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1–5장 · 왕이 된 솔로몬
왕국이 굳게 서기까지
열왕기상 2장은 두 문장 사이에서 전개됩니다.
처음에 다윗은 솔로몬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마지막에 서술자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나라는 솔로몬의 손안에서 굳게 섰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처음과 끝만 읽으면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왕에게 안정된 왕국이 주어졌다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읽으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정의를 실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되는 사람들을 제거하고 있습니까?
이 장에서 특별히 눈여겨볼 낱말은 「평화」입니다. 다윗은 요압이 「평화로운 때」에 전쟁터에서처럼 피를 흘렸다고 말합니다. 아도니야는 자신이 「좋은 뜻으로」 왔다고 주장합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왕좌에 영원한 「평화」가 있기를 선언합니다.
모두가 평화를 말하지만, 그 평화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서로 다릅니다.
죽어 가는 왕이 남긴 두 가지 명령
다윗의 마지막 말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나는 이제 누구나 가는 죽음의 길로 간다. 굳세어져라. 사내답게 행동해라.」열왕기상 2:2 · 두루새김
왕이라는 지위가 죽음으로부터 그를 지켜 주지는 않습니다. 왕국을 세운 사람도 결국 누구나 가는 죽음의 길을 따라갑니다.
그런데 그가 솔로몬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신과 같은 위대한 전사가 되는 일이 아닙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맡기신 일을 지켜라. 모세의 가르침에 기록된 대로 그분의 길을 따르며 그분의 규정과 명령과 법과 일러 주신 말씀을 지켜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슬기롭게 해 나갈 것이다.」열왕기상 2:3 · 두루새김
다윗은 자신이 「누구나 가는 죽음의 길」로 간다고 말한 뒤, 솔로몬에게 「그분의 길」을 따르라고 명령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도 두 구절에 가다와 길이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다윗은 죽음을 향해 가지만, 솔로몬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굳세어져라. 사내답게 행동해라.」라는 말은 전쟁터의 용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곧바로 하나님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을 이야기합니다. 왕에게 필요한 용기는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는 힘만이 아니라, 자신도 하나님의 명령 아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책임을 맡기신 장면과 연결됩니다.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과 함께 율법을 지키고 그 길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명령을 받습니다(여호수아 1:6–9). 두 장면 모두 지도자가 바뀌는 순간에 등장합니다. 이전 지도자가 떠난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할 책임까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왕도 율법 위에 있지 않다
신명기 17:18–20은 이스라엘의 왕이 율법을 곁에 두고 평생 읽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야 한다고 정합니다. 왕이 형제들 위에 마음을 높이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가장 높은 정치적 권한을 가졌지만, 그 권한의 가장 근본적인 기준까지 스스로 정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법을 실행하는 동시에 자신도 법을 따라야 하는 사람입니다.
왕의 성공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그가 어떤 길을 걸었는가입니다.
다윗은 이어 하나님이 자신의 집안에 주신 약속을 이야기합니다.
「또 그래야 여호와야훼께서 나에 관해 하신 말씀을 이루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자손들이 자기 행동을 살피고 온 마음과 온 목숨을 다해 내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간다면, 네 자손 가운데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을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열왕기상 2:4 · 두루새김
이 말씀은 사무엘하 7:12–16의 다윗 왕조에 대한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열왕기상 2장에서는 순종의 조건이 특히 강조됩니다. 사무엘하 7장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세우시고 그 왕국을 굳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동시에 그 후손이 잘못하면 벌하시겠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사무엘하 7:14–15).
하나님이 다윗 왕조에 주신 약속과, 각각의 왕들이 그 약속 안에서 순종해야 할 책임은 구별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구절의 약속은 다윗의 자손 가운데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을 사람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형태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왕조가 하나님의 약속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후손들의 불순종이 아무런 결과도 가져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윗이 남긴 세 사람의 기억
다윗은 요압과 바르실래의 아들들, 시므이를 차례로 언급합니다.
요압은 다윗을 위해 싸웠지만 왕국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바르실래는 다윗이 가장 어려울 때 그를 도왔습니다. 시므이는 다윗이 도망칠 때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여기서 기억은 단순히 지나간 일을 떠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행동에 대해 이제 어떤 책임을 묻고, 어떤 은혜를 갚을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평화 중에 전쟁의 피를 흘린 요압
다윗이 요압을 비난하는 이유는 그가 아도니야를 지지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너도 안다. 이스라엘 군대의 두 지휘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한 짓 말이다. 그는 전쟁 중도 아닌 평화로운 때에 두 사람을 죽였다. 전쟁터에서처럼 피를 흘리고, 자기 허리띠와 신발에 그 피를 묻혔다.」열왕기상 2:5 · 두루새김
아브넬은 원래 사울 집안의 군대 지휘관이었습니다.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 사이에 갈등이 계속되던 시절, 그는 다윗과 협상하여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돌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요압은 아브넬을 따로 불러 죽였습니다(사무엘하 3:26–27).
요압에게는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습니다. 그의 동생 아사헬이 전투 중 아브넬에게 죽었기 때문입니다(사무엘하 2:18–23). 그러나 아브넬의 죽음은 전투가 끝난 뒤 일어났습니다. 다윗은 그 살해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선언하며 요압의 집안에 책임을 돌렸습니다(사무엘하 3:28–29).
아마사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다윗이 아마사를 군대 지휘관으로 세운 뒤, 요압은 그를 만났을 때 친근하게 인사하고 입맞춤하는 듯 다가가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사무엘하 19:13; 20:8–10).
두 죽음 모두 공개적인 전투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요압은 전쟁에서 생명을 빼앗는 일이 허용되는 상황과 평화로운 때에 사람을 죽이는 일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원한과 정치적 목적을 위해 폭력을 사용했습니다.
요압의 허리띠와 신발에 피가 묻었다는 표현도 강렬합니다. 그는 자신이 흘린 피를 옷과 신발에 묻힌 채 다니는 사람처럼 그려집니다. 특히 아마사를 죽인 장면에서 요압의 허리띠와 칼이 자세히 묘사된다는 점을 생각하면(사무엘하 20:8), 이 표현은 실제 살해 장면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합니다.
「네 지혜대로 처리해라. 백발이 된 그가 평안히 스올로 내려가게 두지 마라.」열왕기상 2:6 · 두루새김
여기서 「스올」은 죽은 사람들이 가는 곳을 가리키는 구약의 표현입니다. 이 구절은 요압의 죽음 이후 영원한 형벌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설명하는 말이 아닙니다. 요압이 평안하게 생을 마치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요압이 그렇게 중대한 죄를 지었다면, 왜 다윗은 살아 있을 때 그를 처벌하지 않았습니까?
사무엘하 3:39에서 다윗은 스루야의 아들들이 자신에게 너무 강하다고 털어놓습니다. 요압은 왕에게 충성했지만 동시에 왕이 마음대로 다루기 어려운 인물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다윗이 처벌을 미루었던 정치적 사정을 이해하게 합니다. 그러나 처벌하지 못한 책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다윗은 자신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솔로몬에게 넘깁니다.
그것을 뒤늦게 정의를 실현하는 일로 볼 근거가 있습니다. 하지만 요압의 처벌이 새 왕에게 강력한 군사적 경쟁자를 제거할 기회이기도 했다는 사실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두 성격은 함께 존재할 수 있습니다.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는 왜 호의를 베푸는가?
「그러나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는 친절을 베풀어라. 그들이 네 식탁에서 함께 먹게 해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을 피해 달아날 때 그들이 나를 도와주었기 때문이다.」열왕기상 2:7 · 두루새김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 바르실래를 비롯한 사람들이 침구와 식량을 가져와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었습니다(사무엘하 17:27–29). 나중에 다윗은 바르실래에게 예루살렘으로 함께 가자고 제안했지만, 그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사양했습니다(사무엘하 19:31–39).
다윗은 그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왕의 식탁에서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식사에 초대받는 일이 아닙니다. 왕실의 보호와 생활에 필요한 도움을 계속 받는 특별한 지위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바르실래가 자신에게 베푼 도움을 그의 후손들에게까지 갚도록 합니다.
다윗이 기억하는 과거에는 자신이 입은 상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받은 도움도 있습니다.
왕이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원수를 잊지 않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시므이에게 남겨진 불편한 문제
마지막은 시므이입니다.
시므이는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달아날 때 그를 저주하며 돌을 던졌던 사람입니다(사무엘하 16:5–13). 그러나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시므이는 먼저 나아와 용서를 구했습니다. 다윗은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사무엘하 19:18–23).
그런데 죽음을 앞둔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를 벌하지 않은 채 두지 마라. 너는 지혜로운 사람이니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이다. 백발이 된 그를 죽여 스올로 내려보내라.」열왕기상 2:9 · 두루새김
더구나 시므이에 대한 처벌은 요압과 같은 살인 사건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윗을 저주하고 공격했지만, 본문은 그가 아브넬과 아마사처럼 사람을 살해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그의 과거 행동을 왕권에 대한 심각한 적대 행위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기억에 개인적 원한이 어느 정도 섞여 있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지키라는 높은 원칙과, 과거의 적대자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한 매우 현실적인 지시가 함께 놓여 있습니다. 독자는 이제 솔로몬이 그 두 종류의 명령을 어떻게 실행하는지 지켜보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한편으로는 다윗이 자신은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면서 후계자에게 별도의 판단을 맡긴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한 맹세의 뜻을 아들을 통해 돌아서 무너뜨리게 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사무엘하 19장에서 다윗이 약속했던 것은 단순히 자기 손으로만 죽이지 않겠다는 말보다 넓게 들립니다. 따라서 이 유언이 앞선 맹세와 아무런 충돌도 일으키지 않는다고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윗은 죽고, 그의 결정들은 살아남는다
다윗의 죽음은 놀랍도록 간결하게 기록됩니다.
이후 그가 다스린 기간이 정리됩니다. 헤브론에서 일곱 해,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 모두 마흔 해입니다.
사무엘하 전체를 채웠던 다윗의 긴 이야기가 이렇게 끝납니다.
그러나 서술자는 그의 죽음에 오랫동안 머물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왕좌에 앉았고, 그의 왕권은 아주 굳게 섰습니다.열왕기상 2:12 · 두루새김
솔로몬은 이미 1장에서 왕좌에 앉았습니다. 이는 왕위를 물려받은 일이 이제 다윗의 죽음 이후에도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문장입니다.
솔로몬의 왕권이 이미 「아주 굳게 섰습니다」라고 말한 뒤, 본문은 그 왕권에 위협이 되는 사람들의 처리 과정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46절에서 다시 나라가 「솔로몬의 손안에서 굳게 섰습니다」라고 선언합니다. 앞의 문장은 왕위에 오른 왕의 지위를 확인하고, 뒤의 문장은 경쟁 세력이 정리된 뒤의 상태를 선언합니다.
왕위에 앉는 것과 그 왕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는 청 — 작은 부탁이 왕권 문제로 바뀌다
다윗이 죽은 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아도니야입니다.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를 찾아왔습니다. 밧세바가 물었습니다. 「좋은 뜻으로 왔느냐?」 아도니야가 대답했습니다. 「좋은 뜻으로 왔어요.」열왕기상 2:13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평화를 뜻하는 말로 자신의 방문 목적을 밝힙니다. 이 질문은 단순한 인사일 수도 있지만, 아도니야가 얼마 전까지 왕위를 차지하려 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밧세바가 걱정하는 것은 그가 지금도 정치적인 위협을 품고 있는가 하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로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 과거에 왕의 자리가 누구에게 넘어갔는지 설명합니다.
아도니야가 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왕의 자리는 제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이 제가 왕이 되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왕의 자리가 제 동생에게 넘어갔어요. 여호와야훼께서 그에게 주셨기 때문이에요.」열왕기상 2:15 · 두루새김
그의 말이 실제로 왕위에 대한 모든 주장을 내려놓았다는 고백인지, 상대방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인지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온 이스라엘」이 자신을 원했다는 주장은 아도니야 자신의 말입니다. 앞 장에서는 실제로 그를 따르지 않은 주요 인물들과 솔로몬을 환영하는 백성의 모습도 등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주장을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로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다음 아도니야는 부탁합니다.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는 것입니다.
왜 아비삭과의 혼인이 왕권을 위협하는가?
아도니야는 왕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군대를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다윗을 돌보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 요청을 듣자마자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솔로몬 왕이 어머니에게 대답했습니다. 「왜 아도니야를 위해 수넴 여자 아비삭을 달라고 하세요? 아예 그를 위해 왕의 자리도 달라고 하세요! 그는 저보다 나이 많은 형이잖아요. 그 형에게는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도 있잖아요.」열왕기상 2:22 · 두루새김
솔로몬에게 아비삭은 평범한 혼인 상대가 아닙니다.
그녀는 다윗의 마지막 시기에 왕을 가까이에서 돌보던 여자였습니다. 열왕기상 1:4는 다윗이 아비삭과 잠자리를 함께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이 때문에 아비삭이 정식으로 다윗의 아내나 첩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왕의 침실과 밀접하게 연결된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아브넬에게 아버지의 첩과 관계를 맺은 일을 따져 물었습니다(사무엘하 3:7–8). 압살롬은 다윗의 첩들과 공개적으로 잠자리를 함께함으로써 자신이 아버지의 권력을 차지했음을 드러냈습니다(사무엘하 16:21–22). 이러한 사례들을 생각하면, 아비삭과의 혼인도 다윗의 왕권을 이어받을 자격을 주장하는 상징적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솔로몬이 그 요청을 왕권에 대한 위협으로 판단했다는 사실입니다.
밧세바는 왜 부탁을 전달하는가?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요청을 듣고 솔로몬에게 가겠다고 약속합니다.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부탁을 전하려고 솔로몬 왕에게 갔습니다. 왕은 일어나 어머니를 맞으며 절한 뒤 자기 왕좌에 앉았습니다. 왕이 어머니를 위해 자리를 마련하자 밧세바는 왕의 오른쪽에 앉았습니다.열왕기상 2:19 · 두루새김
왕의 오른쪽은 특별한 존중을 나타내는 자리입니다. 이 장면은 왕의 어머니가 왕궁에서 높은 지위를 가졌음을 보여 줍니다.
밧세바는 자신의 부탁을 「작은 부탁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작은 부탁이 솔로몬에게는 왕국의 안정에 관한 중대한 문제가 됩니다.
솔로몬이 거론한 아비아달과 요압은 앞서 아도니야가 왕이 되겠다고 나섰을 때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 세 사람이 새 음모를 함께 계획했다는 증거가 여기서 제시되는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이 내린 돌이킬 수 없는 결정
솔로몬은 하나님을 두고 맹세합니다.
「나를 굳게 세워 내 아버지 다윗의 왕좌에 앉히시고, 약속하신 대로 내 집안을 세워 주신 여호와야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 아도니야는 반드시 오늘 죽임을 당할 것이다.」열왕기상 2:24 · 두루새김
그러나 솔로몬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다고 해서, 그의 판단이 곧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아도니야를 죽이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없습니다.
솔로몬은 아도니야가 훌륭한 사람이 된다면 그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열왕기상 1:52). 이번에 솔로몬은 아비삭을 요청한 행동을 그 약속을 깨뜨릴 만큼 중대한 악으로 판단한 셈입니다.
브나야가 명령을 실행하자 아도니야는 죽습니다.
한때 다윗의 왕좌를 놓고 경쟁했던 형제 사이의 문제는 이렇게 끝납니다.
그리고 이 죽음은 곧바로 다른 두 사람의 운명으로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아도니야가 간접적으로 왕권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되살리려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원래 왕이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윗의 침실과 관련된 여자를 아내로 맞으려 합니다. 반대로 그는 정치적인 의미를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거나, 자신의 처지가 안정되었다고 생각하고 개인적인 혼인을 요청했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아도니야의 숨은 의도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어떤 독자는 밧세바가 아도니야의 정치적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독자는 그가 일부러 요청을 전달하여 솔로몬의 판단을 끌어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는 밧세바가 함정을 꾸몄다는 직접적인 설명이 없습니다. 22절 끝의 히브리어 문장에는 해석상 여지가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그 형에게는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도 있잖아요」라고 옮겨, 그들이 아도니야 곁에 있다는 뜻으로 풀었습니다. 원문에서는 두 사람의 이름을 앞의 달라고 하라는 말에 연결하여, 그들을 위해서도 왕의 자리를 달라고 하라는 비꼼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또는 왕권이 아도니야와 그 지지자들의 몫이라는 별도의 말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솔로몬은 아비삭에 대한 청을 아도니야 한 사람의 혼인 문제가 아니라, 이전에 왕권을 노렸던 세력과 연결하여 판단합니다. 24절에서 그가 말하는 「집안」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왕조가 이어지는 것과 관련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주신 왕조의 약속을 자신의 왕권과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 판단이 정당하게 위험을 경계한 것이었는지,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제거하기 위한 지나치게 엄격한 해석이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서술자는 솔로몬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아도니야가 새 반란을 준비했다는 별도의 증거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아비아달은 살고, 요압은 죽는다
아도니야가 죽자 솔로몬은 그를 지지하던 세력을 정리합니다.
그런데 아비아달과 요압은 서로 다른 처분을 받습니다.
아비아달에게 남겨진 생명과 잃어버린 직분
솔로몬은 아비아달에게 아나돗에 있는 밭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합니다.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말했습니다. 「아나돗에 있는 네 밭으로 가거라. 너는 죽어 마땅하다. 하지만 오늘은 너를 죽이지 않겠다.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야훼의 궤를 메었고, 아버지가 겪은 모든 고난을 함께 겪었기 때문이다.」열왕기상 2:26 · 두루새김
아비아달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부터 함께한 제사장이었습니다(사무엘상 22:20–23). 압살롬의 반란 때에도 언약궤와 관련된 일을 맡으며 다윗을 도왔습니다(사무엘하 15:24–29).
아비아달이 받은 처분은 완전한 용서도, 죽음의 형벌도 아닙니다. 그는 살아남지만 자신이 오랫동안 맡았던 지위를 잃습니다.
솔로몬은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더 이상 여호와야훼의 제사장으로 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로써 여호와야훼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안에 관해 하셨던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열왕기상 2:27 · 두루새김
사무엘상 2:27–36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엘리의 집안이 제사장 직분을 계속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엘리 집안의 죄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사무엘상 3:11–14에서도 다시 확인됩니다.
아비아달은 엘리 집안과 이어지는 제사장 계열에 속합니다(사무엘상 14:3; 22:9, 20의 계보 참조). 따라서 그가 자리에서 쫓겨난 일은 한 제사장이 잘못된 왕위 계승 세력을 지지한 정치적 사건이면서, 동시에 오래전에 선언된 제사장 집안에 대한 심판이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사건으로 제시됩니다.
그러나 아비아달을 쫓아낸 솔로몬의 모든 동기와 판단까지 하나님께서 직접 인정하셨다고 넓혀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분명히 밝히는 것은 엘리 집안에 관한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제단의 뿔을 붙잡은 요압
아도니야의 죽음과 아비아달이 쫓겨났다는 소식이 요압에게 전해집니다. 요압은 여호와야훼의 천막으로 달아나 제단의 뿔들을 붙잡습니다.
이 행동은 앞 장에서 아도니야가 했던 행동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처지는 같지 않습니다. 아도니야에게는 왕권에 대한 야심과 정치적 위협이라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요압에게는 이미 저지른 두 건의 살인이 있었습니다.
제단은 거룩한 장소였지만, 일부러 사람을 죽인 사람이 그곳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형벌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애굽기 21:14는 사람이 일부러 이웃을 죽인 경우, 그가 제단에 있더라도 데려다가 죽일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브나야가 여호와야훼의 천막으로 가서 요압에게 말했습니다. 「왕께서 『나오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압이 대답했습니다. 「싫다. 나는 여기서 죽겠다.」 브나야는 요압이 한 말과 자기에게 대답한 내용을 왕에게 보고했습니다.열왕기상 2:30 · 두루새김
브나야는 왕의 명령을 받은 군인이지만, 제단 곁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을 스스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왕이 브나야에게 말했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해라. 그를 죽여 묻어라. 요압이 까닭 없이 사람들을 죽인 책임을 나와 내 아버지의 집안에서 없애라.」열왕기상 2:31 · 두루새김
요압이 아브넬을 죽였을 때, 다윗은 그 살인에 책임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사무엘하 3:28–29). 그런데 요압은 오랫동안 다윗의 군대 지휘관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이제 그 죄의 책임을 요압 자신에게 돌리겠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죄 없는 사람이 흘린 피는 단순히 개인적인 원한의 문제가 아닙니다. 공동체와 땅에 책임을 남기는 큰 죄로 다루어집니다(민수기 35:33; 신명기 19:10–13). 솔로몬은 그런 살인의 책임이 다윗 왕조에 머물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두 사람을 죽인 책임이 요압에게 돌아가야 하지만, 다윗의 집안과 왕좌에는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평화」가 영원히 있기를 선언합니다(2:33). 앞서 요압은 「전쟁 중도 아닌 평화로운 때에」 두 사람을 죽인 사람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이제 솔로몬은 그 살인의 책임을 처리함으로써 왕조의 평화를 굳게 세우겠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요압을 죄 없는 희생자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왕권의 모든 폭력을 정의로 선언하지도 않습니다.
두 자리가 바뀌다
요압이 죽은 뒤 솔로몬은 브나야를 군대 지휘관으로 세우고, 아비아달 대신 사독을 제사장으로 세웁니다.
아도니야를 지지했던 군대 지휘관과 제사장은 이제 자리를 잃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솔로몬이 왕위를 잇도록 지지했던 사람들이 들어섭니다.
왕국의 군사적 중심과 종교적 중심이 새 왕에게 확고하게 연결됩니다.
조금 더 깊이
요압이 왜 제단에서 죽기를 선택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성소를 떠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 제단에서 죽이는 일을 망설이게 만들려 했는지, 마지막 순간까지 보호를 기대했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시므이는 왜 죽었는가?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시므이입니다.
솔로몬은 그를 즉시 처형하지 않습니다. 대신 예루살렘에 집을 짓고 그곳에서 살라고 명령합니다. 성읍을 벗어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게 될 줄 알아라. 네 죽음에 대한 책임은 네게 있다.」열왕기상 2:37 · 두루새김
이 명령은 시므이가 살 곳을 제한하는 조치입니다. 그는 여전히 살아서 자신의 집에서 지낼 수 있지만, 예루살렘 밖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는 없습니다. 시므이는 그 조건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삼 년이 지난 뒤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의 종 두 명이 가드 왕 아기스에게 달아난 것입니다. 시므이는 나귀에 안장을 얹고 가드로 가서 종들을 찾아 돌아옵니다.
시므이는 솔로몬을 공격하거나 반란을 일으키려고 가드에 간 것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가 간 이유는 달아난 종들을 데려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명령을 어겼습니다.
기드론 시내와 가드 사이의 문제
솔로몬이 처음 내린 명령에는 예루살렘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넓은 금지와 기드론 시내를 건너면 죽는다는 구체적인 경고가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시므이가 향한 가드는 예루살렘의 동쪽이 아니라 블레셋 지역의 서쪽 또는 남서쪽 방향에 있습니다. 따라서 시므이가 가드로 가는 과정에서 실제로 기드론 시내를 건넜다고 본문에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왕이 사람을 보내 시므이를 불러다가 말했습니다. 「내가 너에게 여호와야훼를 두고 맹세하게 하면서 『네가 이곳을 떠나 어디로든 가는 날에는 반드시 죽게 될 줄 알아라』 하고 경고하지 않았느냐? 너도 내게 『알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열왕기상 2:42 · 두루새김
이 말은 처음의 기드론 시내를 건넌다는 표현보다 범위가 넓게 들립니다.
시므이의 책임과 솔로몬의 판단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그가 맹세와 왕의 명령을 어겼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오래전 다윗에게 저지른 악한 짓을 다시 언급합니다.
왕이 시므이에게 또 말했습니다. 「네가 내 아버지 다윗에게 무슨 악한 짓을 했는지 너 자신이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 악한 짓의 대가를 네게 돌리실 것이다.」열왕기상 2:44 · 두루새김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처음부터 무조건적인 처형을 선고하지 않았습니다.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시므이는 그 조건을 받아들였고, 결국 어겼습니다.
이 점에서 시므이는 자신의 선택으로 위험을 불러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종들을 되찾으러 간 일을 과거에 다윗을 저주한 일과 연결하여 죽음의 형벌을 집행하는 것이 잘못의 크기에 얼마나 걸맞은 처분인지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 처형에는 왕의 명령을 어긴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일과, 다윗 왕조에 적대적이었던 사람을 제거하는 정치적 판단이 함께 작용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시므이가 새로운 반란을 계획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피의 책임이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요압이 두 사람을 죽인 책임은 요압에게 돌아갑니다. 시므이가 행한 악한 짓의 대가는 시므이 자신에게 돌아갑니다. 두 사건에서 솔로몬은 책임이 당사자에게 되돌아간다는 논리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솔로몬 자신의 판단에 책임이 전혀 없다는 선언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실제로 처형을 명령하는 왕입니다.
시므이가 죽자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이 장의 마지막 문장을 기록합니다.
왕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령하자, 브나야가 나가 시므이를 쳐서 죽였습니다. 나라는 솔로몬의 손안에서 굳게 섰습니다.열왕기상 2:46 · 두루새김
이는 정치적으로 분명한 결론입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의 읽기는 처음부터 예루살렘을 떠나는 모든 행동이 금지되었으며, 기드론은 그 금지의 한 구체적인 경계를 나타낸다고 이해합니다. 실제로 36절에서 솔로몬은 「그곳을 떠나 어디로도 가지 마라.」라고 명령했습니다. 다른 읽기는 처음 제시된 사형 경고가 기드론을 건너는 행위와 특별히 연결되어 있었는데, 솔로몬이 나중에 이를 더 넓은 범위의 경고로 다시 말했다고 봅니다. 두 읽기 모두 본문의 표현에 근거가 있습니다. 본문은 시므이가 기드론을 건넜다는 구체적인 경로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가 기드론을 건넜기 때문에 죽었다고 단순하게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끝맺음 — 굳게 선 왕좌 앞에 남은 질문
하나의 사건이 법적 책임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권력 유지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잘못한 사람을 처벌한다고 해서 처벌하는 사람에게 다른 목적이 전혀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대로 정치적 이익이 따른다고 해서 그 처벌이 반드시 아무런 정당성도 없는 행동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열왕기상 2장은 이러한 복잡함을 없애지 않습니다.
이제 다윗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솔로몬은 왕좌에 앉았고 나라는 그의 손안에서 굳게 섰습니다.
하지만 그가 앞으로 걸어갈 길이 어떤 길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굳게 섰다는 마지막 문장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길을 끝까지 따랐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왕권을 굳게 세운 사람이 이제 그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더 큰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왕좌는 솔로몬의 손안에서 굳게 섰습니다. 그러나 왕좌에 앉은 사람의 발걸음은 여전히 하나님의 길 위에서 평가받아야 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