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1–3장 · 실로의 아이 사무엘
말씀을 듣던 아이의 부르심
사무엘상 3장은 두 문장 사이에서 전개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드물었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계속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이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아듣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전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사무엘은 밤에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는 법을 배우고, 아침에는 자신이 들은 말씀에 책임지는 법을 배웁니다.
바로 그 과정을 통해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로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드물던 시대
성소는 있었지만 말씀은 드물었다
이야기는 사무엘이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말하면서 시작합니다.
아이 사무엘은 엘리 곁에서 여호와야훼를 섬겼습니다. 그 무렵에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드물었고, 환상도 흔하지 않았습니다.사무엘상 3:1 · 두루새김
실로에는 성소가 있고, 제사장도 있으며, 예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드물었고」라는 말은 하나님이 전혀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로 앞 장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찾아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전했습니다(2:27–36).
여기서 환상은 예언자에게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한 가지 방식을 가리킵니다. 민수기 12:6에서도 여호와야훼는 예언자에게 환상이나 꿈을 통해 자신을 알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종교 활동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새롭게 드러내시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앞 장에서 우리는 실로의 제사장들이 자신들이 맡은 일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보았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엘리 집안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을 드물게 하셨다고 직접적인 원인과 결과를 밝히지는 않습니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야 할 성소가 위기에 놓여 있었고, 바로 그곳에서 새로운 말씀이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두워지는 눈과 꺼지지 않은 등불
이어지는 두 절은 밤의 성소를 보여 줍니다.
어느 날 밤, 엘리는 자기 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두 눈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사무엘상 3:2 · 두루새김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누워 있었습니다.사무엘상 3:3 · 두루새김
출애굽기 27:20–21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등불에 사용할 기름을 마련해야 했고, 제사장들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야훼 앞에서 등불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설명은 밤이 지나 아침이 오기 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알려 줍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가 있는 성전에 누워 있었다는 표현도 그가 언약궤 바로 옆, 지성소 안에서 잤다는 뜻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소가 있는 건물 또는 그 구역 안에 머물렀다는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엘리는 몸의 눈으로 앞을 볼 수 없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집안에서 일어나는 악행을 막지 못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선언하신 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엘리의 시력이 곧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거나, 등불이 곧 사무엘을 상징한다고 확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시력이 약해져 가는 제사장과 아직 꺼지지 않은 성소의 등불을 나란히 놓은 장면은, 끝나 가는 시대와 그 안에서 시작될 새로운 일을 함께 바라보게 합니다.
그런데 그 고요함 속에서 먼저 행동하시는 분은 여호와야훼입니다.
세 번 잘못 찾아간 아이와 네 번째 부르심
「저 여기 있어요」
여호와야훼가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이 대답했습니다. 「저 여기 있어요.」사무엘상 3:4 · 두루새김
이 말은 단순히 자신의 위치를 알려 주는 대답을 넘어, 부르는 사람에게 자신이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2:1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출애굽기 3:4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도 이 대답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경우에는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사무엘은 여호와야훼께 대답했지만, 정작 자신을 부르신 분이 여호와야훼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곧바로 엘리에게 달려갑니다. 엘리는 자신이 부르지 않았다고 말하고, 사무엘은 돌아가 눕습니다.
그런데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납니다.
여호와야훼가 부르시고, 사무엘은 엘리에게 갑니다. 엘리는 다시 부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세 번째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사무엘이 엘리에게 갔을 때 엘리는 짧게 대답했습니다. 두 번째에는 「나는 부르지 않았다, 내 아들아」라고 말합니다. 세 번째에는 드디어 여호와야훼가 아이를 부르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무엘은 같은 행동을 세 번 반복하지만, 엘리는 그 반복을 통해 상황을 새롭게 이해하게 됩니다.
사무엘은 왜 여호와야훼를 알아보지 못했는가
7절은 독자의 의문을 직접 설명합니다.
사무엘은 아직 여호와야훼를 알지 못했고, 여호와야훼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사무엘상 3:7 · 두루새김
사무엘상 2:12에서는 엘리의 아들들이 여호와야훼를 알지 못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제 사무엘에게도 「아직 여호와야훼를 알지 못했고」라는 비슷한 표현이 사용됩니다.
그러나 두 경우의 뜻은 같지 않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제물을 다루는 제사장들이면서도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사무엘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섬기고 있는 어린아이입니다.
7절은 그가 여호와야훼를 알지 못했다는 말 뒤에 곧바로 이유를 덧붙입니다. 「여호와야훼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아직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드러난 경험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알아야 할 하나님을 거부했고, 사무엘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엘리가 가르쳐 준 가장 중요한 대답
세 번째 부르심 이후 엘리는 사무엘에게 말합니다.
엘리가 사무엘에게 말했습니다. 「가서 누워라. 그분께서 너를 부르시면, 『여호와야훼여, 말씀해 주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여라.」 사무엘은 돌아가 자기 자리에 누웠습니다.사무엘상 3:9 · 두루새김
히브리어의 샤마(שָׁמַע)는 듣는다는 뜻을 기본으로 하며, 문맥에 따라 주의를 기울이고 받아들이거나 순종한다는 뜻으로도 넓어집니다. 사무엘에게 필요한 것은 음성이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알아내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 음성 앞에서 자신을 듣는 사람, 곧 종의 자리에 놓는 것입니다.
엘리는 자신의 아들들을 바로잡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의 집안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선언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사무엘에게 하나님께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그는 사무엘의 첫 부르심을 알아차리는 데 늦었지만, 결국 그 부르심이 여호와야훼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아봅니다. 오히려 사무엘을 하나님께 직접 응답하도록 이끕니다.
네 번째 부르심은 조금 다르다
사무엘이 다시 누웠을 때 여호와야훼가 찾아오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와서 서더니, 앞서처럼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이 대답했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사무엘상 3:10 · 두루새김
이전에는 부르셨다는 사실만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호와야훼가 오셔서 서 계시는 모습까지 그려집니다.
창세기 22:11에서 아브라함을, 출애굽기 3:4에서 모세를 부르실 때도 이름을 거듭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중요한 부르심의 순간에 한 사람을 직접 지목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렇게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아듣는 첫 단계를 통과합니다.
그러나 진짜 어려운 일은 바로 다음에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이것이 정확히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이 나타나신 일이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모습을 눈으로 보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이 만남을 단순히 멀리서 들려온 소리로만 그리지 않고, 여호와야훼께서 직접 찾아오신 사건으로 그립니다.
처음 받은 말씀이 왜 심판의 말씀이었을까
두 귀가 울릴 만큼 두려운 일
여호와야훼가 사무엘에게 처음으로 전하시는 말씀은 놀랍도록 무겁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에서 한 가지 일을 하려 한다. 그 일을 듣는 사람은 누구나 두 귀가 울릴 만큼 놀랄 것이다.」사무엘상 3:11 · 두루새김
「두 귀가 울릴 만큼 놀랄 것이다」라는 표현은 듣는 사람이 충격을 받을 만큼 두려운 사건을 가리킵니다. 열왕기하 21:12와 예레미야 19:3에서도 심각한 심판을 알릴 때 원문에서는 같은 표현이 사용됩니다.
처음에는 사무엘 한 사람이 여호와야훼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가 듣게 된 말씀은 온 이스라엘에 영향을 미칠 사건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사무엘 개인의 부르심은 처음부터 공동체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계시인데 내용은 이미 알려진 말씀이다
12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날 나는 엘리의 집안을 두고 말한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겠다.」사무엘상 3:12 · 두루새김
사무엘에게 처음으로 드러내신 말씀이라면, 왜 이미 엘리에게 하신 말씀을 반복하시는 것일까요? 앞 장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엘리 집안에 심판이 닥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2:27–36). 엘리의 두 아들이 같은 날 죽고, 그의 집안이 제사장으로서 누리던 특권을 잃을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제 하나님께서 이미 선언하신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임을 확인하는 사람이 됩니다. 예언자는 언제나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내거나 전에 없던 비밀을 알려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이 참되다는 사실을 증언하며,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사무엘에게 특별히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심판의 대상이 그를 길러 준 엘리이기 때문입니다.
엘리는 사무엘의 부르심을 알아차리고 응답하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입니다. 사무엘은 바로 그 사람의 집안이 심판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처음으로 듣습니다.
엘리는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알고 있었다
13절은 심판의 이유를 다시 밝힙니다.
「엘리는 아들들이 스스로 저주를 불러들이는 줄 알면서도 그들을 막지 않았다. 나는 그 죄 때문에 그의 집안을 영원히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알렸다.」사무엘상 3:13 · 두루새김
그는 그들의 악행에 관한 소식을 들었고, 앞 장에서는 아들들을 직접 꾸짖기도 했습니다(2:23–25). 그러나 아들들은 계속 그 일을 저질렀습니다. 앞 장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엘리가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고 꾸짖었습니다(2:29).
엘리의 잘못은 죄를 알아보지 못한 데 있지 않고, 그 죄를 알면서도 자신이 맡은 책임에 걸맞게 대응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자신의 권한이 미치는 자리에서 그 잘못이 계속되지 않도록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것은 다릅니다. 엘리는 아버지이면서 제사장이었습니다. 그의 집안에서 일어나는 악행은 가족 내부의 문제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성소를 찾아오는 백성이 피해를 입었고,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제물이 업신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가 알고 있었던 죄에 대해 책임을 물으십니다.
희생제물로도 속죄되지 않는 죄
14절은 더욱 무거운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엘리의 집안을 두고 맹세했다. 짐승 제물이나 예물을 바쳐도 엘리 집안의 죄는 영원히 씻기지 않을 것이다.」사무엘상 3:14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율법에는 죄를 위한 짐승 제물과 죄를 씻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모든 속죄 제도를 부정하시거나, 어떤 사람도 심각한 죄를 지으면 용서받을 수 없다고 일반적으로 선언하신 것은 아닙니다. 말씀의 대상은 특정한 집안과 그들이 저지른 죄입니다.
그들은 백성이 여호와야훼께 바치는 제물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제물을 강제로 빼앗고 하나님께 돌려야 할 몫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제물을 통해 자신들에게 내려진 심판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업신여기면서 제사라는 형식만으로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이 문제는 사무엘상 15:22에서도 다시 등장합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여호와야훼께 순종하는 것이 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낫다고 선언합니다.
예배의 형식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삶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동사 키하는 여기서 꾸짖거나 막는다는 뜻과 관련되어 이해됩니다. 구체적인 번역에서는 꾸짖지 않았다, 막지 않았다 등의 표현이 사용됩니다. 앞 장에는 엘리가 실제로 아들들을 말로 꾸짖은 장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3:13을 엘리가 아들들에게 잘못이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두 장의 기록 사이에 충돌이 생깁니다.
밤에는 말씀을 듣고, 아침에는 문을 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두려워하는 사무엘
14절의 무거운 선언 뒤에 밤이 끝납니다.
사무엘은 아침까지 누워 있다가 여호와야훼의 집 문들을 열었습니다. 그는 그 환상을 엘리에게 전하기가 두려웠습니다.사무엘상 3:15 · 두루새김
사무엘이 갑자기 사람들 앞에 나서서 자신이 예언자가 되었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지위를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사무엘은 이제 서로 다른 두 관계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을 돌보아 준 엘리와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부르시고 말씀하신 여호와야훼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때로 자신이 사랑하거나 존중하는 사람에게도 듣기 어려운 진실을 전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엘리의 질문과 사무엘의 대답
아침에 엘리가 사무엘을 부릅니다.
엘리가 사무엘을 불렀습니다. 「사무엘아, 내 아들아.」 사무엘이 대답했습니다. 「저 여기 있어요.」사무엘상 3:16 · 두루새김
밤에 사무엘은 여호와야훼의 부르심을 엘리의 부르심으로 오해하고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이제는 실제로 엘리가 부르고 있으며, 사무엘은 정확하게 그에게 대답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밤에 경험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엘리가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네게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내게 숨기지 마라. 그분께서 네게 하신 말씀 가운데 한마디라도 숨긴다면, 하나님께서 네게 무거운 벌을 내리시기를 바란다.」사무엘상 3:17 · 두루새김
엘리는 자신의 집안에 대한 심판이 이미 선언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들은 말씀의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말씀일 수도 있다는 상황에서 그것을 전부 말하도록 요구합니다.
사무엘은 엘리에게 모든 말을 전하고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엘리가 말했습니다. 「그분은 여호와야훼시다. 그분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하시기를 바란다.」사무엘상 3:18 · 두루새김
이것이 사무엘이 처음으로 예언자의 역할을 한 행동입니다.
밤에는 「말씀해 주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침에는 들은 말씀을 하나도 숨기지 않고 전했습니다.
이야기의 초점은 놀랍게 음성을 들은 경험에서 말씀에 대한 충실함으로 옮겨 갑니다.
엘리는 자신의 심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그가 심판의 말씀을 듣고 여호와야훼의 권한을 인정했다는 사실까지입니다.
엘리는 실패한 제사장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어린 사무엘을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말씀을 듣고도 그것이 여호와야훼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합니다.
사무엘상은 이 인물을 단순한 악인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는 지식이 있었고, 사무엘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집안에서 일어나는 죄를 바로잡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님께서 네게 무거운 벌을 내리시기를 바란다」는 말은 원문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맹세나 엄중한 다짐에 쓰이던 저주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하시고 거기에 더하시기를 바란다는 표현인데, 두루새김은 그 뜻을 무거운 벌을 내리시기를 바란다는 말로 풀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의 대답이 엘리가 완전히 회개했다는 증거인지는 구별해야 합니다. 본문에는 엘리가 아들들의 악행을 바로잡기 위해 새로운 행동을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의 대답을 깊은 회개의 완성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단순히 포기한 말이라고만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엘리는 자신에게 닥칠 심판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땅에 떨어지지 않는 말
사무엘의 말이 왜 권위를 얻게 되었는가
이제 이야기는 한밤중의 사건에서 여러 해에 걸친 사무엘의 성장으로 옮겨 갑니다.
사무엘은 자랐고, 여호와야훼께서는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사무엘의 말이 하나도 헛되지 않게 하셨습니다.사무엘상 3:19 · 두루새김
이전에는 성소에서 섬기는 어린아이로서 자랐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성장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사무엘의 말이 하나도 헛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무엘이 하는 모든 일상적인 말에 잘못이 전혀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맥에서 말하는 것은 사무엘이 여호와야훼께 받은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이 헛되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원문에서는 사무엘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고 표현합니다. 말이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말이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하는 상황을 떠올리게 합니다. 반대로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 말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참되다는 것이 확인된다는 뜻입니다.
사무엘의 말이 권위를 갖는 이유는 그의 뛰어난 말솜씨나 개인적인 영향력에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와 함께하시고, 그가 전하는 말씀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명기 18:21–22에서 제시되는 예언을 분별하는 기준과도 연결됩니다.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전한 말이 이루어지는가는 그 말이 참된지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됩니다.
사무엘의 충실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기 때문에 사무엘은 그것을 충실히 전해야 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사실이 사무엘 자신의 책임을 없애 주지도 않습니다. 그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받은 말씀을 숨기지 않아야 했습니다.
따라서 예언자의 권위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권위가 아니지만, 예언자의 역할에는 분명히 사람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 따릅니다.
이 점은 사무엘상에서 앞으로 이어질 왕들의 이야기에도 중요합니다. 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왕도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사무엘상에서 사무엘은 사울을 세우고, 이후 사울의 불순종을 지적하며, 다시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가진 권위는 스스로 왕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섰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왕에게도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20절은 사무엘의 지위가 이스라엘 전체에 알려졌다고 말합니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여호와야훼의 예언자로 확고히 세워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사무엘상 3:20 · 두루새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는 이스라엘의 북쪽에서 남쪽까지를 나타내는 익숙한 지리적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사무엘이 어떤 특정 지역에서만 인정받는 인물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에서 알려진 예언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사기 20:1에서도 온 이스라엘이 모이는 범위를 나타낼 때 이 표현이 사용됩니다.
사무엘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예언자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인정받은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와 함께하셨고, 그가 전한 말씀이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이 그를 예언자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
마지막 절은 사무엘의 개인적인 성공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실로에서 계속 나타나셨습니다. 그곳에서 사무엘에게 말씀을 건네시며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사무엘상 3:21 · 두루새김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려 주는 정보가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을 알게 하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아직 여호와야훼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말씀을 건네시며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사무엘의 성장은 단순히 종교적 지식이 늘어나는 과정이 아닙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실제로 관계를 맺으며 그분을 알아 가는 과정입니다.
맺음 — 아침에 문을 여는 아이
사무엘상 3장의 마지막에 독자는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의 예언자로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예언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장면은 오히려 15절에 있습니다. 두려움이 있어도 자신에게 맡겨진 말씀을 바꾸거나 감추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장에서 사무엘이 보여 준 첫 번째 예언자로서의 충실함입니다.
그러나 이 장은 모든 사람이 사무엘처럼 들리는 음성을 경험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무엘의 경험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로 세워지는 특별한 계시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을 오늘날 누구나 재현해야 하는 신앙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여느 때처럼 여호와야훼의 집 문들을 엽니다. 그는 전날 밤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들은 말씀이 얼마나 무거운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말씀을 엘리에게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두렵습니다.
그리고 엘리가 부릅니다. 「사무엘아, 내 아들아.」 사무엘은 또다시 대답합니다. 「저 여기 있어요.」
그 대답은 밤새 여러 번 했던 말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들은 말씀을 하나도 숨기지 않고 전합니다. 이후 하나님은 그와 함께하시며 그의 말이 하나도 헛되지 않게 하십니다. 온 이스라엘은 그가 여호와야훼의 예언자로 세워졌음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드물었던 실로에서, 이제 여호와야훼는 말씀을 건네시며 계속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사무엘이 아침에 열었던 것은 성소의 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부터 분명해지기 시작한 변화는 그보다 깊었습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던 하나님의 말씀을 한 아이가 듣기 시작했고, 이제 그 말씀은 그 아이를 통해 이스라엘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