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풀어 읽기 · 16장
이 장의 자리 · 13–16장 · 삼손과 블레셋
힘을 믿다가 하나님을 잃은 사람
사사기 16장은 삼손이 성문을 뽑아 어깨에 메고 올라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삼손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어깨에 메여 올라갑니다.
그 사이에 삼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흔히 이 장은 삼손이 여자에게 속아 머리카락을 잘렸기 때문에 힘을 잃은 이야기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본문이 직접 밝히는 결정적인 사실은 따로 있습니다.
성문을 통째로 뽑아 버린 사람
삼손은 가자로 갑니다. 가자는 블레셋의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이며, 사무엘상 6:17에 나오는 블레셋의 다섯 중심 도시 중 하나입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의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삼손이 가자에 들어간다는 것은 적의 땅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자를 보고 잠자리를 같이합니다. 사사기 14:1에서도 삼손은 팀나에서 한 여자를 보았고, 그 여자를 아내로 삼으려 했습니다. 이번에도 삼손은 먼저 보고, 그다음 행동합니다.
가자 사람들은 삼손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성문에 숨어 기다립니다. 그들의 계획은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삼손을 죽이는 것입니다.
성문은 옛 도시에서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막거나 허용하는 중요한 방어 시설이었습니다. 성문을 지키면 밤사이 도시 안에 머무는 사람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도시의 방어 시설을 이용하여 삼손을 가두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한밤중에 일어나 성문의 문짝들과 양쪽 기둥, 문을 잠그는 빗장까지 함께 뽑아냅니다.
적들이 자신을 가두기 위해 의지한 시설 자체를 없애 버린 것입니다. 삼손은 그것을 어깨에 메고 헤브론 맞은편에 있는 산꼭대기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한 가지 침묵이 있습니다.
삼손은 엄청난 힘을 발휘하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으십니다.
사사기 14장과 15장에서는 삼손이 뛰어난 힘을 발휘할 때 여호와야훼의 영이 임하셨다고 분명히 밝히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설명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이 사건에 관여하지 않으셨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삼손의 힘만 보여 주고, 그 힘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룹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를 넘기려는 사람들
이야기의 무대가 소렉 골짜기로 옮겨갑니다.
이번에는 삼손이 한 여자를 사랑했다고 분명히 기록됩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들릴라입니다. 앞서 등장한 삼손의 아내와 가자에서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자는 이름 없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들릴라는 이름이 밝혀집니다.
삼손이 들릴라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나오지만, 들릴라가 삼손을 사랑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블레셋의 우두머리들은 들릴라를 찾아와 제안합니다.
블레셋의 우두머리들이 들릴라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삼손을 꾀어서 무엇 때문에 힘이 그렇게 센지,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를 이길 수 있는지 알아내라. 우리는 그를 묶어 괴롭히려 한다. 그러면 우리가 저마다 네게 은 천백을 주겠다.」사사기 16:5 · 두루새김
그들은 삼손을 이기기 위해 상당한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삼손의 힘에 특별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들은 그 힘을 수수께끼처럼 여깁니다. 삼손은 그것을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자기 능력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했습니다. 「말해 줘요. 무엇 때문에 당신은 힘이 그렇게 세요? 무엇으로 묶으면 당신을 괴롭힐 수 있어요?」사사기 16:6 · 두루새김
그런데도 삼손은 이 관계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가 들릴라의 질문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 처음부터 배신을 의심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후의 행동을 보면 삼손은 거듭된 위험 속에서도 자신의 힘을 시험하는 듯한 대화를 계속합니다.
세 번의 거짓말이 보여 주는 진짜 위험
삼손은 들릴라에게 자신을 약하게 만드는 방법을 세 번 이야기합니다.
| 첫 번째 | 아직 마르지 않아 축축한 활시위 일곱 가닥으로 묶기 | 삼손이 끊어 버림 |
| 두 번째 |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밧줄로 묶기 | 삼손이 끊어 버림 |
| 세 번째 | 머리의 일곱 갈래 머리채를 베틀에 걸린 실과 함께 짜 넣기 | 삼손이 베틀의 말뚝과 거기에 걸린 실을 뽑아냄 |
세 번의 시도는 기본적으로 같은 형식을 따릅니다. 들릴라가 방법을 묻고, 삼손이 대답합니다. 들릴라는 그 말대로 실행한 뒤 블레셋 사람들이 왔다고 외칩니다. 삼손은 묶인 데서 벗어납니다.
이 반복은 독자가 들릴라의 속셈을 분명히 알게 하면서도, 삼손이 언제까지 이 상황을 자기 뜻대로 이겨 낼 수 있을 것인지 긴장하게 만듭니다. 두 번째에는 새 밧줄이 등장합니다. 이 장면은 바로 앞 장에서 유다 사람들이 새 밧줄 두 가닥으로 삼손을 묶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15:13–14).
그러나 세 번째 시도에서는 무언가 달라집니다.
이제 삼손은 손이나 팔을 묶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채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는 뒤에 밝혀질 실제 비밀에 한 걸음 가까워진 것입니다.
들릴라는 삼손의 힘을 빼앗는 방법을 찾고 있지만, 삼손은 힘이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는 일에만 익숙합니다.
그는 매번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반복해서 위험에 놓이고 있다는 사실은 해결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올바른 판단력까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마음을 모두 털어놓았지만, 정작 무엇을 잃는지는 몰랐다
세 번의 시도가 실패하자 들릴라는 관계 자체를 문제 삼습니다.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했습니다. 「마음은 내게 있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 있어요? 벌써 세 번이나 나를 놀리고, 무엇 때문에 힘이 그렇게 센지 말해 주지 않았어요.」사사기 16:15 · 두루새김
이 말은 사사기 14장에서 삼손의 아내가 했던 호소를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 아내는 삼손이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 주지 않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결국 삼손에게서 답을 알아냈습니다(14:16–17). 앞에서는 수수께끼의 답이었지만, 이번에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것이 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걸려 있습니다.
들릴라는 날마다 삼손을 다그칩니다. 삼손은 죽을 지경으로 괴로워 더는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삼손은 들릴라에게 마음속을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나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어서, 면도칼로 머리를 민 적이 없어요. 머리털을 밀면 내 힘이 사라지고, 약해져서 다른 모든 사람과 같아질 거예요.」사사기 16:17 · 두루새김
여기서 비로소 삼손은 자신의 힘을 태어나기 전부터 이어져 온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합니다. 사사기 13:5에서 삼손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 구별된 나실인으로 예고되었습니다. 삼손이 자신을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바로 그 출생 이야기를 되짚는 말입니다.
따라서 머리카락은 단순히 힘을 저장하는 신비한 물체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삼손이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몸에 지니고 살아가는 표지였습니다.
그가 반복해서 두려워하는 상태는 다른 사람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7절과 11절에서도 「힘이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아질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삼손에게 자신의 특별한 힘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하는 특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구별하신 목적은 단지 다른 사람보다 강하게 살도록 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사사기 13:5에서 주어진 사명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기 시작하는 일이었습니다. 삼손은 자신이 특별하게 구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특별함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이루기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의 행동이 끊임없이 질문을 불러일으킵니다.
들릴라는 삼손이 마음속을 모두 털어놓았음을 알고 블레셋의 우두머리들을 다시 부릅니다. 이번에는 그들도 은을 가지고 옵니다.
그 여자는 삼손을 자기 무릎에 누여 재우고, 한 남자를 부릅니다. 이어 삼손의 일곱 갈래 머리채를 밀고 그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삼손의 힘은 사라집니다.
들릴라가 외쳤습니다.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치러 왔어요!」 삼손은 잠에서 깨어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전처럼 나가서 몸을 떨쳐 벗어나야겠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에게서 떠나셨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사사기 16:20 · 두루새김
그에게는 과거에 여러 번 성공한 경험이 있습니다. 자신을 묶은 어떤 줄도 끊어 낼 수 있었고, 어떤 적도 자신을 붙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경험이 지금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순간이 온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힘이 어떤 관계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말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관계가 떠나 버린 상황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삼손의 가장 큰 비극은 자신에게 힘이 없어졌다는 사실보다, 그 힘을 주시던 분이 떠나셨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사람의 손에 묶였을 때는 언제나 자신이 묶였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호와야훼께서 떠나셨을 때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나실인을 뜻하는 히브리어 나지르는 구별된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민수기 6:1–21에는 나실인 서원에 관한 규정이 나오며, 그 가운데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라는 명령이 있습니다(민수기 6:5). 그런데 삼손의 경우는 일정한 기간을 정해 서원하는 일반적인 경우와 다릅니다. 19절의 히브리어 문장에서 이 행동의 주어는 들릴라이지만, 불려 온 남자가 직접 머리를 밀었는지, 들릴라가 직접 했는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눈을 잃고, 곡식을 가는 사람이 되다
블레셋 사람들은 마침내 삼손을 붙잡습니다.
그들은 삼손의 두 눈을 파내고 가자로 끌고 내려갑니다. 구리로 만든 발목 사슬로 묶은 뒤 감옥에서 곡식을 갈게 합니다.
이 장면에서는 처음 세 절의 사건이 정반대로 뒤집힙니다.
처음에 삼손은 가자에서 숨어 기다리던 적들을 뚫고 나왔습니다. 이제는 붙잡혀 가자로 돌아옵니다.
처음에는 성문의 양쪽 기둥과 빗장을 뽑아냈습니다. 이제는 자기 몸에 발목 사슬이 채워집니다.
처음에는 성문을 어깨에 메고 자유롭게 걸어 나갔습니다. 이제는 두 눈을 잃고 감옥에서 곡식을 가는 일을 합니다.
삼손은 자신이 본 여자를 얻으려 했습니다. 처음 팀나에서 아내를 선택할 때도 자신의 눈에 좋은 여자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14:3). 가자에서도 여자를 보고 잠자리를 같이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삼손의 성적 행동을 처벌하기 위해 눈을 빼앗으셨다고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눈을 파낸 것은 블레셋 사람들입니다.
이전까지 삼손은 블레셋의 농작물을 불태우고, 블레셋 사람들을 쓰러뜨렸습니다. 이제는 블레셋 사람들이 시키는 일을 하며 곡식을 갑니다. 본문은 감옥에서 삼손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돌아보았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머리를 민 뒤, 삼손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사사기 16:22 · 두루새김
삼손의 힘이 사라졌다는 사건과 머리카락이 잘렸다는 사건은 분명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는 말은 독자에게 앞으로 무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둡니다.
그러나 이것을 머리카락이 자라면서 하나님의 힘도 자동으로 돌아왔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머리털이 자랐다고 말할 뿐, 이 시점에 여호와야훼께서 돌아오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머리털이 다시 자란다는 한 문장 뒤에 이야기가 잠시 멈춥니다. 독자는 삼손이 아직 살아 있으며, 그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누가 삼손을 넘겨주었는가?
블레셋의 우두머리들은 자기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입니다.
블레셋의 우두머리들은 자기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며 즐기려고 모였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우리 신께서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주셨다!」사사기 16:23 · 두루새김
그런데 독자는 그들이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삼손이 더 이상 적들을 물리칠 수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여호와야훼께서 그에게서 떠나셨기 때문입니다(16:20). 블레셋 사람들이 다곤을 찬양한다는 사실과 이야기를 전하는 이가 밝힌 실제 상황은 서로 다른 설명입니다. 사사기 자체는 이 장면에서 다곤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백성도 삼손을 보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말했습니다. 「우리 신께서 원수를 우리 손에 넘겨주셨다! 우리 땅을 망가뜨리고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을 죽인 자를 넘겨주셨다!」사사기 16:24 · 두루새김
삼손에게 자신의 행동은 주로 자신이 당한 일을 갚는 복수였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에게 그는 자신들의 공동체를 파괴한 원수였습니다. 한 사람의 행동을 서로 다른 집단이 얼마나 다르게 기억할 수 있는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흥이 나자 삼손을 감옥에서 불러내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한 구경거리로 삼습니다.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며 사람들을 즐겁게 했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들 앞에서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도록 강요받았다는 상황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삼손은 자기 손을 잡고 있는 소년에게 부탁합니다.
삼손이 자기 손을 잡고 있는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나를 놓아주고, 이 건물을 받치는 기둥들을 더듬어 보게 해 주렴. 그 기둥들에 기대려고 한다.」사사기 16:26 · 두루새김
삼손은 자신의 계획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힘을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이제 볼 수 없지만, 손으로 기둥을 더듬을 수는 있습니다.
건물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우두머리들도 모두 있었고, 지붕 위에는 남녀 약 삼천 명이 삼손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삼손이 이미 완전히 제압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가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놓인 구경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가장 경계해야 했던 사람을 건물 한가운데 있는 기둥 곁에 세워 놓았다는 사실조차 위험으로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삼손이 다시 입을 엽니다.
두 눈을 잃은 사람이 하나님께 눈을 돌리다
삼손은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습니다.
삼손이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었습니다. 「주 여호와야훼,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나님, 이번 한 번만 제게 힘을 주십시오. 제 두 눈 가운데 하나를 잃은 것만이라도 블레셋 사람들에게 갚아 주게 해 주십시오.」사사기 16:28 · 두루새김
20절에서는 자신이 힘을 잃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이전처럼 행동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28절에서는 자신에게 힘이 필요하며, 그 힘을 주실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 기억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는 뜻으로만 사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아보시고 행동해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한때는 힘이 있는 줄 알았으나 하나님이 떠나셨다는 사실을 몰랐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의 힘이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러나 이 기도를 완전한 회개나 성숙한 믿음의 고백으로 곧바로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삼손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직접 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당한 일, 특히 두 눈을 잃은 일에 대해 복수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사사기 13장에서 삼손의 사명은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는 일이었습니다. 마지막 사건은 블레셋의 우두머리들에게 큰 타격을 주므로 그 사명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더 큰 목적과 삼손 자신의 동기가 같은 사건 속에 놓여 있다고 해서, 그 둘이 언제나 완전히 일치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삼손은 건물 한가운데 있는 두 기둥을 움켜잡습니다. 오른손을 하나에, 왼손을 다른 하나에 댑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짧습니다.
삼손이 말했습니다. 「나도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기를!」 그가 힘껏 몸을 기울이자 건물이 무너져 우두머리들과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을 덮쳤습니다. 삼손이 죽으면서 죽인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죽인 사람보다 많았습니다.사사기 16:30 · 두루새김
그는 자신의 행동이 자신에게도 죽음을 가져올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큰 규모의 파괴입니다. 그러나 그 파괴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기록하는 것과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의 죽음을 도덕적으로 옳다고 인정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본문은 블레셋의 우두머리들이 모였다는 사실과 많은 남녀가 건물에 있었다는 사실을 함께 말합니다. 특히 자신의 죽음을 동반한 보복과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일을 믿음에서 나온 용기의 보편적인 본보기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이 사건에 관여하셨다는 의미를 지워 버릴 수도 없습니다. 삼손의 마지막 기도와 건물이 무너지는 사건은 직접 이어져 있습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여호와야훼의 영이 다시 임하셨다고 분명히 밝히지는 않지만, 삼손이 하나님께 힘을 구한 뒤 그 힘을 발휘했다는 흐름은 독자가 그 사건을 하나님의 응답과 연결하여 읽도록 이끕니다.
하나님께 사용되는 사람의 삶이 반드시 완전한 본보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삼손의 복수심과 폭력, 믿음의 고백과 하나님의 도우심은 서로 분리된 두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생애에 뒤섞여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승리는 살아 돌아오는 승리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28절의 「제 두 눈 가운데 하나를 잃은 것만이라도」라는 표현에는 해석상 갈림이 있습니다. 히브리어에는 하나와 나의 두 눈이 함께 나오기 때문에, 두 눈 가운데 하나에 대한 복수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반면 두 눈에 대해 한 번의 복수를 하게 해 달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삼손이 두 눈을 잃은 일을 자신의 복수 이유로 제시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히브리서 11:32가 훗날 삼손을 믿음의 앞선 본보기들 가운데 언급하지만, 그것은 삼손의 모든 선택이 옳았다는 선언은 아닙니다. 신약의 그 언급을 읽더라도, 사사기 16장이 남겨 놓은 인간적인 결함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에 대한 긴장을 지워서는 안 됩니다.
성문을 메고 올라갔던 사람을 이제 가족들이 메고 올라가다
사사기 16장은 삼손의 죽음으로 바로 끝나지 않습니다.
삼손은 블레셋의 포로로 생을 마쳤지만, 그의 주검은 블레셋 사람들 가운데 버려지지 않습니다. 가족들이 그를 찾아와 고향으로 데려가 아버지의 무덤에 묻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그가 스무 해 동안 재판관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삼손은 실패만 남긴 인물도 아니고, 아무런 결함이 없는 승리자도 아닙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재판관이었으며, 블레셋을 향한 구원의 시작에 사용되었고, 동시에 자신의 삶을 다스리는 데에는 깊은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삼손의 이야기가 남기는 질문
사사기 16장은 힘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묻는 이야기이지만, 그 질문만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능력이나 성공 자체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반대로 삼손의 마지막 기도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도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처음의 삼손은 두 팔로 성문을 붙잡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뽑아 어깨에 메고 걸어 올라갔습니다.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의 삼손은 두 팔로 건물의 기둥을 붙잡았습니다. 이번에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건물이 무너진 뒤, 그의 형제들과 아버지의 집안 사람들이 내려왔습니다.
한때 성문을 어깨에 메고 올라갔던 삼손을 이제 그들이 메고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그를 초르아와 에슈타올 사이로 데려가 아버지 마노아의 무덤에 묻었습니다.
성문을 들어 올리던 삼손의 힘은 끝났지만, 하나님이 그를 통해 시작하신 이스라엘 구원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