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아담에서 이어진 족보
다윗의 가문에 남은 이름들
다윗의 족보를 기록한다면 어떤 이름들을 남겨야 할까요?
왕의 조상들, 유명한 지도자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중심으로 기록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왕실의 정통성을 보여 주려는 족보라면 특히 그 가문의 영광을 드러내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대상 2장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윗에게 다가갑니다.
이 장에서 다윗은 분명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족보는 다윗 한 사람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지우지 않습니다.
역대상 2장은 하나님이 약속의 역사를 이어 가신 사람들의 세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관계로 이루어져 있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 안에는 잘못과 심판도 있고, 결혼과 출산도 있으며, 자손이 끊어지는 집안과 뜻밖의 방식으로 이어지는 집안도 있습니다. 왕의 계보는 그런 평범하고 때로는 불편한 역사 한가운데를 지나갑니다.
열두 아들 가운데 왜 유다부터 시작할까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단, 요셉, 베냐민, 납달리, 갓, 아셀이었습니다.역대상 2:1–2 · 두루새김
역대상 1장 마지막에 에돔의 족장들이 등장한 뒤, 2장은 마침내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을 소개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민족 전체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 곧 야곱의 이름입니다. 따라서 이 목록은 이스라엘을 지파별로 나눈 명단이 아니라 야곱의 아들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레위가 포함되고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따로 나오지 않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첫아들인 르우벤의 이름을 기록한 뒤 곧바로 르우벤의 자손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둘째 시므온이나 셋째 레위의 계보도 먼저 다루지 않습니다.
3절부터 갑자기 넷째 아들 유다의 계보로 들어갑니다.
이 질문에 대한 중요한 설명은 뒤에 나오는 역대상 5:1–2에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르우벤이 맏아들이었지만 아버지의 잠자리를 더럽힌 일 때문에 맏아들의 권리가 요셉의 자손에게 돌아갔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도 통치자는 유다에게서 나왔다고 기록합니다.
곧 맏아들의 권리와 통치자의 출현은 같은 계보에 모이지 않았습니다.
역대상 2장이 유다를 먼저 다루는 것은 다윗 왕조의 역사를 준비하기 위한 배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유다의 삶은 결코 흠 없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요셉을 노예로 팔자는 제안을 했고(창세기 37:26–27), 며느리 다말과의 관계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했습니다(창세기 38:26).
그런 유다의 후손 가운데 다윗이 태어납니다.
역대기는 이 사실을 감추거나 좋게 꾸미지 않습니다. 유다의 계보가 시작되자마자 그 집안에서 일어난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기록합니다.
유다의 첫아들은 죽고, 다말의 아들은 계보를 잇는다
유다의 아들들은 에르, 오난, 셀라였습니다. 이 셋은 수아의 딸인 가나안 여자가 낳은 아들들이었습니다.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여호와야훼가 보시기에 악했으므로, 여호와야훼께서 그를 죽이셨습니다.역대상 2:3 · 두루새김
이 장에서 하나님이 직접 행동하셨다고 분명히 밝히는 첫 번째 사건은 축복이나 출산이 아니라 심판입니다.
이 짧은 문장은 창세기 38장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에르는 다말을 아내로 맞았지만 악행 때문에 죽었습니다. 이어 오난도 형의 후손을 이어 주어야 할 책임을 피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앞세웠고, 그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창세기 38:6–10).
그 뒤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셋째 아들 셀라가 자라기를 기다리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다말은 자신의 처지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했고, 그 과정에서 유다의 아들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은 유다에게 베레스와 세라를 낳아 주었습니다. 유다의 아들은 모두 다섯이었습니다.역대상 2:4 · 두루새김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로 소개됩니다. 역대기는 그 관계를 아내로 바꾸어 표현하지 않습니다.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난 사정을 알고 있는 독자에게 이 호칭은 창세기 38장의 불편한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다말은 단순히 남편의 이름 뒤에 가려진 인물이 아닙니다. 그의 이름이 분명하게 기록됩니다. 유다의 첫 세 아들은 정상적인 혼인 관계에서 태어났지만, 다윗의 조상이 되는 사람은 다말을 통해 태어난 베레스입니다.
여기서 성경이 유다의 행동을 옳다고 인정한다고 읽어서는 안 됩니다. 창세기 38장은 오히려 유다의 책임을 드러내고, 유다가 다말의 정당함을 인정하는 장면으로 사건을 마무리합니다.
역대기는 그 이야기를 지우지 않은 채 계보를 이어 갑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인간의 잘못을 선하게 바꾸어 옳은 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유다의 잘못은 여전히 잘못이고, 에르의 악행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실패 때문에 그 집안의 역사가 그 자리에서 끝난 것도 아닙니다.
베레스의 출생은 그런 복잡한 사건을 통과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계보의 출발점이 됩니다.
같은 유다의 자손이지만, 모두가 같은 길을 걷지는 않았다
5절과 6절에서는 베레스와 세라의 자손들이 각각 소개됩니다.
베레스에게는 헤스론과 하물이 있었고, 세라에게는 시므리, 에단, 헤만, 갈골, 다라가 있었습니다. 베레스의 계보는 이후 다윗에게 이어지지만, 세라의 계보에서 등장하는 인물들도 기록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갈미의 아들은 아갈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것에 손을 대어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스라엘에 재앙을 불러온 사람이었습니다.역대상 2:7 · 두루새김
이 인물은 여호수아 7장에 나오는 아간과 연결됩니다. 여리고를 정복할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물건들을 마음대로 가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간은 그 명령을 어기고 물건들을 가져다 숨겼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아이 성에서 패배했고, 사건이 드러난 뒤 아간은 심판을 받았습니다(여호수아 7:1–26).
단순히 물건을 훔쳤다는 사실을 넘어, 하나님께 속한 것에 대한 신의를 깨뜨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의 행위는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그가 「이스라엘에 재앙을 불러온 사람」이었다고 기록합니다.
3절의 에르는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한 사람이었고, 7절의 아갈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공동체 전체에 재앙을 불러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남아 있는 이유는 칭송받을 만한 업적 때문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기억해야 할 실패 때문이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사실과 하나님께 신실하게 살아가는 일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계보에 속해 있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옳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베레스에서 다윗까지 — 왕의 계보에서 빠진 이야기들
9절부터 본문은 헤스론의 세 아들 여라므엘, 람, 글루배를 소개합니다.
그 가운데 먼저 따라가는 계보는 람의 자손입니다.
람은 암미나답의 아버지였고, 암미나답은 유다 자손의 지도자 나손의 아버지였습니다.역대상 2:10 · 두루새김
나손은 민수기 1:7과 2:3에서 광야 시대 유다 지파의 지도자로 등장합니다. 여기서 계보는 족장 시대의 유다 집안을 지나 출애굽 이후 광야 시대에 이릅니다.
나손은 살마의 아버지였고, 살마는 보아스의 아버지였습니다. 보아스는 오벳의 아버지였고,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였습니다.역대상 2:11–12 · 두루새김
그러나 보아스와 오벳 사이에는 룻기의 이야기가 놓여 있습니다.
룻은 모압 여자였습니다. 남편을 잃은 뒤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보아스를 만났습니다. 보아스는 룻과 결혼했고, 룻은 오벳을 낳았습니다.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가 됩니다(룻기 4:13–22).
역대상 2장에는 룻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아스와 오벳의 이름을 따라가는 독자는 다윗의 계보 한가운데 모압 여자 룻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혈통에 다른 민족의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강조하려는 읽기와 부딪힙니다. 다윗의 실제 가족사는 이스라엘 내부의 혼인으로만 이어진 역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윗이 등장합니다.
이새의 맏아들은 엘리압이었고, 둘째는 아비나답, 셋째는 시므아, 넷째는 느다넬, 다섯째는 랏대, 여섯째는 오셈, 일곱째는 다윗이었습니다.역대상 2:13–15 · 두루새김
이 장은 다윗이 왕이 되었다는 말을 아직 하지 않습니다. 그의 업적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윗도 먼저는 한 집안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왕권을 이야기하기 전에 역대기는 그를 아버지와 형제들 사이에 놓습니다.
다윗의 누이들이 등장하는 이유
이들의 누이는 스루야와 아비가일이었습니다. 스루야의 아들들은 아비새, 요압, 아사헬로 모두 셋이었습니다.역대상 2:16 · 두루새김
요압은 다윗의 군대 지휘관이 되었고, 아비새와 아사헬도 전쟁에 참여했습니다(사무엘하 2:18; 8:16). 그런데 역대기는 이들의 관계를 아버지를 중심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스루야의 아들들」이라고 기록합니다.
사무엘서에서도 이들은 자주 스루야의 아들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특히 요압은 다윗에게 충성하면서도 왕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을 여러 차례 저지릅니다(사무엘하 3:27; 19:5–7).
다윗의 가족관계가 훗날 왕국의 정치적 관계와 복잡하게 얽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아마사를 낳았습니다. 아마사의 아버지는 이스마엘 사람 예델이었습니다.역대상 2:17 · 두루새김
아마사 역시 다윗 시대에 정치가 크게 흔들리는 사건들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사무엘하 17:25; 19:13). 그의 아버지가 「이스마엘 사람」으로 소개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다윗의 친족 관계에는 이스라엘 밖의 혈통적 연결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을 둘러싼 친족들의 이름을 기록함으로써, 앞으로 펼쳐질 왕국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관계로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족보는 다시 헤스론의 다른 자손들에게로 돌아갑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상 16:10–11에서는 이새가 일곱 아들을 사무엘 앞에 지나가게 한 뒤, 아직 양을 돌보고 있는 막내 다윗을 불러옵니다. 사무엘상 17:12도 이새에게 여덟 아들이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반면 역대상 2장은 일곱 아들의 이름만 기록하고 다윗을 「일곱째」라고 부릅니다. 이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어떤 아들이 일찍 죽었거나 계보에서 빠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본문은 그 이유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느 하나를 확실한 설명으로 제시하기는 어렵습니다. 한편 사무엘하 17:25는 아마사의 아버지를 이드라라고 부르고 이스라엘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두 본문의 이름과 출신 표기는 차이가 있으며, 그 이유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다윗의 조상만이 아니라 성막을 만든 사람의 조상도 있다
18절에서 역대기는 헤스론의 아들 갈렙의 계보를 따라갑니다.
갈렙은 아수바가 죽은 뒤 에브랏을 아내로 맞았고, 에브랏은 후르를 낳았습니다.
후르의 아들은 우리라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들은 브살렐이었습니다.역대상 2:20 · 두루새김
출애굽기 31:1–5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브살렐을 이름으로 지목하여 부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유다 지파에 속한 후르의 손자이자 우리의 아들로 소개됩니다. 하나님은 브살렐에게 지혜와 총명과 지식을 주시고, 금과 은과 청동을 다루며 여러 공예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같은 유다 지파의 족보 안에 다윗과 브살렐이 등장합니다.
다윗은 훗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왕국을 세우고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인물이 됩니다. 브살렐은 그보다 앞선 시대에 성막을 만드는 일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역대기가 여기서 두 인물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역대기 전체에서 다윗과 성전이 중요한 주제가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유다의 계보 안에 브살렐의 이름이 남아 있다는 점은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루어 온 사람들은 왕들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해낸 장인도 그 역사에 속해 있었습니다.
헤스론의 결혼이 길르앗으로 이어지다
그 뒤에 헤스론은 길르앗의 아버지 마키르의 딸과 잠자리를 같이했습니다. 헤스론이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았을 때는 예순 살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헤스론에게 스굽을 낳아 주었습니다.역대상 2:21 · 두루새김
마키르는 므낫세 지파와 연결되는 인물입니다(민수기 26:29). 따라서 헤스론과 마키르의 딸 사이의 결혼은 유다의 가문이 므낫세와 연결되는 계보를 만듭니다.
그들에게서 태어난 스굽의 아들 야일은 길르앗에 성읍 스물셋을 가진 인물로 기록됩니다(2:22). 민수기 32:41에서는 야일이 므낫세의 자손으로 소개되며 길르앗의 마을들을 점령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한쪽에서는 헤스론을 통한 유다 계보에 속하고, 다른 쪽에서는 므낫세의 계보와 지역적 관계에 놓입니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의 지파 관계를 언제나 서로 완전히 분리된 혈통 집단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혼인을 통해 한 가문이 다른 지파와 연결되고, 그 관계가 거주지와 땅의 역사에도 반영될 수 있었습니다.
이어 23절에서는 그술과 아람이 야일의 마을들과 그낫 및 그에 딸린 마을들을 빼앗았다고 기록합니다. 성읍들을 가졌던 사람들의 역사에는 그 성읍들을 잃은 경험도 남아 있습니다.
24절에서는 헤스론이 죽은 뒤 아내 아비야가 아스훌을 낳았다는 기록으로 이 부분을 마무리합니다. 아스훌은 「드고아의 아버지」로 소개됩니다. 여기서도 「아버지」라는 표현은 성읍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계보가 점차 개인의 후손을 넘어 지역과 공동체가 이루어진 이야기로 넓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들이 없는 집안에서 이어진 긴 계보
25절부터는 헤스론의 맏아들 여라므엘의 후손들이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여러 아들과 손자들의 이름이 계속 나열됩니다. 그러나 읽다 보면 한 가지 표현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답의 아들들은 셀렛과 압바임이었습니다. 셀렛은 아들 없이 죽었습니다.역대상 2:30 · 두루새김
삼매의 형제 야다의 아들들은 예델과 요나단이었습니다. 예델은 아들 없이 죽었습니다.역대상 2:32 · 두루새김
족보에서 「아들 없이 죽었습니다」라는 말은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아들이 없다는 사실은 그 사람의 이름을 다음 세대로 이어 갈 보통의 길이 막혔음을 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4절에서는 비슷한 상황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예상 밖의 방향으로 펼쳐집니다.
세산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들만 있었습니다. 세산에게는 야르하라는 이집트 사람 종이 있었습니다.역대상 2:34 · 두루새김
그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가운데 어느 조상의 아들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세산의 종이며 이집트 사람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세산은 자기 딸을 종 야르하와 결혼시켰습니다. 그 딸은 야르하에게 앗대를 낳아 주었습니다.역대상 2:35 · 두루새김
이 짧은 사건은 지금까지 이어지던 족보의 방향을 바꿉니다.
이후 36–41절에는 앗대에서 시작해 엘리사마까지 이어지는 긴 계보가 기록됩니다. 여기서 결혼과 출산을 통해 이어진 가문의 역사는 단순한 남성 혈통의 목록보다 복잡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다만 이 장면을 사회적 평등이나 노예 해방의 이야기로 넓혀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야르하가 결혼 전에 자유인이 되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세산의 딸에게 결혼을 결정할 권한이 있었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시대에 종이 주인에게 매인 신분이었다는 사실과 아버지가 집안을 이끌고 결정하던 가족 구조를 무시한 채 이 결혼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꾸밀 근거는 없습니다.
야르하라는 종의 이름은 기록되지만, 세산의 딸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녀가 없었다면 앗대 이후의 계보는 이어질 수 없었지만, 족보는 그녀의 이름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록된 족보가 누구의 이름을 남기고 누구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는지를 보여 주는 사실입니다.
족보에 이름이 없다는 것과 역사에서 역할이 없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이 장에서 다말의 이름은 기록되고 룻의 이름은 빠져 있으며, 세산의 딸은 이름 없이 등장합니다. 세 여성의 삶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계보와 관계됩니다. 다만 아버지와 아들 중심의 짧은 족보 뒤에도 여성들의 삶과 결정적 역할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리고 역대기는 이렇게 이어진 계보를 어떤 특별한 설명 없이 여라므엘의 자손으로 기록합니다.
조금 더 깊이
앞서 31절에는 아흘래가 세산의 「자녀」로 기록되어 있지만, 34절은 세산에게 아들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아흘래를 딸로 이해하거나 후손을 남기지 못한 아들로 이해하는 등 여러 가능성이 있으나, 본문은 그 관계를 분명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계보가 성읍의 계보로 바뀌다
42절에서 다시 갈렙의 후손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앞의 계보와는 기록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여라므엘의 형제 갈렙의 자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맏아들 메사는 십의 아버지였습니다. 또 헤브론의 아버지 마레사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역대상 2:42 · 두루새김
이후에는 헤브론, 마온, 벳술, 기럇여아림, 베들레헴 같은 이름들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사람의 이름처럼 등장하는 이름이 실제로는 성읍이나 지역과도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베들레헴의 아버지」라는 말은 특정 인물이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의 자녀를 낳았다는 뜻만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히브리어 아브(אָב), 아버지는 실제 아버지뿐 아니라 집단의 조상이나 어떤 공동체를 처음 이룬 조상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성읍 이름에 붙은 「아버지」라는 표현은 그 성읍과 연결된 집안을 처음 이룬 조상이나 대표적인 선조를 가리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계보는 반드시 개인에서 개인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지역에 자리 잡은 가문이나 성읍을 이룬 집안의 역사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같은 이름의 갈렙과 후르를 어떻게 이해할까
19절에서는 갈렙이 후르의 아버지로 기록됩니다. 50절의 히브리어 구문은 갈렙이 후르의 아들인 것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두루새김은 「이들은 갈렙의 자손들이었습니다」로 앞의 목록을 마무리하고 「에브라다의 맏아들 후르의 자손들은」으로 다음 목록을 시작합니다.
이들은 갈렙의 자손들이었습니다. 에브라다의 맏아들 후르의 자손들은 기럇여아림의 아버지 소발, 베들레헴의 아버지 살마, 벳가델의 아버지 하렙이었습니다.역대상 2:50–51 · 두루새김
갈렙을 후르의 아들로 읽고, 두 절의 갈렙과 후르를 똑같은 인물로 가정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서로 반대가 됩니다. 같은 이름을 지닌 서로 다른 세대의 인물들이 있었을 수도 있고, 50절의 히브리어 구문을 다르게 나누어 후르가 갈렙의 아들이라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두루새김처럼 후르의 자손 목록을 따로 시작하는 읽기는 19절의 계보와 잘 이어지지만, 50절의 문법적 연결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한쪽을 확정하여 모든 관계를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기럇여아림과 베들레헴
기럇여아림은 사무엘상 7:1에서 하나님의 궤를 옮겨 놓은 장소로 등장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다가 돌아온 궤는 기럇여아림에 머물렀고, 훗날 다윗이 그것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이곳이 중요한 장소가 됩니다(역대상 13:5–6).
베들레헴은 이미 이새와 다윗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입니다(사무엘상 17:12). 따라서 이 목록에는 훗날 다윗의 역사와 연결될 장소들이 사람들의 계보 안에 등장합니다.
왕의 역사는 한 가족만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 왕이 태어난 곳, 그의 가족이 살아온 지역, 예배의 중심이 옮겨 다닌 장소들도 그 역사의 일부입니다. 52–54절에서는 기럇여아림과 베들레헴에 속한 여러 집안들이 더욱 자세히 나뉘어 등장합니다.
「므누홋 사람들 가운데 절반」과 「마나핫 사람들 가운데 절반」이라는 표현은 특정 집단 안에서 사람들이 나뉘거나 지역이 구분된 사정을 반영할 수 있지만, 두 명칭이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또 소라 사람들과 에스다올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소라와 에스다올은 사사기에서 삼손의 가족과 관련된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사사기 13:2; 16:31).
이렇게 족보는 여러 시대의 이야기에서 중요해질 성읍들을 한데 연결합니다. 그러나 역대기는 그 성읍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여기서 다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집안의 이름을 남깁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겐 사람 서기관들
역대상 2장은 뜻밖의 집단을 소개하면서 끝납니다.
야베스에 살며 문서를 쓰는 일을 하던 집안들은 디랏, 시므앗, 수갓 집안이었습니다. 이들은 레갑 집안의 조상 하맛에게서 나온 겐 사람들이었습니다.역대상 2:55 · 두루새김
두루새김은 서기관이 하던 일을 이렇게 풀어 옮겼습니다. 글을 기록하거나 문서를 다루는 일과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다만 이 집안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문서를 작성했고 어떤 기관에 속해 일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겐 사람들은 이스라엘 열두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의 후손으로 직접 소개되는 집단이 아닙니다. 사사기 1:16에는 모세의 장인과 관련된 겐 사람들이 유다 자손과 함께 이동하여 거주한 기록이 있습니다. 사사기 4:11에도 겐 사람 헤벨이 등장합니다.
즉 겐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살거나 관계를 맺었던 집단이었습니다. 역대상 2장은 그들 가운데 문서를 쓰는 일을 하던 집안들이 있었고, 이들이 레갑 집안과 연결된다고 기록합니다.
왜 이들이 유다의 계보와 관련된 목록에 들어왔는지, 그 관계가 혈연과 혼인에 따른 것인지,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살아온 일과 연결된 것인지는 모두 확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들이 역대기를 기록했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마지막 이름들은 고대 공동체가 자신의 역사를 남기는 일이 왕들의 행동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조금 더 깊이
레갑 집안은 예레미야 35장에서도 등장합니다. 그곳에서는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후손들에게 전한 생활 규칙을 그 집안이 오랫동안 지켜 온 이야기가 기록됩니다. 두 본문은 레갑이라는 집안 이름으로 연결되지만, 역대상 2:55의 각 집안과 예레미야 35장의 인물들을 잇는 상세한 계보가 제시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계보는 위대한 사람들의 업적만을 기록하는 문서가 아니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서 태어났고, 어떤 관계가 이어졌으며, 어떤 가문과 성읍이 이루어졌는지를 기록하는 공동체의 기억이었습니다. 그 기억에는 부끄러운 역사와 소중한 역사, 특별한 업적과 평범한 삶이 함께 남아 있습니다.
역대상 2장은 다윗의 이름에 도달한 뒤에도 멈추지 않습니다.
다윗은 15절에 등장하지만, 그 뒤로도 족보는 마흔 절을 더 이어 갑니다. 마침내 기록은 베들레헴과 기럇여아림의 집안들을 거쳐 야베스에 살며 문서를 쓰는 일을 하던 집안에 이릅니다.
왕의 조상으로 시작한 것처럼 보였던 유다의 족보가 마지막에 남기는 이름은 왕의 이름이 아닙니다.
디랏, 시므앗, 수갓 집안. 그리고 이들이 「레갑 집안의 조상 하맛에게서 나온 겐 사람들」이었다는 짧은 설명입니다.
다윗의 왕권을 다룰 준비를 하는 역대기는, 그 첫머리에서 아직 왕의 위대한 업적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왕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 땅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남깁니다.
다윗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다윗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역대상 2장은 그 사실을 이름 하나하나로 보여 줍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