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25장
이 장의 자리 · 24–25장 · 예루살렘의 마지막
무너진 뒤에도 남아 있는 것
열왕기하의 마지막 장은 예루살렘이 불타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불길 속에서 끝나지는 않습니다.
성전이 불타고, 왕궁이 무너지고, 성벽이 허물어집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두 눈을 잃고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남은 백성은 서로를 죽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집트로 떠납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저자는 시간을 약 이십육 년 뒤로 옮깁니다. 바벨론의 감옥에 갇혀 있던 또 다른 유다 왕 여호야긴이 풀려납니다. 그는 죄수 옷을 벗고, 왕 앞에서 날마다 음식을 먹게 됩니다.
왜 열왕기 저자는 이 작은 사건으로 긴 역사를 마무리했을까요?
열왕기하 25장은 무엇이 무너졌는지를 철저하게 보여 준 뒤, 그 무너진 자리에서 무엇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를 묻게 합니다.
성벽이 무너지기 전에 먼저 무너진 것
시드기야가 왕이 된 지 9년째 되던 해, 열째 달 10일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온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공격하러 왔습니다. 그는 성읍 앞에 진을 쳤고, 군사들은 성읍을 에워싸는 벽을 쌓았습니다.열왕기하 25:1 · 두루새김
앞 장은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에게 반역했다는 말로 끝났습니다. 이제 그 반역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어서 시드기야가 왕이 된 지 11년째 되는 해까지 포위가 계속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이 날짜들은 단순히 사건이 일어난 때를 알려 주기 위한 장식이 아닙니다. 오래 지속된 포위가 성읍 안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이해하게 합니다.
예루살렘은 성벽을 가진 도시였습니다. 성벽은 적군이 도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포위가 길어지자 그 성벽은 동시에 도시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밖에서 식량을 공급받기 어렵게 만드는 경계가 되었습니다.
성벽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는데도, 성벽 안의 사람들은 점점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9일에는 성읍의 굶주림이 심해져 백성에게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열왕기하 25:3 · 두루새김
본문이 전쟁의 전환점으로 제시하는 것은 적군의 돌격이나 왕의 군사적 결단이 아닙니다.
먹을 것이 없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성읍은 언제 무너졌는가?
성벽이 뚫리자 군사들은 모두 밤에 왕의 정원 곁에 있는 두 성벽 사이의 문으로 빠져나갔습니다. 갈대아 군대가 성읍을 에워싸고 있었지만, 왕은 아라바로 가는 길을 따라갔습니다.열왕기하 25:4 · 두루새김
예루살렘은 적군이 성 안으로 들어온 날 갑자기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성 안의 사람들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 긴 시간을 단 몇 구절로 압축합니다. 그러나 그 짧은 문장 속에서 전쟁의 결과를 가장 직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왕이 아니라 먹을 것을 잃은 백성이었습니다.
왕이 마지막으로 본 것
시드기야는 밤에 성읍을 빠져나갑니다.
왕의 정원 곁에 있는 두 성벽 사이의 문을 통과해 아라바로 향합니다. 왕이 밤에 도망쳤다는 것은 이미 예루살렘을 지키려는 마지막 군사적 저항마저 무너졌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갈대아 군대는 왕을 뒤쫓아 여리고 평원에서 따라잡았습니다. 왕의 군사들은 모두 왕을 떠나 흩어졌습니다.열왕기하 25:5 · 두루새김
다윗 왕조의 왕이 자기 나라에서 도망치다가 적군에게 붙잡힙니다.
그는 립라에 있는 느부갓네살에게 끌려갑니다. 왕이 붙잡힌 뒤에는 판결이 내려집니다.
그들은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가 보는 앞에서 잡아 죽였습니다.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의 두 눈을 멀게 하고 청동 족쇄를 채워 바벨론으로 데려갔습니다.열왕기하 25:7 · 두루새김
따라서 본문에 기록된 순서대로라면, 시드기야가 두 눈으로 마지막까지 목격한 사건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아들들은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죽이는 행위는 시드기야 개인을 처벌하는 동시에 그의 직계 후손을 통한 왕위 계승의 가능성까지 끊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다만 이것이 다윗 왕가의 모든 후손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앞 장에서 이미 여호야긴이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왕은 더 이상 자신의 발로 원하는 곳에 갈 수 없습니다. 볼 수도 없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바벨론이 정하는 곳으로 끌려가야 합니다.
왕의 권력을 철저하게 빼앗긴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지나친 상징적 해석은 조심해야 합니다. 시드기야가 눈먼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영적으로 눈먼 왕이었다고 단정하는 것만으로는 본문의 실제 사건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에게 일어난 일은 실제 폭력이었습니다.
이제 시드기야는 이야기에서 사라집니다.
저자는 그가 바벨론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왕의 마지막 장면이 지나가자, 서술의 시선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조금 더 깊이
아라바는 요단강 골짜기와 그 남쪽으로 이어지는 낮은 지대를 가리키는 지리적 명칭입니다. 이 사건은 예레미야 34:3의 경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는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지고, 바벨론 왕을 직접 마주하며, 바벨론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 12:13에는 예루살렘의 통치자가 바벨론으로 끌려가지만 그 땅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선언도 나옵니다. 시드기야의 눈이 멀게 된 사건은 이 말씀들과 연결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연결은 열왕기 저자가 사건을 직접 설명한 것은 아니지만,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말씀을 함께 읽을 때 더욱 선명해집니다.
하나님이 이름을 두신 집이 불타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성전과 왕궁을 불태웠습니다.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불태웠고, 큰 집들도 모두 태웠습니다.열왕기하 25:9 · 두루새김
열왕기상 6–8장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바치는 과정을 길게 기록했습니다. 성전의 규모와 재료, 내부 장식과 도구, 언약궤를 옮기는 일과 성전을 바치며 드린 기도가 자세히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지면을 들여 건축했던 성전의 파괴는 단 한 문장으로 기록됩니다.
성전은 예배의 중심이었고, 왕궁은 다윗 왕조의 통치를 상징했습니다. 바벨론은 그 둘을 함께 불태웠습니다.
하나님의 집과 왕의 집이 같은 운명을 맞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성전도 불탈 수 있는가?
열왕기상 9:3에서 여호와야훼는 솔로몬에게 그가 건축한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자신의 이름을 그곳에 두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같은 장의 6–9절에서는 왕과 백성이 여호와야훼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면 이스라엘이 땅에서 끊어지고, 성전도 버림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따라서 성전의 파괴는 하나님이 예상하지 못하신 사건이나, 바벨론이 하나님의 능력을 이겼다는 증거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왕기 전체의 흐름에서는 오래전에 경고된 심판이 현실이 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성전에 두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자신이 그 건물 안에 갇혀 계시다고 말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솔로몬 자신도 성전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 위에 사시겠습니까? 보십시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도 당신을 담지 못하는데, 하물며 제가 지은 이 집이겠습니까? (열왕기상 8:27의 의미)
성전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과 만나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약속하신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그 건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자유와 거룩함을 제한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들의 불순종을 보호해 주는 보증서처럼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성벽도 허물어지다
10절에서는 갈대아 군대가 예루살렘의 성벽을 허뭅니다. 성벽은 도시를 보호하는 경계였습니다. 그것이 사라졌다는 것은 예루살렘이 더 이상 독립적인 왕국의 수도로서 자신을 방어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제 사람들도 끌려갑니다.
11절은 성읍에 남아 있던 사람들뿐 아니라 이미 바벨론 왕에게 항복했던 사람들도 끌려갔다고 기록합니다. 항복했다고 해서 반드시 고향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은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사람들을 옮겼습니다.
반면 12절에서는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를 남겨 포도원을 돌보고 밭을 갈게 합니다. 이것은 바벨론이 정복한 지역의 생산을 유지하려 했다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사람들의 이후 생활이 얼마나 안전했는지,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남아 있다는 사실이 곧 이전의 삶이 계속된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살던 예루살렘은 더 이상 이전의 예루살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만들었던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다
성전이 이미 불탔는데도, 저자는 성전의 도구들을 다시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청동 기둥들, 받침대들, 「‘바다’라고 부르는 큰 청동 물통」, 솥과 삽과 등불 심지를 자르는 가위와 국자, 금과 은으로 된 도구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이 목록을 이해하려면 열왕기상 7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장에는 솔로몬이 성전을 위해 만들었던 청동 기둥과 큰 청동 물통과 받침대들, 여러 도구의 제작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왕기상 7장은 도구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열왕기하 25장은 그 도구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한쪽에서는 장인이 청동을 부어 기둥을 만들고, 기둥머리에 장식을 달고, 성전을 위한 도구들을 완성합니다. 다른 쪽에서는 갈대아 사람들이 그 기둥을 부수고, 청동을 가져가고, 금과 은의 도구들을 실어 갑니다.
건축과 해체가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기물들이 이름을 잃는 순간
그들은 솥과 삽과 등불 심지를 자르는 가위와 국자, 성전에서 일할 때 쓰던 모든 청동 도구를 가져갔습니다.열왕기하 25:14 · 두루새김
이 도구들은 원래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와 봉사의 일부였습니다. 각각의 용도가 있었고, 성전에서 예식을 치르는 질서 안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바벨론 사람들에게 그것들은 가져갈 수 있는 청동과 금과 은이 됩니다.
호위대장은 불씨를 담는 그릇과 대접들도 금으로 된 것이든 은으로 된 것이든 모두 가져갔습니다.열왕기하 25:15 · 두루새김
「금으로 된 것이든 은으로 된 것이든」이라는 표현은 도구들이 원래 어떤 의식에 사용되었는지보다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에 초점을 둡니다. 성전의 도구들이 이제 그 본래의 장소와 쓰임에서 떨어져 바벨론으로 옮겨집니다.
이것은 성전의 파괴가 단순히 건물 하나를 잃는 일이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 안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예배의 질서까지 무너지는 사건이었습니다.
무게를 헤아릴 수 없었던 청동
솔로몬이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위해 만든 두 기둥과 큰 물통 하나와 받침대들, 이 모든 기물에 쓰인 청동의 무게는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열왕기하 25:16 · 두루새김
열왕기상 7:47에서도 솔로몬이 청동 도구들이 너무 많아서 그 무게를 달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곳에서는 풍성함을 보여 주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25장에서는 같은 풍성함이 빼앗김의 규모를 드러냅니다.
기둥의 높이와 그물 장식과 석류 장식이 언급됩니다. 독자는 성전이 단순한 돌 건물이 아니라 오랜 정성과 기술로 만들어진 장소였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기둥이 부서집니다.
열왕기 저자는 성전의 건축을 자세히 기억했기 때문에, 그 파괴도 자세히 기록합니다.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귀했는지 알아야 그 상실의 무게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17절에 나오는 기둥머리의 높이는 두루새김에서 「3큐빗」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열왕기상 7:16과 예레미야 52:22에는 5큐빗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수치 차이는 본문이 전해진 과정이나 기둥의 어느 부분을 측정했는지에 관한 해석 문제를 남깁니다. 어느 한쪽이 왜 달라졌는지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제사장도, 관리도, 군 지휘관도 사라지다
이제 바벨론의 군대는 성전의 도구뿐 아니라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주요 인물들을 붙잡습니다.
제사장들의 우두머리 스라야와 그다음 지위의 제사장 스바냐, 성전 문지기 세 명이 먼저 언급됩니다. 그다음에는 군사들을 감독하던 환관과 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던 사람들, 백성을 군사로 뽑는 일을 맡은 군대의 기록 담당 관리, 그 밖의 백성 60명이 등장합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의 예배를 담당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왕궁의 관리들은 왕실과 국가의 행정을 담당했습니다. 군사 관계자들은 나라의 방어와 군대의 조직에 관여했습니다.
앞에서는 성전과 왕궁이 파괴되었습니다. 이제 그곳에서 맡은 일을 하던 사람들까지 붙잡힙니다.
건물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그 건물들을 중심으로 유지되던 제도와 지도 체계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바벨론 왕은 하맛 땅 립라에서 그들을 쳐 죽였습니다. 이렇게 유다 백성은 자기 땅에서 쫓겨나 끌려갔습니다.열왕기하 25:21 · 두루새김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한 뒤, 열왕기하 17:23은 이스라엘이 자기 땅에서 앗시리아로 끌려갔다고 기록했습니다. 이제 남왕국 유다에 대해서도 같은 종류의 결론이 내려집니다.
북왕국과 남왕국의 역사가 결국 고향에서 쫓겨나 끌려가는 사건에서 만난 것입니다.
땅을 떠났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사라졌다는 뜻인가?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에서는 유다 땅에 남겨진 백성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따라서 「유다 백성은 자기 땅에서 쫓겨나 끌려갔습니다」라는 말을 유다 사람이 단 한 명도 남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21절은 유다 왕국이 약속의 땅에서 독립적인 백성으로 살아가던 질서가 무너졌고, 많은 백성이 끌려갔다는 역사적 결론으로 읽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28:36과 64절은 언약에 불순종한 백성이 다른 민족 가운데 끌려가거나 흩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열왕기하 25장은 그 경고가 현실이 된 사건을 보여 줍니다. 신명기 30:1–5에는 흩어진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모으실 것이라는 약속도 들어 있습니다. 다만 열왕기하 25장은 아직 그들이 돌아오는 일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폐허 속에서도 살아갈 길이 있었지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유다 땅에 남겨 둔 백성을 다스리도록 그달리야를 세웠습니다. 그달리야는 아히감의 아들이며 사반의 손자였습니다.열왕기하 25:22 · 두루새김
시드기야가 붙잡혀 간 뒤 유다에는 더 이상 독립된 왕이 없습니다.
사반은 요시야 시대에 율법책을 왕 앞에서 읽었던 서기관이었습니다(열왕기하 22:8–10). 그의 아들 아히감은 요시야가 발견된 책에 관해 여호와야훼의 뜻을 물으려고 훌다에게 보냈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22:12–14). 예레미야 26:24에서는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보호하여 죽임당하지 않게 했다고 기록합니다.
율법책을 전달하고 예언자를 보호하는 일에 관여했던 집안에서, 이제 폐허 속에 남은 백성을 돌보는 사람이 나온 것입니다.
왕도 성전도 없는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달리야는 미스바로 모여 온 부대 지휘관들과 그들의 부하들에게 말합니다.
그달리야는 지휘관들과 부하들에게 맹세하며 말했습니다. 「갈대아 사람들의 부하들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 땅에 머물며 바벨론 왕을 섬기세요. 그러면 여러분이 잘될 거예요.」열왕기하 25:24 · 두루새김
여기서 「갈대아 사람들의 부하들을 두려워하지 마세요」라는 말은 바벨론의 지배 아래 놓인 백성을 안심시킵니다. 뒤따르는 「바벨론 왕을 섬기세요」라는 명령과 함께 살아갈 길을 제시합니다. 그달리야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생활을 이어 가는 일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왕국의 완전한 회복이 아닙니다.
유다에는 독립 왕국도 없고, 다윗 왕조의 통치도 없으며, 성전도 무너져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살고, 농사를 짓고, 공동체를 다시 세워 갈 여지는 남아 있었습니다. 그달리야의 제안은 그런 제한된 가능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마저 오래 유지되지 못합니다.
왕족이 마지막 남은 질서까지 무너뜨리다
일곱째 달에 왕족 이스마엘이 열 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는 느다니야의 아들이며 엘리사마의 손자였습니다. 그들은 그달리야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그와 함께 있던 유다 사람들과 갈대아 사람들도 죽였습니다.열왕기하 25:25 · 두루새김
그달리야를 죽인 이스마엘은 왕실과 연결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가 왜 그달리야를 죽였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관리의 암살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이 세운 통치자가 죽었고, 그와 함께 바벨론 관계자들까지 살해되었습니다. 이런 사건은 남아 있던 백성에게 새로운 위협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온 백성과 부대 지휘관들이 일어나 이집트로 갔습니다. 갈대아 사람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열왕기하 25:26 · 두루새김
여기서 「온 백성」이라는 표현은 피신한 집단 전체를 넓게 가리키는 말로 읽어야 합니다. 유다 땅의 모든 주민이 한 사람도 남김없이 이집트로 갔다고 단정할 근거는 아닙니다.
앞에서는 바벨론이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이제는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떠납니다. 떠나는 방식은 다르지만 결과는 비슷합니다.
고향을 잃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역사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장면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하의 마지막 장에서는 약속의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다시 이집트로 향합니다.
출애굽은 이집트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사건이었고, 여기서 유다 사람들은 바벨론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이집트로 피신합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문자 그대로 「출애굽이 완전히 취소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이야기 흐름 속에서 이 대조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건져 내시어 땅에 살게 하신 백성이 이제 그 땅을 떠나 이집트에서 피난처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달리야는 두려워하지 말고 땅에 머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 백성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땅을 떠났습니다. 그들이 처한 위험은 실제였지만, 열왕기가 보여 주는 결과는 그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던 삶의 터전까지 포기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땅에 남는 길이 사라지다
그달리야가 살아 있었다면 유다에 어떤 미래가 펼쳐졌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시점에서 나타났던 하나의 현실적인 가능성은 무너졌습니다.
땅에 남아서 살아가는 길입니다.
바벨론은 성전을 불태우고 왕을 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유다에 남은 사람들은 자기들 가운데서 다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외부의 정복이 무너뜨린 나라에서, 내부의 폭력이 남아 있던 공동체의 질서까지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몰락을 단순히 강대국의 군사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왕들과 백성이 서로를 어떻게 대했는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정의와 신실함을 어떻게 저버렸는가 하는 문제가 그 역사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마지막 네 구절을 위해 시간을 훌쩍 건너뜁니다.
그리고 독자를 예루살렘도, 미스바도 아닌 바벨론으로 데려갑니다.
조금 더 깊이
왕권을 되찾으려 했는지, 바벨론에 협력하는 통치를 거부했는지, 개인적인 정치적 야심을 가졌는지 열왕기하 25장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40:13–14에서는 암몬 왕 바알리스가 이스마엘을 보내 그달리야를 죽이려 한다는 경고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그달리야에게 전달된 음모에 관한 보고이며, 이스마엘 자신의 모든 동기를 직접 설명하는 말은 아닙니다. 예레미야 42–43장을 보면 이들은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물었지만, 땅에 머물라는 경고를 거부하고 이집트로 향합니다.
삼십칠 년 뒤, 감옥에서 나온 유다 왕
유다 왕 여호야긴이 끌려간 지 37년째 되던 해, 열두째 달 27일에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은 여호야긴을 감옥에서 풀어 주었습니다. 에윌므로닥이 왕이 된 해였습니다.열왕기하 25:27 · 두루새김
앞부분에서는 시드기야가 왕이 된 해를 기준으로 날짜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호야긴이 끌려간 지 얼마나 지났는지를 기준으로 날짜를 기록합니다. 유다에 왕국이 존재하지 않는 동안에도, 이야기는 여호야긴이 끌려간 뒤의 시간을 계속 헤아리고 있었던 셈입니다.
여호야긴은 열왕기하 24장에서 열여덟 살에 왕이 되어 석 달 만에 바벨론으로 끌려간 인물입니다. 그에게는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린 업적도 없고, 요시야처럼 대대적인 개혁을 이룬 기록도 없습니다.
그런데 열왕기 저자는 마지막에 바로 그를 다시 등장시킵니다.
시드기야가 아니라 여호야긴입니다.
그는 바벨론에 끌려갔지만 다윗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 저자는 그를 여전히 「유다 왕 여호야긴」이라고 부릅니다. 유다의 왕좌에는 다른 사람이 앉았고, 그 왕국마저 멸망했지만, 여호야긴이라는 인물은 완전히 잊히지 않았습니다.
죄수 옷을 벗다
여호야긴은 죄수 옷을 벗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늘 바벨론 왕 앞에서 식사했습니다.열왕기하 25:29 · 두루새김
여기에는 세상의 중심을 되찾았다는 선언도 없고, 다윗 왕조의 영광을 회복했다는 장엄한 묘사도 없습니다. 한 사람의 일상적인 처지가 달라졌다는 사실만 기록됩니다.
그는 여호야긴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바벨론에서 자기와 함께 지내던 다른 왕들보다 높은 자리를 주었습니다.열왕기하 25:28 · 두루새김
바벨론에는 유다의 왕뿐 아니라 다른 나라 출신의 왕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지배 아래 놓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여호야긴이 그들보다 높은 자리를 받았다는 것은 바벨론 궁정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여호야긴은 풀려났지만 여전히 바벨론에 있습니다.
그는 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예루살렘에서 다스리지 않습니다.
그의 삶은 나아졌지만 유다 왕국이 회복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 장면으로 끝나는가?
이 장면을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연결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7:12–16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통해 왕권을 세우시고 그의 집과 왕국을 굳게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25장에서는 다윗 왕조가 더 이상 예루살렘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직접 바벨론 왕에게 명령하셔서 여호야긴을 풀어 주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에윌므로닥이 왜 그를 풀어 주었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하나님이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완전히 이루신 장면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윗 왕조가 멸망한 뒤에도 다윗의 후손 한 사람이 살아 있고, 그가 「유다 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감옥에서 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열왕기 저자는 바로 그 사실을 마지막에 배치했습니다.
이것을 다윗과 맺으신 언약에 관련된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결말로 읽을 근거는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그 가능성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했는지, 구체적인 회복 계획을 알고 있었는지는 본문이 말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먹을 것이 없었고, 마지막에는 날마다 양식이 있었다
3절에서는 포위된 예루살렘의 백성에게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여호야긴은 평생 왕에게서 날마다 정해진 몫의 양식을 받았습니다.열왕기하 25:30 · 두루새김
처음에 굶주린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백성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양식을 받은 사람은 바벨론에 있는 여호야긴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장면이 앞부분의 굶주림과 공동체의 고통을 모두 해결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에는 「날마다」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여호야긴은 왕국을 되찾은 것이 아닙니다. 내일 당장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약속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루하루 살아갈 양식이 주어집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이 장에서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거나 어떤 행동을 하시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야훼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이라는 표현 속에 등장하지만,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는 새로운 선언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24장에서는 하나님이 여러 민족의 부대들을 보내시어 유다를 치게 하셨다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24:2). 그러나 25장에서는 느부갓네살과 그의 군대가 행동합니다. 성전을 불태우는 사람은 느부사라단이고, 제사장들을 죽이는 사람은 바벨론 왕입니다. 그달리야를 세우는 사람도 바벨론 왕이며, 여호야긴을 감옥에서 풀어 주는 사람도 바벨론 왕입니다.
앞선 장들에서 하나님은 이미 심판을 말씀하셨습니다. 25장은 그 말씀이 현실이 된 결과를 기록하는 장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 속에서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시고 계시는지를 새롭게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을 듣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독자는 여전히 그분이 하신 약속을 기억하게 됩니다.
성경 전체에서 이 결말이 갖는 의미
예레미야 52:31–34는 열왕기하 25:27–30과 거의 같은 장면으로 끝납니다. 끌려간 여호야긴이 감옥에서 풀려나고 바벨론 왕의 식탁에서 음식을 먹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비슷한 결말이 두 책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유다의 몰락을 기록하며 전해 온 이야기에서 이 사건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음을 보여 줍니다.
한편 예레미야 29:4–7에서는 이미 끌려간 사람들에게 집을 짓고, 가족을 이루고, 그들이 끌려간 성읍의 평안을 구하라는 말씀이 주어집니다. 이것은 낯선 땅에 끌려간 시간이 단순히 삶이 멈춘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음을 보여 줍니다.
신약과의 연결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신약의 마태복음 1:11–12는 바벨론에 끌려간 일과 여고냐, 곧 여호야긴의 계보를 언급합니다. 이것은 다윗의 후손에 관한 계보가 바벨론에 끌려간 뒤에도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다만 마태복음이 열왕기하 25장에서 여호야긴이 풀려나는 장면을 직접 인용하거나, 에윌므로닥의 행동을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는 모습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본문의 연결은 다윗 왕조의 계보가 바벨론에 끌려가 역사가 끊어지는 듯한 일을 겪고도 이어진다는 성경 전체의 주제에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27절의 원문에서는 「머리를 들어 올리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관용 표현, 나사 에트 로쉬 계열의 말을 씁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의 뜻을 「여호야긴을 감옥에서 풀어 주었습니다」로 옮겼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힌 이집트 왕의 술 맡은 사람과 빵 굽는 사람의 꿈을 해석하면서, 사흘 뒤 파라오가 그들의 머리를 들어 올릴 것이라고 말합니다(창세기 40:13, 19). 술 맡은 사람은 원래의 일로 돌아가고, 빵 굽는 사람은 처형됩니다. 따라서 원문의 「머리를 들어 올리다」라는 표현 자체가 언제나 죄를 용서하거나 지위를 되찾아 준다는 뜻은 아닙니다. 앞뒤 내용에 따라 왕이 어떤 사람의 처지를 새롭게 결정하는 행동과 연결됩니다. 여호야긴은 감옥에서 풀려나고, 다른 왕들보다 높은 자리를 받으며, 왕 앞에서 식사하게 됩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그의 처지가 회복되는 것을 뜻합니다.
맺음 — 마지막에 남은 것은 하루의 양식이었다
열왕기가 마지막에 보여 주는 것은 완성된 회복이 아니라, 완전한 상실만으로 끝나지 않은 한 사람의 삶입니다. 때로 사람은 자신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한 번에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이미 일어난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열왕기는 유다의 멸망을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경고하신 심판으로 이해하지만, 그 사건을 겪은 사람 한 명 한 명의 책임과 고통의 의미를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습니다. 어떤 공동체가 재앙을 겪었다고 해서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고통을 겪는다고 해서 그 고통이 특정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열왕기하 25장은 유다의 역사에 선포된 심판을 기록합니다. 그것을 모든 시대의 고통을 판단하는 단순한 공식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기도했는지, 고향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바벨론 왕 앞에서 식사했고, 평생 날마다 정해진 몫의 양식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처음에는 예루살렘에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에는 끌려간 왕에게 날마다 양식이 있었습니다.
그 작은 차이가 유다의 모든 고통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열왕기 저자는 그 차이를 마지막에 남겨 둡니다.
열왕기는 나라가 회복되었다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라를 잃은 왕이 더 이상 죄수의 옷을 입지 않고, 날마다 음식을 먹게 되었다는 말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