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14장
이 장의 자리 · 10–28장 · 둘로 갈라진 나라
하나님이 주신 쉼과 하나님을 의지한 싸움
아사는 전쟁이 없는 동안 성벽을 쌓았습니다. 적이 쳐들어오지 않았기에 성읍을 튼튼하게 만들 시간이 있었고, 백성은 망대와 성문과 빗장을 갖추었습니다. 왕에게는 오십팔만 명의 용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거대한 적군이 나타났을 때, 아사는 자신이 준비한 성벽이나 군대의 힘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자신이 할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해야 할 일을 다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이 끝까지 의지할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뜻일까요?
이 장에서 아사는 평온할 때도 하나님을 찾고, 적이 밀려올 때도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서로 다릅니다. 평온할 때는 잘못된 예배를 없애고 성읍을 세우며, 전쟁이 닥쳤을 때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무엇을 없애고, 무엇을 찾을 것인가
아사의 이야기는 왕에 대한 분명한 평가로 시작합니다.
아사는 자기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선하고 올바른 일을 했습니다.역대하 14:1 · 두루새김
앞선 왕들의 이야기에서 왕국의 분열과 전쟁이 이어졌다면, 아사의 통치는 처음부터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바로 앞 장 마지막에서 그의 시대에 열 해 동안 평온이 있었다고 기록했는데, 이제 역대기 저자는 그가 어떤 왕이었는지 보여 줍니다.
첫 번째 행동은 종교적 개혁입니다.
그는 다른 신의 제단들과 산당들을 없앴습니다. 또 신을 섬기려고 세운 돌기둥들을 부수고, 아세라 나무 기둥들을 찍어 버렸습니다.역대하 14:2 · 두루새김
다른 신의 제단들은 하나님 이외의 신들을 섬기는 제사와 관련된 제단을 가리킵니다. 산당은 높은 곳이나 특정 장소에 마련된 제사 시설을 가리키며, 모든 산당이 언제나 똑같은 형태의 우상 숭배 장소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는 아사가 없애야 할 예배 시설로 등장합니다.
창세기 28:18에서는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장소에 돌기둥을 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돌기둥이라는 물체 자체가 성경 전체에서 언제나 금지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신명기 16:22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라도 그런 돌기둥을 세우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특정한 종교적 관습과 결합된 돌기둥이 금지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아세라 나무 기둥들」은 가나안 지역의 여신 아세라와 관련된 숭배 대상 또는 그 상징물을 가리킵니다. 나무로 된 기둥이나 목재 상징물이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모든 아세라 상징물의 정확한 형태가 같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4절에 나오는 태양 기둥들도 별도의 숭배 대상입니다. 태양 기둥들은 태양과 관련된 제사 시설 또는 물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구체적인 모양과 사용법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핵심은 없애는 행동 자체보다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명령에 있습니다.
아사는 유다 사람들에게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찾고, 율법과 명령을 지키라고 했습니다.역대하 14:3 · 두루새김
우상을 없애는 것은 기존의 잘못된 관습을 멈추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비워졌다는 사실만으로 백성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이제 누구를 섬길 것인지, 어떤 말씀을 따라 살 것인지 새롭게 결정해야 합니다.
아사는 그 방향을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에게서 찾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 돌아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감정을 갖거나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는 일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실제로 지키는 삶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찾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라쉬(דָּרַשׁ)는 이 장 전체를 이해하는 핵심 동사입니다. 찾다, 구하다, 알아보려고 묻다는 의미를 가지며, 하나님을 대상으로 사용할 때는 그분의 뜻과 도움을 구하고 그분께 나아가는 행동을 나타냅니다.
르호보암은 왕국이 강해졌을 때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습니다(12:1). 반면 아사는 왕국이 평온할 때 하나님을 찾고, 율법과 명령을 지키도록 명령했습니다.
왕국이 안정된 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달랐습니다.
조금 더 깊이
한편 아사가 산당들을 없앴다는 기록은 열왕기상 15:14와 차이가 있습니다. 열왕기에서는 아사 시대에도 산당들이 없어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역대하 15:17 역시 이스라엘에서 산당들이 없어지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이 차이를 설명하는 한 가지 가능성은 아사가 없앤 다른 신의 숭배 시설과 여전히 남아 있었던 다른 산당들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개혁이 시행된 지역이나 시기를 달리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각 본문이 그 범위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으므로 어느 설명 하나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쉼을 주셨기에 성벽을 쌓을 수 있었다
아사는 예배를 정비한 뒤 나라를 지킬 시설을 튼튼하게 만듭니다.
아사는 유다에 적의 공격을 막을 튼튼한 성읍들을 세웠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에게 평안을 주셔서 나라가 평온했고, 그 여러 해 동안 전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역대하 14:5 · 두루새김
아사가 성읍을 튼튼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평온해졌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평안을 주셨고 전쟁이 없었기 때문에 그 기간에 성읍을 세웠다고 합니다.
여기서 「평안을 주셔서」라는 말은 단순히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변의 전쟁과 위협에서 벗어나 안정된 상태를 누리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원문에서는 하나님이 쉼을 주셨다는 말로 이를 나타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쉼을 주신다는 주제는 가나안 땅의 약속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12:9–10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주시는 쉼과 물려받을 땅에 들어가 사방의 적들로부터 안전하게 살게 될 것을 말합니다. 여호수아 21:44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사방에서 쉼을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아사는 그 시간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기간으로 보내지 않습니다.
아사가 유다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땅이 아직 우리에게 있으니, 이 성읍들을 세우고 둘레에 성벽과 망대를 쌓자. 성문을 달고 문을 잠글 빗장도 갖추자.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찾았기에 이 땅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찾았고, 그분께서 사방에 평안을 주셨다.」 그들은 성읍들을 세웠고 일이 잘되었습니다.역대하 14:6 · 두루새김
「이 땅이 아직 우리에게 있으니」라는 말은 유다가 새로운 영토를 정복할 수 있다는 선언이라기보다, 지금 자기들의 땅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고 건설할 수 있는 형편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들은 적의 공격으로 성읍을 잃거나 성벽을 세울 기회조차 빼앗긴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찾았기에」와 「찾았고」라는 말이 이어집니다. 3절에서는 왕이 백성에게 하나님을 찾으라고 명령했습니다. 6절에서는 왕이 자신들과 백성이 실제로 하나님을 찾았다고 말합니다.
명령이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사는 「내가」 하나님을 찾았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가」 찾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평온을 자기 개인의 신앙적 성취로 독점하지 않습니다. 백성과 함께 하나님을 찾았고, 함께 평안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본문은 구체적인 성벽의 높이나 건설 기간을 나열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이 주신 평온 속에서 백성이 실제로 일을 이루었다고 기록합니다.
이 장에서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열어 주신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준비된 군대의 규모가 7절에 기록됩니다. 유다에서 큰 방패와 창을 든 삼십만 명, 베냐민에서 작은 방패를 들고 활을 쏘는 이십팔만 명이 있었습니다. 합하면 오십팔만 명입니다. 이들은 모두 용맹한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그 모든 준비가 시험받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오십팔만 명도 충분하지 않은 전쟁
구스 사람 세라가 군사 100만 명과 병거 300대를 거느리고 유다를 치러 와서 마레사까지 이르렀습니다.역대하 14:8 · 두루새김
하나님이 평안을 주셨다면 왜 다시 전쟁이 일어납니까?
본문은 평온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5절에서도 「그 여러 해 동안」 전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쉼은 실제로 누렸던 시간이며, 그 이후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는 사실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구스 사람들의 침입을 곧바로 아사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일어난 심판이라고 읽어서는 안 됩니다. 앞 장들과 달리, 여기에는 유다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적군이 침입했다는 설명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사가 선하고 올바른 일을 하고, 하나님을 찾으며, 그분이 주신 평안 가운데 나라를 정비한 뒤에 이 침입이 기록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다는 사실이 모든 위기가 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사의 군대는 결코 작지 않았지만, 그보다 훨씬 큰 군대가 밀려왔습니다. 마레사는 르호보암이 튼튼하게 만들었던 성읍 가운데 하나입니다(역대하 11:8). 유다 남서부의 중요한 거점으로, 서쪽과 남쪽에서 접근하는 세력에 맞서는 방어선과 관련된 곳이었습니다.
앞서 아사는 평온한 시간을 이용해 성벽과 망대와 성문과 빗장을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적군은 실제로 유다의 튼튼한 성읍이 있는 지역까지 진격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역대기는 아사가 준비했던 방어 시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사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갔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마레사의 스바다 골짜기에서 싸울 대열을 갖추었습니다.
아사는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있는 군대를 이끌고 적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전투를 앞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구스라는 이름은 성경에서 흔히 이집트 남쪽의 누비아 지역과 관련되지만, 쓰이는 모든 곳에서 정확히 같은 지역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이 세라가 역사적으로 어떤 왕이나 장군이었는지, 그의 군대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구스 군대는 백만 명이고, 아사의 군대는 오십팔만 명입니다. 여기에 적군은 병거 삼백 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수치들은 본문의 기록이며, 그 시대의 실제 병력을 다른 자료로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스바다 골짜기의 정확한 위치는 확정하기 어렵지만, 전투가 마레사 일대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은 본문에 분명합니다.
「주님께는 차이가 없습니다」 — 아사의 기도
역대하 14장의 중심은 아사의 기도입니다.
아사는 자기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야훼여, 수가 많은 사람을 도우시든 힘없는 사람을 도우시든 주님께는 차이가 없습니다. 저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여,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저희는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이 큰 군대에 맞서 나왔습니다. 여호와야훼여, 주님은 저희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주님을 이기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역대하 14:10 · 두루새김
첫째, 하나님의 도움은 인간의 병력 규모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아사는 오십팔만 명의 용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벽도 있었고, 망대와 무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적군의 규모를 보면서, 자신이 준비한 힘으로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는 자신의 준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 준비가 승리를 결정하는 마지막 근거가 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둘째, 아사는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 밝힙니다.
「저희는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이 큰 군대에 맞서 나왔습니다.」 앞 장에서 유다는 적에게 포위된 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번 장에서 아사는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직접 하나님께 자신이 그분을 의지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적을 향해 나가는 행동 자체를 신앙과 분리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그 이름을 지닌 분이 누구신지, 그분의 명예, 그분이 어떤 분으로 알려지는가 하는 문제와 깊이 연결됩니다. 아사는 이 전쟁을 자신의 명예만 걸린 싸움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된 싸움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말이 모든 왕의 전쟁을 자동으로 하나님의 전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어떤 전쟁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는 왕이 그렇게 주장한다는 사실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는 아사의 기도에 이어 하나님이 실제로 구스 군대를 치셨다고 서술하기 때문에, 그의 호소가 이야기 안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아사는 자신의 약함보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한을 마지막에 놓습니다.
「사람이 주님을 이기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아사의 기도는 거대한 군대를 이끌고 온 세라를 단지 강력한 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가 아무리 많은 군사와 병거를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구스 군대가 매우 크고 유다 군대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거대한 군대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사는 그 사실을 붙들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하나님이 아사 앞에서 적군을 치시다
여호와야훼께서 아사와 유다 군대 앞에서 구스 군대를 치셨습니다. 구스 군사들은 달아났습니다.역대하 14:11 · 두루새김
주어는 「여호와야훼께서」입니다.
아사는 군대를 이끌고 나왔고, 유다의 군사들도 싸울 대열을 갖추었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전투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뒤따르는 추격 장면에서도 확인됩니다. 그러나 역대기 저자는 승리를 결정적으로 이루신 분을 하나님으로 기록합니다.
아사와 그를 따르는 군사들은 구스 군대를 그랄까지 뒤쫓았습니다. 구스 군사들은 쓰러져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호와야훼와 그분의 군대 앞에서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아사와 그의 군사들은 적에게서 아주 많은 것을 빼앗아 가져갔습니다.역대하 14:12 · 두루새김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습니다」라는 표현은 그 패배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나타냅니다. 다만 이 표현이 구스에 속한 모든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맥은 이 전투에 참여한 군대의 패배를 말합니다.
「여호와야훼와 그분의 군대 앞에서」 하나님이 적군을 치셨지만, 유다 군대는 전투에서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승리의 과정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적에게서 빼앗은 물건의 기록은 그들이 실제 전투와 추격을 수행했음을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이러한 전쟁 서술은 이스라엘의 오랜 신앙 전통과 연결됩니다. 출애굽기 14:14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싸우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 10:14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셨다고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은 실제로 길을 걷고, 싸울 대열을 갖추고, 적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 속에서 결정적인 구원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승리의 근원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승리 뒤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전쟁은 구스 군대가 도망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랄 주변의 모든 성읍을 공격했습니다. 여호와야훼에 대한 두려움이 그곳 사람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그 성읍들에는 빼앗을 것이 많았으므로, 그들은 모든 성읍에서 물건을 빼앗았습니다.역대하 14:13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건하게 예배하기 시작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맥에서는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유다 군대가 승리한 사건이 주변 주민들에게 공포를 일으켰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은 아사와 그의 군대가 적을 물리친 뒤 그랄 주변의 성읍들에서 물건을 빼앗았다고 분명히 기록합니다. 또한 가축 떼가 있는 천막들을 공격하고 수많은 양과 염소, 낙타들을 빼앗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이 약탈 과정의 모든 세부 행동을 그 자체로 도덕적으로 옳다고 인정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그랄 주변의 주민들이 어떤 방식으로 전쟁에 참여했는지, 성읍을 공격한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구스 군대를 치셨다는 기록을 근거로, 이어진 모든 약탈 행위를 세부 사항까지 무조건 정당화하는 것은 본문을 넘어서는 해석입니다.
반대로 본문이 약탈을 분명하게 비판한다고 말할 근거도 없습니다. 이 부분은 고대 전쟁 서술이 가진 현실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그 장면에 현대 독자가 도덕적 불편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본문의 폭력성을 지워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적의 침입으로 위협받던 유다 군대는 패배하지 않았고, 오히려 적을 물리친 뒤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사는 자신들의 힘보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기도했고, 본문은 하나님이 적군을 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마지막에 얻은 물건과 가축은 승리의 결과이지만, 승리의 근거는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15:14–16에서는 이스라엘이 바다를 건넌 사건을 듣고 주변 민족들이 두려워하는 모습이 묘사됩니다. 여호수아 2:9–11에서는 라합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들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역대하 14장에서도 하나님이 유다에게 승리를 주신 사건은 전투에 참여한 두 군대만이 아니라 주변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쉼과 싸움 사이에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그분의 뜻에 따라 자신의 삶을 정돈하는 일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그분 앞에서 사용하는 일이고, 자신의 한계가 드러나는 순간에도 그분께 도움을 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다고 해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인간이 성실하게 준비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불필요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장은 하나님을 잘 믿으면 반드시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나라가 강해지며,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보편적 공식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아사의 승리는 역대기 저자가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신앙의 관점에서 전하는 해석입니다. 또한 전쟁의 승리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지 판단하는 보편적인 기준으로 삼아서도 안 됩니다. 한쪽의 승리가 곧 그 편의 모든 선택이 옳았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유다의 군대가 빼앗은 많은 물건과 가축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백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마레사까지 진격했던 적은 물러갔고, 아사의 군대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돌아오는 길에는 수많은 양과 염소, 낙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따라 기억해야 할 것은 빼앗은 물건과 가축의 규모만이 아닙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스바다 골짜기에서, 아사는 자신이 가진 오십팔만 명의 병력을 앞세워 승리를 장담하지 않았습니다. 적에게 맞서 나가면서도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저희는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이 큰 군대에 맞서 나왔습니다.」
아사가 서 있던 곳은 자신이 준비한 군대의 맨 앞이었지만, 그가 의지한 분은 그 군대보다 크신 하나님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