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26장
이 장의 자리 · 12–26장 · 새 땅에서 지킬 규정
바구니에 담긴 이스라엘의 역사
한 사람이 바구니를 들고 제사장 앞에 섭니다. 바구니에는 자신이 일군 땅에서 처음 거둔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가르쳐 준 감사의 말은 뜻밖입니다.
「제 조상은 목숨을 잃을 처지에 있던 아람 사람이었습니다.」
풍성한 수확을 얻은 사람이 왜 자신의 불안정했던 조상을 이야기해야 할까요?
신명기 26장은 하나님께 받은 것을 기억하는 일과,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일이 어떻게 하나의 신앙을 이루는지 보여 줍니다.
신명기 12장부터 이어진 여러 생활 규정은 26장에서 큰 마무리를 맞습니다. 신명기 27장부터는 언약의 명령을 돌에 기록하고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는 새로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첫 열매를 바구니에 담으라 — 수확을 자신의 업적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일
모세는 이스라엘이 장차 들어갈 땅을 이야기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몫으로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고 살게 되면,」신명기 26:1 · 두루새김
지금 모세의 말을 듣는 이스라엘은 아직 요단강 동쪽에 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차지한 상태가 아닙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들이 땅에 들어가 안정적으로 살게 될 미래를 바탕으로 명령합니다.
‘너희가 차지한 땅’이면서 ‘하나님이 주신 땅’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그 땅에서 거두는 온갖 수확물 가운데 처음 거둔 것의 일부를 바구니에 담아라. 그리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그분의 이름을 머물게 하려고 선택하실 곳으로 가라.」신명기 26:2 · 두루새김
그 땅은 이스라엘이 직접 일구는 땅입니다.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사람도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땅을 1절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몫으로 주시는 땅」이라고 부르고, 2절에서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그 땅」이라고 부릅니다.
수확물은 인간의 노동으로 얻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노동이 이루어지는 땅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신명기 8:17–18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풍요로워진 뒤 자기 힘과 능력으로 재물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26장의 첫 열매 규정은 그 경고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깁니다.
본문은 모든 수확물을 가져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수확의 첫 부분에서 얼마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얼마를 가져와야 하는지 구체적인 비율은 이 절에서 제시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수확의 처음에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동입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얻었는지만 바라보지 않고, 그 모든 것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돌아봅니다.
왜 하나님이 선택하실 곳으로 가야 하는가
모세는 첫 열매를 아무 곳에서나 드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신명기 12장에서 이미 강조되었던 예배 장소에 관한 원칙이 여기에서도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이 원하는 곳마다 제단을 세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을 머물게 하려고 선택하실 곳에서 예배해야 합니다.
그런데 26장은 그곳의 지리적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곳이 어디인지보다, 그곳을 선택하시는 분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땅을 주신 분도 여호와야훼이고, 그 땅의 수확물을 가지고 나아갈 곳을 정하시는 분도 여호와야훼입니다.
제사장 앞에서 처음 하는 말
첫 열매를 가져온 사람은 제사장에게 말합니다.
「그때 일을 맡고 있는 제사장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여라. 『여호와야훼께서는 이 땅을 우리에게 주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셨습니다. 제가 그 땅에 들어왔음을 오늘 제사장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아룁니다.』」신명기 26:3 · 두루새김
「제사장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라는 표현을 그 사람에게는 여호와야훼가 자신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다음 절들과 이 장의 다른 부분에서 그는 여호와야훼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여기서는 제사장 앞에서 이루어지는 공식적인 선언의 형식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미 그 땅에서 살고 있고, 수확까지 거두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그 땅에 들어왔음을 선언합니다. 이것은 땅에 들어간 날짜를 확인하는 행정 절차라기보다, 그 땅을 받은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그 땅에 들어간 일이 과거에 이루어졌더라도, 그 땅에서 얻는 수확은 매번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기억하게 합니다.
제사장은 바구니를 받아 제단 앞에 놓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기에서 곧바로 감사의 짧은 기도로 끝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오래된 이야기부터 들려주라고 명령합니다.
목숨을 잃을 처지에 있던 아람 사람 — 풍요의 출발점에 놓인 불안정한 조상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 앞에서 이렇게 선언하여라. 『제 조상은 목숨을 잃을 처지에 있던 아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얼마 안 되는 사람들과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 외국인으로 살았습니다. 거기에서 그의 집안은 크고 강하며 수가 많은 민족이 되었습니다.』」신명기 26:5 · 두루새김
‘목숨을 잃을 처지’인가, ‘떠돌던’ 사람인가
두루새김처럼 「목숨을 잃을 처지에 있던 아람 사람」으로 읽으면, 조상이 살아남는 것 자체를 위협받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반면 「길을 잃고 떠돌던 아람 사람」으로 이해하면, 안정된 거처 없이 이동하며 살아가던 조상의 모습이 강조됩니다.
두 읽기는 서로 완전히 동떨어진 의미가 아닙니다. 모두 조상이 강하고 안정된 삶의 기반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는 방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상황을 가리키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아람 사람은 누구인가
많은 독자는 이 표현에서 야곱을 떠올릴 것입니다.
야곱은 아람 지역과 깊은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리브가는 아람 사람 브두엘의 딸이었고(창세기 25:20), 야곱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의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창세기 28–31장). 또한 야곱은 훗날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을 고려하면 그 조상이 야곱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야곱이라는 이름을 직접 쓰지 않습니다. 그 대신 「제 조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모세는 여기서 족장의 위대함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졌는지, 어떤 특별한 능력을 지녔는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목숨을 잃을 처지에 있던 아람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출발합니다.
적은 수에서 큰 민족으로
5절의 이야기는 곧바로 이집트로 이어집니다.
창세기 46:27과 출애굽기 1:5는 야곱의 가족이 이집트로 내려간 사람들의 수를 기록합니다. 출애굽기 1:7은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하고 매우 강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신명기 26장은 그 긴 역사를 한 문장으로 압축합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정착해서 큰 민족이 된 것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의 땅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큰 민족이 되었습니다.
바구니를 들고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은 자신이 땅의 주인이 된 현재만 기억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조상이 남의 땅에서 불안정하게 살았던 과거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오베드(אָבַד)는 아바드라는 동사의 분사형입니다. 기본적으로 잃어버리거나 사라지거나 멸망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따라서 특정한 위기나 사건을 이 표현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확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또한 고대의 해석 전통에는 「아람 사람이 내 조상을 멸하려 했다」는 방향의 읽기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오베드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자동사적 의미이므로, 그 읽기는 문법적으로 별도의 설명을 필요로 합니다.
'그'에서 '우리'로 — 한 조상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5절에서는 「제 조상」이라는 말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6절부터 주어가 달라집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우리를 못살게 굴고 괴롭히며 힘겨운 일을 시켰습니다.』」신명기 26:6 · 두루새김
첫 열매를 드리는 사람은 자신이 직접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한 적이 없더라도, 그 역사를 자기 백성의 역사로 고백합니다. 그는 먼 조상들의 고난을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못살게 굴고」, 「우리가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자」,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과거는 후손에게 전달된 정보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고난에 관한 세 가지 표현
「『우리가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자, 여호와야훼께서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겪고 고생하며 억눌리는 모습을 보셨습니다.』」신명기 26:7 · 두루새김
「고통을 겪고」, 「고생하며」, 「억눌리는 모습」입니다. 이 말들은 서로 가까운 뜻을 지니지만, 이스라엘의 처지를 하나의 단어로만 설명하지 않도록 합니다. 이스라엘이 겪었던 일은 단순히 생활이 불편했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모세는 고난에 관한 표현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하신 두 가지 행동을 이야기합니다.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보셨습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2:23–25와 3:7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행동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이 고난의 현장과 무관하게 계시지 않으셨음을 나타냅니다.
8절에서 하나님은 행동하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강한 손과 뻗은 팔로, 큰 두려움을 일으키는 일과 표징과 놀라운 일들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신명기 26:8 · 두루새김
이 구절에서 이야기의 중심은 완전히 여호와야훼의 행동으로 옮겨 갑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이집트를 탈출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출애굽에서 끝나지 않는 구원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오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신명기 26:9 · 두루새김
구원은 억압에서 벗어나는 일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일까지 포함합니다.
신명기 6:23에서도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목적이 그들을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려와 그 땅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합니다. 26장은 그 목적이 이루어진 뒤 이스라엘이 어떤 고백을 해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일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광야에서 여러 차례 불순종했던 일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고백이 모든 역사를 빠짐없이 요약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모세는 다시 바구니를 들고 서 있는 사람에게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데려오셨기에, 내가 열매를 가져왔습니다
「『여호와야훼여, 이제 주님께서 제게 주신 땅에서 처음 거둔 것을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그것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 앞에 놓고 그분 앞에 엎드려라.」신명기 26:10 · 두루새김
9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곳으로 데려오시고」 땅을 주셨습니다. 10절에서 이스라엘 사람은 땅에서 처음 거둔 것을 하나님께 「가져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같은 어근이지만 행동의 주체가 다릅니다.
먼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데려오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사람이 첫 열매를 가져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으로 데려오셨기 때문에, 이 땅의 열매를 하나님께 가져왔습니다.
바구니에 담긴 것은 열매만이 아니다
처음에 바구니에는 땅에서 거둔 것만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가르쳐 준 고백을 들은 뒤에는 그 바구니가 다르게 보입니다.
그 안에는 조상이 이집트로 내려간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힘겨운 일과 부르짖음의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들으시고 보시고 구해 주신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얻은 수확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곡식을 길러 낸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왜 그 땅에서 곡식을 기를 수 있게 되었는지도 기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처음 거둔 것은 자신의 노동을 과시하는 물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증언이 됩니다.
감사의 마지막은 혼자 누리는 기쁨이 아니다
10절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런데 11절은 예배의 마지막을 뜻밖의 방향으로 이끕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와 너희 집안에 주신 모든 좋은 것을 두고, 레위 사람과 너희 가운데 함께 사는 외국인과 함께 기뻐하여라.」신명기 26:11 · 두루새김
신명기 14:27은 레위 사람에게 다른 지파와 같은 상속 몫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함께 사는 외국인 역시 그 땅에 자리 잡고 사는 이스라엘 가족들과 같은 삶의 바탕이 되는 땅을 갖지 못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5절에서 이스라엘의 조상은 다른 사람의 땅에서 외국인으로 살았습니다. 11절에서는 이스라엘의 땅에 사는 외국인이 그들과 함께 기뻐합니다.
한때 외국인이었던 백성이 하나님의 선물로 땅을 얻었을 때, 그들의 기쁨은 지금 자기들 가운데 살아가는 외국인에게까지 열려 있어야 합니다.
성경 전체와의 연결 — 약속의 성취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창세기 12:1–3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아브람에게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 주실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신명기 26장에서는 그 약속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 고백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이 한순간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의 역사를 지나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특히 신명기 26장은 그 성취를 처음 거둔 것이라는 구체적인 물건으로 확인합니다. 그들이 실제로 그 땅에서 수확을 얻지 못했다면 처음 거둔 것을 가져올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여호수아 5:10–12도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 그 땅에서 거둔 것을 먹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만나가 그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던 백성이 이제 약속의 땅에서 나는 곡식을 먹습니다.
신명기 26장은 그 이후의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미리 가르칩니다. 땅에서 나는 곡식을 먹게 된 뒤에도 그 곡식을 주신 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16:11에서도 여호와야훼 앞에서 기뻐할 때 아들과 딸, 남종과 여종, 레위 사람과 함께 사는 외국인과 아버지를 잃은 아이와 남편을 잃은 여자가 함께 기뻐하도록 명령합니다. 26장의 첫 열매 예식도 이와 같은 방향을 보여 줍니다.
바구니를 가져온 한 사람의 고백은 여러 사람이 함께 누리는 기쁨으로 이어집니다.
'그들이 너희 성읍에서 배불리 먹게 하여라' — 거룩한 몫이 사람의 식탁에 이르기까지
12절에서는 첫 열매 예식과 다른 규정이 등장합니다.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내는 해에는 수확물에서 십일조를 모두 떼어 내어, 레위 사람, 함께 사는 외국인, 아버지를 잃은 아이와 남편을 잃은 여자에게 주어라. 그들이 너희 성읍에서 배불리 먹게 하여라.」신명기 26:12 · 두루새김
이 규정의 배경은 신명기 14:28–29에 나옵니다. 신명기 26장은 그 규정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요소를 더합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선언입니다.
첫 열매와 셋째 해 십일조의 차이
첫 열매 예식에서는 처음 거둔 것의 일부를 바구니에 담아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실 곳으로 가져갑니다. 반면 셋째 해의 십일조는 레위 사람과 함께 사는 외국인과 아버지를 잃은 아이와 남편을 잃은 여자에게 주어 그들이 성읍 안에서 먹을 수 있도록 합니다.
따라서 십일조를 제대로 떼어 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목적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목적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배불리 먹게 되는 일이 포함됩니다.
신명기 14장의 십일조 규정과 연결하면, 이스라엘이 땅에서 거둔 수확물 가운데 일부는 안정적으로 땅을 소유하지 못하거나 가족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나타납니다. 11절에서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의 범위가 12절에서는 배불리 먹게 해야 할 사람들의 범위로 넓어집니다.
‘거룩하게 구별한 몫을 집에서 모두 내놓았습니다’
13절에서 십일조를 나누어 준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선언합니다.
「그리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 앞에서 이렇게 말하여라. 『저는 거룩하게 구별한 몫을 집에서 모두 내놓았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레위 사람, 함께 사는 외국인, 아버지를 잃은 아이와 남편을 잃은 여자에게 주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명령을 어기지도, 잊지도 않았습니다.』」신명기 26:13 · 두루새김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한 몫을 올바르게 처리한다는 것이 반드시 그것을 성소의 제단 위에 올려놓는 행동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 경우에는 하나님께 구별된 몫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명령에 순종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께 구별된 몫이 레위 사람과 함께 사는 외국인과 아버지를 잃은 아이와 남편을 잃은 여자의 식탁에 이르렀을 때, 그 몫을 바르게 다루었다고 선언할 수 있습니다.
‘잊지도 않았습니다’라는 말
이스라엘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집트에서 구원받은 역사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야 할 몫을 잊지 않는 일도 포함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억한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것을 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명기 26장은 그 두 기억을 나누지 않습니다.
처음의 역사 고백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무엇을 주셨는지 기억합니다. 이제 십일조의 고백에서는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라고 명령하신 것을 잊지 않았다고 선언합니다.
첫 번째는 받은 은혜에 관한 증언입니다.
두 번째는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이 행한 순종에 관한 증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사야 58:6–7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억압의 멍에를 풀고,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누며, 집 없이 떠도는 가난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행동과 연결합니다. 신명기 26장의 규정과 같은 제도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는 일을 분리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같은 주제로 만납니다. 신약에서는 고린도후서 8:9–15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이야기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나눔을 권합니다. 이는 신명기 26장을 직접 인용한 해설이 아니라, 먼저 받은 은혜가 다른 사람을 위한 나눔으로 이어진다는 주제적 연결입니다.
죽은 이를 위해 쓰도록 주지 않았습니다 — 거룩한 몫의 사용에 관한 세 가지 부정
14절은 앞의 선언을 더욱 구체화합니다.
「『저는 죽은 이를 슬퍼하는 동안 그것을 조금도 먹지 않았습니다. 부정한 상태에서 그것을 조금도 내놓지 않았고, 죽은 이를 위해 쓰도록 조금도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따랐으며, 주님께서 제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행했습니다.』」신명기 26:14 · 두루새김
이 구절은 단순히 십일조를 얼마나 많이 나누어 주었는지 보고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구별된 몫을 다른 목적에 사용하거나 알맞지 않은 상태에서 다루지 않았다는 선언입니다.
왜 이런 고백을 하는가
죽은 이를 슬퍼하는 동안, 부정한 상태, 죽은 이를 위한 사용이라는 세 표현은 모두 거룩한 몫을 다루는 방식과 관련됩니다. 그러나 각각의 정확한 관습과 금지 범위는 본문만으로 모두 알아낼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죽은 이를 슬퍼하는 동안」은 누군가를 잃고 슬퍼하는 시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부정한 상태에서」는 정결 규정과 관련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다만 누가 부정한 상태였는지, 또는 구별된 몫을 부정한 용도로 사용했다는 뜻인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세 번째 「죽은 이를 위해 쓰도록」은 장례나 죽은 사람과 관련된 어떤 관습을 염두에 둔 표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의식을 행했는지, 죽은 사람을 위해 음식을 바치는 행위였는지, 다른 장례 관습이었는지 이 절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근거로 당시 사람들이 죽은 뒤의 세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죽은 사람을 위한 의식이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13절에서는 누구에게 주었는지를 설명합니다. 14절에서는 어떤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합니다. 두 진술이 함께 있어야 온전한 순종의 고백이 됩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하는 일과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사용하는 일은 구별되지만, 서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 복을 주십시오 — 모두 나누어 준 뒤 드리는 기도
15절은 두 번째 선언의 마지막입니다.
「『주님께서 머무시는 거룩한 곳,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복을 주십시오.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우리에게 주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도 복을 주십시오.』」신명기 26:15 · 두루새김
이 기도에서 특별한 점은 그것이 십일조를 모두 나누어 준 뒤에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사람이 먼저 좋은 일을 하여 하나님의 복을 사는 거래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먼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시고 땅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선물에 응답하여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행합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땅에 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첫 열매의 바구니와 하늘의 처소
2절에서 처음 거둔 것을 가져가는 곳은 여호와야훼께서 그분의 이름을 머물게 하려고 선택하실 곳입니다. 그곳에서 제사장은 바구니를 제단 앞에 놓습니다. 그런데 15절에서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는 곳이 땅에 있지만, 하나님 자신이 그 땅의 장소 안에 갇혀 계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명기 4:39에서도 모세는 여호와야훼께서 위로는 하늘에, 아래로는 땅에 하나님이시며 다른 하나님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왜 땅에도 복을 구하는가
이미 한 해의 수확을 거두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언제나 같은 풍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땅을 받았지만, 그 땅의 풍요를 자기 능력으로 영원히 유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미 받은 땅을 감사하면서도 그 땅이 계속 생명을 길러 낼 수 있도록 하나님께 복을 구합니다.
여기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이 다시 등장합니다. 9절에서는 하나님이 그 땅을 주셨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15절에서는 하나님이 그 땅에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같은 땅이지만 하나는 과거의 선물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도 필요한 하나님의 돌보심입니다.
오늘, 서로 선언하다 — 언약 관계를 다시 확인하는 날
16절에서 모세의 말투가 바뀝니다.
지금까지는 이스라엘이 땅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이제 모세는 그 모든 명령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말합니다.
「오늘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이 규정과 법을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신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지켜 행하여라.」신명기 26:16 · 두루새김
그동안 모세는 예배, 재판, 경제생활, 가족과 공동체의 질서에 관한 다양한 명령을 전했습니다. 26장의 마지막에서 그는 그 명령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다시 밝힙니다.
‘오늘’이라는 말의 반복
16–18절에는 「오늘」이 세 번 반복됩니다.
16절에서는 오늘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다고 합니다.
17절에서는 오늘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선언했다고 합니다.
18절에서는 오늘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그분의 특별한 소유인 백성으로 삼겠다고 선언하셨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미 이집트에서 구출되었고, 광야에서 언약을 맺었으며, 지금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오늘」은 새로운 신을 선택하거나 과거와 무관한 새로운 관계를 처음 시작하는 날이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는 언약 관계를 현재의 순종과 선언으로 확인하는 날입니다.
신명기 5:3에서도 모세는 호렙에서 세운 언약이 단지 조상들과만 맺어진 것이 아니라, 오늘 살아 있는 이스라엘 자신과 맺어진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26장에서는 그 언약의 관계가 다시 선언됩니다.
인간과 하나님이 서로 선언하다
17절과 18절은 서로 짝을 이루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오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 하나님이 되신다고 선언했다. 또 그분의 길을 따르고 그분의 규정과 명령과 법을 지키며 그분의 말씀을 따르겠다고 선언했다.」신명기 26:17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께서도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희를 그분의 특별한 소유인 백성으로 삼겠다고 선언하셨다. 또 너희가 그분의 모든 명령을 지켜야 한다고 하셨다.」신명기 26:18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먼저 하나님을 찾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의 전체 이야기에서 여호와야훼는 먼저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셨고, 이집트에서 그들을 구출하셨으며, 그들에게 땅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언은 이미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특별한 소유인 백성’이라는 말
출애굽기 19:5에서도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말씀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모든 민족 가운데서 자신의 특별한 소유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7:6과 14:2에도 같은 주제가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특별히 귀하게 여기시는 백성이 됩니다. 그러나 그 지위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과 무관한 특권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 위에 마음대로 군림할 수 있는 권한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속한 백성답게 살아야 하는 관계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깊이
17절과 18절의 선언이라는 표현을 서로의 관계를 선언하거나 확실하게 확인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대에게서 선언이나 확실한 약속을 받아 냈다는 방향으로 읽는 견해도 있습니다. 두 형태의 정확한 의미와 말의 뿌리에 관한 설명에는 불확실성이 있지만, 문맥에서 양쪽의 관계가 서로 짝을 이루어 확인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모든 민족보다 높이 — 선택받은 백성의 영광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마지막 절은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약속으로 끝납니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그분이 만드신 모든 민족보다 높이 세워, 칭찬을 받고 이름을 떨치며 영광을 누리게 하겠다고 하셨다. 또 말씀하신 대로 너희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속한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신명기 26:19 · 두루새김
본문은 이 약속을 군사적 지배나 정치적 정복의 구체적인 명령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지막에 도달하는 목적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속한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보다 높이 세워」라는 표현은 분명히 특별한 지위와 영광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이며, 그분의 명령을 지켜야 하고, 그분께 속한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높임을 받는 약속은 하나님의 명령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우월하다는 선언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강하고 영광스러운 민족이 자신에게 합당한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주 적은 사람들로 시작한 백성이 하나님의 구원과 선물을 통해 새로운 자리에 이르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의 영광은 처음의 연약함과 분리해서 읽을 수 없습니다.
결론 — 열매를 내려놓고, 함께 기뻐하는 사람
신명기 26장이 보여 주는 약속의 땅은 단순히 수확물이 풍성한 땅이 아닙니다. 그 땅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을 구출하신 여호와야훼를 기억하고, 그분께 받은 좋은 것을 함께 누리는 땅입니다.
한 사람이 바구니를 들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곳으로 갑니다. 바구니에는 그가 일군 땅에서 처음 거둔 것이 들어 있습니다. 제사장은 바구니를 받아 제단 앞에 놓습니다.
그는 작고 불안정했던 시작을 기억합니다.
이집트에서 겪었던 억압을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이끌어 내신 일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가져온 처음 거둔 것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여호와야훼여, 이제 주님께서 제게 주신 땅에서 처음 거둔 것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모세는 그가 하나님 앞에 엎드린 뒤, 자기 집안과 함께 기뻐하라고 합니다. 레위 사람과 함께 사는 외국인도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 해가 되면 십일조를 레위 사람과 함께 사는 외국인과 아버지를 잃은 아이와 남편을 잃은 여자에게 주어 그들이 배불리 먹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기억하는 사람의 기쁨은 자기 바구니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셨고, 이스라엘은 받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받은 것을 기억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