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풀어 읽기 · 1장

이 장의 자리 · 1–5장 · 왕이 된 솔로몬

누가 왕좌에 앉을 것인가

열왕기상은 놀랍게도 왕의 위엄이 아니라 왕의 추위로 시작합니다.

다윗은 살아 있습니다. 여전히 이스라엘의 왕이며, 그의 명령 한마디는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옷을 덮어도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없는 노인입니다. 신하들은 왕을 돌볼 젊은 여자를 찾아 온 이스라엘을 뒤집니다. 그런데 그사이 왕의 아들은 아버지에게 묻지도 않고 왕이 되겠다고 선언합니다.

왕의 몸은 식어 가는데, 왕권을 향한 욕망은 뜨겁게 타오릅니다.

그러나 이 장이 다루는 문제는 단순히 다윗의 뒤를 이을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깊은 질문이 있습니다. 왕권은 자신이 차지하는 것인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것인가?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71장 본문 읽기 →

따뜻해지지 않는 왕 — 권력의 한계가 드러나다

열왕기상 1:1–4 본문 →

다윗 왕은 늙어 나이가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옷을 덮어 주어도 몸이 따뜻해지지 않았습니다.열왕기상 1:1 · 두루새김

사무엘서에서 다윗은 수많은 전투를 치른 용사였습니다. 사울을 피해 광야를 떠돌았고, 예루살렘을 차지했으며, 주변 나라들과 싸워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런 인물의 마지막 시기를 소개하면서 성경은 그가 이룩한 업적을 먼저 늘어놓지 않습니다. 침대에 누워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왕에게는 신하도 있고 재산도 있고 군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으로도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생명력을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신하들이 찾아온 해결책은 수넴 여자 아비삭입니다. 그는 왕의 몸을 돌보고 시중드는 사람이 됩니다.

아비삭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아비삭은 왕을 돌보며 시중을 들었지만, 왕은 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습니다.열왕기상 1:4 · 두루새김

성경은 다윗의 건강 상태에 대한 의학적 진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다만 그의 몸이 이전과 같지 않으며,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곁에서 돌보아도 그가 예전의 활력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문제는 왕이 늙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왕은 여전히 살아 있는데, 왕이 해야 할 일이 그의 손을 떠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아비삭과 관련해서 다윗이 그 여자를 「알지 않았다」고 말하고, 아도니야의 왕위 선언과 관련해서도 다윗이 그 일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1:11, 18). 히브리어에서는 모두 같은 동사 야다(⁨יָדַע⁩)를 사용하지만, 앞에서는 성적 관계를, 뒤에서는 사건을 아는 것을 뜻합니다. 두루새김은 앞의 말을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습니다」로, 뒤의 말을 「모르고 계세요」와 「모르고 계십니다」로 풀어 옮겼습니다. 이 반복이 의도적인 말놀이는 아닌지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왕이 되겠다」 — 아도니야가 선택한 길

열왕기상 1:5–10 본문 →

이제 시선이 다윗의 침실에서 아도니야에게로 옮겨 갑니다.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는 스스로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왕이 되겠다.」 그는 자기를 위해 전투용 수레와 말을 탄 병사들, 자기 앞에서 달릴 사람 쉰 명을 마련했습니다.열왕기상 1:5 · 두루새김

「스스로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며」라는 표현은 이 사건에 대한 서술자의 첫 평가입니다.

아도니야는 왕위를 물려받으라는 말을 듣고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먼저 왕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그 지위에 걸맞은 모습을 만들어 갑니다.

이 장면은 사무엘하 15:1을 기억하는 독자에게 낯익습니다. 압살롬도 왕권을 노리면서 전투용 수레와 말, 자기 앞에서 달릴 사람 쉰 명을 마련했습니다. 아도니야는 이미 실패한 압살롬의 정치적 행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전투용 수레와 수행원은 왕의 위엄을 백성에게 보여 주는 수단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했을 때 왕이 사람들을 자신의 전투용 수레와 말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사무엘상 8:11).

아도니야는 아직 왕이 아니지만 왕처럼 행동합니다.

아버지 다윗은 아도니야에게 「왜 그런 짓을 했느냐?」 하며 꾸짖어 마음을 상하게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도니야는 생김새도 매우 훌륭했고, 압살롬 다음으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열왕기상 1:6 · 두루새김

이 문장은 아도니야의 성격만큼이나 다윗의 책임을 드러냅니다.

본문은 다윗이 왜 그렇게 했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선명합니다. 아도니야는 자신을 제어할 권위에 익숙하지 않은 왕자로 자랐고, 이제 왕의 권위까지 스스로 차지하려 합니다.

압살롬 역시 뛰어난 외모로 유명했습니다(사무엘하 14:25). 그의 아름다움은 왕권을 차지할 자격을 입증하지 못했지만, 아도니야에게도 비슷한 겉모습의 조건이 주어져 있습니다.

출생 순서도 그의 주장을 이해하게 합니다. 사무엘하 3:2–5에 따르면 아도니야는 헤브론에서 태어난 다윗의 넷째 아들입니다. 암논과 압살롬은 이미 죽었습니다.

둘째 아들 길르압이 이 시점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도니야가 살아 있는 아들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다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왕위 계승을 주장할 만한 위치에 있었다고 볼 근거는 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오랜 군대 지휘관이고, 아비아달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니던 시절부터 함께한 제사장입니다(사무엘상 22:20–23). 이들은 왕국의 주변 인물이 아니라 다윗 왕권이 세워지고 유지되는 데 깊이 관여했던 사람들입니다.

반면 사독과 브나야, 나단과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 편에 서지 않습니다.

다윗 왕국을 세우고 지탱해 온 핵심 인물들 사이에서 왕위 계승을 둘러싼 분열이 시작되었습니다.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이 드러내는 진실

아도니야는 엔로겔 곁 소헬렛 바위에서 큰 제사를 드리고 잔치를 엽니다.

그는 왕의 아들들과 왕을 섬기는 유다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러나 나단과 브나야, 다윗의 용사들, 그리고 솔로몬은 초대하지 않습니다.

잔치는 겉으로는 폭넓은 지지를 보여 주지만, 실제로는 특정 인물들을 일부러 빼놓고 있습니다.

그 배제는 아도니야 자신이 왕위 계승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특히 솔로몬을 초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를 잠재적인 경쟁자로 인식했을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아도니야의 제사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였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의 제사가 하나님의 승인으로 이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 결정적인 한 사람, 다윗이 공식적으로 자신을 왕으로 정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왕이 모르는 일과 왕에게 알려야 할 일

열왕기상 1:11–27 본문 →

아도니야의 잔치가 진행되는 동안 예루살렘의 또 다른 곳에서 중요한 대화가 시작됩니다.

나단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말했습니다.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못 들으셨어요? 우리 다윗 임금님은 이 일을 모르고 계세요.」열왕기상 1:11 · 두루새김

나단은 이미 상황을 위기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는 밧세바에게 자신과 솔로몬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대 왕정에서 왕권 경쟁은 단순히 선거에서 패배하는 일과 달랐습니다. 왕위를 차지한 사람은 경쟁자가 장차 반란의 중심이 되는 것을 두려워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은 아직 아도니야가 솔로몬을 죽이라고 명령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단이 판단한 것은 그가 왕권을 확립한다면 밧세바와 솔로몬이 심각한 위험에 놓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단은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합니다. 밧세바가 먼저 다윗에게 들어가 솔로몬의 왕위 계승에 관한 맹세를 떠올리게 하고, 자신이 뒤이어 들어가 그 말을 뒷받침하겠다는 것입니다.

밧세바의 말에 담긴 세 가지 문제

밧세바는 왕에게 들어가 세 가지를 차례로 제시합니다.

첫째는 다윗의 맹세입니다. 솔로몬이 뒤를 이어 왕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지금 벌어지는 일입니다. 아도니야가 이미 왕으로 행세하고 있으며, 주요 인사들이 그를 따르고 있습니다.

셋째는 다윗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발생할 결과입니다.

「이대로 있다가 임금님께서 돌아가셔서 조상들 곁에 누우시면, 저와 제 아들 솔로몬은 죄인으로 몰릴 것입니다.」열왕기상 1:21 · 두루새김

「죄인으로 몰릴 것입니다」는 여기서 밧세바와 솔로몬이 실제로 어떤 죄를 지었다는 고백이 아닙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된다면 그의 왕권에 반대하는 인물로 취급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왕위 계승의 결과에 따라 같은 행동이 왕에 대한 충성으로 인정되기도 하고, 왕에 대한 반역으로 규정되기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임금님, 온 이스라엘이 임금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누가 임금님의 뒤를 이어 왕좌에 앉을지 알려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열왕기상 1:20 · 두루새김

이 말은 왕위 계승이 단순히 다윗 집안의 사적인 문제가 아님을 일깨웁니다. 다윗의 결정은 온 이스라엘의 앞날에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직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단은 바로 이 순간에 들어옵니다.

나단은 왜 대답을 알고 있으면서 질문하는가?

나단은 다윗 앞에 엎드린 다음 이렇게 묻습니다.

나단이 말했습니다. 「임금님, 임금님께서 『아도니야가 내 뒤를 이어 왕이 되고 내 왕좌에 앉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까?」열왕기상 1:24 · 두루새김

나단은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보고하지 않습니다. 왕이 아도니야의 행동을 승인했는지를 묻는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는 밧세바가 강조한 맹세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도니야의 잔치와 지지자들,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을 제시하며, 이 모든 일이 다윗의 결정인지 묻습니다. 다윗 자신이 결정할 수밖에 없도록 질문을 구성합니다.

한때 밧세바와 관련된 다윗의 죄를 직접 지적했던 예언자가 이제는 밧세바와 함께 다윗의 왕권 계승 문제에 관여하고 있습니다(사무엘하 12:1–15). 앞선 이야기를 아는 독자에게 두 사람이 다시 등장하는 일은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나단이 무조건 왕에게 순종하는 궁정 관리가 아니라, 왕이 책임져야 할 문제를 다시 왕 앞에 가져오는 예언자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조금 더 깊이

나단과 밧세바는 다윗이 이미 솔로몬을 후계자로 세우겠다고 맹세했다고 말하지만, 사무엘서에는 그 맹세가 이루어지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있었으나 앞선 이야기에서는 기록되지 않은 약속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고, 나단과 밧세바가 다윗의 결정을 끌어내기 위해 매우 신중하게 말을 구성하고 있다고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맹세를 만들어 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다윗이 1:30에서 그 맹세를 자신의 말로 다시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이 미리 의논했고, 그 의논에 따라 다윗을 설득했다는 사실입니다. 24절의 히브리어 문장에는 질문임을 분명히 나타내는 표시가 없으므로, 왕이 그렇게 말했다는 가정으로도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뒤의 27절에서 이 일이 왕에게서 비롯되었는지 직접 되묻기 때문에, 두루새김이 「말씀하셨습니까?」라고 질문으로 옮긴 것은 문맥상 자연스럽습니다.

「오늘 반드시 그 맹세대로 하겠다」 — 다윗이 다시 왕으로 행동하다

열왕기상 1:28–40 본문 →

다윗은 마침내 결단합니다.

왕이 맹세하며 말했습니다. 「내 목숨을 온갖 어려움에서 건져 주신 여호와야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열왕기상 1:29 · 두루새김

이 고백은 사무엘서 전체를 돌아보게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부터 압살롬의 반란을 겪던 때까지, 그는 수차례 생명을 위협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를 구해 주셨던 하나님을 언급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지탱할 힘조차 쇠약해진 노인입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두고 네게 『네 아들 솔로몬이 내 뒤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해 내 왕좌에 앉을 것이다』라고 맹세했다. 오늘 반드시 그 맹세대로 하겠다.」열왕기상 1:30 · 두루새김

다윗은 이미 한 약속이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지 않습니다. 그 약속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왕권을 자기 마음대로 행사하는 모습이라기보다, 왕으로서 아직 남아 있는 책임을 수행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밧세바가 땅에 엎드려 왕을 향해 영원히 살기를 빈다는 말도 의미심장합니다. 다윗의 죽음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후계자 문제가 일어났는데, 왕이 오래 살기를 비는 궁정의 관례적인 말이 나옵니다. 독자는 다윗이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왕위 계승이 필요합니다.

왕의 암노새와 왕의 이름

다윗의 명령은 놀랄 만큼 구체적입니다.

그는 사독과 나단, 브나야를 부릅니다. 그리고 솔로몬을 자신의 암노새에 태워 기혼으로 내려가게 합니다. 거기서 제사장과 예언자가 기름을 붓고, 뿔나팔을 불고, 솔로몬이 왕임을 선포하게 합니다. 그런 다음 솔로몬은 돌아와 다윗의 왕좌에 앉아야 합니다.

아도니야가 자신의 전투용 수레와 사람들을 준비하여 왕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면, 솔로몬은 다윗의 암노새를 탑니다.

암노새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닙니다. 「내 암노새」라는 다윗의 말은 그 동물이 왕에게 속해 있음을 강조합니다. 솔로몬이 다윗의 암노새를 타는 장면은 왕의 권위를 물려받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게 하는 행동입니다.

사독은 제사장이고 나단은 예언자이며, 브나야는 왕실의 무력과 연결된 인물입니다. 38절에는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도 등장하는데, 이들은 다윗의 왕실 경호 부대와 관련된 집단입니다(사무엘하 8:18; 20:23).

아도니야에게는 요압과 아비아달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에게는 사독과 나단, 브나야가 있습니다.

두 진영은 서로 다른 권력의 중심을 형성합니다. 그러나 솔로몬 쪽에는 하나가 더 있습니다. 현재 왕인 다윗의 분명한 명령입니다.

땅이 갈라질 만큼 기뻐하는 백성

제사장 사독이 천막에서 기름이 담긴 뿔을 가져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사람들이 뿔나팔을 불자 온 백성이 외쳤습니다. 「솔로몬 왕께서 오래 사시기를 바랍니다!」열왕기상 1:39 · 두루새김

왕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단순한 축하 행위가 아니라, 그를 왕의 일을 맡도록 구별하여 세우는 의식입니다. 사무엘이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던 장면들(사무엘상 10:1; 16:13)이 그 배경에 놓여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초대해 왕의 자리를 만들려 했습니다. 반면 솔로몬이 기름부음을 받은 뒤에는 백성이 그를 따라 올라가며 크게 기뻐합니다.

온 백성이 솔로몬을 따라 올라왔습니다. 사람들은 피리를 불며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들의 소리에 땅이 갈라질 듯했습니다.열왕기상 1:40 · 두루새김

기혼에서 울린 환호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만 듣고 끝나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 소리는 아도니야의 잔치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상 1장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라고 새롭게 명령하시는 장면이 없습니다. 브나야가 「임금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기원하는 것도 이 점과 어울립니다. 사무엘하 12:24–25는 솔로몬이 태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셨고 나단을 통해 특별한 이름을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역대상 22:9–10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사람으로 선택되었다는 다윗의 말을 전합니다. 이러한 본문들을 함께 읽으면 솔로몬의 왕위 계승은 다윗 개인의 정치적 판단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윗 왕조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만 열왕기상 1장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궁정의 각 인물을 움직이셨는지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40절의 원문에서는 히브리어 바티바카 하아레츠를 써서 「땅이 갈라졌다」고 표현합니다. 소리가 너무 커서 땅마저 갈라졌다는 시적인 과장입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그들의 소리에 땅이 갈라질 듯했습니다」라고 옮겼습니다.

같은 소리, 전혀 다른 의미 — 잔치의 붕괴

열왕기상 1:41–49 본문 →

아도니야의 잔치에서는 사람들이 막 식사를 마치고 있었습니다. 그의 계획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지자들은 모였고, 사람들은 그를 왕이라고 부르며 먹고 마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성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립니다.

아도니야와 그에게 초대받아 함께 있던 사람들은 식사를 마칠 무렵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요압이 뿔나팔 소리를 듣고 말했습니다. 「성안에서 왜 저렇게 요란한 소리가 나지?」열왕기상 1:41 · 두루새김

독자는 이미 그 소리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야와 그의 지지자들은 모릅니다. 서술자는 먼저 솔로몬의 기름부음을 보여 준 다음, 다시 아도니야의 잔치로 시선을 옮깁니다. 이 순서 때문에 독자는 아도니야가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지 알면서 그의 반응을 지켜보게 됩니다.

요압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왔습니다. 아도니야가 말했습니다. 「들어오너라. 너는 훌륭한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왔겠구나.」열왕기상 1:42 · 두루새김

그러나 요나단의 대답은 그의 기대를 뒤집습니다.

요나단이 아도니야에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 다윗 임금님께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열왕기상 1:43 · 두루새김

요나단이 전하는 사실 자체는 그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라 자신의 왕위 주장에 대한 결정적인 반박입니다. 이후 요나단은 솔로몬에게 일어난 일을 차례로 보고합니다. 왕이 누구를 보냈는지, 솔로몬이 누구의 암노새를 탔는지, 어디에서 기름부음을 받았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기뻐했는지를 말합니다.

앞에서는 이 사건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제는 바로 같은 사건이 아도니야의 왕권 주장을 무너뜨리는 증거가 됩니다.

「솔로몬은 이미 왕좌에 앉았습니다.」열왕기상 1:46 · 두루새김

아도니야는 자신을 왕이라고 선언했지만 왕좌에 앉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반면 솔로몬은 다윗의 명령에 따라 기름부음을 받고 실제로 왕좌에 앉았습니다.

왕권을 선언하는 일과 왕권을 넘겨받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침상 위에서 이루어진 다윗의 마지막 감사

요나단의 보고에는 앞에서 직접 보여 주지 않았던 장면이 하나 더 들어 있습니다.

신하들이 다윗에게 솔로몬의 왕위를 축복하자, 다윗이 침대 위에서 몸을 굽힌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왕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찬양받으시기를 바란다. 그분께서 오늘 내 왕좌에 앉아 있는 사람을 주셨고, 내가 내 눈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다.』」열왕기상 1:48 · 두루새김

앞서 밧세바는 「온 이스라엘이 임금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왕 자신이 「내가 내 눈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다」고 말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후계자를 바라봅니다. 왕을 향하던 시선이 왕좌에 앉은 새로운 왕을 향하고, 다윗은 자신이 보는 이 일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웠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명령은 다윗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그 결과를 자신의 업적으로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왕조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일을 하나님께 받은 선물로 받아들입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아도니야의 지지자들은 두려워 떨며 흩어집니다. 잔치가 시작될 때 그들은 모두 한 사람을 중심으로 모였지만, 마지막에는 저마다 자기 길로 떠납니다.

아도니야가 마련했던 왕의 자리는 사람들의 흩어짐과 함께 무너집니다.

조금 더 깊이

42절에서의 「훌륭한 사람」은 능력과 자질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아도니야는 믿을 만한 사람이 도착했으니 좋은 소식을 가져왔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다윗이 후계자를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은 사무엘하 7:12–16에 나오는 다윗 왕조에 대한 약속과도 연결됩니다. 다윗의 생명이 끝나더라도 그의 뒤를 이을 자손을 세우시고 그 왕국을 이어 가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약속은 다윗 개인이 영원히 왕좌에 앉는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다윗 이후에도 하나님이 그의 왕조를 다루신다는 뜻이었습니다.

제단의 뿔을 붙잡은 사람 — 새 왕의 첫 판단

열왕기상 1:50–53 본문 →

이제 아도니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아도니야는 솔로몬이 두려워서 일어나 가서 제단의 뿔들을 붙잡았습니다.열왕기상 1:50 · 두루새김

제단의 뿔은 제단의 네 모서리에서 솟아 있는 부분입니다(출애굽기 27:2). 제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장소였으므로, 그곳을 붙잡는 행동은 자신을 죽이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보호 요청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솔로몬이 자신을 칼로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해 주기를 요구합니다. 왕이 되겠다고 선언했던 사람이 이제 왕이 된 동생에게 자신을 살려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첫마디가 보여 주는 왕권의 성격

그는 나단과 밧세바의 대화에 직접 등장하지 않고, 왕위 계승을 위한 자신의 계획을 밝히지도 않습니다. 다윗의 명령을 따라 기혼으로 내려가 기름부음을 받고 왕좌에 앉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마침내 솔로몬이 처음으로 입을 엽니다.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이 된다면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악이 드러나면 그는 죽을 것이다.」열왕기상 1:52 · 두루새김

42절의 아도니야는 훌륭한 사람이 좋은 소식을 전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52절의 솔로몬은 아도니야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살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솔로몬의 판단에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즉각적인 보복을 피하는 절제가 있습니다. 왕위 경쟁에서 패한 형제를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악한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경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솔로몬이 완전한 자비를 베풀었다고만 설명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그는 조건부로 생명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 조건은 앞으로 아도니야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네 집으로 가거라」

솔로몬 왕이 사람들을 보내 아도니야를 제단에서 내려오게 했습니다. 아도니야가 와서 솔로몬 왕에게 절하자,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네 집으로 가거라.」열왕기상 1:53 · 두루새김

처음에 아도니야는 「내가 왕이 되겠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제 그는 자기 동생 앞에 몸을 굽힙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왕이 되는 자리를 마련했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왕이 아님을 인정하는 행동을 합니다.

이 말은 의외로 조용합니다.

처형도 없고, 또 다른 큰 잔치도 없고, 장황한 훈계도 없습니다. 왕좌를 차지하려던 그의 첫 번째 시도는 이렇게 끝납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러나 제단을 붙잡았다는 사실이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애굽기 21:14는 일부러 사람을 죽인 경우에는 제단에 있더라도 데려다가 죽일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거룩한 장소가 모든 범죄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왕좌의 주인은 누구인가

열왕기상 1:1–53 본문 →

아도니야는 왕좌를 자신이 확보해야 할 소유물처럼 대합니다. 다윗은 마침내 그 왕좌가 자신에게 영원히 속한 것이 아니라 다음 사람에게 맡겨져야 할 자리임을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힘보다 오래갑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받은 사람들도 여전히 판단하고, 책임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왕좌에 앉았으나, 그가 앞으로 어떤 왕이 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윗 왕조가 이어진다고 해서 모든 왕의 행동을 하나님께서 승인하신다는 보장은 아닙니다.

열왕기상 1장의 끝에서 왕궁은 더 이상 다윗의 추위를 걱정하는 일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왕좌에 앉았고, 아도니야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늙은 다윗은 여전히 침대에 있습니다.

그의 몸은 처음과 다름없이 쇠약하지만, 이제 그의 입에서는 자신의 왕권을 향한 집착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나옵니다. 「그분께서 오늘 내 왕좌에 앉아 있는 사람을 주셨고, 내가 내 눈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다.」

다윗은 왕좌에서 내려오기 전에 자신 이후의 왕을 보았습니다.

열왕기상은 한 왕이 자신의 자리를 영원히 지키는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왕은 물러나지만, 그가 섬겼던 하나님께서 다음 이야기를 이어 가신다는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