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37장

이 장의 자리 · 25–40장 · 성막과 제사장

금으로 만든 것들 가운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성막의 가장 거룩한 곳에는 무엇이 놓일까요?

금으로 덮인 궤가 있고, 그 위에는 날개를 펼친 두 그룹이 있습니다. 그룹들은 서로 마주 보며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에는 정작 하나님의 형상이 없습니다.

고대 근동의 신전에서는 신의 형상이 그 신이 함께 있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37장은 여호와야훼의 거처를 만들면서도 그분의 모습을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궤와 그 위의 속죄판을 만듭니다.

출애굽기 37장은 그 약속을 담아낼 기구들이 하나씩 만들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앞 장에서는 성막의 휘장과 널판, 입구를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제 그 안에 놓일 기구들이 등장합니다. 궤에서 시작하여 상과 등잔대를 거쳐 향을 피울 제단으로 이어지는 순서는 성막 안에서 이루어질 만남과 섬김을 차례로 생각하게 합니다.

이 장에서는 아직 아무도 궤에 증거판을 넣지 않고, 상에 빵을 놓지 않으며, 등불을 켜거나 향을 피우지 않습니다. 모든 기구가 만들어지지만 아직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37장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면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령하신 예배가 가능하도록 준비하는 장면입니다. 그 준비의 세부 사항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어떤 관계를 자기 백성과 맺으려 하시는지 조금씩 드러납니다.

읽는 시간 16분소단락 637장 본문 읽기 →

궤와 속죄판 —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하나님을 만날 자리를 만들다

출애굽기 37:1–9 본문 →

37장은 브살렐의 이름으로 시작합니다.

브살렐이 아카시아나무로 궤를 만들었습니다. 길이는 두 암마 반, 너비는 한 암마 반, 높이는 한 암마 반이었습니다.출애굽기 37:1 · 두루새김

앞 장에서 여러 지혜로운 기술자들이 함께 일하는 모습이 강조되었다면, 여기서는 대표 기술자인 브살렐이 직접 언급됩니다. 다른 기술자들의 참여는 이미 36장에서 확인되었으며, 이 장은 브살렐을 중심으로 제작 과정을 서술합니다.

궤는 아카시아나무로 만들고 안팎에 순금을 입힙니다. 둘레에는 금 테두리를 두르고, 네 발에는 금 고리를 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무엇을 넣을 것인지 생각하면 궤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출애굽기 25:16, 21에 따르면 궤에는 여호와야훼가 주실 증거를 넣어야 합니다. 출애굽기 31:18과 34:28–29을 함께 읽으면 그것이 언약의 말씀이 기록된 돌판과 연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모세가 증거판을 궤 안에 넣는 장면은 40:20에서 나옵니다.

이스라엘과 여호와야훼의 관계를 정하는 언약의 말씀을 간직할 궤입니다.

모세는 백성의 배반을 목격하고 처음 받은 돌판을 깨뜨렸습니다(32:19). 이후 여호와야훼는 다시 돌판을 준비하게 하셨고 언약의 말씀을 새겨 주셨습니다(34:1, 27–28).

이제 그 말씀이 놓일 궤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배반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로운 돌판과 그것을 담을 궤에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셈입니다.

그 막대들을 궤 양옆의 고리들에 끼워 궤를 나를 수 있게 했습니다.출애굽기 37:5 · 두루새김

궤는 가장 거룩한 공간에 놓일 기구이지만, 한 장소에 영원히 고정될 구조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궤를 나를 막대들은 덧붙이는 장식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설계에 포함된 필수 부품입니다.

성막의 가장 깊은 곳에 놓일 궤조차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현재 처지와 연결됩니다. 그들은 아직 정착하지 않은 광야의 백성입니다. 여호와야훼의 거처는 그들이 지나가는 길 위에 세워질 것입니다.

출애굽기 25:15에서는 궤를 나르는 막대들을 궤의 고리에서 빼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뒤에 민수기 4:15에서는 운반하는 사람들이 거룩한 물건에 직접 손대지 못하도록 합니다.

궤는 이동하도록 만들어졌지만, 그 이동에도 정해진 방식이 있습니다.

궤의 뚜껑이 왜 「속죄판」인가?

6절부터는 궤 위에 놓일 속죄판이 등장합니다.

순금으로 속죄판을 만들었습니다. 길이는 두 암마 반, 너비는 한 암마 반이었습니다.출애굽기 37:6 · 두루새김

속죄판의 길이와 너비는 궤의 윗면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물리적으로는 궤 위를 덮는 판이지만, 그 역할은 단순한 뚜껑 이상입니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속죄판 위와 그 앞에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립니다(레위기 16:14–15). 속죄판은 이스라엘의 죄를 다루는 중요한 의식과 연결되는 장소입니다.

궤 안에는 언약의 말씀이 놓이고, 그 위에는 속죄의 의식이 이루어질 판이 놓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백성이며, 동시에 그 말씀을 어긴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백성입니다. 성막의 가장 깊은 곳에 놓일 궤와 속죄판은 이 두 현실과 연결됩니다.

두 그룹은 무엇을 바라보는가?

속죄판 양 끝에는 금으로 만든 그룹 둘이 놓입니다.

그룹은 각각 따로 만들어 붙이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금을 두드려 속죄판과 한 덩어리를 이루도록 만듭니다.

그룹들은 날개를 위로 펼쳐 속죄판을 덮고 있었습니다. 서로 마주 보면서 얼굴은 속죄판 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출애굽기 37:9 · 두루새김

출애굽기 25:22에서 여호와야훼가 말씀하신 자리는 속죄판 위, 두 그룹 사이입니다. 하나님이 그곳에서 모세를 만나 말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금송아지와 궤의 차이가 다시 선명해집니다.

금송아지 사건에서 이스라엘은 금으로 형상을 만들어 신적인 존재를 눈에 보이게 나타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브살렐은 같은 금을 사용하면서도 여호와야훼의 모습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신 궤와 속죄판, 그룹들을 만들 뿐입니다.

성막의 가장 깊은 곳에서 중요한 것은 금으로 만든 형상이 아니라, 그곳에서 말씀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제 제작 기록은 궤에서 상으로 옮겨 갑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지속적으로 무엇을 놓아 둘 것인가 하는 문제로 시선이 이동합니다.

조금 더 깊이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여호와야훼가 그룹들 위에 앉으신 분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사무엘상 4:4; 이사야 37:16). 이런 표현을 고려하면 궤와 그룹은 하나님이 왕이심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자리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37장은 그룹들의 정확한 생김새나 그 사이의 구조를 왕좌 형태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상 — 하나님 앞에 늘 놓여 있어야 할 것

출애굽기 37:10–16 본문 →

궤 다음에 만들어지는 것은 상입니다.

상 역시 아카시아나무로 만들고 순금으로 입힙니다. 길이는 두 암마, 너비는 한 암마, 높이는 한 암마 반입니다. 네 모서리에는 금 고리를 달고, 상을 나를 막대들을 끼울 수 있도록 합니다.

상 둘레에 너비가 한 토파흐인 틀을 만들고, 그 틀 둘레에 금 테두리를 만들었습니다.출애굽기 37:12 · 두루새김

토파흐(⁨טֹפַח⁩)는 손바닥 너비에 해당하는 고대의 길이 단위입니다. 그러나 이 틀이 상판 가장자리에 둘린 것인지, 다리 사이를 연결하는 것인지는 확실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원문에서는 한 토파흐가 그 틀의 높이인지 너비인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상의 정확한 형태를 이 기록만으로 복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틀과 고리, 상을 나를 막대들의 위치가 세밀하게 기록된다는 것은 이 상이 장식만을 위한 물건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실제로 사용하고 운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구입니다.

그렇다면 이 상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출애굽기 25:30에서 여호와야훼는 이 상 위에 자신 앞에 놓는 빵을 늘 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빵은 흔히 진설병이라고 불리며, 레위기 24:5–9에서는 열두 개의 빵을 만들어 두 줄로 놓고 안식일마다 새롭게 차려 놓도록 명령합니다.

그 빵은 여호와야훼 앞에 놓이지만, 결국 제사장들이 거룩한 곳에서 먹습니다.

상은 하나님이 사람처럼 배고픔을 채우시기 위해 마련하신 식탁이 아닙니다. 시편 50:12–13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이 굶주리신다고 해도 인간에게 말씀하실 필요가 없으며, 제물로 바친 짐승의 고기나 피를 드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일상적인 먹을거리가 예배와 연결되고, 여호와야훼 앞에 계속 놓이는 것이 이 의식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빵의 수가 열둘이라는 사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 연결하여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레위기 24장은 그 숫자를 열두 지파의 상징이라고 직접 해설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이 분명히 밝히는 것은 이 빵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나오는, 계속 지켜야 할 언약의 규례라는 점입니다(레위기 24:8).

궤는 여호와야훼가 말씀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자리와 연결됩니다. 상은 이스라엘이 그분 앞에 계속 머물며 예배해야 할 관계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특별한 순간의 놀라운 경험으로만 남아 있지 않도록, 상 위에는 반복해서 새롭게 놓이는 빵이 있어야 합니다.

상 위에는 왜 여러 그릇이 필요한가?

16절은 상 위에 놓을 기구들을 열거합니다.

상 위에 놓을 기구들도 순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접시들과 작은 그릇들과 대접들과 부어 바칠 때 쓸 병들이었습니다.출애굽기 37:16 · 두루새김

이 그릇들의 정확한 모양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특히 「작은 그릇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포트(⁨כַּף⁩)는 움푹한 그릇으로도, 숟가락처럼 생긴 기구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어 바치는 일과 관련된 기구가 언급되는 것은 상이 단순히 빵을 올려 두는 가구 이상으로 예배 의식의 섬김에 사용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작업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상이 본래의 목적에 맞게 사용되려면 접시와 그릇들까지 필요합니다.

이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구들이 가리키는 것은 단 한 번의 거대한 행사가 아니라 앞으로 계속되어야 할 예배입니다.

등잔대 — 빛을 비추는 기구에 꽃을 피우다

출애굽기 37:17–24 본문 →

37장에서 가장 자세히 묘사되는 기구는 등잔대입니다.

궤는 아홉 절, 상은 일곱 절에 걸쳐 기록되고, 등잔대에는 여덟 절이 사용됩니다. 무엇보다 등잔대의 가지와 잔 모양 장식, 둥근 마디와 꽃 장식들의 배치가 매우 세밀하게 묘사됩니다.

그런데 첫 절부터 만드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순금을 두드려 등잔대를 만들었습니다. 받침과 줄기와 잔 모양 장식들과 둥근 마디들과 꽃 장식들이 모두 등잔대와 한 덩어리였습니다.출애굽기 37:17 · 두루새김

궤와 상은 아카시아나무로 기본 형태를 만든 뒤 금을 입혔습니다. 가지와 잔 모양 장식과 둥근 마디, 꽃 장식들이 각각 따로 만들어져 조립되는 구조가 아닙니다. 모두 하나의 금속 구조를 이룹니다.

하나의 물건을 만든다는 것은 여러 부품을 정확하게 연결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재료 자체에서 복잡한 형태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이토록 복잡한 모양을 만들었을까요?

등잔대는 나무처럼 생겼다

등잔대에는 가운데 줄기와 여섯 개의 가지가 있습니다. 가운데 줄기를 기준으로 세 가지가 한쪽으로, 세 가지가 다른 쪽으로 뻗습니다.

각 가지에는 아몬드꽃 모양의 잔 장식 세 개가 있으며, 둥근 마디와 꽃 장식들이 함께 묘사됩니다. 가운데 줄기에도 네 개의 잔 장식이 있습니다.

등잔대는 단순히 등잔 일곱 개를 일정한 높이에 고정시키는 받침대가 아닙니다. 식물이 자라나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는 듯한 형태로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실제로 빛을 밝히는 기구에 생명의 형태를 부여한 특별한 설계입니다.

창세기 1:11–12에서는 땅에서 식물이 나고, 씨를 맺고, 열매를 맺는 생명의 질서가 나타납니다. 창세기 2:9에서는 하나님이 동산에 여러 아름다운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성막 안의 등잔대가 식물의 형상을 띠고 있다는 사실은 성막의 장식을 창조 세계의 풍요와 생명이라는 주제 안에서 읽을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특히 성막의 휘장에는 그룹이 수놓아져 있고, 안쪽에는 식물 형태를 지닌 등잔대가 놓입니다. 이 조합은 창세기의 동산과 성막이 주제상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다만 이것을 곧바로 등잔대가 에덴의 생명나무를 직접 재현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출애굽기 37장은 그런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쓰이는 기능과 아름다움이 하나의 형태 안에서 만납니다.

꽃 모양의 등잔대에 등불이 놓인다

23절에서 마침내 등잔 일곱 개가 만들어집니다.

등잔대에 놓을 등잔 일곱 개와 집게들과 불똥을 받는 그릇들을 순금으로 만들었습니다.출애굽기 37:23 · 두루새김

출애굽기 27:20–21은 이스라엘 자손이 등불을 위한 순수한 올리브기름을 가져오도록 명령합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회막 안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그 등불을 돌보아야 합니다.

기름이 필요하고, 심지를 관리해야 하며, 불똥을 처리할 도구도 필요합니다. 그런 까닭에 등잔대와 함께 집게와 불똥을 받는 그릇도 만들어집니다.

금으로 만든 아름다운 등잔대조차 사람이 계속 돌보지 않으면 본래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상 위의 빵은 정기적으로 새롭게 놓여야 하고, 등잔대의 등불도 정해진 방식으로 관리되어야 합니다. 그 섬김에는 특별한 종교적 순간뿐 아니라 빵을 마련하고, 기름을 준비하고, 등잔을 관리하는 일상적인 작업이 포함됩니다.

순금 한 키카르로 등잔대와 거기에 딸린 모든 기구를 만들었습니다.출애굽기 37:24 · 두루새김

키카르는 고대의 무게 단위입니다. 정교한 구조와 많은 양의 귀금속, 세밀한 장식이 모두 등불을 밝히는 일을 위해 사용됩니다.

조금 더 깊이

37:19에서 「아몬드꽃 모양」으로 옮긴 말은 메슈카딤(⁨שָׁקַד⁩)입니다. 이 표현은 아몬드와 관계있지만 정확히 꽃을 본뜬 것인지, 열매 모양인지, 아몬드 무늬로 장식했다는 뜻인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향을 피울 제단 — 하나님 앞에서 끊어지지 않을 섬김

출애굽기 37:25–28 본문 →

등잔대 다음에는 향을 피울 제단이 등장합니다.

길이와 너비는 각각 한 암마이고, 높이는 두 암마입니다. 정사각형이며, 제단의 뿔들은 제단과 한 덩어리로 만들어집니다. 윗면과 옆면, 뿔들까지 금으로 입히고 둘레에는 금 테두리를 만듭니다.

다음 장에서 만들어지는 번제단은 구리로 입힌 큰 제단입니다. 그러나 이곳의 향을 피울 제단은 금으로 입힌 작은 제단입니다.

출애굽기 30:6은 향을 피울 제단을 증거궤 앞의 휘장 바깥쪽에 놓도록 명령합니다. 따라서 이 제단은 성소 안에 있으면서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 가까이에 놓입니다.

출애굽기 30:7–8에 따르면 아론은 아침에 등잔을 손질할 때 향을 피우고, 저녁에 등불을 밝힐 때에도 향을 피워야 합니다. 등잔대의 관리와 향을 피우는 일이 아침과 저녁의 반복적인 섬김 속에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0:9은 이 제단에 다른 향이나 번제물, 곡식 제물을 올리지 말고 부어 바치는 제물도 붓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이 제단은 예배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바치는 장소가 아닙니다.

향을 피울 제단으로 구별된 곳입니다.

뿔은 단순히 장식으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30:10에서는 아론이 해마다 한 번 속죄의 피로 이 제단의 뿔들을 위해 속죄 의식을 행하도록 명령합니다. 따라서 향을 피울 제단에는 매일 반복해서 향을 피우는 일과 해마다 이루어지는 속죄 의식이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향이 기도와 연결됩니다. 시편 141:2에서 시인은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향처럼 놓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37장 자체는 향이 기도를 상징한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 향은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신 성소의 섬김에 사용될 실제 향입니다.

여호와야훼를 향한 예배는 사람의 감정이 움직이는 순간에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아침과 저녁, 정해진 자리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일입니다.

금고리 두 개를 만들어 제단의 테두리 아래 양옆에 하나씩 달았습니다. 제단을 나를 막대들을 그 고리에 끼우게 했습니다.출애굽기 37:27 · 두루새김

두루새김에는 궤와 상의 고리는 네 개, 향을 피울 제단의 고리는 두 개로 기록됩니다. 제단의 고리는 「양옆에 하나씩」 달았다고 옮겼습니다. 히브리어는 양쪽에 두 개씩으로도 읽힙니다.

공통적으로 운반을 고려하면서도 각 기구의 구조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만든다고 해서 모두 똑같이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 다른 목적과 형태에 맞추어 각각의 기구를 완성하는 일입니다.

거룩한 기름과 깨끗한 향 — 성막은 향기까지 준비한다

출애굽기 37:29 본문 →

37장은 특별한 물건 하나를 더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기름부음에 쓸 거룩한 기름과 향기로운 재료를 섞은 깨끗한 향을 만들었습니다. 향 재료를 섞는 장인의 솜씨로 만든 것이었습니다.출애굽기 37:29 · 두루새김

단단한 나무나 금속과 달리 기름과 향은 일정한 형태를 오래 유지하는 건축 부품이 아닙니다. 정해진 재료를 섞어 만드는 물질입니다. 그럼에도 이 작업은 앞의 기구들을 만드는 일과 함께 기록됩니다.

출애굽기 30:22–33에 따르면 기름부음에 쓸 기름은 회막과 기구들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거룩하게 구별하는 데 사용됩니다. 기구들은 특별한 용도를 위해 구별되어야 하고, 그 안에서 섬길 사람들 역시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반면 깨끗한 향은 성소에서 태워 올릴 향입니다. 출애굽기 30:34–38에서는 그 향의 재료와 만드는 방법을 정합니다. 그리고 같은 배합으로 개인이 자신을 위해 향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기름부음에 쓸 기름에도 비슷한 제한이 적용됩니다.

왜 향기로운 물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제한할까요?

그 이유는 향기 자체에 어떤 신비한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지 않습니다. 본문의 강조점은 그것들이 여호와야훼를 위해 거룩하게 구별되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같은 재료라도 일반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과 거룩한 목적을 위해 구별하여 사용하는 것은 다릅니다.

거룩함은 귀금속의 비싼 가격이나 향 재료를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으로 구별되었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물건들은 무엇을 기다리는가?

출애굽기 37:1–29 본문 →

이 장에서 완성되는 기구들은 모두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물건들을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그 물건들이 쓰이는 자리에서 자신과 백성 사이의 관계가 지속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먼저 금을 모아 하나님을 자기들 가운데 모셔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그들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하셨고, 그 약속에 따라 필요한 기구를 만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성막은 사람이 원하는 순간에 하나님을 불러내기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사람은 궤를 만들 수 있지만, 그곳에서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여호와야훼이십니다. 사람은 등잔대와 기름을 준비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이 함께 계시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브살렐은 순금 한 덩어리를 두드려 줄기를 만들고 여섯 가지를 뻗게 했습니다. 가지마다 아몬드꽃을 닮은 잔 장식과 둥근 마디와 꽃 장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놓일 등잔 일곱 개와 집게와 불똥을 받는 그릇까지 준비했습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등불은 켜지지 않았습니다.

금으로 만든 가지들은 성막 안에 놓일 때를 기다리고 있고, 그 끝의 등잔들은 저녁이 되어 불을 밝힐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7장은 바로 그 준비된 등잔대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 수 있는 것은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그것들은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신 자리에서, 그분 앞에 드리는 섬김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