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풀어 읽기 · 51장

이 장의 자리 · 46–52장 · 민족들에 관한 말씀

세상을 삼킨 제국의 가라앉음

바벨론은 수많은 나라를 무너뜨린 제국이었습니다. 군대가 강했고, 성벽은 높았으며, 여러 민족에게서 거두어들인 재물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51장은 이 제국의 마지막을 뜻밖의 장면으로 그립니다. 칼을 든 정복자가 아니라, 두루마리에 돌을 묶어 강물에 던지는 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누가 바벨론을 정복하느냐가 아닙니다. 한때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하신 제국을, 하나님은 왜 다시 심판하십니까? 이 질문을 따라가면 예레미야 51장은 강대국의 흥망을 넘어, 하나님이 인간의 권력을 어떻게 다스리시며 폭력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어떻게 응답하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22분소단락 951장 본문 읽기 →

바람이 불자 금잔이 깨지다

예레미야 51:1–10 본문 →

여호와야훼는 바벨론에 파괴하는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어서 낯선 자들을 보내 곡식을 까부르듯 바벨론을 흩어 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곡식을 까부르면 바람에 가벼운 겨가 날아가고 알곡이 남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을 향한 이 일에서는 남겨 두어야 할 풍요로운 땅이 오히려 텅 비게 됩니다. 땅을 가득 채우고 있던 제국의 힘이 바람 앞에 흩어지는 것입니다.

1절의 「렙카마이」도 특이합니다. 이 이름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처음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서로 바꾸는 아트바시 방식으로 읽으면 「칼데아 사람들」을 가리키게 됩니다. 41절의 「세삭」 역시 같은 방식으로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다만 이런 암호형 이름을 사용한 구체적인 목적까지 본문이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군사적 파괴를 묘사하던 말씀이 5절에서 갑자기 이스라엘과 유다로 향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자기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야훼에게 버림받지 않았다. 그들의 땅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을 거스른 죄로 가득한데도 말이다.」예레미야 51:5 · 두루새김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채 홀로 남겨진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의 불성실함을 남편을 저버린 아내의 모습으로 말씀하셨고(3:1–20), 새 언약을 약속하시면서 자신이 그들의 남편이었음을 일깨워 주셨습니다(31:32).

5절의 「그들의 땅」을 이스라엘과 유다의 땅으로 읽으면, 이 백성 역시 죄로 가득하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다는 뜻이 됩니다. 반면 앞에서 언급된 칼데아 사람들의 땅으로 읽으면 바벨론을 심판할 이유를 밝히는 문장이 됩니다. 두 읽기가 가능하지만, 두루새김이 「그들의 땅이 … 죄로 가득한데도 말이다」라고 옮긴 앞의 읽기에서는 심판받은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가 계속된다는 점이 특히 두드러집니다.

이것은 곧 6절의 탈출 명령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들은 바벨론과 함께 멸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7절에서 바벨론은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바벨론은 여호와야훼의 손에 들린 금잔으로, 온 땅을 취하게 했습니다. 민족들이 그 포도주를 마셨고, 그 때문에 미쳐 날뜁니다.예레미야 51:7 · 두루새김

술을 마신 사람이 분별력을 잃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듯, 바벨론의 지배 아래 놓인 민족들은 자기 삶을 스스로 다스릴 능력을 빼앗깁니다. 이 금잔은 예레미야 25:15–29의 잔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예레미야는 민족들에게 여호와야훼의 분노가 담긴 잔을 마시게 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런데 51장에서는 바벨론이 바로 그 잔이었던 것으로 묘사됩니다.

바벨론이 여호와야훼의 손에 들려 있었다고 해서 바벨론이 행한 모든 폭력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잔을 통해 다른 민족들을 취하게 한 바벨론 자신도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8–9절에는 바벨론을 치료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향유를 가져오고, 치료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들은 고백합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우리가 바벨론을 치료했지만 낫지 않았어. 이제 버려두고 저마다 자기 땅으로 가자. 바벨론에 내린 심판이 하늘에 닿고 구름까지 치솟았으니까.」예레미야 51:9 · 두루새김

이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다만 저마다 자기 땅으로 가겠다고 말하는 점에서 바벨론과 관계를 맺고 있던 여러 민족의 목소리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무너진 제국을 어떻게든 다시 일으키려 하지만, 심판의 시간이 왔을 때 그 체제를 회복시킬 방법은 없습니다.

그때 시온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백성이 말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우리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 주셨어. 자,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일을 시온에서 이야기하자.」예레미야 51:10 · 두루새김

앞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인정했으므로, 여기서 「우리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 주셨어」는 그들이 모든 면에서 죄가 없다는 주장일 수 없습니다. 바벨론에게 당한 폭력과 억울함에 관하여 하나님이 그들의 호소가 정당하다고 인정하셨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문맥에 어울립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단순히 한 나라의 패배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짓밟힌 사람들의 호소가 마침내 들렸다는 사건입니다.

조금 더 깊이

3절에는 해석이 갈리는 표현이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엘, 「~을 향하여」와 알, 「~하지 마라」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공격하는 궁수에게 내리는 명령이 될 수도 있고, 바벨론의 궁수가 저항하지 못하게 하는 금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어지는 4절은 바벨론의 군사적 저항이 무너지는 모습을 그립니다. 다만 3절의 구체적인 명령 대상을 하나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국의 신들이 아니라 세상을 만드신 분

예레미야 51:11–19 본문 →

바벨론을 공격할 군대에 외치는 말입니다. 「화살을 갈아라. 방패를 갖추어라. 여호와야훼께서 메디아 왕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바벨론을 무너뜨리려고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호와야훼의 보복, 곧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위한 보복이다.」예레미야 51:11 · 두루새김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파괴했습니다. 열왕기하 25:8–17은 성전이 불타고 그 안의 물건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진 사건을 기록합니다.

고대의 전쟁에서 도시가 점령되고 신전이 파괴되면 그 도시가 섬기는 신이 힘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쉬웠습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렸다는 사실은 여호와야훼가 바벨론의 신들보다 약하시다는 주장에 이용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전하는 말씀은 정반대입니다. 여호와야훼는 자기 성전의 파괴를 잊지 않으셨고, 이제 바벨론을 심판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전쟁을 준비하라는 명령 사이에 갑자기 땅과 하늘, 구름과 번개, 우상과 창조주에 관한 말씀이 놓입니다.

그 이유는 바벨론을 무너뜨릴 권세가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자기 힘으로 땅을 만드시고 지혜로 세상을 굳게 세우셨으며, 슬기로 하늘을 펼치셨습니다.예레미야 51:15 · 두루새김

바벨론이 성벽을 세웠다면 여호와야훼는 세상을 세우셨습니다. 바벨론이 물길을 관리하며 도시를 풍요롭게 만들었다면, 여호와야훼는 구름과 비와 바람을 다스리십니다.

1절에서 여호와야훼는 바벨론을 향해 파괴하는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6절에서는 그분이 자기 창고에서 바람을 내보내시는 분이라고 선언합니다. 바벨론에 불어오는 바람은 창조주가 다스리시는 세상 밖에서 우연히 발생한 힘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는 바람을 일으키시는 분이고, 바벨론이 의지하는 우상들은 그 안에 숨결조차 없습니다.

15–19절은 예레미야 10:12–16에도 거의 같은 형태로 등장합니다. 10장에서는 우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경고 속에 놓였던 말씀이, 51장에서는 바벨론의 운명을 결정하는 선언의 한가운데 놓입니다.

야곱의 몫인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과 다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며, 야곱은 그분의 소유인 백성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야훼입니다.예레미야 51:19 · 두루새김

「야곱의 몫인 하나님」이라는 말에서 야곱의 몫은 야곱이 차지한 재산이나 물건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야곱의 몫이십니다. 동시에 야곱은 「그분의 소유인 백성」으로 묘사됩니다.

바벨론은 수많은 보물을 소유했지만,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몫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망치도 심판받는가

예레미야 51:20–26 본문 →

20절에서 하나님은 어떤 대상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휘두르는 망치이며 전쟁 무기다. 내가 너를 써서 민족들을 산산이 부수고, 너를 써서 나라들을 무너뜨리겠다.」예레미야 51:20 · 두루새김

이어서 말과 전차,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 목자와 양 떼, 농부와 소, 총독과 지방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부서지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본문은 그 정체를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첫째, 바벨론 자신일 수 있습니다. 둘째, 앞뒤 문맥의 메디아를 비롯한 정복 세력일 수 있습니다. 셋째, 이스라엘을 가리킨다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이 해석들 사이에서 어느 쪽인지 확실히 밝히는 이름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쪽으로 단정하기보다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주제를 살피는 편이 좋습니다.

그것은 민족들을 부수는 힘도 여호와야훼의 다스림 밖에 있지 않으며, 그 힘을 행사하는 자 역시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을 자신의 종이라고 부르시며 그를 통해 여러 나라를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25:9; 27:6). 그러나 동시에 바벨론 왕과 그 민족의 죄악을 벌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25:12).

한 나라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사실과, 그 나라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전쟁은 군대만 파괴하지 않습니다. 말과 전차가 부서지는 동안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 목자와 농부의 삶도 함께 파괴됩니다. 이어지는 24절 자체가 시온에서 저지른 악 때문에 바벨론을 심판하겠다고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온 땅을 파괴하는 산아, 보아라, 내가 너를 대적한다.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내가 네 위로 손을 뻗어 바위들에서 너를 굴려 떨어뜨리고, 불탄 산으로 만들겠다.」예레미야 51:25 · 두루새김

바벨론은 높은 산악 지대에 자리한 도시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것은 지리적 묘사라기보다 그 권세를 거대한 산에 비유한 표현입니다.

산은 높이 솟아 있고,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자신이 작다고 느낍니다. 바벨론 역시 민족들 위에 높이 솟아 있는 권력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그 산을 굴려 떨어뜨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6절에서는 그곳에서 건물 모퉁이에 놓을 돌이나 기초를 놓을 돌조차 가져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한때 여러 나라를 세우고 허무는 힘을 행사했던 제국이, 이제는 다른 건물을 세우는 데 쓸 돌 하나 제공하지 못하는 폐허로 묘사됩니다.

조금 더 깊이

예레미야 50:23에서 바벨론은 이미 온 땅을 치는 망치로 불렸습니다. 그렇다면 20–23절은 여호와야훼가 바벨론을 통해 민족들을 심판하셨지만, 24절에서는 그 바벨론의 악을 다시 갚으시겠다는 뜻이 됩니다. 메디아를 비롯한 정복 세력으로 읽는 것은 11절에서 메디아의 왕들이 등장하고, 27–28절에서 다시 그들을 불러 모으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망치는 바벨론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이스라엘로 읽는 것은 19절의 야곱이 가까이 있고, 이사야 41:15에서는 이스라엘이 산들을 부스러뜨리는 타작 도구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51장에서 이스라엘이 직접 정복 전쟁을 수행한다는 설명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벽이 무너지기 전에 무너지는 것

예레미야 51:27–33 본문 →

27–28절은 민족들을 불러 모으는 전쟁 명령으로 가득합니다. 아라랏과 민니, 아스그나스, 메디아의 왕들과 총독들이 불려 나옵니다.

아라랏은 고대 우라르투와 관련된 북방 지역을 가리키고, 민니는 그 주변의 고대 민족·지역과 관련됩니다. 아스그나스의 정확한 지리적 범위는 확정하기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바벨론의 북쪽과 북동쪽에서 오는 세력들이 그려집니다.

이어서 장면이 빠르게 바뀝니다.

30절에서 바벨론의 용사들은 이미 싸우기를 그쳤습니다. 그들의 힘은 다 빠졌고, 성문을 잠그는 빗장들은 부서졌습니다. 31–32절에서는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계속 달려와 도시가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왕에게 전합니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치며 잇따라 달려갑니다. 소식이 겹쳐 밀려옵니다. 하지만 정보가 많아져도 왕에게는 그 상황을 되돌릴 능력이 없습니다.

바벨론은 다른 민족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제국이었습니다. 이제는 자기 도시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보고를 통해 알아야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야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딸 바벨론은 곡식을 밟을 때가 된 타작마당과 같다. 조금만 더 있으면 바벨론에도 추수 때가 올 것이다.」예레미야 51:33 · 두루새김

타작과 추수는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익숙한 일입니다. 때가 되면 곡식을 거두고 타작합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추수는 풍요를 거두는 시간이 아니라 심판이 찾아오는 시간입니다. 다른 민족의 수확을 가져가 자기 창고를 채우던 제국이, 이제는 자신이 추수의 대상이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부분을 기원전 539년 바벨론 함락 당시의 전투 상황을 그대로 기록한 현장 보고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바벨론의 고대 기록인 〈나보니두스 연대기〉 III.14–20에 따르면, 고레스의 군대는 바벨론 도성에 큰 전투 없이 진입했고 도시의 종교 의례도 계속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묘사하는 불타는 도시와 모두 죽임당하는 장면은 특정 하루의 군사 행동을 그대로 재현한다기보다 제국의 무너짐을 전체적으로 선포하는 예언적 이미지로 읽어야 합니다.

삼켜진 자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다

예레미야 51:34–44 본문 →

34절에 이르면 전쟁 장면이 잠시 멈추고, 피해자의 목소리가 본문 중앙으로 들어옵니다.

시온이 말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나를 먹어 치우고 짓부수어 빈 그릇처럼 만들었다. 바다 괴물처럼 나를 삼키고 내가 가진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운 뒤, 나를 내버렸다.」예레미야 51:34 · 두루새김

여기에는 피해자가 겪은 일이 추상적인 정치 언어가 아니라 몸의 언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를」이라는 말이 거듭 반복됩니다. 먹어 치우고 짓부수어 빈 그릇처럼 만든 대상도 나이고, 삼킨 대상도 나이며, 내버린 대상도 나입니다. 바벨론 왕은 단지 도시를 점령한 정복자가 아닙니다. 한 백성의 삶을 자기 배를 채우는 음식처럼 취급한 자입니다.

괴물은 상대를 삼킨 뒤 자기 배를 채우고,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것을 내버립니다. 바벨론의 지배 아래 있던 민족들은 제국의 성장에 필요한 자원이었을 뿐, 그 자체로 존중받을 존재가 아니었다는 고발이 이 비유에 담겨 있습니다.

시온 주민은 「바벨론이 나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내 몸을 해친 대가를 치르기를!」 하고 말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칼데아 주민들이 내 피를 흘린 대가를 치르기를!」 하고 말할 것입니다.예레미야 51:35 · 두루새김

이것은 단순한 분노의 외침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가해진 폭력이 정당하게 판단되기를 요구하는 호소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네 편에서 싸우고 너를 위해 보복하겠다. 바벨론의 바다를 말리고 그 샘을 메마르게 하겠다.」예레미야 51:36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는 피해자의 고발을 들으시고 그들의 다툼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51장에서 「보복」은 단순히 더 강한 힘으로 적을 짓밟는 행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제기한 정당한 호소에 응답하고, 가해자가 행한 폭력의 책임을 묻는 심판으로 제시됩니다.

바벨론은 자신이 다른 민족들에게 무엇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앞서 13절에서 바벨론은 많은 물가에 살며 보물을 가득 쌓아 둔 도시였습니다. 유프라테스강과 수로는 바벨론 지역의 생활과 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기반이었습니다. 그 물을 말리겠다는 것은 제국의 풍요를 가능하게 한 근원까지 심판하시겠다는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42절에서는 정반대의 그림이 등장합니다.

바다가 바벨론 위로 밀려왔습니다. 바벨론이 거세게 밀려드는 파도에 덮였습니다.예레미야 51:42 · 두루새김

서로 다른 두 그림이 같은 현실을 보여 줍니다. 바벨론이 의지하던 풍요의 근원은 사라지고, 바벨론이 통제할 수 없는 파괴의 힘은 그 도시를 덮칩니다.

38–40절에서 사자처럼 소리치고 으르렁거리던 바벨론 사람들도 결국 어린 숫양처럼 죽임당할 대상으로 묘사됩니다. 그들에게 차려지는 술잔치는 죽음에 이르는 잔치입니다. 바벨론은 민족들을 취하게 한 잔이었지만, 이제 자신이 취하게 됩니다.

44절에서는 삼킴의 이미지가 마지막으로 변형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바벨론에서 벨을 벌하고, 그가 삼킨 것을 그 입에서 끄집어내겠다. 민족들이 다시는 그에게 물밀듯 몰려가지 않을 것이다. 바벨론의 성벽마저 무너졌다.」예레미야 51:44 · 두루새김

벨은 바벨론의 주요 신인 마르두크를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왕이 삼킨 것과 신이 삼킨 것이 연결됩니다. 제국의 군사력과 종교적 권위가 함께 다른 민족들을 지배했던 현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벨은 삼킨 것을 지킬 수 없습니다.

시온의 탄식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바벨론보다 더 크게 으르렁거리시는 데 있지 않습니다. 바벨론이 삼킨 것을 다시 내놓게 하시는 데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내가 네 편에서 싸우고」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원문에서는 피해자의 송사, 곧 법적 다툼을 맡아 싸운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39절의 「영원한 잠」은 57절에도 반복됩니다. 이 문맥에서는 죽어서 다시 깨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시적 표현입니다. 이것을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한 독립적인 교리 설명으로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멀리서도 기억해야 할 이름

예레미야 51:45–53 본문 →

45절에서 여호와야훼는 다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아, 바벨론 한가운데서 나와라. 여호와야훼의 타오르는 분노를 피해 저마다 자기 목숨을 건져라.」예레미야 51:45 · 두루새김

그런데 46절은 그 탈출이 단순하고 평온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합니다. 해마다 새로운 소식이 들리고, 폭력이 계속되며, 통치자들이 서로 맞섭니다. 제국의 몰락은 불안과 혼란의 시간을 동반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가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모든 소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 소식들 때문에 마음이 약해지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외침이 들립니다. 「칼을 피해 살아남은 사람들아, 멈추지 말고 떠나라. 멀리서도 여호와야훼를 기억하고 예루살렘을 마음에 떠올려라.」예레미야 51:50 · 두루새김

발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멈추지 말고 바벨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뒤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여호와야훼를 기억하고 예루살렘을 마음에 떠올려야 합니다.

여기에서 예레미야가 말하는 「기억」은 단순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이 아닙니다.

백성이 말합니다. 「우리는 모욕하는 말을 듣고 수치를 당했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어. 낯선 자들이 여호와야훼의 성전 안 거룩한 곳들에 들어왔으니까.」예레미야 51:51 · 두루새김

그들의 기억에는 아름다운 성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침범당한 성전과 그때 느낀 수치가 함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이런 상처를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약속 안에서, 그 상처를 기억할 수 있게 합니다.

예레미야 29장에서 하나님은 바벨론에 사는 유배민들에게 그곳에서 집을 짓고 삶을 이어 가며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29:4–7). 이제 51장에서는 바벨론을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두 말씀은 서로 다른 상황에서 주어집니다. 하나는 유배의 현실 속에서 살아갈 방법을 가르치고, 다른 하나는 바벨론의 심판이 다가올 때 벗어나야 할 길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어디에서 살든 삶의 최종적인 기준은 바벨론의 권력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와 맺은 관계입니다.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말씀을 단순히 세상과의 물리적 분리로만 확대하는 것은 본문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 장에서 실제로 명령받는 것은 바벨론의 멸망을 앞둔 백성의 탈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이 속한 제국의 운명과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바벨론이 하늘까지 올라가더라도, 높은 곳에 세운 성을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더라도, 내가 보내는 자들이 와서 바벨론을 파괴할 것이다.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예레미야 51:53 · 두루새김

여기서 바벨론의 높이는 더 이상 안전의 상징이 아닙니다.

창세기 11:4에서 사람들은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세우고 자기 이름을 내려 했습니다. 그곳의 이름은 바벨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창세기의 그 이야기를 직접 인용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두 본문은 주제에서 의미 있게 연결됩니다. 인간이 하늘까지 높아지려는 시도는 인간을 하나님의 다스림 밖으로 옮겨 놓지 못합니다.

세상을 뒤흔들던 소리가 사라지다

예레미야 51:54–58 본문 →

54절부터는 소리가 본문을 지배합니다.

바벨론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고, 칼데아 사람들의 땅에서는 파괴의 소리가 들립니다. 적들은 거센 물결처럼 밀려와 으르렁거리고, 그들의 목소리는 요란하게 울립니다.

그러나 55절은 여호와야훼가 바벨론에서 큰 소리를 없애신다고 말합니다.

여호와야훼가 목소리를 내시면 하늘에서 물이 요란하게 울립니다(16절). 반면 바벨론에서 울리던 큰 소리는 여호와야훼의 심판 앞에서 사라집니다. 한쪽은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분의 말씀이고, 다른 한쪽은 한때 세상을 지배했지만 영원하지 않은 제국의 소리입니다.

56절은 이 심판의 이유를 짧게 정리합니다.

바벨론을 파괴할 자가 쳐들어왔습니다. 바벨론의 용사들은 붙잡히고 그들의 활은 부서졌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사람이 한 일을 갚으시는 하나님이므로 반드시 갚으실 것입니다.예레미야 51:56 · 두루새김

그다음 58절에는 바벨론의 두꺼운 성벽과 높은 성문이 등장합니다. 그 모든 것은 사람의 노동과 재물을 들여 세운 결과물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벨론의 두꺼운 성벽은 완전히 헐리고, 높은 성문들은 불에 탈 것이다. 여러 민족이 애써 일해도 헛수고가 되고, 민족들이 힘들여 만든 것도 불에 타 버려 그들은 지치고 말 것이다.」예레미야 51:58 · 두루새김

이 표현은 하박국 2:13과 매우 가깝습니다. 하박국도 민족들이 불에 탈 것을 위해 수고하며 헛된 일로 지친다고 말합니다. 하박국 2장에서 문제 되는 것은 폭력과 불의로 도시를 세우는 행위입니다(2:12). 예레미야 51장에서도 바벨론의 성벽과 성문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다른 민족의 노동과 부를 끌어들여 형성한 제국의 위세를 나타냅니다.

본문은 인간이 얼마나 많은 것을 만들 수 있는지보다, 그 모든 수고가 무엇을 위해 사용되었는지를 묻습니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두루마리

예레미야 51:59–64 본문 →

길고 격렬한 심판의 말씀은 예상과 전혀 다른 장면으로 끝납니다.

59절에는 스라야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스라야는 시드기야 왕이 다스린 지 넷째 해에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가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닥칠 재앙을 두루마리에 기록하고, 스라야에게 그것을 가져가라고 명령합니다.

먼저 바벨론에 도착하면 그 말씀을 빠짐없이 읽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여호와야훼가 그 땅을 황폐한 땅으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셨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 두루마리를 다 읽고 나면 거기에 돌을 묶어 유프라테스강 한가운데로 던지세요.」예레미야 51:63 · 두루새김
「그리고 이렇게 말하세요. 『바벨론은 이처럼 가라앉을 것이다. 내가 바벨론에 내리는 재앙 때문에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바벨론 사람들은 지치고 말 것이다.』」 여기까지가 예레미야의 말입니다.예레미야 51:64 · 두루새김

먼저 바벨론은 유프라테스강에 의지하던 도시였습니다. 강은 도시의 생명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물이 이제 바벨론의 몰락을 나타내는 장소가 됩니다.

둘째, 두루마리에는 돌이 묶입니다. 두루마리는 혼자서는 그렇게 가라앉지 않지만, 돌이 묶이면 물속으로 내려갑니다. 이것은 바벨론의 운명이 확정되었음을 눈앞에 보이게 하는 행위입니다.

셋째, 두루마리는 강에 던져지기 전에 반드시 읽혀야 합니다.

말씀은 먼저 선포되고, 그다음에 상징 행위가 이루어집니다. 스라야는 마술적인 행위를 통해 바벨론을 무너뜨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이 뜻하는 바를 행동으로 보여 주도록 명령받은 사람입니다.

그 일을 맡은 사람에게는 대군이 없었습니다. 바벨론의 왕에게 군사적 요구를 관철할 힘도 없었습니다. 그에게 있는 것은 두루마리와 돌, 그리고 그것을 강물에 던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바벨론은 자신의 권세를 성벽과 군대와 재물로 증명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사실로 그 제국의 마지막을 선포합니다.

마지막에는 「여기까지가 예레미야의 말입니다」라는 기록자의 말이 덧붙습니다. 예언자의 길고 고통스러운 선포가 여기에서 하나의 끝을 맺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의 요한계시록 18장은 이 장의 이미지를 다시 사용합니다.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명령(계 18:4)과 거대한 돌이 바다에 던져지는 장면(계 18:21)은 예레미야 51:45, 63–64를 분명하게 떠올리게 하는 문학적 연결입니다. 그곳에서는 바벨론이라는 이름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에 대한 심판의 이미지로 확장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51장의 첫 의미는 역사 속 바벨론의 폭력과 그 아래 있던 백성의 회복에 있습니다.

제국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 것

예레미야 51:1–64 본문 →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은 유다의 죄를 엄하게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를 심판하신 하나님이 바벨론의 폭력을 눈감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51장에서는 죄를 범한 자기 백성도 버리지 않으시고, 그 백성을 짓밟은 제국에도 책임을 물으십니다.

본문은 스라야가 실제로 이 일을 수행했다고 보고하지 않습니다. 그의 임무를 전하는 예레미야의 명령으로 끝납니다.

예레미야가 전한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가 봅니다.

바벨론은 여전히 강가에 서 있습니다. 성벽은 높고, 왕의 권세는 큽니다. 도시의 시장과 거리에서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목소리가 들렸을 것입니다. 그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한 사람이 강가에 와서 두루마리를 읽습니다.

그는 읽기를 마친 뒤 두루마리에 돌을 묶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물속으로 던집니다.

두루마리는 강물 아래로 사라집니다.

아직 성벽은 서 있고 바벨론의 사람들은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말씀 속에서 그 거대한 제국은 이미 가라앉을 운명을 선고받았습니다.

바벨론은 자기 힘으로 세상을 움직인다고 믿었지만, 자기 자신의 마지막조차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