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서 풀어 읽기 · 12장

이 장의 자리 · 10–12장 · 역사를 이끈 지혜

악한 사람에게도 돌이킬 시간을 주시는 하나님

지혜서 12장에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모순처럼 보이는 말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의 옛 주민들이 저지른 악을 미워하셨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을 죽이고 거룩하지 못한 의식을 치렀으며,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통해 그들을 없애려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은 뜻밖의 말을 들려줍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들도 사람이기에 아끼셨습니다.」

그들이 심판받을 만큼 악했다면 왜 즉시 멸하지 않으셨을까요? 반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죄에서 돌아설 기회를 주셨다면, 그들을 없애려 하셨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왜 악한 사람들을 서둘러 멸하지 않으시는지 묻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모습을 지켜본 의로운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712장 본문 읽기 →

하나님께서 꾸짖으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지혜서 12:1–2 본문 →

당신의 썩지 않는 영이 모든 것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지혜서 12:1 · 두루새김

12장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첫 문장 자체는 앞의 내용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바로 앞의 11:26에서 하나님은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아끼시는 생명의 주인으로 묘사되었습니다. 12:1은 그 이유를 하나님의 영과 연결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들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썩지 않는 영으로 묘사됩니다.

지혜서는 하나님을 세상의 창조주로 말하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들은 그분께 의지하여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11:24–25). 따라서 「모든 것 안에」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그분께서 지으신 것들의 구별을 없애기보다, 하나님의 영이 지으신 세상에 깊이 관계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말로 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잘못을 저지르는 이들을 조금씩 꾸짖으시며,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일깨워 타이르십니다. 주님, 그들이 악에서 벗어나 당신을 믿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지혜서 12:2 · 두루새김

하나님은 잘못한 사람을 꾸짖으십니다. 그러나 그 꾸짖음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악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조금씩 꾸짖으신다는 말의 의미

이것은 단순히 벌을 주는 행위와 구별됩니다. 잘못한 사람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 주고, 다른 길을 선택하도록 돕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18:7–10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어떤 민족을 뽑아 버리고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더라도 그 민족이 악에서 돌이키면 재앙에 대해 뜻을 돌이키실 수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심판의 선언이 언제나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통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쫓아냈던 가나안 땅의 옛 주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신 사람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의 피조물이었던 사람들

지혜서 12:3–8 본문 →

당신은 당신의 거룩한 땅에 예부터 살던 사람들을 미워하셨습니다.지혜서 12:3 · 두루새김

저자는 가나안 땅의 옛 주민들이 행했다고 여겨지는 악을 나열합니다. 주술과 거룩하지 못한 의식, 아이들을 죽이는 행위,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 잔치, 자녀를 죽이는 부모들의 행동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이 장이 비판하는 악의 중심에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가 있다

그들은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 잔치를 벌였으며, 그런 의식을 치르는 무리에 들어간 사람들이었습니다.지혜서 12:5 · 두루새김
또 도움받을 길 없는 자녀들의 목숨을 제 손으로 빼앗는 부모들이었습니다. 당신은 저희 조상들의 손으로 그들을 없애려 하셨습니다.지혜서 12:6 · 두루새김

저자가 문제 삼는 것은 단순히 이스라엘과 다른 종교 의식을 행했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가장 보호받아야 할 존재들이 죽임당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부모가 자기 자녀를 죽이는 장면은 보호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생명을 빼앗는 사람이 되었다는 뒤바뀐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자녀를 몰렉에게 넘기지 말라는 레위기 18:21과 불태우지 말라는 신명기 12:31에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의 율법 전통은 그러한 행위를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으로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없애려 하셨다는 말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6–7절)

6절에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조상들의 손으로 없애려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여호수아서와 신명기에 등장하는 가나안 정복 전통을 바탕으로 합니다.

어떤 민족이 악한 일을 행했다는 이유로 그 민족을 없애는 일이 정당화될 수 있습니까? 그 민족 가운데 잘못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지혜서 12장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개개인의 책임을 구별하는 완전한 윤리적 설명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옛 주민들의 악을 집단적으로 서술하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이 장을 오늘날 특정 민족이나 집단을 제거하는 행위의 정당화 근거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적 서술에 대한 신학적 해석과 오늘날 인간에게 주어지는 행동의 허가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신명기 9:4–6에서 이스라엘은 자신의 의로움 때문에 가나안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선택은 다른 민족보다 본래부터 도덕성이 뛰어나다는 증명이 아닙니다.

가장 뜻밖의 접속사, 「그러나」 (8절)

7절은 하나님께서 그 땅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곳에 걸맞은 새 주민으로 맞아들이게 하려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들도 사람이기에 아끼셨습니다. 그들을 조금씩 없애도록, 당신 군대에 앞서 말벌들을 보내셨습니다.지혜서 12:8 · 두루새김

이 「그러나」가 이 단락 전체의 방향을 바꿉니다.

여기서 그들의 종교적 행위나 도덕적 상태가 달라졌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아끼신 이유로 제시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그들도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다른 민족에 속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을 행했다고 묘사됩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입니다.

그 사실은 그들의 잘못 때문에 지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상대방이 이미 올바른 사람이 되었을 때에만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잘못된 길에 있는 동안에도, 그가 하나님께서 지으신 존재라는 사실 때문에 베풀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지혜서 12:5의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 의식에 관한 표현은 그리스어 문장의 연결 자체가 매끄럽지 않습니다. 그런 의식을 치르는 무리에 들어간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앞의 행위들과 정확히 어떻게 연결되는지에는 해석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따라서 원문이 묘사하는 행위의 방향은 분명하지만, 구체적인 의식의 순서나 형태까지 재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이것은 지혜서 저자가 옛 주민들의 행위를 어떻게 묘사했는지를 보여주는 문헌적 증거입니다. 이 구절만으로 가나안 땅의 모든 주민이 실제로 이런 의식을 행했다거나, 각 행위가 고고학적으로 확인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말벌을 보내신 이유 — 한꺼번에 없애실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지혜서 12:9–11 본문 →

말벌이라는 뜻밖의 존재가 등장합니다.

8절의 「말벌들」이라는 표현은 출애굽기 23:28, 신명기 7:20, 여호수아 24:12에 나오는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벌을 보내 이스라엘 앞에서 적들을 쫓아내겠다고 말씀하시는 구절들입니다.

관심은 왜 하나님께서 한꺼번에 모든 것을 끝내지 않으셨느냐는 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전투에서 적들을 의로운 이들의 손에 넘기시거나, 무서운 짐승들이나 가차 없는 말씀으로 한꺼번에 없애실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조금씩 심판하시며 그들이 죄에서 돌아설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악하고 악을 타고났으며, 그들의 생각이 영원히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지혜서 12:10 · 두루새김

심판의 속도에도 뜻이 있다

2절에서는 잘못을 저지르는 이들을 조금씩 꾸짖으신다고 했습니다. 10절에서는 조금씩 심판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단계적으로 행동하시는 까닭은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사람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돌이킬 기회를 갖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심판을 단순히 죄에 맞는 고통을 주는 행동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심판에는 잘못을 드러내고, 그 잘못을 그만두도록 촉구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바뀌지 않을 줄 아시면서 왜 회개의 기회를 주셨을까? (10–11절)

그들은 처음부터 저주받은 자손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그들의 죄를 당장 벌하지 않고 두신 것은 누군가를 두려워해서가 아니었습니다.지혜서 12:11 · 두루새김

이 표현들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가나안 주민들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도록 정해져 있고, 결코 선하게 변할 수 없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죄에서 돌아설 기회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변할 수 없는 사람에게 왜 변할 기회를 주십니까?

이 긴장은 실제로 본문 안에 존재합니다. 어느 한쪽의 표현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이 구절을 근거로 특정 민족의 악이 생물학적으로 유전된다는 보편적인 교리를 세우는 것도 본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섭니다. 여기서 저자는 가나안 주민들의 역사적·도덕적 상태를 매우 강하게 비판하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 집단의 본질에 관한 과학적 진술은 아닙니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시는 것과, 그 사람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 것은 이 본문에서 서로 배제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결국 회개한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상대방의 악을 충분히 아시면서도 그 악을 멈출 기회를 주시는 분이라는 진술입니다.

조금 더 깊이

그 말벌이 실제 곤충 떼를 가리키는지, 적들을 몰아내는 공포나 혼란을 비유하는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특히 여호수아 24:12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칼이나 활이 아니라 말벌을 통해 적들을 몰아내셨다고 강조합니다. 10–11절의 한 가지 읽기는 저자가 그 민족의 악이 얼마나 깊고 오래 지속되었는지를 극단적인 표현으로 강조한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악을 타고났으며」와 「처음부터」는 악이 굳어졌음을 나타내는 말로 읽힙니다. 다른 읽기는 저자가 그들의 변화 가능성을 실제로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죄에서 돌아설 기회를 주셨다는 진술은 남습니다. 심판의 정당성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함께 보여주려는 논리가 됩니다. 또한 창세기 15:16에서는 아모리 사람들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간이 주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구절 역시 심판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주제와 연결됩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심문할 수 없는데, 하나님은 왜 의롭게 심판하시는가?

지혜서 12:12–18 본문 →

12절에는 질문이 연속해서 등장합니다.

누가 당신께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하고 따지겠습니까? 누가 당신의 판결에 맞서겠습니까? 당신께서 만드신 민족들이 멸망한 일을 두고 누가 당신을 고발하겠습니까? 또 누가 불의한 사람들의 원수를 갚겠다며 당신께 맞서러 나오겠습니까?지혜서 12:12 · 두루새김

하나님보다 높은 재판관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돌보시는 당신 말고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께서 불의하게 심판하지 않으셨음을 다른 신 앞에서 밝히실 필요도 없습니다.지혜서 12:13 · 두루새김

하지만 여기서 곧바로 위험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지 않으시므로 무엇을 하시든 그것이 옳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바로 다음 부분에서 그런 단순한 힘의 논리를 넘어섭니다.

하나님께는 부당하게 처벌할 권한이 없는가? (15절)

그러나 당신은 의로우시므로 모든 것을 의롭게 다스리십니다. 벌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에게 죄가 있다고 판결하는 것은 당신의 힘에 어울리지 않는 일로 여기십니다.지혜서 12:15 · 두루새김

하나님은 무제한의 힘을 가지셨지만, 그 힘을 불의하게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보다 높은 어떤 법이 있어서 그분을 강제로 제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의 의로우신 성품이 그분의 행동과 일치한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힘이 없어서 부당한 일을 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부당한 일을 자신의 힘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힘이 의의 근원이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16절)

당신의 힘이 의의 근원이며, 당신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기에 모든 것을 아끼시기 때문입니다.지혜서 12:16 · 두루새김

「힘이 의의 근원」이라는 말을 힘센 사람이 언제나 옳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앞의 15절은 벌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에게 죄가 있다고 판결하는 것이 하나님의 힘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힘은 불의를 마음대로 정의로 바꾸는 힘이 아닙니다. 지으신 모든 것을 다스리실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고 의롭게 행동하실 수 있는 힘입니다.

세상의 통치자는 자신의 힘이 약해질까 두려워 상대방을 가혹하게 다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시기에 모든 것을 아끼십니다.

힘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18절)

그러나 당신은 힘을 다스리시면서도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저희를 크게 아끼시며 다스리십니다. 당신은 원하실 때 언제든 힘을 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지혜서 12:18 · 두루새김

하나님은 단순히 힘을 소유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자신의 힘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 힘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같지 않습니다. 힘을 얻는 것과 힘을 다스리는 것은 서로 다른 능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는 그 두 가지가 함께 있으십니다.

그분은 언제든 힘을 쓰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진 힘을 조급하게 입증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17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이 온전하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드러내시고, 그 능력을 알면서도 뻔뻔하게 구는 이들을 꾸짖으신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너그러움이 무능력이나 방관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런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배운 사람은 왜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가?

지혜서 12:19–22 본문 →

당신은 이런 일들로 당신의 백성에게 의로운 사람은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또 당신의 아들들이 희망을 품게 하셨습니다. 죄를 지어도 돌아설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지혜서 12:19 · 두루새김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시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이제는 그 심판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어떤 가르침이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의로운 사람은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가나안의 옛 주민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사람들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이 인간이라는 이유로 아끼셨습니다(12:8).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바로 그 모습을 통해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의로움은 악을 분별하는 능력만이 아닙니다. 악을 행한 사람을 대할 때에도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성품입니다.

또한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피해자의 고통이나 보호받아야 할 사람의 권리를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지혜서 12장에서 하나님의 자비는 피해받은 생명을 하찮게 여기지 않습니다. 가나안 주민들의 악을 비판하는 중심에는 바로 도움받을 길 없는 자녀들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잘못을 바로잡으며, 가능하다면 잘못한 사람에게도 돌아설 길을 남겨 두는 태도를 함께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희망을 품는 이유 (19절)

여기서 하나님께서 원수들에게 죄에서 돌아설 기회를 주신 사건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희망의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들이 절대로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희망을 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설 길을 열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희망을 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흔듭니다. 원수들에게도 돌이킬 기회를 주셨다면, 하나님의 백성 역시 자신이 잘못했을 때 돌아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원수에게 시간을 주셨다면, 자녀들은 어떻게 대하시겠는가? (20–21절)

당신 자녀들의 원수들, 곧 죽어 마땅한 이들까지 그토록 세심하게 살피고 간청하시며 벌하셨습니다. 그들이 악에서 벗어날 시간과 기회도 주셨습니다.지혜서 12:20 · 두루새김
그렇게 하셨다면, 당신의 아들들은 얼마나 더 세심하게 심판하셨겠습니까? 당신은 그들의 조상들에게 좋은 것들을 주겠다고 맹세하시고 계약을 맺으셨습니다.지혜서 12:21 · 두루새김

여기서 「세심하게」라는 말은 단순히 가볍게 봐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더욱 세심하게 다루십니다. 그들에게는 약속과 계약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가르치고 바로잡으시는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할 때와 심판받을 때 (22절)

그러므로 당신은 저희를 가르쳐 바로잡으시는 한편, 저희 원수들은 만 배로 채찍질하십니다. 저희가 남을 심판할 때에는 당신의 선하심을 마음에 두고, 심판받을 때에는 자비를 바라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지혜서 12:22 · 두루새김

다른 사람의 잘못을 판단할 때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판단받을 때에는 사정을 헤아려 달라고 바랍니다. 그런데 지혜서의 저자는 두 상황을 함께 생각하도록 합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자신이 판단받을 때는 하나님의 자비를 바랄 수 있습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일 자체가 하나님의 성품을 기억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꾸짖으시면서도 돌이킬 시간을 주셨다는 사실이 인간의 판단을 위한 기준이 됩니다.

물론 이것을 인간의 모든 사법적 판단에 곧바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전능함과 모든 것을 완전히 아시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누군가의 잘못을 판단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권한을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조금 더 깊이

20절의 그리스어 사본에는 데에세오스와 디에세오스가 전해지며, 사본들을 대조해 정리한 비평본은 후자를 채택합니다. 이는 너그러움이나 관용의 의미로 이해되며, 문맥의 「시간과 기회도 주셨습니다」와도 연결됩니다. 따라서 현재 대조할 수 있는 그리스어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간청하셨다는 뜻보다는 세심함과 관용을 가지고 벌하셨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번역 노트의 낱말이 다른 본문 계열에 근거한 것인지는 여기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왜 심판은 점점 무거워지는가?

지혜서 12:23–27 본문 →

23절부터 저자는 다시 악한 사람들에게 닥친 심판을 설명합니다.

앞에서는 가나안 땅의 옛 주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23–27절에서는 동물을 신으로 여기는 사람들과, 그 동물들을 통해 심판받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11:15–16에서 이집트의 동물 숭배와 동물 재앙을 연결했던 설명이 다시 이어집니다. 따라서 23절부터는 가나안의 옛 주민들에 대한 설명에서 이집트 사람들의 심판으로 돌아간다고 읽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습니다.

자신들이 신으로 여긴 동물들에게 벌을 받다 (23–24절)

그래서 당신은 어리석게 살아온 불의한 이들을, 그들이 섬기던 역겨운 것들로 괴롭게 하셨습니다.지혜서 12:23 · 두루새김
그들은 그릇된 길에서 더욱 멀리 헤매며, 원수들의 짐승들 가운데서도 하찮은 것들을 신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철없는 어린아이들처럼 속은 것입니다.지혜서 12:24 · 두루새김

여기서 어린아이의 이미지는 어린이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아닙니다. 분별력이 충분히 자라지 않은 상태를 비유적으로 나타냅니다.

이 때문에 당신은 철없는 아이들을 대하듯, 그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심판을 내리셨습니다.지혜서 12:25 · 두루새김

그들이 신이라고 여겼던 존재들이 오히려 그들을 괴롭혔습니다. 자신들의 숭배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심판이 닥쳤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성격은 심판의 구조에 있습니다. 신이라고 높였던 것이 자신을 보호하기는커녕 고통을 가져오는 존재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상 숭배의 허망함을 드러내는 풍자입니다.

장난 같은 꾸짖음에도 듣지 않았을 때 (26절)

그러나 장난 같은 꾸짖음에도 타이름을 듣지 않은 이들은 하나님께 걸맞은 심판을 겪을 것입니다.지혜서 12:26 · 두루새김

이것은 2절의 「조금씩 꾸짖으시며」라는 말로 시작된 원리와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가장 무거운 심판을 내리지 않으시는 이유는 사람이 돌이킬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 기회를 계속 거절한다면 심판은 더욱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을 때 「장난 같은」이라는 표현 때문에 재앙을 겪은 사람들의 고통이 가벼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표현은 뒤에 나타나는 더 무거운 심판과 비교하여 앞의 심판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묘사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을 알았는데도 왜 최종 심판이 왔는가? (27절)

그들은 자신들이 신으로 여겼던 것들로 벌받으며, 그것들이 주는 고통 때문에 분노했습니다. 바로 그 일을 겪으며, 전에 모른다고 부인했던 분을 보고 참된 하나님으로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죄에 대한 마지막 벌이 닥쳤습니다.지혜서 12:27 · 두루새김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데 왜 심판이 끝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조금씩 꾸짖으신 이유는 그들이 악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27절에서 저자는 그들이 참된 하나님을 알아보았다고 말할 뿐, 악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 곧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는 단순히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이 걷던 악한 길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향으로 삶을 돌이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심판을 늦추시는 이유는 바로 그 변화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의 바로 역시 여러 재앙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고 말하거나 이스라엘을 보내겠다고 약속합니다(출애굽기 9:27–28; 10:16–17). 그러나 재앙이 그치면 다시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지혜서 12:27도 이와 비슷한 긴장을 보여줍니다. 물론 27절이 마지막 벌에 이르게 된 모든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본문에 없는 마음의 변화나 숨은 동기를 확정적으로 덧붙여서는 안 됩니다.

맺음말 — 심판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배워야 했던 것

지혜서 12:1–27 본문 →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에게까지 돌이킬 시간을 주셨다면, 그 모습을 본 의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마음에 두고, 자신이 판단받을 때에는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야 합니다.

이 장의 저자는 심판받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더욱 냉혹해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들에게 허락하셨던 시간은, 그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하나의 배움이 되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