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아담에서 이어진 족보

복을 구한 사람과 땅을 차지한 사람들

역대상 4장에는 두 종류의 땅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의 땅을 넓혀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청을 이루어 주십니다. 다른 사람들은 양과 염소를 먹일 땅을 찾아 이동합니다. 그들은 풀이 무성하고 평온한 땅을 발견하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공격하여 땅을 차지합니다.

두 사건 모두 땅이 넓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그 사건들을 전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94장 본문 읽기 →

왕들의 이름에서 다시 마을 사람들의 이름으로

역대상 4:1–8 본문 →

유다의 자손들은 베레스, 헤스론, 갈미, 후르, 소발이었습니다.역대상 4:1 · 두루새김

앞 장에서는 다윗의 왕조가 솔로몬을 거쳐 포로기 이후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4장은 다시 유다의 여러 집안과 그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베레스, 헤스론, 갈미, 후르, 소발은 모두 유다의 자손으로 소개되지만, 이들을 유다에게서 직접 태어난 다섯 아들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베레스는 유다의 아들이고, 헤스론은 베레스의 아들입니다(역대상 2:4–5). 후르 역시 유다의 후대 계보에 속합니다(역대상 2:18–20).

여기서 「자손들」(⁨בֵּן⁩)이라는 표현은 여러 세대에 걸친 후손과 집안을 아우릅니다. 이는 4장이 엄격한 출생 순서를 따라 한 세대씩 내려가는 족보가 아니라, 유다에서 나온 여러 집안을 다시 모아 소개하는 장이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소발의 아들 르아야는 야핫의 아버지였고, 야핫은 아후매와 라핫의 아버지였습니다. 이들에게서 소라 사람들의 집안들이 이어졌습니다.역대상 4:2 · 두루새김

소라는 유다 지역과 연결된 성읍이며, 사사기에서는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살던 곳으로 등장합니다(사사기 13:2). 사사기가 소라 출신 한 사람의 극적인 생애를 들려준다면, 역대상 4장은 그 지역에 살았던 여러 가족의 이름을 보존합니다. 성경의 역사에는 특별한 사건을 겪은 인물뿐 아니라 그들이 살아간 지역과 공동체도 존재합니다.

3–4절에서도 에담, 그돌, 후사, 베들레헴 같은 지명이 사람들의 계보와 함께 등장합니다. 이때 「에담의 아버지(⁨אָב⁩)들」, 「그돌의 아버지」라는 표현은 반드시 그 이름을 가진 아들을 낳았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어떤 지역이나 집안을 처음 이룬 조상을 가리키는 족보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3절은 원문에서 세 이름과 「아버지」라는 단수 표현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스르엘 한 사람에게만 연결할 수도 있고, 세 사람을 함께 묶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에담의 아버지들은」이라고 옮겨 세 사람을 함께 묶었습니다.

원문에서 분명하지 않은 세부 관계를 억지로 정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목록에서 분명한 것은 유다의 여러 후손이 특정 지역과 집안의 형성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성의 이름과 마을의 이름

3절에는 이스르엘, 이스마, 잇바스라는 이름 뒤에 그들의 누이 하슬렐보니가 등장합니다. 5절에서는 드고아의 아버지 아스훌에게 헬라와 나아라라는 두 아내가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6–7절에서는 두 여인에게서 태어난 후손들을 구분하여 나열합니다.

드고아는 훗날 예언자 아모스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입니다(아모스 1:1). 사무엘하 14:2에서도 요압이 드고아에서 지혜로운 여인을 데려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역대상은 이 성읍의 유명한 인물들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드고아와 연결된 오래된 집안의 이름을 기록할 뿐입니다.

한 지역이 후대에 어떤 의미를 갖게 되었든, 그곳에는 그 이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름들이 이어지다가 9절에서 갑자기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한 사람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야베스 — 고통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다

역대상 4:9–10 본문 →

야베스는 형제들보다 더 존중받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내가 이 아이를 고통 속에서 낳았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이름을 야베스라고 지었습니다.역대상 4:9 · 두루새김

그가 어느 시대에 살았는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어떤 지위를 누렸는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름에 담긴 고통

여기서 야베스의 어머니는 자신의 출산 경험을 아들의 이름에 담았습니다. 특별히 아이를 낳기 어려웠는지, 출산과 관련된 다른 고난이 있었는지, 아니면 출산의 고통 자체를 강조한 것인지 본문은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야베스가 불행한 운명을 타고났다거나 가족에게 저주받은 아이였다고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10절에서 야베스가 기도하는 내용을 보면 이 이름의 의미가 다시 등장합니다.

야베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저에게 꼭 복을 주시고 제 땅을 넓혀 주십시오. 주님의 손으로 저를 도우시고, 재앙을 막아 제가 고통을 겪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가 구한 것을 이루어 주셨습니다.역대상 4:10 · 두루새김

기도의 마지막에 나오는 「고통을 겪지 않게」라는 말은 9절의 이름 설명과 다시 연결됩니다. 어머니는 과거의 고통을 기억하여 아들에게 이름을 주었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미래에 고통이 닥치지 않도록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어머니가 겪은 고통은 아들의 출생을 설명했지만, 아들의 미래까지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야베스라는 이름을 그대로 지닌 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자신의 출생에 담긴 고통을 지울 수는 없지만, 앞으로 살아갈 삶을 위해 도움을 구할 수는 있었습니다.

야베스가 구한 네 가지

첫째, 그는 복을 구합니다. 히브리어에는 축복을 뜻하는 동사의 부정사형과 활용형이 함께 사용되어 요청을 강조합니다. 두루새김의 「꼭 복을 주시고」는 그 강조를 살린 표현입니다.

둘째, 자신의 땅을 넓혀 달라고 구합니다. 여기서 땅은 추상적인 영향력이나 개인적 명성을 뜻한다고 보기보다, 실제 땅이나 살아가는 영역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역대상 4장은 여러 집안과 그들의 거주지를 기록하고 있으며, 뒤에서는 시므온 자손들이 풀밭을 찾아 이동하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러한 흐름에서 야베스의 요청은 생활과 생존의 터전에 관한 기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손으로 자신을 도와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의 손」은 하나님이 실제로 인간의 손처럼 몸을 가지고 계신다는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을 나타내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비슷한 표현은 에스라서에서도 반복됩니다. 에스라 7:6은 에스라가 하나님의 손이 자신 위에 있었기 때문에 왕에게 구한 것을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넷째, 재앙과 고통에서 보호받기를 구합니다. 그의 기도에는 번성과 안전에 대한 바람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끝맺지 않은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다

본문은 기도의 결과에 관해 오직 하나님이 그의 요청을 이루셨다는 사실만 기록합니다. 역대상 4장에는 수많은 사람의 이름과 행동이 등장하지만, 하나님이 한 사람의 요청에 응답하셨다고 직접 기록하는 곳은 이 장면뿐입니다.

그렇다고 이 구절을 모든 신자의 땅과 재산이 반드시 늘어날 것이라는 보편적인 약속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야베스의 특정한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말을 기도하면 동일한 결과를 얻는다는 규칙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또한 야베스가 형제들보다 존중받았다는 사실을 그의 부유함이나 땅의 크기로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이 장면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모습은 사람이 겪는 고통과 생존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간청을 들으시는 하나님입니다.

야베스의 이야기는 단 두 절이지만, 이름들의 목록 가운데 한 사람의 목소리를 남깁니다.

이제 그 목소리가 사라지고 족보는 다시 여러 집안으로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로 야베스는 야베츠입니다. 어머니가 그 이름을 지은 이유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말은 브오체브, 고통 속에서입니다. 본문은 두 말의 소리 유사성을 이용하여 이름을 설명합니다. 원문에서 히브리어 기도는 「만일 당신이 저에게 복을 주시고……」라는 조건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조건문처럼 「그러면 제가 무엇을 하겠습니다」라는 뒤따르는 문장은 나오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넓혀 주십시오」, 「해 주십시오」라는 직접적인 간청으로 옮겼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야베스는 하나님께 어떤 대가를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요청을 들어주시기를 바라는 강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쟁 영웅과 장인들 — 유다의 역사는 여러 종류의 일을 통해 이어졌다

역대상 4:11–16 본문 →

11–12절에는 글룹과 므힐과 에스돈의 후손들이 등장합니다.

그나스의 아들들은 옷니엘과 스라야였고, 옷니엘의 아들은 하닷이었습니다.역대상 4:13 · 두루새김

옷니엘은 사사기 3:9–11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지도자로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이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리사다임의 지배를 받던 때, 하나님은 옷니엘을 구원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고, 그는 이스라엘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런데 역대상 4장에서는 그의 승리나 지도력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나스의 아들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뿐입니다. 다른 성경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던 사람도 계보 속에서는 수많은 이름 가운데 하나로 등장합니다.

므오노대는 오브라의 아버지였습니다. 스라야의 아들 요압은 ‘기술자들의 골짜기’라는 곳의 아버지였습니다. 그곳 사람들이 기술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역대상 4:14 · 두루새김

한 지역이 왕이나 전쟁의 이름이 아니라 거기서 일하던 사람들의 기술로 기억된 것입니다. 옷니엘은 사사기에서 전쟁과 구원의 역사에 등장합니다. 기술자들의 골짜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역대기는 둘 다 유다의 역사 안에 기록합니다.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아들들은 이루, 엘라, 나암이었습니다. 엘라의 아들은 그나스였습니다.역대상 4:15 · 두루새김

이 갈렙은 민수기 13:6에서 유다 지파의 정탐꾼으로 소개되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연결됩니다. 그는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던 사람이며, 여호수아 14:6–14에서는 노년에 이르러서도 헤브론 땅을 자신이 물려받을 땅으로 요청합니다. 그런데 역대상 4장은 그의 신앙이나 용기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의 아들들과 후손을 기록할 뿐입니다.

또한 이 갈렙과 앞서 등장한 갈렙은 아버지 이름이 다릅니다(역대상 2:18). 동일한 이름이 나온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인물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한 일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유다 지파의 역사에 속해 있습니다.

파라오의 딸이 유다의 족보에 등장하다

역대상 4:17–20 본문 →

17–18절에는 매우 뜻밖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메렛의 유다인 아내는 그돌의 아버지 예렛과 소고의 아버지 헤벨과 사노아의 아버지 여구디엘을 낳았습니다. 미리암과 삼매와 이스바는 메렛이 아내로 맞은 파라오의 딸 비디아의 자녀들이었습니다.역대상 4:18 · 두루새김

이집트 왕실과 관련된 여성이 유다의 계보 안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어느 파라오의 딸인지 밝히지 않습니다. 그를 출애굽기 2장에서 모세를 물에서 건져 낸 파라오의 딸과 동일 인물로 볼 근거는 없습니다. 출애굽기 2장에서는 그 공주의 이름을 알려 주지 않으며, 역대상 4장도 모세와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앞서 기술자들의 골짜기를 기록한 족보는 이제 다른 민족의 왕실과 연결된 결혼까지 소개합니다.

유다의 집안과 공동체는 한 가지 방식으로만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 17–18절의 자녀들이 어느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는지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원문의 17절에는 주어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채 「그 여자가 낳았다」는 표현이 나오고, 18절에서는 유다인 아내와 비디아가 언급됩니다. 미리암과 삼매와 이스바를 비디아의 자녀로 이해할 수도 있고, 두 절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다르게 연결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앞의 이해를 따라 17절에 「메렛의 아내 비디아는」이라고 쓰고, 18절에서도 세 사람이 비디아의 자녀들이라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두루새김에서는 자녀들의 어머니가 분명하게 나뉘지만, 원문의 관계까지 확정적으로 정리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왕을 위해 일하던 옹기장이들

역대상 4:21–23 본문 →

21절에서는 유다의 아들 셀라의 후손들이 등장합니다.

셀라는 창세기 38장에 나오는 유다의 셋째 아들입니다. 그의 계보 가운데는 특별한 직업을 지닌 집안들이 소개됩니다.

유다의 아들 셀라의 자손들 가운데는 레가의 아버지 에르와 마레사의 아버지 라아다, 그리고 아스베아 집안에 속해 고운 아마포를 만드는 집안들이 있었습니다.역대상 4:21 · 두루새김

고운 아마포는 성경에서 의복과 성막의 직물에 사용되는 재료로 등장합니다(출애굽기 26:1; 28:39). 하지만 이 집안이 실제로 성막이나 성전을 위해 직물을 공급했다고 본문이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확실한 것은 그들의 기술과 물건을 만드는 일이 집안의 특징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뒤 22절에는 요아스와 사랍이 등장하고, 모압을 다스렸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히브리어 표현은 모압에서의 통치와 관련된 것으로 읽을 수도 있고, 모압과의 결혼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모압을 다스렸던」이라고 옮겨 통치와 관련된 표현으로 읽었지만, 어느 읽기가 원래 의도였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이어서 「이것은 오래전의 일입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표현은 기록자가 이미 오래전부터 전해 온 이야기를 보존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다만 그 사건들이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지, 기록자에게서 얼마나 먼 과거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들은 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사람들로, 느다임과 그데라에 살았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머물며 왕을 위해 일했습니다.역대상 4:23 · 두루새김

여기서 말하는 왕이 누구인지 본문은 밝히지 않습니다. 다윗인지, 솔로몬인지, 다른 시대의 왕인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왕의 이름은 남지 않고, 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사람들의 집단과 거주지가 기록됩니다.

이 기록의 관심이 왕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그 일을 하던 사람들의 계보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역대기는 왕궁을 다스린 사람들뿐 아니라 왕의 일을 위해 손으로 물건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역사도 남깁니다.

이 지점에서 유다의 계보가 끝납니다.

그리고 24절부터 시선이 시므온 지파로 옮겨 갑니다.

유다보다 작았던 시므온 — 지파의 숫자와 거주지

역대상 4:24–33 본문 →

시므온은 야곱의 둘째 아들입니다.

시므이에게는 아들 열여섯과 딸 여섯이 있었지만, 그의 형제들에게는 아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집안 전체도 유다 자손들만큼 수가 늘어나지는 않았습니다.역대상 4:27 · 두루새김

한 사람의 집안에는 자녀가 많았지만, 다른 집안들이 모두 같은 정도로 늘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문은 이 차이를 숫자의 문제로 기록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시므온 자손들이 살았던 성읍들을 소개합니다. 브엘세바, 몰라다, 하살수알, 시글락을 비롯한 여러 성읍의 이름이 이어집니다. 이 성읍들은 주로 유다의 남쪽 지역과 연결됩니다.

여호수아 19:1에서는 시므온이 물려받은 땅이 유다 지파가 물려받은 땅 안에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19:9은 유다의 몫이 너무 컸기 때문에 시므온이 그 가운데서 땅을 물려받았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시므온은 독립된 넓은 영역을 유다 옆에 차지한 지파라기보다, 유다의 땅 안에 있는 성읍들과 지역을 물려받은 지파로 이해됩니다. 역대상 4장이 유다의 계보 바로 뒤에 시므온의 계보를 기록하는 것은 이러한 지역 관계와도 잘 어울립니다.

다윗 시대까지 그들의 성읍이었다는 말

벳말가봇, 하살수심, 벳비리, 사아라임에 살았습니다. 다윗이 왕이 될 때까지 이곳들이 이들의 성읍이었습니다.역대상 4:31 · 두루새김

이 문장은 시므온의 거주지 목록에 시간의 경계를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다윗이 왕이 된 직후 시므온이 모든 성읍을 잃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 이후에 정확히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성읍들 둘레에서 바알에 이르는 모든 마을도 이들의 것이었습니다. 이곳들이 이들의 거주지였으며, 이들에게는 자기 집안의 족보 기록도 있었습니다.역대상 4:33 · 두루새김

이것은 현재 우리가 읽는 역대기가 오래된 계보와 지역에 전해 오는 이야기를 모아 기록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단서가 됩니다. 정확히 어떤 형태의 문서였는지, 누가 작성하고 보관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공동체가 자신의 가족관계와 거주지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지파의 규모가 작다는 사실이 그들의 역사 자체를 없애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시므온의 지도자들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더 넓은 목초지를 찾아 나선 사람들

역대상 4:34–40 본문 →

34–38절에는 시므온 자손의 여러 지도자가 소개됩니다.

이렇게 이름이 나온 사람들은 각 집안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조상에게서 이어진 집안들은 수가 크게 늘어났습니다.역대상 4:38 · 두루새김

앞서 27절에서는 시므온 전체의 수가 유다만큼 늘어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두 설명은 반드시 서로 어긋나지는 않습니다. 시므온 전체의 규모는 유다보다 작았을 수 있지만, 그 가운데 일부 집안의 수는 상당히 늘어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늘어남은 새로운 문제를 낳습니다.

이들은 양과 염소 떼를 먹일 풀밭을 찾아 그돌 입구 쪽, 골짜기 동쪽까지 갔습니다.역대상 4:39 · 두루새김

사람들이 늘어나고 가축도 많아지면 더 많은 풀밭이 필요합니다.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에게 땅은 단순한 재산이 아닙니다. 양과 염소를 먹이고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생활 터전입니다.

그곳에서 풀이 무성한 좋은 풀밭을 찾았습니다. 그 땅은 넓고 조용하며 평온했습니다. 예전부터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함의 자손들이었기 때문입니다.역대상 4:40 · 두루새김

본문은 「함의 자손들이었기 때문입니다」라고 그 두 사실을 이어 놓지만, 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평화를 사랑했다거나 특별히 약한 사람들이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다음 절에는 그곳 주민들의 천막이 등장합니다. 시므온 자손이 땅을 발견했을 때, 그곳은 단순히 아무도 차지하지 않은 황무지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던 땅이었습니다.

고요했던 땅에 일어난 폭력

역대상 4:41–43 본문 →

이렇게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유다 왕 히스기야 때 그곳으로 가서, 그곳에 먼저 살던 함의 자손들의 천막과 그곳에 있던 므우님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그곳 사람들을 모두 죽여 오늘날까지 남지 않게 하고, 그 자리에 살았습니다. 양과 염소 떼를 먹일 풀밭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역대상 4:41 · 두루새김

40절에서는 그 땅이 조용하고 평온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본문은 폭력으로 한 집단을 없앤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전쟁인가

시므온 자손이 이 땅을 차지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신 일이었을까요?

역대상 4장에는 그러한 명령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전쟁에 나서라고 말씀하셨다는 구절도 없고, 그들의 승리를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으로 설명하는 문장도 없습니다. 다른 성경 본문에는 하나님이 특정한 전쟁을 명령하셨다고 전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본문들의 명령을 이 사건에 자동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역대상 4:41은 시므온 자손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을 공격했다고 말하지, 하나님이 그 공격을 명령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시므온 자손이 풀밭을 필요로 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필요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주민들을 죽인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땅을 약속하셨다는 사실을 근거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이스라엘 사람의 땅 확장을 하나님이 승인하셨다고 주장해서도 안 됩니다.

히스기야 시대의 사건

41절에는 사건의 시기가 분명히 나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 때였습니다. 그런데 역대상 4장은 시므온 자손의 이러한 이동이 히스기야의 명령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어 42절에서는 시므온 자손 가운데 오백 명이 세일 산으로 이동했다고 기록합니다. 세일 산은 에서와 에돔의 역사에 연결된 지역입니다(창세기 36:8–9). 여기서는 이시의 아들들인 블라댜, 느아랴, 르바야, 웃시엘이 그들을 이끕니다.

그들은 피신해 살아남아 있던 아말렉 사람들을 쳐 죽이고, 오늘날까지 그곳에 살았습니다.역대상 4:43 · 두루새김

두 사건 모두 다른 집단이 살던 땅을 차지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두 사건 모두 「오늘날까지」라는 표현으로 마무리됩니다. 여기서 「오늘날」은 이 기록이 작성되거나 전해지던 시점을 가리킵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17:8–16에는 아말렉이 이스라엘과 싸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고, 사무엘상 15장에는 사울과 아말렉의 전쟁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출애굽기나 사무엘상에 등장한 특정 명령을 직접 실행한 일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구약에서 땅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과 깊이 연결됩니다. 창세기 12:7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에게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 21:43–45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땅을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레위기 19:9–10에서는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로 사는 사람을 위해 수확물을 남겨 두라고 명령합니다. 신명기 24:17–22에서는 나그네로 사는 사람과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해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땅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 땅에서 살아가는 방식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의미 — 넓어지는 삶에 필요한 질문

역대상 4:1–43 본문 →

하나님의 복을 구하는 일과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언하는 일은 다릅니다. 야베스의 기도에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시므온 자손의 정복에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승인에 관한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야베스가 얻은 복을 다른 사람에게서 무엇을 빼앗아도 된다는 허가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 장면은 세일 산입니다.

시므온 자손 오백 명이 그곳으로 이동하고, 남아 있던 아말렉 사람들을 쳐 죽인 뒤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이후 그 지역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기록은 단지 그들이 그곳에 살았다는 말로 끝납니다.

역대상 4장은 땅을 얻은 사람들의 이름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을 얻기 위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남깁니다.

풀이 무성하고 조용하며 평온했던 풀밭.

그곳에는 먼저 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른 사람들이 그 땅에 살고 있습니다.

역대상 4장은 그곳이 어떻게 그들의 거주지가 되었는지를 감추지 않은 채 이야기를 끝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