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21장

이 장의 자리 · 19–24장 · 시나이산의 언약

자유를 얻은 백성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시나이산에서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거나 재산을 훔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주어지는 첫 번째 법은 뜻밖에도 노예에 관한 것입니다.

왜 자유를 주신 하나님이 노예를 사는 상황부터 말씀하실까요? 그리고 왜 노예 제도를 즉시 없애지 않고, 그 제도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정하실까요?

출애굽기 21장은 모든 인간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 사회를 선언하는 문서가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는 불평등한 사회 안에서, 누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피해에 책임져야 하는지를 정하는 법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되었는데도 사람들 사이에는 여전히 권력과 재산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어디까지 지배할 수 있습니까? 피해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자유를 얻은 백성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무엇에 의해 제한되어야 합니까?

출애굽기 21장은 이러한 질문들을 추상적인 원칙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으로 다룹니다.

읽는 시간 28분소단락 1221장 본문 읽기 →

십계명 다음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사건들

출애굽기 21:1 본문 →

「네가 백성 앞에 내놓을 법은 이러하다.」출애굽기 21:1 · 두루새김

출애굽기 20장에서 하나님은 살인과 간음, 도둑질과 거짓 증언을 금지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다 보면 그 명령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생깁니다.

사람을 때렸는데 죽지 않고 여러 날 일을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와 미리 계획하여 죽인 경우를 똑같이 처벌해야 할까요? 소가 사람을 죽였다면 그 소의 주인에게도 책임이 있을까요?

이제 법은 그런 사건들 속으로 들어갑니다.

「법」은 「판결」이나 「공정한 판단」과 관계되는 말로, 구체적인 사건을 어떻게 판단하고 처리할 것인지에 관한 규정들을 가리킵니다. 이후의 법에는 「어떤 사람이 … 하면」이라는 조건과 그에 따른 결과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법의 형식은 모든 상황을 한꺼번에 정하기보다, 특정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적용할 판단 기준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본문에 어떤 행동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 행동 자체를 하나님이 이상적인 것으로 권장하신다고 읽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다른 사람을 때려 다치게 했을 때 어떤 배상을 해야 하는지 정한다고 해서 폭행을 권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노예를 사는 상황을 다룬다는 사실만으로 노예 소유를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으로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규정이 단지 현실을 소극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부정확합니다. 본문은 실제로 노예 소유를 인정하고, 어떤 조건에서는 그 소유를 법적으로 보호합니다.

일곱째 해에 자유를 얻지만 가족은 남겨야 할 수 있다

출애굽기 21:2–6 본문 →

「네가 히브리 사람을 남자 노예로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일하고 일곱째 해에는 돈을 내지 않고 자유로운 몸으로 나가야 한다.」출애굽기 21:2 · 두루새김

노예가 자유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몸값을 다시 벌어 주인에게 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해진 기간이 끝나면 돈을 내지 않고 나갑니다. 이 규정은 노예가 일해야 하는 기간이 주인의 뜻에 따라 끝없이 늘어나지 못하도록 제한합니다.

여기서 일곱째 해라는 표현은 앞서 안식일을 정한 출애굽기 20:8–11을 떠올리게 합니다. 일곱째 날에 노동을 멈추듯, 여기서는 일곱째 해에 종살이를 끝내도록 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규정은 그 자유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노예가 되기 전에 이미 아내가 있었다면 부부는 함께 나갑니다. 그러나 주인이 그에게 아내를 주고 자녀들이 태어났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주인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 여자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다면, 그 여자와 자녀들은 그 여자의 주인에게 속한다. 남자는 혼자 나가야 한다.」출애굽기 21:4 · 두루새김

여기에는 당시 노예 제도의 근본적인 불평등이 드러납니다. 남자가 일해야 하는 기간은 제한되어 있지만, 주인이 준 아내와 그 자녀에 관한 소유권은 여전히 주인에게 인정됩니다.

따라서 남자 노예에게 주어진 자유는 실제로 가족과 헤어지는 것을 대가로 하는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노예가 『저는 제 주인과 아내와 자녀들을 사랑합니다. 자유로운 몸으로 나가지 않겠습니다.』 하고 분명히 말한다면,」출애굽기 21:5 · 두루새김

여기서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진지하게 읽어야 합니다. 본문은 그가 주인과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상황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선택이 이루어지는 조건도 보아야 합니다.

그가 자유를 택하면 아내와 자녀를 두고 떠나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살이를 계속하겠다는 결정은 아무런 제약도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순수한 자유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법은 그에게 자유의 길을 열어 주면서도, 가족과 자유를 함께 얻을 길까지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이 긴장을 무시하고 이 장면을 주인을 사랑하여 기쁘게 종살이를 선택한 아름다운 헌신의 이야기로만 설명하면 본문에 나타나는 권력의 차이를 놓치게 됩니다. 그가 계속 종살이하기로 결정하면 특별한 절차가 이어집니다.

「주인은 그를 하나님 앞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 또 문이나 문기둥으로 데리고 가서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어야 한다. 그러면 그 노예는 평생 그 주인을 섬겨야 한다.」출애굽기 21:6 · 두루새김

이것은 사적인 말 한마디로 일해야 하는 기간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절차가 따르는 결정입니다.

문기둥은 집에 속한 경계를 표시하는 자리입니다. 노예의 귀를 뚫는 행위는 그가 그 집에서 계속 섬기게 된다는 사실을 눈에 보이게 하는 표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귀를 선택한 정확한 상징적 이유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법은 주인의 권한을 제한합니다. 동시에 주인의 소유권을 보호합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님 앞으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 하엘로힘은 해석이 갈리는 표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공식적인 절차로 읽을 수도 있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재판하는 사람들 앞에 나아가는 사법 절차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두루새김이 「평생」으로 옮긴 말은 일반적인 여섯 해의 노동 기간을 넘는 지속적인 종살이를 가리킵니다. 이 절만으로 그 기간이 다른 모든 법적 제도와 관계없이 절대적으로 끝나지 않는다고까지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레위기 25:8–55의 희년 규정과 어떻게 조화되는지는 별도로 살펴야 합니다. 신명기 15:12–18은 히브리 사람인 남자와 여자가 종살이를 한 뒤 일곱째 해에 자유를 얻는 규정을 제시합니다. 또한 그들을 빈손으로 보내지 말라고 명령하며, 이스라엘 자신도 이집트에서 노예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합니다. 출애굽기 21장과 신명기 15장을 비교하면 해방의 범위와 규정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기 25:39–46에서는 이스라엘 동족이 가난해져 다른 사람에게 매인 처지에 놓인 경우와 다른 민족에게서 노예를 소유하는 경우가 서로 다르게 규정됩니다. 이 본문도 이스라엘 내부의 자유와 노예 제도 전체를 없애는 일이 같은 개념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딸을 팔았을 때 — 혼인과 종속이 얽힌 관계

출애굽기 21:7–11 본문 →

「어떤 사람이 자기 딸을 여자 노예로 팔면, 그 여자는 남자 노예와 같은 방식으로 풀려나지 않는다.」출애굽기 21:7 · 두루새김

처음 읽으면 여성이 남성보다 불리하게 취급되는 규정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이 법에는 성별에 따른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여기서 다루는 여성은 단순한 노동력으로만 팔린 사람이 아닙니다. 주인이나 그 아들과의 혼인이 예정될 수 있는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오늘날의 자유로운 혼인 계약과 동일하게 보아서도 안 됩니다.

여성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가 그녀를 팔았다는 사실에서부터 권력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여성은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중요한 삶의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 안에 있습니다.

이제 법은 그 관계에서 주인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정합니다.

「주인이 그 여자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정해 두었다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누군가 값을 치르고 그 여자를 되찾아 갈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주인은 그 여자와의 약속을 저버렸으므로 외국 사람들에게 팔아서는 안 된다.」출애굽기 21:8 · 두루새김

「그 여자와의 약속을 저버렸으므로」라는 표현은 여성이 단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라, 주인에게 일정한 의무를 요구할 수 있는 관계의 당사자로 취급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 규정이 여성을 완전히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그녀의 지위는 다른 사람들의 결정과 경제적인 거래에 크게 좌우됩니다. 그러나 주인이 처음의 관계를 저버렸다는 이유로 그녀를 더 불리한 처지에 마음대로 넘겨서는 안 된다는 제한을 둡니다.

「주인이 그 여자를 자기 아들의 아내로 정한다면, 딸이 받아야 할 대우를 그 여자에게도 해 주어야 한다.」출애굽기 21:9 · 두루새김

그녀는 단지 아들에게 주어진 종속된 여성이 아니라, 딸이 받아야 할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이어서 10절은 또 하나의 상황을 제시합니다.

「그 남자가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더라도, 먼저 맞은 여자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줄이거나 부부로서 해야 할 도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출애굽기 21:10 · 두루새김

이 규정은 당시 한 남자가 여러 아내를 맞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그러나 그 남자가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는 이유로 먼저 맞은 여자를 돌보지 않고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실제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가 이 세 가지를 그 여자에게 해 주지 않으면, 그 여자를 돈 한 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한다.」출애굽기 21:11 · 두루새김

남자 노예의 경우에는 일해야 하는 기간이 끝났을 때 자유롭게 나가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성의 경우에는 혼인과 관련된 의무를 지키지 않았을 때 돈 한 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주는 규정이 마련됩니다. 따라서 7절의 「그 여자는 남자 노예와 같은 방식으로 풀려나지 않는다」는 말을 여성이 어떤 경우에도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남자는 일해야 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여성은 혼인을 전제한 종속 관계 안에서 구체적인 대우와 자유를 얻는 조건을 부여받습니다. 두 사람의 처지는 같지 않습니다.

법은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적 구조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지만, 그 구조 안에서도 주인의 의무와 여성의 권리를 분명히 밝힙니다.

조금 더 깊이

8절에는 본문상의 차이도 있습니다. 히브리어 전승에서 주인이 그 여자를 자기 아내로 정해 두었는지 또는 정하지 않았는지를 달리 읽을 수 있는 자음의 차이가 전해집니다. 두루새김은 뒤의 혼인 규정들과 연결하여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정해 두었다가」로 옮겼습니다. 이 읽기를 따르면 주인이 약속을 저버렸다는 표현은 혼인 관계를 예정하거나 설정해 놓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저버린 행동을 가리키게 됩니다. 세 번째 항목인 「부부로서 해야 할 도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나는 정확한 의미를 확정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혼인 안에서의 성적 관계를 가리킨다는 전통적인 이해가 있으며, 혼인 관계에 따르는 생활상의 권리로 폭넓게 이해하려는 읽기도 있습니다. 본문의 문맥에서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는 이유로 먼저 맞은 여자가 혼인 관계에서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과 사람을 훔치는 일

출애굽기 21:12–17 본문 →

노예와 혼인에 관한 규정 다음에는 생명과 가족에 대한 중대한 범죄가 나옵니다.

「사람을 때려 죽인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출애굽기 21:12 · 두루새김

그러나 모든 죽음이 동일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다음 절은 일부러 죽인 것이 아닌 경우를 구별합니다.

「그러나 죽이려고 노린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그의 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게 했다면, 그가 달아날 곳을 네게 정해 주겠다.」출애굽기 21:13 · 두루새김

「나 하나님이 그의 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게 했다면」이라는 표현을 하나님이 무고한 사람의 죽음을 악의적으로 계획하셨다는 뜻으로 곧장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법에서 결정적인 구별은 사람을 죽인 사람이 미리 노리고 행동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본문은 일부러 죽인 것이 아닌 사람에게 달아날 곳을 마련하겠다고 합니다. 이 규정은 나중에 민수기 35:9–34와 신명기 19:1–13에서 더 자세하게 나타나는 도피성 제도와 연결됩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살인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 가족이 보복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부러 일으킨 것이 아닌 죽음까지 똑같이 보복한다면, 또 다른 부당한 죽음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달아날 장소를 마련하는 것은 그러한 위험을 제한하는 역할을 합니다.

반대로 계획적인 살인의 경우에는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이웃을 죽이려고 일부러 계략을 꾸며 죽인 자는 내 제단 곁에 있더라도 끌어내어 죽여야 한다.」출애굽기 21:14 · 두루새김

바로 앞 장에서 하나님은 제단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제단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장소가 범죄자의 책임을 없애 주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열왕기상 2:28–34에서는 요압이 제단의 뿔을 붙잡고 피하려 하지만 결국 죽임을 당합니다. 출애굽기 21:14와 관련하여 읽을 수 있는 후대의 사례입니다.

하나님의 제단은 하나님의 정의를 피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이어서 부모를 때리거나 저주하는 행위에도 사형이 정해집니다(21:15, 17). 오늘의 독자에게는 이러한 형벌이 지나치게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본문 역시 이 규정이 어느 정도의 행동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세부적인 재판 기준까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공동체의 질서에서 매우 중대한 문제로 취급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출애굽기 20:12의 명령이 이제 구체적인 처벌 규정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이 두 규정 사이에는 사람을 납치하는 행위에 관한 법이 있습니다.

「사람을 납치한 자는 그 사람을 팔았든 아직 데리고 있든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출애굽기 21:16 · 두루새김

본문은 노예를 사는 제도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납치하여 팔거나 붙잡아 두는 행위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정합니다.

이것이 당시의 모든 노예 소유를 금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 규정을 근거로 출애굽기 21장이 사실상 노예 제도를 폐지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을 강제로 납치하여 거래하는 일이 정당하게 재산을 얻는 방법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사람이 죽지 않았다면 책임도 사라지는가?

출애굽기 21:18–19 본문 →

이제 법은 사람들이 다투다가 서로를 다치게 하는 상황을 다룹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폭행했습니다. 피해자는 심하게 다쳐 누워 있어야 하지만 죽지는 않았습니다.

「맞은 사람이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밖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면, 때린 사람은 처벌을 받지 않는다. 다만 맞은 사람이 일하지 못한 동안의 손해를 갚고, 반드시 치료해 주어야 한다.」출애굽기 21:19 · 두루새김

여기서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표현을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폭행이 일어났을 때 문제는 가해자에게 어떤 벌을 줄 것인가에만 있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일상생활로 돌아가기까지 어떤 손해를 겪었는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가해자가 벌금을 한 번 내고 사건을 끝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회복과 관련된 책임도 남습니다.

같은 폭행이라도 피해자가 노예일 때는 어떻게 됩니까?

「그 노예는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 법 안에 남아 있는 불평등

출애굽기 21:20–21 본문 →

「어떤 사람이 자기 남자 노예나 여자 노예를 막대기로 때려 그 노예가 그 자리에서 죽으면, 반드시 주인에게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 벌해야 한다.」출애굽기 21:20 · 두루새김

이 규정은 주인이 노예를 때리는 상황을 전제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은 이 규정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 노예가 하루나 이틀 동안 살아 있으면, 주인에게 죽인 책임을 물어 벌해서는 안 된다. 그 노예는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다.」출애굽기 21:21 · 두루새김

본문은 「살아 있으면」이라고 말합니다. 노예가 다 나았거나, 더 이상 피해가 남지 않았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노예를 잃는 것은 자신의 경제적 재산을 잃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규정은 그러한 소유 관계를 처벌 여부의 판단에 반영합니다. 이것은 노예의 생명과 자유인의 생명이 법적으로 완전히 동등하게 취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20절은 노예를 죽인 주인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그러나 21절은 노예가 주인의 재산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제한합니다.

두 사실이 함께 존재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노예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으신다고 단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뒤의 26–27절은 노예의 몸이 다쳤을 때 자유를 주도록 정합니다. 그러나 이 법이 노예의 인격을 현대적 의미에서 자유인과 완전히 동등하게 보호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본문에 맞지 않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였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법이 왜 다른 사람을 노예로 소유하는 일을 여전히 인정합니까?

출애굽기 21장은 이 질문에 대한 완성된 철학적 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불평등을 전제하는 법과 제한하는 법을 나란히 기록합니다.

조금 더 깊이

20절의 「반드시 주인에게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 벌해야 한다」는 원문에서는 같은 어근을 반복하여 반드시 보복이나 처벌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형벌을 뜻하는지는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사형을 뜻한다고 이해하는 읽기도 있지만, 12절처럼 분명한 사형 선고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해석은 노예가 하루나 이틀 동안 살아 있는 사실을 주인이 처음부터 그를 죽이려고 때린 것은 아니라는 판단 근거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본문 자체는 주인의 의도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임신한 여자가 다쳤을 때 — 「목숨 대신 목숨」의 의미

출애굽기 21:22–25 본문 →

「남자들이 싸우다가 임신한 여자를 쳐서 아이가 나오게 되었으나 큰 피해가 없다면, 때린 사람은 반드시 벌금을 내야 한다. 그 여자의 남편이 요구하는 금액을 재판관들의 판결에 따라 내야 한다.」출애굽기 21:22 · 두루새김

여자는 싸움의 당사자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다툼에 휘말려 피해를 입습니다.

싸우던 사람들이 제삼자인 임신한 여자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벌금의 규모를 여자의 남편이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마음대로 집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재판관들의 판단이 개입합니다.

「눈 대신 눈」은 복수의 허가인가?

「그러나 큰 피해가 있다면, 너는 목숨 대신 목숨을,」 「눈 대신 눈을, 이 대신 이를, 손 대신 손을, 발 대신 발을,」 「불에 덴 상처 대신 불에 덴 상처를, 상처 대신 상처를, 멍 대신 멍을 갚아야 한다.」출애굽기 21:23–25 · 두루새김

이것은 흔히 동해보복법이라고 부르는 원리입니다. 피해와 그에 대한 대응이 서로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을 단순히 「누가 내 눈을 다치게 하면 나도 그 사람의 눈을 다치게 해도 된다」는 개인적인 복수의 허가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 법은 재판과 처벌의 문맥에 놓여 있습니다. 바로 앞절에서도 벌금은 재판관들의 판결에 따라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 피해에 비례하는 처벌을 요구합니다. 사소한 상처를 입혔다고 해서 상대방의 생명을 빼앗는 식의 무제한적인 보복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둘째, 실제 피해를 가볍게 취급해서도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잃게 만들었거나 몸에 중대한 손상을 입혔다면, 그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피해와 책임 사이에 서로 맞는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아이가 나오게 되었으나」의 원문을 문자적으로 옮기면 「그 여자의 아이들이 나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 자체는 아이들이 살아 있는 상태로 태어났는지, 조산했는지, 유산되었는지를 분명하게 구별하지 않습니다. 주요한 읽기는 두 방향으로 갈립니다. 하나는 아이가 유산되거나 출산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했지만, 여자에게 추가적인 심각한 피해가 없는 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벌금은 임신과 출산에 발생한 손실에 대한 처벌이고, 이어지는 「목숨 대신 목숨」은 여자가 죽거나 크게 다치는 경우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아이가 일찍 태어났지만 산모와 아이 모두에게 추가적인 심각한 피해가 없는 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큰 피해가 있다면」이라는 말은 산모나 아이가 크게 다친 것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문장만으로는 피해의 대상을 어느 한쪽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칠십인역 출애굽기 21:22–23은 아이가 아직 형상을 갖추지 않은 경우와 형상을 갖춘 경우를 구별합니다. 이는 히브리어 본문에 직접 밝혀져 있지 않은 발달 상태의 차이를 도입한 고대의 해석적 번역입니다. 따라서 칠십인역이 이러한 구별을 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곧 히브리어 본문의 원래 의미를 확정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중요한 갈림이 있기 때문에 22–23절을 현대의 특정한 생명윤리 논쟁에 대한 단일하고 확정적인 판결문처럼 사용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눈 대신 눈」의 원리가 실제로 어떻게 집행되었는지는 해석이 갈립니다. 하나는 문면 그대로 가해자에게 같은 신체적 손상을 가하는 처벌을 정한다고 읽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피해에 맞는 배상을 정하기 위한 법적 원리로 읽는 것입니다. 뒤에 이어지는 노예의 눈과 이에 관한 규정에서는 실제로 다른 방식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눈 대신 눈」을 언제나 문자적인 신체 보복이었다고 단정하거나, 처음부터 오직 돈으로 갚는 것만을 의미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모두 신중해야 합니다.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5:38–42에서 예수님께서 「눈 대신 눈, 이 대신 이」라는 표현을 직접 인용하시고, 보복에 관한 가르침을 새롭게 제시하십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21장의 본래 문맥에서는 우선 피해와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가 중심입니다. 신약의 가르침을 곧바로 끌어와 고대 이스라엘의 법적 문제를 없애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노예의 눈과 이 — 몸의 손상이 자유의 근거가 되다

출애굽기 21:26–27 본문 →

「어떤 사람이 자기 남자 노예나 여자 노예의 눈을 때려 못 쓰게 만들면, 그 눈에 대한 대가로 그 노예를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한다.」출애굽기 21:26 · 두루새김
「자기 남자 노예나 여자 노예의 이를 쳐서 빠뜨리면, 그 이에 대한 대가로 그 노예를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한다.」출애굽기 21:27 · 두루새김

바로 앞에서는 눈 대신 눈, 이 대신 이라는 원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주인이 노예의 눈이나 이를 다치게 했을 때 같은 몸의 손상을 주인에게 가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앞의 20–21절에서는 노예가 주인의 재산이라는 사실이 처벌을 제한하는 이유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노예의 몸을 손상시킨 주인이 그 노예에 대한 소유 관계를 잃습니다.

눈은 시력을 잃는 심각한 손상을 가리킵니다. 이는 비교적 작은 신체 부위지만, 그것을 빠뜨리는 폭행 역시 자유를 얻는 근거가 됩니다. 법은 주인의 폭력을 허용하는 범위를 단순히 생명을 빼앗지 않는 수준에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노예의 몸을 손상시킨 일에 대해 구체적인 결과를 부과합니다.

이 규정이 모든 형태의 폭행을 금지하거나, 노예가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완전한 권리를 보장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자유롭게 놓아주는 일이 이미 발생한 몸의 손상을 원래대로 되돌려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자유를 얻지만, 잃어버린 눈이나 이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주인의 재산으로 여겨지던 사람이, 주인의 폭력 때문에 그 소유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노예의 몸은 주인의 소유권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법적 보호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법은 이제 사람이 직접 저지른 폭행에서 다른 종류의 피해로 시선을 옮깁니다.

사람이 소유한 짐승 때문에 누군가 죽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가 사람을 죽였을 때 — 사고와 방치의 차이

출애굽기 21:28–32 본문 →

「소가 남자나 여자를 들이받아 죽이면, 그 소는 반드시 돌로 쳐 죽여야 한다. 그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소의 주인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출애굽기 21:28 · 두루새김

고대 농경사회에서 소는 중요한 재산이자 일하는 힘을 제공하는 짐승이었습니다. 밭을 갈거나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에 이용할 수 있었지만, 큰 몸집과 힘 때문에 사람에게 위험을 가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구절의 상황에서는 소가 전부터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었다는 설명이 없습니다. 즉, 주인이 그 위험을 미리 알고도 방치했다는 사실이 제시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는 조건이 바뀝니다.

「그러나 전부터 들이받는 버릇이 있는 소를 주인이 경고를 받고도 잘 지키지 않아, 그 소가 남자나 여자를 죽였다면, 그 소는 돌로 쳐 죽이고 주인도 사형에 처해야 한다.」출애굽기 21:29 · 두루새김

여기서 법은 결과만 보지 않습니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주인이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위험을 막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함께 판단합니다. 처음부터 예측하기 어려웠던 사고와, 이미 알려진 위험을 방치하여 발생한 사고는 같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을 알고도 방치하는 것은 단순히 운이 나빴다는 말로 넘길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주인이 사형을 받는 대신 자기 목숨을 살릴 돈을 내도록 정해진다면, 그는 정해진 금액을 모두 내야 한다.」출애굽기 21:30 · 두루새김

본문은 주인이 마음대로 돈을 내고 처벌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돈을 내도록 정해지는 경우에, 정해진 금액을 모두 내야 한다고 합니다.

계략을 꾸며 저지른 살인에 대해서는 제단 곁에 있더라도 끌어내어 죽여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 반면 여기서는 위험을 방치하여 사람을 죽게 한 주인에게 돈을 내도록 정해질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즉, 두 사건 모두 죽음이 발생했지만, 법은 피해를 일으킨 행동의 성격과 책임의 형태를 구별합니다.

31절은 피해자가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같은 법을 적용하도록 합니다. 이것은 어른 남자만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그런데 32절에서는 다시 노예의 법적 지위가 문제 됩니다.

「소가 남자 노예나 여자 노예를 들이받으면, 소의 주인은 그 노예의 주인에게 은 서른 셰켈을 주어야 한다. 그 소는 돌로 쳐 죽여야 한다.」출애굽기 21:32 · 두루새김

이것은 노예가 주인의 재산이라는 법적 구조가 다시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앞에서는 자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다루었지만, 여기서는 노예의 죽음이 주인의 재산상 손실과 연결됩니다.

그렇다고 이 법이 노예의 생명을 아무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한다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노예를 들이받아 죽인 소도 돌로 쳐 죽여야 하며, 소의 주인에게 배상 책임이 부과됩니다. 그러나 자유인과 노예가 같은 방식으로 취급되는 것도 아닙니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배상이 그 사람의 주인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은, 노예 제도가 인간을 다른 인간의 경제적 소유로 취급한다는 점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덮지 않은 구덩이와 위험한 소 — 피해가 발생하기 전의 책임

출애굽기 21:33–36 본문 →

이제 법은 사람의 생명에서 가축과 재산의 손실로 이동합니다.

「어떤 사람이 구덩이를 열어 두거나 새로 파고 덮지 않아서 소나 나귀가 거기에 빠지면,」 「구덩이 주인이 그 손해를 갚아야 한다. 짐승의 주인에게 돈을 주고, 죽은 짐승은 구덩이 주인이 가져야 한다.」출애굽기 21:33–34 · 두루새김

여기서는 누군가가 직접 다른 사람의 가축을 공격한 것이 아닙니다. 구덩이를 열어 두거나 새로 파고 덮지 않은 일이 문제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때리지 않아도 피해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위험한 상태를 만들어 놓고 그대로 방치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손실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법은 그러한 경우에도 책임을 묻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고가 났으니 사과하라는 수준이 아닙니다. 피해자의 경제적 손실을 보상하고, 죽은 짐승의 소유 관계까지 정리하는 법적 판단입니다.

그다음에는 소끼리 충돌한 사건이 나옵니다.

「한 사람의 소가 이웃의 소를 들이받아 죽이면, 두 주인은 살아 있는 소를 팔아 그 돈을 반씩 나누어야 한다. 죽은 소도 반씩 나누어야 한다.」출애굽기 21:35 · 두루새김

이 경우에는 한쪽 소가 다른 소를 죽였지만, 그 소가 전부터 위험했다고 알려져 있었다는 설명은 없습니다. 그래서 손실을 두 주인이 나누도록 합니다.

그러나 소의 위험성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러나 그 소가 전부터 들이받는 버릇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도 주인이 잘 지키지 않았다면, 그 주인은 죽은 소 대신 다른 소를 반드시 주어야 한다. 죽은 소는 손해를 갚은 주인의 것이 된다.」출애굽기 21:36 · 두루새김

21:28–29에서는 소가 사람을 죽인 경우를 다루었습니다. 21:35–36에서는 소가 다른 소를 죽인 경우를 다룹니다. 두 사건의 대상은 다르지만 판단의 구조는 비슷합니다.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위험으로 발생한 사고와, 이미 위험을 알고도 방치한 사건을 구별합니다.

사람은 자기 재산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재산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을 알고 있다면, 그 위험을 줄이기 위한 책임도 함께 져야 합니다.

소유권은 다른 사람에게 발생할 위험을 무시할 권리가 아닙니다.

노예에 관한 규정에서는 주인이 사람을 소유하는 권한에 일정한 제한이 있었습니다. 가축과 구덩이에 관한 규정에서는 소유자가 자신의 재산과 시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을 때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대상과 책임의 성격은 다르지만, 자신의 소유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발생한 피해와 무관할 수는 없다는 점이 공통으로 나타납니다.

훔친 짐승 한 마리에 왜 네다섯 마리로 배상해야 할까?

출애굽기 21:37 본문 →

「어떤 사람이 소 한 마리나 양이나 염소 한 마리를 훔쳐 잡거나 팔았다면, 소 한 마리는 소 다섯 마리로 갚아야 한다. 양이나 염소 한 마리는 양이나 염소 네 마리로 갚아야 한다.」출애굽기 21:37 · 두루새김

이 장의 마지막 법은 도둑질에 관한 것입니다.

구덩이에 빠진 짐승의 경우에는 피해에 대한 돈을 지급하게 했습니다. 소가 다른 소를 죽인 경우에는 손실을 나누거나 죽은 소 대신 다른 소를 주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훔친 가축을 잡거나 팔았다면 단순히 한 마리를 돌려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앞의 사건들은 사고나 관리를 소홀히 하여 발생한 손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른 사람의 재산을 일부러 훔쳤습니다. 더욱이 훔친 짐승을 잡거나 팔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여러 배에 이르는 배상은 피해자의 손실을 채우는 기능과 함께 도둑질을 억제하는 기능을 지닐 수 있습니다.

다만 왜 소에는 다섯 배, 양과 염소에는 네 배가 적용되는지는 본문이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소가 농업과 노동에서 더 큰 경제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이유만으로 이 숫자의 차이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이 법은 출애굽기 22장으로 이어지는 재산 보호 규정들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의 절 구분에서는 21:37에 놓여 있지만, 일부 성경의 절 구분에서는 22:1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다시 십계명의 「도둑질하지 마라」라는 명령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 짧은 명령이 이제 구체적인 사건이 됩니다.

도둑질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법이 정한 배상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재산을 존중하라는 계명은 실제로 재산을 침해했을 때 그 손실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집니다.

상처 입은 사람에게 남아 있는 책임

출애굽기 21:1–37 본문 →

잘못에 대한 책임은 가해자가 벌을 받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피해를 입은 사람과 그 사람의 삶에 어떤 손실이 발생했는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21장은 모든 피해자가 똑같은 보호를 받는 사회를 완성된 모습으로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전히 주인의 재산으로 계산되고, 어떤 사람은 가족과 자유를 동시에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법은 그들을 실제 삶의 책임 앞으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이 장에서 가장 조용하면서도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는 19절에 있습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때렸습니다. 맞은 사람은 죽지 않았지만 몸을 다쳐 누워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는 다시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밖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법은 그가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사건이 끝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때린 사람은 피해자가 일하지 못한 동안의 손해를 갚아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남았다고 해서 그에게 입힌 상처에 대한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남은 사람이 다시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그 장면에서도, 법은 그가 겪은 손실과 아직 필요한 치료를 잊지 않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