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아담에서 이어진 족보

왕위는 끊겨도 계보는 이어집니다

왕의 족보는 어디에서 끝나야 할까요?

왕국이 번성했다면 후계자의 이름으로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왕국이 멸망했다면 마지막 왕의 죽음이나 왕위의 상실로 끝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역대상 3장은 다르게 끝납니다.

처음에는 다윗의 아들들이 등장합니다. 이어 솔로몬부터 요시야까지 왕들의 이름이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여고냐에게 이르러 왕의 계보에 뜻밖의 표현이 붙습니다. 왕의 후손이 이제 「포로가 된 여고냐」로 소개됩니다.

역대기가 앞으로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을 자세히 다룰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뜻깊습니다. 이 책은 왕국의 영광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 왕국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이미 독자 앞에 놓습니다.

그리고 멸망 이후에도 남아 있는 이름들을 기록합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83장 본문 읽기 →

헤브론에서 태어난 여섯 아들 — 왕의 가족이 왕국의 위기를 품고 있었다

역대상 3:1–4 본문 →

헤브론에서 다윗에게 태어난 아들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맏아들은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이 낳은 암논이었고, 둘째는 갈멜 여자 아비가일이 낳은 다니엘이었습니다.역대상 3:1 · 두루새김

역대상 2장이 다윗의 조상들을 따라왔다면, 3장은 이제 다윗 자신에게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다윗의 업적이나 왕위에 관한 설명보다 먼저 등장하는 것은 그의 아들들과 그들의 어머니입니다. 헤브론에서 태어난 여섯 아들은 각각 서로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히노암의 아들 암논, 아비가일의 아들 다니엘, 마아가의 아들 압살롬,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 아비달의 아들 스바댜, 에글라의 아들 이드르암입니다.

특히 압살롬의 어머니 마아가는 그술 왕 달매의 딸로 소개됩니다. 그술은 이스라엘 북동쪽에 자리한 왕국으로, 다윗의 가문은 이 결혼을 통해 외부 왕실과 친족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 결혼에 정치적 목적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3장 자체는 결혼의 동기를 밝히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여러 왕자가 한 왕의 아들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 구조는 훗날 누가 왕위를 이을 것인가 하는 문제와 가족 안의 충돌을 이해하는 배경이 됩니다.

첫째, 셋째, 넷째 아들의 이름에 담긴 비극

첫아들 암논은 다윗의 맏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하 13장에서 암논은 이복누이 다말에게 성폭력을 저지릅니다. 이후 다말의 오빠 압살롬은 암논을 죽이게 합니다.

셋째 아들 압살롬은 나중에 아버지 다윗에게 반역하여 왕권을 차지하려다가 죽습니다(사무엘하 15–18장). 넷째 아들 아도니야는 다윗이 늙었을 때 스스로 왕이 되려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고, 아도니야는 결국 솔로몬의 통치 아래에서 죽임을 당합니다(열왕기상 1:5–53; 2:13–25).

둘째 다니엘은 사무엘하 3:3에서 길르압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두 이름이 같은 인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이름이 달리 전해진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또한 그가 왕위를 잇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역대상 3장은 이 모든 사건을 서술하지 않습니다. 아들들의 이름만 기록합니다. 그렇지만 사무엘서와 함께 읽는 독자는 이 목록에 얼마나 고통스러운 역사가 담겨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왕의 아들이라는 신분이 지혜나 정의로움을 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윗의 후계 문제는 단순히 누가 먼저 태어났는가에 따라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맏아들의 지위도, 왕자가 스스로 주장하는 권리도 정당한 왕권을 확정해 주지 못했습니다.

이 문제는 곧 솔로몬에게 이어집니다.

헤브론과 예루살렘, 두 도시가 나누는 다윗의 생애

이 여섯 아들이 헤브론에서 다윗에게 태어났습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왕으로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는 삼십삼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역대상 3:4 · 두루새김

헤브론은 다윗이 처음 왕으로 다스렸던 곳입니다. 사무엘하 2:4에 따르면 그는 헤브론에서 유다 집안의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된 다윗은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그곳을 통치의 중심지로 삼았습니다(사무엘하 5:1–10).

따라서 4절은 두 도시를 통해 다윗의 통치가 확대된 과정을 짧게 보여 줍니다. 헤브론에서 태어난 여섯 아들은 다윗 왕권의 초기와 연결되고, 다음 절부터 등장할 예루살렘의 아들들은 왕국의 중심이 옮겨진 이후의 가족사를 보여 줍니다.

다윗의 정치적 역사는 발전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자라는 자녀들의 관계가 평안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국의 확장과 가정의 안정은 같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아들들 — 솔로몬은 처음부터 유일한 후계자가 아니었다

역대상 3:5–9 본문 →

예루살렘에서 다윗에게 태어난 아들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므아, 소밥, 나단, 솔로몬, 이 넷은 암미엘의 딸 밧수아가 낳았습니다.역대상 3:5 · 두루새김

밧수아는 사무엘하 11:3에서 밧세바라고 불리는 여인과 연결됩니다. 사무엘하 11장에서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관계를 맺었고, 그의 남편 우리야가 전장에서 죽도록 만들었습니다. 예언자 나단은 다윗의 행동을 꾸짖었고,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해야 했습니다(사무엘하 12:1–13).

그런데 역대상 3장은 이 사건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다윗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기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역대상 3:5는 결혼 관계의 시작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내리지 않고, 그 관계에서 태어난 후손들을 기록합니다.

솔로몬에게는 헤브론에서 태어난 형들이 있었고, 밧수아의 아들 명단에서도 그의 이름이 마지막에 나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은 그가 맏아들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역대상 22:9–10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솔로몬이라는 아들이 태어나 왕위를 잇고,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집을 지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역대상 28:5–6에서도 다윗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선택하여 왕위에 앉히시고 성전을 짓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왕위를 잇는 일의 의미는 누가 먼저 태어났는가보다 하나님이 누구에게 어떤 일을 맡기셨는가에 놓여 있습니다.

다말의 이름 하나가 남기는 질문

6–8절에서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아들 아홉 명이 더 등장합니다. 그리고 9절은 아들들의 목록을 마무리하면서 한 여자의 이름을 덧붙입니다.

첩들에게서 태어난 아들들 말고는 이들이 다윗의 아들 모두였습니다. 다말은 이들의 누이였습니다.역대상 3:9 · 두루새김

다말은 사무엘하 13장에서 암논에게 성폭력을 당한 바로 그 인물입니다. 그는 압살롬의 친누이였습니다. 역대상은 다말의 출생 순서도, 어머니도, 그가 겪은 사건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말의 이름을 남겨 놓습니다.

이 이름이 특별히 기록된 이유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유명한 사건 때문인지, 전해 내려온 계보에서 특별히 보존된 이름이기 때문인지는 본문이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왕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아는 사람에게 다말은 단순히 왕의 딸 한 사람이 아닙니다. 권력을 가진 가족 구성원에게 피해를 입었고, 이후 오빠의 집에서 살아가게 된 사람입니다(사무엘하 13:20).

왕실 족보에는 통치자와 왕위 계승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왕실의 권력과 가족관계 속에서 상처를 입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말의 이름을 지나면 족보는 곧 솔로몬에게로 돌아갑니다. 이제 여러 아들 가운데 하나였던 솔로몬은 후대의 왕들을 잇는 중심 인물이 됩니다.

왕들의 이름 사이에 반복되는 「…의 아들」

역대상 3:10–14 본문 →

솔로몬의 아들은 르호보암이었고, 르호보암의 아들은 아비야였습니다. 아비야의 아들은 아사였고, 아사의 아들은 여호사밧이었습니다.역대상 3:10 · 두루새김

10절부터 기록 방식이 바뀝니다.

앞에서는 여러 아들과 그 어머니의 이름을 함께 소개했지만, 이제는 한 사람에서 다음 사람으로 이어지는 계보만 남습니다. 원문에서는 브노(⁨בֵּן⁩), 곧 「그의 아들」이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두루새김은 아버지의 이름을 밝혀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의 아들」처럼 옮깁니다.

왕이 바뀌어도 같은 집안의 계보가 이어집니다.

아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일을 행하고 우상을 없앤 왕으로 기록됩니다(역대하 14:2–5). 여호사밧 역시 하나님을 찾고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역대하 17:3–9). 반면 요람과 아하시야는 북이스라엘의 아합 집안과 관계를 맺으며 악한 길을 걸었다고 평가됩니다(역대하 21:6; 22:3–4).

아하스는 우상숭배와 성전 폐쇄로 비판받지만, 그의 아들 히스기야는 성전을 깨끗하게 하고 예배를 회복했습니다(역대하 28:22–25; 29:3–11).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악한 일을 저질렀다가 고난 가운데 겸손해져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왕으로 기록됩니다(역대하 33:1–13). 므낫세의 아들 아몬은 악을 행했고, 그다음 왕 요시야는 다시 하나님을 찾고 예배를 바로잡았습니다(역대하 33:21–25; 34:1–7).

같은 계보가 이어지지만, 왕들의 삶은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왕위는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 이어졌지만, 하나님을 성실히 따르는 삶까지 저절로 물려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하나님을 찾았다고 해서 아들도 반드시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아버지가 악한 일을 저질렀다고 해서 아들이 반드시 같은 길을 걸었던 것도 아닙니다.

족보가 왕위에 올랐던 모든 사람을 기록하지는 않는다

11절에서는 아하시야의 아들로 곧바로 요아스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실제 왕국의 역사에서는 아하시야가 죽은 뒤 아달랴가 권력을 차지하여 유다를 다스렸습니다(열왕기하 11:1–3; 역대하 22:10–12).

그러므로 이 족보는 유다의 왕위에 올랐던 모든 통치자를 빠짐없이 나열한 목록이 아닙니다. 다윗의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후손을 따라가는 계보이기 때문에 아달랴의 통치 기간이 여기에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계보는 누가 누구에게서 이어졌는지를 보여 주고, 역사 서술은 누가 어떤 사건을 통해 권력을 얻고 잃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두 종류의 기록을 함께 읽을 때 왕국의 역사가 더 정확하게 드러납니다.

요시야 다음에 계보의 질서가 무너지다

역대상 3:15–16 본문 →

14절까지는 왕들의 이름이 일정한 형식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요시야에 이르면 기록 방식이 갑자기 달라집니다.

요시야의 아들들은 맏아들 요하난, 둘째 여호야김, 셋째 시드기야, 넷째 살룸이었습니다.역대상 3:15 · 두루새김

이 변화는 유다 왕국의 마지막 시기와 맞물립니다. 요시야가 죽은 뒤 유다의 왕위 계승은 외국 세력의 개입 속에서 복잡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먼저 살룸으로 알려진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22:11은 요시야의 아들 살룸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여호아하스는 이집트 왕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났고, 그의 형제 여호야김이 왕위에 올랐습니다(열왕기하 23:30–34).

이후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 곧 여호야긴이 왕위를 이었지만 바벨론 왕에게 사로잡혀 갔습니다(열왕기하 24:6–16). 그리고 바벨론 왕은 여고냐의 삼촌 맛다냐를 왕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꾸었습니다(열왕기하 24:17).

따라서 15절의 아들들 나열 순서는 실제 왕위에 오른 순서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16절의 시드기야는 누구인가

여호야김의 자손들은 그의 아들 여고냐와 여고냐의 아들 시드기야였습니다.역대상 3:16 · 두루새김

그런데 열왕기하 24:17에 따르면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여고냐의 삼촌이고, 역대상 3:15에서도 요시야의 아들로 기록됩니다. 따라서 16절의 시드기야를 곧바로 유다의 마지막 왕과 같은 사람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절에서 유다 왕실의 새로운 현실이 짧은 표현으로 등장합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은 여고냐와 시드기야 뒤에 각각 「그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붙입니다. 두 번째 표현이 여고냐를 가리킨다면 시드기야는 여고냐의 아들이 됩니다. 여호야김을 다시 가리킨다면 여호야김의 또 다른 아들이 됩니다. 두루새김은 가까운 이름인 여고냐에 연결하여 「여고냐의 아들 시드기야」로 옮겼습니다.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이었을 가능성도 있고, 계보가 짧게 정리되거나 전해지는 과정에서 관계가 다르게 표현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설명이 옳은지는 이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포로가 된 여고냐 — 왕이라는 이름이 사라진 자리

역대상 3:17–18 본문 →

포로가 된 여고냐의 아들들은 스알디엘, 말기람, 브다야, 세낫살, 여가먀, 호사마, 느다뱌였습니다.역대상 3:17–18 · 두루새김

여고냐는 왕의 후손일 뿐 아니라 실제 유다의 왕이었던 사람입니다. 열왕기하 24:8–16에 따르면 그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했고, 왕실과 고위 관리들, 기술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이제 역대기는 그를 왕이라는 칭호보다 포로라는 처지로 소개합니다.

여고냐에게 자손이 있다는 것이 왜 중요할까

예레미야 22장에서 하나님은 여고냐를 심판하시며 그의 후손 가운데 누구도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리는 일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가운데 22:30에서는 여고냐를 자식 없는 사람처럼 기록하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역대상 3장에는 여고냐의 아들들이 여러 명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본문은 서로 모순되는 것일까요?

예레미야 22:30의 앞뒤 흐름을 보면, 그가 실제로 자녀를 한 명도 두지 못한다는 것보다 그의 후손들이 왕위를 이어 유다를 다스리지 못한다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여고냐의 왕권과 그 후손들의 통치에 대한 심판을 선포합니다. 역대기는 왕권을 잃은 뒤에도 남아 있던 그의 자손을 기록합니다.

왕위를 잃었다는 사실과 후손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같지 않습니다.

사무엘하 7:12–16에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후손을 세우시고 그 왕국을 굳게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역대상 17:11–14에도 같은 약속이 기록됩니다.

하나님은 왕조를 굳게 세우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다윗의 후손들은 왕위를 잃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역대상 3장은 직접적인 해설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대기 전체에서는 왕들의 행동과 국가의 몰락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합니다. 역대하 36:14–21은 지도자들과 백성이 거듭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게 행동했고,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으며, 결국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백성이 포로가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역대기의 관점에서 왕국의 몰락은 단순한 국제 정치의 변화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불신실함과 심판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심판이 다윗 가문의 모든 후손을 없애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왕으로 소개되던 가문이 포로의 가문이 되었지만, 그 안에서 다음 세대의 이름이 계속 기록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고냐 뒤에 나오는 히브리어 아시르(⁨אַסִּיר⁩)는 「포로」를 뜻하는 말로 읽을 수 있지만, 「앗실」이라는 사람 이름으로 읽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문법과 계보의 연결이 완전히 분명하지 않으므로, 두루새김이 택한 「포로가 된 여고냐」는 앞뒤 흐름에 자연스럽지만 유일하게 가능한 읽기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여고냐가 실제로 바벨론 포로였다는 사실은 열왕기하 24:12–15에서 확인됩니다.

스룹바벨 — 왕이 아니라 총독으로 돌아온 다윗의 후손

역대상 3:19–20 본문 →

브다야의 아들들은 스룹바벨과 시므이였습니다. 스룹바벨의 아들들은 므술람과 하나냐였고, 슬로밋은 이들의 누이였습니다.역대상 3:19 · 두루새김

스룹바벨은 바벨론 포로 생활 이후 유다 공동체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에스라 3:2에서는 스룹바벨이 제사장 예수아와 함께 제단을 세워 번제를 드리는 일을 시작합니다. 학개 1:1에서는 스룹바벨을 유다 총독이라고 부릅니다. 스가랴 4:6–10은 그가 성전의 기초를 놓았으며 공사를 마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왕으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왕국의 정치적 독립과 성전이 함께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포로 생활 이후에는 성전이 다시 세워지더라도 다윗 왕조의 독립 왕권이 그대로 회복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룹바벨은 제국의 지배 아래 있는 유다의 총독으로 활동했습니다.

스룹바벨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역대상은 스룹바벨을 브다야의 아들로 기록합니다. 그런데 에스라 3:2와 학개 1:1, 2:2에서는 스룹바벨을 스알디엘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스알디엘과 브다야는 모두 역대상 3:17–18에서 여고냐의 후손으로 소개됩니다.

브다야가 실제로 낳은 아버지이고 스알디엘이 법적으로 또는 가문에서 인정받는 아버지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형제가 자식 없이 죽었을 때 남은 형제가 그 아내와 결혼하여 후손을 이어 주는 가족제도를 통해 두 관계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한쪽에 전해진 기록은 실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다른 쪽에 전해진 기록은 왕실을 잇는 관계를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설명들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사건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느 하나를 사실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두 기록이 스룹바벨을 여고냐의 후손과 연결한다는 점입니다.

반지 하나가 연결하는 심판과 회복

예레미야 22:24에서 하나님은 여고냐가 자신의 오른손에 낀 인장 반지라 하더라도 그를 빼 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학개 2:23에서 하나님은 스룹바벨을 택하여 인장 반지처럼 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인장 반지는 권위와 신임을 나타낼 수 있는 물건입니다. 예레미야에서는 그 반지를 빼 버리는 모습이 사용됩니다. 왕권에 대한 심판과 거절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심판받은 다윗 가문의 후손에게 다시 하나님의 선택을 나타내는 말이 주어진 것입니다.

학개의 약속은 그를 향한 하나님의 선택을 말하지만, 그 약속이 어떤 정치적 형태로 이루어졌는지까지 역대상 3장이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 왕조의 후손은 남아 있고, 하나님은 그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을 특별히 선택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왕국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스룹바벨 이후에도 이름들은 계속된다

역대상 3:21–24 본문 →

스룹바벨이라는 중요한 이름이 등장한 뒤에도 계보는 계속 이어집니다.

19절에는 므술람과 하나냐라는 아들뿐 아니라 그들의 누이 슬로밋이 등장합니다. 20절에는 스룹바벨의 다른 아들 다섯 명이 기록됩니다. 스룹바벨 자신은 총독으로 역사에 등장하지만, 그의 아들들과 그 이후의 후손들은 대부분 이름만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족보는 또 한 번 방향을 바꿉니다.

앞서 솔로몬부터 요시야까지는 왕위 계승과 함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스룹바벨 이후에는 그러한 통치의 이어짐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저 자녀와 후손이 이어집니다.

불분명해지는 세대의 연결

하나냐의 아들들은 블라댜와 여사야였습니다. 또 르바야의 자손들, 아르난의 자손들, 오바댜의 자손들, 스가냐의 자손들이 있었습니다.역대상 3:21 · 두루새김

그러나 그 뒤에 등장하는 르바야, 아르난, 오바댜, 스가냐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원문에서는 각 이름 앞에 자손들을 가리키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이들을 앞선 인물의 후손으로 차례차례 연결하여 여러 세대의 계보로 읽을 수도 있고, 서로 나란히 기록된 집안들의 목록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칠십인역은 이 부분을 여러 세대가 이어지는 관계로 읽도록 돕는 형태를 보이지만, 히브리어 본문만으로 그 연결을 모두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사람들을 모두 연속된 세대로 읽으면 스룹바벨 이후 상당한 세월이 흐른 계보가 됩니다. 반면 나란한 집안들의 이름이라면 실제 세대 수는 달라집니다.

따라서 이 목록만으로 역대기가 최종적으로 쓰인 시기를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다섯 이름과 여섯이라는 수

스가냐의 아들은 스마야였습니다. 스마야의 아들들은 핫두스, 이갈, 바리야, 느아랴, 사밧으로 모두 여섯이었습니다.역대상 3:22 · 두루새김

나열된 스마야의 아들 이름은 다섯인데, 본문에는 「모두 여섯」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차이를 해결하려고 스마야 자신을 포함해 여섯으로 계산하거나, 빠진 이름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가능성일 뿐입니다.

족보가 오랜 시간 전해지는 과정에서 생긴 차이일 수도 있지만, 어떤 단계에서 어떻게 이러한 차이가 발생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역대상 3장은 고대의 족보를 읽을 때 모든 숫자와 세대 관계를 우리가 원하는 만큼 분명하게 다시 정리할 수는 없다는 사실도 보여 줍니다.

왕이 없는 시대에도 다윗의 약속은 어떻게 읽혔을까

포로 생활 이후 유다 공동체는 이전과 같은 독립 왕국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바벨론과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유다의 정치적 위치는 달라졌고, 예루살렘 성전과 공동체의 삶을 다시 세우는 일이 중요해졌습니다.

예레미야 23:5–6에서는 다윗을 위해 의로운 가지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약속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역대상 3장은 특정 후손을 장차 왕위에 오를 사람으로 밝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계보가 포로 생활 이후까지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은 당시 공동체가 다윗의 후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왕이 없는 시대에도 다윗 가문은 공동체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신약의 족보와도 연결됩니다. 마태복음 1:12–13은 여고냐, 스알디엘, 스룹바벨을 예수님의 계보에 포함합니다. 이는 역대상 3장을 직접 인용한다기보다 다윗의 후손에 관해 전해 내려온 계보를 후대에 이어받아 예수님과 연결한 것입니다.

그러나 역대상 3장 자체가 독자에게 먼저 보여 주는 것은 포로 생활 이후에도 계속된 다윗 가문의 역사입니다. 그 본래의 상황을 이해한 뒤에야 신약에서 이 계보가 갖는 의미도 제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왕위를 잃은 뒤에도 남겨진 이름

역대상 3:1–24 본문 →

역대상 3장은 왕권의 역사를 기록하다가, 왕권을 잃은 뒤에도 계속되는 한 가문의 역사로 끝납니다. 왕의 이름이 중요하다고 해서 왕이 아닌 사람의 이름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엘료에내의 아들들은 호다위야후, 엘리아십, 블라야, 악굽, 요하난, 들라야, 아나니로 모두 일곱이었습니다.역대상 3:24 · 두루새김

본문은 아나니가 왕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성전을 지었다거나 나라를 다스렸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엘료에내의 일곱 아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왕으로 시작한 족보가 왕이 아닌 후손의 이름으로 끝납니다.

다윗의 집안에서 왕위가 사라진 뒤에도 새로운 세대는 태어났습니다. 역대상 3장은 그 사실을 마지막 이름까지 기록합니다.

왕의 왕관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의 이름은 남아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