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1–2장 · 고레스의 명령과 귀환

돌아온 사람들의 이름

에스라 2장은 성경에서 가장 읽기 어려운 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낯선 이름들이 이어지고, 각 가문의 사람 수가 기록되며, 성전에서 일할 사람들과 가축의 수까지 나열됩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어쩌면 명단에 이름이 적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이름을 명부에서 찾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왜 이처럼 엄격한 확인이 필요했을까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아오게 하셨다면, 함께 돌아온 모든 사람이 곧바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는 없었을까요?

이 질문은 에스라 2장을 단순한 귀환자 명단이 아니라, 무너진 나라의 백성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시 세워 가는 이야기로 읽게 합니다.

1장에서는 귀환을 허락하는 칙령이 선포되었습니다. 2장은 그 허락에 따라 실제로 돌아온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제 관심은 제국의 왕이 아니라, 이름과 가문과 고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로 옮겨 갑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82장 본문 읽기 →

포로가 아니라, 자기 성읍으로 돌아온 사람들

에스라 2:1–2 본문 →

다음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바벨론으로 끌려가 포로로 살다가 돌아온 유다 지방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와 각자 자기 성읍으로 갔습니다.에스라 2:1 · 두루새김

첫 절에는 서로 반대되는 두 움직임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느부갓네살에게 끌려간 일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성읍으로 돌아온 일입니다. 같은 사람들이 한때는 다른 나라 왕의 힘에 의해 고향을 떠나야 했지만, 이제는 자신들이 살던 땅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서술자는 그들을 독립된 이스라엘 왕국의 국민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유다 지방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유다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다윗 왕조의 독립 왕국을 되찾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속한 땅은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그럼에도 본문은 그들이 「각자 자기 성읍으로 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국은 그들이 행정상 어디에 속하는지 정할 수 있지만, 그들이 누구였으며 어디에서 왔는지에 관한 기억까지 대신 정하지는 못합니다. 돌아온 사람들에게 고향은 단순히 거주할 장소가 아니라, 자신들의 역사를 다시 이어 갈 장소였습니다.

왕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지도자와 함께

2절은 귀환을 이끈 지도자들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스룹바벨, 예수아, 느헤미야, 스라야, 르엘라야, 모르드개, 빌산, 미스발, 비그왜, 르훔, 바아나.

이 가운데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이후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에스라 3:2는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제단을 세우는 일을 이끌었다고 기록합니다. 학개 1:1은 스룹바벨을 유다 총독으로,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를 대제사장으로 소개합니다.

한편 여기 등장하는 느헤미야와 모르드개를 각각 느헤미야서의 주인공과 에스더서의 모르드개와 곧바로 같은 사람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같은 사람임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귀환은 이름 없는 군중의 막연한 이동이 아니라, 지도자들과 여러 가문이 참여한 조직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가문의 이름과 고을의 이름

에스라 2:3–35 본문 →

3절부터는 수많은 가문 이름이 이어집니다.

바로스, 스바댜, 아라, 바핫모압, 엘람, 삿두, 삭개…. 그러다가 21절부터는 익숙한 지명들이 등장합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은 123명이었습니다.에스라 2:21 · 두루새김
아나돗 사람들은 128명이었습니다.에스라 2:23 · 두루새김
여리고 사람들은 345명이었습니다.에스라 2:34 · 두루새김

처음에는 조상이나 가문의 이름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구별하는 듯하다가, 이어서는 출신 성읍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구별합니다. 모든 이름의 성격이 분명히 구분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이름은 조상을 가리키는지 지역을 가리키는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조상의 이름이 중요한 소속의 기준이었고, 다른 사람에게는 자기 가문의 고향이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가령 아나돗은 예레미야가 태어난 제사장들의 성읍이었습니다(예레미야 1:1).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 고향 아나돗에 있는 친족과 관련된 토지를 사는 상징적인 행동을 했습니다(예레미야 32:6–15).

그 행동에는 유다가 폐허가 되더라도 사람들이 다시 이 땅에서 밭과 집을 사고팔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담겨 있었습니다. 에스라 2장의 아나돗 사람들은 바로 그 지역의 이름으로 기록됩니다.

이 명단이 예레미야가 토지를 산 사건을 직접 언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두 본문을 함께 읽으면 의미 있는 연결이 드러납니다. 한때 나라가 멸망해 땅을 잃을 위기에 처했던 사람들의 후손이, 이제 다시 그 땅의 성읍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이름의 지속이다

가문별 규모도 매우 다양합니다. 아델 자손은 98명이고, 아스마웻 사람들은 42명입니다. 반면 바로스 자손은 2,172명이며, 스나아 자손은 3,630명에 이릅니다.

이 차이를 단순히 어느 가문이 더 신실했는지, 어느 지역이 하나님께 더 큰 복을 받았는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근거는 없습니다. 본문은 가문별 인원 차이가 생긴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명단은 큰 집단들만 기억하는 승리의 기록이 아닙니다.

몇십 명의 이름 없는 사람들까지도 자신들이 속한 가문과 성읍의 이름 아래 보존하는 기록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족보는 단순한 혈통에 관한 관심만은 아니었습니다. 조상의 이름은 땅의 상속, 친족 관계, 공동체의 소속, 때로는 특정한 일을 맡을 자격과 연결되었습니다. 민수기 26:52–56에서는 지파와 가문에 따라 땅을 나누도록 규정합니다. 여호수아서에서도 각 지파의 땅과 성읍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됩니다.

그런 배경에서 귀환자들의 이름과 성읍을 기록하는 일은 공동체를 다시 조직하기 위한 현실적인 기초가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유배 이전에 누가 어느 땅을 소유했는지 그대로 되돌려 놓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에스라 2장은 개별 가문의 토지 소유권을 증명하는 문서가 아니라, 누가 귀환 공동체에 속했는지를 기록하는 명단입니다.

유배는 사람들을 땅에서 떼어 놓았지만, 그들 모두의 가문과 고향에 관한 기억까지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이제 다시 공동체를 조직하는 데 사용됩니다.

성전을 세우기 전에, 그곳에서 일할 사람들을 세다

에스라 2:36–58 본문 →

35절까지가 주로 가문과 지역에 따른 명단이었다면, 36절부터는 다른 기준이 나타납니다.

제사장, 레위 사람, 노래하는 사람, 문지기, 성전 봉사자, 솔로몬의 종들의 자손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큰 차이 — 36–42절

제사장들의 수는 네 가문으로 구분되어 기록됩니다. 여다야 자손 973명, 임멜 자손 1,052명, 바스훌 자손 1,247명, 하림 자손 1,017명입니다. 이 수를 합하면 4,289명입니다.

그런데 40절에 기록된 레위 사람들은 74명뿐입니다. 이어 노래하는 아삽 자손 128명과 문지기들 139명이 별도로 나옵니다. 본문은 그 원인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레위 사람이라는 넓은 범주 안에서도 제사장과 노래하는 사람, 문지기의 역할은 구별되었습니다. 민수기 3–4장은 레위 집안들이 성막과 관련하여 서로 다른 책임을 맡았음을 보여주고, 역대상 23–26장은 성전 예배를 위한 조직과 맡은 일들을 자세히 다룹니다.

돌아온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전 건물만이 아니었습니다.

제물을 드릴 제사장, 성전의 문을 지킬 사람, 예배의 노래를 맡을 사람, 성전 운영을 도울 사람들도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명단은 공동체가 과거의 예배 질서를 기억하면서 새로운 성전을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삽의 이름은 왜 남아 있을까?

41절에서 노래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아삽 자손」으로 소개됩니다. 아삽은 다윗 시대 성전 음악 전통과 연결된 인물입니다. 역대상 25:1–2는 다윗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들을 구별하여 음악을 맡게 한 일을 기록합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고, 왕국도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노래를 맡았던 집안의 이름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아삽 자손」이라는 표현에는 자신들이 이전 세대의 예배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길게 이어지는 성전 봉사자들의 이름 — 43–58절

43절부터 57절까지는 성전 봉사자들과 솔로몬의 종들의 자손의 이름이 이어집니다. 이 부분은 앞의 제사장 명단보다 훨씬 길지만, 개별 가문별 인원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시하, 하수바, 답바옷, 게로스, 시아하, 바돈…. 한 명 한 명의 조상 이름은 남아 있지만, 그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담당했는지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에스라 8:20은 이들을 레위 사람들을 돕는 봉사자들로 소개합니다. 그러나 에스라 2장만으로 이 모든 집단이 역사적으로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솔로몬의 종들의 자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집단의 이름은 오래된 왕실 또는 성전 봉사의 전통을 떠올리게 하지만, 각 가문의 구체적인 기원을 이 장에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제사장들만 기록하고 나머지는 성전 일을 돕는 사람들이라고 묶어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봉사자들의 이름을 길게 나열하고, 솔로몬의 종들의 자손을 별도로 기록한 뒤, 이 두 집단의 총수를 392명이라고 밝힙니다.

여기에는 성전이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관심이 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만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집단이 각자 맡은 일을 통해 예배의 공간을 유지합니다.

이것을 모든 일을 맡은 사람들이 동등한 지위를 누렸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제사장과 성전 봉사자들 사이에는 맡은 일에 분명한 구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명단은 성전의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들뿐 아니라 이름이 덜 알려진 봉사 집단들까지 공동체의 역사 안에 기록합니다.

이제 명단은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드러냅니다.

이름을 찾지 못한 사람들

에스라 2:59–63 본문 →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다음 사람들은 자기들이 어느 집안의 후손인지,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인지 밝히지 못했습니다.에스라 2:59 · 두루새김

여기서 명단의 흐름이 달라집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먼 길을 이동했고, 유다로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들임을 족보로 증명할 수 없었습니다. 본문은 들라야, 도비야, 느고다 자손 652명을 그 집단으로 기록합니다.

59절은 그들이 이스라엘에 속하는지 「밝히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지,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차이는 이후 제사장들의 문제를 이해할 때도 중요합니다.

제사장에게 족보가 특별히 중요했던 이유

제사장 집안의 자손 가운데서는 하바야 자손, 학고스 자손, 바르실래 자손이 그러했습니다. 바르실래 자손의 조상은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가운데 한 사람과 결혼하여, 그 집안의 이름을 따라 바르실래라고 불렸습니다.에스라 2:61 · 두루새김

제사장직은 특정한 집안의 혈통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28:1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직을 위해 구별하며, 민수기 3:10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의 일을 맡도록 규정합니다.

따라서 제사장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자신이 어느 집안에 속하는지 증명하는 것은 단순한 사회적 체면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성전 예배에서 특정한 일을 맡을 정당한 자격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문제였습니다.

바르실래의 이름을 따른 것이 족보 확인을 어렵게 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름을 바꾼 행동 자체를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집안의 계보를 적은 명부에서 자기들의 기록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사람들로 여겨져 제사장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에스라 2:62 · 두루새김

이들이 어떤 죄를 범했거나 실제로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그들이 제사장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자격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일을 할 수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곧 일반적인 인격 평가가 아니라 특정한 종교적 일을 맡을 자격에 대한 판정입니다.

왜 우림과 둠밈을 기다리게 했을까?

그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은 우림과 둠밈으로 판정할 제사장이 나설 때까지 이들이 가장 거룩한 제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에스라 2:63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엄격한 금지와 아직 남아 있는 가능성을 함께 보여줍니다.

먼저 「가장 거룩한 제물」은 일반 음식이 아닙니다. 레위기 2:3과 7:6 등은 특정한 제물 가운데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몫이 있으며, 이것을 정해진 제사장들이 먹을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므로 63절의 금지는 단순히 공동체의 식사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가 아닙니다. 제사장의 지위와 연결된 거룩한 제물의 몫을 먹지 못하게 하는 조치입니다.

그런데 총독은 영원히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을 때, 총독은 현재의 증거만으로 섣불리 제사장직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최종적인 판단의 가능성을 남겨 둡니다. 하나는 성전 예배의 거룩함을 보호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다른 하나는 불확실한 상태를 근거 없이 최종적인 판결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요구입니다.

에스라 2장은 하나님이 직접 등장하시어 각 가문의 이름을 부르시거나, 누구에게 제사장 자격이 있는지 판정하시는 장면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공동체의 모든 결정이 곧바로 하나님의 최종적인 판단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하지 않고, 그 문제가 남아 있는 상태를 기록합니다.

조금 더 깊이

우림과 둠밈은 출애굽기 28:30에서 대제사장의 판결 흉패와 연결되어 등장합니다. 민수기 27:21에서도 하나님께 뜻을 묻는 수단으로 언급됩니다. 그 구체적인 형태와 사용 절차를 성경 본문만으로 완전히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판정을 구하기 위해 제사장이 사용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 그러나 더해지지 않는 숫자

에스라 2:64–67 본문 →

족보와 자격의 문제가 기록된 뒤, 서술자는 돌아온 사람들의 전체 수를 제시합니다.

돌아온 사람들은 모두 42,360명이었습니다.에스라 2:64 · 두루새김

앞에서 오랫동안 가문별 수를 기록했으므로, 독자는 당연히 그 수를 합하면 이 총계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 구분 | 인원 | | --- | --- | | 3–35절: 가문과 지역별 명단 | 24,144명 | | 36–42절: 제사장과 레위 관련 집단 | 4,630명 | | 58절: 성전 봉사자들과 솔로몬의 종들의 자손 | 392명 | | 60절: 족보를 증명하지 못한 집단 | 652명 | | 열거된 수의 합계 | 29,818명 | | 64절에 기록된 돌아온 사람들 전체 | 42,360명 | | 차이 | 12,542명 |

돌아온 사람들의 총계가 세부 명단에 별도로 나열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포함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명단과 총계가 서로 다른 집계 자료에 기초했을 수도 있으며, 숫자가 전해지는 과정에서 차이가 생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설명이 옳은지를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느헤미야 7:5에서는 느헤미야가 처음 올라온 사람들의 족보 명부를 발견했다고 기록합니다. 그 뒤에 나오는 명단은 에스라 2장과 상당 부분 일치하지만, 일부 가문의 숫자는 다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 7:66의 전체 인원은 에스라 2:64와 똑같이 42,360명입니다.

따라서 숫자 차이를 무시하거나, 확인할 수 없는 인원을 만들어 넣어 계산을 맞출 수는 없습니다. 명단의 세부 수치와 총계 사이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더라도, 공동체의 여러 집단을 구별하여 보존하려는 기록의 성격은 분명합니다.

돌아온 공동체 안에 노예도 있었다 — 65절

이 수에 포함되지 않은 그들의 남자 노예와 여자 노예가 7,337명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노래하는 남녀도 200명 있었습니다.에스라 2:65 · 두루새김

바벨론 유배와 개인의 노예 신분은 같은 제도가 아니지만, 이 기록은 귀환 공동체 안에도 분명한 신분의 차이가 존재했음을 보여줍니다. 노예들이 어떤 경위로 노예가 되었는지, 모두 어느 민족 출신이었는지, 귀환 과정에서 어떤 선택권을 가졌는지는 이 장에서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명단을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동등한 처지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시작했다는 기록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성경 본문은 그 시대의 사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여기서는 노예제 자체를 평가하거나 없애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역사적 공동체라고 해서, 그 안의 모든 사회적 관계가 이미 온전하게 변화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65절의 노래하는 남녀 200명은 41절의 아삽 자손 128명과 구별되어 기록됩니다. 이들이 어떤 행사에서 노래했는지, 성전 음악과 어떤 관계였는지는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66–67절의 가축 목록도 이 이동의 현실성을 보여줍니다. 말과 노새, 낙타와 나귀가 함께 기록됩니다. 이는 긴 이동에 필요한 운송 수단과 생활 자원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명단은 사람과 제도에 관한 기록인 동시에, 실제 이동과 정착을 가능하게 하는 자원에 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무너진 성전의 터 앞에서

에스라 2:68–69 본문 →

긴 명단의 끝에서 서술자는 다시 이야기다운 장면을 보여줍니다.

집안의 지도자들 가운데 몇 사람은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야훼의 성전 터에 도착하자, 하나님의 성전을 원래 자리에 다시 세우려고 필요한 것을 기꺼이 바쳤습니다.에스라 2:68 · 두루새김

건물은 무너졌지만, 그곳은 여전히 여호와야훼의 성전이 있던 장소로 기억됩니다.

열왕기상 8장은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면서 이스라엘이 그곳을 향해 기도하고, 하나님이 하늘에서 그 기도를 들으시기를 구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건물 안에 가두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솔로몬 자신도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모실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열왕기상 8:27).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두신 장소로서, 성전은 백성의 예배와 기도가 모이는 중심이었습니다. 귀환자들은 바로 그 예배의 중심을 다시 마련하려는 것입니다.

힘이 닿는 대로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공사에 쓸 재물을 모으는 곳에 금 61,000다르크몬과 은 5,000마네와 제사장 옷 100벌을 냈습니다.에스라 2:69 · 두루새김

본문은 모두에게 같은 금액을 요구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 각 가문이 정확히 얼마씩 바쳤는지도 밝히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이 자신들에게 가능한 범위에서 성전 건축을 위해 재물을 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아직 성전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위해 재산을 내놓습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는 건축 자재와 재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그곳에서 제사를 드릴 때 입을 옷도 필요합니다.

그들은 단지 무너진 건물을 복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건물 안에서 다시 시작될 예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역대상 29:6–9에서 다윗 시대의 지도자들이 성전 건축을 위해 자원하여 예물을 바친 장면과 닮아 있습니다. 다윗 시대의 헌금은 아직 건축되지 않은 첫 성전을 위한 준비였지만, 에스라 시대의 헌금은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려는 준비입니다. 그러나 둘 모두에서 성전 건축은 단순히 왕이나 지도자가 명령했다고 이루어지는 사업으로만 묘사되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재물을 내놓는 일이 함께 기록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헌금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도록 하나님을 움직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그 일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그들이 ‘여호와야훼의 집’에 이르렀다고 표현합니다. 두루새김은 그 자리를 「여호와야훼의 성전 터」라고 옮겼습니다. 원문의 ‘그 터에’라는 표현에는 그 장소를 다시 본래의 자리로 세우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두루새김의 「원래 자리에 다시 세우려고」는 이 뜻을 풀어 보여줍니다.

이야기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각자의 성읍에서 끝난다

에스라 2:70 본문 →

이 장의 마지막 문장은 예상 밖으로 소박합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백성 가운데 일부와 노래하는 사람들, 문지기들과 성전 봉사자들은 각자 자기 성읍에 자리 잡고 살았습니다. 온 이스라엘도 자기 성읍들에 자리 잡고 살았습니다.에스라 2:70 · 두루새김

그러나 이 마지막 문장은 1절과 연결됩니다. 1절에서 서술자는 그들이 「각자 자기 성읍으로 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70절에서는 그들이 「각자 자기 성읍에 자리 잡고 살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반복은 긴 명단 전체를 감싸는 틀이 됩니다.

이야기의 중심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한 무리의 행렬에서, 유다 여러 성읍에 흩어져 정착하는 공동체로 옮겨 갑니다. 공동체는 농사를 짓고, 가족을 이루고, 각자의 성읍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성전은 예배의 중심이지만, 백성의 일상은 여러 지역에 걸쳐 펼쳐집니다.

성전 건축의 준비와 일상생활의 재정착은 서로 분리된 과제가 아닙니다.

「온 이스라엘」이라는 마지막 표현

에스라 1:5에서는 유다와 베냐민의 집안 지도자들이 중심적으로 등장했습니다. 실제 귀환의 지리적 배경도 남유다 지역입니다. 그런데 2장 마지막에서는 이들을 「온 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유다 왕국의 주민과 그 후손들만의 새로운 종교 집단을 세운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시 이어 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물론 이 표현을 북왕국을 포함한 열두 지파의 모든 후손이 실제로 귀환했다는 인구 통계적 진술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온 이스라엘」은 여기서 귀환한 공동체의 신앙적·역사적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자기 성읍에 자리 잡은 사람들

에스라 2:1–70 본문 →

기록과 계보는 공동체의 기억을 지켜 줍니다. 특히 성전 제사장직처럼 혈통에 따른 자격이 규정된 자리에서는 그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기록 체계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귀환은 공동체를 다시 모이게 했지만, 공동체를 조직하는 데 필요한 모든 어려움을 없애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는 특별한 평온함이 있습니다.

긴 명단과 자격 확인, 인원 집계와 헌금 기록이 모두 끝난 뒤, 사람들은 자기 성읍에 자리 잡습니다. 한때 조상의 땅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후손이 다시 베들레헴과 아나돗과 여리고를 비롯한 유다의 성읍들에 살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직 성전은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공동체가 앞으로 겪을 어려움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 2장은 그 모든 일을 서둘러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는 완성된 성전이 아니라,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한 성읍들이 있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고, 그 자손들이 유다의 성읍에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긴 명단은 그곳에서 조용히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