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23장
이 장의 자리 · 18–23장 · 홀로 남은 유다
철저한 개혁과 바뀌지 않은 운명
요시야만큼 철저하게 개혁한 왕이 또 있었을까요?
이 장의 가장 큰 역설은 개혁이 실패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개혁은 실제로 이루어졌고, 왕은 최고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심판은 거두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열왕기하 23장은 단순한 종교개혁의 성공담도, 결국 아무 소용 없었다는 허무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 장은 한 왕의 온전한 돌이킴이 무엇을 이룰 수 있었는지, 또 무엇까지 되돌릴 수는 없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왕궁이 아니라 온 백성이 모인 성전에서 시작합니다.
왕 혼자 들었던 말씀을 온 백성이 듣다
앞 장에서 요시야는 율법책의 말을 듣고 옷을 찢었으며, 예언자 훌다를 통해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들었습니다. 이제 그는 그 말씀을 자신만 알고 있지 않기로 합니다.
왕은 여호와야훼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유다의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 제사장들과 예언자들,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온 백성이 함께 갔습니다. 왕은 성전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을 그들이 듣도록 읽었습니다.열왕기하 23:2 · 두루새김
장로들은 공동체의 지도자였고,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종교적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는 자리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왕이나 제사장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백성에게 자신이 내린 개혁 명령부터 발표하지 않습니다. 먼저 발견된 언약책의 모든 말을 그들이 듣도록 읽습니다.
왕의 뜻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앞섭니다.
이 순서는 시나이에서 이스라엘이 언약을 맺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출애굽기 24:7에서 모세는 언약책을 가져다가 백성이 듣도록 읽었고, 백성은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것을 따르겠다고 응답했습니다. 요시야가 지금 하는 일도 그와 닮았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언약을 다시 듣고, 그 언약에 따라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왕은 기둥 곁에 서서 여호와야훼 앞에서 언약을 맺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온 생명을 다해 여호와야훼를 따르며, 그분의 명령과 가르침과 규정을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을 실천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온 백성도 그 언약에 참여했습니다.열왕기하 23:3 · 두루새김
이 장면은 열왕기하 11:14에서 어린 요아스가 왕으로 세워질 때 기둥 곁에 서 있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기둥은 왕권과 관련된 공식적인 장소로 등장합니다. 여기서는 왕으로서의 권위를 가진 요시야가 그 자리에 서서 여호와야훼 앞에 자신을 세웁니다.
「마음을 다하고 온 생명을 다해」라는 표현은 신명기 6:5의 명령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은 의식 몇 가지를 지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음과 온 생명을 다해 그분을 따르는 관계입니다.
본문은 온 백성이 언약에 참여했다고 말할 뿐, 각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깊이 변화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왕과 백성이 함께 언약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약을 선언하는 일과, 그 언약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게 하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요시야는 이제 그 언약에 따라 실제 행동을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예레미야 31:31–34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유다 집안에 새 언약을 세우시고, 그들의 마음에 자신의 가르침을 기록하실 것이라는 약속이 나타납니다. 이것을 열왕기하 23장의 직접적인 예언이나 해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요시야는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에 따라 살아가도록 힘썼습니다. 예레미야의 새 언약 약속은 하나님이 자신의 가르침을 사람들의 마음 안에 새기실 미래를 바라봅니다. 신약의 히브리서 8:8–12는 예레미야의 새 언약 약속을 직접 인용하지만, 열왕기하 23장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본문의 관계는 언약과 마음의 변화라는 주제를 통해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가장 먼저 청소해야 했던 곳은 성전이었다
요시야의 첫 번째 개혁 대상은 놀랍게도 성전 내부입니다.
왕은 대제사장 힐기야와 그다음 지위의 제사장들, 성전 문지기들에게 명령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와 해와 달과 하늘의 모든 별을 위해 만든 물품을 모두 여호와야훼의 성전에서 꺼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왕은 그것들을 예루살렘 밖 기드론 들판에서 불태우고, 남은 가루를 벧엘로 가져갔습니다.열왕기하 23:4 · 두루새김
왜 여호와야훼의 성전 안에 바알과 아세라와 해와 달과 하늘의 모든 별을 섬기는 물품들이 있었을까요?
그것은 유다의 우상숭배가 성전 밖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므낫세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아세라 상을 세웠고, 성전의 두 뜰에 하늘의 별들을 위한 제단들을 만들었습니다(21:5–7).
요시야는 우상숭배를 다른 민족이나 변두리 지역의 문제로만 취급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공동체의 중심부부터 바로잡습니다.
성전의 이름이 거룩하다고 해서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까지 저절로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세라 상은 기드론 골짜기에서 불태운 다음 가루로 빻아 백성의 무덤에 뿌립니다. 불태우고, 부수고, 가루로 만드는 행동이 반복됩니다. 우상은 다른 장소로 옮겨 보관하거나 언젠가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남겨 두지 않습니다. 그것이 섬김의 대상이 되지 못하도록 완전히 없앱니다.
또한 무덤과 사람의 뼈를 사용하는 행동은 고대 이스라엘이 정결함을 이해하던 방식과 관계가 있습니다. 민수기 19:11–16에 따르면 죽은 사람의 시신이나 뼈에 닿는 일은 종교적으로 부정한 상태가 되게 합니다. 요시야는 이런 생각을 이용해 제단과 우상숭배 장소가 더 이상 거룩한 용도로 사용될 수 없게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시설을 허무는 일이 아니라, 그 장소가 지녀 왔던 종교적 권위를 무너뜨리는 행위였습니다.
7절에는 성전 안에 있던 몸을 파는 남자들의 집들과 아세라를 위해 여자들이 짜던 천막들도 등장합니다. 요시야는 우상 하나만 없앤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던 물품과 시설, 활동까지 중단시켰습니다.
이제 개혁은 성전의 경계를 넘어 유다 전역으로 확장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두루새김이 「몸을 파는 남자들」로 옮긴 히브리어 케데쉼은 특정 성소에 속한 남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성적 행위에 종사했는지, 다른 형태의 성소 봉사를 맡았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여자들이 짜던 물건도 천막이나 덮개 같은 직물로 이해될 수 있지만 정확한 용도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세라와 관련된 활동이 성전 공간 안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산당을 없앤다는 것은 무엇을 바꾸는 일이었을까?
요시야는 유다의 성읍들에 있던 제사장들을 불러 모으고, 게바에서 브엘세바까지 산당들을 더럽혀 제사에 쓰지 못하게 합니다.
게바와 브엘세바는 유다의 북쪽과 남쪽을 가리키는 지명입니다. 이 표현은 개혁이 예루살렘 주변에 머물지 않고 유다 전역을 대상으로 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산당은 반드시 높은 산꼭대기에만 있는 장소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성읍 안팎에 마련된 지역 제사 장소들도 포함합니다. 열왕기상 3:2–4에는 솔로몬이 기브온의 산당에서 제물을 바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성전이 세워지지 않았다는 설명도 함께 나옵니다.
그러나 신명기 12:5–14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하신 장소에서 제물을 바쳐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지역마다 마음대로 제단을 세우고 제사를 드리는 관행을 제한한 것입니다.
열왕기 저자는 왕들을 평가할 때 이 문제를 반복해서 다룹니다. 여호와야훼를 섬긴 왕이라도 산당을 없애지 않았다면 그것을 아쉬운 점으로 기록합니다(열왕기하 12:3; 14:4; 15:4).
따라서 요시야가 산당을 없앤 데에는 두 가지 목적이 함께 있습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는 장소를 없애는 일과,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제사가 언약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바로잡는 일입니다.
그러나 산당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야훼의 제단에 제사를 드리러 올라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동료 제사장들과 함께 누룩 없는 빵을 먹었습니다.열왕기하 23:9 · 두루새김
산당에서 활동하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으로 옮겨졌지만, 여호와야훼의 제단에서 제사장 일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제사장 공동체의 생활에서 완전히 밀려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왜 이들이 제단에서 봉사하는 일이 제한되었는지는 본문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전에 드렸던 제사의 문제 때문인지, 예루살렘 제사장들과 맡은 일을 구별했기 때문인지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어디서 제사를 드릴 것인지, 누가 제사장 일을 맡을 것인지까지 바뀌고 있었습니다.
개혁은 종교적 생활의 틀 자체를 새롭게 짜는 일이었습니다.
도벳을 더럽힌 이유
그는 벤힌놈 골짜기에 있는 도벳을 더럽혔습니다. 누구도 몰렉에게 바치려고 자기 아들이나 딸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열왕기하 23:10 · 두루새김
레위기 18:21은 몰렉에게 자녀를 넘겨주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예레미야 7:31은 힌놈 골짜기의 도벳에서 아들딸들을 불사르는 일을 강하게 꾸짖습니다. 이런 본문들을 함께 읽으면, 요시야가 중단시키려 했던 행위가 단순한 상징적 의식을 넘어 자녀의 생명을 해치는 제사와 관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관심은 잘못된 제사 장소를 과거의 흔적으로 남기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던 행위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막는 데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단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사람들의 몸과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시야의 개혁에는 예배 대상뿐 아니라 예배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던 일들의 중단도 포함되었습니다.
솔로몬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개혁
왕은 예루살렘 맞은편, 멸망의 산 남쪽에 있던 산당들을 더럽혔습니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들의 혐오스러운 신 아스도렛과 모압의 혐오스러운 신 그모스와 암몬 사람들의 역겨운 신 밀곰을 위해 세운 산당들이었습니다.열왕기하 23:13 · 두루새김
열왕기상 11:4–8은 솔로몬이 말년에 다른 신들을 따르고 그 신들을 위한 산당을 세웠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최근에 생겨난 잘못만 고친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왕의 이름과 오래된 전통에 기대어 유지되어 온 제사 장소들까지 없앴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세운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왕이 세운 다른 신들을 위한 산당들이 훗날 개혁의 대상이 됩니다.
성전을 세운 업적이 있다고 해서 그가 행한 모든 일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시야는 누가 시작한 관습인가보다, 그 관습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맞는가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요시야는 이제 유다의 역사보다 더 먼 곳으로 나아갑니다. 이미 멸망한 북왕국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지로 향하는 것입니다.
벧엘의 제단 — 오래전에 선포된 말씀이 이루어지다
벧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특별한 장소입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 땅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창세기 28:16–19). 그런데 훗날 여로보암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서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새로운 제사 제도를 마련했습니다(열왕기상 12:28–33).
여로보암은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계속 올라가면 마음이 유다 왕에게 돌아갈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북왕국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예배의 장소와 방식을 새롭게 정했습니다. 이후 북왕국 왕들에 대한 평가에는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죄짓게 했다는 말이 거듭 등장합니다.
그런데 요시야가 바로 그 벧엘의 제단을 무너뜨립니다.
그는 벧엘에 있던 제단과 산당도 허물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세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산당을 불태우고 가루로 빻았으며, 아세라 상도 불태웠습니다.열왕기하 23:15 · 두루새김
열왕기의 이야기 속에서 벧엘의 제단은 북왕국이 처음부터 잘못 들어선 길을 상징하는 장소였습니다. 요시야는 그 시작점까지 거슬러 올라가 제단을 없앱니다.
요시야의 이름은 이미 그곳에서 불렸다
요시야는 몸을 돌려 그곳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보내 무덤에서 뼈를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태워 그 제단을 더럽혔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이 일들에 관해 선포한 여호와야훼의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열왕기하 23:16 · 두루새김
여로보암이 벧엘의 제단에서 제물을 바치고 있을 때,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그 제단을 향해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열왕기상 13:2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다윗 집안에서 요시야라는 아들이 태어나 벧엘의 제단을 더럽힐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열왕기하 23장은 그 선언과 요시야의 행동을 직접 연결합니다.
이렇게 해서 열왕기상 12–13장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열왕기하 23장에서 하나의 결말을 맞습니다.
여로보암이 세운 제단은 여러 왕의 통치와 북왕국의 멸망을 거치면서도 역사에 남아 있었지만, 결국 그 제단에 대해 선포되었던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언제나 선포된 즉시 눈에 보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열왕기의 서술은 그 말씀이 잊히거나 힘을 잃은 것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왕조가 바뀌고 세대가 지나도,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남아 있습니다.
무덤 하나를 남겨 두다
요시야가 물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무덤 표지는 무엇이냐?」 성읍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의 무덤입니다. 그분은 왕께서 벧엘의 제단에 하신 이 일들을 미리 선포했습니다.」열왕기하 23:17 · 두루새김
요시야가 말했습니다. 「그대로 두어라. 아무도 그 사람의 뼈를 건드리지 마라.」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예언자의 뼈를 함께 그대로 두었습니다.열왕기하 23:18 · 두루새김
다른 무덤에서 가져온 뼈들은 제단을 더럽히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선포했던 하나님의 사람의 뼈는 그대로 둡니다.
열왕기상 13:29–32에는 그 하나님의 사람이 죽은 뒤 사마리아에서 온 예언자와 관련된 무덤에 묻히게 된 사연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예언자는 훗날 자신의 뼈도 하나님의 사람 곁에 묻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요시야가 두 사람의 뼈를 그대로 두는 장면은 바로 그 이야기를 이어받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가리켰던 일이 이루어진 현장에서는 그의 무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요시야는 제단을 허물었지만, 그 제단을 향해 선포되었던 말씀의 증인이 남아 있는 무덤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개혁에 포함된 폭력
19–20절에서 요시야의 개혁은 사마리아 지역으로 확장됩니다.
그는 그곳에 있던 산당의 제사장들을 모두 제단 위에서 잡아 죽이고, 사람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태웠습니다. 그러고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열왕기하 23:20 · 두루새김
열왕기상 13:2의 예언에도 벧엘 제단에서 제사장들이 죽임을 당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열왕기 저자는 이 장면을 오래전에 선포된 심판이 이루어진 사건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 설명이 행위의 폭력성을 지워 주지는 않습니다.
본문은 그들을 누구에게 제물로 바쳤다고 말하지 않으며, 그들이 각자 어떤 죄를 범했는지 재판하는 과정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또 유다의 산당 제사장들에게는 제단 봉사를 제한하면서 동료 제사장들과 함께 먹도록 했던 9절과 달리, 사마리아의 산당 제사장들은 죽임을 당합니다. 본문은 이러한 대우의 차이를 모두 설명하지 않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언약법과 왕의 권한, 종교적으로 부정하다는 생각 속에서 이 사건이 어떻게 서술되는지 이해하는 것과, 그 폭력을 오늘날 종교적 행동의 모범으로 직접 옮기는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열왕기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여로보암이 세운 제사 제도가 철저하게 끝났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독자는 그 과정에서 일어난 죽음까지 정확히 보아야 합니다.
이제 이야기는 전혀 다른 장면으로 전환됩니다.
지금까지 불태우고 허물고 더럽히는 행동이 이어졌다면, 다음에는 백성이 함께 지키는 절기가 등장합니다.
유월절 — 제거한 것보다 중요한, 기억해야 할 것
왕이 온 백성에게 명령했습니다.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위해 유월절을 지켜라.」열왕기하 23:21 · 두루새김
우상들을 없애는 일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신들을 없애는 것만으로 이스라엘이 어떤 백성인지 충분히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적극적인 삶이 필요했습니다.
유월절이 바로 그 기억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2장에서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풀려난 사건과 연결됩니다. 그날의 구원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만들어 낸 업적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건져 내셨습니다.
그는 백성이 자신의 출발점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느 왕이 만들어 낸 민족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 구원받아 그분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자기 방식으로 절기를 정했습니다(열왕기상 12:32–33). 그러나 요시야는 나라의 안정이나 왕권의 필요에 따라 예배를 새롭게 만들지 않습니다.
여로보암은 왕국을 위해 예배를 바꾸었지만, 요시야는 말씀에 따라 왕국의 예배를 바꾸었습니다.
정말 재판관들의 시대 이후 처음 지킨 유월절이었을까?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재판관들의 시대부터 이스라엘 왕들과 유다 왕들이 다스리던 모든 시대에 걸쳐, 이와 같은 유월절을 지킨 적은 없었습니다.열왕기하 23:22 · 두루새김
이 말씀을 그동안 유월절이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곤란합니다. 역대하 30장에는 히스기야가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킨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호수아 5:10에도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 유월절을 지킨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핵심은 「이와 같은 유월절」이라는 표현입니다.
열왕기는 요시야 시대의 유월절이 이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특별했다고 평가합니다. 역대하 35:1–19는 그 절기를 더 자세히 기록합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준비, 백성을 위한 제물, 예루살렘에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참여가 묘사됩니다.
그 기록에 비추어 보면 언약책의 지시에 따라 절기를 지키려 했던 철저함과 공동체가 함께 참여한 규모가 중요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열왕기하 23장은 이전의 유월절들과 어떤 세부 사항이 달랐는지 모두 설명하지 않습니다.
말씀은 무엇을 중단해야 하는지만 알려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도 알려 주었습니다.
요시야는 죽은 이의 혼을 불러내는 사람들과 영을 통해 점치는 사람들을 몰아냈습니다.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서 눈에 띄던 드라빔과 우상들과 온갖 혐오스러운 것들을 없앴습니다. 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야훼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을 실천하려고 한 일이었습니다.열왕기하 23:24 · 두루새김
수많은 장소와 제도와 사람을 대상으로 했던 행동들이 결국 하나의 목적에서 나왔습니다. 발견된 말씀을 실제로 실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구절에서 열왕기 저자는 요시야에게 최고의 평가를 내립니다.
가장 온전히 돌아선 왕, 그러나 돌아서지 않으신 하나님
요시야처럼 마음을 다하고 온 생명을 다하고 힘을 다해,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야훼께 돌아온 왕은 그 전에도 없었고 그 뒤에도 없었습니다.열왕기하 23:25 · 두루새김
이 구절에는 신명기 6:5의 표현이 거의 그대로 나타납니다. 「마음을 다하고 온 생명을 다하고 힘을 다해」라는 말입니다. 신명기에서 이 표현은 여호와야훼를 사랑하라는 명령에 사용됩니다. 열왕기하 23장에서는 요시야가 여호와야훼께 돌아왔다는 평가에 사용됩니다.
요시야는 단지 종교 제도를 바로잡은 왕이 아닙니다. 그가 한 일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온 삶의 표현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독자가 요시야의 위대함에 안도하려는 순간, 저자는 「그러나」라는 단 한 단어로 방향을 바꿉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유다를 향해 크게 타오른 분노를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므낫세가 여호와야훼를 분노하게 한 모든 일 때문이었습니다.열왕기하 23:26 · 두루새김
열왕기하 21:9은 므낫세가 유다 백성을 잘못된 길로 이끌어 악을 행하게 했다고 기록합니다. 21:16에서는 그가 죄 없는 사람들의 피를 매우 많이 흘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24:3–4에서는 유다에 재앙이 닥친 이유를 설명하면서 므낫세의 행위뿐 아니라 그가 흘린 죄 없는 사람들의 피도 언급합니다.
그러므로 므낫세는 개인적인 우상숭배를 넘어, 백성 전체를 죄로 이끌고 죄 없는 생명까지 희생시킨 통치자로 묘사됩니다. 요시야는 그가 남긴 우상과 제단들을 없앴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미 일어난 폭력과 불순종의 역사를 없었던 일로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전 세대의 행위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십니다. 죄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한 차례 종교개혁이 이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지워 버리지 않으십니다.
요시야의 개혁은 진실했지만, 그의 진실함이 유다의 모든 역사를 다시 쓰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한편 여기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단순히 기계적인 법칙으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죄가 일정량 쌓이면 반드시 특정한 재앙이 일어난다는 식의 공식이 아닙니다. 열왕기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오랜 언약 관계 안에서 심판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반복해서 경고하셨고, 백성은 그 경고를 거절해 왔습니다(17:7–23; 21:10–15).
하나님이 선택하신 성전도 버리실 수 있는가?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내 앞에서 쫓아낸 것처럼 유다도 쫓아내겠다. 내가 선택한 이 성읍 예루살렘과, 내가 『내 이름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던 성전도 버리겠다.」열왕기하 23:27 · 두루새김
솔로몬은 성전을 하나님께 바치는 기도에서 이스라엘이 죄를 짓고 포로로 끌려갈 가능성까지 언급했습니다(열왕기상 8:46–53). 성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불순종의 결과를 막아 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7:4–15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믿고 안심하면서도 악한 행위를 계속하는 태도가 비판받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두신 장소는 특별합니다. 그러나 특별한 장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보증은 아닙니다.
이제 이야기는 요시야의 마지막으로 향합니다.
그에게 주어진 평가는 최고였지만, 그의 죽음은 독자가 기대했을 법한 모습과 전혀 다르게 기록됩니다.
므깃도에서 끝난 왕의 길
요시야의 마지막은 놀랄 만큼 짧게 기록됩니다.
요시야가 다스리던 때에 이집트 왕 파라오 느고가 유프라테스강 가에 있는 아시리아 왕에게로 올라갔습니다. 요시야 왕이 그를 만나러 나갔고, 느고는 므깃도에서 요시야를 만나자 그를 죽였습니다.열왕기하 23:29 · 두루새김
요시야의 개혁을 그토록 자세히 기록했던 저자가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열왕기하는 요시야가 왜 느고를 만나러 나갔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30절에서는 신하들이 그의 시신을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 무덤에 묻습니다. 여기서 앞 장의 훌다의 예언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요시야에게 평안히 무덤에 묻히고 유다에 닥칠 재앙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22:20).
그런데 요시야는 폭력적인 죽음을 맞습니다.
그는 이미 최고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 평가가 그의 죽음 때문에 취소되지는 않습니다. 열왕기는 요시야의 삶이 옳았는지를 그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 또는 어떤 방식으로 죽었는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은 모세의 율법을 따라 여호와야훼께 어떻게 돌아왔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왕이 죽은 뒤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더 큰 충격을 줍니다.
요시야가 바꾸어 놓은 나라가 얼마나 오래 그 길을 유지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조금 더 깊이
당시 아시리아의 세력이 쇠퇴하면서 이집트와 바벨론이 그 지역의 주도권을 놓고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어 전치사 알은 문맥에 따라 맞서거나 누군가를 향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만으로 느고가 아시리아를 공격하러 갔는지, 아시리아를 지원하기 위해 이동했는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역대하 35:20–24에는 이 사건이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느고가 요시야에게 싸우려는 대상이 그가 아니라고 전하고, 요시야가 물러서지 않다가 전투에서 다쳐 죽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역대기는 느고의 말을 하나님에게서 온 말씀으로도 해석합니다. 그러나 열왕기하는 그런 설명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역대기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 열왕기 저자가 요시야의 죽음을 어떤 잘못에 대한 벌로 설명하고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요시야가 훗날 예루살렘에 닥칠 재앙을 겪지 않고 조상들의 무덤에 묻혔다는 점에서 약속의 핵심이 이루어졌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안히 묻히리라는 약속과 전투 중 죽음 사이에 남는 어려움을 본문이 완전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석 달 만에 무너지는 왕국의 자율성
요시야가 죽자 그 땅의 백성은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웁니다.
이것은 백성이 직접 다음 왕을 세우는 일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아하스의 통치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는 석 달 동안 다스린 뒤 이집트 왕 느고에게 붙잡힙니다.
그는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습니다.열왕기하 23:32 · 두루새김
본문은 여호아하스가 석 달 동안 어떤 구체적인 악을 행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요시야의 개혁을 전부 뒤집었다거나, 백성이 즉시 모든 옛 관습으로 돌아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요시야의 아들이라는 사실만으로 그가 아버지의 신실함을 이어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유다의 왕위는 외국 왕의 손에 넘어갑니다.
이름까지 바꾸는 파라오
파라오 느고는 요시야의 아들 엘리야김을 아버지 요시야의 뒤를 이을 왕으로 세우고,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었습니다. 느고는 여호아하스를 이집트로 데려갔고, 여호아하스는 그곳에서 죽었습니다.열왕기하 23:34 · 두루새김
이전까지 유다의 왕은 백성을 모으고 제사장들에게 명령하며 성전과 제사 제도를 개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누가 유다의 왕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이집트의 파라오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이름의 변경은 단순히 부르는 이름을 바꾸는 것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외국 통치자가 자신에게 종속된 왕의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그 왕에 대한 지배권을 드러냅니다. 열왕기하 24:17에서도 바벨론 왕이 유다의 왕을 세우고 이름을 바꾸는 장면이 다시 등장합니다.
이어서 느고는 유다에 막대한 벌금을 내게 합니다.
여호야김은 파라오에게 은과 금을 바쳤습니다. 그는 파라오가 요구한 돈을 마련하려고 유다 땅에 세금을 매겼습니다. 파라오 느고에게 바칠 은과 금을 백성 각자에게 정해진 액수대로 강제로 거두었습니다.열왕기하 23:35 · 두루새김
요시야는 백성에게서 모은 은을 성전을 고치는 데 사용하게 했습니다. 맡은 사람들의 성실함을 신뢰하며 성전의 갈라진 곳을 고치게 했습니다. 반면 그의 뒤를 이은 여호야김은 외국 왕에게 바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백성에게서 은과 금을 강제로 거둡니다.
처음에는 성전을 고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나라의 재물이 외국 왕에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여호야김을 평가합니다.
그는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습니다.열왕기하 23:37 · 두루새김
요시야는 산당들을 허물고, 우상들을 없애고, 유월절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왕위를 이어받은 아들들은 그의 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한 시대의 놀라운 개혁이 다음 시대의 신실함을 보장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맺음 — 말씀을 읽던 왕이 사라진 뒤
처음에는 요시야가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마지막에는 파라오가 유다 왕의 이름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 두 장면 사이에는 한 왕의 온전한 돌이킴과, 그럼에도 거두어지지 않은 유다의 심판이 놓여 있습니다. 요시야는 유다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그 운명 앞에서 하나님께 돌아온 왕이 어떤 사람인지는 분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열왕기하 23장은 그가 세운 개혁의 기념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요시야를 묻은 뒤, 유다는 다시 악한 왕들의 통치를 받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이제 왕의 이름조차 스스로 지킬 수 없는 나라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