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24장
이 장의 자리 · 24–25장 · 예루살렘의 마지막
아직 선 성읍, 이미 무너지는 나라
나라가 멸망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적군이 성벽을 무너뜨릴 때일까요, 왕이 포로로 끌려갈 때일까요, 아니면 더 이상 자기 나라의 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게 될 때일까요?
열왕기하 24장에서 예루살렘은 아직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성전도 서 있고, 다윗의 후손도 왕좌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다 왕국을 지탱하던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 저자는 이 모든 일을 단순히 강대국에 패배한 약소국의 역사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다른 나라에 정복당하는 일을 허락하셨을까요? 왜 유다가 당한 재앙을 설명하면서 오래전에 죽은 므낫세의 죄를 다시 언급하실까요?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끌려가는 가운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열왕기하 24장은 나라의 몰락을 기록하면서, 그 몰락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심판하시는지 드러냅니다.
왕은 바벨론을 배반했지만, 유다는 하나님을 배반해 왔다
여호야김이 다스리던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쳐들어왔습니다. 여호야김은 3년 동안 그를 섬기다가 돌아서서 반기를 들었습니다.열왕기하 24:1 · 두루새김
불과 한 장 전에는 이집트 왕 느고가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제 여호야김은 바벨론 왕을 섬기고 있습니다.
앗시리아 제국이 쇠퇴한 뒤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충돌했습니다. 예레미야 46:2에는 여호야김 제4년에 느부갓네살이 유프라테스강 부근 갈그미스에서 이집트 군대를 무찌른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승리는 유다가 속한 지역의 세력 균형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호야김이 바벨론 왕을 「섬기다가」라는 말은 개인적으로 노예가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벨론의 지배권을 인정하고 그 아래에 놓인 나라의 왕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는 3년이 지난 뒤 반기를 듭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갈대아 부대와 아람 부대와 모압 부대와 암몬 사람들의 부대를 보내 여호야김을 공격하게 하셨습니다. 유다를 멸망시키려고 그 부대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자기 종들인 예언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대로였습니다.열왕기하 24:2 · 두루새김
독자가 예상한 주어는 느부갓네살일 것입니다.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으니 바벨론이 군대를 보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여호와야훼께서는」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건은 바벨론과 주변 민족들의 군사 행동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 사건을 유다에 대해 이미 선포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합니다.
열왕기하 21:10–15에서 하나님은 므낫세가 저지른 악과 유다의 불순종 때문에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23:27에서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내쫓으신 것처럼 유다도 내쫓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래전부터 경고되어 온 심판이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본문이 바벨론의 공격을 하나님의 심판과 연결한다고 해서, 바벨론이 저지르는 모든 폭력이 자동으로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제국을 자신의 심판에 사용하신다는 서술과, 그 제국의 모든 행동을 옳다고 평가하신다는 주장은 다릅니다. 예레미야 25:8–14는 느부갓네살을 통한 유다의 심판을 말하면서도, 훗날 바벨론 역시 심판받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강대국도 하나님의 판단 바깥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그가 왜 반기를 들었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이집트의 지원을 기대했을 수도 있고, 바벨론의 군사적 어려움을 기회로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정치적 계산을 설명하지 않으므로 어느 하나를 확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흘려진 피를 잊지 않으신다
이스라엘의 율법에서 죄 없는 사람의 피를 흘리는 일은 개인 사이의 범죄로 끝나지 않습니다.
민수기 35:33은 죄 없는 사람의 피를 흘리는 일이 그 땅을 더럽힌다고 말합니다. 신명기 19:10은 죄 없는 사람의 피가 흘려지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 피에 대한 책임이 공동체에 돌아올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살인은 피해자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신 정의를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분명히 이 일은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 유다에 일어났습니다. 므낫세가 저지른 온갖 죄 때문에 유다를 자기 앞에서 쫓아내려는 것이었습니다.열왕기하 24:3 · 두루새김
므낫세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습니다. 그 후에 요시야라는 뛰어난 왕이 나와 우상들을 제거하고 언약을 새롭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유다는 여전히 므낫세의 죄 때문에 심판을 받습니까?
므낫세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인 일도 그 이유였습니다. 그는 죄 없는 사람들의 피로 예루살렘을 가득 채웠고, 여호와야훼께서는 용서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열왕기하 24:4 · 두루새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성전의 도시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그 도시가 죄 없는 사람들의 피로 가득 차 있다고 묘사합니다.
성전은 거룩한 곳이지만, 성전이 있는 도시는 폭력으로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건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곳에서 저질러진 불의를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두신 도시라는 이유로 죄 없는 사람들의 죽음이 무시되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용서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라는 말은 매우 무겁습니다.
능력이 없어서 용서하지 못하셨다는 말이 아니라, 용서하지 않기로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하나님이 어떤 개인의 회개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는 보편적인 선언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문맥에서 다루는 것은 유다라는 공동체에 선포된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단순히 후손들이 조상의 잘못에 대해 개인적인 형벌을 받는다는 공식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열왕기는 므낫세의 악행이 백성 전체를 죄로 이끌었다고 기록하며(21:9), 그 이후의 왕들 역시 악을 행했다고 평가합니다(23:32, 37; 24:9, 19).
실제로 예레미야 26:20–23에는 여호야김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던 우리야를 죽인 사건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므낫세 시대의 폭력이 이후에도 다른 형태로 계속되었음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사례입니다.
그렇다고 유다의 모든 사람이 똑같은 죄를 지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장은 각 개인의 죄에 대한 책임을 일일이 판정하지 않습니다. 나라 전체가 겪는 재앙과 개인의 책임을 구별해서 읽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죄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유다의 역사에서 지워진 사건으로 취급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왕이 죽었다고, 세월이 흘렀다고, 종교개혁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피가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전과 왕권을 소중하게 여기시지만, 그보다 죄 없는 생명을 가볍게 여기시는 분은 아닙니다.
이집트가 물러나고, 여호야긴이 왕이 되다
여호야김의 죽음은 매우 간결하게 처리됩니다.
「여호야김이 죽자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그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왕의 장례를 자세히 서술하지도 않고, 왕위 계승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7절은 유다가 놓인 국제 정세를 설명합니다.
이집트 왕은 더 이상 자기 나라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왕이 이집트 시내라는 물줄기에서 유프라테스강까지, 이집트 왕에게 속했던 모든 땅을 빼앗았기 때문입니다.열왕기하 24:7 · 두루새김
앞서 이집트 왕은 유다의 왕을 세우고 벌금을 부과할 만큼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집트는 그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잃었고, 바벨론이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장했습니다.
유다의 왕은 바뀌었지만, 유다를 둘러싼 국제 질서는 더욱 불리해졌습니다.
여호야긴은 열여덟 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예루살렘 출신 엘나단의 딸 느후스다였습니다.열왕기하 24:8 · 두루새김
독자는 앞 장에서 또 한 명의 왕이 석 달 동안 다스렸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였습니다(23:31). 여호아하스는 이집트 왕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났고, 여호야긴은 바벨론 왕에게 붙잡힙니다.
이전에는 왕이 몇 살에 왕이 되고 몇 해를 다스렸다는 일정한 기록 방식이 왕조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기록이 등장할 때마다 독자는 이 왕이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권력을 잃을 것인지를 보게 됩니다.
왕조는 아직 이어지고 있지만, 왕권은 점점 껍데기만 남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습니다.열왕기하 24:9 · 두루새김
여호야긴이 석 달 동안 구체적으로 어떤 악한 일을 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열왕기 저자는 그가 아버지 여호야김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평가합니다.
정치적 위기가 닥쳤지만, 왕의 신앙적 방향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옵니다.
왕이 성 밖으로 나가다 — 예루살렘의 첫 번째 함락
본문은 바벨론의 공격을 두 단계로 서술합니다.
먼저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합니다. 이어 느부갓네살 자신이 성읍에 도착합니다.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예상보다 조용합니다.
유다 왕 여호야긴은 어머니와 신하들과 고위 관리들과 환관들을 데리고 바벨론 왕에게 나가 항복했습니다. 바벨론 왕은 여호야긴을 붙잡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왕이 된 지 8년째였습니다.열왕기하 24:12 · 두루새김
여기에는 치열한 성벽 전투나 대규모 저항의 묘사가 없습니다. 이것은 왕 개인의 체포를 넘어 왕실과 궁정의 핵심 인물들이 바벨론의 지배 아래 놓이는 장면입니다.
왕의 어머니가 언급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여호야긴이 왕이 된 일을 기록할 때 이미 어머니 느후스다의 이름이 소개되었습니다(24:8). 12절에서는 그녀가 왕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가고, 15절에서는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왕의 어머니는 왕실의 일원으로서 정치적 의미를 가진 인물이었으며, 그녀의 이동은 왕실 전체가 겪는 몰락을 보여 줍니다.
왕이 붙잡힌 뒤, 예루살렘에서 무엇이 사라졌습니까?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은 왕이 바벨론 왕에게 나간 행동을 「나가 항복했습니다」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왕이 어떤 조건으로 나갔는지, 어떤 협상이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바빌로니아 연대기」(BM 21946) 뒷면 11–13행은 느부갓네살 제7년에 바벨론 군대가 유다의 성읍을 포위하고 점령했으며, 왕을 붙잡고 자신이 선택한 다른 왕을 세운 뒤 많은 조공을 바벨론으로 가져갔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597년의 예루살렘 함락으로 이해됩니다. 흥미롭게도 열왕기하 24:12는 느부갓네살이 왕이 된 지 8년째라고 기록하는 반면, 바빌로니아 연대기는 제7년이라고 기록합니다. 두 기록의 차이는 왕의 통치 연도를 세는 기준이나 연도의 시작 시점 차이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다만 두 문헌 자체가 그 계산법의 차이를 직접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성전의 금 물품에서 사람들까지 — 나라를 비워 내다
바벨론 왕은 여호와야훼의 성전과 왕궁에 있는 보물을 모두 꺼내 갔습니다. 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만들어 둔 금으로 된 물품을 모두 잘라 버렸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였습니다.열왕기하 24:13 · 두루새김
본문은 두 장소를 나란히 언급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성전」과 「왕궁」입니다. 하나는 유다의 예배 중심이고, 다른 하나는 왕권의 중심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그 안에서 사용할 금으로 된 물품들을 만들었습니다(열왕기상 7:48–50). 그 물품들은 단순한 귀금속이 아니라 성전의 오랜 역사와 연결된 물건들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정성스럽게 만든 물건들이 바벨론 왕에게는 가져갈 수 있는 재물이 됩니다.
히스기야 왕이 바벨론에서 온 사절들에게 왕궁의 보물과 무기고와 자신의 재산을 모두 보여 준 일이 있었습니다(20:12–13). 그때 이사야는 장차 왕궁에 있는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왕의 후손들 가운데도 끌려갈 사람들이 생길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20:16–18).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였습니다」라는 짧은 설명이 여러 세대에 걸친 두 사건을 연결합니다.
왕궁의 보물도, 성전의 금으로 된 물품도,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언하신 나라를 구해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보물보다 더 심각한 것이 사라진다
14절에서 이야기는 물건에서 사람으로 옮겨 갑니다.
그는 예루살렘 주민들과 고위 관리들과 용사들을 모두 끌고 갔는데, 끌려간 사람은 1만 명이었습니다. 기술자들과 대장장이들도 모두 끌고 가서, 그 땅에는 가난한 백성만 남았습니다.열왕기하 24:14 · 두루새김
고위 관리들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었고, 군사들은 나라를 방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술자와 대장장이들은 무기와 도구를 만들고 건축과 생산을 맡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벨론은 단지 유다의 재물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나라를 운영하고 방어하는 데 중요한 사람들까지 가져갔습니다.
왕실과 지도자들은 먼 나라로 끌려갑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고향에 남습니다. 그러나 남았다는 것이 곧 평안과 안전을 의미하는지는 이 장에서 알 수 없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이 어느 죄에 직접 참여했는지 본문이 전혀 설명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족과 기술자와 군사들도 나라의 몰락 속에서 삶의 자리를 잃습니다. 한 나라의 불순종과 폭력의 역사가 가져온 재앙은 그 나라를 구성하는 수많은 사람의 실제 삶을 무너뜨립니다.
이것이 유배라는 사건의 무게입니다.
땅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셨고, 이집트에서 건져 내신 백성이 마침내 들어가 살게 된 땅이었습니다. 창세기 15:18–21과 신명기 6:10–12는 그 땅을 하나님의 약속과 선물이라는 관점에서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제 유다의 왕과 백성 상당수가 그 땅에서 끌려 나갑니다.
신명기 28:36은 언약을 어기는 백성이 왕과 함께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려갈 수 있다고 경고했고, 28:64는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지는 일을 언급했습니다. 열왕기하 24장의 유배는 이런 언약의 경고와 연결됩니다.
출애굽의 이야기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종살이를 벗어나 약속의 땅으로 향했습니다. 열왕기하 24장에서는 그 백성이 다시 다른 제국의 권력 아래 놓이고, 일부는 먼 나라로 끌려갑니다.
역사의 방향이 뒤집히는 듯한 장면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잊으셨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자는 하나님이 이전부터 하신 말씀을 이루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이 장이 제시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역설입니다.
조금 더 깊이
14절의 「예루살렘 주민들과 고위 관리들과 용사들을 모두 끌고 갔는데」라는 표현도 수학적으로 모든 주민이 끌려갔다는 뜻으로 읽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구절이 「그 땅에는 가난한 백성만 남았습니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지도층과 군사력,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대규모로 빠져나간 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빼앗긴 왕 — 시드기야의 즉위
바벨론 왕은 여호야긴의 삼촌 맛다니야를 여호야긴 대신 왕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꾸었습니다.열왕기하 24:17 · 두루새김
맛다니야는 요시야의 아들로서 여호야긴의 삼촌이었습니다. 따라서 다윗 왕가의 혈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왕권의 실제 모습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앞 장에서 이집트 왕 느고가 엘리아김을 여호야김으로 바꾸었던 사건이 반복되는 것입니다(23:34). 이러한 이름 변경은 고대에 다른 나라의 지배 아래 놓인 관계를 드러내는 정치적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가 왕을 세우고 그의 지위를 인정하는지 분명하게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시드기야라는 이름에는 하나님의 의로움과 관련된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름을 받은 왕에 대해 저자는 바로 다음에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는 여호야김이 했던 것처럼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습니다.열왕기하 24:19 · 두루새김
이름에는 하나님의 의로움이 담겨 있지만, 그의 행실은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입니다. 열왕기에서 왕의 이름이나 왕조의 혈통보다 반복해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어떻게 행동했는가 하는 평가입니다.
시드기야도 그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는 스물한 살에 왕이 되어 11년 동안 다스립니다. 그의 통치는 여호야긴의 석 달보다 훨씬 길었습니다. 그러나 긴 통치가 더 나은 평가를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사무엘하 7:12–16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통해 왕위를 세우시고 그의 왕국을 굳건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 왕조는 역사적으로 극심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24장은 아직 언약의 미래에 관한 완결된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약속과, 다윗 왕조가 실제로 겪는 몰락 사이의 간격을 독자에게 보여 줍니다. 열왕기는 오히려 왕국이 무너지는 과정에서도 하나님이 이전에 선포하신 말씀을 이루고 계신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왕조의 불순종을 심판하시면서도 자신이 하신 약속을 앞으로 어떻게 이루실 것입니까?
이 질문은 열왕기 이야기가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중요한 물음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드기야도 여호야김과 같은 선택을 합니다.
다시 반역하다 — 끝나지 않은 이야기
예루살렘과 유다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여호와야훼의 분노 때문이었고, 결국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내쫓으셨습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 왕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열왕기하 24:20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열왕기하 24장의 결말이면서 다음 사건의 출발점입니다.
앞부분에서는 유다를 하나님 앞에서 「쫓아내려는」 일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24:3). 마지막에서는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 앞에서 내쫓으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을 단순히 하나님이 유다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감정적 선언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열왕기 전체의 문맥에서 이는 하나님이 주신 땅과 성전,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누리던 언약의 지위에 대한 심판을 나타냅니다. 열왕기하 17:18에서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다고 말합니다. 이제 남왕국 유다도 같은 길로 향합니다.
처음에도 반기를 드는 일이 있었고, 마지막에도 반기를 드는 일이 있습니다.
여호야김은 바벨론 왕을 3년 동안 섬기다가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아들의 유배, 성전과 왕궁의 약탈, 새로운 왕이 세워지는 일을 거친 뒤 시드기야가 또다시 반기를 듭니다.
유다는 새로운 왕을 얻었지만, 이전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렇다면 시드기야는 왜 반기를 들었을까요? 이 장만으로는 그 이유를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27:12–15에서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면 살 수 있다고 전합니다. 반면 바벨론을 섬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거짓이라고 경고합니다. 따라서 시드기야의 반역은 단순한 국제정치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시대의 외세에 대한 저항을 불순종이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예레미야의 명령은 유다의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선포된 말씀이었습니다.
맺음 — 왕은 있지만, 왕을 세우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성전이 아직 서 있고 왕궁에 사람이 살고 있어도, 나라는 이미 중요한 것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이야기에서는 더 근본적인 것이 오래전부터 무너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삶, 죄 없는 생명을 보호하는 정의, 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권력을 책임 있게 사용하는 태도가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모든 사건을 하나님이 사람들의 고통을 즐기시거나 죄 없는 사람들의 희생을 원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을 설명하지만, 그 심판 속에 포함된 모든 개인의 고통이 왜 허용되었는지 하나하나 해명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선택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 선택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까지 손쉽게 죄에 대한 마땅한 벌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왕국의 이름은 남아 있고, 왕좌에도 다윗의 후손이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자리에 누가 앉을 것인지는 바벨론이 결정합니다.
예루살렘은 여전히 예루살렘이지만, 이전의 예루살렘과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서 그 왕이 다시 바벨론에 반기를 듭니다.
왕좌는 남아 있었지만 왕국의 자유는 사라졌고, 성전은 남아 있었지만 그 보물은 빼앗겼습니다.
열왕기하 24장은 그렇게 아직 무너지지 않은 성읍 안에, 이미 무너져 가는 나라를 남겨 둔 채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