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7–9장 · 환상과 베델에서의 충돌
끝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찾아온 끝
이스라엘의 상인들은 안식일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곡식을 팔고, 저울을 속이고, 가난한 사람에게서 더 많은 것을 빼앗을 수 있는 시간이 돌아오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안식일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날이 아니라, 돈을 벌지 못하게 하는 불편한 중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모스 8장은 그들이 기다리던 끝과 전혀 다른 끝을 선언합니다.
그들은 안식일이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에게 끝이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을 속인 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되는 심판으로 이어집니까? 이 질문을 따라가면 아모스 8장이 말하는 죄와 심판의 관계가 선명해집니다.
여름 과일 바구니에 담긴 끝
아모스에게 네 번째 환상이 주어집니다. 이번에 그가 보는 것은 특별히 위협적인 물체가 아닙니다.
주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이런 장면을 보여 주셨습니다. 여름 과일이 담긴 바구니가 있었습니다.아모스 8:1 · 두루새김
앞선 환상에는 메뚜기와 불이 등장했고, 다림줄을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이 선언되었습니다(7:1–9). 그런데 이번에는 평범한 여름 과일 바구니입니다.
본문은 과일의 상태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모스에게 그것을 보여 주신 까닭은 과일의 이름에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여름 과일은 카이츠(קַיִץ), qayiṣ이고, 끝은 케츠(קֵץ), qēṣ입니다. 두 낱말은 소리가 매우 비슷합니다. 아모스가 여름 과일을 보았다고 대답하자, 여호와야훼는 그 소리를 받아 이스라엘의 끝을 선언하십니다.
그분께서 물으셨습니다. 「아모스야, 무엇이 보이느냐?」 내가 대답했습니다. 「여름 과일 바구니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끝이 왔다. 더는 그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아모스 8:2 · 두루새김
이 말씀은 앞선 세 번째 환상에서 이미 등장한 선언을 되풀이합니다(7:8). 처음 두 환상에서 아모스가 백성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을 때, 여호와야훼는 예고하신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와 네 번째 환상에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시겠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심판은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는 백성에게 내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그 관계에 걸맞지 않게 살아왔고, 이제 그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환상은 곧바로 소리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그날에는 성전의 노랫소리가 울부짖음으로 바뀔 것이다. 시체가 많아져 곳곳에 내던져질 것이다. 잠잠하여라.」 주 여호와야훼의 말입니다.아모스 8:3 · 두루새김
노래가 울부짖음으로 변하고, 울부짖음마저 침묵으로 끊어집니다.
누가 누구에게 잠잠하라고 명령하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회를 채우던 축제와 노래의 소리가 더는 이어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 대목은 아모스 6:10의 장면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도 죽음이 가득한 집에서 침묵하라는 말이 들립니다. 아모스는 심판을 막연한 종말의 말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더는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장면으로 그 결과를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에게 이런 끝이 찾아옵니까? 다음 단락은 하나님의 심판 선언을 잠시 멈추고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들려줍니다.
조금 더 깊이
성전으로 읽으면 예배의 노래가 울부짖음으로 변하는 장면이고, 궁전으로 읽으면 왕실의 화려한 노래가 비명으로 바뀌는 장면입니다. 어느 장소를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지만, 기쁨을 표현하던 노래가 슬픔의 소리로 바뀐다는 대조는 분명합니다.
안식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4절에서 예언의 대상이 뚜렷해집니다.
아모스가 말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짓밟고 이 땅의 힘없는 사람들을 없애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어라.」아모스 8:4 · 두루새김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죄를 막연하게 나열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경제적 힘을 이용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짓밟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너희는 이렇게 말한다. 『초하룻날이 언제 지나야 곡식을 팔 수 있을까? 안식일이 언제 지나야 곡식을 내놓을 수 있을까? 곡식을 재는 그릇은 작게 하고, 은을 다는 저울추는 무겁게 하고, 저울도 조작해서 속이자.』」아모스 8:5 · 두루새김
초하룻날은 새로운 달을 맞아 지키던 종교적 절기와 관련됩니다(민수기 28:11–15). 안식일과 함께 언급된 것은 이 날들이 일상적인 경제활동을 멈추고 하나님을 향하도록 구별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원문에 나오는 에바(אֵיפָה)는 곡식의 부피를 재는 단위이고, 세겔(שֶׁקֶל)은 은 등의 무게를 재는 단위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에서 「곡식을 재는 그릇」과 「은을 다는 저울추」라고 풀어 옮겼습니다. 당시의 거래에서 은은 무게를 달아 지불할 수 있었습니다.
곡식을 재는 그릇을 작게 만들면 실제로 주는 곡식의 양이 줄어듭니다. 반대로 대금으로 받는 은을 다는 저울추를 무겁게 만들면 상대방에게 더 많은 은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저울까지 조작합니다.
결국 구매자는 적은 곡식을 받으면서 많은 값을 내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은 바로 이런 일을 금지했습니다. 신명기 25:13–16은 무거운 저울추와 가벼운 저울추를 따로 가지고 다니거나, 크고 작은 되를 따로 사용하는 행동을 금지합니다. 레위기 19:35–36도 길이와 무게와 양을 잴 때 공정한 기준을 사용하도록 요구합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 측정 기준을 독점하면 힘없는 사람은 거래할 때마다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길이와 무게와 양을 공정하게 재는 것은 상대방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동등하게 존중해야 할 사람으로 대하는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그런데 6절에서 상인들의 목적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렇게 해서 가난한 사람을 은으로, 어려운 사람을 신 한 켤레 값으로 사들이자. 곡식 찌꺼기까지 팔자.』」아모스 8:6 · 두루새김
가난한 사람이 빚이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자신의 자유를 잃을 수 있었던 사회적 현실을 생각하면, 이 표현은 단순히 꾸며 낸 말이 아닙니다. 「신 한 켤레 값」이라는 표현은 앞서 아모스 2:6에도 등장합니다. 아모스는 처음부터 가난한 사람이 하찮은 대가로 팔리는 사회를 고발해 왔습니다.
상인들은 정상적인 곡식뿐 아니라 가치가 낮은 찌꺼기까지 수익으로 바꾸려 합니다. 그것을 정상적인 곡식에 섞어 속여 팔았는지까지는 이 구절이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사람의 어려움조차 이익을 얻을 기회로 삼는 태도는 분명합니다.
안식일에는 거래를 멈춥니다. 그러나 안식일이 끝난 뒤 어떤 방식으로 거래해야 하는지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시간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가난한 이웃의 삶은 무시합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아모스 5:21–24에서 여호와야훼는 백성의 절기와 노래를 거절하시고, 공정과 의가 흐르기를 요구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예배가 불필요하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삶을 살아가는 모순에 대한 고발입니다.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이 예배 이후의 불의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야곱의 자랑을 걸고 맹세하셨습니다. 「그들이 한 모든 일을 나는 영원히 잊지 않겠다.」아모스 8:7 · 두루새김
가난한 사람이 속임을 당한 거래는 장부에 정상적인 거래로 기록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거래를 마친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배에 참석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일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종교적 행동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지만,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이 가난한 이웃에게 한 일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대낮에 해가 지고 축제가 장례식이 되다
여호와야훼의 맹세 다음에는 땅이 흔들리는 광경이 펼쳐집니다.
「이 일 때문에 땅이 떨지 않겠느냐?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슬퍼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나일강처럼 솟아올라 출렁이다가 이집트의 나일강처럼 가라앉을 것이다.」아모스 8:8 · 두루새김
바로 앞에서 드러난 것은 가난한 사람을 짓밟는 경제적 불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 때문에 땅이 떨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시장에서 저울을 속이는 일과 땅이 흔들리는 일은 언뜻 서로 아무 관계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아모스의 예언에서 인간 사회의 불의는 한 지역의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땅에서 정의가 무너졌기 때문에, 그 땅에 사는 모든 이가 심판의 결과를 맞게 됩니다.
8절은 땅의 움직임을 나일강에 비유합니다. 나일강의 물이 불어났다가 다시 내려앉는 모습에 땅 전체가 겹쳐집니다.
그리고 9절에서는 그 불안정이 하늘에까지 이어집니다.
주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에 내가 한낮에 해를 지게 하고, 환한 대낮에 땅을 어둡게 하겠다.」아모스 8:9 · 두루새김
해가 지는 것은 평범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낮에 해가 지는 것은 정상적인 시간의 질서를 뒤집는 일입니다.
아모스는 앞서 여호와야훼를 어둠을 아침으로 바꾸고 낮을 밤으로 어둡게 하시는 분으로 묘사했습니다(5:8). 또한 이스라엘이 기대하던 여호와야훼의 날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5:18–20).
10절에서는 어둠이 사람들의 일상으로 내려옵니다.
「내가 너희의 명절을 슬픔으로 바꾸고, 너희의 모든 노래를 슬픈 노래로 바꾸겠다. 모두가 허리에 거친 베를 두르고 머리를 밀게 하겠다. 외아들을 잃었을 때처럼 슬퍼하게 하고, 그 끝을 쓰라린 날로 만들겠다.」아모스 8:10 · 두루새김
상인들은 초하룻날과 안식일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그들이 유지하고 있던 종교적 축제 자체를 슬픔의 시간으로 바꾸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베옷을 입거나 머리카락을 밀거나 뽑는 행동은 깊은 슬픔을 드러내는 방식이었습니다(이사야 15:2–3; 예레미야 16:6). 외아들을 잃는 일은 한 가정에 가장 깊은 상실 가운데 하나입니다. 본문은 이 비유를 통해 공동체가 맞이할 슬픔의 크기를 표현합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여기서 심판의 묘사를 끝내지 않습니다. 뒤이어 지금까지와는 성격이 다른 굶주림을 예고합니다.
조금 더 깊이
땅이 흔들리는 것이 특정한 지진을 예고하는지, 심판으로 뒤흔들릴 나라의 상태를 시적으로 묘사하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실제 일식을 예고했다고 해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특정한 일식의 날짜나 장소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어지는 절에서 축제가 슬픔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대낮의 어둠은 이스라엘이 당연하게 여기던 기쁨과 안전이 심판 아래에서 뒤집히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도 찾을 수 없는 날
주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이런 날이 오고 있다. 내가 이 땅에 굶주림을 보내겠다.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프거나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다.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지 못해 굶주리는 것이다.」아모스 8:11 · 두루새김
아모스 8장에서 가장 뜻밖의 심판입니다.
이스라엘의 상인들은 곡식의 양과 가격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돈과 곡식은 자기들이 다스릴 수 있는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 아무리 애써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은 단순히 사람들이 성경 읽기를 게을리하게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굶주림을 보내시겠다고 선언하시며, 사람들이 말씀을 찾더라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말씀을 듣는 기회 자체가 사라지는 심판입니다.
아모스 7:12–13에서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유다로 떠나라고 요구하며, 벧엘에서는 더 이상 예언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벧엘은 왕의 성소이며 왕국의 중심지라는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가 왕실의 종교적 질서를 위협한다고 여겨져 쫓겨난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싶지 않을 때는 예언자를 쫓아내지만, 정작 말씀을 듣고 싶어지는 때에는 찾아도 들을 수 없게 됩니다.
아모스 7장의 사건은 말씀을 거부하는 공동체의 태도를 보여 주는 구체적인 사례이고, 8장은 그 공동체가 맞을 심판을 선언합니다. 이 심판은 아모스 5:4–6의 초청과도 뚜렷하게 대비됩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찾고 살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장소 자체에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야훼를 찾으라는 초청이었습니다.
하지만 8:12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다닐 것이다.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도 찾지 못할 것이다.」아모스 8:12 · 두루새김
8:5에서 상인들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반면 8:12에서는 사람들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무엇인가를 찾습니다. 두 장면 모두 아직 자기 손에 없는 것을 간절히 바란다는 점에서는 닮았지만, 바라는 대상은 완전히 다릅니다.
처음에는 곡식을 팔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사람에게 유익한 종교적 정보가 아닙니다.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뜻을 밝히시고, 그들의 잘못을 드러내시며, 돌이켜 살 길을 알려 주시는 관계의 통로입니다.
아모스가 전한 경고는 이스라엘을 파괴하려는 말만이 아니었습니다. 5:4–6, 14–15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 경고 안에는 하나님을 찾고 선을 행하며 살라는 초청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12절의 사람들이 모두 진심으로 회개했다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본문은 그들이 절박하게 말씀을 찾는다고 말할 뿐,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전에 주어졌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이제는 더 이상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쓰러지는 젊은이들과 무너지는 맹세
13절에서 예언의 시선은 다시 사람들에게 향합니다.
「그날에는 아름다운 처녀들과 젊은 남자들이 목마름에 기절할 것이다.」아모스 8:13 · 두루새김
이들은 공동체에서 젊음과 활력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늙고 병들어 약해진 사람들이 아니라, 살아갈 힘과 미래의 가능성을 가진 이들이 쓰러집니다.
계속 움직이지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살아갈 힘은 있지만 그것만으로 자신을 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은 이스라엘이 무엇을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마리아의 죄가 되는 우상을 걸고 맹세하는 자들은 『단아, 네 신의 생명을 걸고 맹세한다』 하고, 『브엘세바의 길을 걸고 맹세한다』 한다. 그들은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아모스 8:14 · 두루새김
단은 여로보암 1세가 금송아지를 세운 곳 가운데 하나였습니다(열왕기상 12:28–30). 브엘세바 역시 아모스 시대에 종교적 순례와 관련된 장소였음을 아모스 5:5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야훼는 이미 이스라엘에게 브엘세바로 향하지 말고 자신을 찾으라고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맹세와 사람들의 맹세가 이 장의 앞뒤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불의를 잊지 않겠다고 맹세하십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의지하는 종교적 대상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효력을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아모스 5:2가 떠오릅니다. 그곳에서도 이스라엘은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처녀의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8장 역시 젊은 여성들과 남성들이 쓰러지는 장면을 거쳐,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는 선언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다고 여겼던 종교적 확신은 위기의 순간에 그들을 일으켜 세우지 못합니다.
조금 더 깊이
13절의 목마름을 11절의 말씀을 향한 굶주림과 연결하여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앞서 예고된 재앙 속에서 실제로 겪게 되는 몸의 고통도 함께 떠올릴 수 있습니다. 본문은 그 둘을 분명하게 구별하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원문에서 사마리아의 죄악을 가리키는 표현을 「사마리아의 죄가 되는 우상」으로 풀어 옮겼습니다. 다만 이것이 정확히 어떤 숭배 대상을 뜻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특정 신이나 우상을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지만, 원문 자체가 그 이름을 밝히지는 않습니다. 또한 「브엘세바의 길」은 그곳으로 향하는 순례의 길을 가리킬 수도 있고, 그 장소와 관련된 종교적 관습이나 숭배를 나타내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듣지 않으려 했던 말씀을 찾게 되는 심판
그들의 거부는 예배를 전혀 드리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배를 유지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짓밟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예언자의 말을 귀로 듣는 행동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 말씀에 비추어 자신들의 경제적 행동과 공동체의 질서를 돌아보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는 것까지 요구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종교생활을 소홀히 하면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지 않는다는 교훈으로 줄여 읽어서는 안 됩니다. 아모스는 실제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 속했다고 고백하던 공동체가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을 거부했는지 고발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아모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사람들이 그 말씀을 찾아 헤맵니다.
그 사이에 이스라엘은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너무 늦게 깨닫는 자리에 놓입니다.
끝나기를 기다렸던 날들은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간절히 기다리는 말씀은 들리지 않습니다.
아모스 8장은 그 침묵 속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