예루살렘은 이제 다윗 왕조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 도시에 하나님의 궤도 모셔 오려 합니다.
그런데 궤를 위해 마련한 것은 궁전과 같은 건물이 아니라 천막입니다. 다윗이 훗날 하나님의 궤를 위한 성전을 건축하고 싶어 한다는 점(17:1–2)을 생각하면, 이 천막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예루살렘의 예배 중심지를 보여줍니다.
그때 다윗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레위 사람들만 메어야 한다. 여호와야훼의 궤를 메고 그분을 영원히 섬기도록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선택하셨기 때문이다.」역대상 15:2 · 두루새김
첫 번째 시도에서 궤는 새 수레에 실려 운반되었습니다(13:7). 그러나 이번에는 다윗이 레위 사람들을 직접 지목합니다. 그 근거는 다윗의 판단이나 왕의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신명기 10:8은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언약궤를 메고 그분 앞에 서서 섬기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또한 민수기 4:15은 그핫 자손이 거룩한 물건들을 옮길 때 그것들을 직접 만져서는 안 된다고 정합니다. 민수기 7:9에서는 그핫 자손에게 수레를 주지 않은 이유도 밝힙니다. 그들이 맡은 거룩한 물건들을 어깨로 메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천막을 마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것을 자기 뜻대로 다룰 권한까지 가진 것은 아닙니다.
왕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자신의 계획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계획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는 것입니다.
이름과 숫자가 길게 기록된 이유
4절부터 10절에는 레위 사람들의 집안과 지도자, 그리고 각 집안에 속한 사람들의 수가 기록됩니다.
그핫 자손의 우리엘, 므라리 자손의 아사야, 게르솜 자손의 요엘을 비롯하여 엘리사반, 헤브론, 웃시엘 자손의 지도자들이 등장합니다. 독자가 기대하는 장면은 궤를 옮기는 행렬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행렬을 보여주기 전에 그 일을 맡을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합니다.
첫 번째 시도에서는 궤를 수레에 실은 뒤 소들이 그것을 끌고 갔습니다. 이제 궤를 옮기는 일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 맡겨집니다.
이 차이는 단순히 운반 수단의 변화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책임이 누구에게 맡겨져 있는지를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레위 사람들이 맡은 일은 개인적인 열심으로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과 공동체 안에서 구별된 역할에 근거했습니다.
그렇다고 레위 사람들만 이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아닙니다. 3절에서는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았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일을 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같은 기쁨에 참여합니다.
역대기는 이 구분을 경쟁 관계로 그리지 않습니다. 구별된 역할과 공동체 전체의 참여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그립니다.
다윗은 실패의 이유를 무엇이라고 설명하는가
이 장의 중심은 다윗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하는 말에 있습니다.
다윗은 그들에게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궤를 옮겨 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한 이유를 밝힙니다.
「처음 궤를 옮기려 했을 때는 너희가 궤를 메지 않아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우리를 덮쳐 치셨다. 우리가 정해진 규정대로 그분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역대상 15:13 · 두루새김
역대상 13장에서 웃사는 소들이 비틀거리자 궤를 붙잡으려고 손을 뻗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치셨고, 웃사는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 장면만 따로 보면 웃사의 행동이 문제의 전부인 것처럼 읽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15장에서 다윗은 책임을 더 넓게 봅니다.
따라서 문제는 웃사가 손을 뻗은 순간에만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앞서 궤를 수레에 싣기로 결정한 준비 과정에서 이미 하나님의 명령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레위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적하면서도 「우리를 덮쳐 치셨다」, 「우리가 정해진 규정대로 그분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잘못된 방식으로 행사를 추진했던 왕 자신도 그 책임에서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역대상 13:3에서 다윗은 사울 시대에 하나님의 궤를 찾지 않았다고 말하며 궤를 가져오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 그는 오랫동안 소홀히 여겼던 하나님의 궤를 다시 이스라엘의 중심으로 가져오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윗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찾는 일을 시도했으나 올바른 방식으로 찾지는 않았음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을 찾으려는 마음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찾는 일은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궤를 옮겨 오려고 자신을 거룩하게 했습니다.역대상 15:14 · 두루새김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을 구별하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어떤 절차를 모두 거쳤는지는 이 장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따라 모세가 명령한 대로, 장대를 어깨에 메고 하나님의 궤를 옮겼습니다.역대상 15:15 · 두루새김
출애굽기 25:12–15에서 궤에는 운반용 장대를 끼우도록 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4장은 그핫 자손이 거룩한 물건들을 옮기는 책임을 설명합니다. 역대상 15:15은 이런 명령을 실제로 따랐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힙니다.
출애굽기 25:21–22에서 하나님은 궤 위 속죄판 위에서 모세를 만나 말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궤는 하나님의 언약과 그분이 백성 가운데 계심을 특별하게 나타내는 거룩한 물건이었습니다.
따라서 궤를 어떻게 대하는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는가와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다루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자리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주제는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나타나는 성막의 거룩함과 연결됩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겠다는 약속의 표지였지만(출애굽기 25:8), 그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구별된 역할과 규정이 따랐습니다.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계신다는 은혜와 그분의 거룩하심은 서로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질서가 세워지자 음악이 시작된다
궤를 올바르게 운반할 사람들이 준비되자, 다윗은 이번에는 노래하는 사람들과 악기를 연주할 사람들을 세웁니다.
앞에서는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일과 운반 규정이 강조되었습니다. 이제는 비파와 수금과 심벌즈가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기쁨에 찬 소리를 높일 준비를 합니다.
율법에 따른 준비가 끝나자 엄숙한 침묵이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음악이 시작됩니다.
역대상 13:8에서도 다윗과 온 이스라엘은 온 힘을 다해 노래하고 여러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열정이 올바르지 않은 운반 방식을 정당화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운반 방식이 바로잡혔고, 음악은 여전히 행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기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하나님을 향해 바르게 표현되도록 합니다.
헤만과 아삽과 에단
17절에는 세 사람이 중요한 위치에 등장합니다. 요엘의 아들 헤만, 베레갸후의 아들 아삽, 구사야후의 아들 에단입니다. 이들은 19절에서 청동으로 만든 심벌즈를 울리는 일을 맡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비파와 수금 연주를 담당합니다.
이들의 이름은 뒤에 이어지는 예배 음악 전통과 연결됩니다. 특히 역대상 25:1–6에는 다윗 시대에 조직된 노래와 악기 연주를 맡은 일이 더욱 자세히 기록됩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한순간의 즉흥적인 열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맡겨진 일이 되고, 공동체 안에서 지속될 예배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습니다.
알라못과 스미닛은 무엇인가
20–21절에는 악기 연주와 관련하여 「알라못」과 「스미닛」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 두 용어는 시편의 표제에서도 발견됩니다. 시편 46편 표제에는 알라못이, 시편 6편과 12편 표제에는 스미닛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두 용어가 고대 이스라엘의 음악 연주와 관련된 전문적인 지시였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정확히 무엇을 지시했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알라못을 높은 음역과 연결하거나 스미닛을 여덟 번째 음 또는 특정한 현악 연주 방식과 연결하는 해석이 있지만, 본문만으로 판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나냐는 노래를 이끌었을까, 운반을 감독했을까
그나냐는 레위 사람들의 노래하는 일을 이끄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그 일을 잘 알았기 때문에 노래를 지도했습니다.역대상 15:22 · 두루새김
그나냐가 음악을 감독한 사람인지, 궤를 운반하는 일을 감독한 사람인지 해석이 갈립니다. 노래를 이끌었다는 해석은 이 구절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명단 속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힘을 얻습니다. 반면 운반을 감독했다는 해석은 「노래하는 일을 이끄는 지도자」에 쓰인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인 짐이나 운반과 궤를 옮기는 전체 문맥에 근거합니다.
그나냐가 맡았던 일의 정확한 성격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저자는 그가 「그 일을 잘 알았기 때문에」 지도했다는 점을 굳이 기록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중요한 것은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열심만이 아니었습니다. 맡은 일을 이해하고 제대로 해낼 수 있는 능력도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이 장에서 그런 능력은 개인적인 명성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돕는 데 쓰입니다. 23–24절의 문지기와 나팔을 부는 제사장들도 같은 맥락에 놓입니다. 그들이 모두 똑같은 일을 하지는 않지만, 각자의 역할이 합쳐져 하나의 행렬을 이룹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오랫동안 오벳에돔의 집에 머물러 있던 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도우셨다
25절에서 비로소 다윗과 이스라엘을 이끄는 어른들, 천 명씩을 이끄는 지휘관들이 행렬에 나섭니다.
궤를 옮기는 일은 개인적인 종교 행사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와 관계된 일로 그려집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야훼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들을 도우셨을 때, 사람들은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잡아 제물로 바쳤습니다.역대상 15:26 · 두루새김
처음 궤를 옮기려 했을 때 하나님은 웃사를 치셨습니다. 다윗은 그 일을 두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덮쳐 치셨다고 설명했습니다(13:10–11; 15:13).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궤를 메는 사람들을 도우십니다.
이 차이는 역대기가 두 번째 시도를 단지 인간의 준비가 완벽해져 성공한 행사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정해진 절차를 완벽하게 수행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주신다는 공식이 아닙니다.
이어서 27절에서는 사람들이 입은 옷이 묘사됩니다. 다윗과 레위 사람들, 노래하는 사람들, 그나냐가 고운 아마포 겉옷을 입고 있습니다. 다윗은 아마포 에봇도 입고 있습니다.
왕이면서도 그는 홀로 모든 일을 이끄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해진 일을 맡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마침내 28절에서 준비된 모든 소리가 하나로 합쳐집니다.
온 이스라엘은 함성을 지르고 뿔나팔과 나팔과 심벌즈를 울리며, 비파와 수금을 연주하면서 여호와야훼의 언약궤를 옮겨 왔습니다.역대상 15:28 · 두루새김
앞서 길게 나열되었던 역할과 악기들이 이 한 장면에서 만납니다.
창문에서 내려다본 사람
이처럼 온 이스라엘이 기뻐하는 장면에서 15장은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마지막에 뜻밖의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여호와야훼의 언약궤가 다윗 성에 이르렀을 때, 사울의 딸 미갈이 창문으로 내려다보았습니다. 미갈은 다윗 왕이 춤추며 흥겹게 뛰노는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를 업신여겼습니다.역대상 15:29 · 두루새김
그녀는 다윗의 아내이지만, 본문은 특별히 「사울의 딸 미갈」이라고 부릅니다. 그녀가 실제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본문이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창문 안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미갈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녀가 행렬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난받는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저자가 직접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그녀의 위치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다윗을 업신여기는 태도입니다.
온 이스라엘은 소리를 높여 기뻐합니다. 그러나 미갈은 창문 안에서 그 모습을 바라봅니다.
다윗은 춤추며 흥겹게 뛰놉니다. 그러나 미갈의 반응은 마음속에서 일어납니다.
바깥에서는 기쁨이 소리와 몸짓으로 드러나고, 안쪽에서는 업신여기는 마음이 조용히 자리 잡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역대상 10장은 사울의 죽음을 그가 하나님께 신의를 지키지 않은 일과 연결하여 설명했습니다(10:13–14). 이후 다윗이 왕으로 세워지고, 온 이스라엘이 그의 왕권을 인정하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러한 이야기 속에서 「사울의 딸」이라는 표현은 미갈이 이전 왕조와 연결된 인물이라는 사실을 독자에게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이 호칭만으로 미갈이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다윗을 업신여겼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무엘하 6:20–23에는 미갈이 다윗을 비난하고 다윗이 대답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역대상 15장은 그 대화를 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자리를 찾는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들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자리를 찾았고, 그들이 함께 메고 함께 연주하며 함께 기뻐하는 가운데 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렬을 준비한 왕이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도우신 일 앞에서 온몸으로 기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기쁨은 준비와 순종을 대신하지 않았고, 준비와 순종은 그의 기쁨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거리에서는 다윗이 춤추며 흥겹게 뛰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레위 사람들의 어깨에 메어져 다윗 성으로 들어오고, 온 이스라엘의 함성과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그 행렬을 내려다보는 창문에는 미갈이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