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21장
이 장의 자리 · 17–21장 · 언약과 전쟁, 성전 터
사람을 세던 왕이 백성을 살려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역대상 21장은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확인하려는 다윗의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왕은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에 얼마나 많은 군사가 있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요압이 반대하지만 다윗은 명령을 거두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벌을 내리시고, 전염병으로 칠만 명이 죽습니다. 이어서 예루살렘 위에 칼을 뽑아 든 천사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집니다.
다윗은 타작마당을 사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천사는 칼을 칼집에 넣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예배할 성전의 자리는 왕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장소가 아니라, 왕의 죄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하나님의 심판이 멈춘 장소였습니다.
다윗은 왜 이스라엘의 수를 세려고 했는가
이 장의 첫 문장은 뜻밖의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사탄이 이스라엘에 맞서 일어나 다윗을 부추겨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세게 했습니다.역대상 21:1 · 두루새김
다윗이 인구 조사를 명령하는 사건은 사무엘하 24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두 책은 시작부터 다르게 말합니다. 사무엘하 24:1에서는 여호와야훼의 분노가 이스라엘을 향해 타올랐고, 다윗을 부추겨 백성의 수를 세게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사탄인가, 어떤 대적자인가
역대상 21:1에 사용된 히브리어 사탄(שָׂטָן)은 기본적으로 「대적하는 자」를 뜻합니다. 이 낱말이 반드시 고유명사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욥기 1–2장과 스가랴 3:1–2에는 「그 사탄」이라는 뜻으로 관사가 붙은 표현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역대상 21:1에는 관사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고유명사 「사탄」으로 읽을 수도 있고, 어떤 대적자가 이스라엘에 맞서 다윗을 부추겼다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관사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느 쪽이 옳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히브리어에서 고유명사는 일반적으로 관사 없이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본문은 그 존재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더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약에 나타나는 사탄에 관한 모든 설명을 이 한 구절에 곧바로 가져올 필요는 없습니다.
한쪽에서는 하나님이 역사를 다스리시는 가장 큰 차원과, 실제로 다윗을 부추긴 대적자의 활동을 구별하여 두 기록을 함께 이해합니다. 다른 쪽에서는 같은 사건을 전하는 두 성경 저자가 재앙의 원인을 서로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두 기록의 표현 자체가 다르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두 서술의 차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저자들이 정확히 어떤 관계를 의도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인구 조사는 왜 죄가 되었는가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지휘관들에게 말했습니다. 「가서 브엘세바에서 단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세어라. 그 수를 내가 알 수 있도록 보고하여라.」역대상 21:2 · 두루새김
「브엘세바에서 단까지」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남쪽에서 북쪽까지 온 지역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과 지명의 순서가 반대지만, 여기서도 전국적인 조사를 뜻합니다.
그런데 인구 조사가 언제나 죄였던 것은 아닙니다.
민수기 1장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세라고 명령하십니다. 민수기 26장에서도 인구 조사가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단순히 사람의 수를 세었다는 행위 자체를 죄라고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5절을 보면 요압이 보고한 수는 「칼을 들고 싸울 수 있는 남자」의 수입니다. 이는 조사의 대상이 단순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쟁에 동원될 수 있는 남성들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알아보려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신명기 17:16의 왕에 관한 규정이나 시편 20:7의 병거와 말보다 여호와야훼를 의지한다는 고백이 떠오릅니다. 왕이 자신이 확보한 군사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성경 전체에서 경계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반드시 하나님보다 군대의 수를 더 신뢰하려는 마음으로 이 조사를 명령했다고 본문이 직접 말하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출애굽기 30:11–16의 규정과 연결됩니다. 거기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조사받을 때 각자 자신의 생명을 위한 속전을 바치도록 명령하고, 그렇게 해야 인구 조사 때문에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역대상 21장에도 인구 조사와 재앙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두 본문을 함께 생각할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상 21장은 다윗이 속전을 거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규정을 어긴 것이 이 사건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요압은 왜 반대했는가
요압이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분의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로 늘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의 주인이신 임금님, 이들은 모두 임금님의 종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런 일을 하라고 하십니까? 왜 이스라엘이 이 일로 죄를 짊어지게 하십니까?」역대상 21:3 · 두루새김
요압의 질문은 군사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일이 이스라엘에 죄를 짊어지게 한다고 말합니다.
요압은 다윗이 이미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라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다윗이 그들의 수를 추가로 확인해야만 왕으로 다스릴 권한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을 왕이 백성을 숫자로 확인하여 통제하려는 태도에 대한 반대로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압이 정확히 어떤 생각으로 이 말을 했는지는 본문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4절은 짧고 무거운 말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에 눌린 요압은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압은 온 이스라엘을 두루 다닌 뒤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역대상 21:4 · 두루새김
왕에게는 명령할 권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권한이 정당한 반대를 무시하고 잘못된 일을 밀어붙이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왕의 명령이 강하다는 사실이 그 명령의 정당성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요압은 레위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조사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왕의 명령을 몹시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21:6). 레위 사람들은 민수기 1:47–49에서 일반적인 군사 인구 조사와 구별되어 있었으므로 그 앞선 사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을 제외한 이유는 별도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보고된 숫자는 이스라엘의 칼을 들고 싸울 수 있는 남자 110만 명과 유다의 47만 명입니다. 사무엘하 24:9에는 이스라엘 80만 명과 유다 50만 명이 기록되어 있어 두 기록의 숫자가 다릅니다. 수를 센 범위가 달랐을 가능성이나 본문이 전해지는 과정의 차이가 논의될 수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왕은 백성의 수를 알게 되었지만, 이제 그 행동이 가져온 결과를 마주하게 됩니다.
다윗은 수를 얻었지만, 백성은 생명을 잃는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악하게 보고 이스라엘에 벌을 내리셨습니다.역대상 21:7 · 두루새김
요압이 불쾌하게 여겼기 때문에 잘못된 일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다윗인데,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벌을 내리시는가요?
본문은 이 질문에 간단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왕의 결정이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각 개인이 왜 재앙을 당해야 했는지 모두 설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하 24:1에는 처음부터 여호와야훼의 분노가 이스라엘을 향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상 21장은 그 배경을 제시하지 않고, 다윗의 명령과 그 결과를 집중해서 기록합니다. 따라서 역대상만으로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특별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전에 다윗은 먼저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제가 이런 일을 하여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몹시 어리석게 행동했습니다. 부디 주님의 종인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역대상 21:8 · 두루새김
여기서 「몹시 어리석게 행동했습니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계산을 잘못했거나 판단력이 부족했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히브리어에서는 어리석음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실패한 것과 연결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따르지 않고 잘못된 길을 선택했다는 의미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재앙은 곧바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견자 갓을 통해 다윗에게 세 가지 재앙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삼 년 동안의 기근, 석 달 동안 적들의 공격에 쓰러지고 원수들의 칼에 따라잡히는 일, 사흘 동안 여호와야훼의 칼과 전염병이 닥치는 일입니다.
기근은 땅에서 먹을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이고, 적에게 쫓기는 일은 다른 사람의 군사력 앞에 무너지는 고통입니다. 전염병은 여호와야훼의 천사가 이스라엘을 파괴하는 일과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많은 칼을 동원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던 왕이, 이제는 자신이 가진 군사력으로 막을 수 없는 칼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 갓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몹시 괴롭다. 부디 내가 여호와야훼의 손에 떨어지기를 바란다. 그분께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주 크시기 때문이다. 사람의 손에는 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역대상 21:13 · 두루새김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결과를 주실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아주 크다는 사실에 기대어 자신의 운명을 맡기려 합니다.
칼을 든 천사에게 「그만하면 되었다」고 말씀하신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 전염병을 내리셨고, 이스라엘 사람 7만 명이 죽었습니다.역대상 21:14 · 두루새김
처음의 숫자는 군사력을 나타내는 숫자였습니다. 이제의 숫자는 잃어버린 생명을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크다는 고백은 하나님이 언제나 인간에게 고통 없는 결과만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칠만 명의 죽음이 기록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에 관한 다윗의 고백이 무의미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심판은 예루살렘까지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파괴하려고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천사가 파괴하고 있을 때, 여호와야훼께서는 그 모습을 보고 재앙을 거두기로 마음을 돌리셨습니다. 그리고 파괴하는 천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하면 되었다. 이제 손을 거두어라.」 그때 여호와야훼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 곁에 서 있었습니다.역대상 21:15 · 두루새김
하나님은 다윗이 제단을 쌓기도 전에 파괴를 멈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뒤에 다윗이 천사를 보고, 자기 죄를 고백하며, 제단을 세우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인간의 제사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선 천사
다윗이 눈을 들어 보니, 여호와야훼의 천사가 땅과 하늘 사이에 서 있었습니다. 천사는 손에 칼을 뽑아 들고 예루살렘을 향해 겨누고 있었습니다. 자루옷을 걸친 다윗과 이스라엘을 이끄는 어른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역대상 21:16 · 두루새김
이 모습은 하나님의 심판이 다윗의 궁전이나 군대가 통제할 수 없는 차원에서 닥치고 있음을 눈앞에 보여줍니다. 자루옷은 슬퍼하고 자신을 낮추며 간절히 호소할 때 입던 거친 옷입니다. 다윗과 이스라엘을 이끄는 어른들은 왕의 위엄을 드러내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엎드린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 다윗은 처음의 인구 조사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백성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양 같은 백성이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다윗이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백성의 수를 세라고 한 사람은 바로 제가 아닙니까? 죄를 짓고 참으로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저입니다. 하지만 이 양 같은 백성이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저의 하나님 여호와야훼, 부디 저와 제 아버지의 집안에 벌을 내리시고, 주님의 백성에게는 재앙을 내리지 말아 주십시오.」역대상 21:17 · 두루새김
그는 죄의 책임을 요압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자신을 부추긴 존재에게도 돌리지 않습니다.
칼을 들고 싸울 수 있는 남자에서 양 떼로
「이 양 같은 백성」이라는 표현은 역대상 17:7과 연결됩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자신이 그를 풀밭에서, 양 떼 뒤를 따르던 데서 데려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본래 양을 돌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어 인구 조사를 명령할 때에는 백성을 군사력의 수로 세었습니다. 이제 재앙 속에서 그는 백성을 다시 양에 빗대어 부릅니다.
양은 보호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목자는 양을 이용하여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양을 돌보는 책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다윗이 세려고 했던 사람들은 왕의 힘을 나타내는 숫자이기 전에, 왕이 돌보아야 할 백성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만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잘못의 결과를 백성이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 가져옵니다. 그는 백성을 대신하여 고통을 감당하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물론 본문은 하나님이 다윗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와 그의 아버지의 집안에 벌을 내리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다윗이 실제로 백성을 대신하여 벌을 받았다는 사건으로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이 죄를 지었는데 왜 그 많은 백성이 죽어야 했습니까? 본문은 그 질문에 완전한 답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윗 자신이 「이 양 같은 백성이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라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질문해서는 안 되는 문제가 아니라, 본문 속 인물이 실제로 제기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말만으로 이미 죽은 칠만 명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 장은 잘못한 지도자가 사과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지도자의 잘못에는 실제적인 결과가 있으며, 그 결과를 다른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기도 직후에 뜻밖의 명령이 내려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궁전이나 성막으로 가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한 여부스 사람의 타작마당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왜 하필 여부스 사람의 타작마당이었는가
여호와야훼의 천사가 갓에게 말했습니다. 「다윗에게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으로 올라가 여호와야훼를 위한 제단을 세우라고 전하여라.」역대상 21:18 · 두루새김
여부스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다윗의 성읍이 되기 전부터 그 지역과 관련되어 있던 주민들입니다(역대상 11:4–5). 따라서 오르난은 단순히 다윗 궁정의 관리나 제사장이 아닙니다. 자기 타작마당에서 밀을 타작하던 사람입니다.
이것은 왕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하겠다고 생각했던 역대상 17장과도 다른 장면입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께 집을 지어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다윗에게 특정한 장소에 제단을 세우라고 명령하십니다.
다윗은 자신의 계획을 하나님께 제안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신 장소로 가는 사람이 됩니다.
네 아들은 숨고, 오르난은 밀을 타작한다
밀을 타작하던 오르난이 돌아서서 천사를 보았습니다. 그와 함께 있던 네 아들은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역대상 21:20 · 두루새김
한 평범한 사람의 일터와 가족도 그 사건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습니다. 타작마당은 농부가 곡식에서 알곡을 분리하는 곳입니다. 오르난이 사용하던 타작 썰매와 소, 밀도 뒤에서 등장합니다.
오르난의 일상적인 장소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제단의 자리로 바뀌려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땅을 왕의 권위로 빼앗지 않습니다.
다윗이 오르난에게 말했습니다. 「타작마당 터를 내게 넘겨라. 내가 거기에 여호와야훼를 위한 제단을 쌓겠다. 백성에게 닥친 재앙이 그치도록, 제값을 다 받고 그 터를 내게 팔아라.」역대상 21:22 · 두루새김
그는 타작마당을 얻으려 하지만, 그 소유자의 권리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르난은 왕에게 땅과 제물을 모두 주겠다고 합니다.
오르난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가져가십시오. 저의 주인이신 임금님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하십시오. 번제물로 드릴 소들과 땔감으로 쓸 타작 썰매와 곡식 제물로 드릴 밀도 드리겠습니다. 모두 드리겠습니다.」역대상 21:23 · 두루새김
그는 자기 일터에 있던 것들을 모두 내어놓겠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오르난이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에 대한 존중 때문인지, 천사를 본 두려움 때문인지, 재앙이 그치기를 바랐기 때문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숨는 동작의 주체를 어떻게 이해할지에 원문의 문법상 약간의 여지가 있지만, 두루새김은 밀을 타작하던 오르난이 천사를 보았고 그와 함께 있던 네 아들은 몸을 숨기고 있었다는 흐름으로 옮겼습니다.
다윗은 왜 값없이 제사를 드리려 하지 않았는가
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말했습니다. 「아니다. 반드시 제값을 다 치르고 사겠다. 네 것을 가져다가 여호와야훼께 바칠 수는 없다.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번제를 드리지는 않겠다.」역대상 21:24 · 두루새김
문제는 단순히 제사를 드릴 때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다른 사람의 재산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그는 자신의 권위로 요압의 반대를 눌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왕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원하는 것을 값없이 가져가려 하지 않습니다. 물론 본문이 이 두 장면을 직접 대조하지는 않습니다. 다윗이 특별히 인구 조사에서 배운 교훈 때문에 땅값을 치르기로 했다고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것을 자기 것처럼 가져가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값비싼 제사를 더 좋아하신다는 뜻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적은 것을 드리거나, 다른 사람이 기꺼이 제공한 것을 공동체가 함께 바치는 일이 잘못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금 600세겔과 은 50세겔
25절은 다윗이 오르난에게 금 600세겔을 주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같은 사건을 다루는 사무엘하 24:24에는 다윗이 타작마당과 소를 은 50세겔에 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역대상은 성전이 들어설 넓은 땅 전체의 가격을 기록했고, 사무엘하는 타작마당과 소의 가격만 기록했다고 이해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 설명은 가능성이 있지만, 두 본문이 실제로 서로 다른 면적을 가리킨다고 밝히지 않으므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본문이 전해지는 과정이나 기록 방식의 차이로 보는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다윗은 땅을 얻었고, 그곳에 제단을 세웁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불과 칼집으로 돌아간 칼
다윗은 그곳에 여호와야훼를 위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다윗이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자, 여호와야훼께서는 하늘에서 번제단 위로 불을 내려 응답하셨습니다.역대상 21:26 · 두루새김
앞에서는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있는 천사의 칼이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단 위에 닿습니다.
다음 절에서 천사의 칼이 움직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천사에게 명령하시자, 천사는 칼을 칼집에 도로 넣었습니다.역대상 21:27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생명을 결정적으로 위협하던 것은 적군의 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협을 끝낸 것도 다윗의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행동은 중요합니다. 그는 죄를 고백하고, 백성을 위해 간구하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장소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심판을 끝낼 최종적인 권한은 다윗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지만, 천사에게 칼을 거두라고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칼을 거두도록 명령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조금 더 깊이
레위기 9:24에서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불이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지방을 태웁니다. 열왕기상 18:38에서는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기도한 뒤 여호와야훼의 불이 내려와 번제물을 태웁니다. 이러한 본문들과 연결하여 읽으면 역대상 21:26의 불은 하나님이 다윗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고 그 제사를 받아들이셨음을 나타내는 표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브온의 성막이 있는데 왜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제사를 드렸는가
이제 재앙이 멈추었으므로 이야기가 끝나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대기 저자는 마지막 세 절을 통해 독자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남깁니다. 다윗은 왜 이곳에서 제사를 드렸을까요?
모세가 광야에서 만든 여호와야훼의 성막과 번제단은 그때 기브온 산당에 있었습니다.역대상 21:29 · 두루새김
역대상 16:39–40에서도 사독과 제사장들이 기브온의 성막 앞에서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렸다고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제단을 세운 것은 기존의 성막과 번제단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곳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야훼의 천사가 든 칼 때문에 겁에 질려, 하나님을 찾으러 그 성막 앞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역대상 21:30 · 두루새김
다윗이 기브온으로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그가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갓을 통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제단을 세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다윗은 그 말씀을 따라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심판이 멈춘 장소가 성전의 자리가 된다
역대상 21장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앞으로 어떤 장소가 될 것인지 아직 직접 선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음 장의 첫 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이 여호와야훼 하나님의 집이며, 이곳이 이스라엘을 위한 번제단이다.」 (역대상 22:1)
그리고 역대하 3:1에서는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야산에서 성전을 짓기 시작했으며, 그 장소가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마련한 곳이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가 생겨난 까닭이, 심판 속에서 하나님이 보여 주신 불쌍히 여기심과 응답에 연결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단순히 죄가 있었기에 성전이 세워졌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하면 칠만 명의 죽음이 마치 성전 건축을 위해 꼭 필요한 준비였던 것처럼 들릴 위험이 있습니다. 본문은 그들의 죽음을 그렇게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전의 터가 되는 장소에는 왕의 죄와 백성의 고통, 심판의 두려움이 함께 기억됩니다. 그 위에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과 응답의 이야기가 놓이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두루새김이 「그 성막 앞으로」라고 옮긴 자리는 원문의 대명사가 가리키는 대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갈릴 수 있습니다. 기브온의 성막 앞으로 읽을 수도 있고, 그곳의 번제단 앞으로 읽을 수도 있으며,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맥에서 분명한 것은 다윗이 기존 성막이 있는 기브온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칼이 칼집으로 돌아간 자리
다윗은 칼을 들고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의 수를 세려 했지만, 그날 예루살렘을 살린 것은 더 많은 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의 칼을 거두게 하신 일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다윗은 여전히 천사의 칼 때문에 겁에 질려 있습니다. 기브온에는 모세가 만든 성막과 번제단이 있지만, 그는 그곳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 대신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해서 다윗이 경험했던 두려움과 재앙의 기억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두려워했던 칼은 더 이상 예루살렘을 향해 뽑혀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칼이 거두어진 자리에는 다윗이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제 그곳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을 새로운 장소로 남게 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