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풀어 읽기 · 24장

이 장의 자리 · 23–24장 · 여호수아의 마지막 당부

누구를 섬길 것인가, 누구의 은혜로 왔는가

여호수아의 마지막 연설에서 가장 유명한 말은 아마 이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와 내 집안은 여호와야훼를 섬기겠다.」

이 말만 떼어 읽으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자유로운 종교적 선택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 신 가운데 누구를 믿을지 결정하고, 여호수아 자신은 여호와야훼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선택하라고 말하기 전에, 하나님의 선택에 관한 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조상들이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이 누구를 섬길지 선택하라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을 선택하고 구원하셨다는 이야기 뒤에 나옵니다.

그런데 백성이 여호와야훼를 섬기겠다고 대답했을 때 여호수아는 「너희는 여호와야훼를 섬길 수 없다」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조금 전까지 선택하라고 권했던 사람이, 이제는 그 선택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 여호수아는 백성의 신앙 고백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엄중하게 시작된 언약은 왜 마지막에 돌 하나를 세우는 장면으로 이어질까요?

읽는 시간 28분소단락 924장 본문 읽기 →

세겜에 모인 사람들 — 처음 약속하셨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다

여호수아 24:1 본문 →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세겜으로 모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어른 지도자들과 우두머리들과 재판관들과 관리들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 섰습니다.여호수아 24:1 · 두루새김

앞 장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불러 마지막 권면을 전했습니다. 이번에는 모든 지파를 세겜으로 모읍니다. 본문은 그들이 단순히 여호수아 앞에 모였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와 섰습니다」라고 강조합니다.

그들은 늙은 지도자의 유언만 들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누구의 백성인지 다시 확인하려고 모였습니다.

창세기 12:6–7에서 아브라함은 세겜의 모레 상수리나무 부근에 이르렀고, 여호와야훼께서는 그에게 이 땅을 그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 여호와야훼를 위한 제단을 쌓았습니다. 당시 그 땅에는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을 소유하지 못한 채 약속만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24장에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바로 그 지역에 모여 있습니다. 더 이상 약속의 땅을 멀리서 바라보는 나그네들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각자 대대로 물려받을 땅을 받은 백성입니다.

세겜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기억이 있습니다.

창세기 35:2–4에서 야곱은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다른 신들을 치우라고 명령했습니다. 가족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신상들과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내놓았고, 야곱은 그것들을 세겜 근처의 나무 아래 묻었습니다. 여호수아 24:23에서도 똑같이 다른 민족의 신들을 치워 버리라는 명령이 등장합니다.

여호수아서가 이 사건을 창세기 35장의 장면이 그대로 되풀이된 것이라고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장소와 명령이 겹치는 것은 깊은 뜻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래전 야곱의 집안이 다른 신들을 치웠던 세겜에서, 이제 그 자손인 이스라엘 전체가 같은 결단을 요구받습니다.

세겜은 약속의 시작을 기억하는 장소이면서,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 다른 신들을 버려야 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나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건너편에서 데려와」 — 은혜는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여호수아 24:2–4 본문 →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전하는 첫 말씀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는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날 너희 조상들은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에 살았다. 아브라함과 나홀의 아버지 데라도 그곳에 살았고, 그들은 다른 신들을 섬겼다.』」여호수아 24:2 · 두루새김

2절부터 13절까지는 여호수아의 단순한 역사 강의가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전달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건을 설명하는 주어가 계속해서 「나」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살았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가리킵니다. 두루새김은 문맥상 유프라테스강으로 이해되는 강의 이름을 본문에 밝혀 놓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역사는 조상들의 뛰어난 종교적 자질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던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데려오신 행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건너편에서 데려와 가나안 온 땅을 두루 다니게 했다. 나는 그의 자손을 많아지게 하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다.』」여호수아 24:3 · 두루새김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떠나는 장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창세기 12:1–4). 그러나 여호수아 24장은 같은 역사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다만 이 자리에서 강조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무엇을 해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무엇을 시작하셨는가입니다.

에서에게도 땅을 주셨다는 뜻밖의 언급

「『나는 이삭에게 야곱과 에서를 주었다. 에서에게는 세일 산지를 주어 차지하게 했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이집트로 내려갔다.』」여호수아 24:4 · 두루새김

하나님께서 땅을 주시는 일은 이스라엘의 역사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에서에게도 세일 산지를 주셨습니다. 신명기 2:4–5에서도 에서의 후손이 차지한 세일 지역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야곱과 그의 아들들에게는 다른 길이 펼쳐졌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들어온 뒤, 그의 후손은 오히려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로 내려갑니다. 약속의 역사가 잠시 뒤로 물러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도 자신의 백성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바다에서 저주까지 —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적과 보이지 않는 위협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여호수아 24:5–10 본문 →

5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모세와 아론의 등장으로 이어집니다.

「『나는 모세와 아론을 보냈다. 이집트 한가운데서 재앙을 일으켜 그 땅을 친 뒤에 너희를 이끌어 냈다.』」여호수아 24:5 · 두루새김

여기서 모세와 아론은 중요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아닙니다. 출애굽을 이루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한결같이 강조됩니다.

6–7절에서는 갈대 바다 사건을 돌아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병거와 말을 탄 군사들을 거느리고 이스라엘을 뒤쫓았습니다.

「『너희 조상들이 나 여호와야훼에게 부르짖자, 나는 너희와 이집트 사람들 사이에 어둠을 놓았다. 또 바닷물이 그들 위로 밀려오게 하여 그들을 덮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에서 한 일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그 뒤 너희는 광야에서 오랜 시간을 지냈다.』」여호수아 24:7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강력한 군대와 맞서 싸워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쫓기는 처지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너희 조상들」과 「너희」가 번갈아 등장합니다. 실제 바다를 건넌 사람들과 지금 세겜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연설에서 출애굽은 현재 이스라엘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조상들이 경험한 구원을 현재의 공동체가 자신들이 어떤 백성인지 알려 주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발락과 발람이 이 마지막 연설에 포함된 이유

8절은 요단강 동쪽 아모리 사람들의 땅을 얻은 일을 말합니다. 민수기 21:21–35에 기록된 시혼과 옥의 패배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다음으로 모압 왕 발락과 발람의 이야기를 언급합니다.

「『치포르의 아들인 모압 왕 발락이 일어나 이스라엘과 싸웠다. 그는 너희를 저주하려고 사람을 보내 브오르의 아들 발람을 불렀다.』」여호수아 24:9 · 두루새김

여호수아 24장이 특별히 강조하는 것도 발람의 저주가 실패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는 발람의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너희에게 복을 빌었고, 나는 너희를 그의 손에서 구해 냈다.』」여호수아 24:10 · 두루새김

발락과 발람의 대화는 이스라엘 진영 밖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모든 일을 알고 대응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도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앞의 갈대 바다 사건에서는 이스라엘의 눈앞에 있는 이집트 군대가 위협이었습니다. 발람의 사건에서는 이스라엘이 직접 마주하지 않은 자리에서 저주가 시도되었습니다. 두 사건 모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키셨다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자신들이 알고 대처한 위험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지키신 역사입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는 이렇게 자신을 가리키는 방식이 바뀌는 대목이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나 여호와야훼에게 부르짖자, 나는」으로 옮겨,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라고 부르시는 흐름을 이어 놓았습니다. 민수기에서는 발락이 군사적으로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벌였다는 설명보다,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따라서 여호수아 24:9의 「싸웠다」는 표현을 실제 군사 전투가 벌어졌다는 확정적인 기록으로 읽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너희의 칼이나 활로 한 일이 아니었다」 — 선물로 주어진 땅

여호수아 24:11–13 본문 →

이제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는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오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본문은 실제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이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서 앞부분에는 여호수아의 지휘, 이스라엘 군대의 행진, 숨어 기다리다가 공격하는 작전과 전투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승리를 가능하게 한 가장 깊은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습니다.

「『나는 너희 앞에 말벌 떼를 보냈다. 그것들이 아모리 사람들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냈다. 너희의 칼이나 활로 한 일이 아니었다.』」여호수아 24:12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군대가 칼과 활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무기가 승리를 이루게 한 가장 깊은 원인이 아니었다는 선언입니다.

「『나는 너희가 일구지 않은 땅과 세우지 않은 성들을 너희에게 주었고, 너희는 그 성들에 살게 되었다. 너희가 심지 않은 포도밭과 올리브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고 있다.』」여호수아 24:13 · 두루새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얻은 땅을 단순히 소유할 권리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집과 성들, 포도밭과 올리브나무, 먹고 살아가는 일상으로 보여 줍니다.

이 표현은 신명기 6:10–12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세우지 않은 성들과 심지 않은 포도밭을 누리게 될 때, 이집트에서 자신들을 이끌어 내신 여호와야훼를 잊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여호수아 24장은 그때 예고되었던 일이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먹고 있다.」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는 이야기는 과거의 사건만 나열하다가 현재의 일상에 도달합니다. 아브라함을 데려오신 일, 출애굽, 광야, 전쟁과 정복의 역사는 모두 지금 이스라엘이 누리는 삶과 연결됩니다.

그들이 오늘 먹는 포도와 올리브는 그 긴 역사가 남긴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물에는 위험도 있습니다. 자신이 수고하지 않고 받은 것을 계속 누리다 보면, 처음에 누가 그것을 주었는지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말벌 떼」와 같은 표현은 출애굽기 23:28과 신명기 7:20에서도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말벌을 보내 이스라엘 앞에서 다른 민족들을 쫓아내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자리입니다. 이를 실제 곤충들의 공격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두려움이나 적대 세력을 몰아내는 힘을 그려 낸 표현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여호수아 24장은 말벌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활동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특정한 전투의 전술이나 사건과 연결하여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12절의 아모리 사람들의 두 왕을 요단강 동쪽의 시혼과 옥으로 이해하는 것은 민수기 21장의 이야기와 연결된 자연스러운 가능성입니다. 다만 이 절 자체는 왕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며, 요단강을 건넌 뒤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문맥에 놓여 있으므로 어느 사건을 정확하게 가리키는지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이제」 — 먼저 구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누구를 섬길 것인가

여호수아 24:14–18 본문 →

여호수아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며, 온전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그분을 섬겨라.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편과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야훼를 섬겨라.」여호수아 24:14 · 두루새김

여호수아의 권면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어는 「그러니 이제」입니다.

2절부터 13절까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14절부터는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을 이야기합니다.

이 순서를 뒤집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조건으로 출애굽의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던 조상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이집트에서 구원받았으며, 약속의 땅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 은혜를 받은 백성으로서 여호와야훼를 섬겨야 합니다.

이 문맥에서 「온전하고 진실한 마음으로」라는 두 표현은 단순히 예배를 정성스럽게 드리라는 뜻보다 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다른 신들에게도 충성하는 나뉜 마음을 경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강 건너편에서 데려오셨고 이집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떠나온 세계에서 섬기던 신들을 아직도 붙잡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어디에서 건져 내셨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과거의 구원은 단지 장소를 옮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에게 속해 살아가는가가 달라지는 일이었습니다.

종살이하던 이집트 땅에서 나와 다시 섬기는 사람이 되다

이 장에서 특별히 자주 등장하는 동사는 「섬기다」입니다.

히브리어 아바드(⁨עָבַד⁩)는 일하다, 봉사하다, 섬기다는 뜻을 지니며, 문맥에 따라 종으로서 일하거나 주인을 섬기는 관계도 표현합니다. 24:17에서 백성은 이집트를 「종살이하던 이집트 땅」이라고 부릅니다. 원문에서 종을 가리키는 말 역시 같은 히브리어 어근과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거기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런데 자유롭게 된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제 누구도 섬기지 않는 삶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삶입니다.

이것은 이집트의 종살이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같은 관계로 취급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누구를 섬기는가에 따라 삶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이집트에서는 자신들을 억누르는 권력 아래에 있었습니다. 이제는 자신들을 구원하고 땅을 주신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출애굽은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왜 선택을 요구하는가?

「너희 눈에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일이 좋지 않게 보인다면, 오늘 누구를 섬길지 스스로 골라라. 강 건너편에 살던 너희 조상들이 섬기던 신들이든, 너희가 지금 사는 땅의 아모리 사람들의 신들이든 골라라. 그러나 나와 내 집안은 여호와야훼를 섬기겠다.」여호수아 24:15 · 두루새김

여호수아는 모든 신이 똑같이 선택할 만한 대상인 것처럼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들을 길게 설명했습니다. 그런 다음 여호와야훼를 섬기지 않겠다면 누구를 섬길 것인지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강 건너편의 신들은 이스라엘 조상들의 과거에 속합니다. 아모리 사람들의 신들은 이스라엘이 지금 살아가는 땅과 관련됩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자신들을 강 건너편에서 데려오고 이집트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을 주신 여호와야훼를 떠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요구하는 선택은 여러 종교를 편견 없이 비교해 보라는 요청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하신 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똑바로 마주하라는 요구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결정하는지 지켜본 뒤 자신의 입장을 정하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그의 지도력은 백성에게 결단을 강요하는 모습보다,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분명하게 밝히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이끌었던 지도자이지만, 마지막에는 백성 앞에서 자신도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백성은 하나님께서 하신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백성은 곧바로 대답합니다.

「우리가 여호와야훼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호와야훼를 섬기겠다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하려는 이유도 설명합니다.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종살이하던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고, 우리 눈앞에서 이 큰 표징들을 일으키신 분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걸어온 모든 길에서, 우리가 지나온 모든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여호수아 24:17 · 두루새김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너희를 이끌어 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백성이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종살이하던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고」라고 고백하며, 그 일을 하신 분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이야기가 백성 자신의 고백이 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모든 민족과 이 땅에 살던 아모리 사람들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우리도 여호와야훼를 섬기겠습니다.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여호수아 24:18 · 두루새김

여기서 「우리도」라는 말은 여호수아의 선언에 응답하는 표현입니다. 여호수아와 그의 집안만이 아니라, 자신들도 여호와야훼를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까지 읽으면 언약을 새롭게 하는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될 것처럼 보입니다. 지도자는 선택을 요구했고, 백성은 기꺼이 여호와야훼를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찾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여호수아는 예상을 깨뜨립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6:20–25에서는 후손들이 하나님의 계명에 관해 질문할 때,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종이었고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역사를 설명하도록 명령합니다. 에베소서 2:8–10은 구원이 인간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선한 일을 위해 지음받았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여호수아 24장을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인간의 순종이라는 주제가 신약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 주는 신학적 연관입니다. 여호수아 24장 자체의 중심은 이스라엘이 언약을 다시 확인하는 데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야훼를 섬길 수 없다」 — 신앙 고백을 거절하는 듯한 지도자

여호수아 24:19–24 본문 →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야훼를 섬길 수 없다.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반역과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여호수아 24:19 · 두루새김

확실한 것은 여호수아가 백성의 신앙 고백을 값싼 약속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야훼는 거룩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백성이 다른 신들에게 충성을 나누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것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소유나 성공을 탐내는 감정과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용서하지 않으시는가?

「너희가 여호와야훼를 버리고 다른 민족의 신들을 섬긴다면,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잘해 주신 뒤에 돌아서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고 너희를 멸하실 것이다.」여호수아 24:20 · 두루새김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사소한 잘못 하나까지 결코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설명하기보다, 여호와야훼를 섬기겠다고 언약한 백성이 그분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반역을 저지를 때의 심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19절의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라는 선언을 무조건 약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가 실제로 용서받지 못하고 심판에 이를 수 있음을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잘해 주셨다는 사실이 이스라엘의 반역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미 구원을 경험하고 좋은 땅을 받은 백성이 그 하나님을 버린다는 것은 더욱 엄중한 일이 됩니다.

백성은 세 번에 걸쳐 자신의 결단을 분명히 한다

여호수아의 경고를 들은 백성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여호와야훼를 섬기겠습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그들의 고백을 증언으로 삼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여호와야훼를 섬기려고 스스로 그분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대해, 너희 자신이 너희에게 불리한 증인이다.」 백성이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증인입니다.」여호수아 24:22 · 두루새김

처음에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선택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제는 그 선택을 책임질 것인지 묻습니다. 선택은 순간의 결단이지만, 증언은 그 결단을 훗날에도 부인할 수 없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아직 말을 마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다시 말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너희 가운데 있는 다른 민족의 신들을 치워 버려라. 너희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기울여라.」여호수아 24:23 · 두루새김

다른 민족의 신들은 이제 단지 먼 조상들이 섬기던 과거의 신들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지금 이스라엘 가운데 있는 다른 민족의 신들을 치우라고 말합니다.

겉으로 우상을 치우는 일과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 함께 요구됩니다. 신상을 버리는 행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여전히 다른 신들을 향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온전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섬기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여호수아 24:24 · 두루새김

이번에는 「섬기고」라는 말에 「그분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라는 말이 덧붙여집니다. 신앙 고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삶으로 구체화됩니다.

과거의 은혜를 인정하는 고백이 미래의 순종을 약속하는 언약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한 가지 가능한 이해는 여호수아가 백성의 결단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백성이 다시 여호와야훼를 섬기겠다고 대답하자 여호수아는 그 고백을 증언으로 삼고 언약을 맺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야훼를 섬길 수 없다」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더욱 근본적인 경고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어 로 투켈루(⁨יָכֹל⁩)는 능력의 부정을 나타냅니다. 이 두 읽기는 서로 어긋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여호수아가 이 선언을 했을 때 어떤 마음과 의도를 품었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가 단지 백성을 놀라게 하려고 말했을 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출애굽기 20:5와 34:14에서도 하나님은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과 연결하여 자신을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나타내십니다. 19절의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라는 말씀은 출애굽기 34:6–7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죄악과 반역과 죄를 용서하시는 분으로 나타내신 선언과 긴장을 이룹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34:7에는 하나님께서 죄를 결코 죄 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으신다는 말씀도 함께 있습니다.

말을 들은 돌 — 언약은 어떻게 기억되는가

여호수아 24:25–28 본문 →

여호수아는 그날 백성과 언약을 맺고, 세겜에서 그들이 지킬 규정과 법을 세웠습니다.여호수아 24:25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이미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을 경험한 백성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제 약속의 땅에 정착한 새로운 상황에서, 그들이 여호와야훼께 충성하겠다는 언약을 다시 확인하도록 합니다. 이는 신명기 29장에서 모세가 이스라엘과 언약을 확인했던 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날의 일을 말로만 끝내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말들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했습니다. 또 큰 돌을 가져다가 그곳 여호와야훼의 거룩한 곳에 있는 테레빈나무 아래에 세웠습니다.여호수아 24:26 · 두루새김

세겜의 나무 아래에서 언약을 기념하는 돌이 세워졌다는 장면은 조상들의 역사와 연결되어 읽힙니다. 여호수아는 그 돌을 가리키며 뜻밖의 말을 합니다.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보아라. 이 돌이 우리에게 불리한 증인이 될 것이다. 여호와야훼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을 모른 체하지 않도록, 이 돌이 너희에게 불리한 증인이 될 것이다.」여호수아 24:27 · 두루새김

사람의 약속은 잊혀도 증거는 남는다

이 장에서 증인은 두 번 등장합니다. 22절에서는 백성 자신이 증인입니다. 27절에서는 돌이 증인입니다.

백성은 스스로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백을 기억하게 할 돌이 따로 세워집니다. 이것은 언약을 맺는 순간의 열정만으로 미래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겜에 모인 사람들은 언젠가 모두 죽을 것입니다. 그들의 후손은 그날의 대화를 직접 듣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돌은 그 자리에 남습니다.

특히 「우리에게 불리한 증인」이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언젠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려고 할 때, 그들이 스스로 여호와야훼를 섬기겠다고 약속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증거입니다.

그 돌은 이스라엘의 한결같은 충성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무엇을 약속했는지 잊지 못하게 합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떠난 뒤에도 그날의 말씀이 사라지지 않도록 두 가지 흔적을 남깁니다. 하나는 기록된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세워진 돌입니다.

그리고 백성을 돌려보냅니다.

이제 마지막 언약을 확인한 뒤, 저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대대로 물려받을 땅으로 돌아갑니다. 세겜에서의 언약은 그곳에 모여 있는 동안에만 지킬 약속이 아닙니다. 각자가 돌아가 살아갈 땅에서 지켜야 할 언약입니다.

조금 더 깊이

돌이 말을 들었다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 돌에 듣는 능력이 있다는 주장으로 읽기보다, 언약의 증인을 사람처럼 표현한 문학적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야훼의 거룩한 곳」이 언급됩니다. 그러나 본문은 실로에 있던 성막이 세겜으로 옮겨졌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 나무를 아브라함이 머물렀던 모레의 나무나 야곱이 신상들을 묻었던 나무와 정확히 같은 나무라고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세 사람의 장례 — 한 시대가 끝나고 약속이 땅에 묻히다

여호수아 24:29–33 본문 →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부분은 세 번의 죽음과 매장을 기록합니다.

여호수아의 죽음 — 모세를 돕던 사람에서 여호와야훼의 종으로

이 일들이 있은 뒤에 여호와야훼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110살에 죽었습니다.여호수아 24:29 · 두루새김

여호수아 1:1에서 그는 모세를 돕던 사람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모세가 죽었을 때, 여호수아는 그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이끌 사람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이제 그의 죽음을 기록하는 자리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이 호칭은 신명기 34:5에서 죽은 모세를 가리킬 때 사용된 표현과도 연결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섬기던 사람으로 등장하여, 마지막에는 여호와야훼의 종으로 생을 마칩니다.

그의 삶은 자신의 이름으로 왕국을 세우거나 후손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주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해낸 종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사람들은 여호수아가 물려받은 땅 안에 있는 팀낫 세라흐에 그를 묻었습니다. 그곳은 에브라임 산지에 있으며, 가아스산 북쪽에 있었습니다.여호수아 24:30 · 두루새김

여호수아 19:49–50에서는 이스라엘이 땅을 나누는 일을 마친 뒤 여호수아에게 팀낫 세라흐를 물려받을 땅으로 주었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약속의 땅을 얻은 세대의 지도자가 실제로 그 땅 안에서 자신의 삶을 마쳤다는 기록입니다.

요셉의 뼈 — 창세기의 마지막 약속이 이루어지다

32절은 시간을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가지고 올라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묻었습니다. 그곳은 야곱이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백 크시타를 주고 산 밭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 땅은 요셉 자손이 대대로 물려받을 몫이 되었습니다.여호수아 24:32 · 두루새김

요셉은 죽기 전에 자기 형제들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찾아오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올라가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의 뼈를 이집트에서 가지고 올라가겠다고 맹세하게 했습니다(창세기 50:24–25).

요셉은 이집트에서 높은 지위를 얻었고, 그의 가족은 이집트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집트가 하나님의 약속이 최종적으로 이루어질 장소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도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출애굽기 13:19에서는 모세가 요셉의 뼈를 가지고 이집트에서 나왔다고 기록합니다. 그렇게 요셉의 뼈는 이집트에서 광야로, 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호수아 24장에서 세겜에 묻힙니다.

창세기는 이집트에 놓인 요셉의 관으로 끝났고, 여호수아서는 약속의 땅에 묻힌 요셉의 뼈를 기록하며 끝나 갑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이 여러 세대를 지나서도 헛되지 않았다는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요셉이 묻힌 땅은 왜 중요할까?

창세기 33:19에서도 야곱이 세겜 근처에서 밭을 산 일이 기록됩니다. 요셉의 뼈는 아무 장소에나 묻힌 것이 아닙니다. 조상 야곱이 실제로 값을 주고 샀던 땅에 묻혔습니다. 그리고 그 땅은 요셉 자손이 대대로 물려받을 몫이 되었다고 기록됩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데려오셨고, 야곱은 세겜에서 땅을 샀습니다. 이제 요셉의 후손은 그곳을 대대로 물려받을 땅으로 받았습니다.

세겜은 이 장의 시작에서 모든 지파가 하나님 앞에 모였던 장소였습니다. 마지막에는 요셉이 묻힌 장소로 다시 등장합니다.

엘아자르의 죽음 — 제사장의 세대도 끝나다

아론의 아들 엘아자르도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아들 핀하스의 언덕에 묻었습니다. 그곳은 에브라임 산지에서 핀하스에게 주어진 곳이었습니다.여호수아 24:33 · 두루새김

엘아자르는 여호수아와 함께 땅을 나누는 일을 맡았던 인물입니다(여호수아 14:1; 19:51). 그는 아론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의 제사장 일을 이어받았고,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하도록 이끌었던 세대가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일까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하신 모든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 여호와야훼를 섬겼습니다. 여호수아보다 오래 산 어른 지도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하신 모든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여호수아 24:31 · 두루새김

이 문장을 단순히 여호수아의 지도력이 뛰어났다는 칭찬으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의 충성이 여호수아 개인의 존재에만 달린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 어른 지도자들마저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직접 알고 있는 세대가 사라진 뒤, 그들의 후손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갈까요?

여호수아서는 그 이후의 모든 역사를 여기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사기 2:7–13은 이 구절과 직접 연결됩니다. 사사기는 여호수아와 어른 지도자들의 시대를 돌아본 뒤, 여호와야훼와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하신 일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일어나 바알들을 섬기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한 세대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는 사실만으로 다음 세대의 충성이 저절로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겜의 돌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율법책에 기록된 말씀도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가 그 말씀을 듣고 그 역사를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선조들이 경험했던 하나님을 자신들도 섬기게 된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호수아는 110살에 죽었습니다(여호수아 24:29). 요셉도 110살에 죽었습니다(창세기 50:26). 이 숫자가 의도적으로 두 인물을 연결하기 위해 사용되었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 인물의 삶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약속을 바라보며 죽었고, 다른 사람은 그 약속의 중요한 부분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한 뒤 죽었습니다. 「크시타」가 정확히 어느 정도의 돈의 가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거래 금액보다 그 땅이 이미 야곱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맺음 — 세겜의 돌과 요셉의 뼈

여호수아 24:1–33 본문 →

세겜의 돌과 요셉의 뼈는 서로 다른 것을 증언합니다. 돌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한 약속을 기억하게 합니다. 요셉의 뼈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이제 지켜야 할 약속을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이미 이루어진 약속을 가리킵니다.

그 사이에서 여호수아는 자신의 생을 마쳤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에게 남긴 마지막 일은 새로운 땅을 정복하는 것도, 더 큰 군대를 조직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하나님 앞에 세워 자신들이 누구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는지 듣게 하고, 앞으로 누구를 섬길지 고백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백성은 저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대대로 물려받을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 있고, 그들의 뒤에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역사가 있습니다. 세겜에는 약속을 증언하는 돌이 남아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죽었지만, 세겜에서 백성에게 던졌던 질문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신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이제 그 땅을 받은 백성이 누구를 섬기며 살아갈 것인지 드러날 차례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