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풀어 읽기 · 15장

이 장의 자리 · 15–20장 · 압살롬의 반란

왕좌를 떠나는 왕, 마음을 훔치는 왕자

사무엘하 15장에는 두 사람이 왕권을 놓고 다툽니다. 한 사람은 백성의 환심을 얻어 왕좌를 차지하려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왕좌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대신 자신이 세운 수도를 떠납니다.

왕이 되려는 압살롬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내세우지만, 정작 왕으로서 무엇을 책임질지는 보여 주지 않습니다. 반대로 왕의 자리를 잃어 가는 다윗은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하고, 자신을 따르려는 사람에게 떠날 자유를 주며, 하나님의 궤까지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냅니다.

왕권의 본질은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능력에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는 데 있습니까?

사무엘하 15장은 왕의 권력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뿐 아니라, 권력이 무너질 때 무엇이 남는지를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815장 본문 읽기 →

압살롬은 재판을 하지 않고 재판관이 된다

사무엘하 15:1–6 본문 →

압살롬의 반란은 군대를 동원하는 것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첫 장면에서 그는 자신을 위해 전차와 말들을 마련하고 앞에서 달릴 사람 쉰 명을 둡니다. 왕실의 위엄을 과시하는 행렬입니다. 사무엘상 8:11에서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할 때, 왕이 백성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전차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압살롬은 아직 왕이 아니지만 이미 왕처럼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열왕기상 1:5에서는 훗날 아도니야도 왕이 되려고 전차와 기병, 앞에서 달릴 사람 쉰 명을 마련합니다. 두 장면의 표현은 매우 가깝습니다. 이 화려한 행렬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서 왕권을 스스로 차지하려는 인물들을 특징짓는 장치가 됩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진짜 무대는 행렬이 아니라 성문으로 가는 길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성문은 사람들이 모이고 공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장소였습니다. 압살롬은 왕에게 재판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그 길목에서 만납니다. 그들이 왕에게 도착하기 전에 먼저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먼저 출신 성읍을 묻습니다. 이 질문은 상대방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압살롬이 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말은 옳고 정당해요. 하지만 왕 쪽에는 당신의 말을 들어 줄 사람이 없어요.」사무엘하 15:3 · 두루새김

왕 쪽에 실제로 재판을 들어 줄 사람이 없었는지는 서술자가 확인해 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압살롬의 주장입니다.

다만 그 주장이 효과를 발휘할 만한 상황은 이미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앞선 이야기에서 다말은 암논에게 피해를 당했지만, 다윗이 그 사건을 어떻게 바로잡았는지는 기록되지 않습니다(13:21). 압살롬은 암논을 죽이고 도피했다가 돌아왔으며, 다윗과의 화해도 오랜 단절 끝에 이루어졌습니다(14:28–33). 왕실 내부에서조차 정의와 화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 압살롬의 선동에 설득력을 더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압살롬은 또 말했습니다. 「누가 저를 이 나라의 재판관으로 세워 주면 좋겠어요. 그러면 다툼이 있거나 재판받을 일이 있는 사람은 모두 제게 올 수 있고, 저는 그 사람에게 옳다는 판결을 내려 줄 텐데요.」사무엘하 15:4 · 두루새김

그는 공정한 재판의 절차를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증거를 살피고 어떤 기준으로 판결할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재판관의 일은 찾아온 사람의 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투는 주장 사이에서 무엇이 옳은지 가리는 것입니다.

압살롬은 바로 그 구분을 흐립니다. 그는 정의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판결을 미리 약속합니다.

5절의 행동도 같은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내밀어 붙잡고 입을 맞춥니다. 왕자의 높은 신분을 강조하기보다 자신이 백성과 가까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압살롬은 왕에게 재판을 받으러 오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습니다.사무엘하 15:6 · 두루새김

서술자는 압살롬이 사람들의 마음을 단순히 얻었다고 하지 않고, 훔쳤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독자가 앞의 친절을 다시 보게 합니다. 사람들의 호감을 얻은 것 자체보다, 그 호감을 얻는 과정에 속임수가 있었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압살롬은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했다는 기록 없이, 그 고통에 공감하는 모습을 통해 충성을 얻었습니다.

성문으로 가는 길은 정의를 구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자리였습니다. 압살롬은 그 길을 자신의 왕좌로 향하는 길로 바꾸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 드릴 서원이 반란의 통로가 되다

사무엘하 15:7–12 본문 →

백성의 마음을 확보한 압살롬은 이제 행동에 나섭니다. 그런데 그가 다윗에게 내놓는 이유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것입니다.

사십 년이 지난 뒤, 압살롬이 왕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여호와야훼께 한 약속을 지키러 헤브론에 가게 해 주십시오.」사무엘하 15:7 · 두루새김

압살롬은 그술에 머물던 시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약속했다고 설명합니다. 서원은 하나님께 드린 약속이며, 그것을 지키는 일은 신앙적인 의무입니다. 압살롬이 과거의 고난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자 한다는 설명을 다윗이 의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압살롬이 실제로 그술에서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었다고 본문이 밝히지는 않습니다. 그 약속이 진실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헤브론 방문이 반란을 실행하는 통로가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10–12절에서 분명해집니다.

왜 헤브론인가

다윗은 사울이 죽은 뒤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되었고(사무엘하 2:1–4), 그곳에서 약 칠 년 반을 다스렸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으로 와서 다윗을 왕으로 인정했습니다(5:1–5). 압살롬 자신도 헤브론에서 태어났습니다(3:3).

압살롬이 정확히 어떤 정치적 계산으로 헤브론을 선택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왕위에 오른다는 행위가 다윗의 왕권이 시작된 장소를 다시 차지하는 상징성을 지닌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압살롬은 자신이 새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 퍼뜨리도록 몰래 활동할 사람들을 보냅니다. 뿔나팔이 울리면 동시에 왕이 되었다고 알리게 하는 것입니다.

성문에서는 개개인을 만나 마음을 얻었습니다. 헤브론에서는 조직적으로 소식을 퍼뜨려 이미 왕위에 오른 것처럼 선언합니다. 개인적인 호감이 정치적 행동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11절의 이백 명은 예루살렘에서 압살롬을 따라왔지만, 아무런 속셈도 없었고 압살롬의 계획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바깥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압살롬과 함께 움직이는 큰 무리로 보였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지지처럼 이용될 수 있지만, 정작 그 사람은 무슨 일에 참여하고 있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12절에서는 다윗에게 조언하던 아히도벨이 등장합니다. 왕이 신뢰하던 인물이 반란에 합류하면서 압살롬의 세력이 더욱 강해집니다. 아히도벨이 왜 압살롬의 편에 섰는지는 이 장에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제 반란은 단순한 왕자의 불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의 지지와 조직적인 움직임, 왕실 내부의 협력자를 갖춘 세력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아직 예루살렘에 있지만, 그의 왕권을 떠받치던 사람들의 충성이 이미 흔들리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7절에는 본문의 시간에 관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십 년’은 전해진 히브리어 본문의 읽기이고, ‘사 년’은 이야기의 흐름에서 이해하기 쉬운 다른 읽기입니다. 그런데 그 사십 년을 어느 시점부터 계산하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한편 칠십인역의 일부 사본과 시리아어 역본에는 ‘사 년’이라는 읽기가 전해집니다. 이 읽기를 따르면 압살롬이 오랜 기간 사람들의 지지를 확보한 뒤 반란을 일으켰다는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사 년’을 원래 본문이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윗은 왕좌보다 성읍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다

사무엘하 15:13–18 본문 →

압살롬이 얻은 지지의 결과는 한 문장으로 다윗에게 전달됩니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다윗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기울었습니다.」사무엘하 15:13 · 두루새김

6절에서 압살롬이 훔친 마음이 13절에서 그에게 기울었다고 보고됩니다. 이제 숨겨진 정치적 움직임이 왕에게 알려진 현실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반응은 빠릅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자기와 함께 있던 모든 신하에게 말했습니다. 「일어나서 달아나자. 그렇지 않으면 압살롬에게서 벗어날 길이 없다. 서둘러 떠나라. 그가 곧 우리를 따라잡아 우리에게 재앙을 몰아오고, 성읍 사람들을 칼로 죽일지 모른다.」사무엘하 15:14 · 두루새김

이 결정을 단순한 두려움으로만 읽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압살롬에게 붙잡힐 위험뿐 아니라 성읍 사람들이 칼에 죽을 가능성을 언급합니다.

다윗은 그 성읍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수도로 삼았고(5:6–9), 하나님의 궤를 그곳으로 가져왔습니다(6장). 왕권과 신앙생활의 중심이 된 도시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자신이 그곳에 남아 싸우면 성읍이 전쟁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반면 16절에는 불편한 장면이 남아 있습니다.

왕이 길을 나서자 온 집안이 그를 따라갔습니다. 왕은 첩 열 명을 남겨 왕궁을 지키게 했습니다.사무엘하 15:16 · 두루새김

그러나 반란군이 수도를 차지할 상황에서 이 여성들이 겪을 위험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다윗의 탈출을 모든 사람을 완벽하게 보호한 행동으로 미화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결정에는 성읍을 위한 배려가 있는 동시에, 남겨진 사람들의 안전이라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17–18절에서는 출발 장면이 길게 펼쳐집니다. 신하들과 그렛 사람들, 블렛 사람들, 가드에서 온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을 지나갑니다.

이들이 지나가는 동안 왕은 잠시 멈춰 서 있습니다. 다윗이 한때 왕좌에 앉아 사람들을 맞이했다면, 이제는 성읍을 떠나는 길목에서 자신과 함께 갈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왕의 눈에 들어옵니다.

외국인 잇대는 왕이 약속할 수 없는 미래를 함께 선택한다

사무엘하 15:19–23 본문 →

가드는 블레셋의 주요 도시였으며,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 가드와 깊은 인연을 맺었습니다(사무엘상 21:10–15; 27:1–3). 그러나 잇대 개인의 과거에 대해서는 이 장이 거의 알려 주지 않습니다.

다윗은 그런 잇대에게 뜻밖의 말을 합니다.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말했습니다. 「너까지 왜 우리와 함께 가려 하느냐? 돌아가서 왕과 함께 머물러라. 너는 외국인이며 고향에서 쫓겨나 온 사람이기도 하다.」사무엘하 15:19 · 두루새김

잇대는 자신과 함께 도망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것입니다.

「너는 어제 왔는데, 오늘 내가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게 해서야 되겠느냐? 나는 어디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네 형제들을 데리고 돌아가거라. 한결같은 사랑과 신의가 너와 함께하기를 바란다.」사무엘하 15:20 · 두루새김

그는 잇대에게 안전한 목적지나 확실한 승리를 약속할 수 없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에게 오는 사람에게 유리한 미래를 약속합니다. 다윗은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압살롬은 사람들이 자기편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끌어당깁니다. 다윗은 이미 자기편인 사람에게 떠나도 좋다고 말합니다.

잇대가 왕에게 대답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살아 계심과 왕의 목숨을 두고 맹세합니다. 죽든 살든, 왕께서 계시는 곳이면 왕의 종인 저도 반드시 그곳에 있겠습니다.」사무엘하 15:21 · 두루새김

그의 충성은 성공에 대한 확신 위에 세워져 있지 않습니다. 죽음까지 가능성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밖에서 온 사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증인으로 부르며 자신의 충성을 밝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은 압살롬에게 기울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밖에서 온 사람은 다윗에게 남습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는 일이 혈통의 경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구약의 폭넓은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룻기 1:16–17에서 모압 여자 룻은 나오미가 어디로 가든 함께 가겠다고 결심하며 나오미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입니다. 잇대의 고백이 룻기의 직접 인용은 아니지만, 두 인물 모두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자리에서 불확실한 길을 함께 선택한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이제 잇대와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 어린아이들까지 행렬에 합류합니다. 23절에서는 온 땅의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고, 왕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기드론 골짜기를 건넙니다.

예루살렘의 동쪽에 있는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면 올리브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이어집니다. 이 골짜기를 건너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닙니다. 다윗이 자신의 수도를 등지고 광야를 향해 나아가는 경계선입니다.

한때 광야에서 왕이 되기를 기다렸던 다윗이, 이제 왕이 된 뒤 다시 광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울에게 쫓기는 젊은 다윗이 아닙니다. 자신이 세운 왕국과 가정의 문제를 짊어진 늙어 가는 왕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말에서 「돌아가서 왕과 함께 머물러라」의 「왕」이 정확히 누구인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압살롬을 가리킨다고 읽을 수도 있고, 잇대의 본국과 관련된 왕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어제」는 문자 그대로 바로 전날을 뜻할 수도 있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다윗은 잇대가 아직 정착하지 못한 처지임을 생각합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도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 제자들과 함께 동산으로 가십니다(요한복음 18:1). 이것은 사무엘하 15장을 직접 인용한 장면은 아니지만, 고난을 앞둔 왕과 기드론이라는 장소가 만나는 주제적 연결을 생각하게 합니다. 다만 다윗의 도피에는 자신의 죄와 왕실의 실패가 얽혀 있으므로, 두 인물의 고난을 같은 성격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궤는 왕을 따라 도망하지 않는다

사무엘하 15:24–29 본문 →

사독과 레위 사람들이 언약궤를 메고 다윗의 탈출 행렬에 합류합니다. 궤를 내려놓고 사람들이 빠져나오기를 기다립니다.

사무엘상 4장에서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싸우다가 패배하자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궤가 자신들을 적의 손에서 구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4:3). 그러나 궤를 가져왔어도 다시 패배했고, 궤마저 빼앗겼습니다.

다윗에게도 같은 선택이 놓여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궤를 자기와 함께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사람들에게 자신이 여전히 하나님의 지지를 받는 왕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뜻밖의 명령을 내립니다.

왕이 사독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돌려보내라. 여호와야훼께서 나를 좋게 여기신다면, 나를 돌아오게 하셔서 그 궤와 그분이 머무시는 곳을 다시 보게 해 주실 것이다.」사무엘하 15:25 · 두루새김

그는 궤를 자신의 운명에 묶어 두지 않습니다.

사무엘하 6장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왔습니다. 그때는 왕권이 확립되어 가던 시기였습니다. 이제 그 왕권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그는 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보냅니다.

궤를 가져올 때 다윗은 큰 기쁨 가운데 있었습니다. 궤를 돌려보내는 지금은 자신이 다시 그것을 볼 수 있을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가 자신의 운명을 보장해 주는 물건이 아님을 알고, 자신이 하나님의 판단 아래 있는 사람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나는 너를 기뻐하지 않는다』 하고 말씀하신다 해도, 나는 여기 있다. 그분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내게 하시기를 바란다.」사무엘하 15:26 · 두루새김

이 말은 다윗이 자신의 왕권을 당연한 권리로 주장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7장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집안과 왕권에 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12장에서 나단은 다윗이 우리야와 밧세바에게 저지른 죄 때문에 그의 집안에서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12:10–12).

따라서 다윗은 자신의 가문에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면서도, 자신이 심판과 징계에서 면제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15장은 하나님께서 이 순간 다윗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직접 말씀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말은 하나님의 확정된 판결이 아니라, 그 판결 앞에 서겠다는 고백입니다.

지금의 다윗은 자기 죄의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집안에서 벌어진 비극은 나단이 선포한 심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압살롬의 반란도 인간의 욕망과 선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압살롬의 속임수와 반란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장면은 사무엘상 3:18에서 엘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듣고 그분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바란다고 말한 장면과도 연결됩니다. 두 사람의 처지와 행동이 같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결정을 자기 뜻대로 바꿀 수 없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통합니다.

하나님의 판단에 자신을 맡기는 것과 행동을 포기하는 것은 다르다

27–28절에서 다윗은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합니다. 그들의 두 아들 아히마아스와 요나단도 함께 돌아가게 합니다. 다윗은 그들이 보내는 소식을 광야의 벌판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합니다.

제사장들은 이제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낼 뿐 아니라, 반란군이 차지할 성읍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도 맡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겠다는 말은 자신의 지혜와 책임을 내려놓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판단을 자신이 결정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에게 가능한 수단으로 위기에 대응합니다.

다만 이것이 그의 모든 전략을 하나님이 승인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다윗의 신뢰와 그의 정치적 행동을 함께 보여 줄 뿐, 그 모든 행동을 각각 옳다고 판정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분명히 구분한 것은 하나님의 판단과 자신의 계획입니다. 계획은 세울 수 있지만, 그 계획이 하나님의 뜻을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24절에서 궤를 내려놓았다는 표현과 아비아달이 올라왔다는 표현에는 원문상 어려움이 있습니다. 궤를 세워 두었다는 읽기와 아비아달이 제사를 올렸다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27절에서 사독을 「선견자」라고 부르는 말은 해석이 갈립니다. 히브리어 하로에 아타는 문자적으로 ‘그대는 보는 자가 아니오?’라는 물음입니다. 사독을 선견자라고 부르는 표현일 수도 있고, ‘이해하겠소?’라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사독이 다른 곳에서도 선견자라는 직함으로 소개되지는 않으므로 어느 한쪽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울면서 올리브산을 오르는 왕

사무엘하 15:30–31 본문 →

하나님의 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뒤, 다윗은 올리브산으로 올라갑니다.

다윗은 울면서 올리브산 오르막길을 올라갔습니다. 그는 머리를 가린 채 맨발로 걸었습니다. 함께한 모든 사람도 저마다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올라갔습니다.사무엘하 15:30 · 두루새김

이 장면에는 왕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걷는 행동은 슬픔과 낮아짐을 드러냅니다. 압살롬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앞에서 달릴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다윗은 머리를 가려 자신을 낮춘 채 걸어갑니다. 압살롬은 사람들의 찬사를 얻으려 했지만, 다윗 곁의 사람들은 울고 있습니다.

이들은 승리나 보상을 약속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과 같은 슬픔을 나눕니다. 이 장면에서 백성과 왕의 관계는 명령하는 자와 복종하는 자의 관계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왕이 겪는 상실에 백성도 참여합니다.

다윗은 울면서도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에게 신뢰는 슬픔이 사라진 상태가 아닙니다. 슬픔 가운데서도 자신의 운명을 하나님보다 앞세우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이 슬픔 가운데 또 하나의 소식이 도착합니다.

누군가 다윗에게 알렸습니다. 「아히도벨도 압살롬과 함께 반란을 꾸미는 사람들 가운데 있습니다.」 다윗이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야훼여, 아히도벨의 조언을 어리석게 만들어 주십시오.」사무엘하 15:31 · 두루새김

아히도벨의 조언은 뒤의 이야기에서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됩니다(16:23). 다윗은 그가 압살롬에게 유리한 전략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기도의 대상은 사람의 목숨보다 그 사람의 판단과 전략입니다.

이것은 상황에 대한 상당히 구체적인 기도입니다. 막연히 모든 일이 잘되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당면한 가장 위험한 요소를 하나님 앞에 가져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기도 직후 나타난 친구 후새

사무엘하 15:32–37 본문 →

다윗은 하나님께 엎드려 절하는 곳인 산꼭대기에 이릅니다.

그곳에서 아렉 사람 후새가 다윗을 맞으러 옵니다. 그의 옷은 찢어져 있고 머리에는 흙이 묻어 있습니다. 그는 다윗이 처한 일을 자신의 비극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아히도벨의 조언을 어리석게 만들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후새가 나타납니다. 다윗은 그를 이용하여 아히도벨의 조언을 헛되게 만들 계획을 세웁니다.

다윗이 후새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나와 함께 가면 내게 짐이 될 것이다.」사무엘하 15:33 · 두루새김

후새가 다윗과 함께 도망하면 한 사람의 동행자가 되지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아히도벨의 조언을 헛되게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후새에게 압살롬의 종이 되겠다고 말하라고 지시합니다.

이는 압살롬을 속이는 계획입니다. 본문은 후새의 속임수가 정치적으로 어떤 목적을 지니는지 알려 주지만, 거짓말이라는 수단 자체의 도덕적 문제를 따로 논평하지는 않습니다.

다윗은 후새를 이용하여 자신이 왕궁 안에서 듣지 못할 소식을 확보하려 합니다. 후새가 들은 내용을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알리고, 그들의 아들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다윗에게 전달하도록 합니다. 이렇게 해서 앞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제사장들과 그 아들들의 역할이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 다음에 이야기가 보여 주는 것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다윗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려는 한 친구의 등장입니다. 이 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새의 등장을 하나님의 확정된 응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서술자는 기도와 사람의 행동이 서로 연결되는 방향으로 독자의 시선을 이끕니다.

조금 더 깊이

32절에서 예배하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원문의 표현에 여지가 있습니다. 다윗이 그곳에서 하나님께 절하려 했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고, 사람들이 예배하던 장소를 설명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서술자는 이 장소를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로 소개합니다.

두 사람이 같은 성읍을 향해 들어간다

사무엘하 15:1–37 본문 →

이 장의 처음에서 압살롬은 백성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다윗을 위해 성읍으로 들어가는 후새의 마음은 누가 훔쳐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능력뿐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은 판단도 감당할 수 있는 책임입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행동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다윗의 친구 후새는 성읍으로 들어갔습니다.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사무엘하 15:37 · 두루새김

압살롬은 왕권을 차지하려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옵니다. 후새는 다윗을 돕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갑니다. 압살롬에게는 많은 추종자가 있고, 후새에게는 위험한 임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다윗은 왕좌를 떠나 광야로 향하고 있습니다.

왕좌가 있는 곳과 충성이 향하는 곳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장은 그 두 사람이 같은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더 이상의 설명 없이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