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3–4장 · 밤에 찾아 헤매는 사랑
잠긴 동산이 문을 열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우리는 무엇을 봅니까?
아가 4장의 남자는 여자의 눈과 머리카락, 이와 입술, 목과 가슴을 차례로 바라봅니다. 그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양 떼와 비둘기, 석류와 가젤, 다윗의 탑까지 불러옵니다.
그런데 시가 진행되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처음에 여자는 남자가 바라보는 대상입니다. 남자는 그녀의 몸을 묘사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며, 그녀 때문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다가 여자를 문이 잠긴 동산에 비유합니다. 그 안에는 온갖 향료와 열매가 있고, 맑은 물이 솟아납니다.
그때 처음으로 여자가 말합니다. 「깨어나, 북쪽 바람아. 이리 와, 남쪽 바람아. 내 동산에 불어 그 향기가 퍼지게 해 줘. 내 연인이 자기 동산으로 와서 맛 좋은 열매를 먹기를 바라.」
이 마지막 응답이 앞의 모든 찬사를 새롭게 읽게 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녀를 동산에 비유하고, 그 안의 향기와 열매를 찬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동산에 연인을 초대하는 목소리는 여자 자신의 것입니다.
아가 4장은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노래로 시작하여, 그 아름다움의 주인이 스스로 사랑에 응답하는 노래로 끝납니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깊이 끌리는 경험이지만, 끌린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에게 마음대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까워지고 싶은 갈망과 상대방이 스스로 가까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장에서 함께 드러납니다.
눈에서 젖가슴까지 —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일
사람의 몸이 하나의 풍경이 되다
참 아름다워, 내 사랑아. 너는 참 아름다워. 너울 뒤의 네 두 눈은 비둘기 같고, 네 머리카락은 길르앗 산을 내려오는 암염소 떼 같네.아가 4:1 · 두루새김
아가 3장이 솔로몬의 혼인 날을 묘사했다면, 4장은 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길고 친밀한 찬사로 시작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향해 두 번이나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런 다음 그녀의 얼굴과 몸을 하나씩 묘사합니다.
히브리어 사랑의 시에는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신체를 차례로 열거하며 자연이나 건축물에 비유하는 방식이 나타납니다. 아가 4장에서는 눈에서 시작하여 머리카락, 이, 입술과 관자놀이, 목, 가슴으로 시선이 이동합니다.
그런데 이 비유들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칭찬과 상당히 다릅니다.
여자의 머리카락을 산에서 내려오는 암염소 떼에 비유한다는 말을 처음 들으면 아름답다는 느낌보다 낯설다는 느낌이 앞설 수 있습니다. 왜 그런 비유를 사용했을까요? 중요한 것은 암염소라는 동물의 이름보다, 산에서 내려오는 무리의 모습입니다.
산비탈을 따라 움직이는 암염소 떼를 상상해 봅시다. 수많은 동물이 산의 굴곡을 따라 흘러내리듯 움직입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개별 동물보다 무리 전체의 물결치는 움직임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카락에서 그런 움직임을 발견합니다.
이 비유가 아름다운 이유는 여자의 머리카락을 단순한 물건처럼 묘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머리카락은 살아 움직이는 풍경이 됩니다.
양 떼는 왜 쌍둥이를 낳는가?
네 이는 털이 깎인 채 몸을 씻고 올라온 양 떼 같아. 모두 쌍둥이를 낳은 양들이고, 새끼를 잃은 양은 하나도 없어.아가 4:2 · 두루새김
깨끗이 씻은 양들의 밝고 고른 모습은 가지런한 치아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남자는 양들이 깨끗하다는 말에 그치지 않습니다. 양들이 모두 쌍둥이를 낳았고 새끼를 잃은 양이 하나도 없다는 말은 비유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씻고 올라온 양 떼는 깨끗하며, 쌍둥이를 낳은 양 떼는 풍성합니다. 새끼를 잃지 않았다는 말은 온전함을 더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여자의 아름다움이 반드시 출산 능력이나 풍요로운 모성과 관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양 떼의 번식은 비유를 구성하는 이미지이고, 직접 묘사되는 대상은 치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설명하기 위해 남자는 살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을 모아 옵니다.
석류와 탑은 무엇을 아름답다고 하는가?
네 입술은 붉은 실 같고, 네 입은 아름다워. 너울 뒤의 네 관자놀이는 석류 한 조각 같아.아가 4:3 · 두루새김
가느다란 선과 선명한 붉은색이 입술의 모양과 색을 떠올리게 합니다. 석류의 붉은 속살과 둥근 곡선이 너울 뒤로 비치는 얼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너울입니다. 1절에서도 눈이 너울 뒤에 있다고 했는데, 3절에서도 관자놀이가 너울 뒤에 있다고 합니다. 남자는 여자의 얼굴 전체를 한꺼번에 보지 않습니다. 너울 사이로 드러나는 특징들을 하나씩 발견합니다.
그런데 다음 비유는 갑자기 규모가 커집니다.
네 목은 돌을 층층이 쌓아 세운 다윗의 탑 같고, 그 위에는 방패 천 개가 걸려 있어. 모두 용사들의 방패야.아가 4:4 · 두루새김
여자의 목을 탑에 비유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곧고 당당한 자세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탑이 가진 높이와 위엄, 견고함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단순히 목이 길다는 말로 줄이면 중요한 것을 놓칩니다. 탑에는 방패 천 개가 걸려 있습니다. 그것도 평범한 장식용 방패가 아니라 용사들의 방패입니다. 이는 탑이 가진 군사적 위엄과 장엄함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여자의 목에 걸린 장식들이 방패처럼 빛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여자는 꽃이나 연약한 동물에만 비유되지 않습니다. 그녀의 목은 용사들의 방패가 걸린 탑과 같습니다. 남자가 발견하는 아름다움에는 부드러움과 생명력뿐 아니라 당당함과 위엄도 포함됩니다.
아가서의 여성미는 단순히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모습으로만 표현되지 않습니다.
두 새끼 가젤
네 두 가슴은 백합 사이에서 풀을 뜯는 두 새끼 가젤, 암가젤이 낳은 쌍둥이 같아.아가 4:5 · 두루새김
가젤은 아가서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 동물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중요한 것은 빠르게 달리는 모습이 아닙니다. 두 새끼 가젤이 백합 사이에서 풀을 뜯고 있다는 것입니다.
쌍둥이라는 표현은 두 가슴의 짝을 이루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어린 동물의 모습은 부드러움과 생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장면에는 몸의 구조를 노골적으로 설명하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몸을 실제로 바라보고 그 아름다움에 끌리는 남자의 시선은 분명하게 표현됩니다.
이것이 아가서 특유의 언어입니다. 성적인 아름다움을 부정하거나 감추지 않으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자연의 풍경 속에서 표현합니다. 그 결과 여자의 몸은 살아 있는 세계와 분리된 대상이 아니라, 그 세계의 아름다움을 닮은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남자는 이제 단순히 바라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려 합니다.
조금 더 깊이
8절부터 「신부」라는 호칭이 반복되므로 두 장은 혼인이라는 주제로 연결되지만, 4장의 남자가 3장의 솔로몬과 같은 인물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의 산악 지역이며, 목축과 관련된 장소로 성경에 등장합니다(민수기 32:1). 원문의 동사가 반드시 내려오는 움직임만 뜻하는지는 확실하지 않고, 산 위에 무리가 펼쳐진 모습으로 이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길르앗 산을 내려오는」이라는 두루새김의 읽기를 따르면, 산에서 흘러내리는 무리와 늘어진 머리카락이 눈앞에서 겹칩니다. 2절의 「새끼를 잃은 양」은 상실이나 자식을 잃은 상태와 관련된 표현입니다. 따라서 원문은 단순히 치아가 짝을 이루고 빠진 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실제 양 떼가 새끼를 낳고 잃지 않은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3절에서 석류의 어떤 특징이 특별히 강조되는지는 하나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두루새김이 「돌을 층층이 쌓아 세운」으로 옮긴 히브리어 탈피요트는 뜻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탑의 구조나 기능과 연결해 이해하는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특정한 건축 형태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탑을 실제로 몇 층짜리 건축물이었다고 설명하거나, 무기고로 사용된 시설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몰약의 산과 유향의 언덕 — 바라보는 사람의 갈망
날이 서늘해지고 그림자들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몰약의 산과 유향의 언덕으로 갈게.아가 4:6 · 두루새김
이 구절에는 익숙한 시간 표현이 등장합니다. 아가 2:17에서도 등장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말하는 사람이 다릅니다.
앞에서는 여자가 연인에게 움직이라고 말했다면, 여기서는 남자가 자신이 가겠다고 말합니다.
몰약과 유향은 모두 향료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여자의 가슴을 묘사한 직후에 몰약의 산과 유향의 언덕이 등장하므로, 이 산과 언덕을 여자의 몸에 대한 친밀한 비유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남자는 여자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데서 더 나아가 그녀와 육체적으로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반면 이 구절을 향기로운 산과 언덕이라는 독립적인 시적 장소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아가서는 지리적 장소를 사랑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이미지로 자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든 남자의 말에는 움직이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어서 남자는 여자의 아름다움에 관한 찬사를 마무리합니다.
내 사랑아, 너는 온통 아름다워. 네게는 흠이 하나도 없어.아가 4:7 · 두루새김
처음에는 여자의 눈과 머리카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다음 이와 입술, 관자놀이와 목, 가슴을 차례로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부분을 떠나 전체를 말합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묘사했던 각각의 아름다움을 한데 모으는 역할을 합니다.
남자의 눈에 여자는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습니다.
사랑의 시에는 특별한 언어가 있습니다. 남자는 상대방의 모든 특징을 객관적으로 확인한 뒤 완벽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자신의 기쁨을 가장 강렬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사람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그런데 이제 시는 예상하지 못한 장소로 이동합니다.
조금 더 깊이
6절에서 정확히 어느 시간에, 어떤 장소로 가겠다는 것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두루새김은 「날이 서늘해지고 그림자들이 사라질 때까지」로 옮겼습니다. 원문에서는 날이 숨을 쉬고 그림자들이 달아나는 모습으로 표현하며, 이를 새벽이나 저녁의 변화로 읽을 수 있어 하나의 시각만을 지정하지 않습니다. 7절의 「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낱말은 레위기 22:20–21에서 제물의 결함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자를 제물에 비유하거나, 종교 의식에서 흠 없는 존재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찬사입니다.
레바논의 높은 산에서 — 아름다움에는 닿을 수 없는 거리도 있다
신부야, 나와 함께 레바논을 떠나와. 나와 함께 레바논을 떠나와. 아마나 꼭대기에서, 스니르와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들의 굴에서, 표범들이 사는 산에서 바라봐.아가 4:8 · 두루새김
아가 4장은 여기서 새로운 국면에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남자는 여자의 몸을 가까이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를 아주 높은 산에 있는 사람처럼 부릅니다.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한 산악 경로보다 높은 곳과 위험한 곳이라는 인상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부르는 곳은 접근하기 쉬운 정원이 아닙니다. 야생동물이 사는 높고 험한 산악 지대입니다.
왜 사랑하는 여자를 그런 곳에 있다고 묘사할까요? 이 장면을 실제 지리적인 여행의 초대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뒤 문맥을 생각하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또는 그녀가 있는 세계의 높고 접근하기 어려운 특성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읽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바라봐」로 옮긴 히브리어 타슈리(שׁוּר)는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맥에 따라 높은 산에서 떠나거나 내려오라는 의미로 읽는 전통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높은 산에서 함께 풍경을 바라보라는 초대로 이해할 수도 있고, 위험하고 먼 산악 지대에서 남자와 함께 내려오라는 요청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두 읽기 모두 레바논을 함께 떠나오라는 앞의 초대와 연결됩니다.
앞에서는 주로 「내 사랑」이라고 불렀지만, 이제 남자는 여자를 신부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혼인과 관련된 친밀한 관계를 앞에 내세웁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남자가 신부에게 자신과 함께 떠나오라고 반복해서 부른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지 멀리서 그녀를 감상하는 일이 아닙니다.
아름답다고 찬탄했던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에서 이 관계에는 또 하나의 반전이 나타납니다.
조금 더 깊이
레바논과 헤르몬은 이스라엘 북쪽의 산악 지형과 연결됩니다. 신명기 3:9에는 스니르가 헤르몬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의 지명들이 모두 서로 독립된 산봉우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신부」라는 단어가 등장한다고 해서 두 사람이 실제로 언제 혼인식을 올렸는지, 이 장면이 혼인식 전인지 후인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가서는 여러 사랑 노래를 배열하고 있기 때문에, 각 장면을 시간 순서에 따른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눈길 한 번으로 마음을 사로잡다 —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약해지는 마음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한가?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어. 네 눈길 한 번으로, 네 목걸이 장식 하나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어.아가 4:9 · 두루새김
「사로잡았어」(לָבַב)라는 동사는 한 절에서 두 번 반복됩니다. 여자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까? 눈길 한 번, 목걸이 장식 하나입니다. 이것은 뜻밖의 축소입니다.
앞에서는 여자의 몸 전체를 차례로 묘사했습니다. 눈과 머리카락, 이와 입술, 목과 가슴까지 모두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남자는 여자의 눈길 한 번과 목걸이 장식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마음이 사로잡혔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는 이유를 설명할 때 우리는 그의 여러 장점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아주 작은 모습 하나가 유난히 마음에 남습니다. 눈길 한 번, 몸에 걸친 작은 장식 하나가 그 사람 전체를 떠올리게 합니다.
앞에서는 남자가 여자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여자가 남자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 드러납니다.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기도 합니다.
왜 신부를 누이라고 부르는가?
9절에는 또 하나의 낯선 표현, 「나의 누이」가 있습니다. 이 호칭은 10절과 12절에서도 반복됩니다. 문자적으로는 내 자매, 내 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실제 혈연관계인 누이를 가리킨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신부라는 호칭과 함께 사용되므로,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남자는 그녀를 자신의 연인일 뿐 아니라 매우 가까운 존재로 부릅니다.
포도주와 향료보다 더 좋은 것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얼마나 더 좋은지! 네 향기 나는 기름은 어떤 향료보다 향기로워.아가 4:10 · 두루새김
앞에서는 여자의 눈과 몸의 아름다움을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남자는 여자가 베푸는 사랑을 찬탄합니다. 여기서 남자가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여자의 외모가 아닙니다. 여자가 자신에게 주는 애정과 친밀함입니다.
이 표현은 1장에서 여자가 남자를 향해 했던 말과 대응합니다. 포도주보다 좋은 사랑, 향기 나는 기름이 이제 남자의 입에서 여자를 향해 사용됩니다. 남자는 단순히 아름다운 사람을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도 그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합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가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경험으로 깊어집니다.
그런데 남자는 여기서 입술을 다시 언급합니다.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벌집의 꿀이 뚝뚝 떨어져. 네 혀 아래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옷에서는 레바논의 향기가 나.아가 4:11 · 두루새김
앞에서는 입술이 붉은 실에 비유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색과 모양이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그 입술에서 나오는 것이 달콤합니다.
이것을 여자의 말이 달콤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입맞춤을 비롯한 신체적 친밀함의 감각을 표현한다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둘 가운데 하나로 의미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네 혀 아래에는 꿀과 젖이 있고」라는 표현은 달콤하고 풍요로운 것을 입 안에 간직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자의 입술과 혀를 묘사하던 노래는 다시 향기로 이동합니다. 남자는 여자가 눈에 보이는 모습뿐 아니라 가까이 있을 때 풍기는 향기까지 기억합니다.
이처럼 4장의 감각들은 점점 풍성해집니다. 처음에는 눈으로 보던 아름다움이었지만, 이제는 향기를 맡고 달콤함을 맛보는 경험으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다음 구절에서 이 모든 감각을 하나로 모으는 거대한 비유가 등장합니다.
여자는 하나의 동산이 됩니다.
조금 더 깊이
9절의 「사로잡았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드물게 사용되는 동사 형태입니다. 문맥상 마음을 빼앗거나 사로잡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작용의 정확한 느낌에는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목걸이 장식의 정확한 형태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두루새김이 「네 눈길 한 번」으로 옮긴 자리는 원문에서는 눈 하나라고 표현합니다. 실제로 한쪽 눈만을 가리키는지, 여자의 눈길 가운데 하나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인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아가서의 다른 부분에서도 연인 사이에 가족관계를 나타내는 언어가 사용됩니다. 특히 8:1에서는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형제와 같다면 공공장소에서도 거리낌 없이 친밀함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만 이 호칭이 고대 사회에서 모든 연인에게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거나, 특정한 혼인 의례의 공식 호칭이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구약에서 꿀과 젖은 풍요와 좋은 삶을 상징하는 데 자주 사용됩니다. 출애굽기 3:8은 이스라엘이 들어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여자가 약속의 땅을 상징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공통된 것은 풍요의 이미지입니다.
잠긴 동산, 봉인된 샘 —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과 지켜지는 경계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너는 잠긴 동산이야. 잠긴 샘, 봉해 둔 샘이야.아가 4:12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아가 4장의 중심을 이루는 이미지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동산에 비유합니다. 그런데 그냥 동산이 아닙니다. 잠긴 동산, 잠긴 샘, 봉해 둔 샘, 이 세 표현은 모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장소를 떠올리게 합니다.
동산에는 경계가 있고, 샘은 봉해 두었습니다. 그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뒤이어 설명되지만, 먼저 강조되는 것은 그곳이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잠겨 있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구절은 오래전부터 여성의 성적 순결이나 혼인 전의 정절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읽혀 왔습니다. 그러한 해석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동산과 샘이 여성의 아름다움과 신체적 친밀함을 나타내는 문맥에 놓여 있고, 그 공간이 닫혀 있거나 봉해 두었다고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관계에서 아직 열리지 않은 신체적 친밀함, 또는 오직 특정한 사람과 나누고자 하는 친밀함을 상징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여자가 어떤 성적 경험을 했는지, 혼인 전에 어떤 상태였는지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동산이 잠겨 있다는 표현을 여자의 가치가 반드시 특정한 성적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는 규정으로 확대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은 사랑의 시이지, 여성의 순결 여부를 검사하는 법률 문서가 아닙니다.
동산의 이미지는 남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귀한 장소라는 느낌을 줍니다. 따라서 12절의 닫힌 공간과 16절의 초대는 함께 읽어야 합니다. 동산이 잠겨 있다는 사실과, 그 동산이 사랑하는 사람을 맞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소중한 것이기에 아무에게나 열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기를 원할 때에는 기꺼이 열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장면은 없습니다. 그는 동산의 아름다움을 묘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자가 응답합니다.
온갖 열매와 향료가 자라는 동산
네 새순들은 맛 좋은 열매가 있는 석류나무 동산 같아. 헤나와 나르드가 있고, 나르드와 사프란, 향갈대와 계피도 있어. 온갖 유향나무와 몰약과 침향, 온갖 으뜸가는 향료도 있어.아가 4:13–14 · 두루새김
잠긴 동산 안에 무엇이 있는지 이제 시가 펼쳐 보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식물 목록이 아닙니다. 남자는 여자를 설명하기 위해 값지고 향기로운 식물들을 계속 불러옵니다.
왜 이렇게 많은 향료가 등장하는가?
나르드, 사프란, 계피, 몰약 등은 향기나 향신료와 관련된 식물성 재료들입니다. 본문의 목적은 경제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풍성하고 매력적인 존재로 느끼는지를 표현하는 데 있습니다.
동산에 들어 있는 식물의 종류가 하나둘 늘어날수록 그 풍요도 커집니다. 석류는 열매를 떠올리게 하고, 향료들은 향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보고 맡고 맛보는 감각이 함께 작용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낱말이 있습니다. 13절의 「네 새순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שֶׁלַח)는 문맥상 식물의 새순이나 뻗어 나가는 가지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새순은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자라나고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산은 단순히 값진 물건들을 보관하는 창고처럼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생명이 자라고 있습니다.
동산 안에서는 온갖 열매와 향료가 자라고 있습니다. 남자는 그 안을 바라보며 놀라워합니다.
이 장면은 사랑하는 사람의 깊숙한 내면을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즉시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가서의 동산은 바로 그런 풍요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동산에는 식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물도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식물들을 실제 하나의 정원에서 모두 재배할 수 있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가서가 그리는 동산은 특정한 농업 시설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장소라기보다, 가장 귀하고 향기로운 것들이 풍성하게 모여 있는 시적 공간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향료는 몸에 바르거나 옷과 생활공간에 향기를 더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고, 일부는 값진 교역품이기도 했습니다. 「네 새순들」에 대해서는 다른 의미를 제안하는 읽기도 있지만, 뒤따르는 동산과 식물 목록을 고려하면 식물의 성장을 나타내는 표현이 자연스럽습니다.
살아 있는 물의 우물 — 아름다움의 근원으로 내려가다
너는 동산의 샘, 샘물이 솟는 우물, 레바논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야.아가 4:15 · 두루새김
이 구절에서는 동산의 이미지가 다시 변합니다.
12절에서는 여자가 잠긴 동산이고 봉해 둔 샘이었습니다. 13–14절에서는 그 동산 안의 열매와 향료가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15절에서는 여자 자신이 다시 샘과 우물, 물줄기로 묘사됩니다.
여자는 물을 공급받아 자라는 동산이면서, 동시에 물이 흘러나오는 샘입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식물이 자라는 장소가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살아 있게 하는 물의 근원으로 표현됩니다.
살아 있는 물은 무엇인가?
두루새김은 「샘물이 솟는 우물」로 옮겼습니다. 원문에서는 이 물을 살아 있는 물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이 말은 샘에서 흘러나오는 신선하고 흐르는 물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고여 있는 물과 달리 계속 솟아나거나 흐르는 물이라는 이미지가 중요합니다.
아가 4장에서 물은 사랑하는 여자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표현합니다. 이때 12절과 15절을 함께 읽으면 흥미로운 역설이 생깁니다.
샘은 봉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샘에는 물이 솟습니다.
닫혀 있다는 것과 살아 있다는 것은 서로 반대가 아닙니다.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
동산과 열매, 풍성한 물이 함께 등장하면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가 4장의 동산이 반드시 에덴동산을 직접 가리킨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가서에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나 아담과 하와가 직접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만 동산의 풍요와 물의 생명력, 남녀의 친밀함이라는 이미지들이 창세기의 창조 세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남자는 여자의 몸을 부끄러운 것이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몸의 아름다움을 기뻐하고, 그 아름다움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 세계의 풍경을 사용합니다.
창조 신앙의 관점에서 이 장을 읽으면 인간의 몸과 감각, 사랑하는 사람에게 끌리는 마음이 반드시 부정하거나 제거해야 할 것이 아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성적 욕망을 무조건 정당화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가 4장은 남자의 갈망과 여자의 초대를 함께 보여 줍니다. 상대방을 향한 끌림과 상대방이 스스로 응답하는 일이 함께 놓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단지 남자의 찬사를 받는 대상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제 그녀가 직접 말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예레미야 2:13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생수의 근원이라고 말씀하시며, 백성이 그 근원을 버리고 물을 저장하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를 판 일을 책망하십니다. 그곳에서는 살아 있는 물의 이미지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아가 4:15에서는 여자가 그 물의 근원으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두 본문을 같은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공통된 것은 살아 있는 물이 생명과 풍요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입니다. 창세기 2:8–10에서 하나님은 에덴에 동산을 마련하시고, 그곳에서 강이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게 하십니다. 특히 창세기 2:25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1:27은 하나님이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으며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1:31에서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매우 좋았다고 말합니다. 다만 아가 4장은 그 본문을 직접 인용하지 않으며, 두 본문을 동일한 사건으로 읽을 근거도 없습니다. 또한 아가 4장에는 하나님이 직접 등장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장을 해설하면서 하나님이 동산의 문을 열어 주셨다거나, 여자의 마음을 움직이셨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북쪽 바람아, 남쪽 바람아, 내 동산에 불어라 — 여자의 응답
깨어나, 북쪽 바람아. 이리 와, 남쪽 바람아. 내 동산에 불어 그 향기가 퍼지게 해 줘. 내 연인이 자기 동산으로 와서 맛 좋은 열매를 먹기를 바라.아가 4:16 · 두루새김
그런데 마지막에 여자가 응답합니다.
그 응답은 단순히 남자에게 감사하거나 자신도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여자는 바람을 부릅니다.
왜 북풍과 남풍을 모두 부르는가?
북쪽 바람과 남쪽 바람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입니다.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앞에서 동산 안에 있던 향료들의 향기가 이제 바람을 따라 퍼져 나가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동산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요청입니다. 잠긴 동산 안에 머물던 향기가 바깥으로 흘러나옵니다.
이제 그 동산은 남자가 밖에서 찬탄하는 공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여자가 직접 그 향기를 퍼뜨리도록 요청하는 공간이 됩니다.
내 동산에서 그의 동산으로
조금 전에는 「내 동산」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기 동산」, 곧 연인에게 속한 동산이라고 부릅니다. 동산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같은 동산을 가리키는 소유 표현이 바뀐 것입니다.
이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여자가 자신의 동산을 남자에게 완전히 넘겨주었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이 문장만으로 소유권의 이전이나 권리의 포기를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의 문맥에서는 서로에게 속한다는 표현이 친밀함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됩니다. 특히 아가 2:16에서 여자는 연인이 자신의 것이고 자신은 연인의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4:16에서도 그와 같이 서로에게 속한다는 마음이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산으로 들어오는 행위는 여자가 직접 초대하는 내용으로 나타납니다. 남자는 동산의 아름다움을 찬탄했습니다. 동산은 잠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그 동산에 연인을 초대합니다.
아름답다고 바라보는 것과, 그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도록 초대받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물론 이 시를 현대적인 동의 절차를 설명하는 규정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여자가 어떤 형식의 허락을 했는지, 두 사람이 이후에 무엇을 했는지 본문은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의 마지막에서 여자가 자신의 갈망을 표현하고 연인에게 와 달라고 말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남자의 사랑만이 이 장을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자의 응답이 있어야 마지막 장면이 완성됩니다.
열매를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말은 남자가 동산에 들어와 열매를 맛보는 모습을 그립니다. 그런데 아가 4장의 문맥에서는 동산이 여자의 아름다움과 친밀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열매를 먹는 것은 여자가 연인과 나누고 싶은 사랑의 친밀함을 표현한다고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특히 앞에서 남자가 여자의 몸과 입술, 사랑과 향기를 찬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초대에는 육체적 친밀함의 의미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특정한 성적 행위가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4장은 여자가 연인을 초대하는 말에서 끝납니다. 그 초대에 대한 남자의 응답은 다음 장에 이어지지만, 지금 읽는 4장은 바로 이 요청을 마지막에 남겨 둡니다.
조금 더 깊이
북쪽 바람이 반드시 고난을, 남쪽 바람이 반드시 축복을 상징한다고 해석할 근거는 없습니다. 본문은 바람의 서로 다른 방향을 언급할 뿐, 각 바람에 독립적인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향기가 흘러나오는 동산
아가 4장은 거의 전부 남자의 목소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이 장을 일방적인 사랑의 노래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여자의 아름다움은 남자가 발견하지만, 그녀의 응답은 남자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친밀함이 강요나 일방적인 접근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만나며 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가까워지고 싶은 자신의 바람만큼, 상대방이 스스로 가까워지기를 원하는 마음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여자의 몸을 바라보던 시선은 점점 넓어져 레바논의 산과 향기로운 동산에 이릅니다. 그 안에는 온갖 열매와 향료가 있고, 샘물이 솟아납니다.
그러나 그 동산은 잠겨 있습니다.
마지막에 여자가 입을 엽니다. 「내 동산에 불어 그 향기가 퍼지게 해 줘.」
잠겨 있던 동산에 바람이 붑니다. 그 안에 간직되어 있던 향기들이 바깥으로 흘러나옵니다.
이제 바람은 불고, 향기는 퍼져 나갑니다.
동산에는 맛 좋은 열매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곳으로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