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서 풀어 읽기 · 9장

이 장의 자리 · 6–9장 · 지혜를 구하는 왕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백성을 다스립니다

왕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다면, 우리는 그가 훌륭한 결정을 내리고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하리라 예상합니다. 지혜서 9장의 기도도 그런 내용으로 시작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따라 읽다 보면 왕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납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앞 장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지혜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9장은 바로 그 기도의 내용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먼저 내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만드셨고, 인간에게 무엇을 맡기셨으며, 자신이 왜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는지를 차례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마지막에는 왕 개인의 문제를 넘어 모든 인간의 문제에 도달합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89장 본문 읽기 →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는가?

지혜서 9:1–3 본문 →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만을 찬양하는 말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조상들의 하나님, 자비의 주님, 당신은 당신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만드셨고,」지혜서 9:1 · 두루새김

이 호칭은 기도의 상대가 단순히 우주의 질서를 세운 추상적인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 그 역사를 통해 알려지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화자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여 지혜를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합니다. 기도는 이미 자신이 무엇인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주장보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고백 위에 서 있습니다.

조상들의 하나님은 동시에 온 세상의 창조주이십니다.

조상들과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이 곧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와 창세기 12장 이후 조상들의 이야기가 서로 다른 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이 기도에서도 창조와 이스라엘의 역사는 동일한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인간에게 맡겨진 다스림에는 목적이 있다

「당신의 지혜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당신이 만드신 것들을 사람이 다스리고,」지혜서 9:2 · 두루새김
「거룩함과 의로 세상을 다스리며, 곧은 마음으로 판결을 내리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지혜서 9:3 · 두루새김

이 표현은 창세기 1:26–28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시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의 생물들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은 세상을 다스리도록 지어졌을 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다스려야 하는지도 함께 부여받았습니다.

거룩함은 인간의 다스림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의는 그 다스림이 올바른 관계와 공정한 질서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곧은 마음은 판결하는 사람 자신의 내면과 판단이 바르게 서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다스림은 단순한 지배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돌보는 책임입니다.

화자는 자신이 왕이기 때문에 특별한 권한을 요구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다스림의 책임을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왕이 가진 권력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완성하지 않습니다. 그 권력이 창조주께서 의도하신 거룩함과 의를 이루는 데 사용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서 기도의 첫 번째 간청이 나옵니다.

하나님 곁에 앉아 있는 지혜를 내게 주십시오

지혜서 9:4–6 본문 →

「당신의 왕좌 곁에 앉아 있는 지혜를 제게 주십시오. 저를 당신의 종들 가운데서 내치지 마십시오.」지혜서 9:4 · 두루새김

왕의 자리 곁에 앉는다는 이미지는 가까움과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지만, 그것만으로 지혜가 하나님과 동등한 독립적 권위를 가진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는 지혜가 하나님의 뜻과 일을 아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로 인간을 지으셨다면, 인간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올바르게 감당하기 위해서도 그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화자는 지혜를 구하면서 뜻밖의 자기소개를 합니다.

「저는 당신의 노예이자 당신 여종의 아들로, 약하고 삶이 짧으며 재판과 법을 깨닫는 데도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지혜서 9:5 · 두루새김

이 말은 화자의 어머니가 실제로 노예 신분이었다는 역사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86:16과 116:16에서도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자 하나님의 여종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기도의 언어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명령하는 위치에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명령을 받는 사람입니다. 백성에게는 왕이지만 하나님께는 종입니다.

이 고백은 왕권을 없애지 않습니다. 오히려 왕권의 위치를 바로잡습니다.

왕이 가장 부족하다고 고백한 능력

5절에서 화자는 자신이 약하고 삶이 짧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가 구체적으로 부족하다고 지목한 것은 「재판과 법을 깨닫는」 능력입니다.

아무리 높은 권력을 가져도 어떻게 판결해야 하는지 모르면 자신의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 대목은 열왕기상 3:7–9에 나오는 솔로몬의 기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아직 어리고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할지 모른다고 고백하며, 백성을 재판하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마음을 구합니다.

지혜서의 기도 역시 솔로몬의 목소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은 솔로몬의 기도를 역사적으로 그대로 기록하기보다, 솔로몬이라는 왕의 목소리를 빌려 지혜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사람들 가운데 아무리 온전한 사람이라도, 당신에게서 오는 지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여겨질 것입니다.」지혜서 9:6 · 두루새김

화자는 자신처럼 부족한 사람에게만 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완전함을 가정하더라도 하나님의 지혜가 없다면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아무 가치가 없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는 데 인간의 뛰어난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고백입니다.

이제 그가 어떤 일을 위해 지혜를 구하는지가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집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일

지혜서 9:7–9 본문 →

「당신은 저를 당신 백성의 왕으로, 당신 아들딸들의 재판관으로 뽑으셨습니다.」지혜서 9:7 · 두루새김

백성은 왕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왕은 그들 위에 무제한의 권리를 행사하도록 세워진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재판할 책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왕이 내리는 판단은 그저 국가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여기시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왕이 재판을 잘못한다면 단지 행정상의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사람들을 잘못 대하는 것입니다.

성전 건축에도 지혜가 필요한 이유 (8절)

8절에 이르면 화자의 또 다른 책임이 나타납니다.

「당신은 당신의 거룩한 산에 성전을 세우고, 당신이 머무시는 도시에 제단을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부터 당신이 미리 마련하신 거룩한 장막을 본뜬 것입니다.」지혜서 9:8 · 두루새김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한 왕입니다(열왕기상 6–8장). 지혜서 9장은 백성을 재판하는 일과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함께 언급합니다.

백성을 재판할 때 왕은 자신의 기분이나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를 따라야 합니다. 성전을 건축할 때도 자신의 취향이나 위엄을 드러내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두 일 모두 자기 뜻을 이루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뜻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본뜬 것입니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미메마(μίμημα)는 본보기나 원형을 따라 만들어진 것을 가리킵니다. 이 표현은 출애굽기 25:9, 40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의 본보기대로 만들라고 명령하신 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왕은 성전을 건축할 능력과 자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하나님께 합당한 성전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지혜만이 하나님의 뜻을 안다 (9절)

「지혜는 당신과 함께 있으며 당신이 하시는 일을 압니다. 당신이 세상을 만드실 때 곁에 있었고, 당신이 보시기에 무엇이 마음에 드는지, 당신의 명령에 비추어 무엇이 바른지도 압니다.」지혜서 9:9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창조와 명령을 하나로 연결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아는 지혜이면서, 그 세상에서 무엇이 옳은지를 아는 지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전을 세우는 일과 백성을 재판하는 일에 동일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둘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명령하신 질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지혜서 9:8의 「처음부터」 마련된 거룩한 장막을 어떻게 이해할지는 해석이 갈릴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성막의 원형을 가리킨다고 읽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늘에 있는 거룩한 장막이라는 관념을 배경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성막 본보기 전통은 두 독법 모두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본문은 그 장막의 구체적인 위치나 형상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늘 성전의 구조가 정확히 어떠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지혜가 내 곁에서 함께 수고하게 해 주십시오

지혜서 9:10–12 본문 →

10절에서 화자는 두 번째로 지혜를 보내 달라고 간청합니다.

「거룩한 하늘에서 지혜를 보내 주시고, 당신 영광의 왕좌에서 지혜를 보내 주십시오. 지혜가 제 곁에서 함께 수고하게 하시고, 제가 당신의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십시오.」지혜서 9:10 · 두루새김

4절에서 지혜는 하나님의 왕좌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10절에서 화자는 그 지혜를 자신의 곁으로 보내 달라고 기도합니다.

지혜는 나를 대신하여 일하는가, 나와 함께 일하는가?

지혜는 인간의 책임을 없애 주지 않습니다. 화자는 여전히 왕으로서 재판해야 하고, 성전을 건축해야 하며,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다만 그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지혜가 함께해 주기를 구합니다.

창조의 때에는 하나님께서 지혜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9:2). 이제 왕은 그 지혜가 자신의 일에도 함께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화자가 지혜와 함께 일하려는 목적은 단순히 업무의 성공률을 높이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은 어떤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면서도 그 목표 자체가 옳은지 충분히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을 잘하는 능력과 그 일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지혜서 9장은 후자를 더 근본적인 문제로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왕좌와 아버지의 왕위 (11–12절)

11절에서 화자는 지혜가 자신의 일을 분별 있게 이끌고 보호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결과는 12절에 나옵니다.

「그러면 제가 하는 일은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 되고, 저는 당신의 백성을 의롭게 재판하며, 제 아버지의 왕위에 걸맞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지혜서 9:12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4절의 하나님의 왕좌와 12절의 아버지의 왕위를 가리킬 때 같은 말이 쓰입니다. 하나님의 왕좌 곁에 있는 지혜를 받아야 인간 왕도 자신에게 물려진 왕위에 걸맞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흐름이 형성됩니다.

화자는 이미 왕으로 뽑혔다고 말했습니다(9:7). 그런데 이제 그 왕위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를 구합니다(9:12).

왕으로 선택받은 것과 왕의 책임을 합당하게 감당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화자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지혜를 구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올바른 판결을 받도록 지혜를 구합니다.

기도의 목적은 왕 자신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왕에게 맡겨진 사람들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는 땅 위의 일도 겨우 아는데,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지혜서 9:13–16 본문 →

13절부터 기도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앞부분에서는 왕이 자신의 책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화자는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또 누가 주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지혜서 9:13 · 두루새김

이것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닙니다. 인간이 무엇을 알 수 있는지, 그 능력 자체에 대한 질문입니다.

사람은 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어려운가요? 화자는 그 이유를 세 단계로 설명합니다.

첫째, 인간의 판단은 불안정하다 (14절)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자신이 없고, 저희가 세운 계획도 위태롭기 때문입니다.」지혜서 9:14 · 두루새김

우리는 충분히 알지 못합니다. 미래의 결과를 완전히 예측하지 못하고,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마저 나중에 수정할 때가 있습니다.

본문의 「자기 생각에 자신이 없고」는 생각이 담대하지 못하고 위축되어 있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위태롭기」라는 표현은 인간이 세운 계획이 확고하지 못하다는 점을 나타냅니다. 왕은 자신의 판단을 따라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 판단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높은 지위가 앎의 한계를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둘째, 인간은 몸을 지닌 유한한 존재다 (15절)

「썩어 없어질 몸이 영혼을 무겁게 하고, 흙으로 된 장막이 생각 많은 정신을 짓누르기 때문입니다.」지혜서 9:15 · 두루새김

「몸이 영혼을 무겁게 하고」라는 말은 영혼과 몸을 서로 대립시키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구절에는 몸이 사라진다는 사실과 정신이 받는 부담을 구별하여 말하는 그리스어권의 인간 이해가 반영되어 있다고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곧바로 몸은 악하고 영혼만 선하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은 몸을 「썩어 없어질」 것으로 설명합니다. 핵심은 인간의 신체가 유한하고 소멸한다는 사실입니다.

앞에서 화자는 하나님께서 지혜로 인간을 지으셨다고 말했습니다(9:2). 몸을 지닌 인간도 하나님의 창조에 속합니다. 따라서 15절은 하나님의 창조가 악하다는 선언이라기보다, 죽고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이 온전히 이해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는 설명으로 읽는 것이 문맥에 맞습니다.

장막은 영구적인 건물이 아닙니다. 세워지고 거두어질 수 있는 거처입니다. 창세기 2:7에서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인간을 지으셨다는 이야기가 이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인간은 세상을 다스리도록 지어졌지만, 자신도 흙으로 이루어진 유한한 존재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앞의 8절에서는 「거룩한 장막」을 본뜬 성전을 이야기하고, 여기서는 인간의 몸을 「흙으로 된 장막」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입니다. 원문에서도 두 표현에는 장막을 뜻하는 서로 관련된 말들이 사용됩니다.

이 대비가 의도된 문학적 장치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두 장면을 함께 읽으면 인상적인 차이가 드러납니다.

왕은 하나님께 합당한 거룩한 집을 세우려 하지만, 정작 자신은 흙으로 된 임시적인 거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셋째, 가까이 있는 것도 힘겹게 아는 인간이 어떻게 하늘의 일을 알겠는가? (16절)

「저희는 땅 위의 일도 겨우 짐작하고, 손안에 있는 것도 힘들게 알아냅니다. 그런데 하늘에 있는 것을 누가 찾아냈겠습니까?」지혜서 9:16 · 두루새김

우리가 땅 위의 일도 어렵게 이해한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관하여 더 신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왕은 자신이 내리는 판결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면, 자신의 확신만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가 지혜를 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기도는 인간의 무지를 고백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낼 수 없다면, 그것을 알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지 않았다면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혜서 9:17 본문 →

「당신이 지혜를 주시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 주시지 않았다면, 누가 당신의 뜻을 알았겠습니까?」지혜서 9:17 · 두루새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에 달려 있습니다.

지혜와 거룩한 영은 어떤 관계인가?

그리스어 원문은 지혜를 주시는 일과 거룩한 영을 보내시는 일을 나란히 놓습니다. 이것은 지혜와 하나님의 영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중요한 근거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는 단순한 개인적 재능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인간에게 일하시는 것과 깊이 관련됩니다.

왕이 구하는 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특별해지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뜻을 따라 자신의 책임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지혜서 7:22에서도 지혜 안에는 지적이고 거룩한 영이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지혜서 1:5–7에서는 거룩한 영과 주의 영이 인간과 세상에 관계하는 방식이 서술됩니다. 다만 이 구절만으로 지혜와 거룩한 영이 완전히 동일하다고 단정하거나, 후대에 정교하게 정리된 삼위일체 교리가 여기서 이미 완성된 형태로 제시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사야 11:2에서도 이 점과 연결되는 주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은 지혜와 총명, 모략과 능력, 지식과 경외의 영으로 묘사됩니다.

지혜가 바로잡는 것은 생각만이 아니라 삶의 길이다

지혜서 9:18 본문 →

기도의 마지막 구절은 앞의 모든 내용을 짧게 모아 하나의 결론으로 만듭니다.

「이렇게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길이 바로잡혔고, 사람들은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받았습니다.」지혜서 9:18 · 두루새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면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그 배움은 인간이 살아가는 길을 바로잡으며, 그 결과는 구원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지혜를 안다는 것은 길이 바뀐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그것에 관한 설명을 정확히 암기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의 방향이 바뀌는 일입니다.

잠언 3:5–6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기 명철에 의지하지 않는 사람의 길을 하나님께서 곧게 하신다는 약속이 나옵니다. 지혜서 9장은 그와 비슷한 길의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지혜와 하나님의 가르침을 연결합니다.

인간의 문제는 단순히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한 데 있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떤 길이 바른 길인지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는 그 길을 바로잡습니다.

구원은 이 기도에서 무엇을 뜻하는가?

따라서 이 구절에서 구원은 하나님의 지혜가 인간의 삶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일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물론 지혜서 전체에는 의인의 생명과 죽음, 불멸에 관한 논의도 있습니다(지혜서 3:1–9; 6:18–19). 그러므로 이 책에서 구원이라는 말을 단지 올바른 생활 습관을 갖추는 일로 축소해서도 안 됩니다.

반대로 이 구절만을 근거로 구원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지, 또는 어떤 형태의 최종 상태를 가리키는지 모두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지혜서 9장 자체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심으로 인간의 삶에 구원에 이르는 변화를 일으키신다는 사실입니다.

맺음말 — 땅 위의 길이 바로잡히기까지

지혜서 9:1–18 본문 →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신의 뜻에 따라 세상을 다스리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 그 뜻을 충분히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주셔서 인간이 바른 길을 배울 수 있게 하십니다.

처음에는 한 왕이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는 장면은 왕좌가 아닙니다.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길입니다.

그 길은 인간의 지혜만으로 곧아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기에 바로잡혔습니다.

하나님의 왕좌 곁에 있던 지혜를 자기 곁으로 보내 달라는 기도는, 마침내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길이 바로잡혔다는 고백으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