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28편
이 장의 자리 · 1–41편 · 첫째 권
부르짖음에서 백성을 위한 기도로
시편 28편에는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말씀이 한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선언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침묵을 두려워합니다. 「주님께서 제게 침묵하시면 제가 무덤으로 내려가는 사람들과 같아질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이르면 전혀 다른 목소리가 들립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찬양받아 마땅하십니다. 제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시편은 하나님이 어떤 말씀으로 응답하셨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적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인은 자신이 도움을 받았다고 고백하며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기뻐하던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계속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위해 기도합니다.
시편은 한 사람의 간절한 부르짖음으로 시작해 온 백성을 향한 축복의 기도로 끝납니다.
그 사이에는 거짓으로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 악을 행하는 손,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뻐하는 마음이 등장합니다. 이 모습들은 별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편 28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 주시기를 간구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의지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품고 기도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들으시는 분이시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저의 바위, 침묵하지 마십시오
시인은 하나님을 「저의 바위이신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바위는 단단함과 안전을 떠올리게 합니다. 흔들리거나 쉽게 무너지지 않는 존재입니다. 시편에서 바위는 자주 피난처와 구원의 이미지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바위라고 부른 직후에 시인은 이렇게 간청합니다.
다윗의 시입니다. 여호와야훼,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나의 바위여, 내게 귀를 막지 마십시오. 당신이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구덩이로 내려가는 이들과 같아질까 두렵습니다.시편 28:1 · 두루새김
바위는 단단하지만 말을 듣거나 대답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든든한 피난처가 되어 주시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살아 계신 분이시기를 구합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움직이지 않는 바위처럼 든든한 보호만이 아닙니다. 자신이 부르짖을 때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왜 죽음만큼 두려운가
1절에는 「제게 귀를 막지 마십시오」와 「주님께서 제게 침묵하시면」이라는 표현이 나란히 등장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간절한 기도를 듣지 않으시거나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실 가능성 앞에서 두려워합니다.
「무덤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시편 30:3–4에서도 구덩이로 내려가는 것은 죽음의 위기와 연결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단지 하나님과 마음이 멀어진 느낌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시인은 자신의 생존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실제로 죽어 가고 있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면 무덤으로 내려가는 사람들과 같아질까 두렵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응답은 생명과 죽음이 걸린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들으셔야 자신에게 구원의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성소를 향해 두 손을 들다
2절에서는 기도하는 사람의 몸짓이 등장합니다.
당신께 도와 달라 부르짖으며 당신의 지성소를 향해 두 손을 들어 올릴 때 간절히 비는 내 소리를 들어 주십시오.시편 28:2 · 두루새김
「지성소」는 성소의 가장 안쪽에 있는 거룩한 공간을 가리키는 말로, 열왕기상 6:16에서도 사용됩니다. 이스라엘의 성소에서 지성소는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특별히 나타내는 장소였습니다.
기도할 때 손을 드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익숙한 기도의 자세였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하나님께 바치는 기도를 드리면서 손을 하늘을 향해 펼치는 모습도 열왕기상 8:22에 나옵니다.
시인은 지성소 안으로 들어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성소를 향해 손을 듭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나타내는 거룩한 장소를 바라보며 그분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이 장면에는 시인이 처한 상황과 그가 기대하는 구원 사이의 거리가 느껴집니다. 지금 그에게는 도움이 필요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구원을 손에 넣을 힘은 없습니다. 그래서 두 손을 하나님을 향해 듭니다. 시편 27편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자 했던 간절한 기도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지성소를 향한 구체적인 기도 동작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곧 예상 밖의 내용을 향합니다.
평화를 말하지만 마음에는 악이 있는 사람들
나를 악한 이들과 함께, 악을 일삼는 이들과 함께 끌고 가지 마십시오. 그들은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악을 품고 있습니다.시편 28:3 · 두루새김
처음 두 절에서는 시인이 죽음의 위기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3절에 이르면 그의 기도를 둘러싼 인간관계가 나타납니다.
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특징은 공개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하나님을 모욕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웃에게 평화를 말합니다.
히브리어 샬롬(שָׁלוֹם)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만이 아니라 평안, 안녕, 온전한 관계를 아우르는 말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평화를 말하는 것은 상대방의 안녕을 바라는 인사나 우호적인 표현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과 마음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합니다. 겉으로는 상대방의 안녕을 빌지만, 실제로는 해치려는 뜻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말실수를 하거나 진실하지 못한 감정을 잠시 품는 문제보다 심각합니다. 상대방이 자신을 믿도록 만드는 말이 오히려 상대방을 해치는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평화라는 말이 평화를 이루는 대신 악을 감추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왜 악인들과 함께 끌려가지 않게 해 달라고 하는가
시인의 요청에서 눈여겨볼 표현은 「함께 저를 끌고 가지 마십시오」입니다. 여기 쓰인 히브리어 동사는 끌다, 당기다, 이끌고 가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이 구절에서는 악한 사람들과 같은 운명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인이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악한 사람들의 공격을 받는 일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취급되어 같은 결과를 맞는 일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악한 사람들과 함께 죽거나 심판받는 운명을 피하려는 간절한 기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구체적인 재판이나 처벌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시인이 자신과 악을 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구별이 있기를 바란다는 점입니다. 그는 자신이 완전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악한 사람들의 말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 현실을 하나님께 아뢰며, 자신을 그들과 함께 끌고 가지 말아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요청은 다음 절에서 더욱 강해집니다.
그들의 손이 한 일과 하나님의 손이 하신 일
그들이 한 일대로, 그들이 저지른 악한 짓대로 그들에게 갚아 주십시오. 그들의 손이 한 일대로 그들에게 갚아 주십시오. 그 대가를 그들에게 돌려주십시오.시편 28:4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오늘날 독자가 읽기에 거칠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시인은 악한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한 일에 따라 갚아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 기도의 핵심을 단순히 상대방이 고통받기를 바라는 감정으로만 줄여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한 일」, 「저지른 악한 짓」, 「그들이 손으로 한 일」, 「그들이 받아야 할 대가」가 연이어 등장합니다. 시인이 요구하는 것은 아무런 기준 없이 악한 사람들을 벌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실제로 행한 일에 걸맞은 결과가 돌아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행한 일에 따라 갚는 원리는 구약의 법과 지혜문학에서도 발견됩니다. 신명기 19:16–21은 거짓 증언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려 한 자에게 그가 상대방에게 행하려 했던 일에 걸맞은 처벌을 적용하도록 규정합니다. 시편 28편의 악한 사람들은 평화를 말하면서 마음에 악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시인은 말과 실제 행동 사이에 어긋남이 있는 세상에서, 행위에 따른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구합니다.
물론 이 원리가 시인이 자기 손으로 보복해도 된다는 허락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에서 심판을 요청받는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시인은 직접 벌을 내리겠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 행위에 따른 대가를 청합니다.
그런데 다음 절을 읽으면 이 기도가 단지 인간의 잘못된 행동에 관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일도 그 손으로 이루신 일도 헤아리지 않으니, 그분께서 그들을 무너뜨리시고 세우지 않으실 것입니다.시편 28:5 · 두루새김
4절에서는 악한 사람들의 손이 등장했습니다. 5절에서는 하나님이 손으로 이루신 일이 등장합니다. 이 반복이 두 절을 긴밀하게 연결합니다.
악한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악을 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손으로 이루신 일은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여기서 「마음에 두지 않기」는 단순히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 의미를 살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마음에 두지 않는 하나님의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본문은 특정한 사건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창조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행동을 폭넓게 가리킬 수도 있고, 인간의 악을 심판하고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특별히 염두에 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시인의 비판은 분명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만, 자신의 삶과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시인이 묘사하는 악은 이웃에게 거짓된 평화를 말하는 데서 나타나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마음에 두지 않는 태도에서 더 깊은 뿌리를 드러냅니다.
허물고 세우지 않으실 것입니다
4절에서는 「갚아 주십시오」라는 명령형이 반복됩니다. 그런데 5절에서는 「그분은 그들을 허무시고 다시 세우지 않으실 것입니다」라는 삼인칭 표현으로 바뀝니다.
이를 하나님이 앞으로 악한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확신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반면 앞뒤 흐름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허물고 다시 세우지 않으시기를 바라는 기도의 연장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어 동사 형태와 문맥만으로 두 가능성을 완전히 가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허무시고」와 「다시 세우지 않으실 것입니다」의 대조는 선명합니다. 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손으로 무엇인가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허무신다면 그들이 세운 것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시인은 자신이 겪는 위협과 악한 사람들의 행동을 하나님 앞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가 내 간구의 소리를 들으셨다
여호와야훼를 찬양합니다. 간절히 비는 내 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시편 28:6 · 두루새김
시편이 시작될 때 시인은 하나님께 귀를 막지 말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2절에서는 자신의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6절에 이르러 그가 처음에 구했던 일이 이루어졌다고 선언합니다.
2절의 「제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들어 주십시오」가 6절에서 「제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로 바뀝니다.
기도의 요청이 감사의 이유가 된 것입니다.
시인이 무엇을 경험하고 이렇게 말하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위기에서 벗어난 뒤에 드리는 감사의 고백으로 읽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며 감사하는 예배의 언어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7절에서 「저는 도움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하기 때문에, 이 시가 단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미래의 응답을 상상한다고 단정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알려 주는 사실은 시인이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는 것이며, 그 구체적인 방식은 밝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셨다는 사실을 반드시 초자연적인 음성이나 눈에 보이는 극적인 사건으로 채워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들으셨다고 찬양합니다.
악인들의 마음과 시인의 마음
7절에서는 시인이 하나님을 의지한 결과를 자신의 마음의 변화로 설명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나의 힘, 나의 방패이십니다. 내 마음이 그분을 의지하였고 나는 도움을 받았습니다.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였으니 내 노래로 그분께 감사하겠습니다.시편 28:7 · 두루새김
이 구절을 3절과 나란히 놓으면 대조가 보입니다. 3절의 악한 사람들은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면서 마음속에 악을 품었습니다. 7절의 시인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했고, 이제 그 마음이 크게 기뻐했다고 말합니다.
악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웃을 해치려는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시인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이 기쁨으로 나타납니다. 시인은 도움을 받은 다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 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받은 도움이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하며 노래합니다.
힘은 자신이 어려움을 견디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방패는 밖에서 오는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시인은 자신에게 힘이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한 것과 도움을 받은 것, 이 두 사실을 연결해서 말합니다. 다만 이 표현을 하나님을 의지하면 언제나 즉시 구원받는다는 공식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경험한 일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개인적인 고백이 다음 절에서 더 넓은 방향으로 펼쳐집니다.
나의 힘이신 하나님이 그들의 힘이시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의 힘이시고 기름 부으신 이에게는 구원의 요새이십니다.시편 28:8 · 두루새김
7절에서 시인은 「제 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8절에서는 「그들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넓어집니다.
그런데 그들이 누구인지 본문에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앞의 악한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보기는 문맥상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뒤에 나오는 「주님의 백성」과 연결하여 이스라엘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는 「그들의」와 「그분의 백성의」라는 두 읽기가 전해집니다.
이렇게 읽으면 7절에서 9절로 이어지는 흐름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시인은 자신의 구원을 경험하고,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힘이 되시는 분이시라고 고백하며, 마지막에 그 백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합니다.
기름 부은 이는 누구인가
8절 후반부에는 「자신이 기름 부어 세우신 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히브리어 마시아흐(מָשִׁיחַ)는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기름 부음은 왕이나 제사장과 같이 특별한 일을 맡는 사람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왕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사람으로 불릴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6:13에서는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으며, 시편 2:2에서는 하나님과 그분이 기름 부으신 이를 함께 언급합니다.
시편 28편에서 기름 부어 세우신 이는 이스라엘의 왕을 가리킬 가능성이 큽니다. 시의 머리말이 다윗과 연결되어 있고, 백성의 구원과 기름 부어 세우신 이의 보호가 나란히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표현만으로 특정한 왕이나 사건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왕을 가리킨다면, 왕은 백성을 보호하는 책임을 맡은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그 왕 자신도 하나님께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시인은 기름 부어 세우신 이가 스스로 백성의 궁극적인 구원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는 튼튼한 피난처」가 되신다고 말합니다.
곧, 백성을 지키는 지도자도 자신을 지키시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왕권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왕이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독립적인 능력을 소유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왕의 안전과 구원도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 「그리스도」, 곧 기름 부음 받은 이라는 칭호가 사용되는 것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왕적 언어와 연결됩니다. 그러나 시편 28:8이 예수님의 특정한 사건을 직접 예언한다고 단정할 근거는 본문에 없습니다. 이 시가 먼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과 기름 부어 세우신 이의 힘이 되신다는 고백입니다.
이제 그 백성을 향한 시인의 마음이 마지막 기도로 표현됩니다.
조금 더 깊이
「그들의」로 옮긴 자리의 히브리어 원문은 「그들에게」라는 의미의 복수형 표현입니다. 고대 그리스어 번역인 칠십인역은 이 부분을 「그분의 백성의 힘」이라는 뜻으로 옮깁니다.
그들을 목자로서 돌보시고 영원히 짊어져 주십시오
주님,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당신의 소유에 복을 내려 주십시오. 그들을 목자처럼 돌보시고 영원토록 안고 가 주십시오.시편 28:9 · 두루새김
시편의 마지막 절에는 네 가지 요청이 있습니다. 구원하시고, 복을 내려 주시고, 목자처럼 돌보시고, 짊어져 주십시오. 이 네 가지 동사는 개인적인 위기에서 출발했던 시편의 시야를 백성 전체의 삶으로 넓힙니다.
당신의 백성, 당신의 유산
원문에서 유산은 어떤 사람이 소유하거나 물려받는 몫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를 「주님의 소유인 그들」로 옮겨, 백성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관계를 드러냅니다.
시인은 자기 백성을 구해 달라고 말하기 전에,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먼저 밝힙니다. 그들이 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돌보셔야 한다는 단순한 호소를 넘어,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으로 삼으신 백성을 계속 책임져 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제 자신의 경험을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 안에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하셨다면, 자신뿐 아니라 그분께 속한 백성에게도 구원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어디까지 돌보는가
「목자처럼 돌보시고」라는 표현은 시편 마지막의 분위기를 크게 바꿉니다. 앞에서는 심판과 행위에 따른 대가, 악한 사람들의 멸망에 관한 기도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시는 분의 모습이 아니라 양 떼를 돌보시는 목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목자는 양 떼를 먹이고 이끌며 위험에서 보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편 28편에는 목자의 돌봄 뒤에 하나의 동사가 더 붙습니다.
「짊어져 주십시오.」
이 동사는 들다, 들어 올리다, 운반하다, 짊어지다 등의 뜻을 지닌 말입니다. 여기서는 목자가 양을 돌보는 이미지와 함께 사용되기 때문에, 양을 들어 올려 품거나 옮기는 모습까지 떠올리게 합니다. 다만 이 동사가 반드시 다친 양을 들어 안는 장면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백성을 들어 올리고 계속 지탱해 주시기를 구하는 표현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목자는 양이 스스로 걷도록 길을 안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양이 위험에 처하거나 스스로 움직이기 어려울 때에는 직접 들어 옮길 수도 있습니다. 시인이 구하는 하나님의 돌보심은 방향을 알려 주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 백성의 짐과 연약함을 하나님께서 친히 감당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영원히 짊어져 주십시오
시인은 마지막에 「영원히」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이것은 한 번의 위기에서 구원받는 것보다 더 긴 시간을 바라보는 기도입니다.
처음의 간절한 기도는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마지막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앞으로 살아갈 모든 시간으로 넓어집니다.
시편 28편은 하나님이 악한 사람들을 심판하시리라는 확신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소망을 마지막에 놓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백성을 끝까지 돌보시기를 바라는 소망입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9:29에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큰 능력으로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백성이며 그분의 유산으로 불립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설명할 때 목자의 이미지를 자주 사용합니다. 시편 23:1에서는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고백하고, 에스겔 34:11–16에서는 하나님이 친히 자신의 양들을 찾아 돌보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0:11에서는 하나님이 목자처럼 양 떼를 먹이시고 어린양을 품에 안으시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또한 신명기 1:31에서는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돌보신 일을 아버지가 아들을 안고 가는 모습에 비유합니다. 이 본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이끌어 가실 뿐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견딜 수 없는 자리에서도 돌보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두 손을 들었던 사람이 백성을 맡기다
시편 28편은 두 손을 들고 부르짖는 사람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고 부르짖던 사람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마침내 입술로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는 직접 악한 사람을 심판하는 사람이 되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정의를 청합니다. 그의 기도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온 백성의 구원과 돌보심을 구하는 목소리가 됩니다.
처음에는 자기 생명이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구해 달라고 부르짖었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영원히 짊어져 달라고 기도합니다.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도 품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시편 28편의 마지막에 남는 기도입니다.
시편은 악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백성에게 어떤 복이 내려졌는지 보여 주지 않습니다.
대신 마지막 장면에서 시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백성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그들이 걸어갈 길을 따라 끝없이 돌보시는 목자를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