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풀어 읽기 · 17장

이 장의 자리 · 17–21장 · 무너지는 공동체

하나님을 자기 집에 들여놓은 사람

사사기 17장에는 전쟁도 없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외부의 적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아 적을 물리치는 사사도 없습니다. 대신 한 가정에서 잃어버린 은을 둘러싼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미가는 하나님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게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께 무언가를 바치고, 종교적인 제도를 갖추었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사기 17장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려서만 신앙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계속 부르면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식과는 전혀 다른 신앙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읽는 시간 14분소단락 817장 본문 읽기 →

도둑질한 아들이 축복을 받다

사사기 17:1–2 본문 →

이야기는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미가야라는 사람을 소개하면서 시작됩니다.

「미가야」라는 이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름은 미카야후(⁨מִיכָהוּ⁩)로, ‘누가 여호와야훼와 같은가?’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뒤에서 사용되는 짧은 이름 「미가」도 같은 질문을 담은 이름입니다. ‘누가 여호와야훼와 같은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자기 집에 신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섬기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은 천백이 없어졌을 때 저주하셨잖아요. 저도 그 말을 들었어요. 그 은이 제게 있어요. 제가 가져갔어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내 아들이 여호와야훼께 복을 받기를!」사사기 17:2 · 두루새김

그가 왜 돈을 훔쳤는지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또한 양심에 찔려 고백한 것인지, 어머니가 내린 저주를 두려워했기 때문인지도 확정할 수 없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저주는 단순한 욕설만이 아니라, 잘못한 사람에게 불행이 닥치도록 요청하는 무거운 말일 수 있었습니다. 미가의 고백은 바로 그 저주를 언급하면서 시작됩니다.

이 말이 앞서 내린 저주의 효력을 거두려는 뜻이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이야기에서는 분명히 저주와 축복이 서로 대비됩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도둑질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습니다. 아들도 훔친 행위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는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은이 돌아왔다는 사실이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블레셋 통치자들은 삼손을 넘기는 대가로 들릴라에게 각자 은 천백을 약속했습니다(16:5). 이번에는 한 아들이 어머니에게서 훔친 은 천백이 등장합니다. 두 사건이 같은 수량으로 연결되는 이유를 본문이 밝히지는 않지만, 연이어 등장하는 이 큰 금액은 돈이 사람 사이의 신뢰와 종교적 행동에 끼어드는 모습을 주목하게 합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되찾은 은을 가지고 예상치 못한 일을 시작합니다.

여호와야훼께 바친 은으로 여호와야훼가 금하신 것을 만들다

사사기 17:3–4 본문 →

미가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은 천백을 어머니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나는 내 아들을 위해 이 은을 여호와야훼께 온전히 바쳤다. 새겨 만든 신상과 녹인 금속을 부어 만든 신상을 만들려는 것이다. 이제 이 은을 네게 돌려주마.」사사기 17:3 · 두루새김

그녀에게 신상 제작은 여호와야훼를 거스르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여호와야훼께 은을 온전히 바치는 일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20:4–5는 새긴 형상을 만들어 그것에 절하거나 섬기는 일을 금지합니다. 신명기 27:15도 사람이 새겨 만든 신상이나 금속을 부어 만든 형상을 만들어 몰래 세우는 일을 저주의 대상으로 정합니다.

처음에 어머니는 훔쳐 간 은 때문에 저주했습니다. 은을 돌려받자 아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은으로, 이스라엘의 율법이 저주의 대상으로 정하는 형상을 만들려 합니다.

어머니는 저주를 피하고 복을 얻으려 하지만, 정작 여호와야훼께 복을 빈다는 이름으로 여호와야훼가 금하신 일을 실행합니다.

신명기 4:12, 15–16은 이스라엘이 호렙에서 여호와야훼의 음성을 들었지만 어떤 형상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사람이 만들어 낸 하나님의 모습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신 말씀에 근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미가의 집에서는 그 순서가 뒤집힙니다.

어머니는 은 이백을 금속을 다루는 장인에게 주고, 장인은 새겨 만든 신상과 녹인 금속을 부어 만든 신상을 만듭니다. 어머니가 여호와야훼께 온전히 바쳤다고 말한 은은 이제 미가의 집에 있는 종교적 물건이 되었습니다. 이후 이야기는 그 집이 어떻게 개인의 예배 장소로 바뀌는지를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는 거룩하게 구별하여 바친다는 말을 강조된 형태로 사용합니다. 두루새김은 이 강조를 「온전히 바쳤다」로 옮겼습니다. 어머니가 분명히 여호와야훼께 은을 온전히 바쳤다고 말한 점을 고려하면, 여호와야훼를 형상으로 섬기려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신상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나타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특정한 신의 모습이었다고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새겨 만든 신상」과 「녹인 금속을 부어 만든 신상」이 서로 다른 두 물건을 가리키는지, 하나의 형상을 만든 두 가지 방식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원문에서는 두 표현을 나란히 두면서도 이어지는 서술에 단수형을 사용합니다. 두 가능성을 모두 열어 두는 것이 적절합니다. 또한 천백 가운데 실제 제작에 사용되었다고 기록된 은은 이백입니다. 나머지 은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신당도 만들고 제사장도 세운 사람

사사기 17:5 본문 →

미가는 신상을 집에 두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이미 신당이 있었습니다. 그는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자기 아들 가운데 하나를 제사장으로 세웁니다. 누군가 하나님께 뜻을 물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명령하셨다는 말도 없습니다.

모든 결정은 미가가 내립니다.

출애굽기 28:6–14에서 에봇은 제사장의 옷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대제사장 아론의 옷차림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사사기에서는 에봇이 단순한 옷 이상의 종교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사사기 8:27에서 기드온은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신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에봇이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을 잘못된 예배로 이끄는 덫이 되었습니다.

미가의 에봇이 정확히 어떤 형태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개인 신당 안에 놓인 다른 종교 의식의 물건들과 함께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종교 활동에 사용하려고 만든 물건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드라빔은 가정에서 가지고 있던 신상이나 종교 의식의 물건을 가리키며, 그 구체적인 모습과 용도는 문맥마다 완전히 분명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31:19에서는 라헬이 아버지 라반의 드라빔을 가져갑니다. 사무엘상 19:13에서는 미갈이 드라빔을 이용하여 다윗이 누워 있는 것처럼 꾸밉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올바른 예배에 꼭 필요한 물건으로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욱 결정적인 것은 제사장을 세운 일입니다.

본문에서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מָלֵא⁩)라고 옮긴 히브리어 표현은 글자 그대로는 ‘손을 채우다’라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출애굽기 28:41과 29:9에서도 제사장 직분을 맡기는 일과 관련하여 사용됩니다. 정식으로 제사장 직분을 맡기는 일을 떠올리게 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28:1에서 여호와야훼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미가에게는 마음대로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울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사장 제도의 겉모습을 흉내 내지만, 정작 그 제도를 정하신 하나님의 권위는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갖춘 뒤에 서술자가 갑자기 이야기를 멈추고 한 문장을 끼워 넣습니다.

「사람마다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일을 했습니다」

사사기 17:6 본문 →

그 무렵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일을 했습니다.사사기 17:6 · 두루새김

이 문장은 사사기 후반부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신명기 12:8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각자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하는 방식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여호와야훼가 자신의 이름을 두려고 선택하실 곳에 제물을 가져가고,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으로 예배하라고 명령합니다(신명기 12:11–14).

사사기 17장은 그와 정반대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신명기에서는 하나님이 예배의 장소와 방식을 정하십니다. 그런데 미가는 자기가 원하는 곳에 신당을 마련하고,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만들고,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웁니다.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일」은 이 문맥에서 단순한 개인의 취향이나 생활 습관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따르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처럼 실행하는 일입니다.

서술자는 미가의 행동을 하나씩 나열한 다음, 그 행동들이 어떤 시대의 현실을 드러내는지 독자에게 알려 줍니다. 그리고 바로 뒤에서는 똑같은 문제가 또 다른 방식으로 반복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습니다」라는 말은 왕만 세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이라는 뜻일까요?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분명 이 표현은 공동체 전체를 이끌고 질서를 세울 지도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왕이 없는 상황과 각자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행동하는 상황은 이야기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 17:14–20은 장차 왕이 세워지더라도 그 왕 역시 하나님의 가르침 아래 있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왕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올바른 신앙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사사기 17:6은 왕이 다스리는 제도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하는 동시에, 더 근본적으로 누가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머물 곳을 찾아 떠도는 레위 사람

사사기 17:7–9 본문 →

이번에는 유다의 베들레헴 출신인 젊은 레위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그곳에 머물러 살다가 다른 곳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그의 목적은 구체적인 성읍이나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미가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는 길이에요?」 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유다의 베들레헴에서 온 레위 사람이에요. 머물러 살 만한 곳을 찾아 길을 가고 있어요.」사사기 17:9 · 두루새김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들처럼 하나로 이어진 땅을 물려받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18:20–24와 여호수아 21장은 레위 사람들이 물려받은 것과 그들의 생활을 다른 지파들과 구별하여 설명합니다. 그들에게는 이스라엘 여러 지파의 땅 안에 살 수 있는 성읍들이 주어졌습니다.

그가 정확히 왜 베들레헴을 떠났는지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일 수 있고, 더 나은 살 곳을 찾으려 했을 수도 있지만, 어느 쪽도 본문이 확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두 사람의 필요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미가에게는 이미 신당과 제사장이 있지만, 이제 그가 원하는 종교적 지위를 더 그럴듯하게 만들어 줄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젊은 레위 사람에게는 머물 곳이 필요합니다.

미가는 그에게 제안을 합니다.

조금 더 깊이

7절은 그를 「유다 집안에 속한」 사람인 동시에 레위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이것을 유다 지파와 레위 지파 양쪽의 혈통을 가졌다는 의미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다 지역의 공동체에 속하여 머물러 살던 레위 사람이라는 지역적 관계를 나타낸다고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제사장을 고용하고, 아버지라 부르면서 아들처럼 여기다

사사기 17:10–12 본문 →

미가는 레위 사람에게 말합니다.

미가가 말했습니다. 「나와 함께 살면서 내게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어 주세요. 해마다 은 열을 주고, 옷 한 벌과 먹을 것도 줄게요.」 레위 사람은 갔습니다.사사기 17:10 · 두루새김

미가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아버지가 되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호칭은 영적인 지도자나 권위 있는 조언자를 높여 부르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제안을 무조건 부도덕한 고용 계약이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생활을 위한 물질적 지원은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신명기 18:1–8과 민수기 18:8–24가 바로 그 생활의 기반을 다룹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원 자체가 아니라 그 제사장 직분이 누구의 권위로 주어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미가는 레위 사람에게 자기 「아버지」가 되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11절에서는 그 젊은이가 미가에게 「아들처럼 되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형식상으로는 레위 사람이 미가의 영적 아버지이자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생활에서는 미가의 집에 속해 미가가 제공하는 것으로 살아갑니다.

영적 권위를 가지도록 초청받은 사람이 실제로는 자신을 고용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관계에 놓입니다.

12절은 미가가 그를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원문에서는 여기에서도 앞서 자기 아들을 세울 때 사용했던 ‘손을 채우다’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미가는 이제 제사장을 바꾸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레위 사람이라는 사실이 곧 아론의 자손에게 주어진 제사장 일을 맡을 자격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규정에서 제사장과 일반 레위 사람의 일은 구분됩니다(민수기 3:5–10). 그 레위 사람이 아론의 후손이었는지는 이 장에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혈통을 확정하여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설령 제사장이 될 수 있는 혈통이었다 하더라도, 개인이 자기 집에 신당을 마련하고 마음대로 그를 제사장으로 세울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제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잘해 주시리라는 것을 알겠다」

사사기 17:13 본문 →

미가의 마지막 말은 이 장 전체를 해석하는 결정적인 열쇠입니다.

미가가 말했습니다. 「레위 사람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잘해 주시리라는 것을 알겠다.」사사기 17:13 · 두루새김

처음에 어머니는 미가에게 「여호와야훼께 복을 받기를」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미가가 스스로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잘해 주시리라는 것을 알겠다」고 선언합니다.

이야기의 처음에는 복을 빌었고, 마지막에는 복을 확신합니다.

미가가 자신의 신앙에 필요한 조건들을 모두 갖추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본문 어디에도 그런 약속은 없습니다.

제사장은 본래 하나님께 속한 일을 맡은 사람이지만, 미가의 이야기에서는 계속해서 그의 소유와 관계된 표현으로 등장합니다. 5절에서는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워 「미가의 제사장」이 되게 했습니다. 10절에서는 레위 사람에게 「내게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어 주세요」라고 요청합니다.

12절에서는 레위 사람이 다시 「미가의 제사장」이 됩니다. 그리고 13절에서는 마침내 「내 제사장」이 되었기 때문에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서술자는 제사장이 실제로 맡아서 드린 예배나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한 일을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가르쳤는지, 어떤 기도를 드렸는지, 어떻게 미가를 하나님께로 이끌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오직 그가 미가의 제사장이 되었다는 사실만 반복해서 듣습니다.

미가에게 중요한 것은 그 제사장이 어떤 일을 했느냐보다, 자신에게 제사장이 있다는 사실 자체였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하여 신앙의 중심이 이동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가에서, 내가 무엇을 갖추었는가로.

하나님께서 어떤 삶을 원하시는가에서, 어떤 제도를 마련해야 내가 복을 받을 수 있는가로.

누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사사기 17:1–13 본문 →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대신, 미가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복을 주시도록 종교적 환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듣고 따르는 일과, 복을 얻기 위한 종교적 수단을 갖추는 일을 뒤바꾸는 데 있습니다. 내게 종교적인 확신이 있다는 사실과 그 확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다는 사실은 같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가는 이제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 말에 대답하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미가가 참으로 복을 받았다는 설명도 없습니다.

독자는 미가가 가진 확신만을 들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가 갖추어 놓은 모든 것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은으로 만든 신상, 집 안에 마련한 신당, 손수 만든 에봇과 드라빔, 돈을 받고 머무는 제사장.

미가는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며 자신의 앞날이 안전하다고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그 확신을 뒷받침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마련한 것들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