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상권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3–8장 · 유다 마카베오의 싸움
승리는 어디에서 오는가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상인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많은 은과 금을 가지고 적군의 진영에 도착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종으로 사들이기 위해서였습니다(3:41). 아직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잡힌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상인들은 이미 승패가 결정되었다고 생각한 듯 행동합니다.
그렇게 판단할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이끄는 저항군에 맞서 왕의 군대가 군사 사만 명과 말을 탄 군사 칠천 명을 거느리고 왔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규모의 차이는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은 그러한 군사적 우세를 보는 시선과 전혀 다른 시선을 나란히 놓습니다.
이 장은 누가 더 큰 군대를 가졌는가를 이야기하면서, 결국 누구의 힘과 뜻이 역사를 결정하는가를 묻습니다.
사자처럼 일어난 유다 — 한 사람의 영웅담을 넘어
마타티아스가 죽자 그의 아들 유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나섰습니다.
마타티아스는 죽기 전에 유다를 군대의 지휘관으로 세웠습니다(2:66). 이제 그 유언에 따라 저항 운동의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곧바로 유다 혼자 싸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형제들과 아버지에게 합류했던 사람들이 모두 그를 도왔습니다. 그들은 기꺼이 이스라엘을 위해 싸웠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2 · 두루새김
유다의 지도력은 이미 형성된 공동체 위에서 시작됩니다.
그의 곁에는 형제들이 있었고, 아버지에게 합류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타티아스가 남긴 유산은 재산이나 권력이 아니라, 언약을 지키기 위해 함께 모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3–9절은 글의 말투가 갑자기 달라집니다.
유다는 거인처럼 무장하고, 사자처럼 행동하며, 원수들을 두렵게 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의 이름은 땅끝까지 알려지고, 그에 대한 기억은 영원히 복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전투 기록이 아닙니다. 유다의 활동을 찬양하는 시적인 소개입니다.
그의 행동은 사자 같았고, 먹이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젊은 사자 같았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4 · 두루새김
여기서 사자의 모습은 창세기 49:9를 떠올리게 합니다. 야곱은 유다를 축복하며 그를 사자 새끼에 비유합니다. 마카베오기 저자가 창세기의 축복을 직접 인용한다고 밝히지는 않지만, 유다 지파를 상징하던 사자의 모습이 유다 마카베오의 용맹을 표현하는 데 어울리게 사용되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땅끝까지 알려졌습니다. 그는 멸망할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모았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9 · 두루새김
유다는 적에게는 두려운 인물이지만, 멸망할 위기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을 모으는 지도자입니다. 한쪽에서는 적군을 무너뜨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흩어진 백성을 다시 모읍니다.
율법을 어기는 자들은 그가 두려워 움츠러들었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모두 떨었습니다. 그의 손을 통해 백성을 구하는 일이 잘 이루어졌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6 · 두루새김
여기서 백성을 구한다는 것은 우선 박해와 군사적 위협 속에서 이스라엘이 살아남는 일을 가리킵니다. 개인의 죄 사함이나 영원한 생명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말이 아닙니다. 본문은 구체적인 역사적 위기에서 백성이 지켜지는 일을 구원의 말로 표현합니다.
그는 유다의 도시들을 두루 다니며 그 땅에서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자들을 없애 버렸고, 이스라엘에서 분노가 물러가게 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8 · 두루새김
「분노가 물러가게 했습니다」라는 말은 민수기 25:11의 비느하스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으로 행동했고, 그 결과 하나님의 분노가 이스라엘에서 물러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 장에서 마타티아스의 행동이 비느하스의 열심과 직접 비교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여기서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3:8은 저자가 유다의 행동을 평가하는 서술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분노를 거두겠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은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자들을 없애 버렸고」라는 표현은 유다의 무력 활동이 이스라엘 내부의 반대자들에게까지 미쳤음을 보여 줍니다. 저자는 그것을 언약을 회복하는 일의 일부로 긍정적으로 서술하지만, 그 폭력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있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아직 구체적인 전투들을 이야기하기 전에 유다의 이름과 업적을 먼저 찬양합니다. 따라서 3–9절을 시간순으로 하나씩 벌어진 사건들의 목록으로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자는 앞으로 이어질 전투들을 읽기 전에 유다가 어떤 인물로 기억되는지 먼저 보여 줍니다.
이제 이야기는 그러한 평가를 낳은 구체적인 전투로 옮겨 갑니다.
적장의 칼을 빼앗다 — 아폴로니오스와의 전투
첫 번째로 등장하는 적장은 아폴로니오스입니다.
그는 다른 민족의 사람들을 모으고, 사마리아에서도 큰 군대를 모아 이스라엘과 싸우려 합니다. 유다는 이 소식을 듣고 맞서 나갑니다.
유다는 이 소식을 듣고 아폴로니오스와 맞서러 나가 그를 쳐 죽였습니다. 적군 가운데 많은 사람이 무기에 맞아 쓰러졌고, 나머지는 달아났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11 · 두루새김
유다의 군사들은 적군의 장비를 빼앗았습니다. 유다는 아폴로니오스의 칼을 차지하여 평생 그 칼로 싸웠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12 · 두루새김
칼은 단순히 적에게서 빼앗은 물건이 아닙니다. 본문이 굳이 그 칼을 평생 사용했다는 사실까지 기록하는 까닭은, 이 무기가 그의 이후 전투와 계속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아폴로니오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 가지고 왔던 무기가, 이제 이스라엘을 지키는 유다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이 장면은 사무엘상 17장에서 다윗이 골리앗의 칼로 골리앗의 목을 베는 일을 떠올리게 합니다(사무엘상 17:51). 두 사건은 세부적으로 같지 않지만, 적의 무기가 오히려 적을 무너뜨린 사람의 손에 들어간다는 공통된 뒤바뀜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성공은 곧 새로운 위험을 불러옵니다.
한 지휘관이 죽자 다른 지휘관이 유다를 상대하려 나섭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지휘관이 왜 유다와 싸우려 하는지 직접 말합니다.
이름을 얻으려는 사람과 하늘을 신뢰하는 사람
시리아 군대의 지휘관 세론은 유다가 충실한 사람들을 무리로 모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세론이 말했습니다. 「내 이름을 떨치고 이 나라에서 영광을 얻겠다. 유다와 그 동료들, 왕의 명령을 업신여기는 자들과 싸우겠다.」마카베오기 상권 3:14 · 두루새김
그에게 유다의 저항은 출세의 기회입니다. 이 대목은 앞에서 유다에 대한 기억이 영원히 복이 되었다고 말한 것과 대조됩니다. 유다의 이름은 저자가 그가 백성을 구한 일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높아졌습니다. 반면 세론은 자기 이름을 높이려고 전쟁을 벌입니다.
두 사람 모두 전쟁터로 향하지만, 저자가 보여 주는 목적은 서로 다릅니다.
세론의 군대가 메토론 오르막길에 가까이 왔을 때 유다는 아주 적은 사람을 데리고 그와 맞섭니다.
유다의 군사들은 적군이 자신들을 향해 오는 것을 보고 유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적은데 어떻게 저 많은 군대와 싸울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오늘 아무것도 먹지 못해 지쳤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17 · 두루새김
유다는 그들에게 먹지 못한 것은 문제가 아니라거나, 적군의 규모를 무시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승리를 판단하는 기준을 바꾸어 놓습니다.
유다가 대답했습니다. 「많은 군대가 적은 군대의 손에 넘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늘이 구원하시는 데에는 군사가 많든 적든 차이가 없다.」마카베오기 상권 3:18 · 두루새김
이 표현은 사무엘상 14:6에서 요나단이 한 말을 강하게 떠올리게 합니다. 요나단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나아가면서 여호와야훼께서 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 적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말합니다. 두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실제로 소수였고, 적군은 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병력 수에 제한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군사의 수에 달려 있지 않고, 힘은 하늘에서 오기 때문이다.」마카베오기 상권 3:19 · 두루새김
이 말은 사무엘상 17:47에서 다윗이 골리앗에게 선언한 내용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윗은 전쟁이 여호와야훼께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늘」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유다는 승리가 군사의 수에 달려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싸움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그들은 교만과 불법으로 가득 차 우리에게 오고 있다. 우리와 우리 아내들과 자녀들을 없애고, 우리 재물을 빼앗으려는 것이다.」마카베오기 상권 3:20 · 두루새김
「그러나 우리는 우리 목숨과 율법의 규정들을 지키려고 싸운다.」마카베오기 상권 3:21 · 두루새김
여기서 「율법의 규정들」은 조상들에게서 이어져 온 율법의 관습과 명령들을 가리킵니다. 앞 장에서 마타티아스는 안식일에 공격을 받으면 맞서 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결정을 내릴 때에도 목숨과 규정이라는 두 요소가 함께 등장했습니다(2:40).
유다 역시 그 둘을 떼어 놓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목숨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더 오래 살아남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께서 적들을 쳐부수실 것이라고 선언하고, 즉시 공격합니다.
세론의 군대는 패배하고, 유다의 군사들은 벧호론 내리막길을 따라 적군을 뒤쫓습니다. 본문은 적군 가운데 팔백 명가량이 쓰러졌다고 기록합니다. 전투가 끝나자 유다에 대한 두려움이 주변 민족들에게 퍼집니다.
유다의 이름은 왕에게까지 알려졌고, 모든 민족이 유다가 벌인 전투들을 이야기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26 · 두루새김
세론은 자기 이름을 높이려다가 패배했습니다. 유다는 자기 이름을 높이겠다고 선언하지 않았지만, 그의 이름은 왕에게까지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은 곧 평화가 찾아왔다는 뜻이 아닙니다. 왕이 그의 이름을 듣고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유다와 그의 사람들은 단순히 지방의 군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제국 전체의 힘과 마주하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벧호론은 유다 산지와 서쪽 평야를 연결하는 주요 통로에 자리한 곳입니다. 산지로 올라가는 길과 평야로 내려가는 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군대의 이동에서 중요한 지형이었습니다. 16절의 「메토론」은 다른 그리스어 본문에 나타나는 「벧호론」과 동일한 지명을 가리키는 이름 표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국의 금고는 비어 가고 있었다
유다의 승리 소식을 들은 안티오코스 왕은 몹시 분노합니다.
그는 자기 나라의 모든 병력을 모으라고 명령하고, 군사들에게 한 해 치 급료를 지급합니다.
그는 금고를 열어 군사들에게 한 해 치 급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해 동안 어떤 일이 생겨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명령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28 · 두루새김
그러나 보물 창고의 은전이 바닥나고 있었습니다. 여러 지방에서 들어오는 세금도 줄었습니다. 왕이 오래전부터 전해 온 관습들을 없애려고 그 땅에 분열과 재앙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29 · 두루새김
이는 안티오코스의 정책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인 평가입니다. 그는 제국을 더 강하게 통제하기 위해 지배받는 민족들의 오랜 관습을 없애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책은 저항을 낳았고, 제국의 통치에도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 명령에 따르게 하려는 권력이, 바로 그 강압 때문에 자신이 의지하는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었습니다.
30절에 따르면 그는 군대를 유지하는 비용뿐 아니라 이전처럼 넉넉하게 선물을 베풀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두려워합니다. 헬레니즘 왕국에서 왕은 군사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가까운 사람들과 도시, 힘 있는 인사들에게 재물과 특권을 베풀면서 충성을 얻었습니다. 왕의 선물은 단순히 개인적으로 너그럽게 베푸는 일만이 아니라 정치적 권위를 유지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앞 장에서 마타티아스에게 은과 금과 많은 선물을 약속했던 바로 그 제국이, 이제는 재물이 부족해 고민합니다.
왕은 페르시아로 가서 세금을 거두고 많은 은전을 모으기로 합니다. 그동안 서쪽 지역의 통치는 리시아스에게 맡깁니다.
리시아스는 왕족 출신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며, 왕은 그에게 유프라테스강에서 이집트 국경에 이르는 지역의 일을 맡깁니다. 자신의 아들 안티오코스를 기르는 책임도 함께 맡깁니다. 이렇게 일을 맡겼다는 사실은 리시아스가 단순한 장군이 아니라 왕권의 핵심적인 책임을 맡은 인물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리시아스에게 주어진 명령 가운데 가장 참혹한 것은 유대와 예루살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군대를 보내 이스라엘의 세력과 예루살렘에 남은 사람들을 완전히 없애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기억할 흔적마저 지우라고 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35 · 두루새김
유다의 기억은 남을 것이라고 선언되는데, 왕은 이스라엘의 기억을 없애라고 명령합니다. 왕은 한 민족을 정복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 민족이 그 땅에서 살아왔다는 역사까지 지우려 합니다.
또 그들의 땅 곳곳에 다른 나라 사람들을 살게 하고, 그 땅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36 · 두루새김
이스라엘에게 땅은 단순히 사고파는 재산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2:7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땅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후 그 땅은 이스라엘 각 지파와 가문에게 나누어 주는 상속 재산이 되었습니다(여호수아 13–21장).
따라서 왕의 명령은 개인의 재산을 빼앗는 일을 넘어 조상들에게 주어진 상속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동이었습니다. 마카베오기 저자는 이 위기를 하나의 군사적 반란을 억누르는 일로 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서 이어 온 역사 전체가 사라질 위험으로 묘사합니다.
왕은 병력의 절반을 이끌고 페르시아로 떠납니다. 나머지 병력과 서쪽 지역을 다스리는 권한은 리시아스에게 맡겨졌습니다.
제국은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쪽으로 움직이는 동시에, 이스라엘을 없애기 위해 다른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사람을 아직 잡기도 전에 값을 준비하다
리시아스는 프톨레마이오스와 니카노르와 고르기아스를 뽑아 유다 땅으로 보냅니다.
39절은 그들과 함께 군사 사만 명과 말을 탄 군사 칠천 명을 보냈다고 기록합니다. 적군은 엠마오 가까운 평야 지대에 진을 칩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 서쪽, 유다 산지와 평야가 만나는 지역에 자리한 곳으로 이해됩니다. 이곳은 서쪽에서 예루살렘 산지로 접근하기에 유리한 지역이었습니다. 평야 지대는 말을 탄 군사들이 움직이기에도 비교적 알맞았습니다.
그런데 41절에서 전쟁의 이야기는 갑자기 장사의 이야기로 바뀝니다.
그 지방의 상인들은 이 군대의 소문을 듣고 아주 많은 은과 금을 챙기고 종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종으로 사들이려고 진영에 온 것입니다. 시리아와 블레셋 땅의 군대도 합류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41 · 두루새김
군사적 침략이 사람을 종으로 사고파는 일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름과 가족과 삶의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기보다, 앞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상품이었습니다. 앞서 왕이 땅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령했다면, 이제 상인들은 그 땅에 살던 사람들까지 재산으로 취급하려 합니다.
왕은 땅을 처분하려 하고, 상인들은 사람을 사고자 합니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이러한 위기가 자신들에게 닥쳤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들은 서로 말했습니다. 「무너진 우리 백성과 성소를 다시 일으키자.」마카베오기 상권 3:43 · 두루새김
유다가 나선 목적은 자기 이름을 높이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무너진 공동체가 다시 일어서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는 영토를 넓히거나 적의 물건을 빼앗는 일보다 백성과 성소의 회복을 앞세웁니다.
또한 이 장은 좋은 목적을 가졌다면 어떠한 전쟁이나 폭력도 정당화된다고 말할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유다의 저항은 실제로 그의 백성과 성소를 없애려는 구체적인 군사적 위협 가운데 이루어졌으며, 본문도 그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의 행동을 평가합니다.
백성은 함께 모였습니다. 전쟁을 준비하고, 또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구하려는 것이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44 · 두루새김
이 문장에서 전쟁 준비와 기도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성소가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미스바에서 이루어집니다.
왜 하필 미스바일까요?
짓밟힌 성전을 대신하여 미스바에 모이다
45절은 예루살렘의 상황을 다시 보여 줍니다.
예루살렘은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 같았습니다. 그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습니다. 성소는 짓밟혔고, 성채에는 다른 민족의 사람들이 들어와 그곳을 숙소로 삼았습니다. 야곱에게서 즐거움이 사라졌고, 피리와 비파 소리도 그쳤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45 · 두루새김
이것은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통계적 설명이라기보다,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드러내는 탄식의 말입니다. 피리와 비파는 일상적인 즐거움과 축제의 음악을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비파는 이스라엘의 찬양과도 연결되는 악기입니다.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도시의 삶에서 기쁨과 예배의 질서가 무너졌음을 나타냅니다.
이때 유다의 무리는 예루살렘을 향해 곧장 진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 예루살렘 맞은편에 있는 미스바로 갔습니다. 미스바는 예전에 이스라엘이 기도하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46 · 두루새김
사무엘상 7장을 보면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위협 가운데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사무엘은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고, 백성은 음식을 먹지 않으며 자신들의 죄를 고백했습니다(사무엘상 7:5–6).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을 치러 올라왔을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구원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천둥으로 블레셋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셨습니다(사무엘상 7:7–11).
저자는 유다의 무리가 단지 군사적으로 유리한 장소를 찾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이전에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던 장소를 찾아갔다고 설명합니다. 성전은 여전히 회복해야 할 거룩한 장소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정상적인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기도할 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미스바에서 음식을 먹지 않고, 굵은 베옷을 걸치고, 머리에 재를 뿌리고, 옷을 찢습니다. 이 모습은 단순히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의식이 아닙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며 슬픔을 표현하는 행동입니다.
율법책을 펼치다 — 어디에서 답을 구할 것인가
그들은 율법책을 펼쳤습니다. 다른 민족들이 자기 우상의 형상들에게 묻곤 하던 일들에 대해 답을 찾으려는 것이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48 · 두루새김
왕이 열었던 것은 군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물이 들어 있는 금고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펼친 것은 자신들의 삶을 이끌어 온 하나님의 율법이었습니다. 두 행동은 각 집단이 무엇을 의지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여기서 율법책을 펼쳤다는 사실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제사장 옷과 첫 열매, 그리고 갈 곳 없는 나실인들
그들은 제사장 옷과 첫 열매와 십일조를 가져왔습니다. 또 서약한 기간을 다 채운 나실인들을 앞으로 세웠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49 · 두루새김
제사장 옷은 성전에서 예배를 섬기는 일과 관계가 있습니다. 첫 열매와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며, 제사장과 레위인의 생활을 뒷받침하는 제도와도 연결됩니다.
나실인은 일정 기간 특별한 서약에 따라 자신을 하나님께 따로 바친 사람입니다. 민수기 6:1–21은 나실인의 서약에 대해 규정합니다. 나실인은 서약한 기간에 포도주 등을 삼가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으며, 시체로 인해 부정해지는 일을 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서약한 기간이 끝나면 성소에 나아가 정해진 제물을 드리고 관련 의식을 마쳐야 했습니다(민수기 6:13–20).
하지만 성소는 짓밟히고 더럽혀져 있습니다.
제사장에게는 옷이 있지만 정상적인 성전 예배를 드릴 수 없고, 백성에게는 첫 열매와 십일조가 있지만 그것을 본래의 목적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나실인들도 자신들의 서약을 마칠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늘을 향해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사람들을 어디로 데려가야 합니까?」마카베오기 상권 3:50 · 두루새김
성전이 무너졌다는 것은 그들에게 단순히 종교적으로 무언가를 잃었다는 막연한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을 실제로 할 장소와 질서가 사라졌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버리지 않았지만, 율법이 요구하는 일을 행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를 다시 드릴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그들의 기도는 더욱 절박해집니다.
「주님의 성소는 짓밟히고 더럽혀졌습니다. 주님의 제사장들은 슬퍼하며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51 · 두루새김
성소는 이스라엘이 소유하고 마음대로 처분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장소입니다. 따라서 성소가 모욕당하는 것은 단지 이스라엘의 수치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모욕당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보십시오. 다른 민족들이 우리를 없애려고 모여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우리를 해치려고 무슨 일을 꾀하는지 아십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52 · 두루새김
그들은 적군의 의도를 하나님께 새로 알려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의 상황과 원수들의 계획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에 호소합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그들 앞에서 버틸 수 있겠습니까?」마카베오기 상권 3:53 · 두루새김
이 질문은 유다가 앞에서 한 선언과 연결됩니다. 유다는 하늘이 구원하시는 데에는 군사가 많든 적든 차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공동체는 그 말을 기도로 바꿉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용기를 구원의 최종적인 근거로 삼지 않습니다. 그들은 싸워야 할 일을 알고 있지만, 자신들의 힘만으로 그 일을 완수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팔을 불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54 · 두루새김
민수기 10:9에는 이스라엘이 원수의 공격을 받아 전쟁에 나갈 때 나팔을 불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억하시고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카베오기 3장은 이 규정을 직접 인용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앞두고 나팔을 불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모습은 그 전통과 잘 어울립니다.
앞에서는 예루살렘에서 피리와 비파 소리가 그쳤습니다.
이제 미스바에서는 나팔 소리가 울립니다.
아직 기쁨의 음악이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침묵했던 공동체가 다시 하나님께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48절의 그리스어 문장은 상당히 압축되어 있어서 말들이 정확히 어떻게 연결되는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한 가지 읽기는 두루새김의 번역처럼, 다른 민족들이 우상의 형상들에게 묻던 일들에 대해 이스라엘은 율법책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앞뒤 문맥을 고려하면 율법책을 펼쳐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는 읽기가 자연스럽습니다. 다른 읽기는 다른 민족 사람들이 율법책과 우상의 형상들을 관련지어 어떤 일을 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율법책이 다른 민족의 우상숭배 행위와 관계되어 언급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있었는지는 본문만으로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책을 아무 데나 펼쳐 나온 구절을 점괘처럼 해석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적은 병력 앞에서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다
기도와 나팔 소리가 끝나자 유다는 군대를 조직합니다.
그 뒤 유다는 백성 가운데서 지휘관들을 세워 각각 천 명, 백 명, 쉰 명, 열 명씩 맡아 이끌게 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55 · 두루새김
이 조직 방식은 신명기 1:15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지도 체계와 연결됩니다. 물론 신명기에서는 이들이 주로 공동체의 살림과 재판을 맡는 지도자들입니다. 마카베오기에서는 군대를 이끄는 지휘관들로 등장합니다. 두 본문에서 맡는 일은 다르지만, 유다는 이스라엘에게 익숙한 지도 체계의 말로 군대를 조직합니다.
유다는 집을 짓는 사람들, 결혼을 약속한 사람들, 포도원을 심는 사람들, 겁이 나는 사람들에게 율법에 따라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3:56 · 두루새김
이것은 신명기 20:5–8의 전쟁 규정을 따르는 행동입니다. 신명기에는 새 집을 짓고 아직 사용하지 못한 사람,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누리지 못한 사람, 결혼을 약속하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 겁이 나는 사람을 전쟁에서 돌려보내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지금 압도적인 적군과 싸워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군대에 필요한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병력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신명기의 규정을 지키면서 병력을 줄이는 결정을 내립니다. 군사의 수가 승리의 최종적인 근거가 아니라고 믿었기에, 그는 병력을 최대한 늘리는 것보다 율법을 따르는 일을 앞세웁니다.
신명기 20장은 전쟁을 앞둔 이스라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위해 싸우시기 때문입니다(신명기 20:1–4). 그리고 바로 이어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규정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은 단지 용감하게 싸우라는 명령에만 연결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을 무조건 전쟁터로 끌고 가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과도 연결됩니다.
집을 짓고, 포도원을 가꾸고, 가족을 이루는 일은 공동체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단지 군사적으로 적군을 물리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자기 집에서 살고, 땅의 열매를 누리고, 가정을 이루는 삶이 이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명기의 규정은 바로 그러한 삶의 자리들을 전쟁의 요구로부터 일정 부분 보호합니다.
그의 싸움은 모든 사람을 군사로 만드는 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후 군대는 엠마오 남쪽으로 이동하여 진을 칩니다. 적군은 이미 엠마오 가까운 평야 지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두 군대 사이의 전투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싸울 준비를 하되 결과는 하늘에 맡기다
유다는 마지막으로 군사들에게 말합니다.
유다가 말했습니다. 「허리띠를 매고 용사가 되어라. 우리와 우리 성소를 없애려고 모여든 저 민족들과 아침에 싸울 준비를 하라.」마카베오기 상권 3:58 · 두루새김
여기서 유다는 적군의 규모에 다시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왜 싸워야 하는지를 다시 일깨웁니다.
「우리 민족과 성소에 닥칠 재앙을 지켜보느니, 전쟁에서 죽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마카베오기 상권 3:59 · 두루새김
이 말에는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보다는, 더는 가만히 공동체의 파괴를 바라볼 수 없다는 결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군사의 수에 제한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자신의 군대가 아무 희생 없이 승리하리라는 보장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결과를 모두 알기 때문에 싸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과 성소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 때문에 싸우겠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뜻하신 대로 그분께서 행하실 것이다.」마카베오기 상권 3:60 · 두루새김
유다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언제나 자신이 예상한 방식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군대를 조직했고, 사람들을 돌려보냈으며, 적군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음 날 아침 싸울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결과를 자기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군사적 지도자이지만, 하나님을 자기 전쟁의 도구로 삼지는 않습니다.
그는 전쟁을 준비하지만, 승리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백성을 지키려 하지만, 역사의 마지막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말씀(마태복음 6:10)과 유다의 마지막 선언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긴다는 주제에서 연결됩니다. 다만 마카베오기 상권 3:60은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예고하는 구절이 아니라, 그보다 앞선 유대교의 신앙 언어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의 의미 — 무엇을 의지하면서 무엇을 지킬 것인가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을 믿는다는 것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기대하는 일뿐 아니라, 전쟁을 준비하는 순간에도 그분의 율법을 따르려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수 있다는 확신과, 구체적인 전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하나님의 뜻에 맡긴다는 태도는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과 자신의 미래를 모두 안다고 주장하는 일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3장의 끝에서 유다는 엠마오 남쪽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적군은 이미 가까이 와 있고, 아침이 되면 전투가 시작될 것입니다. 유다는 군사들에게 용사가 되어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그는 싸움을 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말은 자신의 용맹이나 적군의 패배에 관한 선언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뜻하신 대로 그분께서 행하실 것이다.」
아직 승패는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무기를 든 사람들은 다음 날의 전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의지하는 하나님의 뜻은 자신들의 손에 쥐어져 있지 않습니다.
유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준비했고,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3장은 승리의 환호가 아니라, 전쟁을 앞둔 이 고백으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