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5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아담에서 이어진 족보

얻은 땅에서 쫓겨나다

이스라엘의 맏아들은 르우벤이었습니다. 그러나 맏아들의 권리는 르우벤에게 남지 않았습니다.

요단 동쪽의 세 지파는 전쟁에서 승리하여 넓은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자신들이 자리 잡고 살던 그 땅에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아론의 후손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 계보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여호사닥 역시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에는 정반대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쟁에 나선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간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들은 큰 승리를 거두고 가축과 땅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도움으로 얻은 땅을 왜 나중에는 잃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경험한 것과 그 하나님께 계속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105장 본문 읽기 →

맏아들이지만 맏아들의 권리를 갖지 못하다

역대상 5:1–3 본문 →

다음은 이스라엘의 맏아들 르우벤의 자손들입니다. 르우벤은 맏아들이었지만, 아버지의 첩과 잠자리를 같이해 아버지를 욕되게 했습니다. 그 때문에 맏아들의 권리는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아들들에게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족보의 순서는 맏아들의 권리에 따라 정해지지 않았습니다.역대상 5:1 · 두루새김

르우벤의 족보는 이름을 나열하기 전에 긴 설명으로 시작합니다.

왜 르우벤이 맏아들인데도 족보의 맨 앞에 등장하지 않는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앞서 유다의 계보가 먼저 기록된 까닭을 이곳에서 직접 설명합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첫아들이었습니다. 창세기 29:32에 따르면 레아가 낳은 첫아들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5:22에는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와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첩과 관계를 맺는 행위는 가족 안의 질서와 아버지의 권위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일이었습니다. 창세기 49:3–4에서 야곱은 르우벤이 맏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가 아버지의 잠자리에 올랐던 일을 지적하며 맏아들로서 남들보다 앞선 지위를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장자의 권리와 통치권은 같지 않았다

유다가 형제들 가운데 강해졌고 그에게서 지도자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맏아들의 권리는 요셉에게 있었습니다.역대상 5:2 · 두루새김

르우벤은 실제로 먼저 태어난 맏아들이었습니다.

요셉은 맏아들의 권리를 받았습니다.

유다에게서는 지도자가 나왔습니다.

신명기 21:15–17에는 맏아들이 물려받을 몫을 다른 아들보다 두 배로 보장하는 규정이 나옵니다. 요셉이 받은 권리도 이러한 특별한 몫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48:5에서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입니다. 이후 이스라엘의 지파를 말할 때 요셉의 이름 대신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각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셉의 후손이 두 지파로 나뉘어 땅을 물려받는 모습은 맏아들의 특별한 몫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나라를 이끄는 권한은 요셉에게 집중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49:8–10에서 야곱은 유다의 형제들이 그에게 복종하고 통치권이 유다와 연결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역대상 5:2는 그 흐름을 다윗 왕조의 역사와 연결합니다.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통치권이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더 많은 몫을 물려받을 권리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왕이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르우벤의 경우에는 자신의 행동이 지위를 잃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족보는 출생과 혈통을 기록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나 공동체 안에서의 책임까지 출생 순서만으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3절에 이르러서야 르우벤의 네 아들 하녹, 발루, 헤스론, 갈미가 등장합니다. 맏아들의 권리를 잃었다고 해서 르우벤의 자손이 족보에서 지워진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이스라엘에 속한 지파로서 자신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르우벤의 후손들 — 가축이 많아지면서 땅도 넓어졌다

역대상 5:4–10 본문 →

4–8절에서는 르우벤의 여러 후손이 소개됩니다.

이 부분의 계보는 르우벤의 네 아들 가운데 누구에게서 모든 인물이 직접 이어지는지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요엘이라는 인물의 자손을 따라 내려가다가 여러 집안의 지도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6절에서 갑자기 역사적 사건이 끼어듭니다.

바알의 아들은 브에라였습니다. 브에라는 르우벤 사람들의 지도자였으며, 아시리아 왕 딜갓빌네셀이 그를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역대상 5:6 · 두루새김

이 사실은 뒤에 나올 세 지파의 포로 생활을 미리 보여 줍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곧바로 포로 생활의 이야기를 이어 가지 않습니다. 다시 르우벤 자손이 살던 곳을 설명합니다.

벨라가 나옵니다. 벨라는 아사스의 아들이었고, 아사스는 세마의 아들, 세마는 요엘의 아들이었습니다. 벨라는 아로엘에서 느보와 바알므온에 이르는 땅에 살았습니다.역대상 5:8 · 두루새김

이 성읍들은 요단강 동쪽 지역과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르우벤과 갓 자손들은 요단 동쪽에 가축을 기르기 좋은 땅이 있다는 사실을 보고 그곳을 요청했습니다(민수기 32:1–5). 모세는 그들이 다른 지파와 함께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 아래 동쪽 땅을 그들이 물려받을 땅으로 인정했습니다(민수기 32:20–33).

벨라의 집안은 동쪽으로는 유프라테스강에서 이어지는 광야 입구까지 살았습니다. 길르앗 땅에서 그들의 가축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역대상 5:9 · 두루새김

이 절이 가리키는 지리적 범위는 정확하게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유프라테스강과 광야를 연결하는 히브리어 구문은 광야가 어디까지 뻗어 있었는지를 나타낼 수도 있고, 사람들이 살던 범위를 설명하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르우벤 지파가 실제로 유프라테스강 강변 전체를 지배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가축을 키우는 집단이었고, 더 많은 가축을 먹이기 위해 더 넓은 땅이 필요했습니다. 10절에서는 이러한 생활이 전쟁과 연결됩니다.

사울 때에 르우벤 자손들은 하갈 사람들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이겼습니다. 그러고는 길르앗 동쪽 전역에 있던 하갈 사람들의 천막에서 살았습니다.역대상 5:10 · 두루새김

르우벤 자손이 살던 영역이 넓어진 것은 그저 빈 땅으로 이동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은 다른 집단과 싸웠고, 그 집단이 사용하던 천막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6절에서는 바로 이 르우벤 자손의 지도자가 나중에 포로로 끌려갔다고 기록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살던 곳을 차지했던 지파가, 나중에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갓의 자손들 — 성읍과 목초지, 그리고 족보 기록

역대상 5:11–17 본문 →

11절부터는 갓 지파가 등장합니다.

갓의 자손들은 르우벤 자손들과 이웃하여, 바산 땅에서 살르가까지 살았습니다.역대상 5:11 · 두루새김

갓 역시 르우벤과 함께 요단 동쪽에 땅을 물려받은 지파입니다. 그들이 살던 곳으로 언급되는 바산은 요단 동쪽 북부에 있는 지역으로, 가축을 기르기에 알맞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시편 22:12에는 바산의 힘센 소들이 등장하고, 아모스 4:1에서도 바산의 가축과 관련된 이미지가 사용됩니다.

이들은 길르앗과 바산과 그에 딸린 마을들에 살았습니다. 또 사론의 모든 풀밭에서도 그 경계 끝까지 살았습니다.역대상 5:16 · 두루새김

여기서 사론은 서쪽 해안 평야의 사론과 같은 지역인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길르앗과 바산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문맥에서는 동쪽의 풀밭과 관련된 지명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17절에서는 새로운 정보가 추가됩니다.

이들은 모두 유다 왕 요담 때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때에 족보에 기록되었습니다.역대상 5:17 · 두루새김

이 구절은 갓 지파의 계보가 단지 먼 옛날부터 입으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왕들이 다스리던 시대에도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여기서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열왕기하 14:23–29).

다만 여로보암 2세와 유다 왕 요담의 통치 시기는 일반적으로 완전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두 왕이 동시에 통치하는 한 시점에 작성된 하나의 기록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시기의 계보 기록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갓 지파에는 자신들의 조상과 집안, 살던 곳을 확인하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조상 집안과 지도자를 알고 있었고, 자리 잡고 살던 지역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계보와 땅에 대한 기억은 남았지만, 그들이 실제로 그 땅에 머무는 일은 계속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은 전쟁 — 승리의 이유가 바뀌다

역대상 5:18–22 본문 →

18절부터 세 지파가 함께 등장합니다.

르우벤 자손들과 갓 사람들과 므낫세 반 지파에는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용사가 사만 사천칠백육십 명 있었습니다. 이들은 방패와 칼로 무장하고 활을 쏘는 사람들로, 전투 훈련을 받았습니다.역대상 5:18 · 두루새김

이들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결과를 설명하는 20절에서는 다른 이유가 강조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와, 하갈 사람들과 그 편에 선 모든 이가 이스라엘 군대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전투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간청을 들어주셨습니다.역대상 5:20 · 두루새김

출애굽기 2:23에서도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종살이 때문에 부르짖었고, 그 외침이 하나님께 올라갔습니다. 역대상 5장에서는 전쟁에 나선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들은 무기를 갖추고 전투에 나섰지만, 승리의 결정적인 원인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설명합니다.

많은 전리품과 많은 포로

그들은 적들의 가축을 빼앗았는데, 낙타가 오만 마리, 양과 염소가 이십오만 마리, 나귀가 이천 마리였습니다. 사람도 십만 명을 사로잡았습니다.역대상 5:21 · 두루새김

여기서 전쟁에서 빼앗은 것들을 단순히 하나님이 주신 풍요의 상징으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전쟁에서 얻은 가축과 함께 사람들도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전쟁 전에는 자기들의 삶과 터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역대기의 기록은 이 포로들의 처지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후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도 알려 주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전쟁이어서 많은 사람이 죽어 쓰러졌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갈 때까지 적들이 살던 땅에서 살았습니다.역대상 5:22 · 두루새김

역대기는 승리한 쪽의 시선에서 이 사건을 기록합니다. 적군과 포로들의 입장에서 일어난 고통을 따로 서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기록을 근거로 오늘날 어떤 집단이 자신들의 전쟁이나 땅을 넓히는 일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언할 수는 없습니다. 이 본문은 특정한 고대 사건에 대한 역대기의 신학적 해석이지, 모든 시대의 전쟁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허가가 아닙니다.

그들은 「포로로 끌려갈 때까지」 그곳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 표현이 다음 사건을 준비합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전쟁」은 히브리어에서는 「전쟁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표현으로 읽힙니다. 역대기의 기록자는 그 전쟁의 결과를 하나님의 행동과 직접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단순히 인간들이 싸웠는데 나중에 하나님께 감사한 이야기로 줄여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므낫세 반 지파 — 강한 용사들이 하나님을 배신하다

역대상 5:23–25 본문 →

23절에서는 므낫세 반 지파가 살던 곳이 소개됩니다.

므낫세 반 지파의 자손들은 바산에서 바알헤르몬과 스닐과 헤르몬 산까지 그 땅에 살았습니다. 그들은 수가 많아졌습니다.역대상 5:23 · 두루새김

므낫세 지파는 요단 서쪽과 동쪽에 나뉘어 자리 잡은 지파입니다. 여기서는 동쪽에 자리 잡은 반 지파를 다룹니다. 그들의 영역은 바산에서 헤르몬 산에 이르는 북쪽 지역과 연결됩니다.

그들 집안의 우두머리들은 에벨, 이시, 엘리엘, 아스리엘, 예레미야, 호다위야, 야디엘이었습니다. 이들은 힘센 용사들이며 이름난 사람들이었고, 각 집안을 이끌었습니다.역대상 5:24 · 두루새김

이 표현은 앞서 르우벤과 갓 사람들의 군사적 능력을 설명한 내용과 잘 이어집니다. 세 지파는 수가 늘었고, 용사들을 갖추었으며, 강한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이야기가 뒤집힙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부부의 약속을 깨뜨리듯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없애신 그 땅 민족들의 신들을 따라갔습니다.역대상 5:25 · 두루새김

20절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의 간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같은 지파들의 역사 안에서 전혀 다른 관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땅의 주인은 바뀌었지만, 그 땅에 있던 신들을 따르는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땅을 차지했다고 해서 그 땅에서 하나님께 신실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얻었던 땅과 번성은 실제였지만, 그들의 신실함은 계속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25절에는 서로 연결되면서도 다른 의미를 지닌 두 표현이 사용됩니다. 하나는 「배신했습니다」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어 마알은 믿음이나 충성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다른 하나는 「부부의 약속을 깨뜨리듯 하나님을 저버리고」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서는 히브리어 자나 계열의 동사가 사용됩니다. 이 말은 본래 성적인 부정행위와 관련되지만,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을 묘사할 때 비유적으로 사용됩니다. 두루새김은 그 비유를 부부 사이의 약속을 깨뜨리는 일로 풀어 옮겼습니다. 호세아 1–3장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결혼 관계의 이미지로 설명됩니다.

승리의 땅에서 포로의 땅으로

역대상 5:26 본문 →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아시리아 왕 불의 마음과 아시리아 왕 딜갓빌네셀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아시리아 왕은 르우벤 사람들과 갓 사람들과 므낫세 반 지파를 포로로 끌고 가, 할라와 하볼과 하라와 고산 강가로 데려갔습니다. 그들은 오늘날까지 그곳에 있었습니다.역대상 5:26 · 두루새김

5장의 전반부는 이 세 지파가 어떻게 땅을 얻었는지 설명했습니다.

이제 26절은 그들이 어떻게 그 땅을 잃었는지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외국의 왕을 통해 자신의 백성을 심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10:5–6에서 아시리아를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도구로 묘사하는 내용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이사야 10:12–15는 아시리아 자신도 오만함 때문에 심판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어떤 제국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설명이 곧 그 제국의 모든 폭력과 야망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우셨던 하나님과 심판하신 하나님은 다른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던 공동체가 그 도움을 영원히 독차지할 권리를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조상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다는 사실이 후손들의 배신을 정당화하거나 없던 일로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땅을 빼앗던 사람들이 이제 땅을 떠나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셨다는 사실과, 이스라엘이 어떤 상황에서도 그 땅을 잃지 않는다는 주장은 같지 않습니다. 신명기 4:25–28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자리 잡은 뒤 우상을 만들고 악을 행하면, 그 땅에서 쫓겨나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신명기 30:1–5는 흩어진 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경우에 관한 회복의 약속도 전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 땅에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역대상 5장의 세 지파는 바로 그 관계를 저버렸다고 기록됩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포로가 된 사람들이 어디로 옮겨졌는지까지 기록합니다. 할라, 하볼, 하라, 고산 강가입니다. 이곳들은 아시리아의 지배 아래 있던 지역들과 연결됩니다. 다만 각 지명의 정확한 위치를 모두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그들은 오늘날까지 그곳에 있었습니다」라고 전합니다. 그들은 한때 많은 가축을 기르고, 넓은 풀밭을 소유하고, 전쟁에서 승리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후손은 조상들의 땅이 아닌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아시리아 왕 불과 딜갓빌네셀을 언급합니다. 두 이름은 일반적으로 같은 아시리아 왕, 곧 디글랏빌레셀 3세를 가리키는 서로 다른 명칭으로 이해됩니다. 열왕기하 15:19에서는 불이라는 이름이, 15:29에서는 디글랏빌레셀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포로로 끌고 갔다는 동사의 주어를 바로 앞의 아시리아 왕으로 읽을 수도 있고, 문장을 시작한 하나님으로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이 가운데 아시리아 왕을 주어로 밝혀 옮겼습니다. 실제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간 것은 아시리아 제국의 행동이었고, 역대기는 그 배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다고 이해합니다.

레위의 계보는 왜 포로 이야기 뒤에 등장할까

역대상 5:27–29 본문 →

26절에서 세 지파의 포로 생활이 기록되자, 27절은 갑자기 레위의 후손들을 소개합니다.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 그핫, 므라리였습니다.역대상 5:27 · 두루새김

앞부분은 요단 동쪽에 자리 잡았던 지파들의 역사였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풀밭과 가축, 전쟁과 포로 생활이 등장합니다. 반면 레위의 계보는 성소와 제사장 직분의 역사로 이어집니다.

레위 사람들에게는 다른 지파와 같은 방식으로 넓은 지파별 땅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18:20–24에서는 레위 사람들이 물려받을 몫에 관한 특별한 규정이 제시되고, 여호수아 21장에서는 그들에게 살 곳으로 성읍들이 나누어 주어집니다.

동쪽 지파들의 계보는 포로 생활로 끝납니다.

레위의 제사장 계보도 마지막에는 포로 생활로 끝납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영역에서 일어난 역사를 따라가면서, 나라 전체에 닥친 재앙이 가축을 기르던 지파뿐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 가문에도 미쳤음을 보여 줍니다.

모세보다 아론의 계보를 길게 기록하는 이유

아므람의 자녀들은 아론, 모세, 미리암이었습니다. 아론의 아들들은 나답, 아비후, 엘아자르, 이다말이었습니다.역대상 5:29 · 두루새김

모세는 출애굽의 지도자였고, 미리암은 출애굽기 15:20에서 예언자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모세나 미리암의 후손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아론의 아들들로 계보를 이어 갑니다.

출애굽기 28:1에서는 아론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섬기도록 부름받습니다. 그러나 레위기 10:1–2에 따르면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지 않으신 불을 바치다가 죽었습니다. 이 사건은 제사장 가문 역시 특별한 직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면제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역대상 5장은 그 이야기를 다시 서술하지 않습니다. 대신 엘아자르의 계보를 따라 내려갑니다. 이 선택은 이후 성전 제사장직의 계보를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아론에서 사독까지 — 성전의 제사장도 역사를 통과했다

역대상 5:30–40 본문 →

30절부터 이름들이 긴 줄을 이룹니다.

엘아자르는 핀하스의 아버지였고, 핀하스는 아비수아의 아버지였습니다.역대상 5:30 · 두루새김

핀하스는 민수기 25:6–13에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핀하스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위한 열심을 보였다고 말씀하시며 그의 후손에게 제사장 직분의 언약을 주십니다. 역대기는 그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핀하스의 이름을 계보에 놓습니다.

이후 아비수아, 북기, 웃시, 스라히야, 므라욧, 아마랴, 아히둡을 거쳐 사독이 등장합니다. 다윗의 통치 아래에서 사독은 제사장으로 활동했고(사무엘하 8:17), 솔로몬이 왕으로 세워질 때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열왕기상 1:32–39). 그러므로 사독이라는 이름은 제사장 계보가 다윗 왕조와 연결되는 중요한 지점입니다.

왕과 제사장은 서로 다른 직분을 맡고 있었지만, 예루살렘의 통치와 예배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성전 건축을 준비했고,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제사장들은 그 성전에서 예배를 담당했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지은 성전」이라는 설명

요하난은 아사랴의 아버지였습니다. 이 아사랴가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지은 성전에서 제사장으로 일했습니다.역대상 5:36 · 두루새김

이름만 이어지던 목록에서 특별히 한 사람이 맡았던 일을 설명합니다. 본문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라는 건물을 가리키며 그곳에서 아사랴가 제사장으로 섬겼다고 기록합니다. 그가 실제로 활동한 시기와 성전을 지은 시기가 완전히 같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이 계보에는 아사랴, 아마랴, 아히둡, 사독이라는 이름이 반복됩니다. 같은 이름이 등장한다고 해서 반드시 한 사람을 다시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 세대에서 같은 이름이 사용되었을 수 있습니다.

아론에게서 시작된 제사장 계보가 솔로몬의 성전에서 섬겼던 사람들을 거쳐 계속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힐기야와 스라야를 지나 포로기까지

살룸은 힐기야의 아버지였고, 힐기야는 아사랴의 아버지였습니다.역대상 5:39 · 두루새김

힐기야라는 이름은 요시야 시대의 제사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열왕기하 22:8에서 대제사장 힐기야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그 책은 요시야 시대의 종교 개혁과 깊이 연결됩니다. 역대상 5:39의 힐기야를 그 인물과 연결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 절 자체는 율법책 발견 사건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후 계보에는 스라야가 등장합니다. 열왕기하 25:18–21에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대제사장 스라야가 바벨론 사람들에게 사로잡혀 처형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대상 5장에서는 스라야가 여호사닥의 아버지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 여호사닥의 운명이 소개됩니다.

여호사닥도 끌려갔다 — 제사장 계보의 마지막 장면

역대상 5:41 본문 →

여호와야훼께서 느부갓네살을 통해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가셨을 때, 여호사닥도 끌려갔습니다.역대상 5:41 · 두루새김

북쪽의 지파들에 닥쳤던 일이 남쪽의 유다에게도 닥친 것입니다. 바벨론 왕이 실제로 군사력을 행사했지만, 역대기는 그 사건을 인간 제국의 힘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통해 자신의 백성을 심판하셨다고 이해합니다.

제사장의 가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아론에게서 이어지는 제사장 계보의 후손입니다. 핀하스와 사독을 거쳐 솔로몬 성전에서 섬겼던 제사장들의 계보에 속합니다. 그러나 그 가문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포로 생활에서 제외되지 않았습니다.

르우벤에게는 자신의 잘못이 직접 언급되지만, 여호사닥 개인이 특별히 어떤 죄를 저질렀다는 설명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사닥이 포로가 된 것을 그의 개인적인 죄에 대한 직접적인 형벌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유다와 예루살렘 전체에 닥친 재앙을 함께 겪은 사람으로 기록됩니다.

조금 더 깊이

아시리아가 요단 동쪽 지파들을 포로로 끌고 간 것은 북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기 전부터 진행된 아시리아의 정복과 이주 정책에 속합니다(열왕기하 15:29). 반면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과 유다 백성의 포로 생활은 그보다 뒤인 바벨론 시대에 일어난 사건입니다(열왕기하 25:1–21). 두 경우 모두 포로 생활을 하나님의 심판과 연결합니다. 이와 같은 관점은 역대하 36:15–21에서도 나타납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가엾게 여기셔서 거듭 사자들을 보내셨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겼기 때문에 결국 심판에 이르렀다고 설명합니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성전이 아니라 포로의 이름이다

역대상 5:1–41 본문 →

이 장에서 하나님의 통치는 승리의 순간에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부르짖을 때 그들을 도우셨고, 그들이 하나님을 배신했을 때 심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얻었던 땅과 예루살렘의 성전은 모두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계보의 마지막에 이르면 성전의 제사장이 왕궁과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을 떠나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역대기는 이 장에서 그가 다시 돌아왔는지, 이후 어떤 일을 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여호사닥도 끌려갔다고 기록합니다.

마지막 줄에는 이름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여호사닥.

그는 아론의 후손이었고, 성전에서 섬겼던 제사장들의 계보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이 장이 마지막으로 전하는 그의 모습은 성전에서 섬기는 모습이 아닙니다.

역대상 5장은 그 사실을 포로로 끌려가는 제사장의 이름으로 마무리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