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서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6–9장 · 지혜를 구하는 왕
지혜를 삶에 맞아들이려면
지혜서 8장은 뜻밖의 대비로 시작하고 끝납니다. 첫 구절에서 지혜는 온 세상을 다스립니다. 그런데 마지막 구절에 이르면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서 지혜를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 사이에 화자는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를 신부로 맞아들이기를 바라며, 지혜와 함께할 때 얻게 될 모든 좋은 것을 헤아립니다. 그는 지혜가 자신에게 명예와 권위와 재물과 즐거움까지 가져다주리라고 기대합니다. 좋은 재능을 타고났고 좋은 영혼도 받았다고 말합니다.
지혜가 얼마나 귀한지 아는 것과 그 지혜를 실제로 얻는 것은 서로 다른 일입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열정도, 지혜가 가져올 유익에 대한 이해도, 자신의 뛰어난 재능도 그것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힘은 어떤 성품을 지녔는가?
지혜는 세상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힘차게 뻗어 나가며, 모든 것을 훌륭하게 다스립니다.지혜서 8:1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앞 장의 마지막 묘사와 이어집니다. 지혜서 7:22–30은 지혜가 만물을 꿰뚫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악이 그 지혜를 이기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지혜는 먼저 「힘차게」 뻗어 나갑니다. 아무것도 그 작용 범위를 제한할 수 없는 듯이 묘사됩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 힘을 단순히 행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모든 것을 「훌륭하게」 다스립니다.
이것은 뒤에 등장할 왕의 통치를 이해하는 기준이 됩니다.
지혜는 모든 것을 다스리지만, 무조건 복종시키는 힘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 다스림에는 선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혜를 얻은 사람의 통치 역시 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힘을 사용하는지가 중요해집니다.
이 첫 구절에서 지혜가 다스리는 대상은 온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한 사람이 그 지혜를 자기 삶 속으로 맞아들이고 싶어 합니다.
우주 전체에 미치는 지혜가 한 인간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장의 첫 번째 놀라움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지혜를 나도 사랑한다
화자는 지혜와 맺고 싶은 관계를 설명하면서 단순히 지식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지혜를 사랑하고 찾아 나섰습니다. 지혜를 내 신부로 맞아들이려 했고, 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지혜서 8:2 · 두루새김
지혜를 추구하는 일이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를 갈망하는 일처럼 묘사됩니다. 이것은 지혜문학의 오랜 전통을 이어받은 표현입니다. 잠언 4:6–9은 지혜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라고 권합니다. 잠언 7:4는 지혜를 누이라고 부르고 명철을 친족처럼 여기라고 말합니다.
잠언 9:1–6에서는 지혜가 집을 짓고 잔치를 준비하여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지혜서 8장은 이러한 인격화된 표현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지혜를 신부로 맞아들이려는 열망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화자가 지혜를 사랑하는 이유가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지혜는 하나님과 함께 살며 자신의 고귀함을 빛냅니다. 모든 것의 주인께서는 지혜를 사랑하셨습니다.지혜서 8:3 · 두루새김
지혜가 고귀한 까닭은 세상에서 존경받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3절의 「함께 살며」는 뒤에 나오는 표현과 연결됩니다. 지혜는 하나님과 함께 살고(8:3), 화자는 그 지혜를 맞아들여 「함께 살기로」 결심합니다(8:9).
지혜는 하나님의 지식에 담긴 비밀을 알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지혜서 8:4 · 두루새김
지혜가 하나님의 뜻과 일에 깊이 관계되어 있음을 묘사합니다. 그리스어 하이레티스(αἱρετίς)는 선택하는 이를 뜻하지만, 여기서 그 선택이 하나님의 일들을 분별하는 것인지, 그 일들의 결정에 관여하는 것인지까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혜가 하나님과 동등한 독립적 결정권을 갖는다는 결론은 이 표현만으로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를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별개의 능력을 얻으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일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을 자신의 삶에 맞아들이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잠언 8:22–31에서 지혜는 하나님이 세상을 세우실 때 그 곁에 있었던 존재로 묘사됩니다. 지혜서 8장은 이 전통을 받아들여, 하나님과 가까운 지혜가 인간에게도 친밀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와 연결됩니다(고린도전서 1:24, 30). 이는 신약의 신학적 전개이지만, 지혜서 8장이 직접 예수님의 생애를 예언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장은 먼저 하나님의 지혜를 사랑하고 그 지혜를 선물로 구하는 인간의 삶을 설명하는 본문으로 읽어야 합니다.
지혜는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이제 화자는 사람들이 삶에서 추구하는 여러 가지 좋은 것을 차례로 살펴봅니다.
재물, 슬기, 의, 풍부한 경험입니다. 인간이 귀하게 여기는 여러 가치를 하나씩 꺼내 놓고, 그 가치가 지혜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묻습니다.
부보다 더 근본적인 부
재물이 삶에서 바랄 만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이루어 내는 지혜보다 무엇이 더 부유하겠습니까?지혜서 8:5 · 두루새김
화자는 재물 자체를 악한 것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재물이 사람이 바랄 만한 것이라는 사실을 일단 인정합니다. 그러나 재물을 얻는 능력, 일을 이루어 내는 능력, 존재하는 것들을 만들어 내는 능력까지 생각하면 지혜의 가치가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재물은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여러 좋은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반면 지혜는 그러한 좋은 것들을 이루고 사용하는 활동과 관련됩니다. 이는 지혜를 가진 모든 사람이 실제로 부자가 된다는 보장은 아닙니다. 화자가 강조하는 것은 재산의 양이 아니라, 재산보다 지혜가 더 근본적인 가치라는 점입니다.
지혜는 사람의 성품을 길러 낸다
누군가 의를 사랑한다면, 지혜가 애써 이루는 것들이 바로 덕입니다. 지혜는 절제와 슬기, 의와 용기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삶에서 이것들보다 더 쓸모 있는 것은 없습니다.지혜서 8:7 · 두루새김
여기에 등장하는 절제, 슬기, 의, 용기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윤리적 논의에서도 중심적으로 다루어진 네 가지 덕목입니다. 지혜서는 이 네 덕목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근원을 지혜에 연결합니다.
절제는 자신의 욕망과 행동을 다스리는 능력입니다. 슬기는 상황을 올바르게 분별하고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것을 행하는 덕입니다. 용기는 어려움과 위험 앞에서 굳게 서는 능력입니다.
지혜와 함께하는 사람은 배웁니다. 판단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형성됩니다.
지혜가 세상을 다스리는 능력이라면, 그 지혜가 인간 안에서 만들어 내는 것은 먼저 올바르게 살아가는 성품입니다.
이 구절은 앞뒤에 등장하는 지혜의 광대한 능력과 왕의 위대한 업적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추구하는 왕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미래를 아는 것과 미래를 분별하는 것
또 누군가 풍부한 경험을 바란다면, 지혜는 옛일을 알고 앞일을 짐작할 줄 압니다. 말의 여러 가지 뜻과 수수께끼 풀이를 알고, 표징과 놀라운 일들, 때와 시간이 가져올 결과도 미리 압니다.지혜서 8:8 · 두루새김
「앞일을 짐작할 줄 압니다」라는 표현 자체는 미래의 모든 사건을 초자연적으로 확정하여 안다는 뜻과 같지 않습니다. 이어서 표징과 놀라운 일들, 때와 시간이 가져올 결과를 미리 안다는 표현까지 더해져, 지혜의 통찰 범위가 매우 넓게 그려집니다.
열왕기상 3:16–28에서 솔로몬이 두 여인의 다툼을 판결하는 이야기는 이러한 지혜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의 판단력은 사건에 관한 정보를 많이 모으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주장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상황을 분별하는 데 있었습니다.
다니엘 2장의 꿈과 그 해석 역시 인간의 일반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지혜가 하나님께 속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지혜서 8장의 화자는 이러한 전통 속에서 지혜를 찬양합니다. 그러나 지혜의 궁극적인 가치를 미래를 맞히는 능력에만 두지는 않습니다.
지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 능력이며, 그 이해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가르치는 능력입니다.
왕이 되고 싶은 사람의 꿈,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사람의 쉼
9절에서 화자는 결심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지혜를 맞아들여 함께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지혜가 좋은 일에 관해 조언해 주고, 걱정과 슬픔 속에서 나를 위로해 줄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지혜서 8:9 · 두루새김
10절부터 15절까지는 거의 모두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말하는 형식입니다. 그는 많은 사람 가운데서 영광을 얻고, 어른들에게 존중받으며, 재판에서 예리한 판단력을 인정받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권력자들이 자기에게 감탄하고 자신의 말을 경청하며, 여러 백성과 민족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열왕기상 3:5–12에서 솔로몬은 왕으로서 백성을 올바르게 재판하기 위한 지혜를 구했습니다. 지혜서 8장에서도 재판, 통치, 존경, 권력이 주요 관심사로 등장합니다. 다만 이 단락은 이미 일어난 사건의 기록이 아닙니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나의 말을 듣는다
그들은 내가 말없이 있으면 기다리고, 입을 열면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내가 길게 말하면 자기 입에 손을 얹을 것입니다.지혜서 8:12 · 두루새김
고대의 지혜문학에서 이와 같은 묘사는 지혜로운 사람의 권위를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욥기 29:9–10에서도 욥은 자신이 존경받던 시절에 고관들이 말을 멈추고 잠잠해졌던 모습을 회상합니다.
본문은 이 장면을 지혜가 가져올 영예로 제시합니다. 그렇지만 앞서 7절은 지혜가 의와 절제를 가르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주는 권위는 남을 침묵시키는 능력만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이 귀를 기울일 만큼 판단력이 깊어지는 것과, 상대방의 말을 억누르는 것은 서로 다른 일입니다.
지혜의 통치와 왕의 통치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나는 백성들을 다스리고, 민족들은 내게 복종할 것입니다.지혜서 8:14 · 두루새김
처음에는 지혜가 세상을 다스립니다. 이제 화자는 그 지혜를 통해 자신도 백성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남아 있습니다. 지혜는 이미 모든 것을 훌륭하게 다스리지만, 화자는 아직 그렇게 다스릴 능력을 얻으려는 사람입니다.
15절에서 그가 기대하는 통치에는 두 가지 모습이 함께 나타납니다. 무서운 통치자들은 그를 두려워하지만, 많은 사람 가운데서는 선한 사람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민족들의 복종이나 전쟁에서의 용기를 현대의 모든 정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 표현들은 고대 왕권의 이상을 배경으로 읽어야 합니다. 본문은 강한 통치를 기대하지만, 앞서 제시한 절제와 의의 기준을 없애지 않습니다.
이러한 긴장은 솔로몬의 전체 이야기를 생각하면 더욱 뚜렷해집니다. 열왕기상 3장에서 지혜를 구한 왕은 열왕기상 11장에 이르면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합니다.
지혜를 구한 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후의 모든 행동이 지혜롭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영광보다 조용한 한 장면
그런데 16절에 이르면 무대가 갑자기 바뀝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지혜 곁에서 쉴 것입니다. 지혜와 사귀는 데는 쓴맛이 없고, 지혜와 함께 사는 데는 고통이 없습니다. 즐거움과 기쁨이 있을 뿐입니다.지혜서 8:16 · 두루새김
화자는 지혜를 공적인 성공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지혜는 그가 일을 마친 뒤에도 함께하고 싶은 동반자입니다. 9절에서는 지혜가 걱정과 슬픔 속에서 자신을 위로해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지혜를 얻으면 모든 고난이 사라진다는 일반적인 약속을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지혜와의 관계 자체가 고통스러운 짐이 아니라 즐거운 동행이라는 사실을 이상적으로 표현합니다.
지혜는 사람을 세상 가운데 바르게 서게 할 뿐 아니라, 홀로 돌아온 자리에서도 함께하는 동반자로 그려집니다.
지혜는 소유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관계다
이제 화자는 앞에서 이야기한 모든 것을 마음속으로 되새깁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지혜와 한집안이 되면 죽지 않음을 얻습니다.지혜서 8:17 · 두루새김
처음에는 사랑하는 이와 신부의 관계였습니다. 이제는 한집안 사람, 벗, 함께 배우는 동반자, 말을 나누는 상대가 됩니다.
지혜는 한 번 얻으면 영원히 보관할 수 있는 물건처럼 묘사되지 않습니다.
지혜와 한집안이 되고, 벗이 되고, 함께 배우고, 말을 나누는 삶이 나타납니다. 지혜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그저 지혜의 곁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배움과 훈련에 참여하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것은 그 지혜와 삶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죽지 않음은 무엇을 뜻하는가?
17절의 「죽지 않음」은 앞서 13절에서도 등장합니다.
나는 지혜 덕분에 죽지 않음을 얻고, 내 뒤에 올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영원한 기억을 남길 것입니다.지혜서 8:13 · 두루새김
이 구절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첫째, 훌륭한 업적과 명성을 통해 후대에 기억되는 삶을 뜻할 수 있습니다. 「내 뒤에 올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영원한 기억을 남길 것입니다」라는 바로 다음 표현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둘째, 더 넓은 의미의 죽지 않음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혜서 3:4는 의인들의 희망을 불멸과 연결하고, 6:18–19도 지혜와 관련된 삶을 불멸의 길과 연결합니다. 따라서 지혜서 전체를 고려하면 이 표현을 후대의 명예에만 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8:13에서는 죽지 않음과 영원한 기억이 함께 등장하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죽지 않음이 정확히 어느 범위까지 뜻하는지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화자가 지혜와의 관계를 일시적인 이익을 넘어서는 가치로 이해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혜를 내 것으로 얻을 길을 찾아다닙니다(8:18).
그토록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의 가치를 이해하고, 지혜와의 관계를 갈망하는 사람은 과연 자신의 힘으로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가장 뛰어난 사람도 지혜를 스스로 얻을 수 없다
19절에서 화자는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말합니다.
나는 좋은 재능을 타고난 아이였고, 좋은 영혼을 받았습니다.지혜서 8:19 · 두루새김
그는 자신이 원래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20절에서는 그 말을 스스로 고칩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선한 이로서 더럽혀지지 않은 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지혜서 8:20 · 두루새김
화자는 자신에게 좋은 영혼과 훌륭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지혜를 얻을 수 없다고 인정합니다.
지혜를 얻는 가장 중요한 지혜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지혜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은혜가 누구에게서 오는지 아는 것도 슬기였습니다. 나는 주께 간청하고 빌며, 온 마음을 다해 이렇게 말했습니다.지혜서 8:21 · 두루새김
자신에게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더 깊은 깨달음은, 그 지혜를 누구에게 구해야 하는지 아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없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주실 수 있는 분에게 향하는 일 자체가 이미 슬기로운 판단입니다.
열왕기상 3:7–9에서 솔로몬은 자신이 왕으로서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백성을 올바르게 재판할 수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 구합니다. 7장에서도 화자는 기도하여 슬기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7:7).
지혜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의 자기 확신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이 본문에서 지혜를 향한 올바른 접근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데서 출발합니다.
조금 더 깊이
한 가지 해석은 영혼이 몸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존재했다는 생각이 이 구절에 반영되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선한 이로서 더럽혀지지 않은 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라는 문장은 그런 독법을 가능하게 합니다. 다른 해석은 이것을 영혼의 선함이 인간의 인격을 규정한다는 문학적 강조로 읽습니다. 이 경우 화자는 영혼이 먼저 존재했다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좋은 재능을 몸의 조건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다시 표현하는 셈입니다. 20절은 19절과 무관한 새로운 설명이 아니라 앞의 진술을 수정하거나 강화하는 문장입니다. 7:1–6에서 화자는 자신도 다른 모든 사람처럼 죽을 인간이며, 어머니의 태에서 형성되었고, 태어나 울었으며, 다른 왕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세상에 왔다고 강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8:19–20을 인간의 출생과 영혼이 먼저 존재했다는 생각에 관한 확정적인 교리 진술로 읽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20절의 「더럽혀지지 않은 몸」이라는 표현을 몸 자체가 악하거나 부정하다는 주장으로 바꾸어서도 안 됩니다. 본문은 오히려 더럽혀지지 않은 몸을 긍정적으로 언급합니다. 원문 21절에는 엥크라테스(ἐγκρατής)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이 말은 무엇인가를 지배하거나 장악하는 상태를 가리킬 수 있으며, 특히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앞뒤의 지혜 추구 문맥에서는 지혜를 얻거나 자기 것으로 삼는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문에는 절제하고 자기를 다스리는 능력을 뜻한다고 읽는 길도 열려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7절과 흥미롭게 연결됩니다. 지혜가 가르치는 덕목 가운데 하나가 절제였기 때문입니다.
맺음말 — 지혜를 찾아 돌아다니던 사람이 멈추어 선 자리
화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지혜를 얻고 싶은 갈망도 잃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갈망이 향해야 할 곳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이 장의 마지막에서 그는 더 이상 지혜를 찾아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향합니다.
「나는 주께 간청하고 빌며, 온 마음을 다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문장은 기도의 내용을 들려주지 않은 채 끝납니다. 독자는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그는 지혜의 아름다움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는 지혜를 자기 삶에 맞아들이고 싶었던 사람은, 마침내 하나님 앞에서 온 마음을 다해 입을 엽니다.
지혜서 8장은 바로 그 간청이 시작되는 자리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