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풀어 읽기 · 1장
이 장의 자리 · 1–2장 · 서로를 부르는 노래
사랑하는 눈에 비친 아름다움
아가서는 입맞춤을 바라는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두 사람이 언제 만났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이미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있는 여자의 마음속으로 곧장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사랑 노래에는 뜻밖의 긴장이 숨어 있습니다.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는 자신의 외모를 설명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포도밭을 돌보느라 자신의 포도밭은 지키지 못했다고 말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아가 1장은 사랑을 단순히 아름다운 감정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과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누군가에게 얽매여 있는 삶과 스스로 선택하여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을 함께 보여 줍니다.
이 장에서 특별히 주목할 것은 시선의 변화입니다. 여자는 처음에 사람들에게 자신을 빤히 쳐다보지 말라고 말합니다(1:6). 그런데 장의 끝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그를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합니다(1:15). 여자는 다시 상대방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응답합니다(1:16).
처음에는 남들의 시선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설명해야 했던 여자가,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노래 중의 노래 — 사랑을 노래하기 위한 특별한 언어
솔로몬의 노래, 노래 가운데 가장 뛰어난 노래입니다.아가 1:1 · 두루새김
히브리어 제목은 말 그대로는 ‘노래들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에서는 어떤 명사를 ‘~의 ~’라는 구조로 반복하여 가장 뛰어나거나 특별한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열왕기상 8:27에서 하늘을 거듭 말하는 표현이 그 예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뜻을 「노래 가운데 가장 뛰어난 노래」로 풀어 옮겼습니다.
아가서 안에도 왕과 솔로몬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왕이 이룬 업적이나 궁정의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펼쳐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여자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중심을 이룹니다.
왕의 이름을 가진 노래이지만, 독자가 가장 먼저 듣는 것은 왕의 명령도 왕을 칭송하는 신하의 목소리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자기가 바라는 것을 직접 말하는 한 여자의 목소리입니다.
조금 더 깊이
「솔로몬의 노래」라는 표현은 누가 썼는지를 확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솔로몬이 지은 노래, 솔로몬을 위한 노래, 솔로몬과 관계된 노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4:32는 솔로몬이 많은 노래를 지었다고 전하지만, 그것만으로 아가서 전체를 솔로몬이 직접 지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노래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와도 주제를 나눕니다. 창세기 2:18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고, 2:23에서 남자는 여자를 보고 자신의 뼈와 살에 해당하는 존재라고 기뻐하며, 2:25에서는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아가 1장은 이 창조 이야기를 직접 인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이 서로를 마주합니다. 아가서에서는 그 인간들이 서로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잠언 5:18–19도 배우자와 나누는 사랑의 기쁨을 긍정적으로 묘사합니다. 물론 아가 1장은 두 사람이 혼인했는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으므로, 이 장의 모든 장면을 이미 부부가 된 사람들의 생활로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구약의 예언서에서도 혼인과 사랑의 말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 사용됩니다(호세아 2:14–23, 이사야 54:5–8).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가서에 등장하는 남녀도 반드시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각각 상징한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신약의 에베소서 5:25–32 역시 혼인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연결하지만, 아가 1장을 직접 인용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후대의 신학적 읽기는 아가서가 먼저 노래하는 인간의 사랑을 지워 버리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랑은 포도주보다 좋다 — 향기와 이름과 입맞춤
입맞춤을 기다리는 사람이 직접 말하기 시작하다
그가 입술로 내게 입맞춰 주면 좋겠어.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더 좋으니까.아가 1:2 · 두루새김
이 짧은 문장 안에서 상대방을 부르는 방식이 바뀝니다.
처음에는 「그가」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듯 부르다가, 곧바로 「네 사랑은」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마치 그 사람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직접 말을 건넵니다. 그를 생각하는 마음이 곧 그에게 직접 말하는 목소리로 변합니다.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맞춤을 원합니다. 아가서는 이 소망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습니다. 사랑에는 상대방을 향한 마음뿐 아니라 실제로 가까이 있고 싶어 하는 몸의 갈망도 포함됩니다.
시편 104:15에서 포도주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포도주는 즐거움과 풍요를 대표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친밀함이 그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포도주가 주는 기쁨보다 더 좋은 것은, 사랑하는 그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일입니다.
향유가 흘러나오듯 사람의 이름도 퍼져 나간다
네 기름은 향기가 참 좋아. 네 이름은 쏟아 놓은 향기로운 기름 같아. 그래서 젊은 여자들이 너를 사랑해.아가 1:3 · 두루새김
히브리어에서 ‘이름’은 셈(שֵׁם), 두루새김이 「기름」으로 옮긴 말은 셰멘(שֶׁמֶן)입니다. 두 낱말의 소리가 서로 닮았습니다.
여자는 상대방의 기름이 좋은 향기를 풍긴다고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 자체가 「쏟아 놓은 향기로운 기름」 같다고 말합니다. 향기로운 기름은 병에 담겨 있을 때보다 쏟아질 때 주변으로 향기를 퍼뜨립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이름은 그를 기억하고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집니다.
이 구절에서 이름은 단순히 사람을 부르는 말이 아닙니다.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그 사람의 매력과 평판까지 포함합니다.
그래서 젊은 여자들이 그를 사랑한다는 말이 이어집니다.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혼자만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도 그의 매력을 알아봅니다. 본문은 질투를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 더 넓은 사람들의 감탄 속으로 퍼져 나갑니다.
나를 이끌어 줘, 우리가 달려가자
나를 이끌어 줘. 우리가 네 뒤를 따라 달려가자. 왕이 나를 자기 방들로 데려갔어. 우리는 너 때문에 즐거워하고 기뻐하자. 네 사랑을 포도주보다 더 칭찬하자. 그들이 너를 사랑하는 건 당연해.아가 1:4 · 두루새김
처음에는 「나를」이라고 말하다가 다음에는 「우리가」라고 말합니다. 아가서에는 하나의 목소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자와 남자의 목소리가 등장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끼어듭니다.
그러나 원래의 히브리어 본문에는 현대 희곡처럼 말하는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를 여자들과 함께하는 말로 읽을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의 응답이 시작된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누가 말하는지 정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움직임 자체입니다.
사랑은 여기서 기다림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끌어 달라고 요청하고, 상대방을 따라 달려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은 강제로 붙잡아 달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가까워지고 싶다는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곧이어 장면이 달라집니다. 지금까지는 입맞춤을 바라는 말이었는데, 이제 왕의 방에 들어간 일이 언급됩니다.
이 장면을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전하는 말로 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친밀함을 왕의 방에 들어가는 모습으로 표현한 시적 장면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시의 왕이 뒤에 등장하는 목자와 어떤 관계인지도 여기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아가서는 이처럼 장면을 빠르게 옮깁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동안 왕의 방과 목자의 들판이 차례로 나타나지만, 그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가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는 하나의 연애 이야기로 다시 엮으려고 하면 오히려 본문의 풍부함을 놓치기 쉽습니다.
아가서는 사건이 일어난 순서를 모두 설명하기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사람과 장소를 어떻게 새롭게 경험하게 하는지를 노래합니다.
이 장면을 지나자 분위기가 바뀝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여자가 이제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2절의 「네 사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애정이나 사랑의 표현을 나타내는 복수형입니다. 뒤에서 「내 연인」이라고 부르는 말(1:13)과 관련된 낱말이지만, 여기서는 사랑하는 사람 자신보다 그가 베푸는 애정과 친밀함이 강조됩니다.
나는 검고 아름답다 — 다른 사람의 시선과 자신의 목소리
아름답다는 말 앞에 붙은 뜻밖의 고백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는 검고 아름다워. 케다르의 천막들처럼, 솔로몬의 휘장들처럼.아가 1:5 · 두루새김
여자는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이름이나 출신을 밝히지 않습니다. 먼저 자기 피부의 색깔을 말합니다.
원문은 ‘검지만 아름답다’와 ‘검고 아름답다’로 모두 읽을 수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나는 검고 아름다워」로 옮겼습니다. 여자가 자신의 피부색을 설명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검은 피부 자체를 결함이라고 선언하지는 않습니다.
케다르의 천막은 광야의 생활을 떠올리게 하고, 솔로몬의 휘장은 왕의 화려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먼저 자신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는 그 자신감 뒤에 있는 사정이 드러납니다.
여자를 바라본 것은 태양만이 아니었다
내가 거무스름하다고 빤히 쳐다보지 마. 햇볕에 그을린 거야.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내게 화를 내고 포도밭들을 지키게 했어. 그런데 정작 내 포도밭은 지키지 않았어.아가 1:6 · 두루새김
여자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빤히 바라보지 말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검어진 이유를 태양이 자신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태양이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은 태양을 사람처럼 표현한 시적인 말입니다. 햇볕 아래 오래 있었기 때문에 피부가 그을렸다는 뜻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뜻을 「햇볕에 그을린 거야」로 풀어 옮겼습니다.
두루새김에서는 바라본다는 표현의 반복이 드러나지 않지만, 원문에서는 태양의 시선과 사람들의 시선이 나란히 놓입니다. 태양이 자신의 피부를 변화시켰다면, 사람들의 시선은 그 변화된 피부를 평가하려 합니다. 여자는 자신이 왜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여자는 단순히 야외 활동을 좋아해서 피부가 그을린 것이 아닙니다. 가족 안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노동 때문에 햇볕 아래 있어야 했습니다.
여자는 그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르지 않고, 「내 어머니의 아들들」, 곧 자신과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사람들로 부릅니다. 이 표현은 가족관계를 분명하게 나타내면서도 그들과 마음의 거리가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여자에게 화를 냈고, 여자는 그들의 결정에 따라 포도밭을 지켜야 했다는 사실입니다.
여자는 다른 사람들의 포도밭을 지켰지만, 정작 「내 포도밭」은 지키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말 그대로 자신이 소유하거나 돌보아야 할 포도밭을 관리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시라는 문맥에서 포도밭은 자신의 몸과 아름다움, 또는 자신의 사랑과 삶을 나타내는 비유로도 읽힙니다.
여자는 남에게 속한 것을 지키도록 요구받았지만, 자신에게 속한 것을 돌볼 여유는 갖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이끌어 달라고 말하던 목소리를 다시 듣게 합니다. 그녀가 바라는 사랑은 단순히 누군가에게 선택받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묶여 있는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여자는 이제 그 사람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지 묻습니다.
조금 더 깊이
5절의 원문은 검다는 형용사와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접속사로 연결합니다. 이 접속사는 문맥에 따라 ‘그러나’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대조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검지만 아름답다’는 표현에는 검은 피부가 아름다움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반면 ‘검고 아름답다’는 두 가지 특징을 나란히 긍정합니다. 본문이 어느 정도의 사회적 편견을 바탕에 두고 있는지는 뒤따르는 6절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케다르는 창세기 25:13에서 이스마엘의 아들 가운데 하나로 등장하고, 이사야 21:16–17과 예레미야 49:28–29에서도 가축을 기르며 옮겨 다니는 생활과 관련된 집단으로 언급됩니다. 두 비유를 어두운 색과 화려한 아름다움의 대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비유가 모두 아름다움을 표현한다고 읽을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특히 「솔로몬의 휘장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와 색깔이었는지는 본문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6절의 포도밭에 관해서는, 아가서 전체에서 포도밭이 사랑과 연결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8:11–12에서는 솔로몬의 포도밭과 여자가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는 포도밭이 나란히 등장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여자가 정확히 무엇을 돌보지 못했다는 것인지는 하나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한낮의 목자를 찾아서 — 사랑은 서로를 찾는 일이다
내가 마음 깊이 사랑하는 사람아, 내게 말해 줘. 어디서 양 떼를 먹이니? 한낮에는 어디서 양 떼를 쉬게 하니? 왜 내가 네 동료들의 양 떼 곁에서 몸을 가린 여자처럼 있어야 하겠어?아가 1:7 · 두루새김
왕의 방을 말하던 노래가 어느새 목자의 들판으로 옮겨 왔습니다.
고대에 가축을 기르는 환경에서 한낮의 더위는 양 떼를 쉬게 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여자가 한낮의 장소를 묻는 것은 목자의 일상과도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단순히 길을 묻는 말이 아닙니다.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그에게 갈 수 있습니다.
「몸을 가린 여자」는 해석이 쉽지 않은 표현으로, 말 그대로 몸을 가린 여자로 읽기도 하고 ‘헤매는 여자’로 읽기도 합니다. 두 경우 모두 확실한 것은 같습니다.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고, 그를 만나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때 대답이 들려옵니다.
여자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람아, 어디인지 모르겠다면 양 떼의 발자국을 따라가 봐. 목자들의 천막 곁에서 네 새끼 염소들을 먹여.아가 1:8 · 두루새김
이 대답을 누가 하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남자의 응답일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의 말일 수도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여자는 자신의 외모를 설명하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를 부르는 목소리는 「여자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녀의 외모에 관한 설명을 더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녀를 아름답다고 부르면서 길을 알려 줍니다.
그 길은 화려한 궁전의 복도가 아닙니다. 양 떼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들판입니다.
여자는 양 떼를 먹이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더구나 대답에는 그녀 자신의 새끼 염소들도 등장합니다. 여자는 누군가가 데려오기만 기다리는 인물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고 일하는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는 길은 그 사람의 삶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이어서 노래는 다시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목소리로 넘어갑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의 자음과 전통적인 모음 표기에 따르면 이 표현은 몸을 두르거나 가린 사람이라는 뜻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칠십인역도 몸을 감싸거나 가린 사람이라는 방향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왜 양 떼 곁에서 몸을 가려야 하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문맥에 맞추어 ‘헤매는 여자’나 ‘길을 잃고 돌아다니는 여자’로 이해하는 읽기도 있습니다. 다만 그 경우에는 전해지는 히브리어 표현을 다르게 해석하거나 수정해야 합니다. 몸을 가린 여자라는 읽기를 따르면, 여자가 낯선 목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신분이나 의도를 감추어야 하는 처지를 염려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헤매는 여자라는 읽기를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을 찾지 못한 채 다른 양 떼 사이를 돌아다니고 싶지 않다는 뜻이 됩니다.
파라오의 전차와 금 장식 —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
내 사랑아, 너는 파라오의 전차들 사이에 있는 내 암말 같아.아가 1:9 · 두루새김
오늘날 독자에게는 다소 낯선 칭찬입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암말에 비유한다니, 왜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이 비유를 이해하려면 말보다 먼저 전차를 생각해야 합니다. 고대 세계에서 전차는 군사력과 왕의 권력, 부와 위엄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특히 이집트의 말과 전차는 이스라엘 왕실에서도 귀하게 여겼습니다. 열왕기상 10:28–29는 솔로몬 시대에 이집트에서 말과 전차를 들여온 일을 기록합니다.
따라서 파라오의 전차라는 배경은 왕실의 화려함과 위엄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기서 말의 아름다움, 힘, 움직임, 왕실의 화려한 장식 가운데 무엇을 가장 강하게 강조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줄지은 장식으로 꾸민 네 두 뺨이 아름답고, 구슬 목걸이를 두른 네 목도 아름다워.아가 1:10 · 두루새김
이제 시선은 말의 비유에서 여자의 얼굴과 목으로 이동합니다. 목소리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막연하게 칭찬하지 않고, 구체적인 모습을 하나씩 바라봅니다.
우리가 너를 위해 은으로 점점이 꾸민 금 장식을 만들어 줄게.아가 1:11 · 두루새김
여기서도 갑자기 「우리가」라는 복수형이 나타납니다. 남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별도의 집단이 응답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누가 말하는지 정확히 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자의 아름다움이 장식을 받을 만큼 귀하게 여겨진다는 사실입니다.
여자는 앞에서 케다르의 천막처럼 햇볕에 그을린 자신의 모습을 말하며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왕실의 전차와 금은 장식으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합니다.
과연 그녀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왕실의 장식이 여자를 아름답게 만든다고 읽을 수도 있지만, 본문은 이미 그녀를 아름답다고 부른 뒤에 장식을 말합니다. 장식은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돋보이게 할 뿐입니다.
이 구분은 다음 장면에서 더 선명해집니다. 이제 여자가 자신의 연인을 묘사하기 시작하는데, 그녀는 그를 금이나 은에 비유하지 않습니다. 대신 향기를 가진 것으로 묘사합니다.
나르드와 몰약과 엔게디의 꽃 — 가까이 있을수록 깊어지는 사랑
사랑하는 사람은 향기로 기억된다
왕이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내 나르드 향유가 향기를 풍겼어.아가 1:12 · 두루새김
장면은 다시 왕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본문은 향기가 퍼지는 모습을 통해 여자의 사랑을 감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앞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 쏟아 놓은 향기로운 기름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자의 향유가 향기를 풍깁니다.
처음에는 여자가 남자의 향기에 감탄했습니다. 이제는 여자가 지닌 향기가 그에게서도 느껴질 수 있는 공간을 채웁니다.
내 연인은 몰약 주머니
내 연인은 내게 몰약 주머니 같아. 내 품에서 밤을 보내지.아가 1:13 · 두루새김
몰약은 향료로 사용되었습니다. 향료를 담은 주머니를 몸 가까이에 지니면 그 향기가 오랫동안 남을 수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연인이 머무는 곳을 「내 품」으로 옮겼습니다. 원문에서는 자신의 두 젖가슴 사이에서 밤을 지내는 몰약 주머니라고 표현하여 깊은 신체적 친밀함을 나타냅니다. 여자는 연인을 막연히 생각하는 이상이나 멀리 있는 영적 존재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자기 몸에 가까이 지니는 향기로운 물건으로 비유합니다.
사랑은 마음속에서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가까이 있음으로 느끼는 것이기도 합니다.
광야에서 만나는 향기로운 꽃
내 연인은 내게 엔게디의 포도밭에 핀 헤나 꽃송이 같아.아가 1:14 · 두루새김
엔게디는 사해 서쪽 지역의 오아시스로 알려진 곳입니다. 엔게디를 둘러싼 메마른 땅을 생각하면, 그곳에서 자라는 향기로운 식물과 꽃은 특별한 인상을 줍니다. 헤나는 꽃이 향기를 지닌 식물입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과 코로 느끼는 즐거움을 함께 불러일으킵니다.
왕의 방, 금 장식, 파라오의 전차가 궁정의 화려함을 나타냈다면, 엔게디의 꽃은 자연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입니다. 아가서의 사랑은 어느 한 공간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왕의 방에서도, 목자가 있는 들판에서도, 광야의 오아시스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여자가 연인을 향기로운 꽃에 비유한 뒤, 상대방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옵니다.
조금 더 깊이
12절에서 「자기 자리」로 옮긴 표현은 둘러앉는 자리나 식사하며 기대어 앉는 장소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장소의 정확한 형태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나르드는 향료로 사용되는 식물성 재료입니다. 엔게디는 사무엘상 23:29에서도 다윗이 그곳의 요새들에 머물렀다고 기록된 곳입니다.
너는 아름답다, 너도 아름답다 — 마침내 서로를 바라보다
아름다움을 선언하는 말
참 아름다워, 내 사랑아. 너는 참 아름다워. 네 두 눈은 비둘기 같아.아가 1:15 · 두루새김
여자는 처음에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거무스름하다고 빤히 쳐다보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랑하는 사람은 그녀를 향해 말합니다.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이 말은 두 번 반복됩니다. 특별한 설명이나 조건도 붙지 않습니다.
그는 여자의 피부색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햇볕 아래서 일했던 사정을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녀가 더 좋은 장식을 갖추어야 아름답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녀를 바라보고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때 여자가 대답합니다.
아름다움은 한쪽에서만 선언되지 않는다
참 아름다워, 내 연인아. 너는 정말 사랑스러워. 우리가 누울 자리도 푸르러.아가 1:16 · 두루새김
남자가 「참 아름다워」라고 말하자, 여자는 같은 표현으로 되돌려줍니다. 여자는 아름답다는 평가를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말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서로에게 바라보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자의 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지금까지 사랑의 대상은 「나」와 「너」였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새로운 말이 중요해집니다.
「우리가」입니다.
여자는 자신의 아름다움이나 남자의 아름다움만 말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누릴 공간을 바라봅니다. 누울 자리는 친밀함을 위한 공간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푸르고 싱싱하다고 묘사됩니다.
나무들이 이루는 집
우리 집의 들보는 백향목이고, 지붕을 받치는 서까래는 사이프러스나무야.아가 1:17 · 두루새김
여자는 이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공간의 구조를 묘사합니다.
여기서 1장 처음에 나왔던 왕의 방을 떠올리면 또 하나의 차이가 보입니다. 1:4에서 여자는 「왕이 나를 자기 방들로 데려갔어」라고 말했습니다. 그 방은 왕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우리가 누울 자리」와 「우리 집」을 말합니다.
두 장소가 실제로 서로 다른 장소인지, 같은 공간을 시적으로 다르게 표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말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방에 들어가는 모습이었다면, 마지막에는 함께 누리는 공간을 이야기합니다.
조금 더 깊이
15절의 비둘기 비유가 눈의 구체적인 어떤 특징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비둘기의 모습이나 움직임, 부드러운 인상 등이 떠오를 수 있지만, 본문은 하나를 지정하지 않습니다. 16절의 「푸르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푸르고 싱싱하며 무성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누울 자리가 말 그대로 초록색이라는 뜻이라기보다, 생기 있는 풀과 나무의 모습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표현을 실제 풀과 나무로 둘러싸인 야외의 자리로 이해할 수도 있고, 실내 잠자리의 생기 넘치는 모습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17절의 백향목은 성경에서 튼튼하고 값진 건축 재료로 등장합니다. 열왕기상 6:9–10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백향목을 사용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묘사된 집을 솔로몬의 궁전이나 성전과 같은 곳으로 볼 근거는 없습니다. 「사이프러스나무」로 번역한 히브리어가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나무를 가리키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 장면은 실제로 좋은 목재로 지어진 집을 묘사한다는 읽기와, 풀과 나무가 우거진 자연을 집처럼 묘사한다는 읽기로 갈립니다. 앞의 읽기에서는 왕의 방에서 시작된 시적 장면이 아름다운 거처의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뒤의 읽기에서는 푸른 누울 자리 위로 나뭇가지들이 들보와 서까래처럼 뻗어 있어, 숲이 두 사람의 집이 됩니다. 16절의 푸른 누울 자리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에서 두 번째 읽기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다만 이것만이 가능한 해석은 아닙니다.
아가 1장이 보여 주는 사랑의 의미
아가 1장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직접 등장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장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건을 일으키시거나 두 사람의 관계를 평가하시는 장면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 장을 해설하면서 하나님이 여자를 왕의 방으로 인도하셨다거나, 목자를 통해 그녀를 보호하셨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본문에 없는 행동을 하나님께 돌리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의 삶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는 기쁨, 가까이 있고 싶은 갈망, 함께 있을 장소를 그리는 마음도 포함됩니다. 아가서는 이러한 경험을 설명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해 매 구절마다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인간의 사랑을 성경의 지혜로운 노래가 다룰 만한 주제로 삼습니다.
아가 1장의 직접적인 대상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신학적 의미는 인간의 사랑을 다른 무언가의 상징으로 바꾸어야만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안에서 사람 사이의 사랑이 갖는 고유한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데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여자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 앞에서 피부색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다른 종류의 시선이 등장합니다. 상대방은 여자를 아름답다고 부릅니다. 그리고 여자도 그를 아름답다고 부릅니다.
그래서 아가서의 사랑은 처음부터 모든 문제가 해결된 완전한 상태라기보다,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기를 바라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경험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아름다운 이유는 한 사람만 말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응답하기 때문입니다.
아가 1장은 여러 장소를 지나왔습니다. 왕의 방이 등장했고, 햇볕이 내리쬐는 포도밭이 보였으며, 한낮의 목자들이 양 떼를 쉬게 하는 들판으로 이동했습니다. 파라오의 전차와 금 장식이 나타났고, 엔게디의 향기로운 꽃도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화려한 왕의 전차도, 값비싼 장식도 남지 않습니다.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참 아름다워, 내 연인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무들로 이루어진 듯한 집을 묘사합니다.
여기에는 더 이상 자신의 피부색을 설명하는 말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포도밭을 지켜야 했던 사정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달려가고 싶다는 말로 시작된 노래가, 이제 함께 머물고 싶은 장소를 그리는 말로 끝납니다.
그곳은 왕의 궁전일 수도 있고,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운 들판일 수도 있습니다. 아가 1장은 그 장소를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두 사람이 그곳을 「우리」의 자리라고 부른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